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란,『풍년식당 레시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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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에 대한 사랑보다 더 거짓 없는 사랑은 없다.”
 
– 조지 버나드 쇼(작가) –

 

서성란,『풍년식당 레시피』중에서

 

 

 

 

    여자아이는 언제나 백반을 주문했고 늘 같은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밥을 먹었다. 밥이며 국이며 반찬이며 어느 것 한 가지 남기지 않고 아이는 말끔히 먹어 치웠다. 여자아이를 위해서라도 백반에 딸려 나가는 국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국의 종류라고 해 봤자 미역국이나 시래기 된장국, 콩나물국, 김칫국이 고작이다. 비린 생선을 넣고 얼큰하게 끓인 생선매운탕이나 쇠고기를 넣은 무국이라면 여자아이도 좋아할 게 틀림없었다.
    탁자 위에 차려진 백반은 여자아이의 아침 겸 점심 겸 저녁밥이다. 여자아이는 한 끼의 밥으로 하루를 사는 데 익숙하다. 잠바 주머니에 무료 식권이 여러 장 들어 있지만 여자아이가 사용할 수 있는 건 하루에 한 장 뿐이다. 소흘시에서 지정한 급식소가 근방에 몇 군데 있지만 여자아이는 늘 풍년식당으로 와서 밥을 먹는다. 특별히 음식 맛이 좋아서가 아니다. 식권을 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풍년식당뿐이기 때문이다. 라면이나 국수, 자장면 따위로 끼니를 때우면 이튿날 아침까지 견디기 어려운 법이다.
    명절과 공휴일과 방학처럼 크리스마스는 여자아이에게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적이 있었지만 기억은 빠르게 잊혀 여자아이는 어쩌면 그것이 오래전 동화책에서 읽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국 더 줄까?”
    김 여사가 눈으로 빈 국그릇을 가리키며 여자아이에게 묻는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가로젓고 남은 밥을 급히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체한다. 천천히 먹어라.”
    김 여사가 감지 않아서 더러운 여자아이의 머리칼을 살피듯 쳐다보며 말한다.
    언젠가 손님이 많은 점심시간에 식당에 들어왔다가 도망치듯 나가 버린 뒤로 여자아이는 창 너머로 식당 안을 살피듯 둘러보고 한가해졌다 싶을 때 들어와서 밥을 먹었다. 식권을 내고 먹었지만 여자아이는 공짜로 밥을 얻어먹는 사람처럼 주눅이 든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설거지를 한 듯 밥과 반찬을 말끔히 쓸어 먹은 여자아이가 냅킨 한 장을 뽑아 탁자 위에 떨어진 김치 국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잘 먹었습니다.”
    카운터에 식권을 올려놓고 여자아이는 도망치듯 식당을 나간다.
    (부분생략)

 
 
 
▶ 작가_ 서성란 – 소설가. 1967년 전북 익산 출생. 1996년 실천문학상 신인상으로 등단. 지은책으로 창작집 『방에 관한 기억』 『파프리카』 장편소설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 『특별한 손님』 『일곱 번째 스무 살』 등이 있음.

 

▶ 낭독_ 전현아 – 배우. 연극 <쉬반의 신발>,<베니스의 상인>,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 등에 출연.
    유예원 – 배우. 영화 <인간중독>, 드라마 <환상거탑> <TEN 2> 등에 출연.

 
 
배달하며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지만 이게 우리 현실의 모습이다, 라고 말하면 잔소리 같겠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갈수록 타인의 아픔에 대해 둔해지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멸시가 더해지고 있기 때문에 작가들은 이렇게 과잉과 편리의 이면을 자꾸 그려낼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러고 있으니까요,
‘냅킨 한 장을 뽑아 탁자 위에 떨어진 김치 국물을 닦는’ 모습에서 저는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 디테일이 여자아이의 성격과 자세를 보여줍니다. 그 아이가 집에 가서 어떻게 지낼지 까지 말입니다. 좋은 세상에는 작가가 필요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 출전_ 『풍년식당 레시피』(이리출판사)

▶ 음악_ Romance rdune4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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