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마당 어떻게 운영되는지 아시는 분 있나요?
목록

예전에 올린 글에 대해서 예전에는 평도 해주었고, 우수 작품도 선정하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은 안보이구요.

공모마당은 썰렁하구요.

왜그런가? 하고 찾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안내된 것 없구요.

글쓰기하러 들어가는 통로도 이상하네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후 사정과 현재 어떻게 운영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요' 게시판에 올렸습니다만…

해당 게시판을 보니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 듯 싶어 답변을 듣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록
공모마당 어떻게 운영되나요?
목록

예전에 올린 글에 대해서 예전에는 평도 해주었고, 우수 작품도 선정하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은 안보이구요.

공모마당은 썰렁하구요.

왜그런가? 하고 찾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안내된 것 없구요.

글쓰기하러 들어가는 통로도 이상하네요.

운영진에서 소비자 입장이 되어서 작품 한 번 올려보세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후 사정과

현재 어떻게 운영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공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화예술위원회도 정부에서 운영하거나 지원금을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닌가요?

책임성 있는 운영이 아쉽고…..씁쓸합니다.

 

 

 

목록
꽁초
목록

 

 

꽁초

 

한 순간

격렬했던 애무도

결국은 버리는 카드다

 

불타는 애심

목구멍 깊숙한 너의 키스도

언제나 짓밟히는 운명

 

분리되지 못한 연애와 증오

식어서도 남아있는

몸부림의 시체

 

우연으로 시작해서

필연으로 끝난 운명

내 사랑 오류의 흔적

목록
이팝꽃
목록

이팝꽃

 

배 고프제,

밥 줄까?

먹다 남은 막걸리 있는데,

한 잔 줄까?

아버지 피시던 담배 있는데,

한 대 줄까?

 

나의 배고픔으로

허기를 채우시다

가신 어머니

 

그리움이 몹시 배고프던 어느 날

이팝나무 꽃이 허옇게 출렁거렸다.

 

흰 쌀밥 한 광주리

머리에 인

어머니가 오셨다.

목록
괜히 줬나봐
목록

히 줬나 봐

                                박재명

 

포암산 정상에서 

맥주 한 잔

안주는 멸치 한 마리

 

몸통은 술 안주

멸치 대가리는

개미 밥

 

괜히 줬나 봐

개미 혼자 힘이 딸려

제 동료들 죄 끌고 왔네

 

영치기 영차

옮길 수는 있지만

너무 힘이 드네

 

멸치 대가리

괞히 줬나

개미도 오늘은 휴일인데…. 

목록
임하부인
목록
임하부인(林下夫人)
   
으름은 산비탈이나 능선에는 없지만 골짜기에 들어서면 쉽게 볼 수 있는 덩굴식물이다. 다래넝쿨처럼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 서로 얽히고설키며 살아간다. 으름덩굴의 얼굴은 다름아닌 열매가 아닐까 싶다.
초봄에 한 개 또는 서너 개씩 열매를 맺어 초록색으로 영글다 추석 무렵이면 연한 갈색으로 익어간다. 그리고 완숙단계에 이르면 겉껍질이 세로로 금이 가며 마침내 쩍 벌어진다. 벌어진 속살은 순백의 하얀색이며, 부드럽고 촉촉한 내피에는 까만색의 씨앗들을 무수히 감싸고 있는 과육을 품고 있다.
 
새해 첫 날, 흐린 날임에도 불구하고 첫 산행을 위해 홀로 집을 나섰다. 싸늘한 겨울, 새벽공기를 가르며 차를 몰았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외로움과 고독함이 산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두타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에 도착하여 올라가는 길은 골짜기를 택했다. 마을에는 벌써 희붐하게 밝았지만 골짜기 산길은 아직도 캄캄하다. 어둑어둑한 오솔길로 접어드니 길 옆에는 소나무 외에 모두 흑백인데, 가끔씩 나타나는 진한 색깔의 잎사귀가 자꾸만 신경을 건드렸다. 어둠속에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이 녀석들은 분명 인동초(忍冬草)일 거라고 넘겨짚었다.
마침내 산 정상 가까이 올라가니 새해 아침은 훨씬 밝아지고, 멀리 바라보는 시내의 불빛이 모두 사라질 즈음, 등산길 초입에서 만났던 초록색 잎사귀의 넝쿨들이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흩어져 있었다.
인동초라고 생각했던 그 넝쿨을 자세히 보니 으름덩굴이었다. 올 겨울 들어 벌써 몇 차례나 추위가 몰아쳤음에도 잎사귀는 생기를 잃지 않고 온전하게 제 빛깔을 넝쿨에 달고 있었다. 어떤 잎사귀는 원래모습 그대로, 또 어떤 잎은 비록 얼긴 하였으나 죽지 않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으름 덩굴에서 겨울을 견디는 힘은 인동초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 어릴 적 먹을 것이 귀하던 때, 봄이면 깊은 산에서 고사리며 참나물이며 취나물을 뜯는 것은 아낙네들의 몫이었고, 가을이면 머루, 다래, 돌배같은 산 열매를 따는 것은 남정네들의 몫이었다.
머루나 다래는 꽤 높은 산골짜기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지만, 으름은 동네 가까운 뒷산 골짜기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한여름을 지나 벌초할 때쯤이면 아직 덜 익었고, 추석을 지나 성묘할 때가되면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어릴 때는 귀한 먹을 거리였기에 좀 덜 익은 것도 채취하여 보리쌀 단지에 묻어 두었다가 숙성되면 먹기도 했다. 그래서 으름덩굴은 나의 유년을 함께했던 친한 나무 중의 하나다.
지난봄에 으름덩굴에서 복주머니 모양의 자주색 꽃을 만난 적이 있다. 처음 본 순간 ‘아~ 으름꽃이 이렇게 생겼구나!’ 라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자주색 비로드로 만든 작은 복주머니라고나 할까? 귀엽고 앙증스런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지난 추석 무렵에는 뒷산 골짜기에서 으름열매를 다시 만났다. 유년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열매에 욕심을 내는 사람도 없어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먹음직스럽게 잘 벌어진 열매를 한 개 따서 먹어보았다. 어릴 때는 그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지금은 씨를 골라내는 것 자체가 여간 힘이 들지 않는다.
 
‘으름’이란 이름을 얻게 된 연유도 처음 알았다. 열매를 먹다가 씨앗을 씹으면 그 느낌이 얼음 같기도 하고 과육이 투명한 얼음 빛깔을 띤다고 하여 ‘으름’이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으름의 또 다른 이름을 또 알았다. 혹한의 추위에도 견디는 힘이 놀라워 자세히 알아보니 임하부인(林下夫人)이라고도 한단다. 식물에는 원래 이름 외에도 수많은 별명이 있는 것을 보았지만, 으름덩굴에 대한 생각을 종합할 때 ‘임하부인’이라는 것이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까 하고 속으로 놀랐다.
숲속의 여인이라고 해석하면 될까? 잘 익은 열매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부인(夫人)이라는 귀한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멋진 이름을 생각하니 으름덩굴의 신분은 정경부인 못지않게 한 층 더 격이 높아진다.
 
그러나 임하부인의 원래 뜻은 열매 모양이 여인의 음부를 닮아서 얻어진 별명이라고 한다. 잘 익어 벌어진 열매의 모습이 여인의 깊은 속살, 그 은밀한 곳을 상상하며 지어 낸 짓궂은 이름이라는데 엉큼하거나 외설스럽지 않은 익살로 오히려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가하면 지난 봄에 만났던 으름꽃을 연상도 부인 격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꽃의 색깔과 모양에서 고귀한 부인이 지니던 자주색 비로드의 복주머니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자주색 비로드는 내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릴 적 희미한 기억으로 비로드 옷감이 한 때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 비로드로 한복을 만들어 입으시고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연상되기에 어머니의 꽃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이제부터 산행에서 으름을 만날 때는 임하부인으로 만나야겠다. 청명한 날 그 여인의 느낌 그대로 아름다운 임하부인과 잠시 연분홍 사랑을 나눌 수도 있고, 아니면 곱게 단장하신 어머니와 동행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오늘도 비록 홀로 간 산행이었으나 임하부인을 만났으니 어찌 외롭다고만 할 수 있었을까? 산행할 때의 정취와 감미로움이 한 가지 더 생겼으니 이후 산행의 즐거움이 벌써 전해오는 것 같다. 특히나 임하부인은 겨울에도 생기가 넘치니 사계절 홀로 가는 산행도 이젠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목록
배풍등
목록

 
배풍등
                박재명
 
  가을의 향연은 붉음의 향연이기도 하다.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대강 노랗게 변하다가 붉음으로 대미를 장식하여 그들의 한 해 여정을 마감한다. 생명을 다하기 직전은 노을빛처럼 정열적이다. 그 붉음의 취하다보면 어느새 잎사귀는 모두 땅으로 내려앉고, 긴 겨울의 여정을 시작한다. 12월의 초, 도심속 공원은 벌써 겨울의 고독이 시작되었다. 옆지기 나무끼리 부대끼던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앙상한 나무들이 외롭다.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듯 의지하지 않고 제각각의 고독한 사연을 홀로 삭이는가 싶다. 그래서 겨울 공원은 찾는 이들의 마음을 공허롭게 만든다.
 
  겨울비 내리던 날, 공원 한 귀퉁이에서 뜻하지 않게 붉은 열매의 배풍등을 만났다. 올 여름동안 이곳에서 내내 자랐을 텐데 공원의 푸르름에 동화되어 그곳에 있는 줄도 몰랐었다. 그 여름 동안 주목나무에 의지하여 키를 키웠나 보았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잎사귀를 떨구었는데, 배풍등은 줄기도 잎도 아직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붉고 영롱한 열매가 나도 가을 단풍이라고 말하고 있다.  붉음이 없었다면 아마 아직 그의 존재를 아직도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으리라.
 
  배풍등이란 이름을 중얼거릴 때 마다 알 수 없는 정감으로 다가왔는데, 오늘 열매를 직접 대면하고보니 다정다감이 더욱 깊어진다. 처음 만난 것은 수해 전, 한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의 등산길에서 꽃으로 만났었다. 꽃 피기 전의 꽃망울은 하얀 계란처럼 부풀어 올린 모습이 앙증스럽다. 그러나 꽃을 활짝 피우면 꽃잎을 모두 뒷쪽으로 제쳐진다. 암술의 보호를 외면한 암술만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가는 바람에도 꺽어질 듯 위태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모성애를 자극한다. 그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꽃잎이 진 자리에는 초록색의 열매를 송이송이 맺는다. 이 때부터는 한여름의 녹음綠陰에 묻혀 쉬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 잠시 기억에서 잠시 사라진다.
 
  오늘 배풍등의 화려한 변신을 만났다. 낙엽이 진 쓸쓸한 공원의 모퉁이에서 빗물을 머금은 채 영롱한 붉은 열매로 빛났다. 투박하고 딱딱한 다른 열매들의 느낌과 달리 말랑말랑한 윤기가 넘쳐 흐른다. 겨울이 문턱인데도 아직까지 탱탱한 촉감을 느낄 수 있어 묘한 감정을 전해 준다. 한 여름 동안 푸르등등했던 열매가 언제 이토록 멋진 보석으로 변신하였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눈으로 바라보는 배풍등의 열매는 색깔만 다를 뿐 진주처럼 은은한 깊이가 있다. 보일 듯 말 듯한 껍질 속으로 하얀 씨앗까지 들여다보이니 여리디 여린 여성을 대하는 듯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인의 귓불에 달아주고 영원히 지켜주고 싶은 나만의 보석이 된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붉음에 취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해보다 배풍등의 대한 의미를 찾아 나섰다.
 
  누가 보아도 풀인 것 같은데 반관목(半灌木)이라고 하니 생각을 혼란스럽게 한다. 반관목은 무엇일까?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라는 뜻일까? 두루두루 알아보아도 생소한 낱말을 이해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리고 어떻게 배풍등이란 이름을 어떻게 얻었을까?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시키니 혹시 꽃말에 '배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생긴다. 그러나 한자로 풀어 보니 ‘밀칠 배(排)’, ‘바람 풍(風)’, ‘등나무 등(藤)’이라고 한다. 이 세자를 어떻게 조합하면 제대로 된 해석이 될까. 알아 본 바로, 열매는 탐스럽고 아름답지만 먹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풍을 물리치는(排風) 약재로 사용되고, 등나무처럼 덩쿨로 자란다 하여 배풍등(排風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가을의 열매인 산수유, 찔레, 구기자도 제각각 가을의 붉음을 자랑하지만 유독 배풍등에 특별한 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다른 별명으로 만추(晩秋)니, 설홍(雪紅)이라고도 한다니, 낙엽지고 갈변한 늦가을의 풀숲에서 혹은 눈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내는 붉은 보석의 영롱함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굳이 열매를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입안에서 맴도는 이름자체로 묘한 끌림이 있다.
 
붉은 것이 모자라
이슬까지 품고
영롱한 보석이 되었다.
 
낙엽 진 허허로운 곳
홀로 붉은 빛 탐스러워
겨울이 되어도 가을은 서럽다.
 
  배풍등의 붉음의 끝은 어디일까? 이후의 과정을 자세히 본 적이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새삼 궁금증이 동한다. 한 겨울 설홍의 아름다움도 영원함은 아닐 것이 자명하니, 새 봄까지 삶의 여정을 위해 변신하는 모습이 보고 궁금하다. 붉음으로 유혹하여 숲속 생물에게 잠시 양식이 되었다가 또 한 해를 머물 곳을 찾아가겠지. 깊은 산속이 될까 아니면 내 이웃 담장 아래일까?  이 겨울을 인내하는 과정부터 새 생명이 움트는 봄까지 배풍등의 겨울 여정을 찾아 보고 싶다. 올 겨울에는 공원을 지나칠 때마다 들러서 배풍등의 안부를 살펴보아야겠다.

 
 

목록
보洑
목록

보洑
박재명
청원에서 상주까지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열리는 바람에 고향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 평지길을 돋우어서 낸 길과 달리 이 길은 산을 깍고, 뚫고, 다리를 놓아서 연결되는 산길이다.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차를 타고 산 중턱길을 달린다는 것이 즐겁다. 그러나 중간 중간 산위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능선을 수직절벽으로 뚝 자른 곳을 지날 때는 마음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큰 산의 기운이 단절되어 행여 나쁘게 흐르지는 않을지, 이산에서 저산으로 넘나들던 동물의 길이 막히지 않았을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차라리 터널을 뚫었으면 좋았을걸 어찌 저리 모질게 잘라버렸을까?
사람에게 편리함을 얻기 위한 이기심 뒤에는 이렇듯 자연의 희생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좀 더 불편하게 살고, 자연은 상처를 덜 받으며 개발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은 나만의 고민일까?
 
먼 길을 달린 고속도로를 내려 일반도로로 가는 길에 큰 강을 건너게 된다. 물길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길게 이어지고, 양 옆으로 흰 모래밭과 가장자리의 갈대밭을 보면 어릴 적 부르던 동요 속에 상상되던 풍경과 딱 맞아 떨어진다.
사람들은 강변을 중심으로 물을 얻어 삶의 터전을 이루고 풍요로운 마을을 이룬다. 넘치는 자연의 혜택이 많으니 인심도 덩달아 좋아져 살기 좋은 농촌은 정말 물에서부터 시작되지 않겠나 싶다.
강을 길게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면 이 좋은 풍광을 보면서 잠시 쉬어가라는 듯 언덕위에 관수루觀水樓이라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한 번 쯤 쉬었으면 하던 곳이었는데, 고향 가는 마음이 바빠서 늘 지나치던 곳이다. 오늘은 그런 마음 내려놓고 정자에 잠시 올라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수루에 올라보니 언제부턴가 시작되었던 거대한 보洑를 만드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바로 낙단보였다.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수십 길이 되는 높이의 기둥과 물막이 공사는 마무리 되었고 물도 어느 정도 가두어졌다.
보 위에는 고여 있는 수면은 훨씬 넓어져 모래사장을 잠식하고, 물길의 끝도 더 멀리 내다 보였다. 그리고 아래로는 원래의 강바닥보다 훨씬 깊어진채, 수문에서 물을 힘차게 쏟아내고 있었다.
저 수문의 육중한 무게로 물길을 완전히 막으면 생길 강이 아닌 거대한 호수를 상상해 본다. 보의 위 아래를 자유롭게 유영하던 물고기는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못할 텐데, 물고기의 이산離散은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수심이 깊어진 물고기는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 것인지, 모래 속에 살던 생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들의 엇갈린 운명을 공연히 상상해 본다.
관수루觀水樓라! 물길을 바라보기 위해 세워진 정자인 듯한데, 세운 이들은 어떤 모습을 상상하면서 누각을 지었을까? 이렇게 변할 줄은 짐작이나 했을까? 지금껏 보아오던 규모와 영 다른 거대한 보를 바라보니 내가 어릴 적 처음 접했던 보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내 고향은 위천渭川의 가장 상류에 위치한 곳이다. 여름 장마 한 철에만 큰물을 일구곤 두어 달도 되지 않아 이내 하천 바닥을 드러내던 곳이었다. 깊은 산골이었음에도 동네 앞을 흐르던 하천은 건너편 앞산까지 폭이 꽤 넓었다. 물길이 구불구불 흐르면서 어느 곳은 웅덩이가 패이고, 어떤 곳에서는 실개천처럼 좁아지다가 또 어떤 곳은 넓게 퍼지면서 자유롭게 흘렀다.
산기슭 밑으로 흐르다 바위에 부딪혀 깊게 패인 소沼에는 아이들이 여름 한 철 동안 멱을 감고 낚시도 하였으며, 겨울이면 넓은 하늘이 열려 연 날리던 곳이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 태동하던 즈음에 강의 모양은 많이 변하고 있었다. 육중한 불도저가 강바닥의 돌을 양쪽을 밀어내더니 제방을 만들었고, 제방 밖에는 농경지가 저절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큰물이 내려가면 제방이 무너지고 새로 복구하길 반복하는 동안 제방은 돌망태로 점점 더 견고하게 쌓았다. 물굽이가 뚜렷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물길은 반듯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곳곳에 만들어졌던 소沼는 없어지고, 강바닥에 물이 흐르던 시간은 점점 짧아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하천에 큰 공사가 시작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부역으로 동원되어 강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동네에 발전기까지 갖추고 밤낮을 공사를 하였다. 강바닥을 깊이 팔수록 사람들은 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작업하고, 양수기도 땅속의 물을 밤낮으로 퍼 올렸다.
처음엔 무슨 공사였는지 몰랐지만 어른들의 말을 들으니 보를 막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하천 바닥인 암반까지 땅을 판 다음 지표면까지 시멘트 공사를 해서 둑을 만든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땅속에 저수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되면 땅속에 흐르던 지하수가 갇혀서 가뭄에도 쉬 마르지 않고 물을 오래 쓸 수 있는 공사였다.
마침내 공사는 완성되었다. 정말 보 위에는 물이 잘 마르지 않았다. 넘치는 물을 하천 옆으로 물꼬를 트니 하천부지의 자갈밭은 어느새 논으로 바뀌어 갔다. 해마다 물이 모자라던 가뭄철에도 강바닥을 조금만 파도 물이 솟았고, 지하수를 끌어 식수로도 썼으니 사람들은 여러 모로 물 걱정을 크게 덜게 되었다. 수십 년 전에 만들었던 보에는 지금도 물이 마르지 않고 쏟아 내고 있다. 예전보다 비가 자주 온 탓도 있겠지만 보가 가져다 준 물의 혜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관수루에서 낙단보를 바라본다. 보의 규모가 나를 압도하여 아름다운 강변 풍경을 흐렸다. 내가 보아왔던 보의 물 가두는 방식과 틀린 모습도 보에 대한 생각을 낯설게 했다. 지하수가 아닌 흐르는 강물을 가두기 위한 거대한 공작물을 보면서 이것이 보일까? 아니면 저수지 혹은 댐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보에 갇힌 거대한 물줄기가 더 선명하고 길게 보이며 하류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 이 보를 중심으로 위 아래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 올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사람이 좀 더 불편한 대신 자연에게 상처를 조금만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런 거대한 보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과 자연이 입게 될 상처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하는 공연한 걱정을 또 해 본다.
한편으로 이산가족처럼 헤어진 물고기의 운명이 남과 북을 갈라놓은 휴전선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이 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보를 중심으로 위 아래가 서로 소통이 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니 이것이 가장 큰 걱정이 아닐까 싶다. 낙단보 아래 수문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살이 하얀 앞 이빨처럼 드러내며 웃고 있다. 그 웃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는 정녕 무엇일까?
 

목록
상당공원
목록

상당공원 비둘기도
시위를 한다
똥을 갈기면서
 
그들이 살던 집
강제로 철거 당한
서러움 때문일까?
 

목록
돔배기
목록

 

돔배기 / 박재명


돔배기라고 있다. 경북의 내륙지방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듣기에 생소할 것 같다. 바다에서 잡은 상어를 큼직하게 토막 내었다는 뜻의 방언으로 돔배기라고 하는데 제수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고기다.

올해도 설 차례 상에 올리기 위해 미리 장만한 돔배기를 잘 다듬어 산적으로 꼬치에 꿴 다음 숯불에 정성스럽게 구워 올렸다. 생각해 보면 제사상의 가장 가운데를 차지하는 것은 항상 돔배기 산적이었다. 아마도 제수음식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래서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치는 음식들은 모두 아낙네들의 몫이었지만, 돔배기 산적만큼은 항상 남자들이 장만했다.

내 기억속의 돔배기는 지독히도 먹기 싫어했던 고기였다. 그리고 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제사집이나 상가(喪家)에서는 반드시 볼 수 있는 바다고기였다. 그것이 바다고기라는 것을 안 것은 나중이었고, 거기에다 상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제수용 산적은 고기를 일정한 두께의 사각으로 포를 떠서 꼬치에 꿰고 굽기만 하면 된다. 만약 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만난다면 얇게 썰어서 프라이팬에 두루치기해서 먹어도 맛있다.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신선하고 담백한 맛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돔배기 껍질은 손으로 만지면 가는 유리가루를 뿌려둔 듯 매우 거칠거칠하다. 거칠다고 자칫 버리기 쉽지만, 끓는 물에 튀겨낸 다음 칼로 잘 긁어내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잘 손질된 껍질을 다시 끓는 물에 살짝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쫄깃쫄깃한 식감의 또 다른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살코기는 구워먹고, 껍데기는 데쳐먹고, 그래도 남는다면 뼈와 함께 두부와 무를 깍뚝 썰어 냄비에 담고 물을 넉넉히 붓는다. 그리고 적당히 소금 간하여 끓여 내면 훌륭한 탕이 되어 돌아온다. 어릴 때 이 탕국은 구운 것보다 더욱 못 먹을 음식이었다. 이러든 저러든 돔배기는 어린 내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음식에 불과했다.

그런데 요즘 이 고기에 입맛이 들었다. 이를테면 어릴 적에 싫어하던 된장국, 칼국수 따위의 음식이 지금은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싫어했던 돔배기가 이제는 숯불에 구워낸 산적뿐만 아니라, 맑은 탕국을 먹으면 국물이 식도(食道)를 시원하게 타고 내려가면서 속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코를 찡그리게 만들던 특유의 냄새는 오히려 이 음식만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이 되었다. 거기에다 막걸리 술 한 잔과 함께 한다면 더욱 깊은 맛으로 어우러져 절로 감탄하고 만다.

그동안 돔배기는 왜 제사상에서만 만날 수 있었을까? 늦은 궁금증으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동양에서 돔배기는 주술적인 의미의 혼백(魂魄)을 부르는 음식으로 양반가의 제수용으로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내로라하는 양반들이 많았던 안동지방이 그 소비의 중심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혼백과 관계있다함은 한의학에서 이유를 찾았다. 한의학에서는 상어를 교어(鮫魚)라 하고 해서 오장(五臟)을 보(補)하는 효능이 있고, 그중에도 간과 폐를 돕는 작용이 탁월하다고 한다. 자고로 간은 혼(魂)이 저장되는 장기이며, 폐는 백(魄)이 머무는 곳간이라고 하니 음식에 담긴 의미가 자못 신기할 따름이고, 제례 음식에서 그처럼 중시된 이유를 금방 알만하다.

이제 제삿날이 되면 돔배기 준비는 아버지에서 내게로 전해져 내 손으로 산적을 만들어 낸다. 느지막이 이 음식을 대하면 어릴 적 추억과 내 유년의 풍경이 들여다보인다. 먹기 싫어 몰래 버리거나 가장 나중에 먹었던 나의 천덕꾸러기 음식. 하지만 상가에 다녀오시면 항상 나를 불러 신문지에 쌓인 음복음식을 주시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있었다. 정성스레 제사상을 준비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도 보이고, 탕국을 끓여 내시던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도 보인다. 제사가 끝나 어른들이 음복할 때면 가장 먼저 돔배기 맛을 평가하였고, 내게는 고역이던 탕국이 참 시원하다고 감탄하시던 예찬의 뜻을 이제야 알만하다.

 

돔배기가 멋지게 변신하는 낌새가 보인다. 목포 홍어가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처럼 돔배기도 부활의 날개를 펄럭이는 것 같다. 내 기억속에서도 5일장을 돌면서 돔배기를 팔던 보따리 상인은 영천 장(場)에서 구해 오는 걸로 알고 있었다. 영천시가 일찌감치 향토음식으로 선정하여 상표등록하고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냥 무심히 넘겨버릴 음식이 그 지역의 효자가 된 듯이 보인다.

하지만 돔배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주변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려야 한다. 내 추억의 정서로 볼 때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 보다 70년대식 허름한 시골풍경이 잘 어울린다. 초가 주막집같이 조금은 정갈하지 못하더라도 용서가 되는, 약간 빈틈이 있는 집이 좋을 것 같다. 비슷한 모양의 참치와 닮았지만, 일식집에 참치를 먹듯 지나치게 격식을 따지거나 깔끔함을 내세우지 않는다. 등겨가루가 묻은 투박한 사과가 먹음직스럽듯 돔배기는 좀 수더분해야 서민들의 인심이 함께 묻어 날 것 같은 그런 음식이다.

그 옛날 어른들의 식성을 많이 닮아 감으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정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고방식도 생활습관도 그리고 맛을 느끼는 방법도 많이 변했다. 돔배기를 통해 부쩍 변한 식성을 알아차리곤 문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진다. 콩가루를 입혀서 끓여 낸 냉이국도, 토란줄기 파로 끓여내던 민물고기 추어탕도 이젠 더 이상 예전의 맛을 볼 수 없다. 비슷하고 닮은 음식은 많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채워주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예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엄마에게 먹을 것 달라고 보채는 철없는 자식이 되어 돌아가신 어머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다니, 역시나 자식은 부모에게 끝없는 희생만 바라는 애물에 불과하나 보다. 그래도 이 순간 가슴 찡하도록 어머니가 보고 싶다. 돔배기 한 점이 있으면 이를 통해서 어머니의 혼백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