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이나의 좁고 긴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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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이나의 좁고 긴 방」

 

언제나처럼 할머니는 깊이 잠들었고, 이나는 먼 창밖을 본다. 거기엔 여전히 짓다 만 거대한 진회색 시멘트 건물이 놓여 있고 문득 이나는 자신의 삶이 그 건물처럼 짓다 만 채로, 거대하게, 뿌연 안개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해가 낮게 드리워져 이나의 그림자가 좀 더 길게 늘어지고 다시 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멀지 않아 흉한 시멘트 덩어리는 값비싼 브랜드의 아파트로 완성이 되겠죠. 그러나 나의 삶은 여전히 뿌옇게 모호한 채로 거대하게 남아 있겠죠. 저 빼곡한 창문들 그중에 내 것이 될 창문은 하나도 없어요. 나는 저것들 중 어느 하나도 소유하지 못한 채로 그러나 저것들과 함께 늙어갈 거예요. 여기 내 부모의 아파트도 언젠가 빛나는 브랜드의 순간이 있었을 테지만 나는 단 한 순간의 빛나는 순간도 없이 조금씩 낡아가고 바래가는 것밖에는 없어요. 시간이 지나 천천히 부식이 시작되겠죠. 지금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이라 괜찮지만 곧 밤이 찾아와 해가 지면 천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게 될 거에요. 어둠 너머로 뻗을 손은 없겠죠. 나의 손은 회색 승용차 아래 깔려 천천히 말라비틀어질 테니까요. 빛나는 것들은 벽에 걸린 옷들뿐이라서 그것들도 금세 회색 먼지를 뒤집어쓰고 볼품없어지겠죠. 그래 나는 늙고 추한 할머니가 될 거예요. 그게 나의 위안이에요. 저 멀리 놓여 있는 수천 개의 아파트들 그것들도 곧 버려져요. 나처럼이요. 내가 가진 것들 내가 먹는 것들 내가 가는 학교 그리고 내가 자주 보는 텔레비전의 일일 연속극과 잠자는 내 방의 할머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옷, 옷들 모 혼방 니트 카디건 블랙 미니스커트 레깅스 캐시미어 목도리 실크로 된 원피스 와인색 빅백.

 

 

● 출전 :『현대문학』, 2007년 3월호

 

 

● 작가: 김사과-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5년 단편「영이」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장편소설『미나』가 있다.

 

● 낭독- 우미화: 연극배우. 연극 <여름날의 기억> <날 보러 와요> <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등에 출연.
레지나: 연극배우. 연극 <과학하는 마음3-발칸동물원> <마리화나> <시련> 등에 출연.

 

어떤 시대라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굳이 시대를 대표하거나 대변하지 않더라도 노래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고요. 어떤 시대를 지나고 나서 우리는 그 때를 잊을 수도 있습니다. 노래는 남지요. 한 시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시대든 변화한다는 것, 그 진실은 남지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한 시대가 고래처럼 노래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참, 고래는 노래를 하지 않나요? 늑대라도 상관 없습니다만. 또한 그리고, 지나간 제 20대가 이 소설의 주인공과 대화하고 싶어한다는 걸 느낍니다.

 

2008. 3. 20.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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