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네틀 & 수잔 로메인,「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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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네틀 & 수잔 로메인,「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중에서

 

몇 년 전, 언어학자들이 테비크 에센크라는 어느 쇠약한 농부의 말을 녹음하려고 하시 오스만이라는 터키의 농촌 마을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카프카스 북서부에서 한때 사용되던 우비크어의 마지막 사용자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그 당시에는 불과 네댓 명의 부족 노인들만이 우비크어를 몇 마디씩 기억하고 있었는데, 에센크만이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세 아들조차 터키어를 쓰며 살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모국어로는 자식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에센크는 이미 1984년에 자기 묘비에 새기고 싶은 비문을 써 놓았다. “이것은 테비크 에센크의 묘지이다. 그는 우비크라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최후의 인물이었다.” 1992년에 에센크가 죽으면서, 우비크어도 갈수록 늘어가는 사어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4년 후,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붉은천둥구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메리카 원주민이 죽었다. 그 역시 사라지는 언어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남아 있던 마을 사람들과도 모국어로 대화할 수 없었던 그는 죽음과 동시에 자기 부족의 언어도 함께 무덤으로 데려갔다. 붉은천둥구름은 자기 부족 안에서는 외톨이였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 가운데는 동지들이 있었다. 1987년, 캘리포니아 주의 팔라에서는 쿠페뇨어의 마지막 사용자였던 로신다 놀라스케스가 94세의 나이로 죽었다. 와포어의 마지막 사용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로라 소머설은 1990년에 죽었다.

영국령 맨 섬에는 맹크스어를 할 줄 알았던 마지막 인물인 네드 매드럴이 197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과 함께 옛 맹크스어도 세계의 살아 있는 언어들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났다. 매드럴이 태어나기 얼마 전인 백 년 전만 해도 맹크스어를 쓰는 사람이 만 2천 명 정도 남아 있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맹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가 죽기 2년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퀸즐랜드 북부에 사는 아서 베넷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음바바람어를 몇 마디 이상 할 줄 아는 마지막 인물이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20년 전에 세상을 뜬 뒤 그도 이 언어를 쓰지 않았다.

(……)

지난 5백 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의 언어들 중 거의 절반 가량이 사라졌다. 에트루리아어, 수메르어, 이집트어 등 고대 제국의 언어들은 수백 년 전에 사라졌다. 그들의 무덤에 새겨진 비문은 오래 전에 문화와 언어가 사라져 버린 잊혀진 민족들을 어렴풋이 일깨워 주는 흔적일 뿐이다. 아프리카 수단 지역에서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사이에 존재했던 메로에 제국의 공용어였던 메로에어는 오늘날까지도 해도되지 못한 채 비문으로만 남아 있다. 영국의 고대 언어인 컴브리아어는 겨우 세 단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문자기록을 남기지 않은 다른 수많은 민족들의 언어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늘날의 세계를 잠시 돌아보면, 지난 수세기 동안 실개울처럼 진행되어 온 사멸 현상이 이제는 홍수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두에서 제시한 예들은 언어의 사멸이 고대 제국이나 낙후된 오지에 국한된 현상이 아님을 보여 준다. 언어의 사멸은 바로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세계의 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 작가_

다니엘 네틀 – 영국의 정신생물학 분야의 권위자로서 인류 진화의 맥락에서 언어와 문화를 살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북부 나이지리아의 피엠어』『언어의 다양성』『강렬한 상상: 광기, 창의성, 그리고 인간 본성』등.

수잔 로메인 – 영국의 언어학자로 사회언어학과 다중 언어 사회, 언어적 다양성에 대해 연구하였고, 성(性) 언어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이중 언어』『언어, 교육, 그리고 개발』『사회 속의 언어』『의사소통하는 성(性)』등.

● 낭독_ 김형석 – 배우. 연극 <블랙박스>, 뮤지컬 <천상시계> 등에 출연.

● 출전_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이제이북스)

●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김태형

 

 

 

* 배달하며

 

전북 김제의 한 초등학교에서 ‘까막눈’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치려고 사용한 교재는 시선했습니다. 시방, 쇠때, 남정내, 하나씨(할아버지), 가새, 에미(며느리), 거시기와 같은 노인들이 생활 속에서 접하는 단어들인, 그 고장 방언으로 꾸며졌습니다. 평생 까막눈으로 산 노인들이 당장 읽고 쓰시려면 외국어 같은 표준어보다는 당신들의 입말들을 익히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겠죠. 할머니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합니다. “아따 선상님, ‘거시기’는 못 배운 촌사람만 쓰는 말인 줄 알았당게. 핵교서도 이런 말을 쓰니 훈짐나부러요(마음이 훈훈해요)”(경향신문 2005, 6, 9). 표준어정책과 언어의 다양성을 동시에 생각해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요즘 국어교과서들에서도 방언에 할애하는 단원들이 눈에 띄어 반가웠습니다. 미국 ‘사멸위기언어연구소’의 언어학자들은 지구상에 남은 6000여 개 언어가 2주에 하나씩 사라지고 있으며, 백 년 뒤에는 절반이 사라지리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아끼는 작가로서 어느 방언 하나를 문장에 옮길 때마다 최후의 문장을 쓰는 심정이 되고는 합니다. 최근 들어 박형서의 「아르판」이나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와 같은 수작들이 직접적으로 언어의 다양성을 상상력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도 그런 심정의 반영이 아닐까요.

 

문학집배원 전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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