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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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모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啼昔山)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시_ 김소월 –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 외갓집에서 태어남. 백일 지난 뒤 평안북도 정주군 본가로 돌아옴. 시집으로 『진달래꽃』 『소월시초』가 있음.(1939년 소월의 스승 김억 엮음) 1934년 작고.
 
 
낭독_ 지소흔 – 배우. 연극 〈판타스틱스〉, 〈2011 세종 갈라쇼〉 등에 출연.

 

* 배달하며

 

 ‘만수산을 나서서/갈라선 그 내 님도/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그 내 님이 연상(年上)이었을까? 갈라선 님에게는 ‘놈’이나 ‘년’을 붙여도 시원치 않아 하며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라고 악다구니를 퍼붓기도 하는 게 흔히 볼 수 있는 이별의 뒤끝 풍경인데, ‘뵈올 수 있었으면’이라니. 세월이 지나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말하게도’ 되었겠지만, 분명 그 님은 품격 있는 그리움의 말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였으리라. 대개 높임말은 감정의 거리를 느끼게 하는데, 이 시에서의 ‘뵈올 수 있었으면’에서는 영원히 훼손되지 않을 고결한 사랑의 마음과 지극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이렇게 영원한 사랑의 감정은 이른 죽음으로 사랑을 매듭짓게 된 사람한테 하늘이 내리는 슬픈 보상 같다.
 하필 만수산(萬壽山)일까. 필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정인(情人)을 배웅한 곳이 말이다. 소월은 번번이, 사람을 참 울컥하게 만든다.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만수산이나 제석산은 실제 지명일지도 모르지만, 소월은 이 시에서 그만의 만수산이요 제석산을 만들어냈다. 정인을 앗아간 죽음의 냄새가 마른 풀 냄새처럼 아릿하게 풍기는 만수산과 제석산.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 ‘돌아서면 모심타’는 말, 세상모르고 살던 시절에는 무슨 뜻인 줄 모른다. 그 철없는 나이에는 ‘인연’의 소중함도 모르기 때문이다. 헤어지면 그걸로 아주 끝인 줄 안다. 하지만 제대로 나이 들면, 진정한 어른이 되면, 맺어진 모든 인연을 설혹 분란이 있어도 마치 부부싸움처럼 ‘칼로 물 베기’가 되도록 애쓰게 마련이다. 그렇게 관계를 긴히 이어나가려면 때로 엄청난 관용이 필요하리라.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말했다. 철학의 으뜸목표는 사람들 속에서 사는 능력이라는 것. 그 능력이란 자비심과 사교성을 가리킨다.(여기서 사교성이라는 건 뭐 ‘비즈니스 능력’,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모르고 살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무덤엣 풀이라도’ 태우고 싶은 애절함도 모르리. 하지만 소월, 오죽 ‘고락에 겨운’ 삶이었으면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호소할까!
 이 시에서처럼 죽음이 원인이 아니어도, 소월은 이별을 참 아름답게 노래하는 시인이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의 시정신과 시어로 말이다. 그의 시는 죽음과 허무를 노래할 때도 리드미컬하고 통통 튄다. 그의 시들이 그 옛날 7080세대 가수들에 의해 발라드풍 포크송으로만이 아니라 록으로도 불린 건 거기 시대를 뛰어넘는, 삶과 죽음과 사랑과 뮤즈에 대한 순애와 열망이 절절하고 선연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뮤지션들은 소월 시에 마음을 실어 그저 읊조리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음악이었으니!

 

문학집배원 전성태

 

출전_ 『선생님과 함께 읽는 김소월』(실천문학사)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정정화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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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김건희
4 개월 12 일 전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고 다시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잘 전달되어진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애상과 그리움 그리고 외로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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