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자「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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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

               김해자

너덜너덜한 걸레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또 망설인다
이번에 버려야지, 이번엔 버려야지, 하다
삶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또 한 살을 먹은 이 물건은 1980년 생
연한 황금색과 주황빛이 만나 줄을 이루고
무늬 새기어 제법 그럴싸한 타올로 팔려온 이놈은
의정부에서 조카 둘 안아주고 닦아주며 잘 살다
인천 셋방으로 이사 온 이래
목욕한 딸아이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수천 번 젖고 다시 마르면서
서울까지 따라와 두 토막 걸레가 되었던
20년의 생애,
더럽혀진 채로는 버릴 수 없어
거덜난 생 위에 비누칠을 하고 또 삶는다
화염 속에서 어느덧 화엄에 든 물건
쓰다쓰다 놓아버릴 이 몸뚱이

 
● 출처 :『축제』, 애지 2007

 

● 詩, 낭송 : 김해자 – 1961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8년여 조립공 시다 미싱사로 일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시를 쓰기 시작함.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등이 있음. 전태일문학상, 백석문학상을 수상함.

정들여 오래 쓴 물건들은 왠지 식솔처럼 느껴져 잘 버리지도 못하지요. 그 물건에 깃든 삶의 흔적과 기억을 차마 내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겠죠. 20년을 넘긴 걸레의 생애. 그 정도 세월이면 걸레에도 불성(佛性)이 생겼겠어요. 아니, 걸레야말로 우리 삶의 더럽고 습기찬 구석구석을 제 몸으로 닦아내는 비구니 같은 존재 아닐까요. 그래서 시인은 그 정든 친구를 향해 “화염 속에서 어느덧 화엄에 든 물건”이라고 부르고 있군요. 우리의 낡아가는 몸뚱이도 그래요. 낡으면 낡은 대로 수없이 비누칠하고 삶아 쓰다가 언젠가 내려놓을 날이 오겠지요.

 

2009. 3. 9. 문학집배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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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현
8 년 16 일 전

이 시에 공감한다오래된 물건일수록 내 가족같고 친구같다우리곁에있는 친구들도 오래될수록 버리지 못하고 서로 아껴주는것 같다 우리집에도 가구중에서 오래된 것이 있는데 그 가구를 볼때마다유치원때 생각도 나고 초등학교때 생각도 난다 그래서 오래된 물건은 우리추억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뽀잉워니
8 년 13 일 전

이 시를 읽을떄내가쓰던물건이 오래되서 버리려고하면그동안에내가그물건을 쓸때가생각나서 못버리고 결국 내방안에다시놓을때가생각이났다.오래된물건일수록 정이 많이들어서 버리기힘든것같다이 시는 정말 공감이된다.누구나 이 시를읽으면 정든물건을떠올리면 읽을것같다.

7 년 3 개월 전

우리집 걸레 이야기네요. 나달나달 빨기도 애처로운데 그냥 버리자니 미안하고 다시 품고 살지요. 큰아이와 동갑인데 성장하는 아이와는 반대로 얇아지고 가늘어지고 설겨졌네요.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인 인생에서 물건과의 헤어짐은 더 힘든거 같아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어느 한쪽의 소원함으로 멀어지지만물건은 온전히 주인의 의지로 버려지기에 마음을 접고 접고 욕심도 집착도 접고 접어도 내려 놓기가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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