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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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게시판에 후기를 쓰고 싶은데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어요.
원인을 전혀 모르겠습니다ㅠ
매번 데이터베이스 오류라면서 로그인하라는 팝업이 뜨는데
항상 로그인한 상태에서 글을 쓰거든요.
도대체 왜 안되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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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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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보고 하늘하늘거리는 나비에게 반해 치였던지라 올해도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던 작품입니다. 2014년 초연 때 한번밖에 못 봐서 대략적인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확실히 보이는 게 더 많더라구요. 채윤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탐정물 같아요.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이죠. '우리 세종대왕님은 우주 최고 성군이셔'하는 이야기와 '우리가 조선판 셜록홈즈다' 하는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돼요. 특히 무대영상의 사용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그런데 관람을 하면 할수록, 제가 소설과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인지 의문점이 점점 더 커지는 겁니다. 이번 후기는 제가 극을 보면서 가졌던 의문과 나름의 결론(?)을 정리하는 식으로 써볼까 해요. 극 중 일어나는 사건들을 밝혀진 진실 부분부터 거꾸로 타고 올라가는 과정이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스포가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Q1. 최만리 대감은 윤필에게 고군통서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나?
첫번째 살인사건 당시 유력한 용의자였던 학자 윤필은 "최만리 대감의 지시로 고군통서를 찾으러 갔으나 그 책은 이미 불타 없었다"고 말합니다. 최만리는 "그런 명을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죠. 여기서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라고 채윤(및 관객들)은 짐작합니다. 마지막 채윤의 설명에 의하면 최만리가 고군통서를 없애려고 한 건 사실이고, 극중 앞뒤 문맥상 최만리가 처음 진술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아랫사람인 일개 학사가 윗사람인 대제학으로 거짓말을 할 리 없고 높으신 분이 일을 틀어지면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니 최만리가 시치미를 뗀 것은 별로 놀라울 것이 없어요. 여기서 의아한 것은 최만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최만리가 "윤필에게" 지시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토록 중요한 책을 자기 사람도 아니고 집현전 학사인 윤필에게 찾아오라고 지시한 것은 굉장히 부자연스럽습니다. 2막에 나왔다시피 의 세계관 안에서는 조정 대신들과 학사들의 사이가 좋지 않고 오히려 대립하는 입장이거든요. 자기 사람도 아니고, 세종의 학사임이 분명한 윤필에게 세종의 약점을 찾아서 가져오라고 지시하면 일이 틀어질 게 뻔한데 말이죠.. 윤필이 비밀시계의 회원임을 몰랐다고 해도 너무 안일해요. 도대체 왜 최만리는 윤필에게 일을 시킨 것일까요? 책을 불태우는 일을 맡았던 장성수도 아니고..;;; 장성수와 달리 윤필은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윤필은 겉보기에는 "장성수의 비천한 신분을 혐오"하는 사대부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Q2. 명나라는 어디까지 개입이 되어 있었나?
이것은 자객들이 왜 굉장히 눈에 띄게 명나라 복장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의문입니다. 몰래 사람을 죽이는 자객 주제에 처음부터 너무 '나 명나라 사람이오~ 내 뒤에 명나라가 있소~' 하고 떠벌리는 듯한 옷차림을 하고 다닌단 말이죠. 아무리 명의 위세가 드높아도 다른 나라의 궁 안에 자객을 보낸다는 건 내정간섭이고, 심각한 도발입니다. 자기들이 개입되어 있는 걸 들켜서 좋은 게 1도 없어요. 게다가 처음엔 의문의 살인사건이었잖아요. 학사들이 죽어나가는데 이유를 모른다는 게 포인트였는데… 최대한 말이 되는 쪽으로 생각해보자면, 이거야말로 경고의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조선의 한글창제라는 사안을 명은 이미 알고있고, 우리가 알고 있다는 걸 티를 내고 다니면서 조심하라고 협박하는 거죠. 혹은 들켜도 명이랑 관련있다는 것처럼 보이면 조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꼼수일지도 모르겠어요.

Q3. 왜 일정한 법칙에 따라 학사를 죽였나?
극중에서 연쇄살인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일어나고, 채윤과 가리온은 여기에 대해 경고 혹은 예고라고 말합니다. 들을 당시에는 말이 되는 것 같았어요. 살인의 법칙을 알아채고 연쇄살인을 막는 건 탐정물의 흔한 구도니까요. 하지만 진실까지 다 알고 생각해보면, 뭔가 어색합니다. 자객들은 세종대왕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잖아요? 그냥 고군통서를 손에 넣기 위해, 고군통서를 손에 쥔 사람들을 그냥 차례대로 죽였을 뿐입니다. 굳이 번거롭게 水木金土 법칙에 맞춰 시체 유기장소를 꾸밀 필요도 없었어요. 자객들의 목표는 그저 고군통서를 손에 넣는 것 뿐이에요. 이미 세종의 학사들만이 죽는 시점에서 경고의 효과는 달성했고, 누가 고군통서를 다음으로 가져갈 것인지 자객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으니 예고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고군통서를 가져간 사람을 우리편도 모르는데 적인 암살범들만은 기가 막히게 알고 있다는 게 신기방기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책이 전해진 순서는 무작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고군통서를 전달하는 어떤 순서가 있었고, 그 순서를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객들이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기에 다음 사람이 죽었던 것 같아요. 굳이 시체를 법칙에 맞춘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어요ㅠㅠ 누구 아시는 분 저에게 제보 좀…

Q4. 최만리 대감은 어디까지 알고있었나? 그것을 어떻게 알았나?
최만리는 세종을 해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오직 글자를 만드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 여겨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글자 관련된 자료와 고군통서를 불태우려고 했던 것이죠. 최만리는 딱히 고군통서를 손에 넣을 필요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는 명나라와 결탁한 집제학의 음모를 몰랐다고 봐야 마땅합니다. 알았다면 호통을 치며 막았을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세종이 자객에게 공격당하기 직전에 갑자기 채윤이에게 "침전에 간악한 자들이 침범할 것이니 이를 막으라"고 언질을 줍니다. 명나라/집제학 쪽에서 정보를 흘렸을 리는 없고, 대제학이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관련해 고군통서의 흐름을 혼자 추측해본 결과 지금쯤 임금의 손에 고군통서가 있을 거라고 짐작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것을 깨닫는 시점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찾아온(?) 일개 겸사복에게 다급히 알린 게 아니었을까요? 만약 시간여유가 있었다면 군사를 움직이거나 임금께 직접 아뢰면 아뢰었지 신분낮은 "겨우 겸사복 따위"에게 임금의 안전 같은 중책을 맡겼을 것 같진 않거든요.

Q5. 채윤은 언제 최만리 대감의 언질을 받았나?
이 부분은 정말 연출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윤은 성삼문을 구하고나서 바로 소이를 구하러 달려갑니다. 그때 소이를 구하러가면서 임금 처소의 침입자를 눈치채고 바로 침전으로 향했고, 그후에 칼싸움을 벌이다 사신관까지 쫓아가서 자객을 죽이고 붙잡힙니다. 즉, 채윤이 최만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관객들이 보기에는 전혀 없었어요. 채윤이 최만리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집현전 학사들의 문신을 조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1막이 마지막이었는데, 도대체 언제 최만리를 만나 "침전에 침입자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사건을 해결하는데 그렇게 결정적인 역할을 할 장면이 있었다면 적어도 채윤이 최만리 대감을 찾아가 말 한마디 추궁이라도 하는 장면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채윤이 갑자기 모든 진실을 알고 술술 말하는 게 너무 당혹스러웠습니다. 분명 아까까지는 관객과 채윤의 정보량이 같았는데, 바로 다음 순간에 관객 빼고 채윤 혼자 모든 걸 알고 있어요;; 원작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각색하면서 이 부분은 좀 더 친절하게 풀었어야 되지 않나 싶어요.

저는 소설과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고 가무극으로만 를 접해서, 다른 컨텐츠를 통해 보면 아마 위의 의문들이 풀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드라마 같은 경우는 24부작 정도로 꽤 길다보니 세세한 설정이 더 아귀가 잘 맞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의문 자체가 이미 극 안에 답이 있는데 저 혼자 머리싸매고 끙끙댄 것일지도 모르겠어요ㅋㅋ 무엇보다 저기 제가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써놓은 것은 전부 100% 저의 추측에 불과하니 절대 정답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혹시 정확한 답변을 알고 계신 분들은 댓글로 좀 알려주세요. 저 스포 좋아합니다… 잘 봅니다… 알면서도 드라마 소설 재밌게 잘 보겠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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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들 – 우리 모두가 건너온 익숙한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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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동창생의 결혼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엘리트들이 있습니다. 호텔 화장실에서 만난 그들은 시계를 자랑하고, 구두를 자랑하고, 명품 양복을 자랑하고, 각자의 명함을 무기로 상대를 조준합니다. 서로를 만나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막상 서로 앞에서는 웃으면서 이빨을 잘 감춰두죠. 그러다 어떤 '종소리'가 그들을 과거로 데려갑니다.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였던 1992년, 명문외고 3학년 독어과 A반의 어느 날로-.

 

유혹은 순간이지만 타락은 영원이어라

명준과 수환은 친구입니다. 제주도 출신이라 친척집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수환이가 공부하러 명준의 집에 들락날락 할 정도로 절친한 친구죠. 이 둘은 이제 곧 수능으로 바뀔 입시제도에 대한 공포로 어떻게든 중간고사를 잘 보려고 노력하지만, 미적분 수학부분이 너무 어려워 애를 먹습니다. 그러다 "답안지를 돈주고 사는 애들이 있다더라"하는 소문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자 "돈 있는 것들은 돈으로 공부하는구나"하고 한탄하다가 이내 컨닝을 할 것을 모의합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전학온 꼴통 종태에게 금방 들키고, 둘은 종태에게 같이 컨닝할 것을 제안하면서 점점 이야기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커지고 맙니다.

 

모든 것이 성적 위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교실에서, 컨닝의 유혹은 달콤합니다. 성적은 절대적이에요. 심지어 '모범생'이냐 아니냐도 성적이 얼마나 좋은지에 달려 있으니까요. 아무리 학교생활을 성실히 하고 교칙을 잘 준수했어도, 성적이 높지 않으면 모범생이라고 불리지 못합니다. 그냥, 평범한 학생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2등급에 턱걸이하고 있는 수환이를 모범생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조금 의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겁니다. 난 모범생들이었는데, 반장이었는데, 내가 최고였는데- 여기선 평범한 학생으로 떨어진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용납할 수 없어요.

 

하지만 중학교 때 공부 좀 했다 싶은 아이들이 모이는 외국어 고등학교이니 아무래도 성실히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한계를 서서히 절감했겠죠. 관객들은 명준이가 처음에 살짝 흔들리다가, 이내 컨닝을 결심하고, 들키자 순간적인 기지로 종태까지 끌어들이는가 하면,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한 민영이를 대놓고 조롱하고, 민영의 반격으로 인해 위기를 맞자 오히려 광기로 번뜩이며 신이라도 된 것마냥 우월감에 젖는.. 그 모든 타락의 과정을 지켜봅니다. 그리고는 생각하게 되죠. 명준이는 비뚤어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자, 학력주의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구요. 그리고 그 괴물은.. "진짜배기" 엘리트에 처참하게 패배합니다.

 

Born to Elite

민영이는 참 완벽한 학생이에요. 대한민국의 부모라면 누구나 다 자기 자식이 민영이처럼 되길 바랄 겁니다. 공부잘하고, 똑똑하고, 배려심깊고, 성격이 좋아 모두와 잘 지내고, 신앙심도 깊은데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순간조차 비굴하지 않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체는 명준이지만 작품 속에서 캐릭터적으로 돋보이는 건 민영입니다. 아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엄친아(엄마친구아들. 어딘가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로 곱게 자란 민영이를 부러워하는 무의식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죠. 힘든 환경에서도 아득바득 성공을 이루어낸 사람보다 부모 잘 만나 성공을 물려받은 사람 쪽이 훨씬 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민영이의 그 완벽함은 결국 자신은 다른 사람과는 태생부터 다르다는 오만함에서 나온 아량에 불과합니다. 평소에 다른 아이들의 과한 행동을 참아줄 수 있었던 건 그게 본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걸 뿌리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문제가 잘 안 풀린다고 귀찮게 구는 반 친구에게 풀이방법을 알려준다고 내 성적이 떨어지지 않아요. (난 원래 똑똑하니까) 길을 막고 행패를 부리는 불량배들에게 돈 좀 뜯기고 물건 좀 뺏긴다고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죠. (그냥 다시 사면 되니까) 그렇지만 답안지를 샀다는 의심을 받는 건 다릅니다. 그건 설령 진실이 아닐지라도 소문이 한번 퍼지고 나면 민영이가 상당한 수고와 모욕과 오해를 감당하지 않고서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죠. 물론 그 이후에도 이전만큼의 위치를 회복할 수 없음을 물론이구요. 그리고 그걸 깨닫자마자 민영은 이빨을 드러냅니다.

 

16장 화장실에서의 민영이와 아이들의 대립은 <모범생들>이 어떤 성격의 극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이라이트입니다. 민영이는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판을 뒤집었고, 부정행위에 참여한 아이들 모두에게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벌을 내렸죠. 그리고는 학교 측에 너도 연루되어 있다고 말한 거라고 협박하는 수환과 종태에게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외칩니다. "이 학교가, 저 교문 밖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이 순진한 새끼들아!!!!!!!!!!!!!" 민영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또 대응이 갈리죠. 명준이는 무릎을 꿇고, 수환이는 방관하고, 종태는 그걸 견딜 수가 없어요. 세 명, 아니 네 명의 아이들의 평생의 가치관은 바로 그 순간, 거기 그 비좁은 화장실에서 결정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난 세상의 왕이 될꺼야

극을 보면서 의아했던 점 중에 하나는 그렇게 사람 심리를 잘 알고 종태를 쥐락펴락 했던 명준이가 왜 그렇게까지 종태에게 잔인한 짓을 했는가 하는 거예요. 사실 민영이 어머니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무릎을 꿇겠다는 그 문구! 그것만 없었어도 종태가 명준이와 수환이에게서 등을 돌리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이미 야구장에서 종태는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에게 무얼 바라는지, 그리고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선히 원하는 것을 들어줘요. 그런 종태에게 아이들이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요구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선민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의식적으로 한 일이었다면 그 이후의 태도와 합쳐져 너무 모순투성이가 되어 버리거든요. 다시 치른 재시험에서 종태를 챙겨주는 명준이가 설명이 되지 않아요.

 

제 생각엔 명준이가 종태를 끝까지 안고 가려고 한건 물론 "최후의 보루"로서 이용하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종태가 명준이에게 어떤 권력욕을 맛보게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명준이는 내내 민영이처럼 되고 싶어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그런 부분이 좀 덜 느껴졌지만, 적어도 이빨을 드러낸 후의 민영이를 동경하고 닮고 싶어한 건 확실하죠. 불량배들에게 시달리면서 미친듯이 민영이의 대사를 똑같이 되뇌이잖아요. 하지만 똑같은 말을 한다고 똑같은 사람이 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스러웠을 거예요. 그런 명준이에게 종태는 아직 '자기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종태는 명준이가 내민 컨닝답안지를 그냥 삼켜버리고 말죠. 그 후로는.. 답안지를 내밀기 전보다 더 초라해진 자기 자신만이 남았습니다.

 

민영이는 본인이 호언장담한 대로 사법고시를 패스해 검사가 되었다가 정치에 뛰어드는 야심만만한 사내로 성장했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 2분단에 앉아있던 "돈으로 공부하는 육성회장 딸" "예쁘고 키크고 인생에 컴플렉스가 없는" 이연희와 결혼하죠. 그리고 오늘 여기, 민영의 결혼식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참여한 명준이 있습니다. 친한 척 "어이 서검사~" 하고 손을 흔들면서 어릴 때 모욕을 당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듯 표정관리를 하면서 말이죠. 그런 그를 보고 종태는 씁쓸하게 말하죠. 너흰 참 열심히 산다고, 고등학교 때랑 똑같이.. 참 열심히 산다구요. 명준이도 순간 어두움이 스쳐지나가면서 말합니다. "맞아, 우린 그때랑 똑같아.." 그곳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래서 학생 때보다 더 높이 많이 올라갔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거죠. 민영, 명준, 수환, 그리고 종태까지. 모두가 다 똑같습니다. 여전히 같은 포지션 같은 위치에 놓여있어요.

왜 쉽게 회전문을 못하냐 물으신다면

사실 보는 내내 너무나 불편한 극이었습니다. 재미가 없어서? 아니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서요. 하루종일 교실에 틀어박혀 공부,공부,공부만 하면서 모든 인생을 대학진학 뒤로 미루는 모습, 야간자율학습시간이 될 때쯤엔 비몽사몽으로 책상 위에 엎어져서 쪽잠을 자는 모습,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스트레스받는 모습, 부모님의 (배려의 탈을 쓴) 과도한 기대감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모습…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을 살아낸 사람 중에 과연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마치 제 과거 학창시절로 돌아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듯한 압박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 숨막히는 교실,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았던 고3의 문턱에 다시금 앉아서 주변을 바라보는 기분이었어요. 완전한 무채색으로 너덜너덜한 하루하루였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힘든데, 그 이후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더더욱 암담해집니다. 부정행위를 저지르고도 친구에게 덮어씌우고 무탈하게 자라, 그렇게 소원하던 사회계급 상위 3%로 엘리트 계층으로 성장하죠. 그런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나쁜데, 그렇게 대한민국의 주축이 된 어른으로 자라난 현재 모습들이 너무나 끔찍해서, 그냥 얼른 극이 끝나고 일어서서 나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되더라구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 일명 대한민국 '개저씨'들! 돈만 있지 교양과 품격은 바닥을 기는데,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떵떵거리기 바쁘고, 그러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아닌 척 고상한 척 가식떨기에만 급급한 위선자들! "아버지 날 나으시고 원장님 날 만드시고.. 예쁜 건 흔하지"나 "여자는 있어. 결혼할 여자가 없는거지" 같은 대사를 보면 이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서 듣고 있는게 정말 스트레스였습니다. 이미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을 차고 넘치게 만나는데 왜 극장에서까지 만나야 하나 싶었어요.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바꾸잖아요"라고 믿는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그런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물려주는 어른으로 크는 이야기. 너무 현실적이라 보기 힘든 이 이야기는 아마 그래서 연극으로서의 의의가 있겠지만, 그래서 쉽게 재관람하기가 힘든 극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만큼 잘 만든 극이라는 얘기이기도 합니다만… 아마 앞으로 한번 정도만 더 보고 그만 보지 않을까 싶네요. 대한민국 개저씨들은 현실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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