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김선우의 사물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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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만큼 작지만 파랗게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야말로 지구임을 깨달았다.”
      -닐 암스트롱 (우주비행사)-

 

김선우, 『김선우의 사물들』중에서

 

 

 

    고등학교 1학년 지구과학시간이었다. 칠판 귀퉁이에 분필로 점을 하나 '쾅' 찍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게 지구다."
 
 
    그 순간 내 전신을 훑고 가던 전율을 잊지 못한다. 암청빛 커다란 칠판 구석에 보일락말락 하게 찍힌 작은 점 하나로 치환된 지구, 사춘기 시절 우주의 광대함에 대한 막연한 관념이 그토록 명징한 시각효과로 내 앞에 드러났을 때 나는 하루 종일 멀미를 앓았다. 화성, 목성, 토성, 금성, 명왕성, 해왕성…… 익숙하게 알고 있는 태양계의 모든 별들을 점 찍어봐도 암청빛 칠판 한구석 동전만한 크기의 동그라미 속에 다 들어가고도 충분했다. 맙소사, 칠판이라는 우주 위의 작디작은 점 하나로 나타난 지구와 그 속의 아시아와 다시 그 속의, 그 속의, 그 속의 나. 그날의 충격은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한 편의 시 속에 들어와 '점'이라는 제목으로 기어이는 흔적을 남겼다.
 
 
    나는 이 세계에 우연히 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모든 우연은 필연이 몸을 감추는 방식이며 또한 몸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까마득한 시간 여행을 통과해, 기나긴 인과의 여정을 거쳐 우리는 지구라는 이 별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내가 당신과 만나거나 혹은 스쳐갈 때,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의 옆에 가지런히 놓이게 되거나 혹은 포개질 때, 그 모든 순간들 속에서 생의 지도가 들숨과 날숨을 쉬며 그 어딘가를 향해 조금씩 뿌리를 뻗고 있는 중인 것이다. 매일 매순간 조금씩 변하면서 아주 오래전부터 그려져 온 몸의 지도, 마음의 지도, 영혼의 지도, 계절의 지도, 인생의 지도, 우주의 지도……. 우주를 이루는 모든 질료들이 당신과 내 몸에서 그대로 발견되는, 어느 날 문득 발견한 내 몸의 점 하나가 별을 부르고 풀씨 하나가 지구를 떠받치며 당신의 몸이 우주가 되는 지극한 비밀을 갖지 못한다면 생은 얼마나 밋밋하고 팍팍하겠는가.
 
 
    열여섯의 그날, 내 앞에 펼쳐진 우주의 지도는 인간 중심의 세계, 지구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시선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한 최초의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주에 차고 넘치는 생명의 불가해한 신비 앞에 인간의, 내 존재를 내려놓고 겸허한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계기점의 하나였을지도. 내가 바라보는 저 별에서 오늘밤 누군가 지구를 바라보며 그리워하고 글썽이며 눈물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 작가_ 김선우-시인.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6년 「창비 」겨울호로 작품활동 시작. 지은책으로 시집 『내 몸속에 잠은 이 누구인가』『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장편소설『캔들 플라워』 에세이집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등이 있음.

 

▶ 낭독_ 서진 – 배우. 연극 <안티고네&gt, <모든 이에게 모든 것&gt 등에 출연.
   임형택 – 배우. 연극 <염쟁이 유씨>, <만선>, <농담> 등에 출연. 극단 작은신화 단원.

 
 
배달하며

    우주에서의 지구라는 게 어디 넓은 칠판의 점 하나겠어요? 어디에 묻어있는지도 모를 분필가루 한 톨도 안되겠지요. 그 거대한 우주를 만나버린 여고생. 이제 그녀는 과연 어떤 삶을 살까, 에 대한 대답은 책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우연한 말 한마디가 다른 한 사람에게는 인생의 행로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반대도 있기 때문에, 이래서 말조심 하면서 살아야 하는 가 봅니다.
    어쨌든 제가 사는 거문도에 오는 사람들은 밤하늘 몇 개의 별만 보고도 감탄을 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밤하늘 올려다보기를 포기하고 있고 올려다본들 별을 볼 수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 출전_ 『김선우의 사물들』(눌와출판사)

▶ 음악_ Backtraxx//bonus2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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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년 5 개월 전

콩알만큼 작은 곳에서 우리는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살고 있네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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