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복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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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복어」 중에서
 
 
 
 
그녀는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 난 더이상 아버지 잠꼬대를 견딜 수가 없어요. 깊은 잠 속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며 몸부림치는 것, 그럴 때마다 아버지 어깨를 흔들어 꿈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 모두 난 지쳤어요. 아버지였더라도 그랬을 거예요. 아무리 잠결이라지만 육십이 넘은 사람이 엄마! 엄마! 소리치고 애원하고 흐느끼는 소린 정말 들어주기 어려운 거라는 걸, 아버지도 이해하셔야 해요. 그것도 매일 밤. 정말 매일 밤. 불길한 계절도 아픈 상처도 곧 지나가버려요. 하지만 아버지의 잠꼬대는 달랐어요. 그건 지나가 버리지도 결코 달라지지도 않았어요. 제가 말을 배우기 시작한 후부터 서른 해가 지나가는 동안, 더이상 그 소리를, 땀에 젖은 아버지를, 허공을 붙들고 놓지 않는 아버지의 버둥거리는 두 손을,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어요. 새로운 땅에서 혼자 시작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의 형제들이 없는 깨끗한 장소에서.
그건 신중한 목소리로 오직 한 번만 말할 수 있고 다시는 말해서는 안 되는 그런 이야기에 속했다.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바싹 마른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홉 살의 아버지. 불안한 눈으로 젊은 엄마를 지켜보던 사내아이. 할머니가 국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들었을 때 할머니의 반달무늬 긴 치맛자락을 와락 잡아당겼던 아이.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지켜보는 앞에서 단숨에 국그릇을 비우고 쓰러졌다. 아홉 살의 아버지는 다 보았다. 그 모든 순간을. 독이 든 복엇국을 마시고 눈앞에서 엄마가 자살하는 모습을. 아버지는 기억했다. 아침부터 복어를 손질하고, 아궁이를 지키고 앉아 오래 국을 끓인 사람도 엄마였다는 것을. 아홉 살의 아버지는 다 보았다. 쓰러진 엄마, 버둥거리는 엄마, 경직되는 엄마, 피를 토하는 엄마, 눈을 부릅뜬 엄마, 마침내 반쯤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 엄마, 깨끗이 죽어버린 엄마를.
밤마다 아버지는 아홉 살 아이로 돌아갔다. 꿈속에서, 꿈을 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술도 소용없었다. 아홉 살의, 엄마를 애타게 불러대는 아버지를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이유라면 그게 다였고, 그것보다 더 지독한 이유를 그녀는 찾지 못했다.
 
 
 
 
작가_ 조경란 –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으로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장편소설로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적이 있다』, 산문집으로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 등이 있음.
 
낭독_ 홍연경 – 서울TBN 리포터.
출전 : 『복어』(문학동네)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어떤 죽음은 한바탕 굿판을 벌이고 난 뒤처럼 주변 사람을 다독이며 정화시키는 힘이 있지요. 그런가 하면, 어떤 죽음은 죽음이 완성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몸인지 마음인지에 ‘지나가버리지도 달라지지도’ 않는 독한 무엇을 남기지요. 걸핏하면 발목 잡아당기는 바닥 모를 심연 같은 걸. 그건 종내 사라자지 않으며 마침내 항성이 되어버리고, 상처를 안은 사람들은 행성처럼 그 주위를 떠돕니다. 남편과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손수 끓인 복엇국을 마셔버린 할머니, 엄마가 눈앞에서 죽는 걸 지켜본 아홉 살짜리 아들, 육십이 넘은 뒤에도 그것에 꿈자리 짓밟히는 아들인 제 아비를 보다 못해 떠나버린 딸. 너른 바다를 헤엄치다 문득 끌려나온 복어 한 마리의 여파가 크고 깊네요.
 
문학집배원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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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5 년 11 개월 전

10살때 술 때문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그 후 하늘만 보면서 그곳에 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저도 아버지 죽음의 상처가 목에걸린 가시처럼 박혀 있어 쉽게 빠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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