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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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여행사에서 정해 준 저녁 식당은 자리돔 구이집이었습니다. 자리돔 구이야 삼도에서도 시시때때 안 먹고 지나가면 서운한 것이죠. 화덕에 굵은 소금 뿌린 자리돔이 놓였는데 너무 잘 아는 게 탈인 경우가 왕왕 있잖습니까. 노인회 부회장이 말했습니다.
“근디 어째 이상하다. 이것 비늘 안 벗긴 것 같네.”
그러자, 그때까지 건성으로 보다말다 하고 있는 이들도 각자 젓가락 들고 건드려 보았죠.
“오메, 진짜네.”
“이것도 그러네이. 이것도 그러고.”
부회장은 종업원을 불렀죠.
“이봐, 아가씨. 이 재리(자리돔을 삼도에서 부르는 말)가 좀 이상하구만. 비늘이 그대로 있어.”
바쁜 와중에 불려나온 종업원은 그래서 어쨌냐는 얼굴을 했습니다. 
“예, 비늘 안 벗겼어요.”
“아 글쎄, 비늘이 안 벗겨졌다고.”
“맞아요. 안 벗겼어요.”
“나 말이 그 말이여. 왜 안 벗겼냐고.”
“원래 안 벗겨요.”
“허참. 그래서 어떻게 묵어?”
“익으면요, 이렇게 껍질을 한꺼번에 벗겨내고 드시면 돼요.”
“껍질은 또 왜 벗겨?”
“껍질을 벗겨야 드시죠.”
“저희 집은 내내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 조금 있다가 껍질을 통째로 벗겨서 드세요. 이젠 됐죠?”
“되기는.”
부회장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습니다.
“생선맛 통 모르는구만. 껍데기가 얼마나 맛있는디. 이렇게 간을 하믄 간도 잘 안 배고 껍데기도 못 먹잖어.”
“껍데기를 왜 먹어요? 살 드시면 됐지.”
“이 처자가 외국에서 살다 왔나.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고긴 말이여, 간 밴 껍데기가 진미여.”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살이 맛있죠. 껍데기가 뭐가 맛있어요?”
종업원도 지지 않습니다. 부회장은 말을 이었습니다.
“어이, 아가씨. 만약에 아가씨하고 나하고 연애를 한다고 해.”
“제가 왜 영감님하고 연애를 해요?”
“내 말 들어봐. 그런다고 치자, 이 말이여.”
“치기는 뭘 쳐요. 나 참 기가 차서.”
그는 내처 이어나갔습니다.
“그래, 그러면 아가씨가 젊은 총각하고 연애를 하는데 있어서 말이여, 서로 상대방의 간뎅이나 창자나 속 뼈따구가 이뻐서 사랑하겄어? 다 껍데기가 좋아서 사랑하는 거여.”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영감님.”
“지금 말이 하는 말이여. 서로가 좋아서 쓰다듬고 입술로 빨고 하는 것도 다 껍데기지 살이 아니다, 이 말이여.”
“영감님, 지금 저한테 성희롱하는 거예요. 신고합니다.”
역만은 순간 그 무엇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성희롱. 얼마나 무서운 단어입니까. 부회장과 함께 경찰서에 앉아 있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지나갔죠. 그는 몸을 날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뭔 소리여? 신고라니. 신고라니.”
“연애니, 입술로 빠니, 다 성희롱이에요.”
“아니여. 난 다만 껍데기 무시하지 마란 말을 알아듣기 쉽게 한 것이여. 젊은 것이 사람 무시하고 있어.”
부회장은 부아를 버럭 냈습니다. 말인즉슨 맞는데 비유가 오해 받기 딱 좋았죠. 부회장은 부회장대로, 종업원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죠. 당장이라도 전화 걸듯이 노려보는 종업원에게 역만은 이것만이 살 길이다 싶어 사과하고 또 사과했습니다.
 

 

 

● 출전 :『문장 웹진』, 2007년 6월호

 

● 작가- 한창훈 :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청춘가를 불러요』『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홍합』 등이 있으며,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함.

 

● 낭독-
박웅 : 연극배우. 연극 <금의환향> <그 여자 황진이>, TV드라마 <용의 눈물> <여인천하> 등에 출연
정상철 : 연극배우. 연극 <혈맥> <아Q정전> <카페 신파> <꿈 꿔서 미안해>, 영화 <야수> <거미숲> 등에 출연.
한철 : 녹음실
황영희 : 연극배우. 연극 <백무동에서>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선착장에서> 등에 출연.
권지숙 : 연극배우. 연극 <경숙이, 경숙이아버지> <루나자에서 춤을> <새벽부인> 등에 출연.

사실 속마음이니 내면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껍데기에 절대적으로 가치를 부여한 지 오래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방에서 ‘껍데기 산업’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껍데기를 째고 찢고 올려붙이고 꿰매고 깎고 빛을 쪼이고 점을 빼고 주름을 제거하고 향수를 뿌리고 동물성, 식물성, 기능성, 한방, 산삼 성분 화장품을 바르고(80년대 군대에서 휴가 때 신고 나갈 군화도 아닌데 ‘물광’을 낸다지 않나)… 때로 남의 껍데기를 먹고(저는 돼지 껍데기만 먹어보았지만 찰리 채플린의 영화 <황금광시대>에는 쇠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삶아먹는 장면이 나온다고도 하네요)!
그리하여 껍데기와 그 뒤쪽, 안과 밖의 차이가 나날이 커져 표리부동, 겉 다르고 속 다르게 된 존재는 우리뿐인가 합니다.

 

2008. 2. 28.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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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년 8 개월 전

알짜배기가 뭔지도 모르고 사는 인생들을 꾸짖으려고 쓰신 글…?말캉말캉 부드러운 속살이 다는 아니라는…니들이 게맛을 알아?야단을 쳐 주고 싶으신 게죠?그러다가 된통 욕만 바가지로 먹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시는 거죠?한 창훈 선생님… ^^*

9 년 8 개월 전

자리돔이 얼마나 작은데 비늘이 있는지요저는 마라도가서 자리돔 먹어봤는데 기껏 커야 10센티도 안자라서작은 돔 . 자리돔이라고 하던데요뭔가 좀 이상합니다.

9 년 7 개월 전

영화에서 먹는게 바로 수구레 인데 6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시장에서 그거 삶아 판다고 문화영화 뉘우스에 나온적이 잇읍니다. 우리나라 지금 양반 된겁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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