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가을 수력학(水力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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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가을 수력학(水力學)」

그냥 흐르기로 했어.
편해지기로 했어.
눈총도 엽총도 없이
나이나 죽이고 반쯤은 썩기도 하면서
꿈꾸는 자의 발걸음처럼 가볍게.

목에서도 힘을 빼고
심장에서도 힘을 빼고
먹이 찾아 헤매는 들짐승이 되거나 말거나
방향 없는 새들의 하늘이 되거나 말거나
암, 그렇고 말고,
천년짜리 장자(莊子)의 물이 내 옆을 흘러가네,
언제부터 발자국도 없이
타계(他界)한 꿈처럼 흘러가네.

▶ 시_ 마종기 – 193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도미, 2002년 은퇴하기까지 미국 오하이오 의대와 톨레도 아동병원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했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뒤, 『조용한 개선』, 『두번째 겨울』, 『변경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하늘의 맨살』 등의 시집을 펴냈다.

▶ 낭송_ 한규남 – 배우. 연극 ‘들소의 달’, ‘강철왕’ 등에 출연.

배달하며

시인의 시혼(詩魂)은 이역에 살면서도 노장(老莊)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체득하고 있다. 하지만 ‘가을 수력학’이라는 시제부터 사상이 아니라 시로 돌입하고 있다.
시인이란 누구일까? 배신자라는 낙인 때문에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먼 나라 베니스의 망자의 섬에 묻힌 에즈라 파운드를 보고 시인은 또 이런 시를 쓰기도 한다.
‘나는 시를 버리더라도 먼저 바른 길을 가려보자. 센 바람 불어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약속한 뜻은 겁이 나도 지키고 힘들면 울어도 포기하지 말자’고 한다. 30년 전의 시집에서 바로 오늘인 듯 생생하게 묻고있는 시인이 새삼 그립다.
“…../해 뜨고 해 질 때 까지 온종일/오른쪽은 왼쪽을 씹고/왼쪽은 오른쪽을 까고/대가리는 꼬리를 먹고/꼬리는 대가리를 치다가 죽고,/하루도 그치지 않은 총소리,/하루도 쉬지 않는 살인./하느님 시인의 용도는 어디 있습니까/”

그동안 곳곳에서 집배원의 시를 기다리고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문학과지성사)
▶ 음악_ The Film Edge-Reflective slow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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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년 3 개월 전

머물다 갑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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