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채만식문학관' 참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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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릉 채만식 白菱 蔡萬植 연보

 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 출생(1902~1950)
1924년 단편소설 세길로가 조선문단에 등단하고
타계 하기 직전 1950년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소설, 희곡, 평론, 수필 등 200여편의 많은 작품을 저술

 
                            1902
  • 6월 17일 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채규판과 조우섭의 6남매 중 5남으로 출생
                           1910
  • 1914년 : 임피보통학교 졸업(4년제)
  • 1918년 :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
                            1920
  • 1920년 : 당시 20세의 규수 은선흥과 결혼함
  • 1922년 :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4년제).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제1와세다 고등학원 문과 입학
    축구부 선수로 활동함
  • 1923년 : 가세가 기울자 학업을 중단함. 처녀작 <과도기>탈고
  • 1924년 : 강화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 단편 <세 길로>가 <조선문단> 3호에 추천됨
  • 1925년~1926년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활동
                            1930
  • 1931년 : 개벽사에 입사. 평론가 함일돈과 동반자 작가논쟁을 벌임
  • 1933년 : 장편 <인형의 집을 나와서>를 <조선일보>에 연재함
    개벽사를 그만두고 조선일보로 직장을 옮김
  • 1934년 : <레디메이드 인생>, <인테리와 빈대떡>(희곡) 등 발표
  • 1936년 :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개성으로 이사함
    희곡 <심봉사>를 <문장>에 연재하려 하였으마 전문 삭제당함
  • 1937년 : <탁류>를 <조선일보>에 연재함. <祭饗날>(희곡) 발표
  • 1938년 : <천하태평춘>(후에 <태평천하>로 개제)을 <조광>에 연재함
    <이런 처지>, <치숙>, <소망> 등 발표
  • 1939년 : <金의 情熱>을 <매일신보>에 연재. <흥보씨>, <패배자의 무덤> 등 발표
    <채만식단편집>이 학예사에서 출간됨
                         1940
  • 1940년 : 개성에서 안양으로 이주. <냉동어>, <懷>, <당랑의 전설>(희곡) 발표
  • 1941년 : 시나리오 <무장삼동> 탈고
  • 1942년 : 장편 <아름다운 새벽>을 <매일신보>에 연재
    단편집 <집>상재. 안양에서 서울 광나루로 이주함
  • 1944년 : 친일적 작품 <여인전기>를 <매일신보>에 연재
  • 1945년 : 향리에 일시기거하다 해방 후 서울 충정로로 다시 이주함
  • 1946년 : <허생전>, <맹순사>, <미스터 方>, <논 이야기> 등 풍자적 소설 발표
  • 1947년 : 익산시 고현동으로 이주. <심봉사>(희곡) 발표
  • 1948년 : 장편 <옥랑사>탈고. <낙조>, <도야지>, <민족의 죄인> 등 발표
  • 1949년 : <소년은 자란다> 탈고. <역사>발표
                          1950
  • 익산시 마동에서 향년 49세에 별세함. 군산시 임피면 계남리 선영에 안장됨

 

                                                              채만식문학관 문학기행

2016년 6월 29일 수요일 아침 8시 광화문, 8시 30분 양재역 출발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 (주) 컬처비스 글로벌

 

우리 문학의 향기따라 나서는 문학예술여행인 문학기행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기획주최하는 매우 뜻 깊은 문학행사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하는 다양한 문학 활성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문학의 독자 저변을 넓히고 문학계에 활력을 불어녛고자 함입니다. 우리문학의 의미있는 장소를 찾아 길을 떠나는 6월의 문학기행의 두 번째 여행지는 근대풍자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전라북도 군산에 위치한 '채만식문학관'입니다. 우리는 전문문학인 가이드, 소설가 민보윤, 염승숙 두 작가와 함께 <탁류> <태평천하> <레디 메이드 인생> 등과 같은 당시의 시회상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채만식 작가의 삶과 문학세계, 그 다양한 자료들을 직접 살펴보기 위하여 채만식문학관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오전 8시 서울에서 출발하여 3시간동안 버스로 달려 오전 11시 경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에 소재한 백릉 채만식 선생의 문학유적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날 문학기행의 모든 안내는 군산시청 문화예술국장으로 재직중 정년퇴직한 군산태생의 이종예시인의 자세한 해설로 채만식 선생의 삶의 여정과 문학세계에 대하여 소상하게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백릉 채만식 작가의 삶과 문학적 행적을 찾아보는 안내 홍보판입니다 채만식 작가는 고은 시인과 함께 군산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이곳은 채만식 선생의 생가터 입니다. 뒤에 우물이 보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아무런 건축물이 없이 텅빈  나대지로 남아있습니다. 생가터엔 잡초만 무성합니다

생가터 부근에 채만식 선생의 대표작인 '탁류'의 한 부분을 홍보판넬에 옮겨 놓았습니다. 구수한 군산지방의 토속적인 사투리 문체로 해학적인 문체입니다.

'탁류'는 1937년 10월 27일 발표한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연극, 영화, 뮤지컬로 각색되어 공연된바 있습니다.

 

이곳은 일제시대 채만식 작가가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살았던 생가터입니다. 채만식 선생은 1902년 7월21일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동성마을 이곳에서

부친 채규성 모친 조우섭씨의 6남매중 5남 막내로 태어났습니다,앞에 보이는 목조구조물은 당시의 우물터입니다.

지난날 군산시 문화예술국장을 지냈던 이종예 시인이 지금은 채만식문학관 안내 해설자로 문학관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하나하나 자세하게 안내를 해 주고 있습니다

 

 

채만식 작가가 다닌 임피초등학교 뒤편 언덕위에 있는 '임피 채만식도서관' 입니다


이종에 시인의 안내로 임피면에 위치한 유서깊은 이 지역 임피향교의 유적을 찾아 봅니다

 

 

 

지난날 선비들이 학문의 깊이를 깨달으며 조용히 책을 읽던 향교의 방들입니다. 책읽는 낭낭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大成殿' 그 시대 선비들은 과연 무엇을 크게 이루려던 것일까?  한참 생각해 봅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장수풍댕이'를 이곳에서 우연하게 처음 보았습니다. 이곳에 온 우리들을 반기려는 듯 근사한 앞발을 펼치며 흔들어 봅니다. 아주 귀한 대접을 받는 장수풍댕이는 자연보호 곤충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른이들은 지나면서도 못 보았지만 내 앞에서 나의 발길을 멈추게하더군요 그러니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신기하여 자세하게 살펴보다가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숲 속으로 대려다 주었습니다.

" 다시는 큰길로 나오지 말어 알았지? 요즘 사람들 눈에 띠면 크게 다친단다 알겠니 숲속에서 잘 지내 ㅡ 만나서 반가워 ㅡ"

 

정말 멋있게 생긴 녀석입니다. 필시 장수의 투구를 쓰고 있는 듯 튼튼한 앞발 두개의 위용이 당당합니다

 

 

 

호박꽃에 사는 애벌레입니다. 노오란 꽃기둥을 타고 오르는 이녀석은 무슨생물의 애벌레인지 모르겠지만  크고 좀 징그럽게 생겼습니다

 

 

임피 향교를 살펴보고 나서 백릉 채만식 작가가 소설을 쓰던 집필가옥과 가옥 뒤에 있는 묘지로 이동했습니다.

 

 

잡초무성한 숲 사이 황토길을 한참 오르니 일제치하에서 고뇌의 삶을 살며 한국인인의 해학적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내던 백릉 채만식 작가가 사시사철 머리를 동여매고 향로에 향을 피워놓고 치열한 작업으로 글을 쓰던 당시 집필가옥이 나타납니다. 금시라도 쓰러져 붕괴될 듯한 폐가를 보는 순간 충격을 느꼈습니다 어찌하여 지금까지 이데로 방치한 것인지?  생전에 가난하여 가족들에게 별로 남긴것이 없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자손들 소재도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리가 잘 되지않고 있는 듯 합니다. 이 폐가에 대하여 이종예시인에게 물으니 머지않아 군산시에서 곧 복원할 계획중에 있다고 합니다만 관광객들 상대로 문학관 건물은 지어놓고 이 건물은 왜 지금까지 이렇게 방치해 두었는지 … 생각할수록 머리에 쥐가 났습니다  보십시요 1930년대, 그러니까 반세기 정도 세월이 지난 후 이렇게 초라한 가옥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세월은 흐르고 소설을 집필하던 당시의 가옥은 폐가로 남아 잡초만 무성합니다.

 

 

 

이종예시인의 해설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 오른쪽 두번째. 앞에  커피잔을 손에 들고 서서 경청을 하고 있는 안보영 소설가가 보입니다

2005년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과 2005년 제1회 자음모음 문학상을 수상한 문단에서 주목받고있는 소설작가입니다.

 

 

앞에서 해설을 하는 분이 이종예 시인입니다. 채만식 선생의 골 깊은 삶의 여로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듣고 보니 참 가난했던 그의 삶에 연민을 느끼게됩니다

이종예 시인의 얼굴을 크게 봅니다. 채만식문학세계와 인생행적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고 있는 문학해설가입니다. 전직이 군산시문화예술국장으로 퇴직하신 분입니다 누구든 군산을 여행하는 분은 이분을 찾으면 곳곳의 유적 관광에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고 채만식 작가의 묘소는 명성에 비해서 좀 초라한 모습입니다. 아직도 후손들의 묘소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난으로 또는 생전에 가족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살아오신 탓인 듯도 합니다. 후대를 잇는 후손의 확실한 존재가 아직도  분명하지 못한 듯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채만식 선생은 1950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는데 묘소에는 비석이 두개가 있습니다. 한 개의 비석은 소설 '무영탑'을 쓴 이무영 소설가가 당시의 비석이 너무 초라하여 묘비 뒤에 채만식 문학에 대한 간단한 내용을 언급한 비문을 새겨 넣고 있습니다.

 

묘 앞에는 상석도 없는 쓸쓸한 모습입니다.  이날 묘소 앞에는 오래전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꽃다발 한 묶음이 빛바랜체 놓여있었습니다.

 

채만식문학관으로 가는 길에 농민혁명기념탑을 둘러보았습니다 암울했던 일제시대 수탈과 약탈을 일삼는 일제에 과감하게 맞서는  농민들의 뜨거운 항쟁을 기념해서 세운 뜻 깊은 역사의 현장 기념탑에 대하여 이 종예시인의 해설을 들어봅니다. 기념탑 주변에는 숲이 무성합니다.

 


오늘 군산문학기행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백릉 채만식문학관 방문입니다. 문학관  왼쪽으로 멀리 금강이 보입니다 채만식의 대표작인 소설 '탁류'의 무대는 바로 저 금강유역에서 살아가던 고단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채만식문학관 전경입니다 멀리 입구로 향하고 있는 소설가 안보영님과 염승옥님의 뒷 모습이 보입니다. 이날 문학기행의 작가살롱 토크 프로그램의 초대작가 두 사람입니다 문학관 2층에서 내려다 본 문학관 경내의 후원전경입니다. 저 너머로 소설 '탁류'의 주무대인 금강이 보입니다

​                                                            

문학관 앞  넓은 정원에는 미두, 백릉, 청류, 문학 광장과 오솔길과 기찻길 등의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자연과 함께 즐기는 다채로운 문학 체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멀리 소설'탁류'의 무대이던 금강 하구뚝이 보입니다.

 


   

 

                                                                  채만식 문학관

 

작가 채만식의 문학 업적을 기리고 창작 저작물과 유품 등을 수집하여 상설 전시하고자 2001년 3월 10일 개관되었습니다. 소설 ,탁류>의 무대인 금강 주변에 자리한  채만식문학관에서는  일제 강점기 채만식에 관한 각종 자료 및 친필 원고, 개항 100주년 자료 등을 전시하여 관객에게 질 높은 문학의 향기를 제공하고 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는데 힘쓰고잇습니다. 더불어 시민, 청소년과 호흡을 함께하는 다양한 문학행사를 마련하여 문학 교육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지면적  9,887m2에  연면적 532m2이며 지상 2층 규모입니다 지상 1층은  전시실 및 자료실, 2층은 50명 정도의 문학 강좌와 세미나, 영상물 시청이 가능한 강의실 등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또한 전시실에는 연대기 순서로 따라가며 채만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관련 작품 등을 소개글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1층 전시실은 파노라마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시실를 따라 가면 일제수탈의 역사가 서린 군산의 모습과 채만식의 치열한 삶과 문학의 여정을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원형공간에 잘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치숙 (痴叔 ㅡ 어리석은 아제비 라는 뜻의 제목 ㅡ)은 채만식 선생의 단편소설로 1938년 동아일보에 발표돤 작품입니다

 

채만식 작가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장,단편소설 만해도 300여편에 이르며 기타  수필,동화,희곡,시나리오 등 생전에 1천여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놀라운 다작의 작가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소설 쓰기에 달인이며 문학의 천재성을 지난 작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채만식 작가의 육필 원고지들 ㅡ  반세시 넘어 세월이 흘러갔어도 육필 원고지의 잉크색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채만식 작가의 육필 원고지들 ㅡ  반세기 훨씬 너어 세월이 흘러갔어도 육필 원고지의 베인 잉크색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채만식 작가의 소설 속의 언어의 특징은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서술입니다, 장편소설 '천하태평'은 1938년 당시의 문예지 '조광 (朝光) 1~9에 연재된 작품입니다

 

 

 

채만식 작가가 생전에 소설을 집필하는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오른쪽으로 썼다가 맘에 들지 않은 듯 꾸겨버린 원고지 뭉치가 보입니다

책상 뒷면에 탁류의 작품배경 이미지인 듯한 사립문 뒤로 금강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채만식 작가는 원고지에 잉크를 묻힌 철필로 200자 원고지에 글을 썼습니다. 책상위에 잉크병이 보입니다.

 

채만식 작가는 작품을 구상할 때, 또는 작품을 집필할 때에는 반드시 이 향로에 향을 피워 놓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유품입니다

어떤 작가는 작품을 창작할 때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저마다 독특한 버릇이 있다고 하는데 채만식 작가는 향로에 향을 피워놓고 글을 쓰는데 집중했다고 하니 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이 바로 채만식 작가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탁류' 원본 상,하 2권입니다. 1937년 10월 12일 부터 1938년 5월 17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습니다.

 

 

위의 책표지에 있는 '김우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극을 도입한 대표적 극작가입니다, 당시 채만식도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희곡작품도 집필한 것으로 기록됩니다.

 

 

채만식 선생의 생애 모습을 시대별로 사실감있는 인물사진으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채만식 선생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를 했습니다  이 사진은 재학증명서입니다

 

 

 

채만식문학관의 관광해설자인 최정옥님이 문학관전시물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마이크를 잡고있는 분입니다

 

 

두 분 너무 수즙어 하십니다. 이날 문학기행 초청 작가 두분입니다 왼쪽, 안보윤 소설가입니다.2005년 제10회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자입니다 오른쪽, 염승숙 소설가입니다

현대문학천료로 등단, 동국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한 재원으로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외 다수의 소설책을 저서하고 있습니다. 안보영 작가는 패션감각이 뛰어나고 염승숙 작가는 수수한 타입입니다 그러나 두 분다 수즙음만은 동격입니다 여자이기 때문일까요? ㅋ

 

 

젊었을 때, 채만식 선생은 모던보이셨습니다. 신식 양복 정장에 보타이차림에 중절모 쓰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1930년대 모던보이차림을 전시장 입구에 조각품으로

설치했습니다. 멋쟁이십니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지금의 중앙고등학교) 당시의 모습 두루마기차림에 교모를 쓴 모습이 이색적입니다

 

1930년 개성에 머무를 때 모습이 참  멋스럽습니다 당시의 양복차림은 인테리들의 옷 차림이지요

 

 

일본 와세다 대학교 유학시절 축구부 세터포드활동으로 우승, 그 시절  체력이 좋았나 봅니다

 

채만식선생의 작품세계와 삶의 발자취에 대하여 이종예 시인이 특별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문학관  2층에 있는 좌석  50석 규모의 영상시설을 갖춘 다용도 강당입니다

 

 

노바섹소폰앙상블의 작은 음악회,  클래식, 탱고, 동요 등 레파토리에 대한 음악해설을 곁들인 멋진 연주회였습니다

 

 

 

초대작가 염승숙 소설가의 살롱토크, 이날의  토크주제는 <내면을 충만하게  불 밝혀주는 것들>입니다.

 

이날의 문학기행 프로그램을 마치고 채만식계단을 내려오니 멀리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무대였던 금강이 멀리 탁류인 듯 유유히 흘러갑니다

 


 

 

채만식 선생은 생전에 폐결핵으로 병마에 시달리면서 죽음을 예견한 듯 " 나 가거든 상여는 쓰지말고 손수레에 들꽃 가득가득 날 덮어주오 마포 한 필 줄을 메어 들꽃상여 끌어주오 " 라는 유언문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문학관 앞 정원에 채만식 선생의 유언데로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들꽃 화단에 '들꽃상여 모형,구조물을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채만식 선생은 1950년 6월 11일 오전 11시 30분 영면하셨습니다.

 

 

 

 

이날의 채만식 문학관 기행 참가자 일행의 기념사진을 찰칵! 담았습니다

진행팀에서 이날 참가자들 모습이 모두 잘  보일 수 있도록 정리를 해 주는 이가 없어 얼굴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 좀 안타까웠습니다. 가운데에는 이날의 초대작가들과  문학관의 해설가들이 자리잡고

참가자들 모두 얼굴이 잘 보이도록 정열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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