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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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이외수

 

"저는 우선 한자어를 잘못 읽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의도적으로 사용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부지불식(不知不識)을 불지불식으로 말해 버리는 것이 그 하나의 예입니다. 그러니까 부동산(不動産)은 불동산으로, 불안정(不安定)은 부안정으로 말하게 됩니다. 불동산에 돈을 좀 투자했는데 아무래도 왕창 망해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부안해서 못 살겠네. 요즘은 불동산도 부경기거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불자연스러운 표현입니까?"

"아뇨. 또다른 게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잘 아시겠지만 악(惡)이라는 글자는 '오'라고도 읽혀집니다. 그런데 저는 '악'으로 사용해야 할 경우는 '오'로 사용하고, '오'로 사용해야 할 경우는 '악'으로 사용해 버립니다. 아까의 경우와 흡사합니다. 나는 증오심(憎惡心)에 불타올랐다, 라고 말해야 할 경우 나는 증악심에 불타올랐다, 라고 말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랄한 자식, 이라고 남을 비방해야 할 때는 오랄한 자식, 이라고 말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럼 혐오감(嫌惡感)은 혐악감으로 발음하겠네요."

"아닙니다. 염악감이라고 발음합니다. 혐(嫌)자는 염(廉)자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글자를 의도적으로 혼동해 사용하는 것도 제 언어 염악증에서 생긴 유희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묘지(墓地)를 막지(莫地)로 읽습니다. 묘(墓)자와 막(莫)자는 서로 비슷하거든요. 또 남을 모략(謀略)하지 말라고 말할 때는 남을 첩략(諜略)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제 이 사회가 상투적인 언어들로써 너무 많이 자기를 속여먹어 왔다고 말했다. 언어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거였다.

"그런데 아가씨, 그 노트는 정말로 명쾌한 것이었습니다. 아가씨도 역시 언어를 통해 어떤 고정관념을 파괴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저는 그런 거창한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냥 심심풀이로 끄적거려본 것일 뿐이에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여튼 저는 그 노트를 통해 적수를 하나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꼈습니다. 한잔 더 합시다."

나는 왠지 이 남자가 기분 나쁜 상대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단어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놓은 하나의 언어잡화상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언어 가학성의 문제에 있어서 저는 어쩐지 패북감(敗北感)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요."

내가 말했다.

 

● 출처 :『들개』, 해냄 2008

 

 

● 작가 : 이외수 – 1946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나 1972년 『강원일보』신춘문예, 1975년 『세대』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함. 소설 『들개』『장외인간』, 에세이『감성사전』『외뿔』, 시집『풀꽃 술잔 나비』 등이 있음.

● 낭독 : 선종남 – 배우. 『우리사이』『다홍치마』『사랑을 주세요』『과학하는 마음 3』 등에 출연.

이연규 – 배우. 『착한사람, 조양규』『8인의 여인』『네바다로 간다』『이아고와 오셀로』 등에 출연.

● 음악 : 김국진

요즘 저도 어쩐지 패북감을 느끼게 되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사람들과는 같은 언어를 쓴다는 자체가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게 아름다운 언어일수록 부끄러움은 더욱 커집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우리나라, 정의, 법, 질서 같은 단어들을 들을 때 저는 차라리 영어나 불어, 하다못해 외계어라도 쓰고 싶어집니다. 말을 더럽혀 더 이상 그 말들이 아름답게 들리지 않을 때, 그 말들이 지칭하는 세계는 우리에게서 영영 사라지게 될 거예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말이 안 통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그 사실 때문이죠.

 

2009. 3. 5. 문학집배원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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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년 8 개월 전

권세의 송곳니와 부의 어금니에 씹히다 껌처럼 뱉어진 말들, 그걸 주워다가 다시 씹어대며 깔작거리는 나팔수들, 저도 그들과 같은 어족이고 싶지 않습니다. 우라질 알타리무라도 씹어야쥐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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