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공개방송 후기] 겹겹이 쌓인 시간들이 이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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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시간들이 이루는 것

– 찾아가는 문장의 소리 11월 공개방송 후기

 

박정은

 

 

 

 

 

    광주는 내가 자란 도시이다. 태어난 곳은 해남이지만 해남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해남으로 이사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일곱 살 때부터 광주의 한 동네에 정착해 살고 있다. ‘익숙하다’는 표현 보다 ‘당연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내 존재의 근간이 되는 도시 광주가, 올해 찾아가는 문장의 소리의 종착지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3에서 공개방송이 진행되었다. 객석에 앉아 무대 위의 진행자 김지녀 시인과 <작가의 방> 초대 손님 신형철 평론가, 정용준 소설가를 마주했다. 신형철 평론가는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시고 정용준 소설가는 지난 학기까지 조선대에서 수업을 하셨다. 조선대학교 학생인 나는 2년 전 법학과에서 문예창작학과로 전과를 했다. 문예창작학과 학생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정용준 소설가의 문예창작 기초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신형철 평론가는 직접 말씀드린 적 없지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다. 집에서 멀지 않아 자주 방문하던 익숙한 공간에, 학교에서 뵙던 교수님들이 초대 손님으로 오신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은 아주 반갑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광주에 대한 인상

 

 

    광주 출신인 정용준 소설가는 광주에서 나고 자라서 광주에 언제 와도 익숙하기도 하고 특별한 인상이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광주는 너무 당연해서 인상이 없는 도시였다. 그랬던 내가 세 달 전 광주를 떠나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광주에 대한 인상이 생겨난 것은 광주 밖에서였다.
    서울에서 내 또래의 서울 토박이를 만나 내가 광주에서 왔다고 하자 그녀는 “5.18!”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광주라는 이름 뒤에 5.18민주화 운동을 떠올릴 것이다. 공개방송이 진행된 국립아시아 문화전당의 주변에도 그 흔적이 있다. 전당의 입구에는 옛 전라남도청 건물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건물 벽면에 총탄 흔적이 남아있는 전일 빌딩이 있다. 신형철 평론가는 광주를 “고맙고 미안한 도시”라고 했고 진행자 김지녀 시인은 그것을 광주에 대한 “마음의 부채”라 표현했다.
    작년에 광주 트라우마 센터의 한 행사에서 세상 밖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5.18 국가폭력 희생자 가족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에서야 그 일이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익숙한 무언가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는, 그 지점이 문학이 시작되는 곳이 아닐까.

 

 

    문학에서의 재능

 

 

    청소년기의 나는 문학이 영감(靈感)으로 인해 마법처럼 탄생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신형철 평론가는 문학은 선천적 재능의 영향이 적으며 시간을 얼마나 많이 투자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그 시간을 투자하는 일을 “생명을 할부를 하는 것”이라 표현한다.
    정용준 소설가는 그 말처럼 문학에 생명을 할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소설을 쓸 생각을 하며 보낸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시간과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 모두 소설을 위한 시간인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책상에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 정용준 소설가의 책상에는 소설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가 놓여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을 할부”한 시간이 형체가 있는 물질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새삼 멋져 보였다.
    문학을 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은 고민한다. 나에게 재능이 없는 것인가.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나. “생명을 할부하는 것”은 그것을 그만큼 사랑해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정용준 소설가의 말처럼 그것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 시간을 이겨낼 힘을 갖고 있다.
    재능은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의미한다. 문학에서 타고난 재능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학을 향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재능을 만들 것이다.
잘 쓴 평론을 읽으며 평론가의 꿈을 꿨다는 신형철 평론가, 군대에서 문학을 접하게 된 정용준 소설가. 문학을 만나고 매료되는 그 우연의 순간에서 시작된 그들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객석에 앉은 많은 문청들에게 용기를 준 시간이었다.

 

 

    광주에서 흐르는 단어

 

 

    완도 하면 김, 횡성 한우, 나주 배… 우리는 지역 이름 뒤에 특산물을 떠올리곤 한다. 두 번째 코너 <그곳에서 흐르는 단어> 의 진행자 양양은 지역 이름을 말하면 특산물 대신 다른 것을 떠올려볼 것을 권유한다. 양양은 장석남 시인의 「나주」를 읽으며 나주의 담벼락을 상상한다. 자신이 생활하는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 방문해 본적 있는 사람은 그 지역을 특유의 분위기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이라도 그 안을 채우는 것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문화전당의 분위기는 평소와 사뭇 달랐다. 양양이 자신의 노래 “여행자”를 부르기 시작하자 차분했던 무대와 객석은 금세 들뜬 공연장이 되었다.

 

 

    내가 아는 선배는 한 곳에서 오래 생활하면 고여 있는 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고인 물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공연자로 초대된 밴드 ‘우물 안 개구리’가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밴드라 소개하며 우물 안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라 하면 우물의 바닥에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 보는 개구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노래하고 연주하는 밴드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은 우물 안에서 물장구치고 뛰어노는 개구리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그들은 “광주의 밤”을 외치며 신나게 뛰어놀다가도 수줍으면서 동시에 당당하게 “너에게 닿기를”노래한다. 그리고 가수 이정선의 “외로운 사람들”로 관객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하기도 했다. 우물 안에서도 다양한 색을 가지고 풍성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무대였다.

 

 

    공개방송이 끝나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공유된 말들 속에서 힘을 얻어 시를 쓰고 싶다며 곧장 집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문학’이라는 단어가 각자에게 다른 의미와 크기로 찾아와 힘을 주는 시간이었다. 나 또한 이 날의 말과 노래가 마음을 데워주어 11월 밤의 시린 바람이 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박정은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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