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인주의자의 인생과 철학을 조명하는 《쇼펜하우어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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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메타자연학(metaphysics)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인디아의 베단타 철학 및 불교사상과 종합하여 독창적인 의지철학으로 발전시킨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쇼펜하워)는 리하르트 바그너, 에두아르트 하르트만, 프리드리히 니체, 레프 톨스토이,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유럽의 쟁쟁한 지성인들에게 의미심장한 영향을 끼친 “철학계의 위대한 반항아”였다. 그런 쇼펜하우어의 일생과 전기적 사실들을 주목한 헬런 짐먼Helen Zimmern(1846~1934)의 《쇼펜하우어 평전: 염인주의자의 인생과 철학》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고 그의 인생여로에 남겨진 의지철학의 흔적들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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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출생과 성장, 제2장 학생시절, 제3장 발전하는 정신, 제4장 드레스덴 생활, 제5장 쇼펜하우어의 대표저서 《세계는 의지이고 표상이다》, 제6장 이탈리아 여행, 제7장 불만스러운 시절, 제8장 프랑크푸르트 생활, 제9장 쇼펜하우어를 비추기 시작한 명성의 서광, 제10장 쇼펜하우어의 윤리학과 미학, 제11장 쇼펜하우어의 명성과 죽음”으로 구성된 이 평전은 1876년에 출판되자 바그너와 니체의 주목을 받았다.
이 평전을 집필한 헬런 짐먼은 독일계 브리튼의 작가이자 번역가이며 여성참정권 운동가로서 유명하다. 그녀는 1846년 3월 25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850년 부모와 함께 브리튼 노팅엄으로 이사했고 이듬해에 브리튼인으로 귀화했다. 뛰어난 언어감각을 타고난 그녀는 1860년대 말엽부터 브리튼의 주간문예지 《원스 어 위크Once a Week》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1869~1873년에는 《보석 이야기Stories in Precious Stones》를 포함한 여러 아동도서를 출판했다. 1873년부터 특히 독일문학을 주로 다룬 문학비평들을 브리튼의 주간문예지 《익재머너Examiner》에 발표하기 시작한 헬런은 《프레이저스 매거진Fraser's Magazine》, 《블랙우스 매거진Blackwood's Magazine》, 《아테네움Athenaeum》, 《스펙테이터Spectator》, 《월드 오브 아트World of Art》 같은 잡지들, 이탈리아의 신문《라세냐 세티마날레Rassegna Settimanale》, 독일의 여러 일간지에도 유럽의 문학과 예술에 관한 글들을 다수 기고했다. 평전작가 겸 전기작가로서도 탁월한 필력을 발휘한 그녀는 《쇼펜하우어 평전》(1876)을 위시하여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1878)과 《마리아 에지워스Maria Edgeworth》(1883) 같은 평전들을 집필했다.
그녀는 1880년대 중반에 스위스에서 만난 독일의 철학자 니체와 친구가 되었고 니체의 저서들인 《선악을 넘어서》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최초로 영역(1909년)하는 발군의 번역능력도 발휘했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후반기에 이탈리아를 자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인들의 이탈리아The Italy of the Italians》(1906), 《현대 이탈리아의 지도자들Italian leaders of today》(1915), 《새로운 이탈리아The New Italy》(1918) 같은 저서들을 집필했고, 브리튼과 독일에서는 이탈리아 예술을 강의하면서 이탈리아의 극작품, 소설, 역사서를 영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1920년대 중반부터 이탈리아 피렌체에 정착하여 말년을 보내던 그녀는 1934년 1월 11일 별세했다.
브리튼의 작가 프랜시스 윌리엄 베인Francis William Bain은 “헬런 짐먼의 《쇼펜하우어 평전》은 … 쇼펜하우어의 향기를 선연하게 포착하여 표현하므로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스위스 베른Bern 대학교의 철학교수 데일 자케트Dale Jacquette는 《쇼펜하우어 평전》은 “가장 신뢰받는 권위를 갖춘 쇼펜하우어 평전들 중 하나”로 평가했다.
《컨티뉴엄 브리튼 철학백과사전The Continuum Encyclopedia of British Philosophy》에서는 《쇼펜하우어 평전》이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이 책은 헬런 짐먼의 가장 중요한 저서이자 영어로 집필된 최초의 쇼펜하우어 평전이다. 19세기말엽 브리튼의 여성교양인들이 쇼펜하우어 철학에 공감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이 책에서 헬런 짐먼은 쇼펜하우어의 전기적 사실들을 주목함으로써 ‘쇼펜하우어 철학의 주요한 면면들이 생성된 경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 헬런 짐먼은 위대한 철학자의 때로는 친절하고 명랑하면서도 확실히 진지한 면면들을 생생하게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상투적으로 해설하지 않는 헬런 짐먼은 쇼펜하우어의 윤리학을 그의 예술철학보다 더 중요시하면서 나름대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비판은 오히려 ‘쇼펜하우어 철학의 근본적 의미는 본질적으로 미학적인 것이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해석자들과 독자들을 유도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19세기말엽 유럽 문화의 몇몇 측면과 완벽하게 화합하는 이런 미학적 의미는 쇼펜하우어 철학을 비전문가들에게나 문학적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시켜주는 효과를 대단히 강력하게 발휘했다.”
그리고 미국의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n이 전하듯이, 니체는 헬런 짐먼을 “쇼펜하우어를 잉글랜드인들에게 소개한 … 지극히 총명한” 여인으로 호평했다. … 니체의 여러 저서를 영역한 스코틀랜드의 번역가 겸 평론가 토머스 커먼Thomas Common이 전하듯이 “니체는 헬런 짐먼의 중요한 저서 《쇼펜하우어 평전》을 읽고 그녀를 주목했으며 개인적으로도 그녀와 교분을 나누었다. 니체는 자신의 저서(《선악을 넘어서》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를 영역(英譯)할 번역자로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고 편지에 썼다.”
《옥스퍼드 인명사전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에 소개된 대로라면, 헬런 짐먼은 일찍이 니체를 감동시켰던 명랑성과 지성을 끝까지 유지했다. 그녀는 여든 살일 때에도, 오스카 레비Oscar Levy(영어판 니체 전집을 최초로 펴낸 독일계 브리튼의 의사 겸 학자)가 말했듯이, “풋풋한 청춘의 미소”와 “지성의 광채를 내뿜는 해맑은” 표정을 간직했다.
《쇼펜하우어 평전》에서 헬런 짐먼의 이런 총명한 지성은 쇼펜하워는 염세주의가 아닌 염인주의자였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이 평전의 번역자 후기에 곁들여진 다음과 같은 간략한 부연설명은 이런 사실을 재확인해준다.

러시아의 작가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1828~1910)는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를 탈고하기 직전인 1869년 여름에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탐독했고 8월 30일에 자신의 친구이던 러시아 시인 아파나시 페트Afanasy Fet(=셰쉰Shenshin: 1820~1892)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번 여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당신은 아시겠습니까? 나는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끝없는 황홀경을, 일찍이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정신적 희열감들을 연달아 만끽했습니다. 나는 그의 저서들을 (칸트의 저서들처럼) 모조리 구입해서 읽었고 아직도 읽습니다. 그의 강의를 수강한 여느 학생도 내가 이번 여름에 배우고 발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지도 발견하지도 못했으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앞으로 나의 견해가 언제 바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가 확신하기로는, 쇼펜하우어야말로 인간들 중에 가장 위대한 천재입니다. 언젠가 당신은 쇼펜하우어가 철학적 주제들을 다룬 뭔가를 썼다고 말했지요. 당신이 말한 ‘뭔가’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경이롭도록 생생하고 아름답게 성찰되는 온전한 세계입니다. 나는 벌써부터 그의 저서를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도 번역작업을 함께하고프지 않습니까? 우리는 번역서를 함께 출간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의 저서들을 읽은 나는 그의 이름이 어째서 아직도 전혀 알려지지 않을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그가 그토록 자주 토로했듯이, 세계에는 백치가 아닌 인간이 거의 없다는 것뿐이겠지요.…”
이런 톨스토이의 편지는 쇼펜하우어가 ‘비관주의자’라는 호칭을 처음에는 심하게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받아들인 사연을 암시한다. 왜냐면 쇼펜하우어가 염오(厭惡)한 것은 세계자체가 아니라 맹목적 자연의지나 무분별한 삶의지와 그런 의지에 얽매이고 휘둘려 진실과 진리를 도외시하고 기만하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페하워의 비관주의는 ‘염세주의’와 동의어일 수 없다. 왜냐면 염세주의는 인간들뿐 아니라 세계자체마저 염오하는 심리적 습관이나 성향이기 때문이다. 만약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자였다면, 그러니까, 세계자체마저 염오했다면,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여 진지하게 살면서 진리를 정직하게 탐구하는 철학에 매진하기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일찌감치 저버렸을(죽거나 아니면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은둔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으리라. 그가 문제시한 것은 세계자체가 아니라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의지, 그런 의지에 사로잡힌 인간들, 그런 인간들의 의지가 재현(=표상)하는 인간세계였다.
쇼펜하우어가 비록 니르바나(열반, 해탈)를 꿈꾸었더라도, 그것은 그가 죽어서 가야 할 저승이나 천국 같은 것이 아니라 세계에 살아가면서 진리의지로써 탐색하고 추구했으되 도저히 실현할 수 없었던 ‘비관적 이상(理想)’ 같은 것이었다. 요컨대, 쇼펜하우어를 괴롭힌 것은 세계가 아니라 세계를 참담하게 만드는 불합리하고 불길한 맹목적 의지, 자신들을 얽매어 휘두르는 그런 의지를 무분별하게 재현하는 인간들, 그들의 그런 의지로써 재현되는 인간세계였다. 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염세(厭世)가 아닌 염인(厭人)이었고, 그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염인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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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와 정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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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김해경), 서정주, 박목월, 김종삼, 김수영, 최승자의 시를 통해 인간과 정념의 문제를 진하게 통찰하는 문학평론가 엄경희의 신작 『현대시와 정념』. 이 책은 정념이 의지나 이성과 대립하지 않는다고 봤던 데이비드 흄을 위시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바흐친, 베르그송, 에릭 프롬, 앤서니 기든스 같은 서양철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규명하여 정리하고, 그 결과를 다시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정념의 문제로 수렴해서 분석한다.
특히 분석에 앞서 '감정'과 관련 용어들을 '정념Passion', '파토스Pathos', '정동(情動)Affect', '감정(정서情緖)Emotion', '감정(느낌)Feeling'으로 분류하고 구분하여 그것들의 사전적 어원을 밝히는 이 책은 정념이라는 개념이 지닌 의미의 진폭을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도구를 제시한다.
어떤 감정은 일생을 풍요롭게 하지만 또 어떤 감정은 일생을 파멸로 몰아가기도 한다. 누구나 타고나는 너무나 인간적인 이 자질은 즐거움의 근원인가 아니면 넘어서야 할 장애인가?

1. 왜 정념인가?
정념(情念)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는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이라고 설명된다. 이런 사전적 설명도 감정의 실체를 확연하게 드러내기에는 부족하다. ‘감정’이 지칭하는 바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그것을 직간접으로 표출한다. 감정에서 촉발된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으로서 정념은 이성의 제어를 받아야 한다고 보편적으로 인식된다. 이성적 존재가 인간이라면, 자신의 행동(정념의 분출)을 이성으로써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 합리주의철학의 금과옥조이다. 그래서 합리주의철학은 감정과 이성의 불필요한(비생산적인) 대립과 싸움을 유발하여 인생의 풍요로운 시간을 이성의 황량한 들판으로 내몰아간다.
‘이성’만이 절대적이라는 합리주의 철학의 ‘거만함’에 대해, 정념이란 이성과 상충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논증을 통해 정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 철학자가 바로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다. 흄은 정념과 이성의 논박이란 엄밀하지도 않고 철학적이지도 않다는 진단을 바탕으로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고 또 노예일 뿐이어야 하며, 정념에게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외에 어떤 직무도 탐낼 수 없다.”(『인간본성론2-정념』)는 (다소 격해 보이는) 주장을 내새운다. 이성이 정념의 노예라는, (본인 스스로도 밝힌 바처럼) 다소 “의외로 여겨질 수 있는” 그의 주장은 “정념이 거짓 가정에 기초를 두거나 또는 의도적 목적에 불충분한 수단을 선택했을 때가 아니라면, 어떤 의미에서든 정념을 결코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성과 정념은 결코 상반될 수 없으며 의미와 행동을 지배하기 위해 싸울 수도 없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정념을 이성의 테두리에 가둬 억압하려는 것은 이성이 모든 생각과 행동의 원천이라는 위험한(?) 독단으로 귀결될 수 있다. 정념이란 의지를 훼손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의지의 유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흄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정념에 주목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이천 년대 이후 시의 서정성이 급격히 축소되는 현상은 시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풍요로운 감정은 다양한 관계로부터 생겨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관계의 매개가, 우리들의 관계가 축소되고 있음을 뜻한다. 적어도 내게 이러한 현상은 쓸쓸한 일이다. 아주 먼 미래에 정념론은 이미 낡은 인간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직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 믿고 싶다.”라고 강조한다. 정념의 축소는 인간의 왜소화를 야기한다. 저자가 『현대시와 정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바는 현대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 전반에 대한 점검일 것이다.

2. 감정은 진정 해소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사랑은 무엇이며, 억제할 수 없는 슬픔과 기쁨·분노·우울·공포·연민·외로움·질투심·시기심·존경심은 어디로부터 생겨나는가? 그리고 이 다양한 감정들은 왜 나 자신의 의지나 지성 능력과 상관없는 행동을 낳는 힘으로 작용하는가? ‘앎’이 도움이 되지 않는 당혹스러운 내면의 사태 앞에서 의지와 이성은 왜 패배를 선언하는가? 그런데 감정은 진정 해소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제기를 토대로 해서 『현대시와 정념』은 이상의 육친(肉親) 시편과 수필에 내포된 ‘연민’의 복합적 성격과 소외의 양상, 서정주 시에 나타난 성애(性愛)의 희극적 형상화 방식과 시적 의도, 박목월의 생활시편에 담긴 ‘긍지’와 ‘소심’으로서 정념, 김수영 시에 내포된 자발적 소외와 ‘설움’의 정념, 최승자 시에 내포된 열정적 사랑의 역설과 존재의 비극성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저자가 『현대시와 정념』에서 다루는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은 예술과 인간이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를 일상의 다양한 정념의 양태를 통해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움을 준다. 저자는 분노와 억울함, 슬픔, 죄의식 등과 같은 정념의 다발 속에서 세계에 대한 연민으로 괴로워했던 천재 시인 이상, 도덕적 절제의 위선을 벗어던진 본능적 방출을 통해 경직된 삶을 이완시킨 서정주 시인, 가난한 생활 현실을 긍지와 소신의 정념으로 돌파했던 박목월 시인, 생활에 좌우되지 않는 자기만의 소외 위치를 만들어 '서러운 긍지'를 내면화한 김수영 시인, 세계로부터 추방당하고 소외된 자로서의 수치를 아름다움을 통해 도덕 감정으로 승화시킨 김종삼 시인, 생산과 소비로 점철되는 자본주의적 삶의 논리와 자기파멸로 향하는 최승자 시인의 열정적 사랑이란 개인의 특수한 정념이라기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니 삶을 영위해가야만 하는 인간의 고유한 보편의 정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3.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정념
정념의 문제는 자연과학의 연구처럼 논리와 논증으로 엄밀하게 해명될 수 없다. 그렇다고 완전하게 비과학적인 영역의 문제는 아니다. 이래서 정념연구가 어렵다고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시의 연구 영역에서 정념은 주로 ‘서정’이라는 말로 막연하게 서술되거나, 아니면 정념이 시의 행간에 너무도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미흡하게 처리된 면이 없지 않다. 아울러 외로움과 부끄러움·분노감·사랑 등을 언급한 경우는 무수히 많지만 그것의 실체를 끝까지 추적해보고자 했던 논의 또한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개별 시인의 시에 내재된 정념을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의 정념은 유일한 것이고 그것을 다른 말로 대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념의 실체에 육박할 수 있는 설명의 틀을 만들어보려 했던 것이 여기에 실린 몇몇 글인데, 고백하자면 이 글들은 의도만큼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다. 정념에 관한 철학적 논의들을 읽어가면서 그것의 실체를 밝힌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어낼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정념을 규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상의 정념을 완벽하게 해석하는 일 또한 가능하지 않다는 게 솔직한 결론이다. 따라서 각각의 글에 내린 결론은 완결된 결론이라기보다 유보적 맺음말이라 할 수 있다. (중략) 아주 먼 미래에 정념론은 이미 낡은 인간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직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 믿고 싶다.”
정념들은 각기 유일한 것들이고 그것들을 다르게 별칭하려는 시도자체마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념은 끊임없이 연구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완벽할 수 없지만 지속적으로 탐구되어야 하는 정념의 의미와 역할은 인간의 숭고한 의지와 삶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것이다. 『현대시와 정념』은 문학의 영역에만 고립되었던 문학비평의 협소함에서 벗어나 인간과 문학의 접점을 찾으려는 참신하고 진지한 노력을 시연하므로 주목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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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한국견문록: 『사기』의 시각에서 보는 한국사회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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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의 『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자신들의 비정상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잣대로 국민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에게 고하는 이석연 전(前) 법제처장의 직언이 담긴 『사마천 한국견문록』(이석연 지음/까만양/2015/ISBN:9788997740154)이 답한다!

 * 삶의 역경과 선택의 순간에 사마천을 읽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법조인’이라는 호칭보다는 ‘독서인’이라 불릴 만큼 독서에 대한 애착과 내공이 가득한 이석연 변호사(전前 법제처장)는 『책, 인생을 사로잡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 『여행, 인생을 유혹하다』 등의 교양서 발간을 통해 독서편력의 방대함을 대중적으로 입증했다. 중학교 졸업 6개월 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지만 대학 진학을 미루고 김제에 있는 금산사에 들어가 1년 10개월 동안 동서양의 고전, 역사, 문학서 등 400여 권을 읽은 것을 토대로 지금까지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는 이석연 변호사는 자신의 독서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꼽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사마천은 역사는 언제나 정의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기구한 처지에 빗대어 갈파하고 있습니다. 『사기』 전편-본기(本記),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列傳) 등 130편, 52만 6500자-에 사마천의 인간에 대한 고뇌가 묻어 있습니다. 내가 삶의 역경과 선택의 순간에 사마천을 생각하고 그에게 배우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사기』 연구에 있어서 전문 학자 못지않게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석연 변호사는 2009년 사마천의 고향인 중국 섬서성 한성시에 있는 ‘중국사마천학회’ 정회원으로 임명되었으며, 2015년 3월에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사마천학회’의 초대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삶의 교훈과 지혜가 녹아있다는 것이 이석연 변호사의 평소 지론이었으며, 그러한 생각이 구체적인 결실로 드러난 것이 『사마천 한국견문록』이다.

*『사기』의 시각에서 본 한국사회의 자화상
『사마천 한국견문록』은 사마천이 한국사회를 본다면 무엇을 어떻게 기록했을까에 관심을 가진 저자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의 면에 이르기까지 『사기』의 시각에서 본, 즉 사마천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악惡의 평범성’의 만연과 세월호 사건, 직언이 없는 정치, 곡학아세하는 지식인, 대권쟁취자들의 고질병, 존경할만한 원로가 없는 사회, 변절이 미화되는 세태, 일관성이 없는 법치 등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되고 있지 않는 제반 현상을 『사기』의 원문을 토대로 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 동서고금 인물들의 시각에서도 한국사회를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신선하고 각별하다.
저자는 책의 제목을 ‘사마천 한국견문록’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서문에서 “사마천이 지금 한국사회에 살아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그래서 책의 제목을 『사마천 한국견문록』이라고 정했습니다. 미지의 깊은 숲처럼 펼쳐진 『사기』의 세계를 탐방하고, 그것을 현실의 세계에 적용하려는 나의 의지를 ‘견문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독서란 저자의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마천이 일군 『사기』의 영토를 ‘탈(脫)영토화’해서 나의 영토로 만드는 것이 『사기』의 바른 독법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사마천이 되는 것, 그 동화(同化)가 비록 미흡할지라도 그러한 노력이 사마천의 정신을 현실 속에서 온전히 살려내는 길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적용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생각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견문록’이라는 표현 속에 응축되어 있으며, 이는 공정함과 정의가 국민적 삶의 올바른 가치로 정립되고, 그리하여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뚜벅뚜벅 정도를 걷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제대로 평가받고 대접받는 한국사회를 꿈꾸는 저자의 의지와 희망이 담긴 것이다.

*『사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점과 새로운 대안을 찾는 흥미진진한 시도
『사마천 한국견문록』은 한국사회의 구체적인 현실을 『사기』의 내용과 관련해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출간된 『사기』 관련서들과 차별화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왜 박수를 받으며 떠나지 못했는가, 한국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왜 욕을 먹는가, ‘몸통’과 ‘깃털’이라는 표현의 저변에는 무엇이 내재하고 있는가, 관료주의의 실체는 무엇인가, 한국의 법치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부(富)의 정당한 추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의리와 지조란 무엇인가 등등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사기』의 원문과 조목조목 대조를 하면서 그 대안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인과 지도자는 물론 미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게 소중한 귀감이 되고 있다.

* 발췌문들
사유하지 않고, 타자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영달만을 생각한 아이히만과 왕온서 그리고 세월호 선장은 과거의 인물들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현재의 인물들이며, 무사유가 만든 ‘상징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가능성입니다. 그 가능성이 거대한 관료주의적 조직문화와 보신적 이기주의와 결합할 때 나타나는 ‘악의 평범성’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감시해야합니다.(14쪽)

직언과 비방의 차이는 바로 직언하는 자의 자세에서 드러납니다. 교제를 끊더라도 상대의 단점을 비방하지 않고, 자신의 떳떳함을 알리기 위해 상대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다는 악의(樂毅)의 말은 우리시대 지식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할 바라 생각합니다. 무책임한 비판의 남발로 자신의 과업을 드러내려는 일부 지식인들의 얄팍한 태도는 국가의 존속에 해가 되는 일입니다.(26쪽)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려면 그가 기용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사 문제의 팔할은 지도자의 탓에 기인한다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인재를 몰라보는 것, 알면서도 쓰지 않는 것, 쓰더라도 위임하지 않는 것이 나라의 불상사라는 것은 지도자의 안목이 그 나라의 흥망을 결정한다는 것과 상통하는 내용입니다.(70쪽)

사마천은 「악의열전」에서 폐부를 찌르는 말을 합니다. “군자는 교제를 끊더라도 상대방의 험담을 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군주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다.”라고. 요즘 우리사회에는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말을 지껄이는 것을 보며 메스꺼움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결벽증일까요?(95쪽)

토사구팽이 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실존과 도덕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환난과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길은 바로 도덕에 대한 믿음에 있다고 봅니다. 정치, 즉 다스림의 근본은 바로 보편의 도덕으로 상식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123쪽)

조고와 전두환 전前대통령은 핵심정보를 선점해 권력을 획득했습니다.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필요합니다. 통제와 감시는 정보의 주요기능입니다. 다시 말해 정보란 파놉티콘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급의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며, 동시에 그 권력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통제와 감시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보는 정보소유자의 선악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정보의 위험성이 있지요. 정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활인검(活人劍)이 될 수도 있고, 사인검(死人劍)이 될 수도 있습니다.(137쪽)

모든 법령의 궁극적인 목표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은 상황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바꾸지 않고 지키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고, 개혁을 통해 잘못된 것을 과감하게 바꾸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소규조수’의 고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백성의 편안함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내는 통치의 지혜입니다.(179쪽)

( 『사기』의 「화식열전」에서) 사마천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유방임주의적인 원칙을 고수하는 한편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원칙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탄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적인 입장에서 한걸음 더 나가 수정자본주의 경제이론의 비조인 케인즈적 시각까지도 수용하고 있습니다.(223쪽)

연암 박지원이 사마천의 마음을 ‘나비 잡는 아이’에 비유해 설명한 이유는 『사기』독법의 첫걸음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마천이 나비를 잡는 심정으로 『사기』를 집필했듯이 독자들도 나비를 잡는 심정으로 『사기』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마천에게서 날아간 ‘나비’는 사마천의 나비가 아니라 독자의 ‘나비’인만큼 사마천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처한 사회적 환경을 바탕으로 해서 사마천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연암의 생각입니다.(259쪽)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비정상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잣대로 국민들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말이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생각만 하고 아무도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떻든 생활고로 일가족이 자살하는 일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삶의 터전이 우울과 피로의 장소가 된다는 것은 정치가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민심이 국가 발전의 동력이라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진리를 모든 정치인들이 숙고해야할 때입니다.(283쪽)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는 자학과 비관은 삶의 고귀함을 고갈시키는 요인입니다. 쇼펜하워는 “세계는 나의 의지다”라고 했습니다. 의지가 없다면 세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운명이 의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운명을 만듭니다. 해박한 운명론자보다 단순하고 강직한 의지론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302쪽)

* 저자 이석연(李石淵)은 195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6개월 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지만 대학 진학을 미루고 김제에 있는 금산사에 들어가 1년 10개월 동안 동서양의 고전, 역사, 문학서 등 400여 권을 읽으면서 인생과 사회에 대한 안목과 자세를 깨우치게 된다.
전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제23회)와 사법시험(제27회)에 합격한 후 법제처와 헌법재판소 등에서 14년간 공직에 몸담았다. 그 사이 육군 정훈장교로 만 3년간 전방 철책부대 등에서 군 복무를 했다.
1994년에 공직을 내려놓고 변호사로 나서서 주로 헌법소송 등 공익소송을 맡았고, 그 무렵부터 시민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1세대 시민운동가인 그는 경실련 사무총장(제4대), ‘헌법포럼’ 상임대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그 후 다시 공직에 나가 2008년 3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법제처장(제28대)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사단법인 ‘한국사마천 학회’ 이사장, ‘21세기비즈니스포럼’ 공동대표, ‘책권하는사회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원칙, 소신주의자인 그는 자신을 둘러싼 여러 평가 속에서도 언제나 법과 정도를 지키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바로 자신의 저서 제목을 딴 ‘헌법 등대지기’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원칙과 절차에 위배되면 성역 없는 비판을 가하며 법의 정당성과 정의를 지키려했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저서로는 이 책 외에 『책, 인생을 사로잡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 『여행, 인생을 유혹하다』, 『헌법 등대지기』, 『침묵하는 보수로는 나라 못 지킨다』, 『헌법과 반헌법』(공저), 『헌법의 길 통합의 길』, 『헌법소송의 이론과 실제』, 『형법총론예해』 등이 있다.

* 목차
서문 004
1. ‘사유하지 않음’ 속에서 ‘도구적 인간’이 저지르는 ‘악惡의 평범성’ 013
– 왕온서와 아이히만 그리고 세월호 선장
2. 직언하는 신하 없이 성공한 군주는 없다 025
– 악의의 직언과 조선 선비들의 도끼상소 그리고 한국 대통령들의 실패
■ 지록위마指鹿爲馬와 대한민국의 현실 036
3.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의 지식인을 보라 039
– 역생과 장석지 그리고 마오쩌둥의 지식인, 정치인 폄훼론
4. 그만둘 때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 051
– 나라에 젊은이의 귀감이 될 원로元老가 없다
■ 명성과실名聲過實과 벌공긍능伐功矜能의 사회 065
5. 태산이 높은 것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069
-『사기』에 나타난 인재등용의 원칙
6. 누가 미생尾生이 정직하다고 말하는가? 079
– 정몽준 대표와 박근혜 대표의 미생지신尾生之信 논쟁
■ 지자천려 필유일실知者千慮 必有一失의 지혜 092
7.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끝이 좋지 않다 095
– 여공과 백비, 대한민국과 변절자들의 춘추전국시대
8. 천하를 얻은 자는 사사로운 원한을 앞세우면 안 된다 107
– 덕치德治와 르상티망(ressentiment), 한국 대권쟁취자들의 쩨쩨한 고질병
■ 국지장망 현인은 난신귀國之將亡 賢人隱 亂臣貴와 간디의 7징조七徵兆 119
9. 새가 잡히면 활은 감추어지고,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를 삶아 죽인다 123
– 한신의 절규와 장성택, 이숙번 등 2인자들의 운명
10. 카리스마와 권력은 정보에서 나온다 137
– 정보의 파놉티콘(Panopticon), 조고와 전두환의 정보독점
■ 강노지말强弩之末, 크로노스와 흉노의 시간 148
11. 말 위에서 나라를 얻었다고 해서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151
–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대통령이 없다
12. 법은 거미줄이다? 163
– 한국 법치주의의 현실과 『사기』에 나타난 법치관觀
■ 본말本末이 전도된 사회와 대분망천戴盆望天의 자세 175
13. 개의 줄을 놓아 방향을 알려주다 179
– 소규조수蕭規曹隨와 복거지계覆車之戒의 지혜
14. 불을 그대로 둔 채 끓는 물만 식히려는 관료주의 191
– 혹리들의 몸통은 바로 황제, 사마천의 기막힌 서사敍事
■ 한신의 치욕 삼종세트: 신취욕식晨炊?食, 표모반신漂母飯信, 과하지욕?下之辱 203
15. 부富의 추구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207
– 사마천 경제학①
16. 가장 나쁜 정치는 재산을 가지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223
– 사마천 경제학②
■ 남이 가지 않는 길, 역발상의 인기아취人棄我取 239
17. 「세한도歲寒圖」에 녹아있는 『사기』의 정신 243
– 참된 의리와 절개에 대하여
18. 연암 박지원의 『사기』 독법讀法 259
– 사마천과 연암의 나비
■‘짬짜면’과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결단 268
19. 대장부 한번 가면 어찌 다시 돌아오리 271
– 형가와 이준열사
20. 천도天道는 과연 옳은가 그른가? 283
– 항우 그리고 궁예와 최충헌
■ 조지훈의 ‘주도유단酒道有段’과 순우곤의 주극생란酒極生亂 291
21. 왕후장상의 씨와 한국사회 295
– 진승·오광의 난과 홍경래와 만적의 난
22. 가부장적 편견을 극복한 여인들 303
– 섭영과 김은애
■ 황혼이혼, 백두여신 경개여고白頭如新 傾蓋如故의 교훈 313

* 추천사들
가공할 만한 독서력과 통찰력에 바탕한 한국사회 진단
인간학의 교과서이자 궁형(거세형)의 치욕을 딛고 쓴 책이 『사기』다. 필자와 교분을 맺어온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사기』 연구에 있어서 전문 학자 못지않게 조예가 깊은 분이라고 단언한다. 200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 넘어 사마천과 이석연이 만나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들을 시대를 꿰뚫는 안목으로 진단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사마천 못지않은 놀랄만한 필력을 보여주면서 『사기』의 행간 속에 스며있는 정수를 뽑아내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진단하고 있다. 가공할 만한 독서력과 통찰력, 인문학적 내공의 저자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에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리라 확신한다. – 김원중(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한국학진흥사업위원장)

독만권서(讀萬卷書)의 실천행
당나라 때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만 권의 책을 독파하고, 귀신처럼 붓을 놀린다(讀破萬卷書, 下筆如有神)”라고 했다. 독서의 양이 글의 질을 결정한다는 뜻이리라. 이석연님의 독서편력은 익히 아는 바이지만 이번 책은 그 편력의 폭과 깊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결코 쉽지 않은 역사서를 축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유익한 지적 기쁨과 함께 독자들은 『사기』라는 역사의 거울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비판하고, 성찰하는 격조 있는 리더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배우길 좋아하고 깊이 생각하면 마음으로 그 뜻을 알게 된다(好學深思, 心知其意)“라는 사마천의 말을 실감나게 하는 ‘독만권서의 실천행’ 그 자체이다. – 김영수(전前 교수/중국 및 사마천 연구 전문가)

『사기』라는 거울을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
역사는 미래학이다. 과거가 소재인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를 가늠하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탁월한 역사서 중 하나로서 특히 동양 역사관의 원형을 이룬 사마천의 『사기』에 기술된 인물과 이야기에는 2천 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반복되고 재현되는 현재적 의미가 담겨있다. 올곧은 정신에 바탕을 두고 풍부한 지식과 다채로운 경험을 겸비한 저자는 『사기』라는 거울에 오늘의 우리를 비추어서 현실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우리 시대에 환생하여 칼럼을 통해 우리를 깨우치는 듯한 느낌의 번뜩이는 지혜와 소중한 교훈들로 가득하다. – 김경준(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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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주의자들과 대결하는 니체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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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저작들 중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솔직한 내용을 담은 문제작!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까만양, 2013)는 여동생과의 근친성애, 코지마 바그너와 루 살로메의 관계, 니체가 매독에 걸린 사연 및 그의 성욕과 성적 환상들과 체험들에 대한 고백, 그리고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준 쇼펜하워, 바그너, 루터, 셰익스피어, 마르크스 등에 대한 평가들을 잠언형식으로 진술하여, 니체 연구자들은 물론 니체 애호자들의 주목시킨 문제작으로서, 니체의 극렬하고 심대한 내면세계를 가차 없이 보여주는 진귀한 보물이자 니체의 저작들 중 가장 인간적이고 솔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책을 영역한 오스카 레비(Oscar Levy)는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지상에서 가장 영예로우면서도 가장 절망적인 인생들 중 하나의 대미를 장식하는 보고서이다.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지만, 하여간, 독자들은 이 책의 한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생각에 잠길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이야기가 유쾌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경우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겪은 상처들과 주름들을 폭로하는 장면이 우리의 위장을 부풀리는 구경거리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
니체의 저작들 중 가장 문제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이 책은 지금까지 에스파냐어판(1956, 1980, 1996년), 일본어판(1956년), 포르투갈어판[1990년; 브라질(1992년)], 히브리어판(2006년), 중국어판(2009)으로도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독일어판(1993)으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자서전은 그렇듯 비극적 운명을 겪은 만큼 의심할 수 없는 진가를 보유한 니체의 자서전으로서 위상을 서서히 회복해왔다.
우여곡절을 겪은 니체의 두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와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
1888년 가을부터 뭔가에 쫓기듯이 그러나 일진광풍처럼 집필에 몰두한 니체는 해가 바뀔 즈음 무려 다섯 권이나 되는 저작들, 『니체 대 바그너』, 『우상들의 황혼』, 『반그리스도』,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찬가』를 탈고했다. 그 저작들 중 니체가 만44세 생일인 1888년 10월 15일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같은 해 11월 13일 완성한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첫 번째 자서전이었다.
그러나 이 첫 자서전은 니체가 살아있는 동안 출판되지 못했다. 왜냐면 처음에는 니체가 집필한 원고들의 타이핑과 교정을 주관하던 친구와 출판업자가, 이어서 니체의 모친과 외삼촌이, 그리고 나중에는 여동생이 개입하여 출판을 보류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출판이 미뤄지던 『이 사람을 보라』의 원고는 집필된 지 무려 20년이 흐른 1908년에야 ― 더구나 니체의 광기가 여실히 드러나거나 모친과 여동생과 제부 푀르스터가 부정적으로 언급된 문장들과 단락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로 ― 비로소 처음 출판되는 비운을 겪었다.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혼절한 후 예나의 정신병원에 감금되다시피 입원(1889년 1월 17일~1890년 3월 24일)해있던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의 출판이 보류됐다는 사실을 알고 낙담했다. 그리하여 니체는 자신을 “실제로 곁에서” 감시하던 모친(그리고 모친과 주고받던 편지들로써 니체를 감시하던 여동생)의 시선을 피해 비밀리에 두 번째 자서전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를 집필했고, 이번에는 각별히 조심하여 그 원고를 비밀리에 병원에서 “반출”하여 출판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자서전도 첫 번째 자서전만큼이나 ―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 지난하고 착잡하며 기구한 우여곡절들을 겪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니체가 독일어로 집필한 이른바 “육필”원고가 행방불명되는 안타까운 사태마저 겪었고, 1951년에야 비로소 미국의 시인 겸 출판편집자 새뮤얼 로스가 보어스 헤드 북스(Boar's Head Books)라는 출판사를 통해 “그나마도” 영어판으로만 겨우 출판함으로써 가까스로 빛을 볼 수 있었다.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소송을 당할 가능성 때문에 비밀리에 번역되다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가 처음 출판될 때까지 겪은 기구한 우여곡절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뉠 수 있다. 먼저 전반부는 니체가 예나의 정신병원에서 비밀리에 원고를 집필하여 “밀반출”한 1889년 1월 17일~1890년 3월 24일부터 오스카 레비가 그 원고를 새뮤얼 로스의 손을 거쳐 1923년에 입수하여 영어로 번역한 1927년 3월까지 약 38년간의 세월에 해당한다.
이 과정은 오스카 레비가 영어본 원고의 서문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이 대목에서 기억해둘 사항은 레비가 독일어본 원고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왜냐면 레비의 딸인 모드 로젠탈 로스(Maud Rosenthal Roth)는 자신과 어머니가 1908년부터 아버지의 원고를 타이핑하고 교정하는 작업을 담당했지만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원고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비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번역작업을 하던 당시 영국에서 시행되던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들에 의거하면 독일에서 활동하던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영국의 법원에도 충분히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만약 레비가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독일어본 원고를 입수했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한다는 사실이 엘리자베트에게 알려지면 그녀가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농후했고, 그럴 경우 레비의 딸과 아내도 소송에 휘말릴 수 있었다. 왜냐면 엘리자베트가 자신과 오라비의 근친연애 내지 근친성애를 언급하는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출판을 그대로 두고 보았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각될 운명에 처했던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 의 극적 출간!
레비가 완성한 영어본 원고를 독일어본 원고 함께 미국의 새뮤얼 로스에게 우송한 1927년 3월 이후부터 로스가 보어스 헤드 출판사에서 원고를 출판한 1951년까지 약 24년간의 세월에 해당하는 이 후반부의 사연은 특히 새뮤얼 로스라는 인물의 이력과 밀접하게 맞물린다.
1927년 봄 로스는 드디어 런던의 오스카 레비로부터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독일본 원고와 영어본 원고를 우송받았다. 그러나 로스는 그 원고를 출판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왜냐면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아직 생존해있었고, 미국의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을 통해서도 엘리자베트가 충분히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원고의 출판을 저지한 또 다른 사연들도 있었다.
그 무렵 로스는 잡지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몇몇 작가들의 에로틱한 작품들을 작가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투 월스 먼슬리》에 연재했는데, 그 작품들 중에는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의 소설 『율리시스Ulysses』(1922)도 포함되어있다. 특히 로스가 《투 월스 먼슬리》에 연재한 『율리시스』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대목들을 위주로 축약하여 편집한 것이었다. 조이스는 로스가 추진하던 『율리시스』의 축약연재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강제명령을 받아냈다. 그래도 굴하지 않은 로스는 이듬해인 1928년에도 잉글랜드의 작가 D. 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애인 Lady Chatterley's Lover』(1928)을 ― 적어도 미국에서는 최초로 ― 작가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해적판으로 출판했다.
그즈음 뉴욕악덕근절협회(New York Society for the Suppression of Vice, NYSSV)의 감시망에 포착된 로스는 1928년에 판매를 위한 외설물 소지 혐의로 고발되어 뉴욕의 경범죄자 노역장에서 3개월을 복역했다. 이듬해인 1929년에는 뉴욕악덕근절협회가 아예 로스의 사무실을 급습하여 로스가 출판한 도서들과 출판을 준비하던 원고들을 압수하고 로스를 외설물 배포혐의로 고발했다. 그 결과 1년 동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로스는 뉴욕악덕근절협회가 압수해간 원고들과 도서들을 소각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낙심했다. 그때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원고들도 압수된 다른 원고들과 함께 소각되었다고 생각한 로스는 출판업을 접었고, 압수되지 않고 남아있던 도서들과 원고들을 자신의 창고에 보관해두었다. 그러나 생활고에 시달리던 로스는 다시 외설물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1933년부터 외설물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1934년에 다시 고발되어 20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고, 급기야 미국연방수사국에 검거되어 1936~1939년까지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교도소에서 석방된 로스는 창고에 보관했던 재고도서들을 이용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1940년부터 우편판매를 위주로 하는 도서판매업을 시작했고, 1940년대 후반부터는 출판업도 재개했다. 그즈음 창고에서 재고도서들을 확인하던 로스의 아내가 “부주의하게 취급되어 파삭파삭해지고 여러 군데 벌레들이 갉아 먹어서 훼손된 레비의 영어본 원고와 서문의 복사본”을 우연히 발견했다. 로스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원고의 훼손된 부분들을 복원하고 관련내용들을 조사하고 대조한 끝에 1951년 처음으로 출판했다.
근친연애와 여성편력에 관한 내용, 위작이냐 정식저작이냐?
니체가 집필한 지 무려 62년 동안 독일, 캐나다, 영국, 미국을 떠돌며 대서양을 세 번이나 건너는 기나긴 여행 끝에 마침내 빛을 본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를 기다린 것은 또 다른 기구한 운명이었다. 이 책은 출판되자 환영과 찬사도 받았지만 더 많은 의혹과 비난에 휩싸였다. 더구나 이 책에 수록된 니체의 놀라운 고백들―니체와 여동생의 근친연애 내지 근친성애, 소문만 무성했던 니체와 코지마 바그너 또는 루 살로메의 내밀한 관계, 니체가 매독에 걸린 사연, 니체의 내밀한 성욕과 성적 환상들과 체험들―은 니체학자들과 니체숭배자들의 의혹과 비난을 더욱 부추겼다. 그렇듯 이 책을 의심하고 비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니체학자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한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이었다. 그는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를 아예 “위작”으로 규정해버렸다. 그 결과 이 책의 의미는 왜곡되고 진가는 축소되면서 지금까지 니체의 정식저작으로 “공인”되지 못하는 비운을 겪어왔다.
그런데 카우프만이 이 책을 “위작”으로 규정한 이유들은 그가 니체학자로서 얻은 명성을 감안하면 허술하다 못해 차라리 궁색하다고 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가 이 책을 “위작”으로 규정하면서 열거한 이유들은 대체로 니체가 독일어로 직접 쓴 ‘육필원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출판업자 새뮤얼 로스의 착잡한 이력이 의심스럽다는 것, 오스카 레비의 니체에 대한 식견과 번역능력 및 번역과정이 의심스럽다는 것, 니체가 고백하는 사연들이 실제로 발생한 일들과 시간적공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대목들이 발견된다는 것, 그리고 ― 아마도 그에게 가장 심한 곤혹감과 반감을 안겨주었을 ― 니체의 근친연애와 여성편력에 관한 내용들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년간 이 책을 연구한 미국의 독일어문헌학자 겸 언어학자 월터 스튜어트(Walter Stewart)는 “이 책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니체만이 쓸 수 있는 니체의 자서전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스튜어트는 『니체의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 비판적 연구』라는 연구서에서 카우프만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카우프만의 주장을 불성실한 편견과 오해의 소산들로 평가한다. 카우프만이 위작이라고 주장을 하는 까닭은 아마도 카우프만이 펴낸 니체의 전기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사실들이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 그런 사실들 중 어떤 것들은 카우프만을 위시하여 니체를 존경하거나 숭배하는 니체학자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만치 노골적이고 에로틱하게 ― 즉 선정적이고 외설적으로 ― 보인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카우프만과 그의 지지자들이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에 담긴 니체의 고백들을 그렇게 “선정적이고 외설적인” 것들로 바라본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처음부터 편견을 가지고 이 책을 불성실하게 읽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들은 니체가 사용한 “근친연애 또는 근친성애”라는 단어만 보고도 ― 니체의 고모 로잘리도 그랬듯이! ― 미리 겁을 집어먹거나 혐오감을 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스튜어트도 지적하듯이, 그리고 이 책의 내용들을 감안하더라도, 니체와 여동생의 “연애”는 흔히 “터부”시되고 “죄악”시되는 “근친상간”으로 치부될 만큼 “선정적이거나 외설적인”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둘이 나눈 오누이간의 애정은 둘이 처한 환경에서는, 오스카 레비도 인정하듯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역사적으로도 근친연애나 근친결혼은 고대 이집트나 고대 로마에서는 금기가 아니었고 기독교 시대에 접어들면서 강력한 금기로 규정되었을 뿐이었다.
이렇듯 심각한 편견과 반감에 사로잡힌 카우프만과 그의 지지자들이 이 책을 정확히 비판할 수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소치로 보인다. 물론 그들이 품은 그런 뿌리 깊은 편견과 반감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이 책을 위작으로 치부하는 이유들 역시 즉흥적이고 불성실한 태도의 소산들이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그들이 가장 빈번하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반대이유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니체가 “독일어”로 직접 쓴 “육필원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월터 스튜어트는 그것이 니체의 자서전을 위작으로 규정할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못박는다. 저자의 “육필원고”가 없다는 사실만 따진다면 위작으로 규정되어야 할 저서들은 실제로 수다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저 호메로스의 서사시들부터 헤라클레이토스와 탈레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물론 기독교경전들과 불교경전들도 저자의 육필원고가 없으므로 모조리 위작이라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카우프만과 그의 지지자들은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를 미국에서 처음 출판한 새뮤얼 로스의 이력을 문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로스가 처한 환경과 상황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세간의 평판과 소문만으로 그를 평가하는 편견과 오해의 소치에 불과하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된 “우여곡절의 후반부”가 증명한다.
로스는 그를 오해하는 자들이 아는 만큼 위조와 날조를 일삼는 사기꾼이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유의미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시를 쓰고 나름대로 독학하면서 언론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도 진력한 불운한 출판인이었을 따름이다. 그가 이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범한 실수를 정직하게 시인하는 대목(제5장 14절)은 그가 적어도 사기꾼은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특히 카우프만은 로스가 『율리시스』를 해적판으로 잡지에 연재하여 출판법 위반했듯이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도 위조했을 수 있다고 ‘암시’했지만, 그 당시 통용되던 미국의 출판법에 따르면 로스의 『율리시스』 연재는 전혀 위반이 아니었고, 단지 그의 잡지에 연재된 내용들이 외설적인 것들이라는 이유로 뉴욕악덕근절협회가 그를 외설물 제작자 겸 판매자로 낙인찍었을 따름이었다. 카우프만은 오스카 레비의 번역능력까지 트집을 잡는데, 그것은 도리어 오스카 레비에 대해 카우프만이 실로 무지했다는 사실만 반증할 따름이다. 그렇듯 카우프만이 제기하는 의혹들은 모두 그의 편견과 불성실에서 빚어진 오해와 무지의 소산들이었다. 그의 의혹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들이었는지는 월터 스튜어트의 저서가 여실히 입증한다.
그러므로 오스카 레비뿐 아니라 월트 스튜어트도 결론짓듯이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니체”만이 쓸 수 있는 자서전이다. 설령 그것이 ‘만에 하나’라도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카우프만이 의심하는 자서전에 언급된 사건들의 ― 니체의 착각과 망상이 빚어낸 ― 시공간적 오차들이야말로 오히려 누가 보더라도 어설프게 보이는 위조자가 “위조의 미덕” ― 정확성과 치밀성 ― 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반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조되었을 가능성은 무색해진다.
니체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풍부한 내용들
이 자서전에 녹아있는 니체 정신의 비극성과 심대함은 니체의 다른 저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에 비해 하등 뒤지지 않으며 어떤 대목들에서는 더욱 비극적이고 더욱 극렬한 성격마저 드러낸다. 또 그만큼 더 니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들도 풍부하다. 예컨대, 청소년 니체를 사로잡았던 “백작부인”의 환상은 그가 슐포르타의 엄격하고 금욕적인 규율을 그만큼 힘겹게 감내했고, 그것이 “금욕주의”에 대한 그의 극심한 비판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이 자서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니체 특유의 여성관을 형성시킨 사건들과 배경들도 이 자서전의 곳곳에서 역력하게 확인된다.
비록 니체가 “직접 쓴 육필원고”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실 때문에 그동안 “진짜” 니체의 자서전으로 정식공인을 받지 못하는 또 하나의 비극적 운명을 겪어왔을망정, 이 자서전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들만으로도 니체를 애호하거나 니체에게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일독해볼 만한 충분하고 또 넘치는 가치들을 지닌 진귀한 보물로 평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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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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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 니체론/브란데스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들
기오 브란데스 지음/ 까만양/ 2014년 09월/ ISBN: 9788997740147

* 책소개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의 저자 브란데스는 니체를 최초로 예찬한 비非독일인들 중 한 명이다. 브란데스는 니체의 추종자는 결코 아니되 니체의 가르침들에 매우 공감하는 탁월한 니체 해석자이다. 이 책은 제1부 ‘귀족적 급진주의’, 제2부 ‘브란데스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들’, 제3부 ‘니체의 특징들’, 제4부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관하는 서술관점은 니체의 저작들이 유래한 원천, 그것들을 잉태시킨 독일과 유럽의 여건들, 니체와 다른 작가들의 친연관계들을 상세히 해설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어 니체 철학의 토대가 무엇인지를 확연하고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 저자소개
기오 브란데스(Georg Brandes, 1842~1927)는 1842년 2월 4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도매업에 종사하는 유대인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몸은 허약했으되 뛰어난 두뇌를 타고나서 초·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비非종교적 집안분위기에서 성장하여 소년기에는 무신론자로 자처했다. 1859년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여 부모의 바람대로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학을 전공했지만 곧 흥미를 잃고 헤겔의 저서들을 탐독하며 철학과 미학에 심취했다. 그즈음 특히 덴마크의 유신론적 실존철학자 키에그고(=키르케고르)의 저서를 읽고 1862년까지 심각한 내면투쟁을 겪기도 했다.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1864년 미학석사학위를, 1870년 미학박사학위를 취득한 브란데스는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당대의 석학들 및 문인들과 교제하고 급진적 자연주의철학과 현실주의문학관을 발전시켰다. 1871년부터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19세기 문학의 주요 흐름들”을 주제로 1890년까지 속행한 브란데스의 획기적 연속공개강의는 급진적 문학개념 및 문화개념을 설파하여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의 문학 및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강의주제와 같은 제목으로 1891년 완간한 연속저서(총6권)는 유럽문학계를 흥분시킨 기념비적 업적으로 손꼽힌다. 1874년 코펜하겐 대학교 미학교수로 임용될 기회를 맞이했지만 유대인이고 급진주의자이며 무신론자라서 임용을 거부당한 브란데스는 1877년 덴마크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1883년까지 거주하며 당대의 석학들 및 문인들과 교제하고 집필에 매진했다. 1877년 키에그고와 그의 철학을 최초로 국제적으로 알린 중요한 저서 『쇤 키에그고』를 출간했다. 1883년 덴마크로 귀국할 무렵 니체의 존재를 처음 알고 니체의 저서들을 읽기 시작한 브란데스는 1887년 니체의 귀족적 급진주의를 발견하고 니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감하기 시작했다. 1888년 4~5월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세계최초로 니체와 그의 철학을 주제로 공개강의를 결행하여 성공시켜 니체의 마지막 집필의욕을 북돋운 브란데스는 1889년 니체에 관한 최초의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시론 『귀족적 급진주의』를 발표했다. 1902년 코펜하겐 대학교 미학교수로 임용된 브란데스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개성인격자들을 연구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하인리히 하이네』, 『괴테』, 『볼테르』, 『율리우스 카이사르』, 『미켈란젤로』 같은 대작들을 속속 발표했다. 1927년 2월 19일 코펜하겐에서 사망한 걸출한 문예비평가 겸 철학자 브란데스는 오늘날에도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문화인들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 목차
번역자 서문 006
제1부 귀족적 급진주의(1889년) 049
제2부 브란데스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들(1899년 12월 정리) 141
제3부 니체의 특징들(1900년 8월) 213
제4부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1909년) 223
[부록 1] 브란데스의 삶과 문학 237
[부록 2] 브란데스의 업적 255
찾아보기 263

* 출판사 서평
<세계최초로 니체를 주제로 삼은 공개강의를 진행하여 큰 성공을 거둔 니체 전도사 브란데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니체 사상의 풍요로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채택한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표현은 매우 탁월한 것입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내가 여태껏 읽어본 나에 관한 표현들 중 가장 명석한 것입니다.(1887년 12월 2일 니체가 브란데스에게 보낸 편지)>

니체는 급진주의 사상가였고 브란데스는 그런 니체의 예언가였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서 유래한 ‘지음(知音)’이라는 말은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백아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거문고를 타는지를 그의 친구인 종자기는 묻지도 않고 속속들이 읽어냈다. 후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자기 음악을 이해할 사람이 천하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는 학문과 예술세계에서 자신의 뜻을 깊게 알아주는 소중한 관계를 표현하는 고사로 통용되고 있다. 니체와 브란데스도 바로 그런 관계라 할 수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브란데스는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의 문학 및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세계적인 평론가다. 뿐만 아니라 1914년 5월 하순~6월 초순 브란데스는 미국을 여행하면서 시카고와 뉴욕에서 공개강연도 병행하여 미국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의 주간지 《아웃룩The Outlook》(1914년 6월 6일자)은 브란데스를 “의심할 여지없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극히 중요한 비평가”로 소개했고, 시카고의 《다이얼The Dial》(1914년 6월 1일자)은 “브란데스의 미국방문은 비록 2주일에 불과할지라도 우리의 문화역사에서 극히 중요한 하나의 사건이다”고 평했으며,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1914년 5월 18일자)은 브란데스를 “문학의 왕자”로 칭했고, 《시카고 헤럴드》(1914년 5월 23일자》는 “가장 출중한 스칸디나비아인 문학자의 미국방문”을 “근래 이루어진 아나톨 프랑스의 잉글랜드 방문만큼이나 흥미롭고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브란데스는 니체를 최초로 예찬한 비非독일인들 중 한 명이다. 브란데스는 니체의 추종자는 결코 아니되 니체의 가르침들에 매우 공감하는 탁월한 니체 해석자이다. 브란데스의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는 1부 ‘귀족적 급진주의’, 2부 ‘브란데스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들’, 3부 ‘니체의 특징들’, 4부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관하는 서술관점은 니체의 저작들이 유래한 원천, 그것들을 잉태시킨 독일과 유럽의 여건들, 니체와 다른 작가들의 친연관계들을 상세히 해설하는 데 초점을 두어서 니체 철학의 토대가 무엇인지를 확연하고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니체 철학에서 ‘귀족적 급진주의’의 면모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지를 니체의 저작들에 대한 해석을 통해 상세히 설명한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할 만하다. 니체는 자신의 사상을 ‘귀족적 급진주의’라고 압축·설명한 브란데스에 대해 “당신이 채택한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표현은 매우 탁월한 것입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내가 여태껏 읽어본 나에 관한 표현들 중 가장 명석한 것입니다.”라고 극찬을 했다. 뿐만 아니라 니체는 막역한 친구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에게 (1888년 8월)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들뜬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늙은 유혹자 바그너는 이미 죽었는데도 ‘나의 영향을 감지할 만한 극소수자들마저 나로부터 멀리 떼어놓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덴마크에서 이런 일은 상상조차 불가능해요! 나는 이번 겨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활력을 가득 머금은 정신의 소유자 기오 브란데스 박사가 담대하게도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나에 관한 일련의 강의들을 감행했답니다. 그리고 그 강의들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답니다! 게다가 매번 300명을 넘는 청중이 강당을 가득 채웠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강의는 우레 같은 갈채를 받았고요! 그리고 비슷한 일이 미국 뉴욕에서도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유럽에서 가장 ‘독립적인’ 정신이요 그럴싸하게 보이는 ‘유일무이한’ 독일작가인 셈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니체는 브란데스에 대해 자신의 철학을 대중적으로 알린 소중한 친구로 소개하고 있음을 볼 때 니체와 브란데스의 관계는 분명 ‘지음’의 관계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대중의 문화속물주의와 니체의 귀족적 급진주의
속물(俗物)이란 ‘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니체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독일과 유럽의 문화적 특질을 ‘속물성’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대한 외롭고 고독한 투쟁을 과감히 전개했다. 그런 이유로 니체는 독일과 유럽에서 외면을 당했다. 그러나 브란데스는 그의 사상이 갖는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니체가 생각하기에 진정으로 불행한 사실은 ‘어떤 국가가 아직 진실하고 동질적이며 완벽한 문화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국가가 자국을 문화국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브란데스는 니체의 귀족적 급진주의의 출발을 그가 이른바 “문화속물(文化俗物)들”로 비칭(卑稱)한 인간들의 전모(全貌)를 확연히 드러내는 상황들’에서 찾는다. 니체와 브란데스가 서로 교감한 ‘문화속물’의 위험성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만연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브란데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화속물은 자신이 받은 비인간적인 교육을 진정한 문화로 생각한다. 만약 문화속물이 ‘문화는 정신의 동질성을 전제로 삼는다’고 배웠다면, 그리고 그가 어디서나 그와 같은 부류의 교육받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초?중?고등학교들, 대학교들, 학술원들이 그의 요구들을 순순히 받아들여 그의 문화지식에 상응하는 모형模型대로 변형된다면, 그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확신할 것이다. 만약 그가 거의 모든 곳에서 종교, 도덕, 문학, 결혼, 가족, 사회, 국가와 관련된 동일하고 암묵적인 인습들을 발견한다면, 그는 자신의 그런 발견을 ‘이런 압도적 동질성이 곧 문화이다’라는 논리의 증거로 생각할 것이다. ‘모든 고상한 장소에서 목소리를 내고 모든 언론출판편집부에 비치되는 이 체계적으로 원활히 조직된 속물근성은 단지 그것의 예하기관들이 원활히 제휴한다는 이유만으로는 결코 문화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문화속물은 상상조차 못한다. 속물근성은 심지어 ‘나쁜 문화’조차 못된다고 니체는 말한다. 그것은 보유한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게끔 강화된 야만주의이기는 하되 야만주의 특유의 신선함과 야생적 위력을 완전히 상실한 야만주의이다. 그래서 니체는 갖가지 사실적인 표현들을 사용하여 문화속물근성을 ‘탈진脫盡한 모든 것이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늪’이나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버리는 유독有毒한 안개’로 묘사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모두 문화속물근성이 만연한 사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다. 그런 사회는 유행하는 의견을 우리에게 들이밀고, 우리는 그런 의견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한다. 심지어 그런 의견이 분할되어도, 그렇게 분할된 의견은 단지 당파의 의견―여론―으로 흡수될 따름이다.
여기서 니체의 잠언은 다음과 같은 문답을 가능하게 해준다.

여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적 나태이다.

비인간적인 교육을 진정한 문화로 생각하는 속물근성이란 심지어 ‘나쁜 문화’도 되지 못하며, 속물근성을 호도하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교양’으로 탈바꿈시켜 대중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여론에 대해 ‘그것은 개인적 나태이다.’라고 규정한 니체의 사상, 그것이 바로 ‘귀족적 급진주의’의 핵심 면모이며 니체 사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귀족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귀족’ 혹은 ‘귀족주의’란 말은 여러 가지로 대중들의 오해를 사고 있다. 그 근저에는 지배계급(=귀족)과 피지배계급의 대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똬리를 틀고 있다. 니체는 그러한 계급의 대립 구도를 조장한 역사학자들에 대해 분노하며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실현할 것을 강조했다. 지배와 피지배, 진보와 보수, 다수와 소수라는 역사학자의 구분은 개인의 가치를 실종시키는 것이다. 역사학자가 자신의 생존시대에 유행하는 여론들을 기준으로 삼아 과거사를 평가하면 객관적 역사학자로 간주되고, 그리하지 않으면 주관적 역사학자로 간주되는 것이 바로 ‘문화속물’이 지배하는 사회의 주된 특징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한편으로 하층계급들 사이에서는 ‘하층민들의 증오심과 앙심(怏心)이 왜곡한 지배계급의 이미지’가 필연적으로 유행하기 마련이다. 이런 왜곡과정에는 보복심(報復心)이 작동한다.”는 것이 니체의 견해이며, 브란데스는 그것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면서 니체의 ‘귀족주의’가 무엇인지를 소상히 밝힌다.

귀족의 가치평가기준(좋다=고귀하다, 아름답다, 행복하다, 신들의 총애를 받는다)과 상반되는 것이 바로 노예도덕이다. 노예도덕은 ‘오직 비천한 자들만 선善한 자들이며 오직 괴로운 자들과 억눌린 자들과 병자들과 추레한 자들만 경건한 자들이다’고 말하면서 ‘너희, 고귀하고 풍요로운 자들은 모조리 악惡한 자들, 잔인한 자들, 탐욕스러운 자들, 불경스러운 자들, 죽으면 지옥에 떨어질 자들이다’고 비난한다.
그래서 귀족도덕은 부단히 “그렇다”고 말하는 위대한 자긍심의 표현인 반면에 노예도덕은 줄기차게 “아니다, 너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부정심否定心의 표현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나쁜 것=무가치한 것)을 분별하는 귀족의 가치평가기준은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하는 노예도덕과 상반된다. 그렇다면 이런 피억압자들의 도덕(=노예도덕)에서 악인들로 분류되는 자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다른 도덕(=귀족도덕)에서 선인들(=좋은 자들)로 분류되는 자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니체의 ‘귀족주의’는 지배와 피지배라는 계급의 구도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 부산물이 아니라 인간(=개인)의 고유한 정신에서 발현된 ‘고귀한 가치’라 할 수 있다. 니체는 인간을 ‘약속들을 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동물’로 정의定意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니체는 ‘무언가를 약속할 수 있고 약속한 것을 스스로 보증하여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인간의 진정한 고귀성(高貴性)’이 내재한다고 보았다. 왜냐면 인간이 이런 능력을 발휘하려면 자기지배력(自己支配力)도 당연히 습득해야 할 뿐더러 ‘외부환경들에 대한 지배력’과 ‘단기간만 유지되는 의지력을 보유한 다른 생물들에 대한 지배력’도 반드시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니체의 ‘귀족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의 길이 갈린다. ‘인간의 진정한 고귀성’과 ‘삶에 대한 무한의 긍정’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유의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점에 대해 브란데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니체는 자신이 행하는 공격의 타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참신하고 납득할 만한 어떤 증거도 거의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토록 맹렬히 공격하는 니체의 개인적 과잉정념(過剩情念)이야말로 작가로서 니체의 성격을 특징한다. 왜냐면 그런 니체의 공격은 분명히 현대 민주주의의 논리와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부르짖는 현대의 수많은 함성은 결국 서민대중의 앙심과 시기심이 내지르는 것들이다. 현대의 많은 중류계급이나 중하류계급 출신 학자들은 ‘오랫동안 탄압받아온 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격세유전(隔世遺傳)된 감정들―증오와 억하심정, 앙심과 보복열망―이 부당하게 중요시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니체의 과잉정념이 대중들에게는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친절함이 그의 사상에 대한 폄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브란데스는 니체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뿐 아니라 니체의 기질적 과잉성이 지닌 문제점에 대해 “니체는 지배계급과 노예계급을 대조하는 데 유달리 몰두했고, ‘자신의 동시대인들 중 진보적인 자들로 하여금 서민군중의 본능들을 관대하게 봐주고 지배정신들을 의심하거나 적대시하게끔 조장하는 학설들’에 대한 분노를 줄기차게 반복하여 표출했다. 그러면서 니체는 ‘피억압계급이나 피억압종족의 억눌린 원한감정이 노예도덕을 낳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오로지 경멸하거나 멸시하기만 하는 반면에 ‘지배계급이 행사하는 권력의 쾌락’과 ‘지배계급이 살아가는 건강하고 자유로우며 솔직담백하고 진실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특유의 습관에 물들었다. 바로 이런 습관을 통해 니체의 순전히 개인적인 특성 ―비非철학적이고 기질적인 특성―이 드러난다. 니체는 지배계급의 전제주의적인 행위들마저 변호하거나 관대하게 봐준다. 그가 볼 때 ‘지배계급이 자신들을 위해 만든 노예계급의 이미지’는 ‘노예계급이 만든 주인계급의 이미지’보다 위조된 성격을 훨씬 적게 지닌다.”라고 지적한다. 이 점이 브란데스가 가지고 있는 시각의 균형성이며,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저서가 지니고 있는 최대 장점이다. 무엇보다도 “오직 삶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만이 행동을 준비하고 역사의 가치를 인정하며 역사를 응용할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삶에 대한 자각을 통해 니체 사상의 현대적 해석과 수용의 길을 마련해야한다는 것이 브란데스가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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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평론집] 해석의 권리(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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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권리
엄경희

<목차>

저자 서문 – 해석, 낯선 존재와의 친화

1부
우주의 가락을 관하는 초끈 상상력 – 정진규의 '율려'
호젓함을 모시다 – 장석남 시에 내포된 서정의 실체
무엇이 문제적인가? – 송진권과 조인호의 경우
다산하는 처녀의 영혼 – 문정희의 시세계
책임의 무거움과 치유의 따듯함 – 현대시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디즘의 세계에서 펼쳐진 게릴라전 – 장정일의 현실인식
설산 정거장에 서 있는 낙타 한 마리 – 우대식의 시세계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위한 비가 – 황희순의 시세계

2부
외로운 호모 루덴스 – 시현정의 시집 『화장한 날』
나는 나다 ! – 박남철의 시집『제1분』
검은 안식일 – 박찬일의 시집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생의 북쪽에서 듣는 궤나 소리 – 김왕노 시집『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한낮의 우울 – 정병근의 시집『태양의 족보』
천 개의 검은 귀 – 이대흠의 시집 『귀가 서럽다』
아름답고 참혹한 엘랑 비탈 – 이윤훈의 시집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
천상의 양식을 갈구하는 영혼의 숟가락 – 박라연의 시집『빛의 사서함』
비루한 바닥의 궁륭 – 박후기의 시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너무나 익숙한, 익숙해지지 않는 슬픔 – 백인덕의 시집『단단함에 대하여』
통속적 연애시의 재생산 – 류근의 시집『상처적 체질』

3부
현대시조의 독자층 확대를 위한 몇 가지 제언
이우걸 시조에 내포된 모더니티의 일면
웃음의 생태학 – 이종문의 시조세계
우리 시 전통의 견인차
쓸쓸하고 정갈한 존재의 시간 – 이우걸의 시조집『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

 <출판사 서평>

해석은 곧 대상을 자기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 해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시와 시조의 흐름과 양상에 대한 내재적 통찰과 전망을 함께 제시한
평론가 엄경희의 다섯 번째 평론집 『해석의 권리』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매저키스트의 치욕과 환상―최승자론」으로 등단한 평론가 엄경희의 다섯 번째 평론집 『해석의 권리』가 출간되었다. 『해석의 권리』는 모두 3부로 구성이 되어있다. 1부와 2부에서는 정진규, 문정희, 신현정 등 문단의 원로는 물론 박찬일, 장석남, 장정일, 박라연, 우대식 등 중견 시인과 신인들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미적(美的)인 성과 여부를 내재적 측면에서 정치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특히 3부에서는 현대시조의 독자층 확대를 위한 제언과 함께 이우걸, 이종문 등의 시조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 우리 시조의 흐름과 양상에 대한 조망과 이해를 돕고 있어 각별하다.

객관적 해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최상의 해석은 주관성의 밀도가 최고치로 높아질 때 탄생한다!

이번 평론집의 특징은 ‘해석의 권리’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해석’이라는 것을 문학평론의 중요한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행위가 해석의 보편적(일상적) 의미라면, 엄경희 평론가는 해석의 지평을 ‘익숙한 자신을 낯선 것으로 성찰하는 방법’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계기로 확장해서 작품 분석의 치밀성을 강화한다. 이는 ‘주례사 비평’ 혹은 ‘인맥 비평’이 알게 모르게 난무(?)하고 있는 평론계의 현실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입장이 반영된 것이며, 평론의 고유성에 대한 저자의 완고한 입장이 표명된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평론의 객관성’ 혹은 ‘가치중립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작품의 내재적인 미학을 간과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는 『해석의 권리』 전체를 관통하는 작품 분석의 준거로 작동되고 있다. 그러한 점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해석적 언술에는 해석자의 삶의 태도와 취향과 철학이 이면화된다. 해석은 곧 대상을 자기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 해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객관은 언어화되기 이전의 대상 그 자체로서만 가능하다. 해석의 객관성이란 대상의 객관성이 아니라 해석자의 주관성이 갖는 설득의 힘을 의미한다. 최상의 해석은 주관성의 밀도가 최고치로 높아질 때 탄생한다.―[저자 서문] 중에서

해석자가 자신의 주관성을 근거로 작품의 내재적 의미를 분석하고, 그 작품이 갖는 성과와 한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상당히 미묘하다. 특히 해석자가 주례사 비평이나 인맥 비평의 벽을 넘어서려할 때 그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 점에 대해 엄경희는 ‘해석자의 주관성이 갖는 설득의 힘’을 강조한다. 이번 평론집 2부에 실린 ‘통속적 연애시의 재생산-류근의 시집 『상처적 체질』’이라는 글은 그러한 지점에서 저자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사랑이라는 테마가 유구한 것처럼 우리에게 오로지 사랑과 연애와 추억에 헌신하는 시적 화자의 등장은 이미 낯선 것이 아니다.”라는 보편적 전제 하에 류근의 첫 시집 『상처적 체질』에 실린 사랑시를 분석하면서 그의 시에 등장하는 ‘님’은 사랑의 보편적 울림으로 다가오는 ‘영원불변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서정시는 아름다운 고백 장르이지만 그 아름다움이 치장에 가까워질 때 인생의 진실을 가릴 수 있다.”는 전제와 함께 그의 시집에 실린 시에 대해 “노을과 편지와 별빛으로 버무려진 사랑 고백은 너무 상투적이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서정시의 상투성이 통속으로 재생산되는 이유를 저자는 “철저한 정신”의 결여에서 찾는다. 분석의 말미에서 “그가 노을과 우체부와 별빛으로 치장한 권태로운 미의식의 보호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려 할 때 그가 지향하는 낭만성의 깊이가 확보될 수 있을 듯하다.”라고 전한 메시지가 어떻게 ‘설득의 힘’을 가질 것인지는 해석자나 시인의 몫이라기보다는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현대시조에 대한 새로운 지평의 제시

엄경희의 다섯 번째 평론집 『해석의 권리』는 현대시는 물론 현대시조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일반인들에게 시조란 그저 ‘옛날 사람들이 쓴 고루한 내용의 시’라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저자는 “시조 독자층은 극단적으로 말해 창작자 자신과 극소수의 일반 독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단언으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지적하면서, 시대적 감수성과 괴리된 시조가 현대인의 감성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모색한다. 핵심적 결론은, 형식의 변화와 함께 현대적 감수성을 작품에 적극 수용하려는 창작자들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결론에 근거해 전통 시조의 형식미를 자연스럽게 변형하면서 근대 이후 생활세계로부터 파생된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문제들을 작품에 접목시킨 이우걸 시조시인과 이완의 철학을 바탕으로 호모 루덴스적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실용적 가치를 가로질러 쾌락의 원칙에 충실한 희극적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이종문 시조시인의 작품을 분석한다. 분명한 것은, 저자가 분석한 시조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루하지 않다는 점이다. 시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이 『해석의 권리』가 갖고 있는 문학사적인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훼손과 생성의 사유

해석 또는 평론의 주요한 역할은 독자들에게 작품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감상의 통로를 제공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해석은 대상에게 가해진 폭력일 수도 있다. 대상은 훼손되고 이질적인 언어 조직 속으로 용해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의미체로 생성되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발언은 독자들에게 평론에의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무조건적인 칭찬이나 가치중립적인 애매한 태도에서 벗어나 해석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그것이 대상에 가해진 폭력일 수도 있지만―텍스트의 의미를 새롭게 생성해가는 자세는 독자들에게 평론이 갖고 있는 매력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한 계기가 바로 『해석의 권리』가 독자와 소통하는 지점이며, 이번 평론집에 실린 모든 글들의 철학적 바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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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스티븐슨의 자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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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220쪽/ ISBN-13: 9788997740130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험추리소설 『자살클럽』 완역본!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겸 시인 겸 에세이스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9세기 브리튼 신(新)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자로 평가된다. 천재적인 작가로서는 드물게도 살아있을 때 이미 대중적 인기를 누린 스티븐슨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문학작품을 창작한 작가 26명 중 한 명으로 아서 코넌 도일,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 체사레 파베세 같은 걸출한 문인들로부터도 찬사를 받아왔다.
스티븐슨은 단지 ‘살아있을 때 대중적 인기를 누린 작가’라는 사실로 말미암아 오히려 문학평론가들 사이에서 부당할 정도로 과소평가되어왔다. 더구나 그의 많은 작품들 중에도 유독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두 소설만 워낙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인기를 누려서 그런지, 하여간, 그의 다른 많은 작품들은 거의 (역시 한국에서는 더더욱) 주목받지 못하는 기현상마저 벌어졌다.
1878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런던매거진》에 연재된 단편소설 3편으로 구성된 중편소설 『자살클럽』은 스티븐슨 특유의 기질과 문체를 유감없이 예증하는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살클럽』은 스티븐슨 특유의 기질과 문체, 그의 내밀한 정신과 모험적 체험들, 향후 그가 창작할 작품들의 밑그림들까지 집약된 최초의 완성작으로 평가될 수 있다. 물론 『자살클럽』은 『보물섬』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런던매거진》의 독자들은 『자살클럽』을 재미있게 읽었고 대체로 호평했다.

유럽 각국에서는 물론 미국과 캐나다에서
영화, TV 및 라디오 드라마, 연극으로 각색되어 수십 차례에 걸쳐 상영,방영,공연

『자살클럽』은 1882년 『새로운 아라비안나이츠』에 수록되어 출간된 이래 1896년에는 미국에서 별도의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 이후 『자살클럽』은 비록 소설 자체로서는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으되 그것이 지닌 문학적,예술적 가치와 풍부한 의미를 각별히 주시하는 문예인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1909년 처음으로 이 소설을 각색한 4분짜리 단편영화가 미국에서 제작되었고, 1913년에는 독일에서 40분짜리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유럽각국에서는 물론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영화, TV 및 라디오 드라마, 연극으로 각색되어 수십 차례에 걸쳐 상영, 방영,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의 풍부한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증명한다. 심지어 2011년에는 플로리즐과 제럴딘 대신에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가 주인공들로 등장하고 제목도 『셜록 홈스와 자살클럽의 모험Sherlock Holmes and the Adventure of the Suicide Club』으로 각색되어 연출된 연극이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될 정도로 이 소설은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도 겸비했다.

“삶”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패러독스
자살을 기도하고 의욕하는 인간이야말로 오히려 삶을 기도하고 의욕하는 인간이다

물론 『자살클럽』이라는 제목에 자극되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종의 비밀모임이 결성되어 1977~1983년까지 활동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임은 실제로 자살을 위한 것이 전혀 아니라 회원들이 기분전환을 위해 가벼운 농담을 즐기는 친목단체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소설의 제목을 혹시라도 경솔하고 맹목적이며 무분별한 비관주의자나 염세주의자나 허무주의자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그런 심각함이 오히려 그들의 경솔함과 맹목성과 무분별함을 되돌아보게 만들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슨이 이 소설의 제목을 “자살클럽”으로 뽑은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바로 이런 패러독스―G. K. 체스터턴도 간파한 패러독스(<부록 1>참조)―의 절묘한 효능을 이 소설이 발휘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모든 자살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런 만큼 자살을 심각하게 성찰할수록 자살은 경솔하고 맹목적이며 무분별한 짓이다’는 것이 분명해진다는 패러독스, ‘자살을 기도하고 의욕하는 인간이야말로 오히려 삶을 기도하고 의욕하는 인간이다’는 패러독스를 스티븐슨은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여기에 곁들여 말하자면, “자살이야말로 유일하게 진실로 중대한 철학의 문제이다. 삶이 살아갈 가치를 지녔느냐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 곧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다.”고 말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도 “자살”을 철학의 문제로 상정함으로써 “삶”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패러독스를 구사한다.
그래서 “자살클럽”이라는 이 소설의 제목과 내용이 가동시키는 패러독스의 효능―이토록 기막힌 묘미―을 만끽하는 과정은 심각하기보다는 오히려 흥미진진할 것이다. 그것은 심각한 주제를 경쾌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스티븐슨의 강인하고 합리적인 낙관주의와 보헤미안 의지를 만끽하는 의미심장한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자살클럽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왕자와 대령의 놀라운 모험과 추리

다소 어둡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스티븐슨 특유의 간명하고 치밀하며 경쾌한 문체로 풀어낸 이 흥미진진한 모험추리소설의 무대는 빅토리아 시대 Victorian era: 브리튼 제국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이 재위한 1837~1901년의 런던과 프랑스 파리이다.
주인공은 모험을 즐기는 보헤미아의 왕자 플로리즐과 그의 슬기롭고 충직한 부하 제럴딘 대령이다. 평소처럼 즐거운 모험꺼리를 찾아 런던의 길거리로 나선 왕자와 대령이 갑자기 내리는 진눈깨비를 피해 들어간 선술집에서 ‘크림파이를 공짜로 나눠주는 한 청년’과 조우하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 청년은 왕자와 대령을 자살클럽이라는 일종의 비밀단체로 유인한다. 그 단체에서 은연중에 풍기는 사악하고 음흉한 기운을 감지하고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모험심에 사로잡힌 왕자는 위험을 직감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령의 만류를 무릅쓰고 자살클럽의 비밀회합에 동참한다. 그때부터 자살클럽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왕자와 대령의 놀라운 모험과 추리가 런던과 파리를 무대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소설에는 줄거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음미할 만한 것들이 곁들여져있다. “보헤미아 왕자 플로리즐”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겨울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보헤미아 왕자 플로리즐”과 같다는 사실과 이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웨일즈 왕자”라는 사실, 왕자와 대령을 자살클럽으로 유인하는 “크림파이를 나눠주는 청년”의 실제 모델이 스티븐슨의 몽상적이고 예술적인 사촌형 “로버트 앨런 스티븐슨”이라는 사실, 그리고 스티븐슨이 런던에 있는 사촌형 모친의 자택 응접실에서 사촌형과 대화하다가 이 소설의 밑그림을 발상(發想)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아울러 이 소설에는 애인과 사촌형을 생각하는 스티븐슨의 마음도 은연중에 암시되어 있다.
이 소설을 집필할 즈음 스티븐슨은 패니 오스번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그의 부모는 아들과 그녀의 교제를 반대했다. 그래도 패니 오스번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 스티븐슨은 이듬해 친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모도 모르게 미국여행을 결행했다. 또한 몽상적인 예술평론가이던 사촌형은 스티븐슨을 문학세계로 인도한 장본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간명하고, 치밀하고, 경쾌한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스티븐슨의 모험추리소설

『자살클럽』이 겸비한 또다른 흥미로운 사연은 주인공들인 플로리즐과 제럴딘의 성격과 관계이다. 플로리즐은 호기심을 가득 품은 모험꾼이면서도 상상력과 과단성을 겸비한 인물로서 상황을 주도한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면서 재치와 기지를 겸비한 제럴딘은 플로리즐을 충직하게 보좌한다. 이런 사연을 감안하면 이 두 인물과 비슷한 유명한 또 다른 두 인물이 상기될 수 있는데, 그들은 바로 코넌 도일의 주인공들인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이다. 여기서 누군가 “웬만한 추리소설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명콤비’탐정들인 이 두 인물이 플로리즐과 제럴딘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면 과언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홈스와 왓슨이 플로리즐과 제럴딘의 후신(後身)들일 개연성도 없잖아 보인다. 왜냐면 『자살클럽』은 1878년 발표되었고, 늦게 잡아도, 1882년에 이미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지만, 셜록 홈스가 최초로 등장하는 코넌 도일의 탐정추리소설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는 1887년 발표되었으며, 『자살클럽』의 후반부로 갈수록 플로리즐의 역할이 셜록 홈스의 역할과 닮아가고, 코넌 도일이 자신의 독서회고록 『마법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의 상당부분을 스티븐슨의 작품들에 할애할 정도로 스티븐슨의 작품들을 탐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실들만을 근거로 두 콤비들의 선후관계를 확증할 수도 없을 뿐더러 굳이 확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살클럽』은 이런 개연성을 얼마간이나마 겸비한 덕분에 독자들에게 탐정추리소설을 읽는 묘미도 안겨줄 수 있는 작품이기만 해도 충분한 가치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는 기괴한 등장인물들인 노엘 박사와 자살클럽회장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에서 찾아질 수 있다. 물론 동일인의 이중인격을 대변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는 다르게, 노엘 박사와 자살클럽회장은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인물들이다. 하지만 노엘 박사와 자살클럽회장이 기묘하게도 서로 번갈아가듯이 출몰하는 『자살클럽』의 결말부분은 두 인물이 은연중에 담합하거나 결탁하는 느낌을 자아내는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떠올리면 그런 느낌은 더욱 짙어지는 듯하다.
스티븐슨은 이 소설을 연작형식으로 집필하면서 각 단편의 말미에 일종의 제보자(提報者)를 내세워 후속편을 예고한다는 것이다. 『아리비안나이츠』에서 세헤라자데가 제보자 역할을 하는 경우에 비견되는 이런 기법은 스티븐슨이 연재하던 후속편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감을 자극할 뿐 아니라 저자 본인의 창작의욕도 배가시키는 미덕을 겸비한 것으로 보인다.
추리소설의 대부 아서 코난 도일이 고전작가로 극찬한 스티븐슨 작품은 간명하고, 치밀하고, 경쾌한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자살클럽』은 스티븐슨 특유의 기질과 문체, 그의 내밀한 정신과 모험적 체험들, 향후 그가 창작하는 작품들의 밑그림들까지 집약된 최초의 완성작으로 평가될 수 있다.
“패러독스의 왕자(prince of paradox)”라는 별명을 얻은 잉글랜드의 작가 길버트 케이스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은 스티븐슨이 지닌 특출한 매력의 근원은 그가 부정적 용기뿐 아니라 긍정적이고 서정적인 명랑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했다. 그러한 매력의 근원이 『자살클럽』에 그대로 투영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자살과 관련된 보도들이 끊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이 소설은 각별하게 읽혀져야 한다.

■ 『자살클럽』에 대한 비평들

“스티븐슨의 대표적 특징은 단어 몇 개만으로도 가장 간결한 배경공간을 독자들의 마음에 선명히 그려서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진기한 본능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토록 간결한 공간에서 독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목격할 수 있다.”?아서 코넌 도일 (Arthur Conan Doyle, 스코틀랜드의 추리소설가)
“신선하고 놀라운 사건들로 가득한 『자살클럽』에서는 등장인물들도 대담하게 성공적으로 묘사된다….”?윌리엄 헤리스 폴락 (William Herries Pollock, 1850~1926: 작가 겸 언론인 《새터데이리뷰Saturday Review》 편집장)
“긴박한 사건들일수록 더 야심적으로 더 태연하게 묘사하는 [스티븐슨의] 특기가 능수능란하게 구사된 『자살클럽』은 스티븐슨의 최고걸작으로 평가될 수 있다…. 첫 두 페이지만 읽어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헨리 제임스 (Henry James, 1843~1916: 미국의 소설가)
“『자살클럽』에서 스티븐슨은 ‘남성들이 전통적 남성역할의 개념을 완전히 상실하여 퇴락한 사회의 사나이다움’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스티븐슨이 사나이다움을 열망하여 이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는 사실은 전통적 남성역할들이 인위적이고 괴로운 결과들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뚜렷이 암시한다.”?부케트 아카군 (Buket Akgun: 터키 이스탄불(Istanbul) 대학교 영어문학과 교수)

■저자소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
1850년 11월 13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등대건축기사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스티븐슨이 타고난 병약한 체질은 오히려 그에게 활동적이고 모험적인 삶을 향한 열망을 심어주었다. 그런 열망은 여행을 즐기고 문학을 꿈꾸는 청년으로 스티븐슨을 성장시켰다. 아들도 등대건축기사가 되어 가업을 잇기를 바라던 부친의 바람대로 1867년 에든버러 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금세 공부에 흥미를 잃고 구세대 중류계층의 종교, 위선, 악습을 거부하는 보헤미안으로 자처하며 자유분방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변호사자격증을 따면 문학을 해도 좋다는 부친의 조건부 제안을 받은 스티븐슨은 1871년 같은 대학교 법학과로 전과하여 법학을 ‘억지로’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억지공부’를 하다가도 건강이 악화되면 유럽 남부를 포함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건강을 다스렸고 여러 문학인들 및 예술인들과도 교유했다. 그런 여행들은 특히 스티븐슨의 문학에 풍부하고 귀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1875년 스티븐슨은 변호사자격증을 땄지만 변호사로 활동하지 않고 여행과 문학에 본격적으로 몰두했다. 1876년 9월 프랑스 파리 남동부의 강변마을 그레쉬르루앙에서 열 살 연상의 미국여성 패니 오스번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1878년 오스번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1879년 그녀를 만나려고 미국여행을 결행한 스티븐슨은 힘겨운 여정을 감내한 끝에 1880년 오스번과 결혼했다. 1878년은 특히 첫 여행기 『내륙항행』을 출간했고, 「삼중갑옷」이라는 걸출한 에세이를 발표했으며, 특유의 강인하고 합리적인 낙관주의와 경쾌한 문체를 본격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중편모험추리소설 『자살클럽』을 비롯한 중단편소설들을 문학잡지에 연재함으로써 스티븐슨의 문학이 전성기로 접어든 의미심장한 해였다. 이후 1887년까지 오스번과 의붓아들과 함께 스위스, 프랑스, 잉글랜드, 미국을 여행하며 집필을 병행한 스티븐슨은 최대인기를 얻은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유괴된 소년』 같은 소설들과 독특한 에세이들, 시집, 여행기들도 발표했다. 1888년 스티븐슨은 재차 악화된 건강을 다스리기 위해 가족과 함께 전세로 빌린 요트를 타고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여행했다. 1890년 10월 자신의 체질에 가장 적합하게 여겨진 사모아 제도의 우폴루 섬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스티븐슨은 그 섬의 호젓한 마을 ‘바일리마’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동안 의붓아들 로이드와 함께 『난파선 약탈자』와 『썰물』같은 장편소설들도 집필했다. 1892년 12월 4일 급성뇌출혈로 사망한 스티븐슨은 바일리마 자택 뒷산의 꼭대기에 묻혔다.

■목차
크림파이를 나눠주는 청년 이야기 007
의사와 사라토가트렁크에 얽힌 사연 065
이륜마차를 타고 겪은 모험 11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연보 151
-부록 1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특징들 – G. K. 체스터턴 177
-부록 2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개성과 문체 – 윌리엄 로버트슨 니콜 195
-번역자 후기 : 『자살클럽』의 가치와 미덕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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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귀수 시인의 내면일기, 숭고한 노이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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