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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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에서
 
 
 
 
나는 상류 중산층 가운데 하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말하자면 두 가지 차원을 동시에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이론상으로는 하인들에 대해 전부 알고 그들에게 팁 주는 요령까지 다 알았지만, 실제로는 집에 함께 거주하는 하인이 기껏해야 한둘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정장 입는 법과 정찬 주문하는 법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번듯한 양복점이나 번듯한 음식점에 갈 형편이 도무지 아니었다. 이론상으로는 사냥하고 승마하는 법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말도 없고 사냥할 땅 한 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아야 하급 중산층이 인도에 매력을 느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거기까지 간 것은 예컨대 인도에 가면 말도 있고  사냥도 공짜로 하고 얼굴 까만 하인들도 얼마든지 둘 수 있어 특권층 노릇을 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말하는 구차하게나마 체면을 유지해야 하는 유형의 집안은, 실업수당으로 사는 부류보다는 형편이 나은 어느 노동 계급 가정보다 훨씬 더 빈곤을 ‘의식’한다. 집세와 옷값과 학비는 끝도 없는 악몽이며 모든 호사, 심지어 맥주 한 잔도 가당찮은 사치다. 집안의 모든 수입은 실제로 체면을 유지하는 데 들어간다.
그런 사람들은 노동 계급과 아주 가까이. 어떤 의미에서는 친밀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데, 내가 보기엔 ‘평민’에 대한 상류층의 해묵은 태도는 그들에게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태도일까? 상대를 조롱하는 우월감을 보이는 동시에 이따금 엄청난 증오를 퍼붓는 태도다.
구차한 체면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가정은 자기 신분에 더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가진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잘난 체하기 때문에, 지배층임을 과시하는 듯한 악센트와 거동 때문에 미움을 산다.
부르주아로 자란 유럽인들은 자칭 공산주의일지라도 몹시 애쓰지 않는 한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다. 그것은 요즘에는 차마 발설하진 못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꽤 자유롭게 쓰곤 하던 섬뜩한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어떤 호감도 혐오감도 ‘몸’으로 느끼는 것만큼 근본적일 수는 없다. 인종적 혐오, 종교적 적개심, 교육이나 기질의 차이, 심지어 도덕률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반감은 극복 불능이다. 살인자나 남색자에겐 호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입냄새가 지독한 사람에겐 호감을 가질 수가 없다. 평균적인 중산층 사람이 노동 계급은 무식하고, 게으르고, 술꾼이고, 상스럽고, 거짓말쟁이라 믿도록 교육받고 자란다 해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더러운 존재라 믿도록 교육받는다면 대단히 해로운 일이다.
 
 
작가 / 조지 오웰 – 1903년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태어났으며, 1933년 『파리와 런던의 안팎에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버마 시절』『카탈로니아 찬가』『동물농장』『1984』 등이 있음.
 
 
낭독 / 노계현 – 성우. MBC주말의 명화, 특선외화 등 출연.
출전 / 『위건 부두로 가는 길』(한겨레출판)
음악 / 자닌토
애니메이션 / 민경
프로듀서 / 김태형

 

 

조지 오웰이 탄광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생활을 취재해 쓴 르포예요. 첫 소제목이 ‘브루커 부부의 하숙집에서’인데 비위 약한 사람은 읽기가 힘들 것 같네요. 내용물이 가득 찬 요강에 엄지를 담갔던 주인의 손도장을 찍은 빵이 나오는 식탁, 그 위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는 몇 끼가 지나도록 위치만 이동할 뿐이고……. 이 빈곤, 그리고 그 너머의 불평등. 그 당시 산업화가 가져다준 것들이죠. 이런 구절이 있네요.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이따금 그런 곳들을 찾아가 냄새를 맡아볼 의무 같은 게 있다. 가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 게 낫겠지만 말이다.” 어떤가요. 우리, 할 수 있을까요?

 

문학집배원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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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년 28 일 전

이 내용을 보니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게 생각이 나요향수는 상승욕구를 판매하는 것이라는, 좋은 냄새가 나면 남보다 우월하게 만드나 봅니다.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땀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는향수에 비하지 못할 가장 훌륭한 향기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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