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겐지, 「물의 가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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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 「물의 가족」 중에서

 

 

물기척이 심상치 않다.

 

꽃샘 추위가 에이는 이런 한밤중에, 누군가가 강을 헤엄쳐 건너려 하고 있다. 팽팽하게 긴장된 그 기척은, 건너편 기슭에 있는 세 바퀴 큰 물레방아가 쉬지 않고 내는 물소리 밑을 빠져나와, 정확하게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숨을 죽이며 가만히 펜을 놓고, 그리고 여전히 마음의 귀를 기울인다. 아무래도 짐승류는 아닌 것 같다.

사람이다. 직접 본 것도 아닌데, 사람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나를 꿰뚫고 지나간다.

 

야에코가 아닌가.

 

세차게 떠밀리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멋진 솜씨로, 폭 1킬로미터나 되는 물망천을 쓱쓱 건너오는 야에코의 모습이, 뚜렷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한밤만큼 깊은 대나무 숲 속의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오두막, 덧문도 유리창도 꼭 닫혀진 방안에 있으면서, 어떻게 밖의 광경이 하나부터 열까지 손에 잡힐 듯 알게 되는 것일까?

 

야에코는 나를 만나고 싶어하고 있다.

 

드디어 내 거처를 알아낸 그녀는 지금, 오 년이라는 세월의 끔찍한 거리를 단숨에 줄이기 위해, 열심히 물과 싸우고 있다. 야에코라고 하는 여자는 아직도, 나라는 사나이가 제일 먼저 원할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알몸이다.

강 수면을 잇달아 꿰뚫는 힘차면서 나긋나긋한 팔도, 맑은 물속의 수초처럼 매끄럽게 나부끼는 긴 머리칼도,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머리가 약간 모자란다는 사실을, 남들은 결코 생각하지 못할 넓고 아름다운 이마도, 물을 한번 휘저을 때마다 드러나는 모양새 좋은 유방도, 모든 것이 파랗게 달빛에 물들어 있다.

그때부터 이미 봄은 다섯 번이나 되풀이되었다고 하는데도, 야에코의 젊음은 점점더 빛나는 것 같다.

 

나는 아주 늙어버렸다.

 

집을 뛰쳐나온 순간, 가자키리(風切) 다리를 건너 쿠사바(草葉) 마을을 떠남과 동시에, 내 시간은 갑자기 빨리 흐르기 시작했었다. 이 신통치 않았던 오 년 사이에, 어쩌면 나 혼자만이 한꺼번에 오십 년 세월을 헤쳐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초췌해진 모습을, 적어도 야에코 앞에서만은 드러내보이고 싶지 않다.

 

나는 고향의 그 누구한테서도 실망당하고 싶지 않다.

 

또, 누구한테서도 동정받고 싶지 않고, 누구한테서도 경멸당하고 싶지 않다. 가까웠던 사람들하고의 재회라든가, 옛날대로의 생활, 내가 추구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고독과 정양(靜養)과 정적, 그리고 물망천 건너 기슭에서 바람이 가끔 실어오는 쿠사바 마을에 막 생겨난 하얀 안개이지, 그 밖의 어떤 것도 아니다. 야에코는 물론, 야에코의 자취조차도 필요치 않다.

 

 

ont color="#938953">● 작가 / 마루야마 겐지 – 1966년 「여름의 흐름」으로 『문학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스물세 살의 나이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함.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물의 가족』, 『천 일의 유리』,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천 년 동안에』,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 『도망치는 자의 노래』,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 소설집 『어두운 여울의 빛남』, 『아프리카의 달빛』, 『달에 울다』, 『낙뢰의 여로』, 산문집 『아직 만나지 못한 작가에게』, 『소설가의 각오』 등이 있음.

pan style="font-size: 11pt"> 낭독 / 정인겸 – 배우. ‘2009 유리동물원’, ‘맹목’ 등 출연.

pan style="font-size: 11pt"> 출전 / 『물의 가족』(현대문학)

pan style="font-size: 11pt"> 음악 / 권재욱

pan style="font-size: 11pt"> 애니메이션 / 민경

pan style="font-size: 11pt"> 프로듀서 / 김태형

이 강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완전히 압도당했었지요. 이 부분이 소설의 시작인데 곧 이어서, 펜을 쥔 채 책상에 엎드려 죽어 있는 남자를 발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의 죽은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에요. 읽는 순간 전율이! 이쯤의 문장이라면 언어가 그려내는 것을 영상이 따라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어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개인의 감각과 상상력이 더해지기 때문에, 감독이 해석해서 직접 보여주는 영상보다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도 있잖아요. 갑자기 “절대 영화화할 수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던 소설가 두 사람이 생각나네요. 하긴 두 분 다 과작이시라….(단지, 신작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뜻임^^)

 문학집배원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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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년 3 개월 전

언어가 내뿜는 강렬함이 느껴진다.아름다우면서 아련하기도 하다. 하지만 초라한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경멸당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사랑의 마음이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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