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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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스-수수께끼, 이제부터 이 무명의 하인을 주목해 볼 일이다.

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

그의 주변에는 날개를 달고 속삭여대는 지식들이 날아다니지 않는다. 그 대신 무엇인가가 그의 내면에 들어 있다. 그는 그 무엇 위에 가만히 있고, 그리고 그 무엇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는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결코 누군가를 속이거나 헐뜯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이 수선스럽지 않음을 나는 교양이라고 부른다. 수다스러운 자는 사기꾼이다. 그가 매우 친절한 사람일 수는 있지만,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모두 뱉어내지 않으면 못 배기는 그의 단점은 그를 비열하고 나쁜 친구로 만들 것이다. (중략)
그는 재능들로 빛나지는 않지만, 타락하지 않은 선한 마음의 미광을 내비치고 있다. 그의 촌스럽고 소박한 몸가짐은 거기 수반되는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아마 인간 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움직임과 태도일 것이다. 그렇다. 크라우스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를 재미없고 못생겼다고 생각할 여성들에게서도 그렇지만, 그를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이 세상사에서도 말이다. 무심하게? 그렇다. 사람들은 결코 크라우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그가 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것, 바로 그 점이 경이로운 것이고, 계획으로 충만한 것이며, 조물주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신은 이 세상에 심오하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내주려고 크라우스와 같은 인간을 보낸 것이다. 그 수수께끼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봐라,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수수께끼를 풀려는 노력을 보이는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크라우스-수수께끼는 너무나 훌륭하고 심오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그 수수께끼를 풀고자 애태우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숨 쉬는 그 어떤 인간도 이 무명의 초라한 크라우스에게 그 어떤 과제 수수께끼 혹은 그토록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크라우스는 진정한 신의 작품이며, 무(無)이며, 하인이다. 크라우스는 교양 없고, 매우 고된 일을 수행하기에나 적합한 자로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기이한 것은, 그런 판단이 틀린 데 없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크라우스는 겸손함 그 자체이다. 순종의 왕관이자 왕궁인 크라우스. 그는 진정 보잘것없는 일들을 수행해나가기를 원한다. 그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 하고 싶어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누군가를 돕고 복종하고, 시중을 드는 일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곧 알아차리고는 그를 착취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착취한다는 사실 안에는 환하게 빛을 발하는 자비와 광명으로 빛나는, 금빛 찬란한 신의 정의가 들어 있다. 그렇다. 크라우스는 거짓 없는, 아주, 아주 단조롭고, 단순하고 명료한 존재의 초상이다. 어느 누구도 이 사람의 단순함을 오인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성공하지 않을 것이다. 난 그것이 멋지고, 멋지고, 또 멋지다고 생각한다.

작가_ 로베르트 발저 – 소설가. 1878년 스위스 빌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 열네 살 때부터 은행에서 견습생활을 하다가 엔지니어 조수, 은행원, 사서로 일하며, 그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 않았다. 그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한 것은 글쓰기와 걷기였다. 걸을 때 그는 의미의 질식에서 해방된 몸이었다. 1906년 『탄너일가의 남매들』 『조수』 등 대표작을 출간. 카프카, 무질, 헤세, 벤냐민 등이 그의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자진해서 들어간 정신병원에서 20여년간 지내다가 1956년 12월 산책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낭독_ 박웅선 – 배우. 연극 ‘오셀로’, 영화 ‘한반도’ 등에 출연.

배달하며

‘크라우스’는 신의 정의를 내포한 관점이다.
‘오직 누군가를 돕고 복종하고, 시중드는 일’이 지니는
거짓 없고 단순명료한 겸손. 그 겸손은 스스로 높은 자의 교만을
어둠 되게 하며, 자비로운 광휘를 발한다.
성공과 출세를 거부하고 선의(善意)를 착취당하라.
‘하인’이 되어 신의 정의를 실현하라.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

문학집배원 서영은

출전-『벤야멘타 하인학교』(문학동네)
음악_ 11-Voice Redo B 중에서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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