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쿠타 미쓰요「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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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그거, 써 있는 거 말이야, 여러 사람들의 기억 아닐까?"

 

"기억?"

 

"가장 소중한 기억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제일 처음 기억일지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겠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주택가의 카레 냄새나, 배를 보이는 고양이,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랜 기억을 적어 놓았을지 모른다.

 

"아니면, 그 사람이 가장 만족스러울 때의 기억이라든가."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얼굴을 맞댔다.

 

"그거……."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보고 싶다."

 

남자 애가 이어 말했다.

 

그 말을 마치고는 우리는 또 입을 다물고 각자 커피를 홀짝 홀짝 마셨다. 카페는 조용했고 실내는 어둠침침했다. 테이블에는 수많은 흠집이 있고 창밖은 환했다. 거무스름한 벽 구석에 걸린 시계가 큰 소리를 내며 초침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와 이름을 모르는 그 친구는 그때 분명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어느 헌책방에서 그 책을 발견해 샀다면, 어떤 책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읽어 보고 빼곡히 이런저런 기억이 쓰여 있는 뒤표지에 도달했다면, 그때 나는 무엇을 쓸까? 그런 생각 말이다.

최초의 기억, 가장 소중한 기억, 가장 만족스러울 때의 기억. 내 최초의 기억이라면, 엄마의 두 팔이다. 우리는 국철 역 대합실에 있었다. 대합실은 이 찻집처럼 어두웠는데 문 쪽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내 옆에 엄마가 앉아, 가끔 왼손에 쥔 손수건으로 내 이마의 땀을 닦아 줬다. 그때마다 엄마의 두 팔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민소매에서 뻗어 나온 하얗고 가느다란 엄마의 두 팔.

 

그럼 가장 소중한 기억이라면…….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만족스러웠을 때라는 기억에 다다르자 더 오리무중이다. 그 사실에 놀랐다. 찾지 못한 것이다. 소중한 시간도, 만족스러웠던 시간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내 안에 그런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다.

 

● 출처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미디어2.0 2007

 

 

● 작가 : 가쿠타 미쓰요 – 1967년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나 1970년 가이엔 신인무학상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함. 소설『납치여행』『공중정원』『죽이러 갑니다』『전학생 모임』 등이 있음. 쓰보타 조지 문학상, 부인공론 문예상, 나오키 상 등을 수상함.

 

● 낭독 : 박윤희 – 배우. 『억울한 여자』『심판』『에쿠우스』『밑바닥에서』등에 출연.

이지하 – 배우. 『억울한 여자』『민들레 바람되어』『침향』『그린벤치』 등에 출연.

그런 시간이 없었다고 너무 부끄러워하진 마세요. 이 책을 계속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오니까요. “그렇지만 아직 20년밖에 살지 않았잖아. 게다가 무지 조그맣고 하찮은 세상만 알고 살았고.” 우린 다들 얼마 살지 않았다구요.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알게 되겠죠. 우리에게 소중하고 만족스러웠던 시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 시간을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 된다는 걸.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어쨌거나 우리는 충분히 살게 될 테니까요. 그 때가 되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요. 지나온 모든 시간은 저절로 소중한 시간이 될 테니까요.

 

2009. 3. 12. 문학집배원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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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년 8 개월 전

우리는 그 기억과, 그 기억과, 그 기억으로 이루어져있어요. 좋은아침~

8 년 4 개월 전

이 구절들보다 뒤에 적어주시는 김연수 씨의 글이 더 여운이 남아 울립니다.지나온 모든 시간이 지금 후회스럽고 부끄럽고 지워버리고 싶었는데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같고 소중히 여기고 싶고 나도 아껴주고 싶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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