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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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단 한번 휘두른 검(劍)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달』

『그렇지, 내 목숨은 큰 바다의 파도가 밀어올린 물거품이 내쏘는 단 한순간의 반짝임이오. 거목에 무성한 잎사귀 한 잎에서 반짝인 찰나의 명멸이오. 언젠가 잃을 것이라면, 지금 이곳에서, 당신 앞에서!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소. 당신이 나에 대한 추억을 생각할 때, 꿈 꿀 때, 왜 내가 소생하지 못하겠소! 죽은 달이 다시 빛나기 시작하듯, 그때마다 나는 소생하오, 참되게 다시 태어나오.』
『안 됩니다 산을 내려가시면 다시 몇 번인가 마음 저릴 만남도 기다리고 있을 터. 』
『내려가면이라구요?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일 따위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소? 내일을 기약하고 이 한순간을 버리라는 거요?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소. 』
마사키 말투는 거세어갔다.
『내 사랑은, 제발 들어주시오. 내 사랑은 단 한 번 휘두른 검이오. 달군 불길이 그대로 남은, 거세게 달구어져 번쩍번쩍 빛나는 붉은 검이오. 그러나 이전에는 아름답게 장식된 칼집 속의 검이었을 뿐이오. 뽑아서 휘두르면 사람도 단번에 베었을 것이오. 그러나 헛되이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검이라면 반드시 그 속에 죽음을 감추고 있을 터. 일격에 죽일 죽음을! 칼집의 매듭은 그저 한 번 풀면 족하오. 베지 못할 검이라면 그저 그것으로 끝일뿐! 지금 나는 그 검을 뽑았소. 당신 앞에 뽑아 보인 것이오. 칼집은 일찌감치 내던졌소. 다시 집어넣을 수는 없어요! 당신은 그저, 그 칼자루를 쥐고 내 가슴팍에 서기만 하면 되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담아 찌르면 되오! 깊게, 깊게, 저 먼 곳으로 뚫고 나갈 만큼!』
다카코는 흐느껴 울었다. 말[言語]은 마사키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하나가 될수록 진실하고, 하나가 될수록 허무했다. 말은 스스로 찢어지고, 가루로 부서지고, 쉽게도 초월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침묵은 가득 차 넘치고 있었다. 암자가 멀리 희미해져가고, 마사키는 숲의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또 가라앚는다. 두통이 밀려온다. 벽을 짚은 두 손에서 시들고 말라빠져 버서석 부서지는 담쟁이넝쿨의 감촉이 점점 사라져간다. 정강이의 상처가 아프다. 목이 마르다.
모래사장에 건져 올려진 해파리처럼, 마사키의 배 아래로 차디찬 물결이 배어든다. 파도가 다가왔다 사라질 때마다 조금씩 주변의 모래가 무너져가듯, 이윽고 몸뚱이가 땅속으로 삼켜져가는 것 같다. 밤은 짙다. 두견새가 소리 높이 운다. 초조감은 귓속에서 종을 난타하고 있다.
관자노리에 맺혔던 땀 한 방울이 눈에 스몄다. 마사키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눈앞에 뜬 달에 그러모았다.

▶ 작가_ 히라노 게이치로 – 소설가. 1975년에 태어났다. 교토 대학 법학과 재학중인 1999년 첫 소설 『일식』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일본열도에 ‘히라노 열풍을’을 불러일으켰다. 『달』은 두 번째 작품으로 전작을 능가하는 걸작으로 평가되었다.

▶ 낭독_ 서윤선 – 배우. 연극 ‘오셀로’, ‘고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
권나연_ 배우. 연극 ‘갈매기 2013’, ‘리어왕’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의식이 희미해질 때,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
영원한 침묵에 들기 전,
당신의 가슴에 남을 마지막 말은?
또는 당신이 만나게 될 첫 번째 말은?…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달』(문학동네)
▶ 음악_ orchestral mood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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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년 2 개월 전

관자노리가 아니라 관자놀이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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