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오르트만, 「곰스크로 가는 기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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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오르트만, 「곰스크로 가는 기차」 중에서
 
 
 
 
“믿어주시오.” 그가 슬픈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 역시 한때는 멀리 떠나려고 했소.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두꺼운 안경 너머 반은 기쁘고 반은 슬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눈빛으로 그는 나를 보았다. 마치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지금의 그가 아니라 젊은 시절의 그인 듯했다.
“가지 않은 게 좋은 선택이었을 거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마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그의 말은 묘하게도 믿을 만하게 들렸다. 마치 나 자신이 생각해낸 말 같았다.
“보시오,”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거랍니다. 당신은 곰스크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는 오랫동안 동이 트는 아침을 말없이 바라보았고, 싸늘하고 명료한 개똥지빠귀 노랫소리만이 비현실적으로 크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건 나쁜 삶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의미없는 삶이 아니에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
우리 둘의 운명을 뒤섞은 듯한 그의 말은 정말 기이한 것이었다.
 
 
 
작가_ 프리츠 오르트만 – 1925년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 태어났으며, 전후에는 나치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피신한 에리히 프리트(Erich Fried) 등의 작가들과 교류함. 이들이 편집한 잡지 『메르쿠어』(Merkur)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럼주차』(Tee mit Rum), 장편소설 『여러 색깔 유리잔』(Bunte Glaser) 등이 있음.
 
낭독_ 박웅선 – 배우. 연극 <오셀로>, 영화 <한반도> 등에 출연.
출전_ 『곰스크로 가는 기차』(북인더갭)
음악_ 자닌토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제가 누렸던 가장 큰 문화적 혜택은 텔레비전 ‘주말의 명화’였어요. 자주 재방송되던 영화 <빠삐용>. 자유를 얻기 위해서 불굴의 노력을 하는 빠삐용은 그 시절 제 우상이었지요. 빠삐용에 고정되던 시선이 자유를 포기한 채 섬에 남는 귀도에게 머무르던 무렵, 그때가 조금이나마 철들던 때 아니었나 싶어요.
곰스크. 그곳에 가는 것을 유일한 목표이자 이상으로 삼은 사람이 결혼 직후 아내와 함께 곰스크행 기차에 올랐어요. 중간 기착지에 잠시 내렸는데 기차는 떠나고, 기차표를 사기 위해 그곳에 머물며 돈을 벌지만 막상 떠날 여건이 되면 꼭 발목 잡는 무슨 일이 생기곤 해요. 가야 하는 그러나 끝내 다다르지 못할 곰스크를 품고 있는 사람, 한때 지녔던 곰스크를 마음에서 지워버린 사람, 곰스크 같은 것 없이 잘 지내는 사람……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문학집배원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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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년 8 개월 전

낡은 곰스크행 기차표 2장,미리 기차에 오른 남편과, 의자와 가방을 낑낑거리며 기차에 실으려던 만삭의 부인.남편은 기차에서 내리고 안개속에서 곰스크행 기차를 떠나보내던 부부의 뒷모습이 정말 애잔했어요.

포도
6 년 8 개월 전

내가 운명을 택하고 운명이 나를 택한다.. 의미심장하군요

6 년 8 개월 전

예전에 '주말의 명화'처럼 베스트극장이 할 때였지요. 그때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봤었어요. 꼭 무슨 일이 일어나 곰스크로 가지 못했던 남자… 도대체 곰스크는 무엇이었을까 싶었죠. 서른이 넘어서 스물살 적 그 질문을 다시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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