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너를 이루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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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너를 이루는 말들」
 
 
 
 
한숨이라고 하자
그것은 스스로 빛을 발할 재간이 없어
지구 바깥을 맴돌며 평생토록 야간 노동을 하는
달빛의 오래된 근육
 
약속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한 번을 잘 감추기 위해서 아흔아홉을 들키는
구름의 한심한 눈물
 
약속이 범람하자 눈물이 고인다 눈물은 통곡이 된다
통곡으로 우리의 간격을 메우려는 너를 위해
벼락보다 먼저 천둥이 도착하고 있다
나는 이 별의 첫 번째 귀머거리가 된다
한 도시가 우리 손끝에서 빠르게 녹슬어간다
 
너의 선물이라고 해두자
그것은 상어에게 물어뜯긴 인어의 따끔따끔한 걸음걸이
반짝이는 비늘을 번번이 바닷가에 흘리고야 마는
너의 오래된 실수
 
기어이
서글픔이 다정을 닮아간다
피곤함이 평화를 닮아간다
 
고통은 슬며시 우리 곁을 떠난다
 
소원이라고 하자
그것은 두 발 없는 짐승으로 태어나 울울대는
발 대신 팔로써 가 닿는 나무의 유일한 전술
나무들의 앙상한 포옹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상처는
나무 밑둥을 깨문 독사의 이빨 자국이라고 하자
동면에서 깨어난 허기진 첫 식사라 하자
우리 발목이 그래서 이토록 욱신욱신한 거라 해두자
 
 
 
시 / 김소연 – 1967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극에 달하다』『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눈물이라는 뼈』 등이 있으며, 산문집 『마음사전』과 장편동화 『오징어섬의 어린왕자』 등이 있음.
 
낭송 / 강경보 – 시인. 200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우주물고기』가 있음.
출전 / 『눈물이라는 뼈』(문학과지성사)
음악 / 권재욱
애니메이션 / 이지오
프로듀서 / 김태형

 

이 시는 어찌 이리도 유려한가요. 그러나 왜 아픈지요. 바보스럽고, 제대로 숨기지도 못하고, 울보이고, 칠칠하지 못하고, 그런 나와 당신. 앙상한 나무들의 포옹이라니요. 내가 그렇고 당신이 그렇지요. 기웃거리고, 해찰궂고, 번복하고, 그리고 엎드려 울지요. 햇살은 이리 밝아지고 낮은 길어지는데. 그러나 돌아앉는 마음이 없진 않아요. 그래, ‘너를 이루는 말들’은 뭐 하나 반짝이지 않지만 고통이 너의 몫이고 상처가 너의 몫이니 그래, 내가 너를 마주 바라보기 위해 돌아앉으마, 그래야겠지요. 나무들은 푸른 잎들을 달고 가지와 가지의 간격을 메우며 푸르게 우뚝 서 있고, 오늘은 구름이 없고, 천둥이 자주 우는 여름보다는 조금 이른 계절이고, 이 생소한 별에 와서 나와 당신은 눈빛을 주고받고 있으니.
 

문학집배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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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년 8 개월 전

마음을 도에 맞게 가지고 도리에 맞게 살다 보면 고통도 평화로이 사라진다는 뜻인것 같습니다. 인간의 마음씀이 하늘도 감동시킨다는 진리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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