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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녀린 것들의 외로운 떨림 정우영,「그 가녀린 것들의 외로운 떨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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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백화(白樺)). 마음이 이런 시구에 젖어 잠시 입이 다물리고, 연하여 뭔가 다른 데 이야기가 꿍얼꿍얼 궁금해지는 걸 보면 우리가 아직 자연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난 아이들은 아닌 듯싶습니다. 늘 문지방을 내다보는 자리에 백석이 있듯, 세상 나대며 사는 요즘 시인들이래도 늘 엉덩이 붙이는 한 자리는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움이 들고 시가 시작되는 자리 말입니다.

문학집배원 전성태

출전_ 『시는 벅차다』(우리학교)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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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인생은 고달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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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인생은 고달파중에서
      
아버지 눈에 눈물이 비쳤다.
우리가 가진 땅이 32푼이니 너한테 16푼을 주마. 가지고 가서 입사해라. 저 파종기는 토지개혁 때 우리집에 승리의 선물로 나누어준 것이니, 같이 지고 가거라. 저 방도 네가 가져라. 가져갈 만한 것은 다 가져가라. 입사하고, 네 어머니하고 합치고 싶으면 합치고, 합치고 싶지 않으면 너 혼자 살아라. 아비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이 소하고 저 외양간만 있으면 된다……
아버지, 왜요,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나는 우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혼자 개인농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아무 의미 없다.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 그런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 싶어 그런다. 다른 사람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단 말이다.”
(……)
어쩌면 자네들이 전부 옳고 나만 틀린 건지도 몰라. 하지만 난 맹세했어. 이것이 틀린 것이라도 끝까지 틀리자고.”
얘아버지, 보봉마저 시집가고 나면 내가 인민공사에서 퇴사하여 당신 동무가 되어드릴게요
아냐, 개인농을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해, 나 혼자 말이야. 누구도 필요없어. 나는 공산당을 반대하지도 않고 모주석은 더더욱 반대하지 않아. 인민공사도 반대하지 않고, 집단화도 반대하지 않아. 그저 나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야. 세상 새와 까마귀 들이 다 까맣다고 해도 어찌 하얀 것이 하나도 없겠어? 내가 바로 그 하얀 새와 까마귀야!”(……)
모든 사람들이 태양을 찬송하는 그 시절에, 한사람이 달과 이렇게 깊은 정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모주석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울지 않는 또 한사람은 바로 남검이었다. 서문저택 앞마당을 둘러싸고 모두 비통한 울부짖음을 토해낼 때에도 그는 서쪽 행랑채 문틀에 앉아 청색 숫돌에 녹이 시퍼렇게 슨 낫을 갈고 있었다. ‘슥삭슥삭하는 숫돌 소리가 크게 사람들 귀에 거슬리면서 오싹한 마음조차 들게 했다. 이는 상황과 맞아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많은 것을 암시해주고 있었다. 더이상 분노를 참지 못한 금룡이 라디오를 아내인 황호조 품에 넘기고는 온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남검에게 달려가 숫돌을 빼앗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숫돌이 두 동강이 나자 금룡이 꽉 다문 이 사이로 외쳤다.
이러고도 당신이 사람입니까!”
남검이 가늘게 뜬 실눈으로 분노로 몸을 바들바들 떠는 금룡을 훑어보며 낫을 들고 천천히 일어나면서 말했다.
주석님이 돌아가셨어도 난 살아야 하지 않겠어? 저기 저 벼들도 다 베야 하고.”
(……)
 
이봐, 남검, 말을 어찌 그리하나?”
남검의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쏟아져 흘렀다. 그가 두 다리를 굽힌 채 땅에 무릎 꿇고 앉아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이 세상에서 모주석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네들이 아니라 바로 저예요!”
사람들은 잠시 할말을 잊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남검이 손으로 땅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모주석님저도 주석님의 백성입니다제가 경작하는 이 땅도 바로 주석님이 주신 것 아닙니까이렇게 혼자서 개인농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것도 모두 주석님께서 제게 주신 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작가_ 모옌 – 1955년 중국 산뚱성 까오미현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무대로 소설을 써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홍까오량 가족,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술을 먹는 가족, 풍유비둔,탄샹싱,사십일포,인생은 고달파, 개구리등이 있다.
 
낭독_ 변진완 배우. 연극 <블랙박스>, 뮤지컬 <천상시계> 등에 출연.
김형석 배우. 연극 <블랙박스>, 뮤지컬 <천상시계> 등에 출연.
빈혜경 배우. 연극 <블랙박스>, <큰아들> 등에 출연.
최광덕 배우. <만다라의 노래>, <맥베드21> 등에 출연.
 
출전_ 인생은 고달파(창비)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송승리
프로듀서_ 김태형

모옌은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그리고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아 우리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중국 작가입니다. 허삼관 매혈기의 위화와 함께 그의 소설 대부분이 우리말로 번역되었습니다. 두 작가는 문화대혁명을 거쳐 개혁개방에 이른 중국 인민들의 수난사를 소설에 핍진하게 담아내고 있는데, 위화가 문화대혁명을 도시에서 겪은 얘기에 능하다면 모옌은 어린 시절 농촌에서 겪은 수난에 정통하지요. 모옌의 대작 인생은 고달파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집단화된 인민공사에 들지 않고 마지막까지 개인농을 고집하는 남검입니다. 세상이 개벽해가는 와중에도 이 농부는 묵묵히 홀로 자기 밭을 갈다가 그 땅에 묻히는 숭고한 생을 보여줍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운명에 주인이 되고자 했지요.
 
  
문학집배원 전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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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애란, 이상문학상 대상 역대 최연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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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소설가 김애란(33·사진)씨가 선정됐다고 문학사상사가 8일 밝혔다. 당선작은 단편소설 ‘침묵의 미래’. 심사위원들은 “김씨가 ‘침묵의 미래’에서 보여준 소설적 상상력이 최근 일상성의 깊은 늪에 빠진 우리 소설의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한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역대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 중 최연소다. 그는 소설집 ‘비행운’으로 한무숙문학상까지 받아 겹경사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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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락, 「고요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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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락, 「고요의 입구」
 
개심사 가는 길
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
나무들 서둘러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위를 털면서 숲 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금세 눈으로 소복하다
 
여기에 오기까지 길에서 나는
몇 번이나 개심(改心)하였을까
한 송이 눈이 도달할 수 있는 평심(平心)의 바닥
그것을 고요라고 부를까 하다가
산문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본다
 
어느 자리, 어느 체위이건 눈은 불평하지 않는다
불평(不平)마저 부드러운 곡선이다
설경이 고요한 듯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허지만 송송 뚫린 저 오줌구멍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마을의 개구쟁이들이 저지른 저 고요의 영역 표시
경계 앞에서도 어쩔 수 없는 방심(放心) 뒤에 진저리치던
나의 불평이란 기실 작은 구멍에 불과한 것
하물며 개심(開心)이라니!
 
그 구멍의 뿌리 모두 바닥에 닿아 있으므로
길은 불평의 바닥이다
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
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
눈이 내렸을 뿐 나는 아직 고요의 입구에 있는 것이다
 
시_ 신현락 – 1960년 경기 화성 출생. 시집으로 『따뜻한 물방울』『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과 논저로『한국 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이 있음.
낭송_ 변진완 – 배우. 연극 <블랙박스>, 뮤지컬 <천상시계> 등에 출연.
출전_ 『히말라야 독수리』(bookin)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를 ‘문득 한 깨달음 주려는가’로 읽어도 좋을까? 시에 두 개의 개심이 나온다. 개심(開心)과 개심(改心). 앞의 개심은 ‘지혜를 열어 불도(佛道)를 깨우친다’ 즉 ‘마음이 열린다’는 뜻으로 굉장히 높은 경지의 말이고, 뒤의 개심은 ‘마음을 바르게 고친다’는 뜻으로 범상한 우리네 경지의 말이다.
  별안간 소낙눈이라지만, 눈이 쏟아지기 전에도 하늘은 끄무레했을 것이다. 개심사를 찾아가는 시인의 마음처럼. 범상한 한 사람인 시인은 깨달음과 번민, 용서와 상처 사이에서 진자처럼 움직이는 마음의 불평에 처해 있다. 울퉁불퉁한 그 마음바닥이 눈경치를 바라보면서 둥글어지는 듯하다. 곡선은 고요하다. 한 송이 한 송이 눈이 내리고 쌓여 이루는 설경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설경은 그러하나, 나(시인)는? 나는 기실 뾰족뾰족하다.
  ‘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
  뭐, 눈이 오기에 잠시 취해 있었을 뿐, 호락호락 개심(開心)할 내가 아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마음의 고요, 평심의 입구 산문에서 그저 설경을 바라볼 뿐이로다.
  소박하고 단아한 시인데, 호락호락 깨달은 척하지 않는 총명함이 톡 쏘는 맛을 낸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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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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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신통이 녀석 언젠가부터 우리네와 좀처럼 안 어울린다네. 하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박돌은 이신통을 십 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그랬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야기 주머니(說囊)라고 하더니 바로 신통이 그러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장 간절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그치니 사람들은 뒷얘기가 너무 궁금하여 다투어 돈을 그의 발아래 내던졌다. 이신통은 당시에 한양 패거리와 헤어진 직후여서 단출한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던 박돌이 막걸리 잔이나 사면서 동무가 되었다. 신통은 다시 때와 장소를 구분하여 이를테면 장터 어구의 버드나무 아래라든가 다리 앞에라든가에서 다른 이야기로 판을 벌였다. 새 손님이 많았지만 앞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지나가다 다시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박돌이 자기네 패와 동행하기를 권하여 함께 다니다가 이신통과 헤어졌는데 그들은 다시 도방 대처에서 만나기를 거듭했고 나중에는 신통이가 광대물주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주에서 엄마의 색주가에 들렀을 때에 이신통은 광대물주를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글쎄 그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박독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지도라구 들어봤나? 신통이가 그 패거리에 들게 되었거든.
  저 머신가, 나라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하는 미신인데 그것이……
  그러면 예전 천주학 같은 거 말예요?
  이전에는 모두 죽였다만 시방 천주학은 양귀들 때문에 묵인된 셈이고, 천지도는 처음 시작했다는 교주를 국법으로 처단을 했다 그 말여. 
  박돌이 이신통에 대한 불길한 소식을 남기고 떠난 뒤에 나는 뜸을 들였다가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하던 때에 슬며시 묻게 되었다.
  엄마, 천지도가 뭔지 알우?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뜬금없이 천지도는 왜…… 한번 믿어볼라구?
  관에서 금한다며?
  양반 것들이 저희 자리 내노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게지. 천지도에서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다 그런다는구나. 그 말본새 하난 마음에 들더만. 나두 주문 외우는 소린 여러 번 들었다. 우리 집에 묵어가는 길손들 중에 겉으로 말은 안 해두 내가 대강 눈치를 채는데 하나둘이 아녀. 천지도인들 점잖은 사람들이더라. 소문에 듣자 허니 촌에는 동네마다 모여서 기도하구 그런다대.
  하면 엄마는 왜 안 믿었어?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그러면 어여쁜 본색을 어찌 드러낼 수 있남?
  글쎄, 남이 한다고 성급히 따라 할 것이 아니다. 작은 복을 제 복이려니 하고 살아야지, 언제 하늘 복까지 바라겠냐.
  나는 어쩐지 엄마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산전수전 다 겪어온 우리 모녀의 지혜이기도 하고, 열없는 쓸쓸함이기도 하리라.
 
 
작가_ 황석영 – 1962년 《사상계》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여 등단 50년을 맞았다. 소설집『객지』,『삼포 가는 길』,『몰개월의 새』, 장편소설『장길산』,『무기의 그늘』,『오래된 정원』,『손님』,『심청, 연꽃의 길』,『바리데기』,『개밥바라기별』,『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등이 있다.
낭독_ 빈혜경 – 배우. 연극 <블랙박스>, <큰아들> 등에 출연.
변진완 – 배우. 연극 <블랙박스>, 뮤지컬 <천상시계> 등에 출연.
출전_ 『여울물 소리』(자음과모음)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 김태형

  올해 ‘광화문 글판’에는 ‘황새는 날아서 알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는 시구가 걸렸더군요. 연말에 읽은『여울물 소리』의 감상을 새해에 전하니 느낌이 새로워요. 작가의 등단 50주년 소식과 함께 찾아온 소설이지요. 한국근대문학 100년 잔치가 엊그제였는데, 반세기를 뜨거운 기관차처럼 달려온 작가가 독자들에게 내놓은 작품입니다. 정작 작가 자신은 덤덤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늘 질주해온 작가라는 이미지가 있고, 마라토너가 30Km를 돌파했다고 잠시 멈춰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일은 없으니까요. 말이 50년이지 그 고독한 시간이 어땠을까, 소포를 뜯어놓고 한동안 묵묵했습니다. 내가 알기로 황석영의 작품 목록에서 가장 심심한 제목인데, 이야기꾼의 운명에 작가의 생애가 겹치고,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다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와 같은 문장에 이르러 문학의 자리가 선연히 암시되었을 때 비로소 멋들어진 제목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원로로서 신진들을 크게 독려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문학집배원 전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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