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리「그 변소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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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소간의 비밀

박규리
십년 넘은 그 절 변소간은 그동안 한번도 똥을 푼 적 없다는데요 통을 만들 때 한 구멍 뚫었을 거라는 둥 아예 처음부터 밑이 없었다는 둥 말도 많았습니다 변소간을 지은 아랫말 미장이 영감은 벼락 맞을 소리라고 펄펄 뛰지만요, 하여간 그곳은 이상하게 냄새도 안 나고 볼일 볼 때 그것이 튀어 엉덩이에 묻는 일도 없었지요 어쨌거나 변소간 근처에 오동나무랑 매실나무가 그 절에서는 가장 눈에 띄게 싯푸르고요 호박이랑 산수유도 유난히 크고 환한 걸 보면요 분명 뭔가 새긴 새는 것이라고 딱한 우리 스님도 남몰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요 누가 알겠어요, 저 변소는 이미 제 가장 깊은 곳에 자기를 버릴 구멍을 스스로 찾았는지도요 막막한 어둠 속에서 더 갈 곳 없는 인생은 스스로 길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어서요 한줌 사랑이든 향기 잃은 증오든 한 가지만 오래도록 품고 가슴 썩은 것들은, 남의 손 빌리지 않고도 속에 맺힌 서러움 제 몸으로 걸러서, 세상에 거름 되는 법 알게 되는 것이어서요 십년 넘게 남몰래 풀과 나무와 바람과 어우러진 늙은 변소의 장엄한 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만도 하지만요 밤마다 변소가 참말로 오줌 누고 똥 누다가 방귀까지 뀐다고 어린 스님들 앞에서 떠들어대는 저 구미호 같은 보살 말고는, 그 누가 또 짐작이나 하겠어요?

● 출처 :『이 환장할 봄날에』, 창비 2004

 

● 詩, 낭송 – 박규리: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5년『민족예술』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이 환장할 봄날에』가 있음.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변소간의 그 보이지 않는 구멍이 제 마음을 관통했던 겁니다. 변소의 역할은 자기 몸에 똥을 채우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천하고 가장 더러운 것을 몸으로 받는 일이지요. 그러나 늙은 변소는 사랑과 증오와 서러움을 다 거르고 삭혀서 세상에다 되돌려줍니다. 그것은 자기를 버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하므로 분명히 장엄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인간들이야 그 뜻을 한 치라도 헤아리기나 하겠습니까?

 

2008. 3. 24. 문학집배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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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당
9 년 7 개월 전

'늙은 변소의 장엄한 마음'이 인상적이군요.

9 년 7 개월 전

시와 문장들 배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줄을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같은 시나 문장이 세 통씩이나 메일로 오기를 반복하니 이제 스트레스의 한계 폭발선에 선 느낌입니다. '수신거부'를 하면 그만이겠으나 , 가끔씩 좋은 글 뜨는 걸 보는 기쁨이 또한 있기에 제발 다시 부탁드립니다. 기술적인 문제를 좀 점검하셔서 세련된 '시와 문장 배달'이 되길 바랍니다. ;;;;;

9 년 7 개월 전

전 시는 모르지만 왠지 가슴 깊이 저미는 감정을 주체할 수 가 없군요 그 변소 간의 진실함이 묻어 나고 내 가슴 속의 묵은 감정과 내 뱃속의 썩은 것들이 그냥 다 배출되는 그런 시원함이 느껴지는 군요

althqksekf
9 년 7 개월 전

평소에 좋아하는 박규리 시인의 시를 이렇게 육성으로 들으니 만난 적 없지만 참 반갑습니다.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가슴 속에 깊이 쌓아둔 사연과 비밀들….저 역시 꾹꾹 참고 묻어 두었다고, 그렇게라도 폭발시키지는 않았다고, 그만하면 잘 한거라고 다독이며 살아왔는데, 저 시는 그것만으로는 안된다고 저를 문득 일깨우네요…. 항상 버려진 것들을 거의 바보스러울만큼 천진난만한 눈으로 그려내다간, 어느 순간 나와 우리 존재의 가차없는 진실을 파헤쳐 들여다보는 박시인의 혹독한 자기 돌아봄이 섬뜩하도록 감동적이군요.

9 년 4 개월 전

제목이 좀 특이해서…변소간을 시를 …근데 듣다보니..저또한 가슴이 뚫리는걸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참 좋네요~~

9 년 4 개월 전

이렇게 재미난 시는 처음이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변소간의 비밀을 추정해 나간다. 똥의 위력은 대단한다.

9 년 4 개월 전

옛날에 재래식 화장실이 생각납니다.냄새나고 가스로 가득한 곳이었는데 나를 자라게 한 곳의 한 부분이란 걸 깨달았습니다.현대식으로 꾸며진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며 아이들에게 옛날 변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추억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들었어요.

9 년 4 개월 전

메일로 오는 시와 문장들 다 꼼꼼히 잘 보고 있습니다 이시는 정말 재밌네요 시는 특히 책을 사서 보기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메일로 이렇게 시를 본다는 자체가 저한테 정말 유익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정말 회원가입을 잘한것 같다는 생각을 연거푸합니다 무식한 저에게 조금이나마 문학과 같이 한다는자체가 뿌듯하기까지합니다재밌고 소중한 시 ,,, 정말 감사합니다

9 년 3 개월 전

시인들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더러워하는 변소, 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젠 변소에 갈 때마다 절집 변소간을 떠올리면서 우리집 변소의 비밀을 생각해볼 것 같습니다. 그냥 지나치는 하잖고 아무 의미없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이렇게 하나씩 생각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나디.

9 년 3 개월 전

그런 변소가 될 수있을까요? 제가 그런 변소간처럼 쓸모있는 사람이였음 좋겠습니다.

9 년 3 개월 전

쌓기만 한다면 무너짐을 볼 수 없겠죠. 세상 살아가는 버리지 않고, 무엇을 계속 쌓는다면 언젠간 무너져 가슴에 큰 상처로 남을 수도 있겠죠. 그 가슴을 치유할수도 없게 되겠죠.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겠죠. 모든걸 버리고 깨끗하게 남도록, 오늘도 한가지를 버립니다.

9 년 3 개월 전

어쩜! 부럽다는 생각이 앞서내요. 이런 소제로 이렇게 멋지고, 맛있는 글을 쓸 수 있는지…영혼을 흔드는 메세지를 전할 수 있는지요…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가 생각납니다. 버림으로, 내려 놓음으로, 나눔으로 더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세상에 거름이 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행복합니다…좋은 글.

9 년 3 개월 전

ㅋㅋㅋ~엊그제 시골가서 뒤뚱거리는 나무 다리에 걸터앉아 볼 일을 봤던게 생각납니다~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7 년 2 개월 전

제목이나 내용이 너무 우습다.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감상할 만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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