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에메, 「생존 시간 카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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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 에메, 「생존 시간 카드」 중에서 
 
 
 
 
  2월 13일
  이건 비열하고 부당한 처사며 극악무도한 살인 행위이다! 문제의 법령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런데, 쓸모없는 사람들, 곧 ‘부양을 받고 있을 뿐 그것의 실질적인 대가를 전혀 치르지 않는 소비자들’의 무리에 놀랍게도 예술가와 작가가 포함된다고 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화가나 조각가나 음악가에게 그 조치가 적용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작가에게마저 그것이 적용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분명 자가당착과 양식에서 벗어난 판단 착오가 빚어낸 일이었다. 이는 우리 시대의 다시없는 수치로 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유용성이란 증명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특히 나 같은 작가의 유용성은 아주 겸손하게 말해서 증명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한 달에 겨우 보름간의 생존만 허용되리라고 한다.
 
  2월 16일
  법령은 3월 1일부터 발효될 것이고 등록과 카드 발급은 이달 18일부터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자기들의 사회적인 처지로 말미암아 부분적인 생존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일거리라도 찾아보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일이 있어야 한 달을 온전히 다 사는 완전 생존 자격 보유자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하고 궁리하던 중에 친구 말레프루아에게 전화를 걸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친구라면 내게 미술관의 문지기나 관리인 자리라도 하나 얻어줄지 모르겠다 싶었다. 그러나 때가 너무 늦었다.
  “아니, 이 사람아. 일자리를 부탁할 양이면 진작 얘기를 했어야지 어쩌자고 오늘까지 꾸물댄 거야?”
  “하지만 이 조치가 나에게도 해당될 줄 알았어야 말이지. 요전날 같이 점심 먹을 때 자넨 그런 얘기를 안 했잖아……”
  “무슨 소리야. 나는 분명히 이 조치가 무용한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말했어. 어떻게 그보다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어?”
 
 
 
  작가_ 마르셀 에메 – 1902년 프랑스 출생. 1929년  『허기진 자들의 식탁』으로 르노도 상을 수상하며 작가적 명성을 얻음. 『초록빛 암말』, 『술래잡기 이야기』, 『트라블랭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등을 출간함.
 
  낭독_ 장인호 – 배우. 영화 <고지전>, <하울링> 등에 출연.
한규남 – 배우. 연극 <들소의 달>, <강철왕> 등에 출연.
  출전_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문학동네)
  음악_ 심동현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가끔 자조적인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합니다만, 자조적이 되어 에메의 소설들을 다시 찾아 읽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혀두고 싶습니다. 아마도 시간을 사고파는 영화의 예고편을 본 뒤 ‘생존 카드’란 모티프와 함께 자연스럽게 에메의 소설이 떠올랐을 거예요. 작가 쥘 프레그몽의 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쓸모없는 이들의 생존 제한에 관한 법령이 공포됩니다. 그 무용성의 정도에 따라 일수를 정해놓고 다달이 그 일수만큼 살게 되는 법령에 시의적절하고 시적(詩的)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한 그가 자신이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돌변하는 장면에 웃음이 터졌지요. 작가의 유용성, 부분에서 일련의 일들이 떠오른 건 자연스러웠지요.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는 문인 집필실에 보낸 정부의 협조 공문입니다. 입주 작가의 창작 실적과 작품 창작 활동 등을 구체적으로 제출하라는 내용이었죠. 작품 개수와 발표 횟수로 작가를 평가하겠다는 이야기인데요. 소설 속 쥘은 한 달 중 보름 동안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당면한 그의 걱정이란 만개한 봄을 다 놓치게 생긴 건데요, 소설을 읽다보니 그만 또 자조적이되고 말았네요.
 
문학집배원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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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5 년 8 개월 전

자기들끼리 쓸모있네, 없네, 해봤자…. 인간이란 게 결국 지구 등쳐먹고 사는 생물 아니던가?

5 년 8 개월 전

실질적인 대가를 따져봅니다. 수많은 시와 칼럼들이 구럼비를 살리는데 유용한지. 작가에게 밥을 배급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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