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양산펴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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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오브스틸 속 한 장면. 지구를 구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슈퍼맨을 보고 여자친구 왈 "자기, 지구가 나보다 중요해?"

 

황정은, 『양산펴기』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하루 일정으로 열리는 바자회에서 양산을 팔 것이다. 녹두에게는 비밀이다. 우리는 얼마 전에 다퉜다. 장어 때문이었다. 장어를 먹고 싶다고 녹두가 말했다. 어디서 알아냈는지 특별한 쏘스와 숯을 사용해서 쫄깃하고도 담백하게 장어를 구워주는 집이 있다며 그 집으로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졸랐다. 가격을 물으니 일인분에 삼만원이라고 대답했다. 돈이 어디 있어, 라고 말하자 깡통에 모아둔 돈을 쓰자고 졸랐다.
 
    깜짝이야.
 
    그 돈에 관해서라면 나도 따로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전부터 지구본을 하나 가지고 싶었다. 어중간한 것은 가지고 싶지 않았다. 너무 작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너무 큰 것은 너무 크고 너무 비싸서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알아보고 적당한 것을 눈여겨봐두었다. 지름이 삼십 센티미터쯤 되는 매끈한 지구본으로 고정대나 받침이 안정적이었고 기울기도 왠지 보기 좋았다. 어두운 청색 바다에 대륙과 섬은 은색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내 눈엔 그게 무척 아름다워 보였고 그 아름다운 것이 내게 무척 필요했다. 지구본을 보고 돌아온 날에 나는 동전을 모아둔 깡통을 들어보았다. 가득 차면 삼만원 정도 되려나. 거기에 조금 보태면 여유롭게 지구본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좋았어, 하며 깡통을 제자리에 내려두었다. 그날부터 이따금 무게를 가늠해보며 깡통이 차오르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장어라.
 
    장어와 지구본을 비교하면 아까웠다. 장어는 한 끼로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지구본은 남는다. 파손되지만 않는다면 두고두고 볼 수 있다. 뉴질랜드라거나 벨로루시 같은 나라들이 어디쯤인지 궁금할 때 짚어볼 수도 있으니 보람도 있다. 판단은 빠르게 유물적으로 마쳤다.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우리 형편에 말이지.
 
    생각보다 무뚝뚝하게 말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대꾸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녹두가 입을 꼭 다물고 눈물이 맺힌 모습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좀 먹자고 했을 뿐인데 뭘 그렇게까지 얘기해.
 
    뭘.
 
    제정신이냐며.
 
    그 뒤로 더는 말 나누지 않고 밤엔 등을 돌리고 누웠다. 그게 전부였으니 다퉜다기보다는 다쳤다고 해야 하나. 감정이랄까 자존심이랄까 어딘가 손쓰기 어려운 심층적인 부분을. 말도 없는 사람을 등으로 의식하며 깡통의 윤곽을 바라보았다. 텔레비전 위로 두더지 머리처럼 불룩 솟아 있었다. 찻잎을 담았던 것으로 주먹 두 개를 겹친 것보다 조그만 물건이었다. 그뿐인데 녹두도 나도 당분간 손댈 수 없는 불편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다가 지구본에 관한 의욕마저 시들어 나는 나대로 시무룩해졌다. 서로 속이 상해 며칠 미묘했다.
 
 
 
▶ 작가_ 정은 ? 소설가. 1976년 서울 출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파씨의 입문』,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등이 있음.

 

▶ 낭독_ 조주현 – 배우. 연극 <감포사는 분이>, <사랑, 지고지순하다> 등에 출연
   서진 – 배우. 연극 <안티고네>, <모든 이에게 모든 것> 등에 출연.

 
 
배달하며

    미안한 말씀이지만, 며칠 전 장어를 구워 먹었습니다. 맛있기가 한정 없습니다. 낚시꾼들은 모두 자신이 선호하는 어류와 낚시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장어파라서 감성돔이나 참돔보다도 장어 낚시를 더 자주 갑니다.
    그런데 지구본도 매력적입니다. 저는 가지고 있는 물건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지구본만은 예외입니다. 어쩌다 구경하게 되면 빙빙 돌리며 한참이나 들여다봅니다. 그 동그란 것 속에는 그저 대륙과 바다와 도시 이름만 있는 게 아니라 인류가 해왔던 짓거리가 모든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장어는 잡은 족족 먹어버리고 지구본은 가져본 적이 없기에 지금 저에겐 둘 다 없습니다. 누군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이거 고민됩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 출전_ 『서울, 밤의 산책자들』(강출판사)

▶ 음악_ Backtraxx/country2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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