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진, 「슬픔이 자라면 무엇이 될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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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진, 「슬픔이 자라면 무엇이 될까」 중에서
 
 
 
 
니네 아들, 어제 부대에서 전화했잖아. 아빠한테 들었다면서 그렇게 막 다 말하는 법이 어딨냐고 따지더라. 우리 엄마한테 무슨 포한이 있는 거냐, 덤비던걸. 스스로 탄 커피잔을 들고 친구는 집 안을 둘레둘레 돌아보고 있었다. 커튼 없는 창, 액자 하나 걸려 있지 않은 벽, 집 안은 휑뎅그렁했다. 희숙이 그러하듯 장식을 모르는 집이었다. 희숙이 사과를 했지만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귀엽던걸, 뭐. 그리고 사실, 나 네게 포한 있어. 희숙의 눈이 둥그레졌다. 너, 눈 그렇게 뜨니까 옛날이랑 똑같다. 어쩜, 무슨 수술한 애 같지도 않네. 친구는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불쑥 물었다. 너는 알았지? 우리 남편 손버릇 나쁜 거, 알고 니가 달아난 거지? 무슨 말인가, 묻지 못한 채 희숙은 친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사람, 싸우고 나서 네 얘기한 적 있어. 이상하다는 거지.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지. 너 때문이라는 거야. 글쎄, 웃기지도 않지. 너랑 있을 때, 무슨 일이든 다 받아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구는 너 때문에 생긴 버릇이라는 거야. 희숙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너 병 걸리고 나서 생각하니까, 그 사람 말이 영 아니지는 않다, 싶더라. 너는 다른 사람 상처 내는 일, 싫은 소리, 해 되는 짓 절대 안 하잖아. 그게 다 네 상처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어. 말하자면, 병에 걸리는 일은 참으로 쓸쓸하구나…… 희숙의 중얼거림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작가_ 서하진 – 1960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책 읽어주는 남자』, 『라벤더 향기』, 『사랑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비밀』, 『요트』, 장편소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등이 있음.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함.
 
낭독_ 문지현 – 배우 및 성우. 연극 <경숙, 경숙아버지> 등에 출연.
황혜영 – 배우. 연극 <타이피스트>, <죽기살기>, 등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하모니> 등에 출연.
출전_ 『착한 가족』(문학과지성사)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착하디착한 사람들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아파하는 사람들이 견디기엔 이 세상이 너무 거칠어서가 아닌가 하는. 어쩌면, 하느님이 외로워서 일찍 데려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이 외로워서, 선한 마음들을 가까이하고 힘을 얻으려고요.
더할 나위 없는 현모양처에 자원봉사까지 하면서 살아온, 느닷없는 발병으로 죽어가는 그녀. 그녀의 마음속,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말들은 또 얼마나 많은 걸까요.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할 말을 너무 참는 것도 지혜롭지는 않은 듯해요. 
 
문학집배원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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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5 년 11 개월 전

나도 그럴까요. 마음의 병을 안고 있는데, 남에게 싫은 소리, 해 되는 짓은 못하고 할말을 참기도 하는데… 고쳐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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