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백년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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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정거장

                                            유홍준

백년 정거장에 앉아
기다린다 왜 기다리는지
모르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어버렸으면서 기다린다 내가 일어나면
이 의자가 치워질까봐 이 의자가
치워지면 백년 정거장이
사라질까봐
기다린다 십년 전에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십년 전에 떠난 버스는
이제 돌아오면 안 된다 오늘도 나는 정거장에서 파는
잡지처럼 기다린다 오늘도 나는 정거장 한구석에서 닦는
구두처럼 기다린다 백년 정거장의 모든 버스는
뽕짝을 틀고 떠난다 백년 정거장의
모든 버스는 해질녘에 떠난다 백년
정거장의 모든 버스는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바닥이 더러운 정거장에서
천장에 거미줄 늘어진 정거장에서
오늘도 너는 왜
기다리는지……
모르면서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린다 

 

 

● 출처 :『나는, 웃는다』, 창비 2006

 

● 詩, 낭송 – 유홍준: 1962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1998년『시와반시』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喪家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등이 있으며, 윤동주문학상, 시작문학상 등을 수상함.

백년 정거장이 어디 있는지 아시는지요? 시인한테 물어보면 아마 이렇게 답할 듯합니다. “백년 술집에서 술이나 한 잔 하시지요.” 그 다음부터는 백년 술집에 앉아 왜 마시는지 모르고 마시는 거지요. 우리가 일어서면 의자가 치워질까봐, 의자가 치워지면 백년 술집이 사라질까봐 마시는 거지요. 백년 술집의 모든 술은 마시면 사라지지요. 술집의 주전자처럼 마시고, 술잔처럼 마시는 거지요. 무엇을 마시는지도 모르고 마시는 거지요. 백년 술집에서 우리는, 우리를 스치고 가는 어떤 시간에 대해, 상처에 대해, 간절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겠지요.

 

2008. 3. 17. 문학집배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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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년 4 개월 전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시군요….

9 년 4 개월 전

심오한 뜻의 시아직 제가 이 경지에 까지 미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9 년 3 개월 전

떠난 모든 것들은 이젠 다시 돌아올수없는 것들인데 가끔 혹여라도 돌아올까 기다려지는 순간이 있어요.

9 년 3 개월 전

쓸쓸하다 어스름 내리는 시인의 말소리가 쓸쓸하다 '정거장'과 '증그장' 사이의 어중간한 지방색이 쓸쓸하다 백년 정거장은 정말 백년 증거장일 것만 같아 쓸쓸하다 십년 전의 버스 낡아서 덜컹거리기도 하였을 창문으로 얼굴 하나 담겨 간다 그때의 뽕짝은 지금의 뽕짝보다 훨씬 더 쓸쓸토록 경쾌하였을까

9 년 3 개월 전

백년 정거장에는 십년 전의 버스가 오지 않는다 오지 못한다 이 의자가 슬픈 엉덩이의 무게에 눌린 채 구십 년을 더 자면 십년 전의 그 버스도 나이를 먹어 호호할머니같은 허옇게 센 머리칼을 조그맣게 묶고 끄덕끄덕 고개라도 흔들리며 올런지…그러면 나는 의자처럼 더러운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조용한 백년 의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9 년 3 개월 전

버스는 이제 돌아오면 안 된다 돌아오지 않을거라 안심하며 나는 기다리기 때문이다 받지않는 전화를 오래 붙들고 나는 안심하며 뚜우 뚜 울지 않았던가 말줄임표 점 여섯이 쓸쓸하다 나를 떠난 십년 버스 없이도 나는 쓸쓸하다 나는 구십 년을 더 살지 않아도 의자처럼 온 생을 쓸쓸히 오래 기다릴 것이다

9 년 3 개월 전

……글을 쓰고 보니 300자 이상은 실리지 않는다고 하여 세 마디로 나누어 적었습니다. 순서는 아래쪽부터 입니다…….

9 년 3 개월 전

설마, 혹시라도 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됩니다. 그런게 혹시라도 멀리 떠나려는 님을 잡아 줄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것, 그사람, 그일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가 풍선을 손에 꼭 쥔것처럼 무언가를 손에 꼭 쥐고 놓아주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으니까요.

9 년 3 개월 전

왜 기다리는 줄도 모르면서 기다리 듯, 왜 사는 지 모르면서 살아가는게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번 가면 돌아올줄 모르는 버스, 그건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 세월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생길에 그냥 그 순간이 영원히 정지 되길 바랄만큼 행복한 시간도 있었고, 반면 그 자리를 그 순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때도 있었지요. 좋아도, 싫어도 가야하는 인생의 종점! 그건 기다림의 연속이고 그리움의 연속이 아닐까요…가정이라는 작은 간이 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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