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 아이슬리, 「그 모든 낯선 시간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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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아이슬리, 「그 모든 낯선 시간들」 중에서
 
 
 
 
돌이켜보니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남이 대신 고통 받게끔 만드는 타고난 재주가 있는 분이었다. 달리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재능 있는 화가였던 어머니는 내게, 굳이 말하자면, 엄청난 시각적 감수 능력을 물려주었다. 어머니는 예전에 매우 아름다웠다. 나를 낳은 그 치명적인 매력을 나는 이런 식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부모님이 어쩌다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이런 식으로 어머니를 대접하는 내게 막돼먹은 놈이라고, 앙심을 품은 거라고 비난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건 전혀 잘못 짚은 거다. 왜 내가 앙심을 품겠는가? 너무도 멀고 늦은 일이다. 한 달 전,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 무덤을 찾아 우유카 공동묘지에 갔었다. 우리, 어머니와 나는 이제 하나로 될 만치 가까웠다. 울타리 구석에 쌓인 지난해 낙엽의 잔해처럼 누워서 말이다. 그리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허무, 알아듣겠는가? 그 모든 고통과, 그 모든 고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둘 다, 생이 지나가면서 늘 남기는 부스러기일 뿐이었다. 부화 칸막이 상자에 버려진 불구의 병아리들처럼, 그 이상은 아니었다. 잠시 동안 더 내가 보고 들을 것이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고, 세상에 아무 의미도 없을 거였다.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어머니에게 뒤늦게나마 이렇게 말씀드리려 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 아무것도 아니죠. 쉬세요. 그동안 쉴 수 없으셨죠. 그게 어머니의 짐이셨어요. 하지만 이제, 주무세요. 곧 저도 함께할 거예요. 비록, 용서하세요, 여기는 아니지만요. 그러면 우리 둘 다 쉬지 못할 거예요. 저는 멀리 가서 몸을 누일 게요. 때가 다가와요. 저는 돌아올 것 같지 않아요. 이젠 이해하시겠지요.
나는 10월 묘비석의 따스함을 어루만졌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사실 하나를 알아채는 데 온 생애가 걸렸다.
나는, 그렇다, 시간과 장소를 헤매고 있다. 내 이야기가 비틀거린다. 하나의 생애를 말하려면 묘비석 위를 서성대야 하고 거기서 기억이 침침해지고 문이 삐걱 소리를 내지만 결코 열리지 않는다. 귀를 기울이든, 그러지 않든, 전혀 상관이 없다.
나는 누구나이고 또 아무도 아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럴 것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페이지에 있는 이름 없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내 뒤의 사라졌거나 아무 목적지도 없었던 산길 때문이 아니라, 밤이 오면 지쳐 곯아떨어지거나 전혀 잠을 자지 못하던 그 방들 때문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당혹감 때문이 아니라, 혹은 어떤 별이 점지해주는 운명이 내게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모른다는, 전혀 모른다는 것의 외로움이었다.
 
 
작가 / 로렌 아이슬리 – 1907년 네브래스카 주 링컨에서 태어났으며, 캔자스 대학에서 처음 강단에 섰음. 오하이오 오벌린 칼리지의 사회학·인류학 학과장, 펜실베이니아 대학 학과장 등을 지내다 1977년 작고함. 지은 책으로 『그 모든 낯선 시간들』 『시간의 창공』『밤의 나라』 등이 있음.
 
낭독 / 박웅선 – 배우. 연극 '오셀로', 영화 '한반도' 등 출연.
출전 / 『그 모든 낯선 시간들』(강)
음악 / 최창국
애니메이션 / 민경
프로듀서 / 김태형

 

전 세계의 좋은 책이 매일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살다보니 가끔은 신간 위주로, 떠밀리듯 독서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시기를 놓쳐 읽지 못하고 지나친 좋은 책들이 있어요. 로렌 아이슬리의 『광대한 여행』도 바로 그런 책인데요. 한때 후배 소설가들이 만나기만 하면 그 책이 좋다고 입을 모았어요.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오늘 배달하는 『그 모든 낯선 시간들』을 보게 되었지요. 사색이 깃든 아름다운 문장. 자기 자신의 생을 내면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쓸쓸한 성찰. 음…… 이거였나보군. 그런데 문장배달 소식을 전하니 후배들은 한결같이 『광대한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답니다. 아무래도 그 책도 읽어봐야 할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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