유안진「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목록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유안진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春川도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움할 거라
녹다만 눈 응달 발치에 두고
마른 억새 깨벗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피고 있는 진달래꽃을 닮은 누가 있을 거라
왜 느닷없이 불쑥불쑥 춘천을 가고 싶어지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라
가서, 할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라
그저, 다만 새봄 한 아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몽롱한 안개 피듯 언제나 춘천 춘천이면서도
정말, 가본 적은 없지
엄두가 안 나지, 두렵지, 겁나기도 하지
봄은 산 너머 남촌 아닌 춘천에서 오지

 

여름날 산마루의 소낙비는 이슬비로 몸 바꾸고
단풍든 산허리에 아지랑거리는 봄의 실루엣
쌓이는 낙엽 밑에는 봄나물 꽃다지 노랑웃음도 쌓이지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春川이니까.?

 

● 출처 :『현대시학』, 2007년 8월호?

 

● 詩, 낭송 – 유안진: 1941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65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절망시편』『봄비 한 주머니』『다보탑을 줍다』, 장편소설『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땡삐』등이 있으며, 정지용문학상, 월탄문학상, 한국펜문학상 등을 수상함.

시인은 1941년생인데, 시는 열서너 살 파릇파릇한 소녀의 마음입니다. 지명을 가리키는 불광동, 냉천동, 문경, 추풍령, 그리고 춘천이라는 말 한 마디에 화들짝 놀라 반응하는 마음이 천진난만에 가깝습니다. ‘까닭도 연고도 없이’ ‘느닷없이 불쑥불쑥’ 기대하고, 몽롱하게 꿈꾸고, 그러다가 두려워하는, 이 마음의 풍경을 감히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요? 사랑이 설렘과 떨림으로 오듯 봄도 그렇게 옵니다. 당신도 춘천에 가고 싶은가요? 만약에 춘천에 가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당신의 사랑은 이미 늙어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춘천에 가볼 꿈을 꾸십시다, 이 봄에.

 

2008. 3. 3. 문학집배원 안도현.

목록

첫번째 댓글을 올려주세요!


9 년 8 개월 전

이건 세상을 달관한 한 초로의 할머니가 쓴 글 맛습니다.소녀가 쓴 글 아니예요. 안선생님 가끔 오바하세요그림 참 좋습니다. 그림 한점 구하고 싶은데 방법 알려주세요

9 년 8 개월 전

유안진시인님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저는 96년에문학과 창작 시낭송 하는데뵈었습니다.저는 지금 청양에 거주하며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란 시가 좋았습니다.봄은 늘 다가 오는데세상은 늘 힘들어집니다.유안진시인님늘 감사하며청양에서 살겠습니다.늘 시인님의 안녕과 행복을칠갑산에서 기원합니다.

9 년 8 개월 전

뭐든 해야할 것 같던 스물세살 되던 날,십년지기 친구와 춘천을 다녀왔습니다.이월 팔일,춘천은 아직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눈길에 미끄러지고 바지 밑자락은 다 젖어 더럽혀지고…힘들게 스물을 넘긴 녀석 둘은 그래도 행복했었습니다.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카페의 망명록에는 사랑으로만 가득 채웠습니다.십오년이 지난 지금,춘천~하면 아직도,눈 동동 띄운채로 이리저리 살랑거리던 그 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Anonymous
9 년 8 개월 전

춘천… 제게는 안개, 부우연 하늘, 탁한 새벽공기로 목이 간지러운 하루의 시작인데. 남이섬 소풍에 질렸고 중도와 위도 소풍이 번번이 이어질 때마다 서글펐는데. 배부른 투정이었을까요. 왜 갑갑한 분지에서 겨울과 여름 뿐인 날씨일까 투덜거리고 사는데. ^-^; 선생님의 글은 주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환기효과가 있는 듯 해요. 주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네요. 축복이 넘칠 때 축복인 줄 몰랐구나… 싶네요. 늘 아름답고 정갈한 글 기다립니다.

9 년 8 개월 전

춘천, 육림극장 위 비탈길에 눈이오고 얼음이 얼면, 어른들과는 상관없이 쭉 미끄럼을 탔었죠. 그리고 장마지고 소양강 다리 위에서 물구경을 하고,,,참 춥고 바람많이 부는 곳이었다고 기억됩니다. 효자동 붉은 점토를 파던 그 곳은 강원대학교가 되어있고, 저도 많이 묵은 사람이라 이 시가 다가오네요.

9 년 8 개월 전

설레임이 이는 곳은 모두 봄이다..내가 가고싶은 곳 모든 곳이 봄이다..

9 년 4 개월 전

+ 우리들 마음에 나이를 초월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음에이 시에서 넘치도록 우리들의 마음속에 와 자리잡음에… 이 시를 보면서 그런마음이 들었습니다.우리 모두가 순수의 세계로 거듭돌아가야 함을여실히 보여준다고…순수의 세계는 순진과 달라그모든것을 초월한 것임에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9 년 4 개월 전

춘천한번도 안가봤는데 이시를 보니가고 싶네요가고 싶게 만드네요

Anonymous
9 년 4 개월 전

녜~저도 춘천에 가고 싶어요.춘천에도 명동이 있답니다. 닭갈비를 먹고,춘천 명동거리를 걸어보고 싶군요.몇 년 전에 먹어 본 닭갈비의 맛이 그대로 있을지….춘천이니까…..

9 년 3 개월 전

갑자기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를 들으며 춘천가는 기차를 타고 싶어지네요. 그냥 가면 되는거라…

9 년 3 개월 전

진짜 집배원 말처럼 마음이 소녀같으신 것 같아요 우리 학교 선생님이랑 보이스가 비슷하셔서 왠지 친근한 느낌도 들고요. ㅎㅎ 외람되지만 제가 낭송해보고 싶은 마음도 드는 파릇파릇하고 상큼한 시같아요 ㅎㅎㅎ

9 년 3 개월 전

춘천이든, 어디든 이런 지루한 일상속에서는 어디론가 퉝겨 나아가고 싶어지지요. 하지만 봄이라서, 나풀거리며 유혹하기에 가고 싶은 곳이 춘천이겠죠. 저는 언제즘 춘천에 갈 수 있을까요? 어디든 날아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오긴 올까요

9 년 3 개월 전

불광동은 따뜻해서 겨울에 살기 좋을 것 같고, 냉천동은 쉬원해서 여름이 제격일 것 같고, 추풍령은 늘 가을이고,,, 춘천은 늘 봄같이 파릇파릇할 것 같다는 시인의 그 맘, 그 맑은 영혼이 부러워요…나는 공주시에 사니까 공주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한 공주겠지요? 마음은 언제나 공주!

wpDiscu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