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녀, 「지구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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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녀, 「지구의 속도」
 
 
 
 
천공(天空)이 아치처럼 휘어지고 있다
빽빽한 어둠 속에서
땅과 바람과 물과 불의 별자리가 조금씩 움직이면
새들의 기낭(氣囊)은 깊어진다
 
거대한 중력을 끌며 날아가 시간의 날카로운 부리를 땅에 박고 영원한 날개를 접는 저 새들처럼,
우리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생각할 때
교신이 끊긴 위성처럼 궤도를 이탈할 때
 
우리는 지구의 밤을 횡단해
잠시 머물게 된 이불 속에서 기침을 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내지만, 묵음의 이야기만이 눈동자를 맴돌다 흘러나온다
문득 창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의 어깻죽지에 머리를 묻고 잠들고 싶어도
 
근육과 뼈가 쇠약해진 우주인과 같이
둥둥 떠다니며 우리는 두통을 앓고
밥을 먹고 함께 보았던 노을과 희미하게 사라지는 두 손을 가방에 구겨 넣고는 곧 이 밤의 터널을 지날 것이다
 
어딘가로 날아갈 수밖에 없는 새들의 영혼처럼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지구의 속도처럼
조용히 멀미를 앓으며
저마다의 속도로 식어 가는 별빛이 될 것이다
 
 
 
시·낭송 / 김지녀 – 1978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으며, 2007년 『세계의 문학』 제1회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시소의 감정』이 있음.
 
출전 / 『시소의 감정』(민음사)
음악 / 자닌토
애니메이션 / 강성진
프로듀서 / 김태형

 

낮이 지나가는 속도를, 밤이 지나가는 속도를 완벽히 감각하며 살 수는 없어요. 낮과 밤이 흐르는 속도가 빌딩의 회전문 같다면 우리는 살 수가 없지요. 분명 호되게 현기증에 시달리고 말테니. 별자리를 유심히 살펴볼 기회도 없는 우리는 기침을 하고, 두통을 앓고, 가벼운 멀미를 앓을 뿐이죠. 그것이 지구의 속도 때문임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그렇다고 불끈 쥔 주먹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눈물은 눈물로, 미소는 미소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지요. 눈물과 미소의 원천과 속도를 알 수 없듯이. 오규원 시인은 생전에 남긴 한 시구(詩句)에서 이렇게 노래했지요.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 튼튼한 줄기를 얻고 /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 살아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라고.
 

문학집배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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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년 7 개월 전

시만큼이나 담담하고 담백한 시인의 목소리가 좋습니다.참 그런 것 같아요. 우리는 금새 이 밤의 터널을 지나가겠지요.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나, 저마다의 온도와 빛을 내는 신성이 되었던 것처럼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또 식어져가겠지요.눈발 날리는 서울 하늘 아래서 조용한 멀미를 앓는 이,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좋은 시, 좋은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

7 년 7 개월 전

이 울렁거림이 진정 저만의 것이 아니겠지요…토할 듯 토해내지 못하는 이 어지러움이지구의 속도 때문이라고 위로해도 될까요…살아있는 것을 증명하는 저 깊은 속,꿈틀거림을 그저 인정해야겠지요.고맙습니다.

7 년 7 개월 전

시 낭송과 함께 나오는 노래 제목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7 년 7 개월 전

노래보니 자닌토씨의 음악이라고 나오네요.http://www.janinto.com/노래가 비슷비슷 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Gern Sini Ga To와 제일 비슷한 것 같아요

7 년 7 개월 전

전체화면으로 볼 순 없나요? 교사인데, 반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요.

7 년 3 개월 전

무심 했던 것 같아요. 낮이 지나가는 속도를, 밤이 자나가는 속도를, 지구의 속도를 일상에 늘 마주 하고 있었는데,, 노력을 했다면 어느 정도 인식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삶에 치여 정작 소중한 것을 가볍게 여기고 귀찮게 여긴 것 같아 반성하게 되네요.앞으론 아주 느르게, 아주 찬찬히 느끼려고 하면 조금씩 보일 것 같네요.이 많은 사유를 하나로 묶어내는 시인을 보며 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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