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사랑한다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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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사랑한다는 말」 중에서
 
 
 
 
문화방송의 싱글벙글쇼에서 ‘일톤 트럭 나의 창업 도전기’라는 수기를 공모했다. 당선자에게는 선물로 일톤 트럭이 주어진다. 편지글 서너 장에 다 담기에는 부족할 만큼 사연들이 구구절절했다. 생전 처음 글을 써본 듯한 이들도 많았다. 끝날 듯하면 다시 새로운 사연들이 꼬리를 무는 바람에 한 문장이 한 페이지 분량으로 길어졌다. 불운과 불행이 끝나지 못하는 문장처럼 자꾸 겹쳐져서 글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커졌다. 심사를 했다는 인연으로 방송에도 출연했다. 트럭을 후원한 기아자동차의 담당자를 보는 순간 당선자는 큰오빠라도 만난 듯 울컥했다. 당선자는 2년 전 남편을 병으로 잃고 아들딸 두 아이와 살아간다고 했다. 검고 긴 머리채가 인상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다행히도 남편의 권유로 진작에 1종 면허도 따두었다. 트럭으로 아침에는 죽을, 저녁에는 자장을 볶아 팔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당선자의 글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게 한으로 남는다는 부분에서는 스튜디오 안팎의 사람들이 울먹였다. 그녀는 결혼반지를 여전히 끼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 아이들에게는 남발하는 그 말을 부모님이나 남편에게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 같다. 아끼고 아꼈다가 언제 하려고 하는 것인지. 어쩌면 나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숙맥이 아닐까.
 
 
 
 
작가_ 하성란 –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등이 있음.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독_ 권지숙 – 배우. 연극 <루나자에서 춤을>, <기묘여행> 등 출연.
출전_ 『왈왈』(아우라)
음악_ 박세준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더운 나라에 머물던 오래전 어느 아침이었어요. 무심코 보아넘기던 시내 버스 앞좌석 등받이의 떨어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찢긴 비닐 커버의 안쪽, 비닐에 덧댄 거즈 같은 천의 날올과 씨올이 가닥가닥 마음을 쳤어요. 마치 확대경을 들이댄 것 같았지요. 왜 이리 예민해진 것일까, 하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아, 하성란. 전날밤에 하성란의 창작집을 읽은 여파였지요.
 
작가의 첫 산문집을 읽으며, 다시금 그때를 떠올립니다. 무심코 넘기던 것을 세밀히 보게 하는 힘이 산문집에선 좀 부드럽게 작동하네요. 콜센터 직원들에게서도 흔히 듣는 그 사랑한다는 말, 정작 마음속에 크게 자리한 사람에겐 말하지 힘들지요. 아마도 사랑한다는 말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을 의식한 때문이 아닐까요. 내리사랑이니, 아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쉽게 나올 테고요.
 
문학집배원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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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년 8 개월 전

저도 이 방송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선작은 못 들었던 것 같네요.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한 번 울컥 했네요.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엄마를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항상 소중한 것은 뒤늦게 깨닫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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