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계방향
- 작성일 200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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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계 방향
‘여기는 어디지?’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파왔다. 어제 일이 기억이 안난다.분명히 도로를 걸어가고 있었고 그때 길에서 시비가 붙어서 흠씬 두드려 맞았다.
“이 자식이 사람 치네? 사람을 쳤으면 보상을 해줘야지 아 이 어깨 전치 3주는 나올 텐데 말야.”
그리고 쭈뼜거리던 나는 그들에게 구타를 당했다.한녀석은 사시미칼을 들고 있었고 그 녀석이 지켜보는 사이에 다른녀석들이 린치를 가했다.
"컥컥"
나는 숨이 막혀서 신음을 내뱉었다.얼마나 맞았을까. 몸이 흠씬 두드려맞아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아 어디론가 가야하는데 지금 어디지..'흐릿해져가는 의식속에서 사시미 칼을 든 녀석을 지켜보았다. 그녀석이 나의 배를 칼로 계속해서 찔러넣었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째부터는 숫자를 새는것도 잊어먹었다.
'이대로 죽는것일까? 아직 할일이 많이 남았는데..'
아련한 의식속에서 단발마를 내뱉으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누가 좀.. 도와줘 아직 나는 살고싶다구..'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시미 칼을 맞았으면 내장이 뒤엉켜 뜨거운 기분을 느껴야 하는데 어쩐지 포근한 느낌만 들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나에게 린치를 가하던 녀석들이었다. 나에게 다가와 온몸을 발로 짓밟더니 계속해서 때렸다. 그리고 사시미칼을 친구에게서 뺐더니 나에게 계속 찔러넣었다. 그리고 의식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깨어보니 이곳이다.
알수없다. 내가 왜 여기에 와있는지 또 왜 나혼자 여기있는지도 말이다. 흐릿한 눈으로 앞을 보았더니 침대하나와 화장실,그리고 녹색일색의 방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살아있는것일까. 침대는 오랬동안 정리를 안했는지 먼지 투성이였고 화장실은 좁고 좁아서 겨우 앉아서 볼일을 간신히 볼수있을정도였다.
나는 이곳에 갇힌것이구나. 뒤늦은 깨달음은 배고픔과 같이 왔다.
"자 6시 아침식사입니다.자리에서 일어나서 식사하십시요."
음식을 배급하는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 여기는 나홀로 고립된곳은 아니구나. 그렇다면 여기는 어딜까?'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것은 식사때 잠시 문을 열어 음식을 먹는것이었다.오물오물 꼭꼭 씹어먹었다.새벽에 일어나서 부터 이어져온 허기는 모든것을 잊게했다. 그리고 문득 여러번 씹어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이대로 여기 갇힌채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것일까.갑자기 설움이 북받쳐서 눈물이 흘렀다. 의식을 잃은상태는 아침때였으니 지금 거의 하루가 지나간것이다.
하룻동안 무엇을 했기에 온몸이 쑤시고 아픈지 마치 무엇으로 묶었던 것인지 팔과 다리에 묶인 자국이 남아있었다.그리고 배에는 사시미칼로 찔렸는지 검상이 하나 남아있었다.여러번 찔린것 같은데 상처는 하나뿐이었다.손에는 칼자루라도 움켜쥐었는지 베인자국 투성이였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조그맣지만 창가도 있어 밖을 보면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밖에서는 차들이 주차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아픈몸을 이끌고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집고 일어나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병원이구나. 그럼 나는 왜 병원에 있는것일까.
이런 병원이 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마치 감옥에 가둔것 같이 모든자유가 폐지되고 하루종일 벽만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찢어지도록 답답했다. 그래서 먹다가 남겼던 반찬마저도 모두 오물거리며 다시 먹었다. 먹는것만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리고 포만감은 졸음을 가져올것이다. 배부르게 먹은 후 잠이 와서 깜빡 잠들었다. "저벅저벅, 즈즈" 발걸음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실내화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앞에 귀를 가져다대고 그 소리를 한참이나 들었다. 이곳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어쩐지 마음이 푹 놓이는것이 안심이 되었다. 째깍째깍 방에 있던 괘종시계에서 시간이 가고 있었다. 그 소리가 유난히 신경이 거슬렸다. 괘종시계가 울리는 소리는 마음을 갉아먹는것 같았다. 그렇다 여기서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여기를 나갈수 있을까?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그 소망은 곧 밖에서 들리는 대화소리에 더욱더 커졌다. 여기서 만이라도 나가서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창운아 탁구치지 않을래? 오늘은 비장의 스매쉬를 보여줄테니까 말야."
"인성이 주제에 비장의 스매쉬는 무슨. 코끼리 기어가는 느릿한 공이 어째서 스매쉬냐 병신 하하"
"제길 내가 너 이기면 네가 산 초코파이 모두 다 내거다."
"맘대로 하시지. 대신 니가 지면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밖의 사람들은 탁구를 치는것이 가능하구나. 그리고 목소리 또한 밝아보이네.난 언제쯤이면 저렇게 탁구를 칠수 있을까. 문을 잡고 한참을 열려고 했지만 밖에서 잠그는 방식인 방에서 잠겨진 문을 안에서 여는 방법은 없었다. "쿵!쿵!"온몸을 다해 부딪혔다. 나가야 한다. 더 이상 혼자있을순 없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음식을 주었던 남자가 밖에서 말했다.
"아직 안정이 안되었으니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안됩니다. 사흘쯤 있으면 병실을 옮겨 드리죠."
병실? 역시 이곳은 병원이구나. 그런데 이렇게 강압적인 병원은 모르는데 내가 왜 여기에 온것이지?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설움이 북받혔다. 아직 사흘이나 더 있어야 된다는 말이 머리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아 이 지옥같은곳에서 아직도 삼일이나 더 있어야 한다니..정말 죽고싶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여기에 온것이지? 귀를 문에 갖다대자 텔레비전 소리도 들려왔다.
"모월 모일 모시에 서울 독산동에서 강력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섯명의 학생들이 피를 뒤집어썼습니다. 모두 사시미칼에 찔려서 중상을 입었는데 다섯명 모두 다섯번 이상 사시미 칼에 찔린상태로 발견되었습.."
뉴스 소리가 들려왔다.
"독산동이라면 어제 내가 여기에 오기전에 불량배들에게 두드려맞은 곳이잖아?"
들을사람도 없는데 혼자말을 했다.
"저런 잔인한 놈을 봤나. 원한이 있었다고 해도 칼로 그렇게 무자비하게 난자하다니..그렇게 원한이 깊었나?"
"단순히 미친 것같은데요. 우리보다 심하네 크크"
"쯧쯧 양아치새끼들 다섯명이 죽을뻔했구만.하지만 칼들고 설쳤었다니 죽었어도 할말이 없겠군. 그런데 범인은 왜 안나오지?"
텔레비전앞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아 나도 언제나 저기에 끼어서 얘기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볼수있을까.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온통 녹색으로 뒤덮힌 방에 털썩 앉아 궁상을 떨었다.창운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남았다. 저기서 탁구를 치는 다른애의 이름은 인성이라 여기서 나가면 친하게 지내야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사가 방으로 들어오고 잠시 문이 열린틈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에 그런힘이 나왔는지 가로막은 남자를 젖히고 나왔다. "이영숙 간호사 빨리 재훈이가 뛰어나갔다고 알리도록해 난 잠시 여기서 잡고 있을테니." 남자는 재훈이의 복부를 한대 때렸다. 정신이 없어서 뛰쳐나온 재훈이는 고래고래 악성을 질렀다. "야 이 씨발새끼들아 날 언제까지 갇둘거야.
난 여기 있을거야. 여기있을거라구. 그런데 어느순간 힘이 쭉빠졌다. 뒤통수에 무언가 둔탁한 느낌이 들었고 의식을 잃었다. 그 짧은 시간 나는 창운이와 인성이의 얼굴을 보았다. 내 또래 녀석들이군. 그리고 신문을 보고 있는 사십대의 남자 한명이 텔레비전을 보며 소리친 그 남자구나
"이런식으로 나오면 삼일 후가 아니라 일주일 후가 될수도 있다. 잘 생각하고 약잘먹으면 이틀만에 보내줄수도 있으니 유념하도록"
남자의 목소리가 문을 격해서 들어왔다. 나를 위로할것은 방구석에 놓고간 저녁 식사였다.생선과 깍두기, 멸치볶음 그리고 미역국이 있었다.눈물이 났다. 나 혼자 이런곳에 처박혀서 영원히 갇히는것은 아닌지.. 무섭다 그런상상이 하지만 상상은 계속되었다.
다른사람들은 여기에 왜 갇힌거지? 그리고 병원이라는데 혹시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격리시키는 것 아닐까?
"으아아아아!! 나를 놔줘. 우리는 여기 왜 갇힌거야? 에이즈라도 걸렸나? 나를 제발 내보내줘 으아아!!"
"퍽!!"
이번에도 복부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고 난동을 부리던 남자는 내 옆방으로 왔다. "준영씨 여기는 에이즈에 걸린사람들이나 죽을병에 걸린사람들이 오는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잘 생활하면 금방 나갈수도 있어요. 이 간호사 이 환자를 재훈이 옆방에 데려다놔. 며칠 혼자 갇혀지내야 겠어."
모르긴 몰라도 준영이란 남자도 나처럼 묶인채로 잠을 자야겠군. 그러고 보니 링겔도 꽂은것 같은데.. 잠시 그 소동을 듣다가 방 한복판에 주저 앉았다.손목을 보니 링겔을 꽂은 흔적이 보였다. 하루에 세번 나오는 약은 먹으면 먹을수록 머리가 뿌옇게 변하는것 같았다. 무엇이든 할수 있을것 같이 의욕에 불타오르다가도 약을 먹으면 힘이 쑥 빠졌다.
그래서 안먹으려고도 했지만 그럴때마다 시간만 늦출뿐 결국엔 강제로 먹을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런약을 먹이는 것이지? 에이즈나 죽을병에 걸린것도 아닌 사람들이 모여있다니 여기가 정신병원이라도 되나? 정신병원? 그래 그럼 나는 정신병잔가?' 생각해보니 아귀가 맞았다.
정신병원이 아니면 남자 간호사가 왜 있고 이렇게 발작을 하면 꽁꽁 묶어놓는곳이 정신병원이 아니면 어디있겠어?나는 어디가 이상이 있는것이지?이렇게 올바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그런데 왜 여기로 온것이지?
가족들은 모두 어디가고 나홀로 여기서 무엇을 하는것이지? 부모님은 뭐하실까.나를 여기로 넣은것은 부모님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까?누구이던간에 여기서 나가게 된다면 가만두지 않을것이다.그런데 여기는 언제 나갈수 있을지 모른다.일년이 될지 수십년이 될지 알수없다.
"째깍째깍"
시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는 이방에 시계소리가 가득했다.그 소리가 견딜수 없게 무서웠다. 시간은 흘러간다 하지만 저렇게 느리게 움직인다면 나는 과연 나갈수 있을때까지 버틸수 있을까. 겨우 이틀째인데도 이렇게 힘든데 힘들어 죽겠는데 기약조차 없다니.. 이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상징하는 시계만이 빛나 보였다.
그래도 내일이면 문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이야기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이렇게 지쳐버린 나의 영혼이 조금이라도 안식을 얻지 않을지. 아니 그럴것이다. 혼자있는 이 시간보다는 시간이 빨리 갈것이다. 그리고 나는 꼭 여기서 나가고야 말것이다. 하루가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것은 처음이다. 시간이 가지 않자 문앞으로 가서 옆방의 기척을 느끼려 했다. 준영이라고 했나?
또 다른 사람이 옆방에서 나와같은 고통을 겪으리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같은처지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이런 가증스러운 놈. 남이 나와 같이 불행한것에 위안을 갖다니 우습다. 하지만 호기심에 옆방소리가 들리는 벽에 귀를 갖다댔다.
"크으윽 으으"
어제 발작했기때문에 몸을 지난번의 나처럼 묶여져 있음에 틀림없었다. 익숙한 신음소리 후 한참을 고생해야 할것이다. 어쩐지 미소가 지어졌다. 한심한놈.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떠올리게 되자 안심하다니. 자기혐오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 신음소리 마저 반가웠다. 나가게 되면 저 사람하고도 많이 얘기해봐야겠다.
나의 관심이 다시 문밖의 세계에 집중되었다. 누군가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건? 잘들어보니 가요가 아니라 찬송가였다. 곱디고운 미성으로 누군가가 불렀다. 노래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지는 것을 보니 걸어가면서 노래를 부르는것이다. 지난번에 뛰쳐나갔을때 보았던 그 복도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 정도의 공간으로도 행복할것 같았다. 방안에만 갇혀있는 나에게 그 정도로 밖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래 내일이면 나도 저들과 끼어들수 있을거야.아 빨리 내일이 왔으면..하지만 왜 이렇게 잠이 안오는 것일까. 방에서 나의 소지품을 뒤져보니 성경책 한권이 나왔다. 누군가 나에게 힘들때면 욥기를 읽어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성경책을 한장한장 넘겨보았다.억울하게 바다에서 물고기에게 잡아먹혀서 고생하는 욥. 나도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니 그 이상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잘못한것일까. 욥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시험이란 말인가. 이 지옥에 갇혀있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더 이상 신을 믿지 겠다.
문득 아무죄도 없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어째서 나를 이대로 놔두시는지 빨리 나가게 해달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서 기도했다. 그렇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잠이 들었다.
"이재훈 환자 방을 옮깁니다. 8명있는 남자 병실로 갑니다. 이젠 밥을 나와서 먹어도 되고 탁구도 치고 텔레비전도 볼수있으니 잘 지내길 바란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방으로 들어갔다. 창운이와 인성이가 보였고 신문을 보던 남자와 한 얼굴이 붉그스레한 아저씨. 덩치가 크고 뚱뚱한 내 또래의 남자가 보였다. 눈빛이 날카로운 형뻘의 사람이 보였고 왠 조그마한 꼬마애도 보였다. 키가 크고 코가 유난히 높은 내또래애도 한명도 있었다.이름이 인성이라고 했었나?
짐을 침대에 내려놓고 일단 나의 소지품을 정리하였다.좁은방에서는 보기힘든 넓은 자리가 있었다. 침대에 벌렁누워서 자유를 만끽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창운이가 나의 맞은편에 있었고 인성이가 옆의 옆자리에 서 엠피쓰리를 듣고있었다.
"새로왔나보네.여기 왜 온거야?"창운이가 말을 걸어왔다."
글쎄 네가 왜 온걸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나는 우울증때문에 왔대. 3년동안 내방에서 나오지 않았거든. 그러니까 부모님이 나를 끌고 이곳으로 온것인데 아마도 우울증인것 같아.내 주치의하고 담당의사분이 우울증전문이거든. 그러니까 우울증 같아.침대 아래쪽에 주치의 하고 담당의사이름이 있을거야. 잘봐봐."
"음 이강희 주치의님하고 김인철 의사님이라고 적혀있는데.. 너는 이분들이 어디 전문인지 알고있어?" "잘 모르겠네 넌 조금 특별한 이유에서 왔나보다. 조울증이나 정신분열증인가? 아무튼 힘들겠구나."
창운이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우울증이 아니라니.. 2대 정신병인 조울증이나 정신분열증이라고? 내가? 나는 이렇게 멀쩡한데. 아마도 잘못안거겠지. 주치의 하고 담당의사가 나만 틀리네.다들 두담당의사인데 나만 다르네. 뭐 병이 깊지않으니 다른 의사님이 담당한거겠지.하지만 의문은 계속되었다.
만약 내가 그런병이라면 내가 나갈수 있는날이 더 멀었다는 이야긴데.인정할수 없다. 나는 이렇게 분별력도 있고 환영같은것은 보이지 않은데.정말 평소와 다름없는데 나는 이곳에 왜 온것일까? 그때 인성이가 나한테 다가왔다.
"나는 인성이야. 이름이 뭐야? 내 또래인것 같은데..나이는 몇살이고?나는 23살이야"
"나는 재훈이야. 나이는 22이고..그러고보니까 형이네. 그렇게 안보이는데 말야. 그럼 창운이는 몇살이야? 설마 둘다 나보다 형인가?"
"창운이는 21살이야. 너보다 어리지. 하지만 여기서 우린 말터놓고 지내. 너도 나하고 말트고 지내자. 반갑다."
"그..그래 나도 반가워.난 저 맨구석방에서 있었거든."
"아 그래.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기에 있다가 와.다들 발작을 한번씩 일으켰거든. 기억하든 기억못하던간에.."
발작이라고? 나는 불량배들한테 맞다가 정신을 잃었고 깨보니까 여기인데 내가 뭔 발작을 일으켰다는 거지? 사시미 칼에 찔려 죽다가 살아났는데 누가 나를 살린걸까?
"난 후성이라고 해. 나이는 22이고. 난 귀신이 보여. 저승사자가 항상 나를 쫒아오고 귀신들이 나와 함께 가자고 늘 말해. 보지 않으려고 해도 온갖 잡것들이 보여. 그래서 여기로 왔는데 아직도 그들이 보여."
덩치가 크고 뚱뚱한 남자가 뒤뚱거리며 걸어와서 말했다. 나는 어쩐지 진짜로 정신병에 걸린듯한 사람을 처음봐서인지 거리낌이 있었다. 나는 저녀석 보다는 낫다는 느낌조차 있었다. 일종의 우월감이랄까.
가소롭지만 그것이 내 감정이었다.
"귀신은 항상 우리를 보고 있어. 나는 신들린것 같아.아 박수무당이 되었어야 하는데 부모님이 나를 이곳에 처넣었어. 이런데 오면 나을거라 생각했나 이렇게 늘 귀신들이 보이는데. 나를 무당이라고 불러도 좋아."
그러면서 후성이는 나를 껴안았다.
"마음이 편해졌어.너도 여기로 온 이유가 있겠지.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 오는곳이니까."
"아냐. 나는 잠시 쉴려고 온거야. 정상이라구" "정상이면 절이나 요양원 같은곳에서 쉬면 되지 왜 이곳으로 온거지? 아마 너는 자신은 모르지만 어딘가가 이상이 있어서 온거야."
후성이가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나는 그녀석을 보았는데 어쩐일인지 그녀석자리 옆에있는 시계가 눈에 띄었다. 저녀석은 이곳에 온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리고 나는 어느새 시계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유일하게 여기서 얼마나 있었는지 알수 있는것은 달력과 시계 뿐이었기에 나갈날을 생각하며 보았는데 항상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왜 이렇게 느리게 흘러가지? 시간이 가지 않는것 같았다.
"그럼 너는 신들림이 들어서 온거야? 그것때문에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것들이 보이고 그것때문에 여기온거야? 그뿐인거야? 아마 너는 정신분열증 일거야."아니야!! 귀신들이 나에게 말을걸고 나에게 원통함을 호소하고 있기때문에 그걸 알아내는 나는 단지 신들려서 박수무당이 되어야 하는데 부모님이 여기에 처넣은거야."
"됐고 너나 나나 둘다 그것을 받아들일수 없어. 우리는 단지 이상한게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거야.그렇게 받아들이자. 후 이 박수무당아"
"그래 나는 이상한것이 아니야 단지 귀신이 들린거라고" "같은얘기 또하지 말고 알았으니까 앞으로 잘지내보자."
후성이는 아무말 않고 나를 또 껴안았다.
"야 뭐하는 짓이야 저리 비키지 못해?"
"왜 난 그냥 네가 좋아서 이러는거야.호모가 아니야. 나는 이렇게 포옹을 하면 기분이 좋더라."
"자꾸 그러면 간호사를 부른다. 더 이상 날 포옹하지마 기분 나쁘니까"
"하지만..난 그러고 싶은걸.안될까?"
이녀석은 진짜 정신이 이상하다.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는다. 자기는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정신분열증임에 틀림없어.그렇다면 좀 멀리 지내야겠군. 같이 있다가는 나까지 이상해질것 같아.
"재훈아 그녀석하고 얘기하면 끝이 없으니까 탁구나 치러가자.칠줄알지?"
"그래 저녀석은 정말 중증이구나.찝찝하네.탁구나 치자.인성아."
인성이와 나는 텔레비전 뒤에 있는 탁구대로 갔다. 거기에는 먼저 탁구를 치고있는 창운이와 신문을 보고있던 아저씨가 있었다.
"탁!탁!탁!"
볼이 튀기는 소리가 들렸고 둘은 웃으면서 탁구를 치고 있었다.
"자 15대 5다. 이번엔 내 서브야. 받아봐라." "우쭐하지 말라구요 성호형님 이번엔 진짜 나의 마구가 작렬할테니까 말예요.하아!!"
창운이의 타구가 빠르게 탁구대를 훑고 지나갔다.회전이 걸려있고 빠른 공이었다.나라면 절대 치지 못할공이라 눈을 부릅뜨고 공의 행방을 쳐다 보았다. 성호형님이란 사람이 그것을 받아 넘기고 2타를 받았다.창운이는 받아쳐서 당황했는지 허둥대며 이타를 아리랑볼을 친것이다.
"하하 스매쉬다 탁!!"
성호형님의 공이 탁구대를 시원하게 찍고 날아갔다.
"아 정말 스매쉬한번 잘치네."
창운이는 푸념을 늘어놓고는 다시 공을 잡았다.나는 인성이와 같이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이 죽일놈의 사랑' 이 재방송하고 있었다.비의 연기가 절절해서 화면에 빠져들었다. 신민아가 보였고 눈물연기에 점점 흥미를 가지고 보았다. 그렇게 삼십분이 흘렀을까.성호형님과 창운이는 헐떡거리며 탁구를 끝냈다.
"자 인성아 재훈아 탁구쳐.아 오늘도 성호형님한테 또 졌네 젠장!"
"너는 서브를 더 익히지 못하면 나한테 항상 반수 지고 들어가는거야.조금더 연습해서 덤비라구.내 스매쉬가 들어가기 전에."
"칫 다음에는 치지 못할 서브를 먹일겁니다."
창운이가 툴툴거리며 갈색 소파에 앉았다. 탁구대 옆에서는 한 아줌마가 훌라후프를 하고 있었고 아가씨한명이 런닝머신을 달리고 있었다.그리고 속눈썹이 잘 정돈된것이 특징인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의자에 앉아서 탁구대를 응시했다. 예전에 들었던 찬송가를 부르는 누나뻘인 사람이 역시 찬송가를 부르며 복도를 왔다갔다 했다. 아 도무지 탁구에 집중할수 없을것 같았다. 너무 사람들끼리 부대끼는 것이었다.하지만 인성이와 나는 오래되어 겉부분이 마모되어 여기저기 찢겨진 탁구채를 잡았다.공은 새공이었고 튀기는 모양새를 보니 잘튀기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 내가 먼저 친다 21점 한세트하는거야."
나는 탁구채를 잡고 회전을 넣어서 쳤다. 하지만 공은 어찌된일인지 너무 느려서 스매쉬치기에 좋은 방향으로 가는것이 아닌가.창운이는 내 생각과 다르게 공을 왼쪽으로 살살 치는것이 아닌가.그래서 달려가서 겨우 쳐내니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공을 치는것이었다. 한 네번을 그랬을까.
"야 이게 뭐야 뭐하자는거야."
"아 좌우로 짤짤이 한번 당하니까 어때?기분좋지?하하 성호형님한테 당한거 쓰니까 정말 재미있는데."
인성이의 입고리가 오른쪽으로 올라갔다.저 재수없는 면상 한번 뒤엎어줘야겠군.이번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빠른공을 쳤다.그런데 어찌된일인지 너무 쉽게 받아내는 것이 아닌가."탁!타탁!!" 두번의 공방이 있은후 나는 공을 못치고 점수를 내주었다. 어느새 스코어는 21대 10이되어 게임이 끝났다.몇게임을 했을까.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서브를 받아낸것보다 못받아낸것이 대다수였다.자존심이 상했지만 날은 오늘만 있는것이 아니니 다음에 치기로 했다.어느새 한시간이 지나있었고 시간이 빨리간다는 것에 대해 만족했다.
만약에 아직도 구석방에 있었다면 이런것을 느끼지 못하고 문에 귀를 갖다댄채 탁구공 소리만 들어야 했을것이다. 아 그나마 행복하군.나의 웃음도 인성이처럼 입고리가 오른쪽으로 올라갔다.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속눈썹이 정돈된 여자아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열망에 찬 눈빛이었다. 다른사람과 탁구를 치고 싶었지만 혼자라서 칠수없다는 느낌이 왔다
."저 저랑 탁구한번 치시겠어요?"
대뜸가서 두서 없이 말했다.소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는 다시 탁구대를 보았다.
"뭐 좋아요. 근데 살살치세요 저는 잘 못치거든요."
"신경쓰지 마세요 저도 잘 못쳐요. 아까 인성이한테 더블스코어로 계속 깨진것을 보셨던것 같은데.."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탁구공을 주었다. 탁구채는 밑에 1500이라고 써있는 것이 좋은것 같아서 그것을 그녀에게 주었다.
"탁!"
" 맑고 청량한소리가 났다. 물론 내 상상이었겠지만. 나는 공을 아리랑으로 잘 뜨게 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스매쉬로 때리는 것이 아닌가.
"헛. 스매쉬를 때리셨네요 저보다 훨씬 잘하는것 같네요."
"아 그건 제가 여기에 더 오래있었고 사람들하고도 가끔씩 쳤거든요 그리고 여기온지 세번째라.. 시간이 많았죠."
"세번이나 오셨어요? 아 죄송해요. 그런데 여기서 얼마나 있으면 나갈수 있어요?"
"음 그건 개인차에 따라 달라요. 보통은 두달에서 세달정도면 나가요.그렇지만 인성이 같은경우 클로즈 그러니까 지금 있는곳에서 6달이나 있었어요.그리고 오픈 그러니까 옆병동으로 가면 나오는 곳인데 거기에 한 할아버지는 17년동안 여기 있었다고 해요."
17년이라고!! 그렇다면 여기서 일생을 보내는 거야? 무섭다. 과연 나는 언제 나가게 될까? 답이 보이지 않았다.다가오는 것은 공포뿐이었다. 그리고 보통 2달에서 세달이 걸린다구? 여기온지 사흘밖에 안됐는데 아직 60에서 90일정도가 남았다는 건가. 그런데 아무도 보장을 할수없는것이 아닌가. 당장 인성이만 해도 클로즈에서만 6개월이나 있었다구?
나는 어쩌면 더 심각한 병에 걸려서 더 늦게 나가면 어떡하지? 주치의하고 담당의사도 다른애들과 다른데 여기서 평생을 썩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졌다. 그래서 탁구를 치는둥 마는둥 정신없이 아리랑 볼을 주다가 스매쉬를 호되게 맞았다.
"에이 이름이 뭐라고 했죠? 잘못치네요 아직은 뼈를 깎는 수련이 필요할것 같네요.참 저는 24이고 이름은 수련이라고 해요."
"저 저는 이재훈이고 나이는 22이에요 누나 말 놔도 되요."
"그래 그렇다면 놓지 뭐. 누님이라고 불러라.이 누님이 이뻐해줄테니..그럼 탁구 잘쳤어 다음에도 치자구."
활기찬 모습으로 수련이 누나는 여자병동으로 들어갔다. 남녀 병동은 서로 출입금지라서 섣불리 들어갈수가 없었다.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쉬워서 여자병동 앞까지 같이 갔다가 다시 남자병동으로 돌아왔다
."창운아 인성이는 여기온지 육개월이나 됐다던데 너는 얼마나 있었어?"
"어 나는 지금 한달째야. 오픈으로 보내줄때가 됬는데 안오는것을 보면 아직 병이 호전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할까나."
"진짜 어떤 할아버지는 17년이나 있었다던데 우리도 그러는것 아니야?"
나는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하루도 견디기 힘든데 이런곳에서 몇달 아니 몇년을 있을수도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재훈이라고 했지? 오늘 점심 뭐가 나오는 줄 알아? 쌈밥이 나온데. 아 기다렸었는데 맛있겟다."
"넌 그게 나오는줄 어떻게 알아?"
"내가 아는 그런 루트가 있어. 넌 몰라도 되. 암튼 오늘 점심이 기다려진다."
시계를 보니 12시를 가리켰다.
"식사왔습니다. 나와서 받아가세요."
이마가 넓고 인심이 좋을것 같은 아줌마가 식사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많이 기다렸는지 다들 일어나서 받으러 나갔다. 식대에는 상추가 있었고 돼지고기가 있고 양념장이 나왔다.
"오 후성이 재주도 좋네 어떻게 알아냈지? 니가 아는 루트가 있다는 말말고." "그거야 내 안의 악귀가 말해준거야.오늘은 쌈밥이라고 말야. 내가 좋아하는 것이 오면 나한테 와서 말해준다니까. 나한테는 귀신이 친구니까."
"역시 중증이구나.다른사람은 몰라도 너는 여기 있는것이 당연하구나.너는 항상 귀신이 도와주냐?"
"그거야 당연히 내귀에 속삭여준다니까."
후성이는 말을 하면서 또 나를 껴안았다.
"너 이짓 하지 말라고 했지? 왜이렇게 괴롭혀 간호사님 부른다.그러면 너도 구석방에서 혼자 며칠이고 지내야 될거야."
"그런말 하지마. 나는 그냥 네가 좋아서 그러는거야. 그러니까 귀신도 네가 좋대. 그러니까 난 난.."
"귀신이고 나발이고 한번 만 더그러면 진짜 부른다."
정말 저녀석은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건지 짜증이 올라왔다.그렇다고 같이 지내니 아예 안볼수도 없고 미칠 지경이다. 아무튼 상추쌈에 돼지고기를 넣고 밥을 올려서 혀를 굴렸다. 아 고기맛이 이렇게 맛있을줄이야. 밖에서는 돼지고기 싫어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먹고 있다. 생선류와 닭고기는 자주 나오는데 돼지고기 볶음같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잘 나오지 않았다.인성이가 옆에서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낙은 역시 먹을것이었다. 먹고 또 먹었다. 그리고 곧 사람들이 식사를 끝마쳤다.
모두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지루함에 젖어들어야 했기 때문이다.다들 식사를 끝냈고 배를 두드렸다. 인상이 사나운 형뻘인 사람이 식사를 끝내고 나한테 초코파이 하나를 주었다.
"간식 시킨것이 남아서 그러는데 하나 먹어라. 나는 영훈이라고 한다. 무당녀석하고 같은날에 들어왔지. 잘지내보자."
"아 예.저는 재훈입니다. 형이라고 부를게요. 저야말로 잘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넌 왜 이곳에 왔냐?"사람들 모두가 서로서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왜 들어왔냐. 담당 주치의와 의사가 누구냐. 대부분 우울증이니 너또한 우울증으로 왔냐 하는것은 이제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 너무 익숙해졌다.
"저도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들어올만한 이유가 없는것 같은데 말예요.내 어디가 잘못됐는지 모르겠어요."
"천천히 생각하다보면 알게 될거야.그리고 병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뭐가 잘못됐는지 기억을 못해. 그것을 알게되면 나갈때가 다가온다는 거지. 나도 아직 내가 왜 여기왔는지 확신이 안가. 하지만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여기서 있기 너무 힘들거야. 자신이 정상이라 여기면 약을 먹지 않을테니까. 그것은 재발을 의미해. 나는 조울증이야. 2번째 입원이지. 약을 한달정도 안먹었더니 병이 재발해서 여기 왔어."
"조울증이라구요? 저는 그렇게 감정이 왔다갔다 하지 않는데..그리고 정신분열증처럼 헛것이 보이고 그것이 나를 해할거라 생각지도 않구요. 우울증이라고 하기엔 왜 저만 담당의사와 주치의가 다르죠?"
" 담당의사가 다른건 뭔가 새로운 병을 갖고 있을수도 있어. 하지만 안그렇다고 믿고 우울증이길 바래. 그게 가장 최선이야 지금은."
우울증이 최선이라고. 그럼 나의 병은 무엇일까.조울증인가? 정신분열증은 아닌것 같고 도대체 왜 여기에 나를 집어넣은거지? 아무리 의문을 품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초코파이 잘먹을게요.근데 이 초코파이 어떻게 나오죠?"
"이따가 간식 시키실 분은 나오라고 하면 나가서 적으면 되. 나중에 병원비에 청구되서 나올거야. 나는 하루에 초코파이 12개입짜리 하나하고 콜라한병시켜. 너도 먹고 싶은거 먹어."
간식이라. 먹는것이 낙인 이곳에서 이만한 것이 없겟지. 담배도 심심하기 때문에 피게 된것인데, 영화를 볼때도 입이 심심해서 먹을걸 먹으니까 이것고 시간을 때우려고 먹는거라고 생각한다.
"형 탁구 치지 않을래요? 제 이름은 천복이에요. 탁구만큼은 여기서 성호형님과 맞먹을 사람은 저 밖에 없어요. 형도 나한테는 안될걸요." "난 이미 인성이한테 졌어. 그럼 넌 인성이도 이기는거야?"
"아 그형 저한테는 안되죠. 자자 한겜해요."
저애는 여기에 왜 왔을까. 그리고 어린데도 이곳에서 씩씩하게 잘 지내는가 싶네.나는 의문을 품은채 천복이를 보았다. 천가지 복이라 그녀석은 복된것임에 틀림없었다.부모님이 매일 찾아오시면서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았다. 어쨌든 탁구를 치러갔다.복도에 다다르니 찬송가를 부르는 여자를 볼수있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과연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나.아직 부모님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저아이야말로 부모님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것이 아닐지.알게 모르게 시샘을 보내던 아이와 탁구를 쳤다
." 형 갑니다."
그녀석은 스핀이 걸린 패스트볼을 쳤다. 나는 겨우 그것을 받아내었지만 그 위느는 스매쉬를 치기 좋은 위치였다. 여지없이 내리꽂는 스매쉬.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민 탁구를 치는동안 스매쉬를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것이다.
"하하하 형 너무 좋은위치에 주는것 아니에요?"
가증스러운놈 좋아 죽겠구나. 그렇다면 나도..나는 온힘을 다해 공을 쳤고 패스트볼이 들어갔다. 그런데 받아친공이 아리랑볼이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스매쉬를 쳤는데 공을 놓치고 말았다.
" 형 스매쉬도 못치는거야?"
저녀석 내가 언젠가 짓밟아 버릴것이다. 하지만 몸은 내 의지를 반영하지 않는지 항상 좋은 볼이 나왔다.이어지는 스매쉬 스매쉬. 나는 꼬마녀석에게 화가 났다. 속좁은놈 같으니.그렇지만 나는 무기력하게 21대 9로 지고 말았다. 이녀석 보통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복이란 꼬마놈에게 지고야 말았다.
"형 일부러 지는거야? 마음이 약하구나."
"일부러 그러는거 아니다. 너 잘치는구나."
"아니 뭐 내 실력이 어디가겠어?"
천복이는 환하게 웃었다. 마치 여기가 정신병원이 아닌거 마냥 환하기만 했다. 지기는 했지만 탁구는 칠수록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가지 않는 공간에서 그나마 시간을 잊고 지낼 시간을 주었다.아 이 재미가 아니었다면 나는 첫날과 둘째말 셋째날 그랗게 밖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것이다.
그리고 신문과 잡지를 볼수 있었고 텔레비전도 시청할수 있었다. 그 행복이 나에겐 왜 이렇게 크게 다가왔는지. 예전의 나였다면 전혀 느낄수 없는 작은 즐거움이었다.이어서 네판이나 천복이에게 탁구를 지고 말았지만 내몸은 그리고 내 정신은 진것이 결코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다음에는 내가 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고 나니 내가 찾지 못했던 삶의 의욕이 잠시 살아났다.
"치 형도 나한테는 안되는구나. 역시 성호형님이 아니면 재미없구나.형 다음부턴 분발해."
천복이는 웃으면서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구김살없는 그 모습에 나는 그녀석이 이곳이 힘들지 않는구나 하고 착각했다. 그리고 그 녀석을 방에 들어와서 관찰하였다.갑자기 천복이가 울었다.왜 날 이곳에서 안내보내주냐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슬프게 구슬프게 서럽게 울어댔다. 나도 부모님께 그렇게 울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22살인데 13살에 불과한 꼬맹이가 잘 견디는데 나는 죽겠다고 울상을 지을순 없었다.
"천복아 너는 정상이니까 금방 나갈수 있을거야."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정상이라니. 여기서 정상이 아닌 사람이 어디있겠는가.후성이조차 신들림을 받았다고 한없이 반복하며 자책하는 녀석 빼고는 모두 정상인것 같았다.이런 고민을 하는 나 조차도 나는 아무이상없다고 여겼다.그래서 의사들에게도 주치의에게도 강한 반발심을 느꼈다.왜 나를 안보내 주는것이지?
"형도 곧 나갈수 있을거야.형도 멀쩡해 보이는데 왜 여기로 넣었는지 알수없지?" "너는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냐?"
"초등학교 6학년이야. 학교애들이 내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그러니까 질투해서 나한테 몰매를 놓았어. 그리고 나도 간신히 그것들을 막다가 야구방망이를 들었는데 그것으로 애들을 때렸나봐.자기들이 때린것은 생각안하고 나를 몰아붙여서 음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안나.어떻게 내가 했는지는 몰라도 깨어나보니까 여기였어.
엄마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시고 나또한 그것에 부담을 가졌어."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데 이렇게 말을 잘하다니.생각도 깊은것 같았다.상황도 나하고 비슷하지 않나? 나 역시 린치를 당하고 들어왔고 물론 나는 맞기만 하다가 왔지만..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아직 내옆에는 부모님이 안계시다는 점이었다.
"형 부모님은 어디계셔?"
"아직 안오셨는데."
"나는 어려서 부모님이 일주일이 되기전에 왔는데 아마 형은 일주일이 안되서 부모님이 못오신걸거야."
"아 그렇구나."
나는 원망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부끄러웠다.나는 초등학교 6학년생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아직도 부모님을 찾다니 나는 혼자 있을수 없는것일까? 하지만 불안하다.옆에 가족이 없다는 것이 그리고 혼자서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이거 나이값을 너무 못하는것 같았고 눈물이 날려고 했다.
그렇지만 애 앞에서 울수는 없어서 대변을 누러 간다고 천복이한테 말하고 변기에 앉아 서럽게 울었다. 그래도 혼자 구석방에서 있을때보단 나았기에 그것만이라도 위안삼자.지금도 준규라는 형이 그곳에 있을텐데.. 그형도 나처럼 사흘후에 이곳으로 오는것일까?
오면 잘해줘야겠다. 나도 거기생활이 힘든것은 아니까 잘해줄수 있을것이다.한참을 울었을까. 나는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다 나간것을 확인하고 그후에 세수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창운이가 성호형님과 얘기하고 있었다.
"성호형님 형 요새 너무 살찐것 아니에요? 아주 굴러다니겠네. 처음에 봤을때는 안그랬는데 지금은 아주 복근이 상당히 나오셨는데요?"
"글쎄 난 영훈이가 매일 초코파이 한상자에 콜라를 한병 먹길래 나는 매일 그것을 먹어야되는가보다 생각하고 매일 간식을 시켰지 뭐야. 그리고 일주일동안 장복했더니 지금 이 모양이야.영훈이 보고 따라하는것이 아니었는데."
"거보쇼.성호형님 그렇게 소신이 없어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우? 하긴 내가 조금 카리스마가 있긴 하지만 그것을 따라하시면.. "
"따악!!"
"이놈이 카리스마 좋아하시네.그게 카리스마면 우리동네 뽀미는 동네 똥개들을 순식간에 20마리 정도 불러들이는데 그럼 뽀미는 카리스마의 전형이겠구만."
"그 카리스마에 넘어온것이 성호형님 아뇨? 누가 초코파이 사먹으랬나? 후후후"
"말을 말자.말을 말아. 어떻게 된 녀석이 한번을 질려고 하질 않아.어쩌겠어 5살많은 이 형님이 참아야지."
성호형님과 영훈이 형이 말싸움을 하는것이 너무 재밌었다.영훈이 형한테 저런면이 있구나. 꽤 뻔뻔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구나 싶었다.나도 오늘 간식에는 초코파이 한상자와 카페라떼 하나를 신청했다.이윽고 간식이 도착했다.
나는 초코파이를 뜯어 방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얼굴이 불그스레한 아저씨한테 먼저 나누어 주었다.
"어디보자 네가 새로온 아이구나. 받기만 할순 없으니 자 이 우유라도 하나 먹어라.초코파이 잘먹으마.그런데 넌 여기에 왜 왔니?"
"아 네 저도 그걸 잘모르겠습니다.제가 여기 왜 왔어야 하는지. 쉬러온것은 아니니 어딘가 병이 있을텐데 저는 아직 그런것을 알지 못해요.내일 아침에 회진돌때 주치의하고 의사선생님을 보게 될것이라는 데요."
이상하게도 어쩐지 이 아저씨를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었다.무엇인가 너무 익숙했다.알고있던 사람을 다시 만났는데 그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느낌이랄까.답답했다.그 아저씨는 나를 기억못하는것 같았고 나역시 확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언제 이 아저씨를 볼수 있었을까 해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러고 보면 손명희 간호사도 익숙했다. 비록 둘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기가 낯설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 하던 때와 비슷했지만 그때의 느낌마저도 익숙했다.그렇게 하나하나 초코파이를 돌리고 나니 내 몫은 네개 밖에 안남았다.음 매일 나눠드리기에는 문제가 있군.그래서 다른사람들도 먹을것을 돌리지 않는것 같았다.
가끔 면회온 사람이 준 음식은 돌렸지만 이렇게 간식으로 산 것은 잘 돌리지 않았다.뭐 아무려면 어떤가 기분은 좋은데.하지만 나도 다음부터는 돌리지 말아야겠다.내가 환우들의 간식을 책임질수는 없으니 말이다.성호형이 나한테 다가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처음 왔지?저기 13살짜리 천복이도 잘지내는데 설마 형인 네가 잘 못지낸다고 하진 못하겠지? 그래도 답답해서 미칠것 같은 기분은 이해해. 나역시 지금도 담배가 그립고 가족들을 보고 싶지만 가족들에게도 폐가 될거야. 그렇지만 여기에 넣은것으로 원망받을까봐 못오시는 점도 있을거야. 그것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넌 네가 모르는 너의 이상한 행동이 있을거야.집에서 한 3년동안 나오지 않았다든지 말야"
"형 왜 그얘기가 여기서 나와요? 조금 우울했지만 아니 그랬지만 그 정도가지고 여기에 갇히다니.억울할 뿐이라구요.제길.눈물이 다 나오네. 엄마가 아빠가 원망스러워요. 그 분들의 동의만 있으면 여기서 나갈수 있는데 벌써 몇달째 여기에 처박아두니 말예요.흑흑!!"
"..나라고 안힘들겠냐.시간이 가지 않는곳에서 환우들과 같이 지내는것과 알게모르게 나타나는 각자의 광기가 있잖아.특히 후성이는 정신분열증이라 더 힘들겠지. 우리는 공동체야.그래서 같이 여기서 사는것이고 서로를 보듬어야되.우리끼리 마저도 서로 피한다면 우리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있을까.잘 생각해봐."
역시 성호형님은 이야기가 시원시원했다.내가 가장 고민하던것도 그것이었다.기왕 여기에 온거 사람들끼리 잘지내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단 시도때도 없이 나를 껴안으려고 하는 후성이는 빼고 말이다.아니 그 마저도 보듬어 안아야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나를 괴롭히는 녀석의 생활따윈 알바 아니다.다만 괴로운것은 매일 그와 마주쳐야하는 것이다.학교에 있을때는 보기 싫은 상대는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C.C들이 서로 깨지고 나서 누구한명이 휴학이나 군대를 가버리는 것같이 피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공동체를 강조한다.운명공동체. 여기에 몇개월씩 있으면 어떤기분일까? "인성아 너는 여기온지 몇달이 지났다고 했잖아? 그런데 오픈으로 가려면 얼마나 있어야 되는거야?"
"오픈으로 가려면 시간따윈 정해져 있지않아. 보통 환자들처럼 몇월 몇일 퇴원이라는 것이 없어.그것이 사람 피말리게 하는거야.기약할수 없는 날이라는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느끼니? 아직 삼일 밖에 안되어서 모르겠지만 정말 끔찍한 느낌이야.너도 직접 부딫히겠지만 아마 나하고 느낌이 같을거야."
"그래서 오픈으로 가는데 며칠이 걸리냐구?"
"확실한것은 없댔잖아!! 나처럼 몇개월 여기있을수도 있고 아니면 1,2 주만에 가는사람도 있어.하지만 그게 다가 아냐. 오픈에 가면 또 언제 나갈지 모르는 생활이 이어진다구. 그래 난 여기온지 두번째야. 오픈으로 가면 사람들끼리는 여기보단 친해지지 않지만 전화도 쓸수있고, 오래되었지만 컴퓨터도 사용할수 있어. 사람들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는 곳도 여기보단 훨씬 넓고 말이야. 하지만 하지만 나는 아직도 클로즈야 제길.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되는거야?"
인성이가 갑자기 눈물을 훌렸다. 그리고 눈물이 주룩주룩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한없이 울고 있었다.한 5분이 지났을까.지난번에 했던 이야기를 뭐가 그렇게 또하고 조금 더 살을붙여서 하는것이었다.그 동안에도 계속 우는것이 소름끼쳤다.
아 이것이 마음의 병이구나. 무섭다. 나도 다른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렇겠지?아무 이상없어 보이던 인성이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것이 맞구나.그러고보면 다른사람들이 특이할만한 점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천복이도 천복이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테고 창운이 역시 그럴지 모른다.그러면서도 나는 나보다 더 심한 병을 앓고 있다는 후성이를 보면 조금 안심된다. 나는 적어도 저 녀석보다는 빨리 나갈테니까.
같잖지도 않은 생각이고 비열했다. 인성이는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점점 더 심해졌다.지나가던 간호사가 그것을 보더니 의사선생님을 불렀다.
"의사선생님 여기 인성이가 또 울기 시작했어요. 휴 이제 좀 나아졌나 싶었는데 말예요."
"인성아 아직도 뭐가 그리 서럽니? 아무도 네가 잘못되길 바라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너는 금방 나가게 될거야."
"그 금방이 언제냐고요? 재입원 했으니 지난번 보다 늦게 나갈거 아녜요. 제발 확실하게 말해줘요. 한달 남았으면 한달 남았다고 하고 두달 남았으면 두달후에는 퇴원한다 이런말을 해달라구요!!"
"너도 그렇게 말할수 없는것을 알잖니. 약을 조절하고 상태를 체크하는것이 개인차가 있다보니 더 오래걸릴수도 있고 더 빨라질수도 있잖아. 여기서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가서 또 사고치고 들어올수도 있어. 너도 그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천복이 보기 부끄러운줄 알아라.어린대도 얼마나 장하니."
"천복이 애기 꺼내지 말아요. 저녀석은 아직 이곳의 무서움을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잖아요.아 나는 여기서 하루도 더 있을수 없어요.미쳐버릴것 같으니까요. 정말 나까지 미쳐버릴것 같아.."
인성이의 말이 하나하나 마음에 와닿았다. 기약 없다는 것이 이렇게 두려운 것이었다니.이렇게 소름끼치게 깨달은 것은 처음이었다.이렇게 하루하루 보내기가 지옥같은데 이 시간들이 언제까지나 계속될지도 모른다니.정말 죽고 싶었다.그렇지만 나의 눈에서는 인성이와 같은 닭똥같은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그렇지만 창운이도 묵묵히 색종이를 접었고 성호형님은 어색하게 초코파이를 꺼내 먹었다.
"그렇게 생각할것도 아니야. 나는 여기 2번째지만 대부분 두세달이면 나갈수 있어.천복이가 여기의 무서움을 잘모른다지만 벌써 거의 3주나 버틴것 보면 대단하지 않아? 인성이가 몇개월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울기만 한다고 해결되는것은 아니잖아. 아마 더 잘알고 있을거야."
평소에 별로 말이 없던 영훈이 형이 말했다.
"그래 인성아.여기서 약을 먹고 치료하면 곧 나갈수 있을거야. 곧 오픈으로 갈것 같은데 그렇게 울상 짓지마.오픈으로 가면 좋은일들이 있을거야.거기서 지내다가 조금 있으면 퇴원할거야.주치의인 내 생각은 그래."
인성이는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한번 나온 눈물은 계속 주르륵 흘렀다.우울증이 무서운것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평소에는 아무 이상없는것 갖지만 이렇게 감정이 북받히다니..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사람들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각자 얼마나 힘든지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알겠지.그래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여기에서 나갈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천복이가 자신이 대견하다는 이야기를 듣자 어색한듯 뒤통수를 긁었다. 볼수록 신기한 녀석이다.
보통의 경우 같았으면 이런 어린애는 울기만 했을텐데 여기서 꿋꿋이 버티는것을 보면 나가서도 잘할것 같다. 저런 의지력을 가진 아이가 무엇을 견디지 못하고 이리로 온것일까.초등학생인데 린치를 당했다고 듣긴 했지만 아직도 왜 그런일을 당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못들었다. 초등학생애들이 천복이를 시기하여 그랬다고 하는데 그것은 왕따였을것이다. 왕따를 겪었지만 이렇게 강인한 모습이라니 정말 대단해 보였다.
하긴 천복이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무엇보다 여기 우리 창운이 인성이 그리고 나보다 훨씬 철이들은 모습이었으니까.어느새 인성이도 자신을 추스렸다.정말 이은주가 왜 우울증으로 자살했는지 알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감정이 절절이 날때 그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는다면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것이다.어느새 식사시간이 되었다.우리는 오랜만에 식사를 받고는 소파가 있는곳으로 가서 다 같이 먹었다.인성이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우리는 웃으며 밥을 먹었다.양념고추장을 꺼내서 밥에 비비고 미역국에 생선을 먹었다. 병원밥이라 그리 맛없을것이라 여겼지만 그렇게 떠들면서 먹으니까 정말 꿀맛이었다.
"인성아. 너 이자식. 어려운일이 있으면 형에게 재깍재깍 말해야지. 오늘처럼 쌓아두었다가 한번에 풀려고해?"
"성호형님 그런게 아니잖아요. 여기서 모두 가지고 있는 불안을 형님께 말한다면 매일 말해야죠. 매순간 마다요. 그 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저에겐 지금도 서러워요.죽고 싶을만큼."
"인성이가 많이 힘들었구나. 그렇지 여기서 그런 불안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생각해봐. 저기 구석방에서 우리말을 듣고있을 준영이라했나. 아무튼 그 사람을 생각하고 위안을 가져. 얼마나 힘들겠니. 혼자서 삼일을 있어야하니.. 그것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니. 신문.잡지를 볼수 잇고 텔레비전도 보고 탁구도 치고 말야.그리고 이사람들과 이렇게 저녁식사도 하고 말이지."
성호형님이 모두를 쳐다보았고 인성이는 울다가 웃었다.
"아 담배 피고 싶다. 진짜 여기서 제일 힘든것은 그것 같아. 제길.인성이 이자식은 담배 고프지도 않나 나한테 아무말도 안하네,"
"창운이 나도 담배 고프다.정말 꼬시게 한번 피고싶은데." "창운아 이 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떡하냐. 산책갔을때 필수밖에 없잖아. 그때 두가치 정도 필수있으니 아 정말 암담하네."
"성호형님 저도 다음에 나가면 담배 필게요.아 진짜 스트레스 풀것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는것 같아요. 창운이도 그렇고 다들 담배피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아서요.저도 그래서 한번 피고 싶어요."
"스물 두살까지 안폈으면 안피는게 좋아. 다들 십대때부터 하니까 잘 못끊는거고 피는거야. 근데 스물두살까지 참았으면 계속 안필수도 있으니까 잘생각해봐. 바깥에 있을때 같으면 권할텐데 막상 여기 있으니까 권하기가 좀 뭐하네. 안좋은것을 알지만 사람은 자기를 해치면서도 그것에 쾌락을 얻는거야. 하긴 담배를 피면 잠시 힘들게 하는것들을 잊을수 있지. 나가면 속담배부터 가르쳐야겠군."
영훈이형이 밥알을 튀기면서 이야기했다.산책. 산책이라. 아 진짜 이 좁은 공간에서 계속 갇혀 지내다보니 정말 바깥이 그립다. 꽉 짜여진 건물에서 한발짝도 못 벗어난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 산책이라 언제 있을까? 나가면 담배나 한대 물어야겠군. 진짜 참기 힘드네. 바깥에 있을때는 매일 한갑씩 피웠는데 여기서는 벌서 4일째 금연이라니. 참 근우 그녀석이 본다면 킬킬거리며 웃겠군. 꼴초 자식이 담배끊으려 한다고 말야. 아 밖이 그립다. 던힐 라이트 정말 맛있는데 말야. 뭐 디스 플러스도 가격에 비해서 맛있기도 하고. 음 나가면 뭐부터 필까? 일단 근우자식 뒤통수를 한대 갈겨야지 속이 시원할것 같은데.
여기는 친구 면회가 안되나?
"저기요 간호사님 여기는 친구 면회가 안되나요?"
"여기는 가족이나 친지들 병문안 밖에 안되요. 아쉽지만 친구분은 나가서 만나봐요." 이름이 손명희 간호사라고 했나. 왜 이렇게 자꾸 들어본 이름같지? 분명히 마주칠일이 없었을텐데..
"재훈씨 예전에도 이거 물어보지 않았어요?"
"아뇨 지금 처음 물어보는 건데요."
"흠 알았어요. 그럼 잘쉬고 자요." 시계를 보니 9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9시가 되면 전등의 불이꺼져서 조금이나마 뭘 할려면 간호사실 근처에 있어야지 책이라도 볼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오기전에는 9시는 잠자기엔 너무 일렀지만 여기온이후로는 쿨쿨 잘도 자고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환경이 만든다고 하는것인가?
나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의 소리를 줄이고 보았다.누워서 잘 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청아한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며 걸어가는 누나뻘인 사람이 있었다.왜 오늘따라 그 소리가 귀에서 잊혀지지가 않는지 알수 없었다.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정말 이병이 다 나을까? 아니면 나와 같이해주실까.
하지만 나를 이곳에 처하게 만든것이 하나님이라면 나는 누구를 원망해야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신기한것은 보통사람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더 신을 찾는데 나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내 마음속에 있던 신앙심이 힘들어지면 힘들어질수록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신실한 신도이신 고모는 나를 위해 기도도 많이 해주셨었는데. 그러고보면 여기오기 바로 전날에 고모네 집에서 잠을 잤던것 같다.내 또래인 건이와 같이 지내고 영화보고 교회도 가서 점심을 얻어먹었던 것 같다.
아 그런데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하지. 자꾸 나는 기억을 잃어가는것 같았다. 불과 며칠전의 일인데 이렇게 멀게 느껴지다니.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켜 앉고는 찬송가 부르는 누나를 계속 보았다.그 순간 그 누나도 나를 바라보았다. 우연이었을까.그 누나는 나를 보고 한번 웃었다. 나를 보고 한것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본것일까?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누나의 시선이 닿은곳에는 나밖에 없었다.환한 미소에 아찔해지는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그누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찬송가를 불렀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노래들을 외우고 있는지 참 신기했다. 신앙심으로 항상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 같았다. 옆방, 여자병실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가끔 화장실을 가거나 하며 마주칠때 마다 항상 찬양을 하고 있었다.힘들어서 그러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너무나도 기도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인상이 깊었다. 그런데 그 누나가 나한테 다가왔다.
"이 늦은 시각에 뭐하니? 이름이 뭐야? 나는 은주라고 해. 너를 여러번 본것 같은데 친숙해서 말하는거야.나이는 말할수 없지만 내가 누나임에 틀림없으니까 말놀게."
"아 저는 재훈이에요.아무리 봐도 누나뻘이니 말노세요."
"아무리 봐도 라니. 나도 화장잘하고 나가면 20대 초반이라는 소릴들어. 어머머 나 20대 초반이야 호호 말실수가 나오네 음.아무튼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성경책이잖아. 교회는 잘다니니? 하나님은 잘 믿어?"
"음. 그냥 읽고 있어요.달리 읽을만한것도 없고..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요.왜 나를 이곳에 넣었나 하는 원망에 말이죠.여기온 것이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겨우 이제 4일이 지났는데 이렇게 힘드니 누나는 여기 온지 얼마나 되었어요?"
"누나는 여기온지 3주가 되가.그래 처음 일주일이 제일 힘들지.그리고 나서도 계속 힘들어.하지만 처음보다는 나아진다 이거지. 항상 기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임을 여기와서 알았어.차라리 죄수들처럼 몇년 몇개월 하는 식으로 정해져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그리고 가끔씩 격해지는 감정이 힘들어. 그렇지 않니?"
"응 은주누나. 누나가 20대 초반이랬으니까 나이차도 얼마 안나는데 말 놀게"
"어 그.그래 나이차도 얼마 안나니까 말야."
은주누나는 말과는 다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잘 빗어넘긴 옆머리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이 반짝이는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그럼 누나아 찬송가는 왜이렇게 잘불러? CCM 가수해도 되겠는걸. 가스펠이라도 부르면 되겠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잘해."
"에이 그건 아니겠지."
"정말이야 교회다닐때에 성가대를 지휘했었어. 한 8년정도." "교회 열심히 다니는 구나. 그런데 계속해서 시련이 오는데 하나님을 믿고 싶은 생각이 드는거야? 의지 할데가 없다지만 나는 왠지 그게 잘안되네."
"하나님은 항상 옆에 계셔. 의식하든 하지 않든간에. 아마 너에게도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을거야. 지금 이순간에도 말야."
"그렇게 생각하면 누나와 이야기하는것이 은혜일수도 있겠네. 지금 나는 누나하고 이야기 하는것이 좋으니까."
은주누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요녀석. 누나한테 작업하는 거야? 순진하게 생겨가지고는 능글능글하잖아. 뭐 이러다가 내 삶에는 누나밖에 없어요. 뭐 이러는거 아냐?"
"...어떻게 알았죠? 농담이죠. 누나가 뭐 예쁘다고 작업을 걸겠어요."
"욘석. 그렇게 누나 놀리면 안된다. 누나가 이래뵈도 한 운동한단 말이지." "어련하시겠어요. 네네 알아모시죠."
나는 깐죽대다가 매를 벌었다. 누나는 햇빛을 쐬지 않아 뽀얀 손으로 등짝을 때렸다. 누나는 그러고는 내가 앉아있는곳에 앉아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았다.옆에서 보는 청순해 보이는 얼굴에 가슴이 두근거렸다.하지만 성욕은 일지 않았다.여기서 먹는 약은 성욕을 잊게 만들었다.성욕이라기 보다는 조금 더 순수한 감정이었다.옆에서 보이는 은주누나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둘의 숨소리가 작아져갔다.묘하게 가까워진 은주누나와 재훈이는 순간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재훈아 이리와서 내볼에 키스해줄래?"
"네..네"
나는 다가가서 살짝 뽀뽀를 했다.
"너무 어리구나. 그런게 아니라 이렇게..."
은주누나와 입술이 겹쳐졌고 따뜻한 혀가 느껴졌다.서로의 혀가 섞이는 느낌에 재훈이는 아찔해졌다.처음에는 은주누나가 했고 숨이막힐듯 했다. 하지만 한번 입맞추고 내려오자 재훈이가 다시 입을 맞추었다.정신이 아찔해지는 첫키스에 재훈이는 부들부들 떨렸다.환희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아 이대로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조금 충동적이었지만 너무도 짜릿했다.은주누나도 키스가 끝나고 눈을 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은주누나의 가슴을 만졌다.
"아직.. 아직은 아니야.간호사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 더이상은 안되"
은주누나는 여자병실로 도망치듯이 갔다.하아..나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은주누나와 키스한것이 꿈만 같았다.그 황홀한 어른의 키스는 나의 머리 한구석을 휘져어놓은 듯 했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서 누웠다.그렇지만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었다.은주누나도 이렇게 잠을 못자고 있을까?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연애라니 나도 참 어이가 없다.
정신병원에서 키스라니.무언가 잘못되있는것임은 알지만 피할순 없다. 나가게 되면 그렇게 되면 서로 만나서 다시 이어갈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오픈으로 은주누나가 먼저가고 퇴원하게 되면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들지 못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나 세면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그리고 은주누나를 기다렸다.
"좋은아침 은주누나."
"그래"
은주누나는 왠일인지 차갑게 말하고는 세면을 했다.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는 황급히 나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키스한지 하루밖에 안지났는데 이렇게 나한테 멀리 느껴지게 행동하다니.그리고 누나가 먼저 한것이 아닌가. 조금 황당해졌다. 이렇게 감정이 급반전 할수도 있나? 도저히 여자의 마음은 모르겠다.
내가 알수는 없지. 조금 있다가 말을 걸어봐야겠다. 아침식사가 나왔다.나는 그것을 가장 먼저 받아서 나이가 가장 많은 얼굴이 불그스레한 아저씨한테 먼저 갖다 드렸고 그다음에 내것을 챙겼다.
"이름이 재훈이라고 했나.고맙구나. 그런데 어디서 나 본적 없니? 낯설지가 않은것 같네.하긴 지난번에는 자네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조금 뚱뚱했었다네."
뚱뚱했다고?그러고 보니 일년전 까지는 100킬로가 넘었지. 지금이야 80킬로그램이지만. 응? 내가 무슨생각을 하는거지? 나일리 없잖아.
"아 저는 기억이 없어서요. 아무튼 익숙한 느낌이 듭니다. 참 밥먹는데 이런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어떻게 여기 오셨어요?"
"음 그건 내가 알콜 중독자기 때문이야. 정신이 이상한것은 아니고 술을 너무 마셔서 얼굴도 붉그스레 하잖니.그래서 벌써 몇번째지만 다시한번 여기로 보낸거지. 이젠 이게 마지막이라고 하더군. 후 마누라가 엄포를 놓았어.다음번에는 가두어놓고 데려가지 않겠다고 말야. 아 무서워서 살수가 있나? 허허."
"그러면 술때문에 오면 언제 퇴원하세요?"
"보통 일주일에서 이주일 걸리더라. 이제 얼마 안남았지."
일 이주일이라고? 그러면 요양삼아서 왔다 갈수도 있겠네.부럽긴 하다. 나도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튼 생각을 뒤로 하고 나 역시 식사를 하였다. 이번에는 밖으로 안나가고 방에서 침대에 있는 책상을 피고는 거기에 밥상을 올려놓고 먹었다. 사람들은 병원밥은 맛이 없다고 하지만 여기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게 느끼고 있었다.
반찬 하나 밥하나 거의 남기는 사람이 없었다. 간혹 다이어트한다고 남기는 사람을 제외하면.. 그 멤버중에 내가 낄줄은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어쩐지 간식을 마구 먹다보니까 살이 불은 느낌이 들곤 했다. 결국 나는 5일후부터 다이어트하기로 결심했다.
"자 회진 돕니다.환자분들은 자기 자리에서 앉아서 대기 하시기 바랍니다." 의사들이 크로즈 부터 돌고 있었다. 제일 구석방에서 준영라고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였고 여자병실 그리고 남자 병실로 들어왔다. 인성이가 첫번째 차례였다.
"인성아 어떻게 여기 생활은 적응할만해?"
"선생님 저 언제 나가죠? 답답해 죽겠어요." "곧 있으면 오픈으로 가게 될것이란다.천천히 기다려보렴."
"그 언제가 언젠대요? 벌써 몇달이 지났어요.그말을 어떻게 믿어요.좀 확실하게 얘기해주세요.몇월 몇칠이라고 말예요"
"그렇게 윽박지른다고 되는게 아니고 약물 적응기간도 있고 너한테 약을 새로 지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거야. 그러니 어떻게 확답을 줄수있겠니. 그리고 이렇게 떼를 쓰면 쓸수록 오픈으로 가는것은 늦어진단다."
"늦어지면 여기 다른 사람들보다도 늦단 말입니까? 저와 같이 들어온 애들은 저만 빼놓고 오픈으로 갔고 퇴원 했을지도 모르는데 이 고통을 또 겪어야 된다고요?"
인성이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또 울었다.주룩주룩 서러운 눈물이 침대를 적셨다.
"인성군, 아직은 안되요. 상태가 호전이 되기는 커녕 점점 더 나빠지고 있군요."
그럼 다음 창운이.잘지내고 있니?"
"네 잘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저 외출은 언제부터 가능합니까? 그리고 아직 산책이 허용안되었는데 산책 갈수 있나요?"
"음 산책은 이번에 가능하게 해주마. 외출은 부모님이 오셨을때 허가를 받으면 병원 주변 까지는 갈수 있단다. 집에서 며칠 보내는 것은 오픈으로 가면 하는거야. 그러니 잘 지내보렴"
"그럼 영훈씨. 아무 이상 없습니까?
"이제 곧 식목일인데 혹시 나무 심으러 가는일은 없습니까? 여기에 갇혀있다보니 너무 답답합니다.한번쯤 산책로에있는 곳까지라도 가서 조그만 나무를 심으면 안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언제까지 여기 클로즈에 있어야 됩니까? 벌써 저도 몇달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아 그건 경과를 봐서 회의를 해서 정하는 것입니다. 환자의 상태를 보고 그날그날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답은 드릴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한결같이 같은것을 물어보고 있었다. 나 역시도 내차례가 되었을때 말할것이 별다른게 없었다.
"그러면 천복이.잘지내고 있니? 어린데 고생이 많구나. 그래 엄마는 오셨니?"
"아니요 오시지 않았어요. 아악 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이 좁은곳에 있어야 되요? 전 산을 타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갇혀있으니 그것도 못하고 너무 너무 답답해서 죽을것 같아요. 잘 견뎌보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되요.저랑 같이 들어온 인호는 지금 오픈에 가있고 저만 남아 있으려니 울것 같아요. 흑흑"
"그래 천복이 힘든것 알지. 그렇지만 천복이가 인호보다 빨리 나갈수도 있단다. 오픈에 가면 달라지는것이 많지만 오픈에 있는 기간은 정해져 있는것이 아니니까. 조금 늦게 간다고 해서 꼭 늦게 퇴원하는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말거라. 어린데 힘든것은 안다. 하지만 어쩌겠니? 이곳에 왔는데. 그런이상 너도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연구해보렴."
천복이도 조금 훌쩍거리다가 곧 울음을 멈추고 다시 활기로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철호씨. 술은 이제 안드실수 있겠습니까? 나가신후에라도 술은 최소한 몇달간은 그만 끊으셔야 합니다." "술이야 이제 끊을수 있습니다. 벌써 일주일 여기서 버티지 않았습니까.앞으로 무슨일이 있던 약을 꾸준히 먹겠습니다."
"좋아요 철호씨.상태가 많이 호전되어서 오늘 오후에 오픈으로 옮기겠습니다. 조금 더 지내보시고 약은 꾸준히 드십시오."
오늘 오픈으로 간다는 말에 철호아저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금방 나갈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루하루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는것이 마음에 들리는 없었을테니 말이다.그리고 성호형님 차례가 되었다.
우리가 형이 아니라 형님으로 부르는 이유는 결혼 하셨고 30대 후반이라 아저씨라고 하기도 뭐하고 형이라 부르기에는 나이차가 많이나서 형님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중에서 대장격인 성호형님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성호씨. 이제 같은곳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점이 개선되었나요? 약은 꾸준히 복용하시구요.그리고 오늘부로 산책이 가능합니다.나가셔서 바람 쐬고 오세요. 상태가 많이 호전되는것 같습니다."
"저 그러면 저는 외박은 언제 가능합니까? 집으로 가는것은 말입니다.가족들이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픈으로 갈려면 얼마나 남았나요?"
"오픈으로 가는날은 곧 올겁니다. 그렇게 불안해 하지마시고 잘 견뎌보시기 바랍니다. 여태까지 잘 견뎌어셨는데 그걸 못기다리시지는 않겠지요.그리고 오픈으로 가는 날은 그렇게 회진시에 말하신다고 되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더 이상 물어보신다고 해도 대답해드릴 말이 없습니다."
성호형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결국 확실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 만족하게 된 것이라고는 산책허가 밖에 없었다. 그거라도 어디냐 하는 표정으로 성호형님이 물을 마시며 앉아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차례가 왔다.
"재훈이 여기 생활은 적응할만 한가? 3일동안 구석방에 있을때는 그렇게 날뛰더니 여기서는 조용해졌구나. 그때는 네가 약도 안먹고 해서 발작이 일어난것이었단다. 네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 불편한점은 없니?"
"저는 언제쯤 산책이 가능합니까? 그리고 부모님 면회는 언제가 가능하고 또 다른사람들처럼 오픈에 언제 갈수 있을지 알고싶습니다."
오픈에 가는 날짜는 사람들이 다 물어보고 확답을 할수 없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었지만 하지 않을수 없는 질문이었다.
"음 산책은 보내드리도록 하죠. 그리고 다음주 부터는 부모님 면회가 가능합니다. 그러니 잘 지내보시구요. 약물반응이 좋으니 다른사람들보다 빨리 나갈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의사들이 곧 썰물 처럼 빠져나갔다.
"제길. 지네들이 의사면 다지 왜 저렇게 떼거지로 지나다니며 사람 위협을 해? 그리고 확답하나 들을수 없다니 이건 무슨경우야? 피가 타는거 같네 아 짜증나."
인상이 날카로운 영훈이 형이 성질을 내자 다른사람들은 말을 걸수가 없었다.
"이봐 영훈이. 나라고 그렇지 않겠나. 빌어먹을 하지만 여기서 나갈때까지는 얌전히 지내자구. 사고 쳐봐야 더 오래 걸린다는것 알고 있잖아? 화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어쩌겠나."
"후 성호형님 말이 맞아요. 그리고 천복이도 저렇게 잘견디는데 어른으로서 참 못보여줄 모습 많이 보여줬네요. 천복이 그렇다고 형들한테 덤벼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헤헤 그럼요 알죠.탁구로 영훈이형 이기면 안된다는것도요. 하하" "아니 요녀석이!! 잡히면 절단날줄 알아. 거기서."
천복이는 명랑하게 웃으며 영훈이형을 피해서 텔레비전 있는곳으로 달려갔다.천복이가 소파에 앉아서 신문에 있는 만화를 보았다.그리고 얼굴이 붉으스레한 아저씨가 오픈으로 짐을 싸서 옮겨지고 있었다. "천복아 잘지내고 오픈에서 보자.넌 곧 올거야.어린것이 대단하기도 하지.그럼 네가 와서 인호볼때를 기다리마."
"예 아저씨.가서 잘지내시구요 인호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그래 알았다.그럼 네가 오길 고대하고 있으마 허허 참 잘 견디는구나 이 힘든생활을.엄마한테 매달리지도 않고."
아저씨는 방에서 짐을 싸서 남자 간호사와 같이 오픈으로 발길을 옮겼다.천복이는 무슨생각을 하는지 어린애 답지 않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텔레비전을 틀었다.텔레비전에서는 '비'가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노래를 불르고 있었다. 케이블 음악프로였는데 요새 비가 '이 죽일놈의 사랑'으로 인기몰이를 하자 예전의 음악을 틀어주는것 같았다.
그것을 천복이 이전에 자리잡고 앉았던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하고 턱이 사각진 한 여자가 보고 있었다."
비다 넌 아니? 비가 올해 방송연예상이 끝나면 나를 찾아와 결혼할거야. 내가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봤어.나는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면되.부럽지?저기서 노래부르고 있는 사람이 내남자야 아 행복해."
"..뭐라 말할처지는 아니지만 누나 정말 심각하네요.같은 병실에서 있어서 말하기는 뭐하지만."
"뭐?내가 이상하다고? 어린놈의 자식이 못하는 말이없네.비가 안올거 같아? 여기에 지 애인이 있는데 안올거 같냐구?"
악을 쓰면서 천복이에게 달려들어 한대 쥐어박았다.그제야 천복이를 보고있던 여자 간호사가 달려들어 말렸다.
"화수씨 이러면 안되요. 환자끼리 때리다니 여기는 운명공동체에요.자 들어가서 쉬세요."
"씩씩 너 운좋은줄 알아.천복이 새끼 다음에도 내말 안믿으면 확 그어버린다."
화수라고 불린 여환자가 눈을 부릎뜨며 천복이를 쳐다보며 말했고 천복이는 그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리고 나는 마침 탁구대로 가다가 그 광경을 보았다.여기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대다수이지만 가끔 저런 사람들이 있었다.정말 보기만 해도 미쳤다는 것을 알수있는 사람.천복이는 아이답지 않게 대처를 하고 있었다.울지도 않고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않고 마치 내가 어린애고 천복이가 20대초반의 청년같았다.그리고 부끄러워졌다.나였으면 당장 큰소리를 지르며 맞싸웠을텐데 천복이는 평정을 찾고 있었다.
나는 천복이 옆에서서 묵묵히 그 모습을 보았다.그때 연주누나가 찬송가를 부르며 내 옆을 지나갔다.
"연주누나 오늘도 찬송가 부르는 거야? 노래 너무좋다."
"...." 연주누나는 아무말 없이 나를 흘깃 보더니 다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나는 무시당한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졌다.
"누나 왜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왜 그렇게 씹고그래?"
그러나 연주누나는 내가 따라가서 말하는것이 싫은듯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이게 뭔가.어제밤에 누나가 먼저 키스해서 그것을 했을뿐인데 그리고 이제 서로 좀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인가.나는 서글퍼졌다.
그래도 힘든생활인데도 어제의 일이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데 그것이 하루만에 없었던 일이 되다니..연주누나는 보폭을 넓게 걷고 그리고 찬송가 소리가 높아졌다. 도대체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까.옆에서 보는 연주누나의 모습은 어딘지 숭고하기 까지 했다. 찬송가에 완전히 몰입하여서 다른소리는 들리지도 않는것 같았다.
역시 연주누나도 여기에 온것이 이유가 있겠지.그렇다고 내가 정상일리는 없을테고..나는 아직도 내가 여기에 온이유와 병명을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분별력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무너지고 있었다. 연주누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던 것일까. 마침 아저씨가 나간 자리에 준규라는 사람이 방으로 옮겨졌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준영이고 26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절도있게 또박또박 방에서 말했다.
"그래 잘지내보자.거기서 힘들었지? 나는 성호라고 해. 너보단 나이가 많으니까 형이라고 불러라."
"예 형 그럼 형만 믿을게요"
"뭘믿어? 갑자기 무슨소리야?"
"아니 형이 방장인것 같으니 형한테 잘보이면 좋을거 아녜요"
"여기가 무슨 교도소냐.방장이 따로 있게. 암튼 흰소리 그만하고 다른사람들하고 인사해라."
준영형은 모두에게 인사했다.형 역시 그쪽방에서 힘들었는지 나와서 이야기 하는것이 즐거운듯했다. 역시 홀로 그곳에 갇힌다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준영형은 믹 군대를 마치고 집에서 지내다가 여기로 왔다고 했다. 갑자기 카드를 들고 여자와 놀고 차도 뽑아서 몰고 다니고 카드로 몇천만원을 쓰고 잡히지 않으려고 악을 쓰다가 남자 간호사들이 연락을 받고 달려가 제압해서 이곳으로 데려온것이었다. 눈빛이 허무한것이 인상적이었다. 얼굴도 나름대로 준수했다. 내가 먼저 준영형에게 말을 걸었다.
"형 나하고 탁구치지 않을래? 내가 랭킹 꼴찌거든. 나부터 밟고 차근차근 올라가서 성호형님하고 해봐.형 잘쳐?"
"진짜 탁구하면 나지.군대에서 한 탁구쳤지.좋아 나의 회전회오리 서브를 받아봐라."
나와 준영형은 탁구대로 가서 탁구대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의 서브에 나는 아찔했다. 공이 빠르게 낮게 내려오면서 회전이 걸렸기 때문이다.내가 간신히 그공을 치긴 했는데 공이 스매쉬치기 좋은 위치로 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매쉬. 제길 난 왜 여기서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거지?
지난번엔 수련이 누나한테 스매쉬연타로 먹고 지질 않나. 인성이한테 거의 더블스코어로 지고 창운이한테 지고 이긴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공을 잡고 공을 힘껏쳤다. 이번에는 운인지 내공이 낮게 패스트 볼로 가는것이 아닌가. 준영형은 받다가 나한테 좋은공을 넘기고 나는 그공을 탁구대에 찍었다.
"오오 제법인데. 그렇게 못하는 것 같진 않은데 너는 서브가 부족하다. 지금처럼만 보내면 많이 이길수 있을거다."
"그래요? 그럼 이번에도.."
나는 계속해서 패스트볼을 쳤지만 익숙해졌는지 준영형이 대응을 잘했다. 점수는 어느새 20대 10이었다. 이제 한점만 더 지면 나의 패배가 확정되는 것이었다. 천복이한테도 졌는데 이젠 이형한테도 지고 마는구나." 그리고 내려오는 스매쉬에 얼굴이 맞았다.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해 안해 준규형 너무하는거 아냐? 얼굴에 스매쉬를 갈기면 어떻해?" "아 미안 일부러 그런거야. 아니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글쎄 힘이 너무 들어갔지 뭐야. 조준은 너한테 했지만..아니 내가 무슨소리를 하는거지?"
나는 그 말을 듣고 혼란해졌다.본심이 나오는건가? 왜 말이 이렇게 엉키는 거지? 나는 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준영형은 연신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알았어 형 뭐 화낼일도 아니었고 탁구공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마."
우리는 탁구치는것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곧 있자 점심식사가 왔다. 며칠전에 후성이가 나를 자꾸 껴안아서 문제가 되었는데 그때 이후로 서로 본척만척 하다가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됬었다. 나는 점심 잘먹으라고 인사하고 지나갔는데 후성이가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후성이를 밀쳤다.
"내가 껴안지 말라고 했지? 왜 이렇게 사람 화나게 만들어? 싫다고 했지?"
"아니 난 좋아서 그러는건데 왜그래. 포옹하면 기분 좋지 않아?"
"포옹은 여자랑 해야 기분이 좋은거지. 시커먼 사내끼리 하면 그게 기분이 좋냐. 한번만 더 그러면 간호사한테 말해서 너를 저쪽 구석방에 처넣을거야. 알아?"
나는 너무 화가나서 후성이에게 큰소리쳤다. "귀신이 귀신이 말해. 너 무섭다고.자기보다 강한 귀신이 붙었대. 그래서 나는 그것을 떼내어 주려고 자꾸 껴안는거야. 네 주변에 자꾸 잡스런것들이 모여들어서 말하는데 성경책에도 귀신이 붙어있대. 오늘 점심은 닭도리일거야 그게 제일 맛있대."
밥을 열고 반찬을 보니 닭도리가 있었다. 이 녀석은 그걸 어떻게 알고있지? 소름이 끼쳤다. 저녀석 진짜 귀신이 들린거 아냐? 이거 한두번도 아니고. 그리고 나한테 귀신이 붙어있다고? 그럴리가 없어. 믿을수 없어. 나는 성경책을 품안에 안고는 밥을 먹었다.
"성경책에도 귀신이 붙어있어. 나한테 말해. 넌 지금 위험하다고. 가까이 있으면 위험하다고 말해. 그래서 나는 그냥 너 괜찮으라고 껴안는건데 나한테 있으면 귀신이 사라져. 그러니까 포옹많이 많이 해줄거야."
"닥쳐.죽는한이 있어도 포옹할생각은 하지도마. 끔찍하니까.앞으로 내곁으로 오지도마."
후성이녀석은 섬뜩한면이 있었다.미치긴 미쳤는데 가끔씩 헛소리가 맞는날이 있었다.그게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완전히 정신병자의 헛소리라고 치부할수도 있지만 나 역시 여기있는 환자고 말을 해보니 정말 귀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녀석은 반찬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거지? 간호사들하고 친해서 물어보는것 같지 않은대. 정말 신들려서 그런것을 알게 되는것일까? 그러면 그녀석말을 어느정도는 믿어야 하는걸까? 나한테 잡귀가 붙어서 내가 이렇게 여기에 오게 된것일까? 이러다가 굿해보라는 말도 나올것 같았다.
"재훈아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신들렸다고 말했잖아. 난 여기오는게 아니라 신들림을 받고 박수무당이 되었어야 하는데 말야. 자 이거 먹어." 후성이가 콘프로스트를 꺼내서 나한테 주었다.
"됐어 안먹을래. 너나 먹어. 그리고 내앞에서 무당얘기 하지마. 귀신이 들린것도 아니까 그이야기도 좀 그만하고. 미쳐버릴거 같아.알았어?"
"그래도 내게는 귀신이 친군데. 참 은주누나한테도 귀신이 붙었어. 하지만 신앙심이 너무 깊어서 큰 상처는 못주겠데. 그런데 재훈이는 신앙심이 안깊어서 성경책을 보는것 정도는 무섭지 않대. 내옆에 있으면 귀신이 떨어져 나갈거야."
"그만 하랬지?"
나는 후성이를 발로 찼다.
"재훈씨 이게 무슨짓이에요. 한번만 더 그러면 구석방으로 쫒겨가게 될거에요."
"아니 이녀석이 자꾸 나를 껴안잖아요. 간호사님 한테도 이야기 했던것 같은데 말예요.어떻게 이녀석하고 나하고 안부딪히게 해주세요. 아 진짜 귀신귀신 하는게 짜증나고 무섭다니까요."
"재훈씨. 후성이가 다음에도 또 그러면 말해주세요. 하지만 우리도 후성이의 치료에 애를 먹고있어요. 후성이는 중국에서 애들한테 괴롭힘을 당했었다고 해요. 그래서 괴롭힘 당하다 못해 자기 안으로 피한거라고 해요. 저도 잘 모르지만 들은바로는 말이에요. 힘들지 않다면 좀더 따뜻하게 잘지내보는것도.."" "말도 안되요. 저는 저 하나 지키기도 바빠요. 그런데 저녀석이 껴안는것을 받는다면 호모와 다를게 뭐있어요? 용납못해요 이것만은." 나는 그길로 후성이를 뒤로 한채 세면실로 가서 찬물로 샤워를 했다. 쏴아아아 물방울이 떨어지자 조금은 상쾌해졌다. 후성이와 있는 시간은 날 불쾌하게 했다.
녀석은 왜 다른사람을 껴안고 귀신얘기만 하는 것인지 왠지 꺼림찍했다. 특히 반찬을 맞추거나 간식을 뭘 사왔는지 맞추는 것을 보면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그래서 더욱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지난번에 탁구를 치다가 처참하게 깨졌던 수련이 누나를 보았다.
"안녕 요새는 왜 탁구치자고 안해? 여기있는 사람들한테 거의 모두 졌다면서? 여기 이누나를 이길생각은 없는거야?"
"아 누나생각이야 매일하죠. 스매쉬 연습하느라고 못불렀어요.담에는 제가 꼭 이깁니다."
"그런데 은주하고는 어떻게 된거야? 은주가 너를 피하는것 같던데.이 좁은공간에서 피하는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말야. 무슨일 있었니?"
"아니 뭐 그냥..별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나를 피하려고 한다구요?"
오히려 피하고 싶었던 것은 나였다.나를 본척만척하는데 얼굴을 보고싶은 생각이 들리가 없지 않은가.그런데 왜 나를 피하려고 할까? 진도가 더 나갈까봐 그러나 아니면 병때문에 그럴까."그래.뭐 근데 싫어서 피하는것은 아니라고 하던데. 나는 잘 이해가 안가지만 그렇게 말하더라구."
"음.. 알았어요.곧 말을 붙여볼게요.제가 특별히 잘못한것도 없는데 그렇게 피하니 저로선 난감하다구요. 마침 은주누나가 찬송가를 부르며 세면실로 왔다.그리고 은주누나가 나한테 쪽지하나를 주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재훈아 그때일은 충동적이었어.그래도 싫은사람한테 그럴리는 없잖아.하지만 우리는 모두 환자이고 나도 연애감정에 연연할 여유가 없어.그건 너도 그럴거야.나는 네가 좋아 그래서 더더욱 피하고 싶은거야. 너와 나 둘다 안좋아 질까봐 말야.넌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방으로 가서 답장을 썼다.
"누나 나는 충동적이었건 아니건 그게 첫키스였고 누나라서 얼마나 기뻤는지 알아? 그런데 병때문에 감정을 갖지 말라니. 아니 오히려 이런일로 더 호전될수도 있는거 잖아. 아무리 힘들어도 기댈사람이 있다는것은 말야.그런사람이 주변에 있는것으로 나는 얼마나 기뻤는데 누나는 그게 싫었던 거야? 나는 여기서의 인연으로 밖에 나가서도 보고 싶을뿐이야."
쪽지를 은주누나에게 주었고 은주누나는 방으로 들어갔다.그순간 나는 여자병실이 그렇게 멀리 느껴질수가 없었다.어떤 대답을 해줄까? 나에게 정말 그정도의 호감밖에 없었을까?그랬다면 왜 그날 그렇게 키스를 했던것일까. 은주누나가 방에서 천복이를 불렀다.천복이는 어려서 여자병실에 들어가도 간호사들이 그렇게 못들어가게 막지는 않았다.곧 천복이가 접힌 종이의 쪽지를 가져왔다.
"재훈아 네 말대로 나가서 만나고 싶어.여기서 만나는것은 서로에게 좋을것 같지 않아. 나는 내 병만으로도 힘든데 네 생각까지 하려니까 머리가 복잡해져.그래서 정말 날 생각한다면 밖에 나가서 서로에게 당당할때 만나면 안될까? 여기서는 그냥 누나 동생으로 지내자."
내용은 이랬다. 나도 쪽지를 천복이한테 부탁했다.
"알았어 누나 맘이 그렇다면 할수 없는 거겠지.그래 힘들어도 누나 동생으로 지내보려고 노력할게.여기서 연애감정이라니.나도 생각도 못했어. 정말 밖에나가면 제대로 만나주는거지? 그런거지? 그러면 그것을 믿고 나도 더이상 나가지 않을게."
천복이가 은주누나에게 쪽지를 주었다.나는 좀 침울해진 표정으로 텔레비전있는 곳으로 가서 신문을 펼쳤다. 준영형이 간호사실에 뭐라뭐라 말하고 있었다.
"간호사님.저 핸드폰 한통화만 쓸게요.제가 레스토랑에 아르바이트 하기로 되어있었고 거기 사장님과 오늘 만나기로 했어요.그런데 지금 통화를 할수없잖아요. 제 신용이 걸린건데 꼭 한통화 해야되요."
"글쎄 준영씨 그건 안되요.여기 규칙이에요.여기서 나갈때까지는 핸드폰을 쓸수 없어요. 그리고 전화통화는 오픈으로 가면 가능할거에요.그러니까 그렇게 알아요."
"에이 씨발 그깟 전화한통화가 이렇게 힘들어?엉? 내 신용때문에 못가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건데 그걸 못하게 해? 아 좆같네."
"쾅"
준규형이 벽을 주먹으로 쳤다.준영형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자 간호사가 튀어나와서 손을 붕대로 감아주었다. 준규형은 주먹으로 때리려고 하다가 여자 간호사인것을 확인하고는 주먹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여기온날 처음 핸드폰과 신발을 빼았겼었다.그걸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나도 연락해야할 사람한테 연락을 못하고 있었다.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아르바이트했던 피시방 어디하나 중요하지 않은곳이 없지만 지금 여기있는것으로 그들에게 실망을 주었을것 같다.그리고 여기 나가서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회의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나는 어디 일자리라도 구할수 있을까? 여기 온것은 비밀로 해주겠지. 그래도 친구들한테는 이야기 하는것이 옳을까 아닐까. 새삼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준규형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나역시 그런상황이었으면 난동을 부렸을수도 있다.나는 준규형만큼 절실하지는 않은걸까.준규형의 손에 붕대를 감았지만 아직 피가 멈추지 않았다.준영형은 화를 삭히려는지 소파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나는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럴분위기가 아닌지라 가만히 있었다. 준영형이 나한테 다가왔다.
"재훈아 기분도 엿같은데 탁구나 치자.아 답답해. 너라도 이겨서 기분좀 풀어야겠다." "젠장 내가 뭐 화풀이 머신이야? 그리고 나라고 언제까지 형한테 질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나도 이젠 제법 잘한다구."
준규형은 거침없이 손을 휘둘렀고 공이 모두 패스트 공이어서 나는 번번히 고응ㄹ 놓쳤고 어쩌다가 좋은공으로 넘기면 사력을 다한 스매쉬가 꽃혔다. 제길 형은 기분 좋지만 나는 이일로 기분이 팍상하네, 역시 스매쉬는 당할때 너무 화가 나는것 같다.
"하하 재밌지 않냐.나는 너무 즐겁다. 재훈이가 없었으면 나는 어디다가 화를 풀어야하냐? 너가 있어 다행이다."
"그런소리 정말로 나한테 위로할려고 하는것은 아니겠지? 탁구 진것도 짜증나는데 형 지금 나 놀리자는거야?"
"아니다 참 내방에 초코파이 있다. 그거나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
준영형은 방으로 ㄷ들어가더니 초코파이 두개와 우유두개를 가져왔다. 아 초코파이 너무 맛있다. 감동적일 정도로.나는 군대에 가지 않아 잘모르지만 군대에서는 초코파이 만한게 없다더니 여기도 그렇구나.그걸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나는 이대로 군대도 못가겠지?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겨우 정신병력으로 안가고 싶지는 앉았다. 뭐 나간다음에 어떻게 되겠지.얼마나 준영형과 이야기 했을까.
벌써 오후 두시가 되었다.병원에는 2시에 레크레이션이 있었다. 월화수목금 아침에 있었는데 노래방은 낮 두시에 했다.
"지금부터 노래방을 하겟습니다.환자분들중 노래부르고 싶은 분들은 들어오세요. 자 편히 앉으시고 할아버님은 여기 소파에 앉으세요."
남자 간호사들을 도와 의자들을 앉기 쉽게 일렬로 정리했고 탁구대도 구석으로 치웠다.그렇게 치우고 난다음에 노래방기기를 연결했다.노래방 안간지가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않았다.창운이와 준규형 인성이가 왔고 수련이 누나와 은주누나도 왔다.천복이와 성호형님,영훈이형은 방에서 피곤한지 잠에 빠져있었다.
오픈사람들도 나와서 노래불르러왔다.포지션의 '리멤버'를 준영형이 불렀다.형은 애절한 목소리로 포지션의 노래를 소화했다.병원내를 울리는 소리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다.형의 표정이 진짜로 울것같아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소리에 수련이 누나와 은주누나가 준규형을 믈끄러미 쳐다보았다.왜 은주누나까지..나는 내심 은주누나가 맘에 들었기 때문에 내가 준규형의 자리에 있고 싶었다.
그런데 노래방 기기가 옛날것이라 내가 아는 최신곡은 부를수 없었다.준영이형의 열창이 계속되자 그 소리를 들었는지 클로우즈와 오픈의 환자들이 나와서 그 소리를 들었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호소력을 낼수 없었다. 감정의 몰입이 잘 안된다고 할까. "와 준영이 진짜 잘부른다.리멤버만 연습했나? 완전 포지션 같네.멋진데." "그러게 나는 노래도 못부르겠는걸 비교될까봐." "왜 왜 한번 불러봐 나미의 '슬픈인연' 잘부르잖아."
"그렇지만 나는 찬송가 외에는 잘부르는것이 없어서..근데 지난번에 불렀던 그 노래 괜찮았나봐? 나도 부르고 싶은데" "그럼 은주 너는 목소리가 미성이라 어떤노래를 불러도 잘부르잖아 다만 부르는 노래가 옛날 거라는 점만 뻬면 말야.."
수련이 누나는 은주누나 노래를 예약했다. 나는 애잔한 발라드로 분위기 잡는것을 포기하고 '너희가 힙합을 나느냐'를 예약했다.이 노래는 누가 같이 듀엣으로 부르는 것이 좋은데..하지만 인성이나 창운이가 이노래를 알까? 곧이어 은주누나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찬송가를 부를때 알았지만 정말 미성의 목소리였다,옥구슬이 굴러간다는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나는 멍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가지런히 단정된 옆머리를 나는 물끄러미 보였다.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사랑할수 있을까?"
은주누나의 목소리가 슬픔에 젖었다.가라앉는 노래라 사람들은 숨죽이고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은주누나가 노래를 부르면서 우는것이 아닌가. 예전생각이 났나보다. 정말 여기서 인연을 쌓으면 정말 슬픈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나가서..정말 볼까? 그리고 이 애틋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을까? 대답은 없었다.그나저나 이곳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너무 많다.인성이도 그렇고 은주누나도 그렇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은주누나도 우울증일까? 아니면 감정이 올랐다가 가라앉는 조울증일까? 어느쪽이건 정말 힘든시간을 견뎌야 했을것이다.증상이 나타나면 정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것 같았다.나는 어딘지 그 옆모습이 서글퍼보여서 슬펐다. 어쩐지 여기서 나가게 되면 다시 만날수 없을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일까? 은주누나는 사람들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하염없이 울었다.가사에 감명을 받은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서 일까.
"역시 은주야. 노래 진짜 잘부른다. 근데 왜 그렇게 울고있어.나까지 감정이 북받치잖아.그렇게 몰입하지 않아도되 알았지?"
"으..응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만..듣기 싫었지?"
"아니 난 듣기 좋았어."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고 사람들이 그런 나를 쳐다보았다. 은주누나도 울다가 말고 나를 바라보고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해맑아서 나는 왠지 애틋해졌다.
"재훈아 고마워. 근데 너 드렁큰 타이거 노래 예약했네.나 그 노래 진짜 좋아하는데 잘불러야 되." "그럼 내가 누군데 내가 랩하는 거 보면 한방에 갈꺼야.창운아 같이 부를래?" "짜식 그래 부르자.내가 못불러도 뭐라 하면 안된다."
"아 재훈아 내가 처음부부은 부를게 여자 파트잖아." 수련이 누나가 마이크를 잡더니 처음부분을 불렀다."음악같지 않은 음악들 이젠.." 영롱한 목소리로 호소력있게 불렀다. 나는 그 부분을 이어받아 랩을 했다.
"세상 이상 너무나도 이상. 너희가 최고라니 그건 너무 환상."
나는 목소리를 깔고 차근차근 랩을 했다. 창운이는 옆에서 비트를 넣었다. 그리고 dj 샤인 파트는 창운이가 불렀고 나는 랩을 했다. 그런데 은주누나와 수련이 누나가 나를 보며 웃었다. 어 왜 웃지?
"재훈이 표정 너무 웃기지 않냐? 노래에 몰입하다 못해 인상까지 쓰네?"
"지가 가순줄 아나보지 호호." 은주누나와 수련이 누나가 나를 안주삼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진심으로 부르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자 나는 표정관리하려고 얼굴을 씰룩거렸다.
"하하하하"
사람들이 내 찡그리다만 내 얼굴을 보며 웃었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는것 같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꼭 잘부른다고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창운이도 비트를 넣으면서 웃었고 오픈쪽의 할아버님 한분도 흘흘 거리며 웃으셨다. 아저씨 한분이 일어서시더니 조용필의 '모나리자'를 불렀다.
"모나리자..모나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옆에서 코러스를 넣으며 분위기를 올렸다. 아저씨가 어깨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추임새를 붙였고 그 막춤에 사람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웃어댔다. 인성이는 '뭐야 이건'을 불렀다
."뭐야 이건!!"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옆에있던 나는 귀를 막았다.정말 시끄러워서 귀청이 떨어지는줄 알았다. 그렇게 웃고 또 누군가는 울며 한시간을 열창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자 이곳에서도 이런자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정신병원하면 침을 흘리며 지나가는 사람과 앞뒤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거나 자기가 나폴레옹이라도 된듯이 생각하는 환자들을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정말 사람들의 편견이 없어지면 좋을텐데..나는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을 그렇게 가치없이 여기고 싶지 않았지만 나가면 말을 하지 않고 지내야할것 같았다. 후성이나 인성이 그리고 은주누나같이 병이 표시가 나는 사람이 아니라서 나는 약간 안심이 됬다.하지만 내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그들을 비하할수 있겠느냐만은 여기에 있으면 그 심정을 알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태가 더 안좋은 사람을 보며 위안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기혐오에 빠져 헤어나올수 없을것 같았다.왜 예쁜애들이 못생긴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 지도 이해가 갈것 같았다. 못생긴애들을 보며 자기가 뛰어나보이거나 쟤보단 내가 낫지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지내는 것일것이다.
하지만 노래가 끝난 이시점에서 나는 여기서 사람냄새를 맡았다. 정신병원에서 조차 사람은 사람이었다.나는 그런생각을 하며 방을 빠져나와서 창문을 통해 걸어다니는 환자들을 보았다.휠체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팔에 붕대를 한사람이 병원 주위를 돌아다니며 가족들과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같은 환자지만 우리에게 없는 자유가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어찌나 부러운지 몰랐다. 그들은 퇴원날짜를 알고 있었고 밖으로 환자복을 입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지않는다.하지만 맨 위층에 있는 우리들은 좁은공간에 박힌채 움직일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했다.그래서 더더욱 밖으로 나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잃었을때 그 참 가치를 알수 있는것 같았다. 나가면 등산하러 가야지.피시방에서 밤새도록 오락도 하고 말야.담배도 하루에 한 두갑피고..창운이와 인성이와 내가 모여서 자주 하는말이었다. 창운이는 왜여기에 왔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창운아 이런얘기 하기 좀 뭐하지만 넌 왜 여기에 들어왔어?"
"나?말하긴 좀 뭐하지만 난 약을 먹기전에 바퀴벌레가 보였어.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그런게 없다고 하는데 나는 바퀴벌레가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어.그게 어느순간 내 몸을 타고 다니는거야.소름이 끼쳐서 책같은걸로 내 다리를 쳤는데 그래도 바퀴벌레는 죽지 않는거야.그래서 나는 잠도 잘수없었어. 실제로 자는데 바퀴벌레가 지나다닌다고 생각해봐. 잠이 올까? 나는 잠도 못자고 얼굴은 퍼석퍼석해지고 사람들을 점점 피하게 됬어.그러다가 부모님한테 그이야기를 했고 부모님은 나를 여기 박영만 교수님하고 상담을 했어.그리고 합의하에 여기 오게 되었지."
말을 하는 창운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에 비하면 얼마나 나은것일까.내가 만약 그런 고통을 겪었다면 지금보다도 더 미쳤을것이다. 나는 창운이의 얘기를 들으며 소름이 돋았다.환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정신분열증의 일종인것 같았다.하지만 의사도 아닌데 내가 알면 뭘알까? 하지만 우리들은 서로서로 대충 이런병일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실제로 대충 맞는것 같았다.그럼 나의 병은 무엇일까? 나는 감정이 북받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환각이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아직도 양아치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정신을 잃었을때의 기억은 없다. 내가 무슨 행동을 했을까? 그리고 왜 기억이 나지 않는것일까. 이야기하면 이야기할수록 나는 내병을 알수 없었다. 복부에 칼에 찔린 자국이 쓰라려 왔다. 들어올때 무언가 뜨거운것이 관통하는 느낌이었는데 이 상처를 끝으로 더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양아치 새끼들 칼을 가지고 다녀? 법치국가에서 그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소년원에서 몇달 굴르면 퇴소한다는 것이 정말 마음에 안들었다.
미성년자라는 미명아래 그들은 단지 범죄를 저질러도 소년원 몇달 갖다오면 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듯 했다.그것을 기억할때마다 복부의 상처가 쓰라렸다.하지만 깊은상처가 아닌지라 응급처치를 받은것 만으로도 피가 멎었었고 흉터도 찔린자국으라 그렇게 크지 않았다.다만 이상한점은 수십번 찔린것으로 기억하는데 상처가 하나뿐이라는데 있었다.
내 기억을 어디까지 믿어야되는지 가늠할수가 없었다.아 그건 기억이 날때까지 놔두어야겠다.나는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탁구대로 갔다.거기에는 수련이 누나와 은주누나가 탁구를 치고있었다. 은주누나는 탁구를 잘못치는듯 했다.
"은주야 좀 세개 쳐봐.자 내가 볼도 좋게 주잖아.눈높이 교육이라니까.호호 그래 그렇게 하면되.뭐? 양옆으로 너무 자주 움직이는것 같다고? 아 그건 느낌일 뿐이야 느낌.."
느낌은 무슨. 수련이 누나는 좌에서 우로 볼을 주면서 천천히 그리고 간신히 칠수있게 공을 주고 있었고 은주누나는 아리랑 볼이라 어떻게 어떻게 쳐내고 있었고 어느새 땀으로 흠뻑젖었다. "헉헉 정말 느낌일 뿐이지? 근데 왜 이렇게 힘들지?너 일부러 그러는거 아니야?"
은주누나의 눈고리가 조금 올라갔다. 내가 보기에는 은주누나는 좌우로 짤짤이에 당하는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초보지만 더 초보일때 근우녀석에게 질리도록 당한것이었다. 녀석은 흰이를 들어나게 웃으며 나에게 공을 좌우로 주었다. 나는 투혼을 불사르며 좌측볼과 우측볼을 쳤는데 내가 친공은 이상하게 정가운데로만 갔다. 근우는 그것이 초보의 본능이라며 나를 비웃었다. 생각해보니 열받았다. 그래 여기서 나가면 근우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기왕 할게 없는거 탁구실력이라도 늘려야겠다. 내가 이런생각을 하나마나 수련이 누나는 은주누나를 골리면서 공을 치고 있었다. 저 누나 은근히 사악한면이 있는데 말야.
하긴 처음 쳤을때부터 그렇게 스매쉬를 나한테 내리찍을때부터 알아보긴 했다.은주누나만 불쌍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공을 자주 랠리하게 되니까 은주누나는 힘들면서도 재미있는지 싱글싱글 웃으며 볼을 쳤다.말라서 가는 손이 공을 이리저리 치는것을 보면 외이리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지 몰랐다.아 여기서 나가면 정말 만날수 있을까? 여기서 병원생활을 같이하는 지금이기 때문에 누나와 가까워진게 아닐까?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여기서도 연인처럼 지내고 싶은데 누나는 그렇지 않다니.씁쓸했다.어느새 밤이 되었다. 저녁식사를 기다리니 6시에 저녁식사가 나왔다.
"재훈아 너 그거아냐? 난 여기 두번째라 아는데 클로즈가 밥이 30분 먼저 나온다. 그리고 아침 회진도 클로즈부터 돌고 돌아. 그래서 밥먹을 시간만 되면 오픈보다 빨리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겨우 그런게 클로즈에 있는 나한테 위안이 된다.후 이것도 경험이라고 있다니.." ]
인성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30분차이로 밥을 일찍먹는다라 먹는것이 하나의 즐거움인 이곳에서 그 특권은 생각보다 괜찮다. 만약 30분이 늦게 나온다면 나는 아마도 배고파서 죽을지도 몰랐다.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매번 밥앞에서 무너졌다. 운동을 해야하는데..
"성호형님 같이 다이어트 하시지 않을래요? 형님 초코파이 드시느라 살이 많이 찌셨다고 했잖아요."
"이녀석이 하지만 다이어트는 나도 해야겠다.그래 뭐부터 할까?"
"우선 식습관이 제일 중요하니까 밥양을 반씩 줄이죠.남는 반찬들은 다른사람들한테 주면 되니까요.맛있는 반찬일수록 고기류니까 한동안 풀만 뜯죠."
나는 창운이나 인성이한테 말하지 않고 아직은 별로 친하지 않은 성호형님한테 말할줄은 나도 몰랐다.그렇지만 지금 이순간 가깝게 느껴진것이 성호형님이었다. 언제나 듬직한 형님이다. 우리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나이는 헛먹은것이 아닌지 경륜이 있었고 조언에서 경험이 우러나왔다.먹을것이 생기면 사람들하고 나누어 먹고 탁구도 사람들과 두루 치는등 사교성도 좋았다.
그래서 마음이 갔던 것일까? 사람은 하고 싶은말은 언제든 하게 되는것 같다.만약 어떤사람이 영화를 보았을때 별로 재미가 없었다면 만나서 영화를 본이야기를 하다가 꼭 자기생각을 말한다. 인상이 깊은 영화라면 말이다. 자기가 불편했으면 안좋았으면 언젠가 불만을 표시한다. 그것이 사람이고보면 성호형님의 행동은 진심에서 우러나온것임에 틀림없다.마침 성호형님의 부인되시는 분이 면회를 왔다. 조그만 도시락통에 청포도를 가득 싸오셨다.
성호형님은 다이어트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청포도를 권했다.나는 청포도를 정말 좋아해서 좋아라 웃으면서 허겁지겁 먹었다.그 모습에 성호형님의 부인도 살며시 웃었다.청포도가 적당히 달콤한것이 내 입맛에 꼭맞았다.
"재훈아 청포도는 살이 안찌니까 다이어트한다고 해도 먹어도 괜찮아.그럼 우리 앞으로 다이어트 잘해보자 그럼 화이삼"
화이삼...?성호형님이 개그도 하실줄 알다니 설마 나이가 지긋한 형님이 삼이란 말을 붙이실줄은 몰라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삼자에 놀랐어요."
성호형님의 부인도 민망한지 성호형님을 보며 웃었다.인심이 좋게 보이는 부인이었다.얼마나 걱정을 하였을까? 그러고보면 나도 일주일 있었으니 부모님이 면회올때가 되었다.그런데 이상하게 부모님이 예전처럼 빨리 오시지 않았다. 예전처럼..?나는 내가 생각하고도 내가 왜 그런생각을 했는지 의문이 갔다.뭐 아무려면 어떤가?
나는 아기들이 엄마를 찾듯 마음속으로 엄마를 찾았다.아마 내일은 월요일이니 내일 오실것이다. 주말에는 회진을 돌지 않기때문에 불편사항이나 외출,산책,그리고 퇴원여부를 물어볼수 없었다.그 2일간이 시간이 제일 안가는 시간이다. 말로만 들었던 그 이틀을 보내려고 하니 까마득했다.
그리고 구석방에 새로 남자가 들어왔다. 밥때가 되자 "배고파! 배고파!배고파!!" 하고 소리쳤다.
"왜 안주는거야 씨발것들아.굶겨죽이려고 하냐.누구야 날 이곳에 처넣은게.아 짜증나네 문은 또 왜 잠궈놨어.열지 못해?"
쯧쯧 내가 그기분알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있다보면 멍해지기 마련이다.나도 처음 삼일 있다가 나오자 조금 멍했던 기억이 났다.이번엔 또 어떤 증상으로 여길 왔을까. 그러고보면 구석방의 환자가 일반실로 오려면 한명이 오픈으로 가야했다.그럼 이번에는 누가 오픈으로 갈까? 아직 기간이 짧은 나는 제외될테고 인성이나 창운이가 될것 같았다.방에 들어가 다른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숨이 턱막히는것 같았다.
다들 시간에 죽어가고 있다.주어진 일이 없는 하루. 아무것도 안해도 되고 먹고 쉬기만 해도 되는 상황.누구도 그것을 가지고 뭐라하지 않는다.그런데 그게 더 끔찍한 일이다.매일매일 일상속에서 주어진 일을 함으로써 사람은 활기를 얻어간다. 그런데 열정이 다 죽어버린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걸까.
나는 텁텁한 방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텔레비전 있는대로 왔다.그리고 나는 텔레비전 밑의 조그만 틈에서 부루마불 게임을 이미 알았던것처럼 꺼냈다. 여기는 왜인지 낯설지가 않다.내가 적응을 너무 잘하는건가? 부루마불 게임을 열어보니 여객선이 색종이로 접은것이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내 삶의 어떤 시점에서 색종이를 많이 접었던 기억이 난다.이상하게 여러번 꼬불꼬불 접으면 거의 대부분이 비행기가 되었었는데. 그것들은 어디있을까? 아무래도 간식주문할때 색종이도 주문해야겠다.
뭐라도 접고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겠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나가는 길로 가는 유일한길이다.
"부루마불 게임있어요. 하고 싶은사람 탁구대 옆으로 나와요."
"성호형님 같이 하시죠. 다이어트도 같이 하는 사이인데요."
"그래 알았다.재훈아 나 그거 잘못하는데 괜찮지?"
"이거 그냥 주사위 굴리고 땅을 사고 호텔만 지면 되요. 어려울것 없어요."
나는 찬송가를 부르고 있던 은주누나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수련이 누나를 끌고 게임을 시작했다. 창운이와 인성이 그리고 준영이형 영훈이형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팀을 급조할수 밖에 없었다.
"음 각자 할까? 팀짜서 할까?"
"그냥 각자하자.그게 더 난전이 되고 재밌어.이거 꼴찌하는 사람은 카페라떼 하나씩 돌려야되.아 카페라떼 벌었네. 탁구 못치는 재훈이 게임도 지면 어쩌실려나."
"퍽이나. 수련이 누나 너무 활달한거 아냐? 기운이 넘치는데?"
"내가 원래 그렇지 뭐.은주는 무슨 표정이 그렇게 진지해? 그냥 게임일 뿐이야.게임 어렸을때 안해봤어? 이건 그냥 산수만 할줄알면 누구나 다 하는거야. 봐 박스옆에 전체이용가라고 써있잖아.12세만 넘으면 하는 게임이라구.?
"아니 난 그냥. 어렸을때 해봤던 것같아."
수련이 누나도 은주누나도 성호형님도 이 게임은 다 해본것 같았다. 어렸을떄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에 보드게임이 유행했었고 그때 가장먼저 나온것이 부루마불 인생게임이었다.아련한 추억을 지금 맞부딪혔다. 성호형님도 옛날 기억이 나는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집었다,
"주사위 굴리기로 순서를 정해요."
"재훈이 6, 은주 4, 성호오빠 5, 나는 3 아 내가 꼴찌네."
게임은 시작되었다. 나는 숫자가 11이 나왔고 그에 맞는 땅을 사고 호텔을 지었다. 그리고 뒤이어 은주누나가 7이 나와서 황금열쇠를 열었는데 우대권이 나왔다. 우대권은 어디든 호텔이나 빌딩 있는곳에 가서 그 카드를 내면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것이었다.성호형님은 11이 나왔다. "아싸 성호형님 호텔비까지 해서 60만원 되겠습니다.헤헤" 나는 뭐가 그리좋은지 히히덕 거렸다.곧이어 은주누나가 주사위를 굴렸고 땅을 샀다. 그렇게 게임이 흘러갔고 대망의 대한민국은 수련이 누나가 사버렸다.
"아 제일 좋은땅이 가는구나. 수련이 누나는 어떻게 된게 마이더스의 손이야.비싼건 다 샀네." 은주누나와 성호형님은 2번째 라인에 땅을 많이 샀고 나는 3번째 라인 그리고 마지막 가장 비싼 동네인 4번째 동네는 수련이 누아가 거의 다 샀다.
그리고 은주누나가 가진 우대권은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200만원을 내는데 사용되었다. 소소한 국지전으로 초반에는 성호형님이 두번째 라인에서 돈을 벌었지만 세번째 라인을 먹은 나한테 돈을 많이 헌납했다. 그리고 나는 4번째 라인에서 대박으로 걸려서 제일먼저 파탄이 났다.은주누나는 비싼땅은 요리조리 피해서 땅을 야금야금 먹었고 수련이 누나는 비싼땅으로 대박을 받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할까.
작지만 꾸준히 은주누나에게 헌납하다가 두번째로 파산하였다. 그리고 성호형님은 용케 살아남았다가 수련이 누나가 너무 은주누나한테 돈을 잃어서 상대적인 부의 차이로 레이스가 한번 더 돌자 파산했다.
"뭐야 은주.. 못한다더니 제일 잘하네.매일 이런식이라니까 못한다고만 하면 잘하고 말야. 이 겸손쟁이 그래서 내가 더 좋아하는 거지만.. 참 재훈이 빨리 가서 카페라떼 4개 신청해.우흐흐 재훈이 덕에 입이 호강하겠구만."
"우흐흐 라뇨 여자 웃음소리가 뭐 그렇게 음험해요. 너무 자연스러운거로 봐서 평소에도 자주 쓰시나 보네요 수련이 누님."
"아니 이녀석이 어디서 이렇게 간을 배밖으로 내놓고 다니지? 누님을 몰라보고 말이야. 말이야 바른말이지 우흐흐가 뭐 어떻다고 승자의 웃음이잖아. 그리고 예로부터 수련이 누나말을 따르면 자다가도 담배가 생긴다고 했어.너 담배때문에 금단현상 나타나지? 아휴 손떨리는거 봐라."
"솔직히 요즘 그래요. 빨리 산책을 나가서 담배 두가치만이라도 훅하고 내뿜고 싶어요.자다가도 담배 생각이 어찌나 나던지 이래서 담배를 못끊어요. 머리속에서 담배 담배 담배 하고 소리치는데 어떻게 끊어요?"
"이그 이 꼴초자식아 짜식이 어렸을때부터 발랑까져가지고 22살밖에 안된놈이 금단현상 이런말 하고있네.금연초라도 사다주랴?"
"말만하지 말고 좀 내놔봐요.금연초가 뭔지나 알아보게."
"어머 이젠 말도 못하게 하네..은주한테 일러야겠다.은주야 재훈이가 사실은 말꼬리나 잡는 소인배였대.병원사람들 내말좀 들어보세요."
나는 황급히 수련이 누나의 입을 막았다.
"아니 무슨생각하고 살아요? 그렇게 크게 말하면 진짜 듣겠어요."
"진짜 들으라고 그런거야." "어휴" 역시 이누나는 대책이 없다.화통한건지 얼굴이 두꺼운건지 능글맞았다. 40대 아저씨한테나 쓸만한 표현을 20대 중반인 누나한테 쓰다니 나도 속이 쓰렸다.은주누나는 찬송가를 부르러 나왔다가 나와 수련이 누나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며 다가왔다.
"뭔일인데 그렇게 다정하게 입을 막고 그래? 둘이 사귀어?"
목소리가 차갑게 느껴지는것은 그냥 느낌일까. 어쩐지 말에서 가시가 느껴졌다. 왜 여기선 누나 동생으로 지내자더니 또 이번에는 왜 저럴까.여자 맘은 알수가 없었다. "다정하기는 재훈이보고 담배 끊으라고 권유하고 있었지."
"흐응 그래. 요새 권유는 입을 막고 하나보지? 수련이 다시 봤어.흥흥"
은주누나는 다시 평소처럼 찬송가를 부르며 복도를 걸어다녔다.복도가 좁아서 끝에서 끝까지 움직이는데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좁은곳에서 16명에서 18명이 산다니 정말 갑갑하지 않을수 없다.그래서 나는 더욱더 처음있을 산책을 기다렸다.
"수련이 누나 답답하지 않아? 정말 이좁은곳에서만 있다보니까 정말 미칠것 같아." "훗 미쳐서 여기온거잖아.나도 좁은곳에서만 있으니까 폐쇄공포증이라도 생기려고 그런다." "미쳐서 왔다니 같은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좋아? 마음이 아파서 왔다고 하면 순하고 얼마나 좋아."
나는 미쳤다는 말에 반발했다. 적어도 나는 이성을 지키고 아무 이상없이 지내고 있는데 미쳤다니.밖의 사람들이 그렇게 보겠지만 나는 적어도 이 병원의 사람들에게서 그런말을 듣기는 싫었다.그것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우리끼리라도 서로 미쳤다고 하지 않았으면 했다.후성이는 제외하고. 왜 자꾸 껴안는지 모르겠다.여자라면 얼씨구나 좋다 하겠지만 남자라니.귀신 귀신 하는것도 그렇고 무당이라니 점점 더 미쳐가는것 같았다. 그리고 소름끼치는 것은 그런 후성이가 이해가 가려고 한다는 점이다.나 역시도 그런것이 보이면 그렇게 될수도 있다는 생각.그렇게 된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닐것이다.그런데 오히려 보듬어줘야할 내가 이런행동을 보이다니.머리로는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정말 녀석이 싫었다.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멍하니 수련이 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헉 재훈이 설마..날? 은주누나가 있으면서 다 이를거야."
"무 무슨 소리야. 잠깐 다른생각하느라고 그랬지.설마 내가 선머슴같은 누나를 좋아하겠어. 그나저나 내가 누나취향인가. 나는 꿈이 연예인이 되서 띠동갑하고 결혼하는 건데 이건 안되지."
"니가 맞고싶어 몸이 꿈틀거리나 보구나. 한번 흐드러지게 흠씬 맞아보자."
수련이 누나가 나의 몸을 때렸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지만 아픈척했다.
"아야 때려도 되는데 꼬집지는 마. 무슨여자가 이렇게 악력이 세. 누군지 몰라도 누나 데리고 가는 사람은 고생길이 훤하다. 그럼 그분을 위해 기도를.."
"아야야!!"
수련이 누나가 더 세게 꼬집었고 나는 정말 눈물이 날만큼 아팠다.
"너희들 안본사이에 너무 사이가 좋아진것 같다."
은주누나가 찬송가를 부르면서 지나가다가 우리를 보고 말했다. 은주누나가 왜 이렇게 신경쓰는 거지? 설마 질투? 그렇다면 좋을텐데 말이다. 은주누나는 무엇이 불만인지 볼이 퉁퉁 불은것이 귀여워 죽겠다.
"은주야 아니야 이녀석 버릇좀 고치고 있었어. 자식이 누나를 희롱하려고 들어서 말이야." "희롱? 재훈이가 뭘했길래?"
"아니 희롱이라기 보다는 암튼 장난친거야. 너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거 아냐? 혹시 재훈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아냐!! 그런적 없어."
"아니면 아니지 왜 그렇게 큰소리를 지르고 그래 귀청 떨어지겠다." "저녁식사 왓습니다.자리에서 나와서 받아가세요."
"저 은주누나 수련이 누나 그럼 밥가지러 갈게 이따가 보자구." 묘한 분위기에 어색해질 타이밍에 밥이 오자 나는 쏜살같이 내달렸다.
"오늘 반찬은 미역국에 생선이야 재훈이 맛있게 먹어.귀신이 너에게 붙어있는 귀신이 참 착하대 그래서 좋대."
반찬을 열어보니 정말 미역국에 생선이었다.나는 섬뜩한 느낌에 등골이 서늘해졌다.귀신이 들린게 정말이란 말인가. 그럼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지? 거짓말이 아니라니.그렇다면 후성이야말로 여기온것이 가장 억울할것이다. 그래도 이성을 못파리고 있으니 여기온게 당연한가? 나는 결론을 내릴수가 없었다.
"후성이도 맛있게 먹어."
"성호형님 오늘부터 밥과 반찬을 반씩만 먹는겁니다. 아시죠?"
"흡 그래 반씩이라 아무리 다이어트라지만 이건 너무한데 뭐 좋아 약속했으니 그래야겠지." 성호형님과 나는 병원생활의 즐거움의 반을 소모하며 아쉽게 식사를 멈췄다.
"재훈아 반찬 남으면 나한테 주라 성호형님도요 밥반도 주고."
"후성이 이녀석 이제보니 무당이 아니라 위당이네.뭐 그렇게 먹을것을 탐해?"
"제몸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제 몸보시고 이정도 양으로 된다고 생각하세요?
" 후성이는 처음에 봤을때보다 7킬로 정도 살이 쪘다. 병원에 체중계가 있어서 가끔 재보는데 후성이는 최근들어 살이 오를대로 올랐다. 매일 간식으로 과자두개씩 먹고 빵과 우유 그리고 병원식사까지 여기서 찾은 유일한 낙이 먹는것이었나 보다. 탁구치는 것은 한번도 못봤고 병원 클리닉도 참여안하고 텔레비전도 잘보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자신에게는 귀신이 들려서 다른것에 몰두할수 없다고 중얼거렸다.그래 이해해줘야겠지. 그런데 그때 후성이가 나를 껴안았다.
"밥줘서 고마워 나는 재훈이 니가 좋더라.여기서 같이 지낸것도 인연인데 나가서도 친구하자."
"내가 나 껴안지 말랬지?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냐. 나가서도 친구하자고? 너는 이렇게 행동하고도 나와 친구가 되길바라냐? 여기서도 나가서도 너와 친구가 될일은 없을거다."
"재훈아 너무 심한거 아니냐.그래도 같은병실을 쓰는 동료나 다름없잖아 잘대해줘야지."
"준영이형 형은 안당해봐서 몰라요 저녀석이 껴안으면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요?. 이미 손명희 간호사님한테 이야기 해놨어요.다음에도 또 그러면 그녀석을 구석방으로 처넣을거에요."
"구석방? 너 그렇게 안봤는데 왜 그러냐? 너도 구석방에서 있어봐서 알거아냐.그곳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아무리 미워하지만 그래도 같이 있은 정이 있는데 헛소리는 많이 하지만 그래도 근본은 착해보이는 애들 그렇게 하려고 하냐?"
"형은 몰라요.형이 한번 당해봐요 그런소리가 나오나."
"너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정말 혼나볼래? 앞으로 후성이한테 잘대해줘라." "할수 있으면요."
나는 준영이 형한테 까지도 반감이 생기려고 했다. 자기가 당해보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남자가 남자한테 안기면 얼마나 기분이 토할거 같은지 알지 못하고 하는말이다. 여기가 정신병원이 아니고 같은 환자가 아니었으면 진짜 발로 한참을 찼을것이다.제길. 나는 어느새 침대에 누워서 자고있는 후성이를 한번 보고 텔레비전 있는곳으로 갔다. 역시나 지나다니며 찬송가를 부르는 은주누나가 있었다.
밤이라 작은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자 마음이 조금 풀렸다.
"역시 은주누나구나.누난 왜 매일 그렇게 찬송가를 부르는거야?"
"내가 좋아서 부르는걸. 솔직히 잘부르지는 못해서 부끄럽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하는거야.가끔 내가 네 목소리를 못듣고 그냥 지나가도 이해해줘. 나는 노래부르는 동안에는 다른소리들을 잘 못듣거든."
"그런데 은주누나 정말 나가서도 볼수있는거야?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라도 잘지내면 안되?" "너도 지금 상태로 연애하기는 조금 꺼림칙 하지 않니? 우리는 둘다 환자고 마음이 불안정하잖아. 서로 아껴주는것은 좋지만 만약에 우리가 여기서 헤어지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거지? CC보다도 더 힘들어질거야. 그걸 알면서도 그래?"
"알았어.나도 이해해. 하지만 정말로 나간다음에는 꼭 꼭 만나는 거야.안그러면 정말 누나 치마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거야. 하하 그래.."
나는 기분이 침울해져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기분도 갑자기 올라갔다가 또 가라앉다가 하는것 같았다. 약을 먹으면서 조금씩 느끼는 것이었다. 아마 나의 약을 조정할시간을 얻기 위해 여기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더 나은 마음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갑자기 졸리네 은주누나 난 자러갈게 내일봐"
"그래 재훈아 여기 생활 우리 잘해보자.견디고 또 견디면 나가는 날이 있을거야.그럼 잘자."
은주누나는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주었다.아마도 힘드니까 너무 힘드니까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는것 같았다.그래서 찬송가도 더 열심히 부르고 일요일에 미사도 나가는 것일것이다. 은주누나의 다정한 말을 뒤로 나는 방에 와서 누웠다. 후성이가 나를 한번 보더니 잠자리에 갔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후성이가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잠을자다가 무방비한 나는 계속 목을 조르는 후성이에 대항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가위라도 눌렸나.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지만 너무 아팠다.
목이 졸리자 혈관이 튀어나오려고 하고 눈이 부릎떠졌다. "끅 끄윽" 왜 아무도 오지 않는것일까. 한 15초정도 지난것 같았다.
"나..나를 구해줘. 성호형님, 은주누나.."
지금 이순간 나는 나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두사람의 이름을 불렀다.아프다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오히려 편안해졌다. 이렇게 가는구나.나를 괴롭히던 후성이.정말로 귀신이 쓰여서 나를 해하려고 하는것일까? 그러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었다. 꿈.. 꿈이었나. 가위라도 눌린것 같은데..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목주위를 보았으나 흉터는 없었다. 그렇지만 정말 리얼한 꿈이었다.
"귀신이.. 귀신이.. 내 목을 졸라요.흑흑 더 살고 싶어요 으아악!!!"
후성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같은방이라 안들을래야 안들을수가 없는것이었지만 밤새 꿈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나는 그 목소리가 그렇게 증오스러울줄 몰랐다.
"간..간호사님 귀신이 귀신이 신들림을 받은 나를 노리고 있어요.내 존재가 위협이 되나봐요. 나의 힘으로는 안되요 안되..."
"진정해 후성아. 귀신은 없단다. 그런데 목에는 왜 손자국이 있니? 네가 니 목을 졸랐니? 귀신이 쓰여서 네 손으로 너를 조른거니?"
"아 아니 다른귀신이 다른사람이 목을 조른거야. 그래 다른사람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어.나는 무서워서..무서워서 흑흑!!"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새삼 내목을 보았다. 꿈속에서와는 다르게 내가 내목을 졸랐나 확인하고 싶어서였다.어디에도 상처는 없었다. 휴우 나는 안심하고 꿈을 떠올렸다. 후성이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져서 나의 목을 졸랐다. 나는 저항하려고 했지만 악력이 어찌나 센지 움직일수 조차 없었고 신음소리를 내는것이 다였다. 귀신이 들렸다더니..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린것이었다.의식은 들었지만 움직일수는 없는 상태였던것 같다.
"재훈아 일어났어? 자 우리 피티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자."
나는 그제서야 생각을 멈추고 성호형님을 보았다.
"예 성호형님 그런데 후성이가 왜 저렇게 날뛰어요? 어제 무슨일이라도 있었어요?" "그런가봐.나는 자고 있어서 잘모르겠지만 말야. 자자 우리는 다이어트를 해야하잖냐. 복도로 가자."
복도로 간 우리는 피티체조를 했다.두손을 위로 올려 박수를 치고 다시 어깨높이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리는 체조를 50회하였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몸풀기 체조를 하였고 다시 피티체조를 50번하였다. 체조를 끝마친후 체중계에 올라갔다.
살이 1킬로그램 빠져있었다. 역시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리니까 살이 빠지긴 하는구나. 성호형님이 재보니 2킬로그램이 빠져있었다. 초코파이를 끊고 부인이 가져다준 과일과 병원식을 줄인결과였다.
"후 이대로 계속 가자구."
성호형님이 여유롭게 말했다.성호형님은 신문을 펴고는 앉아서 신문을 보았다. "아이고 삼흥물산이 3000원 떨어졌구나. 내가 산것이 천만원이니까 30만원 손해를 봤네.며칠 확인안한 사이에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는데 말야.이래서 매일매일 보고 확인해야지 갑자기 이렇게 되니까 당황스럽네."
"성호형님 주식하세요? 요새는 펀드 많이 하던데 펀드하시지."
"펀드는 잘 되도 아직은 수익률이 낮아. 여기저기 떼고 주식보다는 안전하는 장점 대신에 돈이 적게 되는것이 있지."
"그래도 차이나펀드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꽤 된다고 하던데요."
"그렇지만 차이나 펀드가 언제까지 오를지는 알수없는 일이야. 그리고 삼흥물산은 유망주야.나도 상당히 이득을 봤어.비록 지금은 조금 떨어졌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득을 보고 있어. 그러니까..아직 너는 잘모르겠다. 주식에 관해서 공부하고 다시 이야기 해보자.그나저나 제테크가 안되서 문제네."
성호형님이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성호형님 탁구치시지 않을래요? 마침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래 잠깐만 경제면만 마저 읽고 말야."
"에이 성호형님 탁구부터 치고 신문은 나중에 보셔도 되잖아요.신문은 성호형님외에 거의 안보니까 천천히 봐도 되지만 탁구는 여자환자들도 치고 우리병실도 치니까 차례를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구요."
"알았어 알았어 치자. 그런데 너 천복이 한테도 졌다면서 나한테 될까?"
"지더라도 열심히 할테니 그건 걱정마세요. 아 진짜 이거 서러워서 실력을 쌓아야지 이거."
"그래 그럼 이공을 받아봐라."
성호형님은 공을 들고 스핀을 걸어서 쳤다. 스핀을 걸고 대각선으로 공이 뻗어왔다. 다른사람들에 비해서 스핀이 많이 걸려있어서 불규칙하게 휘어져서 왔다.나는 그것을 받아쳤지만 탁구대 밖으로 빠졌다.
"재훈아 그거 치려면 내가 스핀건 반대방향으로 쳐야되. 아직 너한테는 힘든일인가? 하하 나는 이걸로 우리병실 사람들을 이겨왔어.서브가 안되면 탁구의 반은 지고 들어가는거야."
"예 예 알겠습니다. 잘해보도록 하죠."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쳤지만 이상하게 스핀을 극복하지 못했다. 성호형님이 다섯번 그리고 내가 다섯번씩 서브를 교환하였지만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성호형님 살살하세요.설마 이말까지 하게 될지 몰랐네."
"그래 알았다. 후후 재훈이 실력 많이 쌓아야겠다.천복이를 이기고 올라와라"
"안되요 그럼 성호형님하고 언제 칠지 알수없잖아요. 같은 다이어트 동료끼리 야박하게."
"하하 당연히 농담이지 아무튼 스핀 반대로 먹이는 것은 꼭 연습해라." "예 형님 후후 무슨 큰형님 찾는것 같네."
그런데 이번에 구석방에 새로온 사람은 어떨까요? 낼 모레면 병실을 옮길텐데 남자 병실에서 누가 오픈으로 가야겠죠?
그게 누가 될까요?" "그게 나였으면 좋겠지만 후 나도 여기온지 1달정도 밖에 안되서 잘안되겠지. 인성이나 창운이가 가지 않을까? 영훈이 일수도 있고.여기서 괴로운것의 또 하나는 나는 여기서 그대로 있는데 다른사람들이 오픈으로 가거나 부모님이 동의하셔서 클로즈에서 바로 퇴원하는경우야. 거기다가 더 힘든상황은 여기서 친해졌는데 얼마 안되서 오픈으로 가면 그 빈자리가 그렇게 클수가 없다. 잘됐다고 말은 하지만 마음속으론 그렇지 않거든. 성호형님은 탁구대 옆의 조그만 런닝머신에 올라갔다.
"그럼 난 여기서 30분정도 운동한다. 다음엔 니가 하고. 우리 한번 시작했으니까 다이어트 제대로 하는거다.기왕했으니까 성과를 보자구."
"예 전 그동안 복도를 거닐고 있을게요."
나는 복도를 아무생각없이 걸었다. 찬송가소리도 들리지 않는것이 은주누나가 오늘은 기분이 안좋은지 방에서 있거나 아니면 잠시 쉬는것이겠지. 구석방 두개는 다 찬것 같았다. 한명은 남자고 한명은 여자였다.남자가 있는곳에서는 악쓰는 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아이 씨발 나 여기서 못내보네 제기랄 이런 좆같네 나는 신이야 신이라고"
"다 알았으니까 여기 약먹어요. 그렇게 약안먹고 버티면 계속 거기 있어야 될거에요.그러기 싫으면 빨리 약먹어요."
"여기서 평생 있게 되도 난 약안먹어 으아아" "정말 그러면 면회도 안되고 나중에 옆방으로 빈자리가 나도 다른사람 먼저 널거에요."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런 니미럴 왜 날 가두고 있어? 난 신이야 그런데 나한테 이게 무슨짓이야."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 녀석이 들어왔군.나는 저러지 않았는데 아직 정신이 없나보네. 의식이 아직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나보다. 어쨌든 저녀석이 나오면 잘해줘야 겠다.
"알았어 이번만 먹는거야 그러면 밥도 가져와 배고프니까"
"밥은 시간이 되면 나오는 거구요 잘생각했어요. 약을 먹어야 빨리 낫죠."
"무슨소리야 나는 신이야 멀쩡하는건 당연하지"
"..그래요 신이시니까 약은 꼬박꼬박 먹어요." 간호사들이 방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밖으로 나왔다.나는 텔레비전있는곳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녀석도 후성이처럼 상태가 심각하구나. 그냥 보기만 해도 정상이 아니라는것을 알수있을 정도니 잘지내기는 힘들수도 있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인성이가 나한테 왔다.
"응? 인성아 왜?"
"나 오늘로 오픈으로 가게 됐어. 정말..오래 걸렸다. 거기 있는다고 먼저 나가는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보단 환경이 좋으니까 너도 곧 오게 될거야. 하긴 아직 일주일 밖에 안되었나.그럼 난 오픈으로 가서 창운이와 널 기다릴게 그럼 나 가본다."
인성이의 표정이 밝았다. 나는 옆에 있던 사람이 오픈으로 가게 되자 기분이 씁쓸해졌다. 축하해줘야 되는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분이려나. 은주누나도 그렇게 내게서 떠나가겠지. 정말 밖에서 만나자고 하지만 인연은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과 나가서도 잘지낼수 있을까.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운동이라도 해서 기분을 풀까해서 침대에 누워서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발을 고정시킬것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만은 했다.
"재훈이 운동열심히 하는데? 이번엔 복근 키워볼려구? 참 인성이 오픈으로 갔더라. 아까 짐챙겨서 가던데. 이제 한동안 그녀석 못보겠네. 아쉽다.하지만 잘된일이지."
"그래요 조금 아쉽기는 해요. 친했던 사람이 떠나니까 가슴한구석이 텅비는것 같아요. 마치 퇴원이라도 하는것처럼 말예요."
"아무튼 전 운동이나 할게요 형님도 운동하세요."
나와 성호형님은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한 30번 했을까 나는 배가 아파서 그만두었다. 정말 한심할정도의 운동량이었다. 성호형님은 그런 나를 보고는 웃었다. 그런데 성호형님은 35개를 하였다. 30개나 35개나 그런데 성호형님의 뿌듯한듯한 표정을 보자 나는 다시 10번을 더했다. 성호형님도 질새라 15번을 더하고 우리는 물고 물리며 운동을 계속하였다. 어느새 인성이의 일은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이어트가 매개체가 되어서 성호형님과 더 친해졌다. 후성이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더니 피자 두조각을 가져와서 우리에게 주었다.
"후성아 왠 피자냐? 부모님이라도 오셨어?"
"그래 부모님이 피자 사가지고 오셨어. 재훈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했어.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말야. 내 귀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어."
"네가 재훈이니? 우리 후성이하고 잘지내렴.알다시피 후성이가 중국에 유학갔다가 괴롭힘을 당했지 않니.그 다음부터 귀신이 쓰였느니 귀신이 들려서 자신은 박수무당이 되어야한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니? 하루종일 귀신얘기만 하고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어쩔수 없이 이곳으로 보낸건데 여기서도 상태가 심각한 편이더구나. 친구도 없는것 같고 또래인 네가 잘지내면 안되겠니?"
"후성이가 껴안지만 않으면 그렇게 지낼수 있는데 자꾸 껴안아요. 그리고 귀신이야기를 그렇게 하는데 친하게 지내기가 힘들죠. 같이 탁구도 안치니까 그렇다고 운동을 같이 하는것도 아니구요."
"재훈이라고 했니? 그래 여기도 같이 온 것도 동기는 동기니까 잘지내면 되겠네. 여기서 후성이 녀석도 활기를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란다."
부모님이 후성이를 보다가 후성이 목의 손자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히 목이 졸린 자국이었다. 시뻘건것이 아직 며칠 안된것 같았다.
"애가 요새 자해라도 하나? 자기 목을 졸랐을까? 그게 아니라면 누가 그랬지? 후성이 누가 그랬어?"
"귀신이 내 목을 졸랐어. 나는 자꾸 피하려고 했는데 귀신의 힘이 세서 피하지 못했어. 그러다가 숨이 넘어가려고 하는데 다른귀신이 말려서 그만 두었어. 일어나보니까 이런 자국이 생겼어." 후성이의 말이 두서가 없이 쭉 늘어놓는 것이어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후성이한테 목이 졸리는 꿈을 꾸엇는데 나한테는 오히려 그런자국이 없고 그날 후성이는 목이 졸린 자국이 있었다.그 꿈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것일까.알수 없었다.
"간호사님 우리 후성이 목이 왜저래요?누군가에게 목이라도 졸린 자국이 잖아요." "저희도 잘모르겠어요. 밤에는 각 병실에서 불을 끕니다. 그런데 어느날 후성이가 귀신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후성이가 자면서 귀신을 찾는것이 하루이틀이 아니라 그냥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저 자국이 있더라구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의 불찰입니다."
"다음부터는 후성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 저희는 후성이의 병이 다 나을때까지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제발 귀신 타령만 안했으면 좋을텐데 매일 입에 달고 사니.. 어떻게 되려고 해요 여보 흑흑"
후성이의 어머님께서 울으셨다.
"여보 울지마요. 우리 후성이는 예전에 중국가기 전의 똑똑하고 똥망똘망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오. 그리고 이렇게 된것이 우리 잘못이 아니니 우리가 할수있는 일이 없잖소. 기껏 한다는 것도 이렇게 면회를 와서 후성이를 지켜보는것 밖에는 말이오. 우리 힘내서 몇달만 더 참읍시다. 후성이가 나올때까지 기다리고 우리가 후성이 보다 먼저 쓰러지는 일은 없어야 되잖소."
"흑흑 그래요. 불쌍한것 이렇게 되다니 참. 다들 아이스크림 드세요."
후성이 어머님은 아이스크림 봉지를 꺼내시더니 한사람 한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남자 병실을 돌리고 복도로 가서 간호사님께도 드렸다. 다들 더웠는데 아이스크림을 받으니 잘먹을수 밖에 없었다. 그래 오늘 날짜가 며칠이지? 달력을 보니 8월 5일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나는 7월 29일에 여기 온것으로 되어있었다.
여기온지 8일이 된것일까. 뒤를 보면 빨리 지난것 같았지만 앞을보면 앞으로 몇달을 있어야 할지 몰랐다.정말 끔찍했다. 한참 후성이를 보고있었다. 후성이도 여기온지 6개월이 되엇다고 하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정신이 자기 안에 숨어들어서 다른것을 보지 않고 귀신이야기만 한다고 했다.
실제로 후성이는 무슨말이 나오면 귀신이 그랬다고 하니 누가 이녀석과 친하게 지내려고 할지. 여기도 웃긴것이 병이 심한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 조차 그런 차별이 존재했다. 사람이란 어쩔수 없는 것인가 보다. 아니 오히려 더 무서웠다. 마치 흑인들이 백인들을 싫어하면서도 피부색이 검으면 검을수록 무시한다는 것과 비슷할까. 미국에 있는 흑인이 아프리카의 흑인을 무시하는것 처럼 우리도 우리보다 심한병을 가진사람이 있으면 그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피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물론 친하게 지내기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지만 각자가 자신만 생각하기에도 바쁘고 다른사람을 신경쓸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된 이유도 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우리도 여기온것이 원해서 온것이 아니듯 병이 심한것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밖의 사람들은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 놓고 미친놈 취급한다. 약을 먹어서 괜찮지만 약을 끊으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친놈이라고 들을만큼 병이 심한 사람들은 병원 입원자의 10분의 1도 안된다. 나머지 병들은 일반사람들도 외래로 정신과 치료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사회는 우리를 정신병자라는 잔인한 말로 규정지어버린다.
나는 후성이를 생각하며 나한테 자꾸 껴안아서 기분나쁘게 하지만 불쌍한 놈이라는 생각을 햇다. 그리고 구석방에서 이쪽으로 올 내또래 녀석이 생각났다. 자신이 신이라고 우기는 녀석. 약을 먹는것도 거부하고 온잦 욕을 다 늘어놓는 녀석하고 잘 지낼수 있을까.후성이 경우는 껴안는 버릇이 있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을 포기했지만 녀석에게도 비슷한 점이 있을까.있다면 나는 그 녀석과 멀어져야겠지. 나도 견디기 힘든데 다른사람까지 챙길수는 없었다. 후성이 부모님은 성호형님 영훈이형 창운이와 대화를 하시고는 후성이를 잘부탁한다고 당부의 말을 하시고는 면회를 끝마치셨다.
약을 먹을 시간이 왔다. 하루에 세번 우리는 약을 먹었다. 아침 점심 저녁 세타임에 먹는데 약을 먹으면 조금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약이 병을 사라지게 해줄수 있을지 매일 의문을 갖지만 이 약을 먹어야 나갈수 있다고 하니 억지로 먹고 있었다. 성욕이 사라지고 의욕이 적어지는 것과 잠이 많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계처럼 그 약을 먹었다. 마치 우리를 시험하는걳 같았다. 아직 임상실험이 안된약을 우리에게 시험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약을 먹으니까 온몸에서 힘이 빠지지 않냐? 잠도 많이오고. 왜 인지 무기력해지고 생각도 안나고 좀 멍해지는 것 같아. 난 나가면 안먹을거야."
"준영이형 그래도 이거 안먹으면 재발한다매. 여자병실에 퇴원했다가 약안먹어서 재발해서 다시 온 사람도 있대.형도 그냥 잘먹어."
"젠장 이렇게 부작용이 심한 약을 그냥 먹어야 되다니.왜 이렇게 요즘 사는게 싫냐 시간은 안가고 말야."
"다들 그걸 견뎌내가는것이 대단해보여요.준영이 형도 알겠지만 천복이 대단하지 않아요? 나였으면 울고불고 난리났을텐데 말야. 자기또래 친구도 클롣즈에 없고 친했던 사람들은 거의 오픈으로 갔다던데. 잘견디는 것을 보면.."
"그래 천복이는 대단해.나도 나잇살이나 먹고 이렇게 약같은거 불평하다니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약이 부작용이 심한것은 알아야되."
"나도 알아. 요새 너무 졸려서 운동을 안한경우도 많아. 그리고 방에서 자꾸 잠만자니까 성호형님도 정신차리라고 하시더라구."
"어떻하겠냐 재훈아.참 오늘 너 부모님 오신다면서?"
"어떻게 알았어? 말안했던것 같은데?"
"후성이가 그러더라. 너 오늘 부모님 오신다구"
"후..후성이? 어떻게 알았을까?"
"나도 알수없지 하지만 좋겠다. 나는 다음주에 오신다고 그러던데."
"그래 그럼 준영이 형 나는 운동하러 갈게. 형도 힘내. 우리가 있잖아 같이 견뎌내는 사람들이.형만 힘든게 아니란것만 생각하면 의지가 되. 난 그렇더라."
나는 준영이형과 대화를 끝내고 성호형님과 같이 운동하러 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바로 운동하는것이라 더 힘들었다. 거기다가 피자까지 먹었으니까 더 힘든것 같아."
"재훈아 이럴때가 가장 힘들고 견디기 힘든건 알아. 그래도 이때 운동을 안하면 다이어트가 아니라 오히려 살이 더 찌게되. 우리 힘내서 운동을 끝마치자."
"예 성호형님."
우리는 피티체조 100번을 끝내고 나는 런닝머신을 달렸고 성호형님은 자전거모양의 기계에서 사이클을 돌렸다. 한 30분쯤 지냈을까.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때가 여름인지라 햇살도 따가웠고 더워서 땀이 배로 흘렀지만 성호형님과 나는 만족한 웃음을 띄웠다. 식사량도 반으로 줄여서 이곳에서의 낙이 반으로 줄었지만 오히려 의욕은 약으로 인해 감소한 다른경우와 다르게 달리고 운동을 하니 다시 의욕이 솟구쳤다. 일단 5킬로 그램을 빼는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지금 2킬로그램이 빠졌고 성호형님은 3킬로 그램이 빠졌다. 이대로만 나간다면.. 그때 나의 주치의인 이강희씨가 다가왔다.
"재훈씨 요새 다이어트 한다면서요? 밥은 반씩 남기구요. 다 드세요. 다이어트는 여기서 나가서 하구요.그게 오히려 좋을듯 해요. 밥은 먹으면서 운동하시던가요."
"밥은 이제 배불러서 조금 밖에 안먹는거에요. 그거하고 병하고 무슨 상관이죠? 우리가 외상이나 내상이 있는것도 아니니 병원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까 그런것까지 신경쓰지 마세요."
"그렇다면 할수없죠 그렇지만 병원식은 영양식으로 잘짜여진 것인데 다 먹었으면 좋겟네요." "주치의님 제가 오픈으로 가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할까요?"
"그건 속단할수 없죠.여기서 생활잘하고 약을 꾸준히 먹어서 약이 몸에 맞겠다 싶으면 경과를 봐서 오픈으로 가지요.그러니까 그런것에 신경쓰지 말고 여기서 지금처럼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잘 지내봐요. 참 그리고 여기서 연애 하는것은 별로 안좋을수 있어요. 여 환우들도 재훈씨도 병에 걸린 상태고 또 심적으로 힘들수가 있으니까 왠만하면 자제 하세요. 그럼 내일 회진때 봐요."
"네 그럼 낼뵈요."
막상 주치의로부터 연애를 주의하라는 말을 듣었지만 수긍할수 없었다. 여기서 오히려 의지가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의 경우는 누군가 의지하고 즐겁게 지낼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성적인것이 없어도 그것만 된다면 만족하고 잘 지낼것 같았다.
그나저나 구성방 오른쪽에는 여자한명이 왔다던데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가능하면 이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그 여자와 얽히게 될지도 모르니까 내또래였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방에서 소리도 안나는 것을 보니까 얌전할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칭 신이라고 하는 남환자를 볼때 그들이 온다면 조금쯤은 더 재미있을것 같았다. 새로운 사람은 언제나 활력을 가져온다.
대학때도 새내기가 오면 분위기가 사는것처럼 여기서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여환우가 여자병실로 가려면 한명이 오픈으로 가야되는데 그게 누굴까? 은주누나가 아니었으면 하지만..현실적으로는 몇달 여기있었다고 하니 오픈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마음은 은주누나가 나와 같이 오픈으로 갔으면 좋겠다.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소파에 앉았다. 그때 부모님이 같이 오셨다.
"재훈아 엄마 아빠왔다. 어떻게 견딜만은 하니? 빨리 올려고 했는데 늦어서 미안하다. 자 네가 좋아하는 피자하고 치킨 사왔다. 다른사람들하고 같이 먹으렴."
"알았어 어차피 같이 먹으려고 했으니까 그건 걱정말고. 참 내가 간호사님한테 쪽지로 내가 필요한거 적어놨었는데 그거 받았어?"
"그래 네가 읽을책을 가져왔다. '상실의 시대'가 읽고 싶다면서.그리고 '휴지통'이란 제목의 시집도 하나 가져왔으니 천천히 보려무나."
"가족들은 잘 지내구요? 그나저나 전 퇴원하려면 얼마나 남았대요? 담당의사님하고 이야기 해보셨을것 아니에요."
"여기 온지 별로 안되서 약적응기간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일단 오픈으로 옮기게 된다고 하시더라. 하지만 아직 온지 얼마 안되었고 경과를 알기에는 짧은시간이라 좀 걸릴것 같다고 하더구나.누나나 형에게 뭐 하고 싶은말이라도 있니?"
"형이나 누나가 올때 햄버거 좀 여러개 사주었으면 좋겠어. 햄버거가 먹고싶기도 하고 다른사람들하고 먹기에도 좋으니까. 음 내 기억으로는 여기 버거킹이 지하에 있던것 같은데. 담에 올때는 거기서 사달라고 말해줘. 그리고 보고 싶으니까 가능한한 빨리 와줬으면 좋겠어."
"형하고 누나도 네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보고싶기도 하다고 하더라. 그리고 또 필요한건 없니?" "학교 전공책이나 교양책을 가져와 줬으면 좋겠어. 여기서는 하루하루가 긴데 그 시간에 좀 공부했으면 좋을것 같아서. 그런데 약이 독해서 그리고 부작용이 좀 있어서 얼마나 공부할지는 모르지만 말야."
"부작용? 무슨 부작용이 있니?"
"일단 먹으면 좀 졸립고 정신이 조금 멍해지는 것 같아. 공부하기에는 상태가 별로 안좋은것 같긴 하지만.. 정말 문제는 약을 먹으면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냥 잠만 자고 싶어져. 의사선생님힌테 이이야기 꼭 해줘."
"음 약이 잘 적응이 안되나 보구나. 의사선생님도 부작용은 어쩔수 없고 네 병치료를 위해서 가능한한 줄여본다고 하시긴 했단다. 또 불편한점은 없어?" "음 여기 있으니까 분식이 먹고 싶어. 내가 생각해도 여기의 즐거움은 먹는거가 대부분이라. 다이어트 하는데 먹어도 되는 건과류나 과일도 좋아."
주위를 둘러보니 창운이가 보였다.
"창운아 피자하고 치킨 담아 줄테니까 성호형님하고 영훈이 형, 천복이하고 나눠 먹어."
"안녕하세요 저는 창운이고 재훈이하고 친구에요. 재훈이가 성격이 좋아서 잘 어울리고 있으니 걱정마시구요. 짜식이 몇번 입원했던것 처럼 잘생활한다니까요."
"그래 그래 재훈이 하고 잘지내렴. 탁구도 같이 치고 여기서 잘지내고 나가서도 친구로 지내면 좋겠구나."
"그럼요 나가서도 잘 지낼거에요.저도 새 친구한명이 생겨서 좋아요.근데 재훈이 아직도 어머니라 안하고 엄마라고 하네요."
"재훈이가 막둥이라 애지중지 했더니 아직도 엄마 아빠라고 한단다." "뭐 그럴수도 있지 왜 그래 엄마. 아직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이니 엄마라고 해도되."
"맘대로 하렴. 엄마도 아직 엄마라고 부르는것이 좋단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넌 아직 애같아서 걱정이 된단다.여기 사람들하고 잘지내고 참 네방 새로 꾸몄단다. 벽지도 갈고 방 넓이도 넓혀놔서 집에 오면 놀랄거다. 너무 좋아졌거든. 화장실도 수리해서 깨끗하고 텔레비전도 45인치 큰것을 샀단다. 그러니까 의사님들 말씀 잘듣고 빨리 나오면 컴퓨터도 새로 사주마. 힘들어도 꾹 참고 잘지내봐라."
부모님과 나는 탁구대 옆에 소파에 앉아서 차근차근 이야기 했다. 형이 취직했다는 이야기와 누나가 3달후에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여기서 제자리 걸음일 뿐인데 다들 앞서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한테 매형이 생기는 거야? 그런데 한번쯤은 나한테 매형 소개시켜줘도 됐을텐데 아쉽네. 담에 올때 누나보고 매형사진 한장 보내달라고 해. 다행히 3달후면 결혼식엔 갈수 있을거 같아. 경과만 좋으면 말야. 형은 어디로 취업했대?"
"음 해외영업쪽으로 취업했단다. 형이 원래 영어를 잘했잖아.대학도 미국에서 나와서 회화도 되고 해석도 잘하니까 되었단다.번역쪽으로 취업을 생각해보라고 했는데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나을것 같다고 해서 그쪽으로 취업했지."
"할머니는 요새 뭐하고 지내요? 지난번에 다리가 다치셨었잖아요."
"안타깝지만 할머니 다리가 부러졌는데 나이가 드셔서 수술해도 소용없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가족들이 많이 상심했었지. 재훈이 할머니 보고 싶지않아?" "당연히 보고싶죠. 할머니 이제 화장실 못가실테니까 간병인이 필요하겠네요.간병인이 생기면 할머니도 덜 적적하실테고 할머니를 보살피기가 좋겠네요. 엄마도 일하고 아빠도 일하러 가시니까 할머니는 매일 혼자 계셨잖아요."
"휴 간병인 쓰는것도 지금 집안형편에 힘에 붙이기는 하단다. 그래도 어쩔수 있니? 아무튼 할머니도 걸어다니시지 못하는것 빼고는 건강하시단다. 네 걱정 많이 하시더라."
"후 저도 여기있으면 미칠것 같아요. 빨리 나가고 싶은데..하루하루가 너무 안가요." "그래서 읽을책을 가져왔잖니 다음에 올때 어떤책 사가지고 올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쫒는 모험' 가져와 주세요. 그럼 필요한것은 더이상 없어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럼 이 엄마와 아빠는 집에 가보마. 잘지낼수 있지?"
"그래요 잘들어가세요."
나는 부모님을 보내고 남은 피자와 치킨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 병실 사람들이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었는데 후성이는 이미 자기 몫을 다먹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피자 한조각을 빼고 나머지를 후성이 한테 주었다.
"후성아 그렇게 배고프냐?"
"귀신이 더 먹고 싶대. 나는 별로 생각없는데 말야. 난 무당이라 귀신말도 잘들어야 되거든."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넌 무당이 아니라 위당이 되야겠다. 그렇게 많이 먹으니까 하하" 후성이는 내 말을 듣고 기분이 조금 상했는지 토라져서 구석으로 가서 누가 빼았아 먹을까 품에 꼭 넣고 한입 한입 피자를 물어뜯었다.한번 인상이 안좋아져여서 였을까. 후성이가 뒤로 숨어서 먹는것을 보자 그 식탐이 껄끄러웠다. 당당하게 먹으면 되지 왜 그렇게 숨어서 먹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후성이는 콜라한병과 피자를 같이 먹었고 그것을 다먹자 자기 서랍에서 초코파이 두개를 꺼내서 그것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창운이는 mp3를 들으면서 노래를 따라불렀다. 투샤이라고 몇년전에 잠깐 나온 가수의 앨범이었다.
"창운아 그거 노래 좋냐?"
"러브레터는 들을만해. 너도 한번 들어볼래?"
"아니 괜찮아 근데 네가 그 앨범 산거야? 난 처음보는 그룹이던데.."
"투샤이라고 있어. 그냥 음반점에 들어가서 노래를 듣다가 괜찮아 보여서 산거야.좀 들어봐.내가 괜히 산게 아니라니까." 나는 엠피쓰리에 귀를 꽂고 노래를 들어보았다. 내 기억으로는 별로 인기없는 그룹이었지만 노래는 감미로운것이 좋았다. "투샤이 라고? 팬카페있어? 거기 한번 가보고 싶다."
"나중에 네이버에서 쳐서 들어가봐. 나도 글하나 남겼는데. 내가 좀더 자유로워지면 당신들을 찾아갈거라고 써봤어."
말을 하는 창운이의 얼굴표정이 어두웠다. 여기서의 생활에 심신이 모두 지쳤기 때문일것이다.
"요새는 바퀴벌레 안보여?"
"응 약을 먹으니까 잘안보여.가끔보이는 것은 어쩔수 없지만 말야. 일종의 정신분열증이라 치료에 오래걸리는것 같아. 그건 그것이고 나는 외래치료만 했으면 좋을텐데. 너 그거 알아? 여기서 퇴원하는것이 다가 아니야. 병원에 와서 의사선생님하고 이야기도 하고 약도 타가고 해서 꾸준히 약을 먹어야되. 아마 평생 먹어야 될거야."
"평생동안? 결혼하거나 하면 약을 타올수가 없잖아. 정신병 걸린 사람에게 누가 시집오겠어. 요즘에. 결혼하고 나서도 이혼사유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회사 다니면 평일에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타가지?"
"네 담당의사 선생님인 김인철 교수님은 월수금에 병원에서 외래환자를 보시더라. 너도 아마 그때 가야될것이야."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까마득해졌다. 여기서 나가기도 힘들지만 나가서도 계속 약을 먹어야 하다니. 그 생각을 하자 아찔해졌다. 정말 한번 걸리면 이렇게 힘든것이 정신병인것 같았다. 나도 아마 여기서 나간다음에도 계속 약을 먹어야겠지. 이런 생각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의 기분이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마치 인성이 처럼 감정이 조금씩 밀려왔다. 정말 목놓아 울고 싶었지만 인성이 처럼 되기는 싫어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눈물이 글썽거렸다. 울려고 하는 나의 표정에 창운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겨우 그정도 가지고 울려는거야? 어쨌든 여기있는것 보다는 낫잖아. 아니면 병에 걸린것에 대한 신세한탄이야? 모르긴 몰라도 지금 내가 너보다 힘들걸? 넌 여기 온지 10일도 안되었지만 나는 560일이 넘었거든. 보통 사람들은 두세달이면 나가는데 나와 인성이는 그 두배는 걸리는것 같아. 그나마 인성이는 오픈으로 갔지. 나는 여기서 사람들이 모두 갈리는 것을 보았어.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오픈으로 갈떄 나의 심정을 알아? 나보다 늦게온 사람이 왜 먼저가냐고 따져보았지만 의사선생님은 항상 나보고 조금만 더 견디라는 말밖에 할줄 몰라. 누가 그걸 모르나. 하지만 내마음은 휴지조각이 되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너도 곧 느끼게 될거야."
나보다 늦게 온사람이 나보다 먼저 나가게 되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창운이는 울먹거리며 다시 엠피쓰리를 들고 노래를 들었다. 나와 창운이 사이에선 침묵이 존재했다.
"재훈아 뭐 그렇게 심각하에 생각해? 여기서 나가서 약을 비타민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되는거야. 그리고 정신과 외래치료 받는 사람은 굉장히 많아.특히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해서 걸린 사람수가 상당히 많아. 우리가 여기있는것은 그 정도가 조금더 심해서 일거야.그리고 겨우 이런거에 흔들릴 배우자라면 결혼하지 않는것이 좋아. 내 와이프봐.내가 입원했어도 나를 잘 보살펴주잖아. 이런병때문에 떠나갈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상대하지마. 떠날려면 떠나라 라고 편하게 생각해. 네가 원해서 이런병에 걸린것이 아니잖아. 자조감 가질필요 없어."
"예 성호형님 형님말 듣고 보니까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요. 그래요. 배우자가 되서 이런것에 흔들린다면 더 심한 병에 걸리면 바로 포기할거 아니에요.그렇지만 이병은 최대한 감출수 있을때까지 감출거에요. 알아봐야 좋을것 하나 없잖아요. 사람들의 편견도 역시 마음에 걸리고요.아직 정신병자 하면 헛소리나 지껄이고 항상 사고 치고 흰집에서 침이나 질질 흘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현대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정도의 정신병을 겪고 있잖아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것 뿐이지. 저도 힘낼게요."
"그래야지. 너도 마음 독하게 먹어.여기 있었다는 것은 부끄러워할일이 아니야. 네의사로 잘못을 저지르고 온것이었으면 반성해야 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오히려 당당해야되. 그걸 명심해."
"예 성호형님. 밥올때가 되었네요."
"말돌리는 거 봐라. 형말이 우스워? 우습냐구? 하하"
성호형님이 코브라 트위스트를 걸었다. 나는 백드롭하는 포즈를 취했다가 원래 포즈로 돌아갔다.
"성호형님 저 다이어트한다고 밥 반씩 남기는 것 갖고 잔소리 좀 들었어요.형님도 그러셨어요? 그렇지만 배불러서 못먹고 살빼야 한다고 하니까 그럼 밥 더먹고 운동하라지 뭐에요. 먹을거 다먹고 어떻게 다이어트해요. 그래서 의사선생님 말 안듣고 강행하기로 했어요."
"한번 결정했으면 죽이되든 밥이 되든 끝내야지.밥이 이번에 오면 천복이 주자. 요새 녀석이 우울해보이는데 맛있는 반찬을 더 준다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리겠지? 여기선 먹는것이 낙이니까."
"그래요 형님 저는 창운이 줄게요. 형님이 천복이 주세요."
성호형님과 나는 반찬을 나눠주고 남겨진 몫을 먹었다. 반만 먹고나면 조금 후에 배고파져서 힘들지만 힘들지 않다면 다이어트라고 말할수 없을것 같았다. 나는 먹자마자 침대로 가서 잠을 청했다. 먹다가 바로 자면 살찌는데.. 그래도..너무 졸리다. 나는 필름이 끊겼다. 얼마나 잤을까. 창운이가 나를 깨웠다.
"재훈아 드디어 나 오픈간다. 가서 인성이 만나겠지. 잘지내 너도 곧 있으면 오픈으로 올거야. 너는 다른사람들하고 다르게 멀쩡해보이는데 약발이 잘받는다 싶어. 정신치료는 약물이 70이고 상담이 30이야. 그래서 약에 적응하면 빨리 퇴원하는거고 말이야. 나는 이만갈게. 다른사람이 방에 오면 잘지내.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는것 같아. 나도 오픈으로 가는구나. 예전에 경험한 것이지만 지금 다시 가니까 기분이 새롭네. 재훈아 여기서 나가도 약은 꾸준히 먹어. 나는 약을 끊었다가 재발해서 온거거든. 약을 끊으면 힘들더라. 하지만 약을 먹으면 우리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 그게 가능하기 때문에 퇴원시키는 것이고. 이점 잘 생각하고 형은 먼저 가본다."
"형은 무슨. 아우야 먼저가서 길을 잘 닦아놓거라. 내가 가면 잘해줘야 할것이다." "자식 인성이와 내가 기다리마. 재훈아 즐거웠다."
창운이가 고개를 돌려 다른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짐을 챙겨서 오픈으로 갔다. 나는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상실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것이다.정말 부럽고 부러워서 죽고 싶었다. 그럼 나는..언제까지 내가 여기에 있어야 되는걸까? 기분이 멜랑꼴리 해지는 것 같았다. 천복이는 나보다 더 심한 표정이었다. 어린녀석이 자기는 못나가고 다른사람이 나가는 것을 여러번 봐왔을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보면 볼수록 상인한 녀석이었다. 이 병실의 모든사람보다 의젓해 보였다.
저녀석은 우울증일까? 조울증일까? 아니라면 어떤 병일까? 잘견디는 것을 보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저녀석은 이미 겪은 이런느낌을 가지고 심각해진 내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후 창운이가 갔구나. 이 형도 오픈으로 가야겠진만 아직 못가니까 재훈이하고 다이어트나 해야겠다. 참 구석방에서 창운이 자리로 이따가 오후에 온다더라. 재밌는 녀석인것 같던데. 너도 들었지? 자기가 신이라고 믿고 있는 녀석말야. 나하고 노는 것은 신의 말씀을 듣는것이라 구원에 좋다고 하더라. 신에게 약을 먹이다니 이 무엄한 것들이라니 하하 웃다가 뒤집어 지는줄 알았다."
"형님도 그러셨어요? 저도 그런얘기 많이 들었어요. 제 또래인것 같던데 오면 친구 먹어야겠어요. 그런데 그녀석하고 잘지낼수 있을까요?"
"이방에서 영훈이하고 트러블이 생기지 않으면 잘지낼수 있겠지. 말을 안해서 그렇지 영훈이한테 밉보이면 잘못지내더라고. 녀석 카리스마 있다니까,"
"제 생각에는 성호형님이 더 카리스마 있는것 같은데요. 병실의 사람들 모두 향님을 따르고 형도 그만한 행동을 하고 전 형님이 제일 부러워요."
"부럽기는 오픈으로 가야 부러운거지.아무튼 체조나 하자." 성호형님과 나는 피티체조를 했다. 백여번을 하고 나니 이마에서 땀이 흘렀고 백번이 끝나고 잠시 쉬었다. 우리는 탁구대 옆의 소파에 앉았다.
"재훈아."
"응 은주누나 왜?"
"나 오픈으로 가게 됐어. 그래서 너한테 인사라도 할려고."
"그래? 나도 오픈으로 가면 거기서 만나면 되겠지? 잘됐다. 왠지 누나가 오픈으로 갈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어. 조금 아쉽지만 축하해."
"재훈아.."
은주누나가 내 이마에 살짝 뽀뽀를 햇다.
"너는 잘지낼거라고 믿어. 그래서 오픈에서 만나고 나가서도 잘지내자. 힘내."
은주누나도 오픈으로 갔다.나는 기분이 씁쓸해졌다. 아마 수련이 누나도 이런기분 느끼겠지? 그러면 나는? 하는 생각이 든다. 왜 남들만 보내고 나는 이대로 놔두는지 정말 원망스럽다. 은주누나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찬송가 소리로 시끄러워야할 복도가 조용하기만 했다. 수련이 누나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옆모습을 보니 좀 쓸쓸해보였다. 단짝 친구가 사라지니까 기분이 가라앉나보다. 이렇게 갑자기 이별이라니.
그러고 보니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았다. 뭐 내가 오픈에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때 은주누나가 내가 오픈으로 가기전에 퇴원할줄 몰랐다. 이걸로 영원히 이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마음편히 은주누나를 보냈던 것이었다. 그러면 새로오는 여자는 누굴까? 얌전하게 방에서 지내서 나는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뉴페이스의 등장은 언제나 화려하다. 어떤여자앨까?
"드디어 다른사람들하고 있게 되는건가요? 혼자있는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젠 다른사람들하고 있을수 있나요?"
뒷머리를 묶은 여자애가 은주누나가 오픈으로 간 자리에 갔다. 이제 저 여자애도 여자병실에서 지내게 되었으니 또 보겠지. 얼굴을 보니 굉장히 여려보였다. 목소리도 떨리는 것이 이곳의 생활이 두려운것 같았다.
"재훈이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냐? 혹시 아는애야? 네 또래로 보이는데 말야."
성호형님이 어느새 내 옆에 와서 어깨를 두드렸다. " 아 아니요 그게 아는사람하고 조금 닮아서요.어디선가 본것 같기도 하구요."
"재훈이가 관심이 있나보구나. 너도 알겠지만 여기서의 연애는 오래가기 힘들것 같다. 나가서 다른사람을 보는것이 좋을지도 몰라. 여기서 정이 들었다가 오픈으로 가고 또 네가 오픈으로 가기전에 퇴원을 하게 되면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라도 괴로울거야. 처음부터 마음을 주지 않는것이 좋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인연이란 알수 없어요. 가까이 지내기 싫은사람도 매일 부딪힐수 있듯이 여기서의 인연으로도 밖에서도 잘지낼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지금 잘지낼수도 있고 애인이 될수도 있는거죠. 전 가능한 가능성을 포기 하고 싶지 않아요. 은주누나처럼요. 꼭 다시 보게 될거에요."
"나는 네가 마음의 상처를 안받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재훈이 저 여자애한테 관심이 있는것이 분명하구나. 한번 본걸로는 잘모르겠지만 뭐 친구처럼 지낼거라면 말리지는 않으마."
"첫인상이 친근해서 쳐다본거에요. 아직 은주누나 생각에 빠져있는데 당장 애인이 될것도 아니고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네요."
나는 성호형님을 뒤로 하고 세면실로 가서 찬물로 얼굴을 씼었다. 여자병실의 문이 조금 열려있었다. 세면을 끝내고 여자병실을 바라보았다. 여자애는 한방의학 책을 보고 있었다. 조용한 성격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미소를 짓는것이 인상적이었다. 겉보기에도 어려워 보이는 책인데 약을 먹어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 지금도 읽는것을 보니 마냥 신기했다. 부모님께 부탁해서 전공과목과 영어를 공부하려고 했지만 분위기 탓인지 약기운탓인지 공부를 못하고 있던 나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약을 먹어서 머리가 멍하다는 것은 핑계일까? 하긴 군대에 가서 공부해서 자격증 20개도 넘게 획득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여기서는 공부를 못한다는 것도 핑계일수도 있었다.
"환우여러분 글짓기 시간이에요. 오실분들은 오셔서 글한편 쓰고 가세요. 커피도 준비되어있으니 커피 한잔 하시면서 글한번 써보세요." 그 소리를 듣고 그 여자애가 글을쓰러 그곳에 들어갔다. "성호형님 우리도 글쓰죠."
"나는 됐다. 넌 글써보려무나. 혹시 저 여자애가 들어가서 너도 잘참여하지 않는 활동을 하려고 하는거야? 후후 좋구나 청춘이란."
"꼭 그런것은 아니구요 마침 글을 쓰고 싶더라구요."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듯 모임실로 들어갔다. 마침 오늘은 시를 쓰는 시간이었다. 시인이시라고 하는 인상좋은 아주머니가 푸근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쓰세요. 잘쓰고 못쓰고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진심이 담겨있는가 아닌가가 중요해요. 다른사람이 뭐라고 하건 솔직한 글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으니까요. 여러분의 시심에 빠져들고 싶네요."
노래를 불렀던 곳에서 탁상을 원형으로 늘어놓았고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향긋한 헤이즐넛이 각자의 자리에 한잔씩 놓여서 향기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애의 맞은편에 앉아서 조용히 생각했다. 어쩌면 나중에 이곳에서의 생활을 회고할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글로 옮겼다.
'인생의 시기'
'시기를 기다린다는 건
인생의 어느점에 섰다는 일이다
그때를 알기위해
나는 방황을 했었나보다
그 기억조차 아련해질때면
지금이 그 때인듯 싶다
그래도 남는것은
내가 보낸 시간동안의
사람들
내가 지금있는 곳은 어디인가
나를 지켜봐온 사람중
누군가는 나를 이끌어줄수 있을텐데
그런 사람이 올때를 기다린다
다만 그것이 그대이길 바랄뿐이다
아니라해도 그러기를
바라는 나는
지금 사랑의 때를 기다리나 보다'
나는 글쓰기를 마치고 다른사람을 쳐다보았다. "두편의 시가 일주일동안 계시될거에요. 편하게 자신의 시를 쓰시고 그것을 낭독해주세요." 사람들은 자신의 시를 읆었다. 나는 그중 한 아저씨의 시와 내가 유심히 보았던 여자애의 시를 들었다.
'활짝 개안한 꽃잎하나'
빗물에 살짝 젖은 꽃잎은
그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적시운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피가나도
빨간 장미꽃은 파르르 떨며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소로에서
가시가 까칠하게 닿은
꽃들을 보면
그 나름의 삶의 치열함에
생명의 향기를 뿜는것 같다
함부로 꺾이기에 너무 서글픈
개안한 꽃잎하나가
봄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지금
꽃하나가 나를 길들이려한다 '
나는 정신없이 그 시를 읽어보았다. 가슴이 뛰었다. 각자의 시를 돌려보았는데 나는 그 여자애의 이름을 보았다. 작은 글씨로 '서유화'란 이름이 보였다. 이름도 예쁘다. 왜인지 나는 자꾸 유화에게 끌려가는 내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여자라 감수성이 풍부한 것일까.시에 감정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의 시를 돌려보았다.
"여러분 그럼 잘 감상하셨죠? 어때요. 그렇게 어렵지 않죠? 시란 그런겁니다. 막연히 그럴듯하게 기교를 부리는것이 잘쓰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사물에 대한 통찰이 좋은글을 만드는 것이랍니다. 그러면 게시판에 게재할 시두편을 고르도록 하죠. 자신이 마음에 드는 시를 추천해 주세요."
나는 말없이 손을 들어 유화의 시를 추천앴다. 그런데 유화도 손을 들고 내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시를 추천하기 시작했고 많이 부족하다고 여겼던 나의 시와 유화의 시를 선택했다. 시라고 여기기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왜 유화가 내시를 선택했을까? 아무튼 감상이 끝난 우리는 각자의 글에 만족한채 커피타임을 가졌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것일까. 밖에 있을때는 하루에도 세잔정도를 마셨는데 벌써 열흘가량 커피를 입에도 대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커피향조차 나의 맘을 끌었다.그런데 은주누나는 왜 여기에 안나왔을까? 하긴 나도 여태까지 이런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누나도 그럴수도 있겠지.애써 나는 아쉬움을 달랬다.요법실 밖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역시 건강하구나. 그런데 나는 오픈으로 갈수가 없으니 은주누나를 볼수없다. 내가 갈때까지 잘지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만 내가 갈때까지 퇴원하지 말고 기다렸으면 좋겠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옆의 사람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랍니다. 각자 안부를 물어보고 대화를 나누세요. 커피와 시가 있는 이 시간이 여러분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해요."
시인님이 웃으시며 말했고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쳐다보며 각자의 글에대한 이야기를 했다.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기분이 좋은줄 몰랐다고 나는 옆의 사람에게 말했다. 맞은편에서 유화가 옆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옆자리에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만 지독히도 끌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우리는 요법을 끝내고 각자의 병실로 돌아갔다.
"저 안녕하세요. 이번에 여자병실로 오셨죠? 저는 남자병실에서 생활하는 재훈이에요.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아 예 안녕하세요. 저는 유화라고 해요. 잘부탁 드려요."
"저야말로요. 아직 많이 혼란스러우시죠. 저는 10여일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혼란스러워요. 왜 여기에 왔는지도 잘모르고요. 실례지만 왜 여기에 오셨죠?"
"저요? 의사선생님 말로는 조울증이래요. 제가 여기오기 전에 강남구를 돌아다니며 모든걸 새로 만든다고 돌아다녔어요. 내가 바로잡아 준다고요. 나만 믿고 따라오라며 가족들에게 이야기 했었나 봐요. 참 제가 왜 그랬는지 몰라요. 삼일 동안 약을 먹으면서 생각한것이 그거에요. 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걸린 시간이에요. 아마 재훈씨도 잘 생각해보면 왜 여기에 왔는지 알수있을거에요. 그리고 그건 좋은거에요. 사람이 자기가 미쳤다는 것을 알면 그 사람은 미친것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저 역시 그렇게 믿고 싶어요. 저는 처음에는 외래로 치료했는데 의사선생님이 한번 입원해서 본격적으로 치료할생각 없냐고 부모님한테 말씀하셨고 제가 여기에 오게된 이유죠."
"네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요? 내 또랜거 같은데 말을 노면 좋을것 같은데. 또래 애한테 재훈씨라고 들으니까 너무 어색하네요."
"21에요. 어려보이죠?"
확실히 유화는 고등학교 3학년의 외모였지만 뭐 19살이나 21살이나 내또래인것은 맞는 말이니까
."말놀게. 나는 22살이야. 뭐 한살차이니까 너도 말놔. 너무 쉽게 말을 놓게 되는건가? 그래도 나는 서먹서먹하게 유화씨 이렇게 붙이기가 싫거든."
"그래 나도 친구가 생겨서 좋다. 너는 왠지 여기있는것이 익숙해 보인다. 나는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적응이 안되."
"다 그렇지뭐 그럼 난 병실로 가볼게 약먹을 시간이니까 너도 들어가. 잘지내보자."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으로 돌아왔다. 은주누나와 지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른사람에게 끌리다니 이래서 사람은 믿을수 없는것 같다. 오늘은 약이 5섯개로 늘어났다. "왜 이렇게 약이 늘었어요? 그리고 약을 먹으면 왜 이렇게 졸린지 모르겠어요 간호사님."
"그건 주치의 선생님께 물어보세요. 그리고 약이 늘었다가 줄었다가 하는 것은 당연해요. 경과를 보고 어떤약을 쓸건지 정하는 것이니까요."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약을 먹었다. 그때 밖에 소란이 났다. 운영이란 구석방의 녀석이 소리치고 있었다.
"아 진짜 나는 약안먹어도 된다니까 그러네. 나는 신이야. 완벽하다고. 감히 나한테 미친것들만 먹는 약을 먹이려고해? 좆같아서 안먹어."
"그러면 내일 남자병실로 옮기지 않을거에요. 여기서 더 생활하고 싶어요?"
"그.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나한테 약은 필요없어. 앞으로도 먹지 않을거고." 운영이란 녀석이 간호사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여기 간호사들은 이런 상황이 매우 힘들것 같았다. 남자 간호사한명이 운영이의 몸을 잡았다. 그리고 약을 먹였다.운영이는 그것을 뱉었다.
"나한테 약먹일 생각하지마. 바보가 되는약은 나한테 필요없어. 퉤"
"약을 먹기전까진 아무데도 못갑니다. 다른사람들도 다 여기 있어야 되고 운영씨도 움직일수 없습니다. 간호사들은 약을 들고 운영이와 대치했다. 운영이는 씩씩 거리다가 약을 삼켰다.
"그래 더러워서 먹어준다 그렇다고 이걸로 나를 어떻게 할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것이 좋을거야."
운영이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말했다. 병원의 다른사람들은 그런 운영이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하다못해 후시딘같은 것만해도 피부알레르기가 있는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운영이가 먹는 모습을 보자 우리는 약을 먹을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운영이는 방으로 들어갔고 다른사람들은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환우여러분 오늘은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를 볼거에요.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니까 한번쯤 보시는것이 좋을거에요. 1층에 있는 영사실에서 볼겁니다. 보실분은 이쪽으로 오셔서 다같이 내려갑시다."
손명희 간호사가 환우들을 이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준영이 형과 유화 그리고 수련이 누나 성호형님이 영화를 보기로했다. 수련이 누나와 유화는 어느새 친해져 단짝처럼 지냈고 나는 준영이 형과 성호형님과 움직임을 함꼐했다. 영훈이 형님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인성이와 창운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잘지내셨어요 성호형님? "
"재훈이 너는 잘지냈겠지? 우리는 오픈에 와서 잘지내고 있어. 전화도 걸고 복도도 두배는 넓어. 컴퓨터도 쓸수있고 많은면에서 좋으니까 오픈에 빨리 오길 바랄게."
"그래 나도 반갑다. 근데 혹시 은주누나는 여기에 안왔어?"
"은주누나는 집으로 2박3일 갔어. 오픈에서는 주기적으로 그렇게 집에 갔다오게 해서 적응도를 알아봐. 그리고 퇴원수속을 밟는거지. 은주누나는 곧 나갈것 같더라."
"그..그래 잘됐네. 여기서 나가는 것이 제일 좋지.며칠뒤면 나갈텐데 난 못보겠네."
은주누나가 퇴원한다! 이대로 나가면 볼수있을 가능성이 없었다. 이렇게 헤어지는 구나. 역시 나는 밖에서 만난다는 말은 믿지 않았었다. 가슴 한구석이 시려왔다. "뭐해 재훈아 멍하니 서서. 앉아서 보자. 저기 구석에 다섯명정도 앉을 자리가 있다. 저쪽으로 가자."
우리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주인공인 트레버는 이제 중학교에 갓 입학한 11세 소년이었다.알콜중독자 엄마와 살았다.학교 첫 시간 사회선생님이 이상한 과제를 내주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고 실천할것' 트레버는 골똘히 생각해내어'도움주기'를 만들어 실천하게 되었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트레버가 진심의 마음을 가지고 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 그 도움받은 세사람들은 각각 트레버에게 보답하지 말고 다른 세 사람에게 또 각각 도움을주고.. 이런식으로 도움을 주다보면 세상이 변할거라 생각했던것이었다.트레버는 맨 처음 자신의 용돈을 모아, 마약중독자 노숙자인 제리에게 새 일자리를 구해주고 새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다. 또,트레버의 사회선생님인 유진은 과거의 아픈상처가 있는 사람이었고 또한 트레버의 엄마도 부랑자로 오래전에 떠나버린 남편때문에 상처를 갖고있는 동병상련의 처지였다. 그래서 트레버는 그 둘을 맺어주었다.
이렇게 성공할것 같았던 도움주기가 갑자기 실패하게 되었다. 제리가 다시 마약에 빠지면서, 또 부랑자인 아버지가 돌아오면서 엄마와 선생님의 사이가 갈라지게된 것이었다. 트레버는 상심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불화는 풀리게 되고, 엄마와 선생님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제리또한 자신의 밑바닥 인생에서 자살하려는 다른 사람에게 삶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설득함으로써 도움주기를 실천하였다.결국 트레버의 도움주기는 여러 주에 퍼져나가면서 방송을 타게 되었다. 하지만,트레버는 곤경에 처한 친구를 돕다가 불량배들의 칼에 맞고 죽었다.그리고 그의 마음이 퍼져 따뜻해진 거리에서 사람들이 트레버를 추모하면서 끝나는데 진짜 정신없이 보았다. 언뜻 다단계가 생각나기는 했지만 무언가 달랐다. 감성이 살아숨쉬고 있던것이다. 마지막에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을때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재훈아 잘봤냐? 이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고 내 사상이 담겨있어. 작은사람 한명의 친절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지. 그러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거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정말 마음에 와닿지 않아?"
"그래요 준영이형. 영화를 정말 재밌게 봤어요. 이렇게 줄거리가 다 생각나게 본 영화는 이게 처음인것 같아요. 여기서 약을 먹어서인지 멍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깼어요."
트레버의 말한마디가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꽃혔다.
"처지가 아무리 나빠도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바꾸기 힘든 가봐요.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자신한테 지는거죠.두려움속에서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용기를 가지세요."
나는 병원에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두려움에 쌓인채 비관하고 있었다. 거기에 익숙해서 나는 나를 변화시켜 여기서 잘지내려고 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만 했다. 나의 처지. 정신병자란 것에 익숙해져서 될대로 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트레버의 말은 상당히 인상깊었다.용기를 가지자. 비록 이자리가 끝나서 병실로 들어가면 모든것을 잊을지라도 말이다.
"재훈이가 영화를 재밌게 봤나보구나. 어라 너 우는거냐? 하하 조금 감동적이지만 울정도는 아니었는데..재훈이가 감수성이 풍부하구나."
"아.아니에요 그냥 트레버가 죽을때 슬퍼서. 아니 추모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어서.."
옆을 보니 수련이 누나와 유화가 나를 보고 웃고있었다. 다커서 이게 무슨 창피람. 그렇지만 영화가 끝난후 한참후에도 트레버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이 영화를 평생 기억할것 같았다.병원에서 봤다는 이유도 있고 또한 여기 병실에서의 생활의 지침서가 될것 같기도 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나도 여기사람들에게 세가지의 친절을 베풀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 첫번째로 운영이와 잘 지내야겠다.영화를 보고 우리는 각자 생각에 잠겼다.
"여러분 잘 감상하셨나요? 앞으로도 좋은 영화 선정해서 여러분과 볼거에요. 그리고 여기서 나가서라도 '뷰티풀 마인드' 란 영화를 보세요. 존내쉬의 실제 이야기인데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의 일생 이야기에요. 그영화도 이 영화처럼 여러분이 공감할수 있을겁니다.그럼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수련이 누나와 유화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붙어서 이야기 하면서 여자병실로 올라갔다. 준영이 형은 심각한 표정으로 영화를 곱씹는것 같았고 성호형님도 생각에 잠겼다. 다음에는 '뷰티풀 마인드'를 보아야겠다.나는 운영이 방앞으로 갔다.
"똑똑 들려요? 저는 재훈이라고 해요.나오면 잘지내보자구요. 거기 생활 정말 심심하죠. 여기 남자병실이 비었으니까 내일쯤에는 올거니 약을 먹고 잘 참아봐요."
"뭐야 넌. 내가 약을 먹던 안먹던 무슨상관이야? 그리고 나는 신이야. 신의 말을 들어. 너 역시 여기서 약을 먹을 필요없어.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약이야. 약을 먹고 나니 이 신도 조금 힘들더라고. 간호사한테 가서 난 안먹는다고 말하고 와."
"아무튼 기다릴게요. 아마 나오고 싶으면 약을 먹어야 될거에요.그럼 내일 봐요." 나는 운영이와 처음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탁구대 옆의 소파에 앉았다. 문득 벽에 있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여전히 시간은 1초1초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나는 간호사님한테 건전지를 받아 시계를 뺐다.
그것은 내가 가장 키가 커서 했던 일이었다. 나는 시계를 빼서 건전지를 넣고 분침과 시침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려서 맞추었다. 시계에 후성이가 비췄다.후성이가 소파에 앉아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시계를 빨리 조립해서 벽에 걸었다. 좋은일 세가지라.. 나역시 실천해 봐야겠다. 운영이와 유화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후성이와 잘지내자. 그러다 보면 우리 병실 분위기가 밝게 바뀔것 같았다. 아니라고는 해도 운영이도 방에서 머물면서 이쪽의 탁구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구석방에서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클로즈의 우리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오픈의 사람들도 우리는 운명공동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갈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 오픈으로 가고 외박을 하고 나가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 허용된것은 면회와 산책 그리고 텔레비전 탁구, 런닝머신, 잡지정도에 불과했다. 그걸로 지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금방 시들해지고 나면 정말 할것이 없었다. 그러면 시간이 더디게 가는것이다. 하루가 일년같다는 말이 여기보다 어울릴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주누나가 외박을 갔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이대로 연락처도 물어보지 않았으니 다시는 못볼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첫키스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아파왔다. 오픈으로 가면 자유산책과 외박이 있다는데 빨리 가고 싶다. 하지만 여기온지 열흘이 조금 넘었는데 가려면 한참이 걸릴것 같았다.그 사이에 성호형님이나 영훈이 형이 갈것이고 천복이도 갈것이고 모두 간다음에 나만 남으면 어떡할까?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을때 화수라고 '비'와 결혼한다던 여자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때 후성이가 나를 또다시 껴안았다.
"귀신이 너를 품으래. 나한테 잘해주려고 한대. 시계의 시간이 지나듯이 너의 마음도 바뀌어 간대.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아."
"꺼지라고 했지. 더이상 나를 껴안지마. 토하고 싶으니까. 별 재수가 없으려니까"
"겨우 껴안는것 같고 그러면 어떡하냐? 이름이 재훈이라고 했나? 왜 그정도도 못하는거냐?"
화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니가 당해봐 그런말이 나오나. 하지말라고 몊번을 말했는지 모른다고. '비'와 결혼한다고? 미쳤으면 곱게 미쳐야지.너를 쳐다나 볼것 같아?"
나는 막말이 나왔다. 후성이 때문에 기분이 팍상한상태여서 그런것일 것이다.
"뭐가 어쩌고 어째? 나는 결혼할거야. 날 맞으러 올거란 말야. 너따위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재훈이 씹새끼 너같은 새끼가 지랄해도 올사람은 와."
"..."
나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좋은일 세가지 하기는 물건너 갔다. 나는 후성이를 밀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말이 안통하는 두명이었다. 화수와 후성이. 이 둘을 보면 내가 있는곳이 정신병원이란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나 또한 저들과 같은 환자. 여기서도 그렇게 눈에 띄게 상태가 안좋은 사람은 누구나 멀리한다. 다들 자기심한것은 모른다고 하지만 이런상황에 빠지면 저사람처럼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피하게 된다.
하다못해 2주에 한번씩 클로즈에서 비디오를 본다고 하는데 오픈에서 보러왔다가 클로즈에 있게 될까봐 영화초반 보다가 돌아가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한다. 마음으로는 클로즈로 돌아가지 않을것이라 생각하지만 마음은 그걸 두려워한다.
이런 두려움은 우리사이에 만연했다. 나보다 상태가 안좋은 사람하고 있다가 물들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반복해서 난다. 이런 감정 말고도 일단 말이 안통하니 다들 말을 걸지 않는다.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이 폐쇄된 공간에서 상대를 안해주면 정말 잔인한 일이다. 그래도 나라도 괜찮게 지내려면 저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나역시 힘든데 저사람들을 챙겨줄수는 없다. 화수가 밖에서 혼자 궁시렁 거리며 내 욕을 계속했다.
"재훈이 새끼야 비가 진짜 오면 어떡할거야? 그때 가서 나 아는척해도 상대도 안해준다. 어디서 비의 싸인이라도 받으려면 내 허락부터 받아야 할텐데 너같은 새끼는 알짤없이 패버릴거다."
"화수야 또 왜그래? 뭐가 잘못된거야? 기분좀 가라않히고 천천히 숨쉬어. 숨조차 가파르게 변하면서 씩씩 거리니? 비는 네가 이렇게 정신 못차리고 있는것을 알면 가슴이 아플거야. 그러니까 방에 들어가서 좀 쉬어. 그러면 괜찮아 질거야."
손명희 간호사가 화수를 도닥이고는 방으로 데려갔다. 방으로 돌아갔어도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나는 한숨을 쉬고 화수와 후성이가 여기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럴때 내 마음을 녹여주는 은주누나의 찬송가 소리가 그리웠다. 잘 못불렀으면 정말 여기생활이 더 힘들어졌겠지만 미성인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면서 지나가면 마음이 편해졌었다. 오픈에 가서 잘지내겠지? 마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날짜를 세지 않은지 꽤 되었지만 은주누나가 오픈으로 간지 4일이 지났다. 여기서는 시간개념이 잘안선다. 시간이 안가서 하루하루 세다가 다들 지쳐서 더이상의 시간을 세지 않는다. 얼마 있었는지는 병원침대에 입우너 날짜가 적혀있어 알았지만 나가는 건 오래있는다고 나가는것이 아니라 다들 시간에 무감각하다. 다만 오늘 하루를 생각할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잘 안가는 시간을 보내고 또 회진이 오지 않는날이면 일요일이구나 하고 생각할뿐이다. 나 역시 이곳의 흐름을 알수 없었다. 대략 어떻게 저렇게 2주일이 지난것 같았다.
처음에는 하루하루 날짜를 셌지만 이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다.인성이가 오픈으로 간지 얼마가 지났더라. 오늘은 운영이란 녀석이 인성이의 자리로 오는날이다. 원래는 삼일 정도있다가 병실로 옮기지만 녀석은 약을 먹지 않아서 날짜가 미뤄졌다. 그러다가 드디어 오는것이다. 독방에서 정말 힘들었을 운영이를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화수같이 욕을 하며 헛소리를 하거나 후성이 처럼 귀신타령을 하며 껴안지는 않겟지? 막연한 기대를 가져보았다.
"김운영씨 다른사람들하고 잘지내봐요. 아무래도 혼자있을때보다 다른사람들하고 지내면 상태가 좋아지고 시간도 빨리 갈거에요. 병도 나아질 거구요. 그럼 마지막으로 약을 꾸준히 먹어요."
운영이의 주치의 선생님이 운영이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다른병실로 갔다.
"여기 신이 오셨는데 기도안하고 뭐해? 나하고 놀면 복을 받을거야. 신에게 즐거움을 주는것이니까. 그럼 다들 나에게 잘해봐."
운영이는 인성이의 자리에 털썩 주저 않더니 혼자 중얼거렷다.
"내가 말이야 여기 오기 전에 숭실대에 다녔더랬지. 원래는 꼴통에 공부도 지지리 못했는데 마음을 먹고 한달 독하게 살았어. 그러니까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지. 신이 못할리가 있겠어. 거기있다가 여기 있을 중생들이 생각나서 구원해주려고 왔지. 너희들은 치료하려고 온거지만 나는 치료해주기 위해서 온거야. 알아? 그럼 앞으로 잘해."
"그나저나 넌 몇살이냐?" "24이야 군대에 있다가.. 으악 아무튼 그러다가 왔어." 제길 형이잖아. 나는 형이라고 부르기가 싫었기에 그 말이 반갑지 않았다.
"저 운영이형은 여기 왜 온거에요? 구원하기 위해 왓다고 하지 말구요." "여기? 음.. 머리가 아프네. 군대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음 신인 나를 괴롭히다니 천벌을 받아야할 놈들이었지. 그들에게 맞으면서 욕을 들으면서 나도 그들에게 욕을 하고. 아 머리아파. 씨발놈들 후임까지 나를 괴롭히니까 나의 신이 나온거지. 그래 신인 나를 괴롭히다가 그녀석들 영창에 갔어. 나는 그때까지 내가 신인것을 숨기고 있다가 드러냈지. 그러니까 그 녀석들이 나를 피하더라고. 크으..군의관이 대충 헛소리하지 말고 가라고 몇번 말했었는데..아 두통이야. 자꾸 그러니까 사제 병원으로 보내더라고. 그의사는 나를 한참이나 빤하니 쳐다봐서 욕좀 해줬지. 건방지게 신에게 무례하게 야리고 있다니 말이 돼? 그녀석을 교육시키다가 깨보니까 너희를 구원하러 여기에 와 있더라고."
운영이형이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요약하자면 괴롭힘 당하다가 미쳐서 사제 병원에 갔다가 의사선생님 소개로 여기왓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운영이형은 힘이 들었는지 콜라한병을 꺼내더니 꿀떡꿀떡 마셨다. 여기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괴롭힘을 당하거나 집안에만 틀어박혀 울고 술마시다가 오는것 같았다. 운영이형의 병은 무엇일까? 우울증? 조울증? 정신분열증? 어떤것도 쉽사리 생각하기 힘들었다.
조울증도 걸리면 헛소리를 많이 한다고 하니 운영이형은 조울증일까? 뭐 내가 의사도 아니지만 여기있다보니 나름대로 진단 내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형한테 귀신이 붙어있어. 두명이나. 와 보통 한사람 밖에 없는데 대단하다. 나는 수십명이 붙어있지만. 재훈이 다음으로 귀신이 붙어있네. 신이라서 그런가? 나도 신내림 받았어. 그러니 잘지내보자 형"
"너는 무당이구나. 감히 귀신하고 신하고 동급으로 얘기하려 하네. 신은 더 높아. 음 그것만 알고 나한테 잘보이고 나하고 놀아주면 신의 축복을 받을거야. 내가 널 구해줄거니까." "재훈아 다이어트 체조하러 갈까? 몸이 쑤시네."
"예 성호형님. 근데 요즘 다이어트 하는것도 좋은데 시간관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며칠이나 다이어트를 했죠?"
"글쎄. 한 일주일쯤 되지 않았을까? 나도 요새는 깜빡깜빡 한다니까. 뭐 살은 많이 빠졌니? 나는 지난주에 2킬로 빠졌는데 오늘 재보니까 1킬로 더 빠졌더라. 성과가 있긴했어."
"저는 3킬로 빠졌어요. 참 여태까지 안물어보았는데요 여기는 왜 오신거에요? 성호형님은 멀쩡해 보이는데요. 올필요가 없었을거 같아요."
"여기있는 사람들중에 멀쩡해 보이는 사람은 약을 먹기 때문이야.약을 먹지 않으면 증상이 나타나지. 나는 언제부턴가 한자리에 앉아있질 못하겠더라고. 처음에는 정신불안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심해지는거야. 그리고 왠지 밖에 돌아다니기 싫어지고 무기력해지더라고. 하루에 소주 다섯병도 마시고 그러니까 마누라가 의사선생님을 만났지. 그리고 여기를 소개 받은거야. 마누라는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까 다 치료하고 오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여기에 하루있기도 힘든데 얼마나 더 있어야 될까? 나 역시 형답지 못하지만 걱정이 된다."
"그렇구나. 그럼 형 체조 말고 복도를 계속 걸어다니죠.한 30분 정도요."
"좋아 나도 체조는 너무 눈에 띄어서 오늘은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럼 걷자."
성호형님과 나는 여기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하며 복도를 거닐었다. 운영이형이 밖으로 나와 소파에 앉아있었고 유화도 소파 끝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성호형님과 나는 걷다가 둘을 보았다. " 이름이 뭐야? 나는 신이지만 모르는것이 많아. 그렇지만 나하고 놀면 구원을 받을거야. 나는 여기온지 얼마 안됐어. 그런데 너는 차분하네 온지 꽤됐나봐? 네 자리에 보니까 나이가 23이라던데 나하고 말트고 지내자."
"말놓고 지내자. 아니 나도 일주일도 안됐어. 그런데 넌 신이라고 믿어?"
"그럼 난 신이지. 여기있는 사람을 다 밖으로 보내기 위해 왔어. 메시아야. 너도 곧 밖으로 보내줄게."
"얼굴을 보니가 오빠같네. 훗 사실 나는 천사야,그래서 오빠가 나를 보고 가까이 온거야."
"천사..? 네가 천사였구나."
"아니 뭘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농담이야 농담. 오빠가 신이라면 나도 천사라는 식으로 말한거야. 비꽈서 미안해."
"아니 너는 진짜 천사야. 그래서 내 곁으로 온거지. 너를 오래 기다렸어. 나는 예수님이야. 아니 신이야. 나는 누구지? 아버지가 내가 여기서 잘지내라고 천사를 보낸거구나. 천사.."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무튼 반가워 오빠. 앞으로 잘지내보자."
운영이형과 유화는 악수를 했다. 그리고 유화는 여자병실로 돌아갔다.
"성호형님 여기는 진자 별별사람들이 다오는것 같아요. 성호형님이 생각하기에 나는 무슨병인것 같아요? 내가 무슨병인지 모르겠어요." "병명을 알수있는것만이 병은 아니야. 오히려 복합적이기에 더 심한 병일수도 있고 가벼운 마음의 감기일수도 있는거야. 그런것에 너무 연연하지마. 정신분열증은 아닌것 같으니 환상은 안보는걸로 만족해야지. 진짜 여기있는 사람들중 제일 힘든것은 정신분열증인것 같아.
조울증에 걸린사람은 병이 심하긴 해도 약을 먹으며 여기서 정상인처럼 생활하는데 정신분열증 걸린사람은 약을 먹어도 힘들더라."
"후성이 같이 말이죠?"
"그래 후성이가 조금 심하긴 하지. 근데 왜 그녀석은 너만 보면 그렇게 껴안을까? 하긴 나도 처음에는 껴안으려고 해서 고생했었어. 그때 네가 왔고 너한테 가더라 그녀석. 귀신이 다른사람보다 많이 붙어있다나."
귀신이 붙어있다니..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나는 후성이가 반찬을 맞히는 것이 우연이길 바랬다. 하지만 진짜 알고 있는것 같아서 더 무서웠다. 정말 박수 무당이라면 어떻하지? 나한테 귀신이 붙어있다니 빈말로 하는것은 아닐것이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단순한 정신병자이길 바랬다.그렇게 바라면 안되지만..
"그럼 난 자러가야겠다 재훈아. 그럼 다이어트 화이팅."
성호형님이 9시가 딱 되자 병실로 가서 누웠다. 나는 잠이 안와서 소파에 가서 잡지를 읽었다. "재훈이구나. '상실의 시대' 책 읽어보지 않을래? 오늘 읽었는데 정말 재밌어." 유화가 나한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그리고 네시 정말 좋더라. 사랑의 때를 기다린다고? 수련이 누나가 그러는데 너하고 은주언니란 사람하고 사귀려고 했다매? 근데 오픈으로 가서 떨어졌다고 하더라."
"뭐 어떤의미에서는 차인거지. 오픈에서 클로즈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지만 꼭 만나보려고 하면 또 못볼것은 아니거든. 병원활동을 하거나 비디오를 보는때에 오면 볼수있어. 그런데 보러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내가 차였다는 증거겠지."
"자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않을까? 보고싶기는 하지만 보면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이야. 그리고 나가서 만나기로 했다면서 근데 연락처는 아직 안받았어?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데?"
"아 그러고 보니 연락처를 받을것을 생각못했네. 다음에 보게 되면 꼭 연락처를 받아야겠네." 나는 은주누나를 생각하며 왜 연락처를 안물어봤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이제라도 알았으니 다음에 다음에 보면 연락처를 받아야겠다. "유화 너도 나가서 볼래? 너한테 연락처를 받아야겠다."
"내 연락처? 뭐 좋아 010-XXX-XXXX 그렇지만 나가서 보게 되기는 생각보다 힘들거야. 나도 두번짼데 연락처를 주고 받아도 잘 안보게 되더라고. 뭐 예외는 있을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야."
"그래? 그래도 남자끼리는 볼수 있을거 같은데. 그런얘기 하는거 보니까 나하고 보기가 싫은가 보구나. 뭐 앞으로 친해지면 보게 될지도 몰라." 나는 유화를 뚫어져라 본다음에 방으로 들어갔고 유화는 나를 쳐다보며 무슨생각을 하는지 미소지었다. 유화도 나한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을까? 그나저나 여기는 왔던 사람이 또 오고 그러는것 같았다. 약을 끊으면 재발하는 것일까? 외래 진료를 받는다고 하는데 이것도 평생받아야 하나? 만약에 결혼하면? 또 결혼하기전이라도 회사다니면 못올텐데..
뭐 나중에 생각할일이고 지금은 여기 생활이나 잘하자. 나는 유화가 권해준 '상실의 시대'를 펼쳤다. 정말 잊을수 없는 연애를 선물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인 하루키씨의 사랑에 관한 깊은 고찰이 인상적이었다.바라만 봐도 사랑인 주인공을 사랑한 미도리와 성적으로 마음으로 사랑해도 품을수 없는 나오코의 이야기와 사랑을 기다릴줄 아는 레이코의 원숙한 사랑이 나의 머리속을 휘저었다. 네 사람의 슬픈 사랑이야기에 나는 시간이 가는줄 몰랐다.사랑을 받아도 받아도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는 나오미의 아픔이 이곳에서의 생활을 돌아보게 했다. 여기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의 상처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고 나역시 그들중 한사람이었다
.현대인의 마음에는 상처가 많기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일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아무리 다른사람이 잘해줘도 상처가 벌어지고 만다. 나오미도 그런 상처를 가졌던것이 아닐까.그런 그녀를 심신 모두 사랑해온 와타나베 마지막에는 결국 그녀를 보내고 그의 나오미에 대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와타나베가 실연의 아픔을 딛고 자신에게 오길 바라는 미도리.미도리의 와타나베에 대한 감정이 왜이리 안타깝고애절한지 정말 슬펐다.그리고 마지막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와타나베거기 어디죠?"
나오크를 사랑했던 와타나베와 레이코와 미도리를 좋아했던 와타나베는 어디에 있는가.나는 세상 어디에 있기에 그녀들이 마음속 어디서나 떠오르는가. 나는 최근에 하지 않았던 정독을 하고 말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6시에 아침식사니까 3시간 밖에 못잘것이다. 뭐 밥을 먹고 또 자면 되니 문제될것은 없었다.
"으으..귀신이.. 귀신이.."
후성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듣던 천복이가 잠을 깼는지 밖으로 나왔다.
"형 왜 아직 안자고 있어요? 저 요새 힘들어요. 울지 않으려고 울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져보지만 여기의 생활은 나를 죽이는것 같아요. 정말 미쳐버릴것 같아요. 다들 나를 빼고 오픈으로 가는데 혼자 남겨져서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게 절 죽도록 힘들게 해요.같이 왔던 지운이는 이제 퇴원했을지도 모르는데 저는 아직 클로즈에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마 때가 되면 나갈거야. 너도 힘들겠구나 오픈으로도 아직 안갔으니까 말이야. 나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인성이와 창운이가 가고 나니까 기분이 묘해지더라. 나는 언제 가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나보다 여러명을 보낸 너는 그게 더 심하겠지. 우리 잘 지내보자. 견디고 견디다 보면 가는 날이 있을거야. 참 오늘 산책 있다던데 같이 가자."
"그래 형 산책이라도 갔다오면기분이 조금 풀릴것 같기도해. 나가서 바깥공기를 쐬고싶다. 예전에는 5월5일에는 서울랜드 갔던것 알아? 밖으로 나갈기회가 더 많았대. 그런데 놀러갔다가 한명이 실종이 되어서 그 다음부터는 잘 안가는거래. 덕분에 우리는 닭장같은곳에서 폐쇄공포증에 시달리며 생활하게 된거지. 진짜 나갈수만 있다면 뭐든 다할텐데."
천복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훌쩍 거렸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천복이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드디어 산책을 가게 되었다.
"환우 여러분 지금부터 30분간 산책을 갑니다. 산책이 허용된 사람은 나와서 준비해주세요."
아쉽게도 유화는 산책이 허용이 되지 않았는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픈의 은주누나도 없었다. 다른 활동은 안해도 산책은 꼭 하던 은주누난데.. 왜 여기에 없는거지? 그때 인성이가 다가왔다. 인성이는 표정이 전보다 밝아보였다.
"재훈이구나. 너도 오픈으로 와라. 오픈은 좋다 비록 같은 환자의 신분이지만 말이야. 나 어제 외박하고 왔어. 이제 곧 나갈수 있을거래. 참 은주누나 퇴원한거 알아? 재훈이 너의 연락처를 물어봤는데 나도 몰라서 못가르쳐줬지."
그래도 은주누나 연락처를 물어보긴 했구나. 하지만 이젠 더이상 볼수는 없겠구나. 어쩌면 오픈으로 갔을때부터 이런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분이 씁쓸해지는 것만큼은 어쩔수 없었다. "재훈이 나는 보이지도 않는거야? 나는 오픈에서도 꽤 있어야겠다. 요새 나는 컴퓨터 오락만 하루종일 해. 완전히 피시방 폐인이 된 기분이라니까." 오픈으로 가더니 다들 신수가 훤해보였다. 그쪽이 좋긴 좋은가 보구나. "그렇지만 오픈도 병원은 병원이야. 나아진것이 있다면 공간이 넓어지고 참 간호사실도 트여있어. 클로즈에서는 조그만 구멍을 통해서만 간호사와 이야기 할수 있었는데 여기는 탁 트여있어서 좀더 인간적이야.
그렇지만 사람들이 많다보니까 클로즈처럼 서로서로 친하지는 못해. 가족같은 끈끈함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고 할까. 천복이는 어떻게 지내? 지운이가 안부 물어보더라고"
"지운이는 잘지내요? 이제 퇴원할때가 다되가죠? 나도 그녀석 보고 싶은데 말예요.연락처도 안물어봤는데.."
"안그래도 너한태 얘기하더라. 016-xxx-xxxx 래 나오면 전화하더라고 하더라. 탁구 치던 기억이 아직 난다고 말야. 지운이 외박가서 대신 얘기해 주는 거야."
"그래요..오늘 나오면 볼려고 했는데 아쉽게 못보내 뭐 담에 볼수 있겠지요."
어쩐지 천복이가 쓸쓸해 보였다. 어쨌거나 인도자의 통솔하에 우선 1층으로 내려갔다. 환자전용 엘레베이터로 10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기분이 묘했다. 복도로 나와보니까 클로즈병동 오픈병동이 나뉘어져 있는것이 보였고 오픈의 사람들이 조금 보였다.
은주누나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이젠 포기해야겠다. 병원건물 뒤쪽으로 소로가 있었다, 그쪽을 통해서 지나가는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가을이라 그런지 낙엽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꽃향기가 아찔하게 만들었고 발걸음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가을바람이 한들거리는 길을 따라 사람들이 옹기종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자박자박.저벅저벅.부스럭"소리가 귀를 스쳐갔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밟는 소리가 난다. 경쾌한 한걸음이 가벼웠다.
어느새 공원같은 곳에 도착했고 풀밭이 보였다. 나는 이제 꽃들의 중심에 나아가 자리를 펴고 털썩 누웠다. 달콤한 잠이 쏟아졌다. 이 짧은 순간의 행복을 돈다발로 헤아릴수 있다면 얼마나 될까. 아마 수십억은 될것이다 기분상으론.자연스런 풍경에 녹아 마음을 달래고 있을때 담배를 나누어 주었다. 두개피씩 주었는데 정말 부족했다.
담배 한개피를 꺼내서 폐속까지 깊숙히 들어왔다. 그리고 내뱉었는데 그렇게 후련할수 없었다. 자연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을향기에 취해 정처없이 이어진 산책하나가 인상적이었다. 답답한 이 내맘의 청량제인 산책이되었다. 아마 평생동안 기억이 날만큼 갇혀있다가 나오니 그느낌이 더욱 새록새록했다. 성호형님도 오랜만에 담배를 피니 기분이 좋아진듯 했다.
"재훈아 이 좋은걸 우리가 어떻게 참고 지냈지? 정말 아쉽다. 나가게 되면 정말 두갑은 필것 같은데."
"저도 그쯤은 필거 같아요. 벌써 몇주나 안피고 있었다니 여기는 알콜중독자가 오지만 꼴초도 치료하러 와야 겠는데요. 정말 효과가 끝내줄거 같은데 금연초가 필요가 없네."
"근데 겨우 두개피라니 여기 담배 안피는 사람없나 군대에서처럼 대신 얻어오고 받으면 좋겠는데... 영훈이가 담배안피는데.. 영훈아 담배좀 얻어줄래?"
"성호형님 싫기는 하지만 형님이니까 드리죠. 다른사람이 그랬으면 어림도 없지만요."
영훈이 형이 남자 간호사한테 가서 디스플러스 두개피를 받아왔다. 성호형님이 그것을 받고는 나에게 한개피 주었다. 무료함을 태우는 담배하나가 나에게 위안이 되엇다. 한가치의 행복이 이렇게 클줄 몰랐다. 그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더 천천히 피웠다.몸에 해로운 것을 나도 알지만 사람은 자기몸을 스스로 해치는데도 쾌락을 느끼는것 같았다. 그 쾌락 한가닥을 나도 동여매 팔뚝에 끌고 나가면서 연기 한모금 후욱 뱉었다.머리가 어질해지는 것이 오랜만에 첫담배를 펴서일것이다.
평소에는 느낌도 없는 소로옆의 흙을 짓밟고 지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번이라도 흙을 밟아대면 답답한 이내맘이 조금이라도 풀릴것 같았다. 아름다운 코스모스꽃이 보기가 좋았다. 흔해서 싫지만 이제 내겐 아름다움이 된 꽃이었다. 병원에서 봐서 느낌이 새로운것일까.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는 병원에 있는 가을에 핀다는 그이유하나로
너무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담배 한개피 뽑아 코스모스와 가을꽃들을 즐긴다면 안개처럼 부옇게 같혀버린 내마음이 풀릴것 같았다. 만약 나가게 되면 여기핀 꽃들을 찾아 감상하고 싶었다.
그리고 만족한 마음으로 10층의 병실로 돌아왔다. 30여분이었지만 바깥공기를 들이마셨기 때문에 다들 표정이 밝게 풀어져있었다. 하지만 너무 짧은시간이라 다들 아쉬워했다. 그리고 각자의 병실로 돌아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밤이 되어 텔레비전에서 이죽일놈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수가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잠이 안왔던 나는 화수를 피해서 조용히 복도를 거닐었다. 왔다갔다 하기에 너무 짧은거리였지만 왕복을 하다보니 제법 운동이 되는것 같았다.
"재훈이 이새끼야 왜 자꾸 텔레비전 보는데 신경을 거슬리냐? 빨리 꺼지지 못해? 텔레비전 보는것에 집중할수가 없잖아? 미친새끼가 구석방에 있지 않고 밖에서 설치네. 안꺼져?"
"이년이 미쳤나?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시비야. 참다가 참다가 정말 못참겠네.너따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것 같아? 생긴것도 진상인 주제에 성격까지 더러우니 누가 좋아하겠냐. 그리고 헛소리만 지껄이며 이젠 조용히 지나가는 사람한테 지랄이네."
화수의 욕을 들은 나는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재훈씨 이러면 어떻해요. 화수가 원래 저런걸 알고있었잖아요. 재훈씨까지 그러면 어떡해요?"
"저년이랑 더이상 같이 있을수 없으니까 저를 오픈으로 보내주거나 저년을 오픈으로 보내줘요. 정말 신경한번 제대로 긁네."
"자자 진정들 하고 병실로 돌아가세요. 화수씨, 재훈씨 말이 안들려요? 빨리 들어가요."
그때 화수가 나에게 달려들어 이빨로 나의 손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개 깨물었는지 피까지 흘렀다.
"으악!!"
나의 살점이 조금 떨어져 나갔다. 미친년이 무섭다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간호사 세명이 나와서 화수를 떼어놓았고 붕대를 가져와서 내 손을 묶었다.
"재훈이 새끼 한번만 더 까불어봐라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화수가 입에 피를 머금고 나를 노려보았다. "미친년 너야말로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라. 여기보라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어. 모르긴해도 한번 더 그러면 구석방으로 들어가게 될걸. 아무튼 오늘 사건으로 너는 여기서 더 오래 있게 될거야." 나는 화수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지만 이미 이성이 없는 화수라 별로 타격이 없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자 간호사의 인도하에 남자 병실로 돌아갔아.
붕대가 피로 흠뻑 젖었다.소독약을 발라서인지 쓰라렸다. 그리고 피곤해진 나는 책을 읽으려고 켜놓았던 내 자리의 전등을 끄고 잠이 들었다. 그날 나는 화수가 미친듯이 나에게 달려드는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나는 그녀를 밀쳐내려 하였고 화수는 나를 걷어차고 배를 주먹으로 치고 덤벼들었다. 나는 그래도 차마 여자라서 때리지는 못하고 밀쳐내기만 했다. 그리고 그날 화수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비가 왔어요. 그런데 자꾸 나를 때려요. 아파 아파 그래도 비한테 맞으니까 참을만 해."
"악 악!! 재훈이 씨발놈아"
화수가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의식이 희미해졌다. 꿈을 꾸다가 의식이 가다니 그렇다면 내가 깨어있었단 말인가. 나는 혼란속에서 다시 잠에 들었다. 어느새 아침이 왔다.
"재훈아 여자병실의 화수라는 미친년이 어제 밤새 헛소리를 하면서 소리질러서 잠을 못잤다. 그런데 너는 그렇게 시끄러웠는데도 잘만 잔다. 무신경하기는. 하긴 그러니까 재훈이지 너 아무데서나 잘자더라. 이렇게 좁은 소파에서 어떻게 자냐?"
"소파?"
분명히 잠들었을땐 병실의 내 자리였는데 깨어보니까 텔레비전옆의 소파였다. 그리고 오른손이 찰과상을 입은것처럼 따가워서 보았더니 손톱 자국이 길게 그어져있었다. 밤새 화수가 고래고래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렀다고 하는데 막상 간호사가 가보니까 상처는 없었고 다만 배와 허벅지가 아프다고 괴성을 질러댔고 간호사는 별것 아니다 싶어서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서 자서인지 아침부터 온몸이 쑤셨다. 그때 수련이 누나가 세면을 하고 복도를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수련이 누나 어제 밤에 무슨일있었어? 왜 이렇게 난리지? 시끄러워서 다들 잠을 못잤다면서?"
"아 그거. 글쎄 화수가 밤에 비가 자기를 때린다고 소리를 질렀어. 어딜 맞았는지 숨이 막혀서 말을 못하고 있다가 조금 풀려서 말을 한거래. 그리고 나더러 누가 여자병실로 들어왔냐고 말하더라구. 아무도 안들어왔겠지 소리가 안났으니까. 그런데 화수는 비가 왔었다는 거야. 그래고는 자기를 마구 때렸다고 울었어. 밤새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다른사람들이 잠을 못잤지 뭐야. 덕분에 나도 깼고 말야."
"그렇구나 아무튼 고소하네. 여기 나 팔에 붕대감은거 보이지? 이거 어제 화수가 물어뜯은거야. 피가 철철 났었다고. 아 진짜 고소하다. 누가 했는지 정말 잘했네."
수련이 누나는 그 상처를 보고 잠시 눈살을 찌뿌리며 피가 묻은 붕대를 만져보았다.
"곱게 미친줄 알았더니 완전히 미쳤네.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면서? 이빨로 물어서 간호사들이 떼어내느라 애먹었다더니 상처가 깊네."
수련이 누나가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어떻게 하겠어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야지. 참 뜬금없는 이야기긴 한데 수련이 누나는 여기 왜 왔어?"
"나? 나는 어느날 갑자기 강남을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뜯어고친다고 했데. 꽃가게에 들어가서 꽃말있냐고 물어보고는 없다고 하니까 그런것도 없냐고 소리를 지르고 오고, 빵집에 가서 언제 구운빵이 제일 맛있냐고 그런것도 안적어 놓냐며 이상한 소리를 막하더래. 나는 길거리에서 건물마다 들어가서 여기는 어떻게 저기는 어떻고 소리를 지르면서 다녔대. 그것을 부모님이 지나가시다가 보시고는 나를 여기로 데려왔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고 그게 선명하게 기억이 나서 괴로워. 뭐 이제는 내가 병에 걸린것을 아니까 치료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있는거지."
"은주누나가 가고 나니까 씁쓸하지는 않았어?"
"왜 안그랬겠어 내가 먼저 왔는데 은주가 가고 나니까 난 뭐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어쩌다가 이 감옥같은곳에 와서 이런 신세한탄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축하해주면서도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어. 내가 먼저 왔으니까 내가 먼저 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왔는데 은주가 먼저 가니까 배신감마저 들었어. 정말 여기의 감옥같은 생활은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것 같아."
"수련이 누나. 당연한거야. 나역시 인성이와 창운이가 오픈으로 갔을때 기분이 좋지 않았어. 마땅히 축하해주는것이 당연한데도 나는 그것을 못하겠더라.정말 왜 그랬을까?"
수련이 누나와 오랜만에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드러내면서 이야기 했다. 수련이 누나도 나와같은 고민을 한다는것에 위안을 가졌다. 나만 성격이 삐뚤어진건가 하는 자괴감이 있었는데 그것이 해소 되었다. 진짜 어쩌다가 이런곳에 갇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갇혀있으니 여기가 감옥이 아니고 뭘까? 차라리 창살이나 철조망이 있으면 그럴듯한데 그런것은 없었고 다만 감옥같은 병원이었다. 퇴소날만 기다리는 감옥. 거기에 날짜마저 정해져 있지 않아 힘들었다. 주먹으로 벽을 쳐봐도 발로 차도 봣지만 간호사의 말리는 것만 경험했을뿐 마음이 후련해지지 않았다.그래 이곳은 마음이고 감옥의 창살은 꼼짝도 않는다
마치 태산을 조약돌로 무너뜨리려 하는듯이 가망이 없는 일이라 마음이 답답해졌다.거기에 우리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있다. 그리고 나를 더 슬프게 하는건 퇴원하기전까진 마음의 감옥에서 빠져나갈수 없는 나의 현실이었다.나갈수 있는 그날만을 고대한적이 얼마나 되었을까?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러보고 비명을 질러보지만 듣는이가 없다.
제발 나를 이감옥에 가둔사람이 누굴까? 왜 아직도 클로즈에 남아있는데 언제나마 풀어줄까. 신을 원망해야 할까? 아니면 내 잘못을 느껴야할까?" 확실한것은 나는 여기에 갇힐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영훈이 형이 후성이와 싸우고 있었다.
"아니 이자식이 껴안지 말라고 했지? 남자새끼가 여자를 껴안아도 성희롱이 되는판에 남자를 껴안아?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성질 죽이고 살았더니 더이상은 안되겠네. 한번 맞아볼래?"
"형..왜 좋아서 하는건데 그래요. 나는 형이 좋아요. 귀신도 형은 좋대요."
"퍽!!"
영훈이 형이 후성이의 배를 때리고 발로 찼다. 그러자 남자 간호사 셋이 나와서 영훈이 형을 말리고는 양팔을 묶었다.그리고 영훈이 형은 오늘하루 구석방에서 묶인채로 있어야 된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폭력이 금지니까 그런다고 했고 후성이는 주의를 주었다.
"후성아 다음에도 또 그렇게 사람들 괴롭히면 너도 저곳으로 간다. 알겠지? 조심해라. 다들 그런것은 싫다고 하잖아?"
"그래도 좋아서 하는건데. 귀신이 그래도 된다고 했어요. 껴안으면 좋아한다고. 좋아하면 껴안으라고 말예요. 나는 무당이니까 그말을 따라야 되요."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병실로 꺼져. 너때문에 영훈이 형이 묶여서 하루를 보내야 되잖아? 그건 생각도 안해봐? 솔직히 저기는 영훈이 형이 아니라 네가 가야되. 그래서 병을 고칠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해야되."
나는 울컥해서 후성이를 쏘아붙였다.
"헤헤 그래도 난 재훈이가 좋아."
후성이가 이번에는 나한테 와서 땀내나는 몸으로 껴안았다. 며칠 씻지도 않았는지 가뜩이나 기분나쁜데 악취까지 났다."
"꺼지지 못해?"
나는 후성이를 밀쳤다. 후성이가 뒤로 쿵당당 거리면서 고꾸라졌다.
"재훈씨까지 왜 그래요? 불쌍한 애잖아요. 어떻게 참을수 없어요?"
"참는것도 한계가 있어요.의사나 간호사님은 뭐해요. 저렇게 문제 일으키는 애를 구석방으로 안보내고 영훈이 형같이 잘지내는 사람을 보내다니 이게 말이 되요?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이지 저를 물어뜯은 화수는 왜 구석방에 안보내요."
"그건 재훈씨가 좀 참으세요. 여자잖아요?"
"하 여자? 미친년이 내 팔을 깨물었는데 여자라서 봐주라고요? 진짜 여기 규칙도 없나? 저렇게 심하면 가둬놓고 나오지 못하게 해야지 왜 나오게 해서 민폐를 끼치는지.. 아무튼 화수도 한번만 더 그러면 그쪽으로 보내요. 아 쓰라려.후성이는 발로 조금 차이고 배좀 맞은것 같고 때린 영훈이 형은 구석방으로 가고 그보다 훨씬 심하게 내 팔을 물어뜯은 화수는 병실에서 쉬고 이게 말이나 됩니까?"
나의 열변에 사람들은 순간 아무말도 못했다. 사실 맞는말이었다. 누가 생각해도 화수가 후성이를 때린 영훈이 형보다 심했고 둘의 처사가 불공평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멀쩡한 재훈씨가 참아야죠. 그럴수 없어요? 환우끼리 싸우면 언제 나갈지 몰라요.운명공동체니까요. 무엇인가 화수의 신경을 건드려서 일어난거 아닌가요? 좀 참으세요."
"참다니요? 화수가 잘못한건데 왜 나한테 책임을 넘겨요.내가 잘못해서 그랬다구요? 그럼 먼저 욕하면서 시비건것은 누군데요? 그리고 달려들어서 구타한것은 누구고요? 나는 단지 밀치기만 했고 그거에 쓰러진걸로 끝났잖아요. 이렇게 불공평한게 어딨어요. 여자라서 그리고 환우라서 참아야 한다면 여기생활 더는 못해요."
"아무튼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 둘다 구석방으로 가야한다는 것만 명심하세요."
간호사가 차갑게 말했다. 나는 나쁜 기분을 먹는것으로 달래려고 했다. 간식신청에 초코파이 한케이스와 콜라 1.5리터를 신청했다.
"재훈아 다이어트 한다면서 네가 먼저 이렇게 시키면 어떡하냐? 벌써부터 무너지려는 거야? 그렇다면 실망인데 재훈이는 끝까지 다이어트 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나는 살찔까봐 한동안 간식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먹을것을 잔뜩시킨것이다. 먹고나면 여태까지 다이어트에 힘을 쏟은것이 물거품이 될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 아뇨 시킨다음에 방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면 되죠.저도 살배야 되는데 화수때문에 화가나서 먹는걸로 풀려고 그랬는가 봐요."
"그래 재훈아 네 마음은 알아. 하지만 그런애 때문에 결심한것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일이 아닐까? 그럴수록 너는 흔들리지 말고 뚝심있게 행동해야되. 그러면 화수가 아무리 설쳐도 너는 견딜수 있을거야."
"고마워요 성호형님. 형님덕분에 여기 생활을 견디는것 같아요." "자자 간식못먹는것에 대해 실망하지마. 마누라가 네가 좋아하는 청포도와 사과,배를 가져왔다. 초코파이보다 훨씬 맛있을거야. 다이어트에 방해되지도 않고 말이야."
"네 형수님 잘먹겠습니다. 그런데 성호형님한테 싸준걸 제가 뺏어먹어도 되나 모르겠네요. 그럼 맛있게 먹을게요."
나는 형수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청포도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셋이서 과일을 맛있게 먹었고 성호형님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성호형님은 밖에 있을때 어던 일을 하셨어요?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나? 조그만 무역회사를 운영하다가 그만두고 옷가게와 카페를 하고있었어. 그러다가 여기와서 그만두었지. 나가면 PC방을 차려볼까해. 도서실 근처가 잘된다면서? 그래서 난우고등학교 근처 도서실 옆에 목을 봐두었어. 운영은 어떡하면 좋을까?"
"몇년전에 동방피시방이라고 있었는데 재미있는게 있었어요. 지존석이라고 한자리 만들어서 스타크래프트 대결을 했어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긴사람이 지존이 되었는데 지존이 되면 피시방을 무료로 이용했죠. 처음 삼일은 도전을 안받아도 되고 그다음에는 하루에 세번 도전할수 있었어요. 도전 조건은 당일에 피시방을 한시간이상 사용한 사람에 한해서요. 그러자 도전자들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피시방에 몰려와서 한시간씩 하다가 갔어요. 그것때문에 동방 피시방은 사람이 끊이지 않았어요. 이걸 사용해보면 어떨까요?"
"좋은생각이야. 획기적인데 그리고 또 뭐 좋은생각은 없어?"
"1층엔 피시방을 차리고 이층에 카페를 하는거에요. 커피를 팔고 일정금액 이상 먹으면 피시방 한시간 이용권을 주는거죠. 어차피 커피숍은 시간때우러 오는사람들이 많은데 피시방 한시간이면 끌릴거에요. 그리고 음료수 서비스는 녹차가 좋은것 같아요. 1.5리터나 커다란 병에 녹차 두개만 넣고 섞으면 되요. 아르바이트 해봐서 아는데 그것도 재탕으로 한번 더 사용할수 있어요. 2층은 카페니까 커피는 따로 구매하게 하고 또 싼커피는 음료로 주면 운영이 안될거잖아요. 그러니까 녹차를 쓰세요. "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갔다. 성호형님은 나의 말을 들었고 어느정도 참고하시는것 같았다. 피시방이라. 요새 옛날보다 가격을 내려서 수익률이 작아졌을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유망사업이다. 성호형님과 나는 과일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마쳤고 형수님이 가셨다.
그렇다 오늘은 금요일. 형과 누나가 오는날이다. 지난번에 부모님에게 햄버거를 사달라고 했으니까 오늘 햄버거가 올것이다.
"재훈아 형왔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다섯개를 사오고 커팅칼을 가져왔으니까 사람들하고 나눠먹어라.감자튀김도 넉넉히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말야. 그나저나 재훈이 홀쭉해진것 같다. 고생이 싶하냐?"
"아 티나? 요새 다이어트중이거든 여기 성호형님하고 같이 말야."
"안녕하세요. 재훈이 형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뭘요. 재훈이 덕분에 병원생활에 활력이 돋는걸요. 오늘도 이야기 하느라 시간가는줄 몰랐어요." "재훈이가 힘들면 좋은얘기 많이 해주십시오. 재훈아 다른사람들하고 잘지내야한다. 너는 곧나갈거니까 마음조급하게 먹지 말고. 힘들어도 참을수 있지?"
"뭐 어떻게 견디고 있어. 여기 성호형님 덕분이야. 또래 친구들이 다 오픈으로 가서 같이 지낼사람이 없었는데 형님과 친해져서 다행이야."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그럼 재훈이와 앞으로도 잘지내주십시오. 그런데 연락처는 주고 받으셨어요?"
"아 성호형님 연락처 교환해요. 형님하고 나가서도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나역시 재훈이 하고 나가서도 보고싶다야. 여기 내 주소고 전화번호다, 너도 주소하고 전화번호 적으려무나."
"예 형님 적었어요. 그럼 나가서도 꼭 보는거에요. 약속입니다."
"그럼 자리 비켜 드리겠습니다.저는 이만 병실로 들어갈게요."
성호형님은 햄버거 한개를 가지고 방에 들어가셨고 나는 음료수를 챙겨드렸다. "재훈아 뭐가 가장 힘드냐? 가만보니까 여기 초등학생도 있는것 같은데. 걔네들은 잘지내냐?"
"응 천복이라고 있는데 아주 의젓해. 여기 생활이 힘든대도 왠만하면 힘든내색을 안하고 밝게 지내서 내가 다 부끄러워. 그건 그렇고 누나는 언제와?"
"재훈아 누나 왔다. 순대 사달라고 했지?" "재훈아 다이어트 한다면서 왜 이렇게 식탐이 심하냐? 햄버거에 순대까지 하여튼 재훈이는 욕심도 많아."
"먹는얘기는 그만하고 집에는 별일 없어?" "아 삼촌이 다리를 다치셔서 수술실로 갔어.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 갔는데 오늘이 수술날짜야.그래서 오전에 거기 갔다가 지금온거야. 하지만 수술이 잘됐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한 1주일은 요양하고 1년간은 조심해야 한대. 그거 빼고는 음 네가 퇴원해서 네방에 가면 알거다. 새로 페인트도 칠하고 아무튼 바뀐것이 많아."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아 여기 나가면 빨리 복학해야지 친구들이 보고싶어." "그렇겠지. 그러니까 의사선생님 말 잘듣고 여기사람들하고 잘지내. 그러면 퇴원날자가 다가올거야. 약도 꾸준히 먹고. 너는 약을 잘안먹잖아."
"내가 언제 약을 안먹었다고 그래? 여기서 안먹었으면 운영이란 녀석처럼 몇주동안 구석방에 있었게? 난 삼일 만에 나왔다구 안먹기는.."
"뭐 알았다. 약 꾸준히 먹어. 퇴원해도 꾸준히 먹어야 한다."알았어 형. 그리고 누나 결혼한다면서? 매형 사진좀 다음에 올때 가지고 와줘. 매형 얼굴도 못봤지 뭐야." "그래 가져올게 아무튼 부모님이 걱정하시니까 잘 있고 또오마."
잠시후 형과 누나가 돌아갔고 나는 텅빈 공간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면회를 오면 반가워서 시끌벅적하지만 돌아가고 나면 이렇게 공허해지는지 모르겠다. 가족들이 더 그립고 또 새삼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진다. 그때 후성이가 나에게 왔다.
"재훈이 총각귀신이 씌였네. 그래도 여러여자 건드리지마. 그럼 네가 슬퍼질거야. 귀신이 그러더라. 네가 힘들거라고. 총각귀신 쫒으려면 구승ㄹ 해야한대."
"헛소리 하지말고 나한테 말걸지마. 짜증나니까."
그러나 후성이가 또 나를 갑자기 안았다. 그래서ㅏ 나는 후성이를 밀쳐냈다. 저녀석은 도대체 말이 안통한다. 차라리 남을 치는것이 낫고 맞는것이 속시원할것 같았다. 껴안기고 나면 진짜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발로 차려는 순간 사람들이 몰려와서 나를 말렸다.
"저런애 상대해서 뭐해. 영훈이도 그렇고 나도 저녀석은 피해다녀. 패버릴수도 없고 참는수밖에 없다 재훈아."
성호형님이 내 팔을 잡고 말렸고 나는 손에 힘을 뺐다. 여기서 후성이를 때려봤자 나만 구석방에 다시 들어가서 고생할것이 뻔한데 내가 참아야지. 하지만 기분은 너무 더럽군 그래. 나는 후성이를 밀쳐내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내모습을 유화가 빤히 쳐다봤다. 위로라도 해주려나? 뭐 그런것 같지는 않고 무슨생각일까? 나는 의문을 안고 방에 들어가 잤다.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을것을 많이 먹거나 잠을 잤다. 먹을것은 다이어트 때문에 안되서 잠을 잤다. 꿈에서 후성이가 나왔다. 귀신을 이끌고 내 앞에 나타나 나를 마구 찼다. 나도 차려고 했지만 가위에 눌렸는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언제까지 맞고 있어야만 하지? 나는 이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뿌렸으나 잠을 잘수 없었다. 손과 발로 맞고 짓밟히다가 잠에서 깨었다. 깨고 나니 후성이가 더 짜증났다.
정말 짜증이 온몸을 휘돌다가 춤을 췄다. 진짜 이대로 있다가는 울화통이 터질것 같았다. "재훈아 어제 후성이가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서 잠을 못잤다.
어제 이상하게 인기척이 있어서 잠을 깼는데 그 인기척이 사라지자 후성이가 귀신이 또 자기를 때린다고 그러더라. 너무 무서워서 이불을 덮고 누웠는데 귀신이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를 때렸다는데 맞은 소리가 없으니 아무래도 또 헛소리 하는것 같다.
그나저나 너는 잘도 자더라. 코까지 골던데."
"나는 신이야. 나는 다 알고있지. 후성이 너는 나하고 안놀아줘서 그런거야. 그렇지만 신을 껴안지는 마. 나는 모든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거든. 너에게만 매달릴수 없으니까 그것만은 하지 말고 장기를 두러가자. 아까 보니까 텔레비전 옆에 장기판있더라."
"귀신이 너랑 놀면 안된데. 그래도 나는 너하고 놀래. 귀신이 너하고 놀면 다른사람들하고 멀어진다고 했는데 이미 멀어졌는걸. 잘지내고 싶은 재훈이도 나하고 안놀아주고 말야."
"걱정마 신하고 며놀면 천국가게 되있어. 그러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기도하는것 잊지말고. 유화알지? 유화는 나를 보필하는 천사니까 너도 잘지내. 여기서 천사를 만나게 될지는 몰랐네." "신이면서 그것도 몰라?"
"아..아니 알고 있었지. 그래서 여기서 천사를 빼내러 온거 아냐. 천사가 여기 갇혀있으면서 신인 나에게 계속 기도하더라고.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말야. 내가 누구야? 신이 잖아. 신이 외면하면 유화는 어떻게 되겠니? 구원을 못받아. 여기서 평생 갇혀있을지도 모른다고."
"운영이와 후성이구나. 걱정마 내가 너희들 다 나가게 해줄게. 여기선 내가 고생하면 다른사람들은 다 나가게 되있어."
유화는 뜬금없는 소리를 하더니 병실침대를 뛰었다. 나는 정상인것 같았던 유화가 갑자기 그러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유화에게 다가갔다.
"유화야 오늘 왜그래?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고. 차분하던 네가 아닌것 같아. 이건 아니잖아. 평소대로 돌아와."
"여기서 나만 갇혀있으면 다른사람들은 다 나갈수 있단 말야. 그러니까 여기서 나를 희생하려고 그러지."
"후..네가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으니까 그만해. 너까지 그러니까 정말 슬프다."
나는 멀정하다고 생각했던 유화가 이런모습을 보이는것이 안타까웠다. 역시 클로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딘가 이상한점이 있는것일까? 은주누나도 찬송가를 부르며 복도를 계속 거닐었던것도 정상은 아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나역시도 이상한점이 있다는 것인데 도무지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의사선생님이 너는 정상이다라고 말할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란것이었다. 나의 기억력을 알아서 무엇하려는 것일까? 나의 병하고 관련이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김인철 담당의사님은 19세이후의 나의 기억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것 같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헛소리를 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환상이 보이는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의 과거지사를 물어보셔도 나는 똑바로 기억할수 있다. 나는 의문이 생겼지만 기억나는 대로 똑바로 이야기하였고 그때마다 김인철 담당의사님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재훈아 혹시 더 기억나는 것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주렴. 우리는 너를 낫게 하려고 노력하는거야. 네가 잘못되길 바라는것도 아니고 너를 인격적으로 무시하는것도 아니야. 그런데 정말 기억이 안나는 거니?"
나는 무엇이 기억이 안나는지 도무지 몰랐다. 왜 이런것을 물어보실까? 한가닥 의문이 생겼을때 김인철 의사선생님이 면담을 마치셨다.
"재훈아 또 기억나면 이야기하고 그리고 약을 잘먹고 클로즈에서 잘지내면 곧 오픈으로 보내주마." " 그 곧이란것이 언제에요? 정말 정해져있는것은 없나요?"
"그래 원래 정신병이라는 것이 수술하고 나서 몸조리하면 나가는 일반환자들과는 틀리단다.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상태를 짐작할수 있단다. 그리고 너는 약에 잘 적응하는것 같으니 걱정마라. 곧 나갈수 있을테니. 그럼 남은 하루 잘보내라.마음 편히 먹고"
그러니까 그 곧이라는 것이 언제냐구요?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후 정말이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정말케 하는것인지 여기와서 처음알았다. 나는 침울해진 표정으로 성호형님과 복도를 거닐었다.
"성호형님 형님은 클로즈에 계속있는것이 초조하지 않으세요? 형님은 그런거에 신경을 안쓰시는것 같아서요. 불안하지도 않으세요?"
"불안하긴 하지. 하지만 그런다고 여기서 나갈수 있는것은 아니잖아. 그럴바에는 차라리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훨씬 편한것은 당연한것 아니겠어. 그게 힘들지만.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 천복이마저 견디는것을 내가 못견디면 어떡하나 항상 다짐하고 있어."
"그래요. 천복이도 견디는데 어른인 제가 못견디다니..부끄럽네요. 그래도 마음이 항상 불안한것은 누구나 같겠죠?"
"그래 말은 안해도 사람들 심정은 다 같지. 같은 공간에 갇혀서 매일 생활하니까 사람들끼리 친해질수 밖에 없고 그것이 유일한 낙이기도 하지. 여기도 사람사는곳이니 살아갈수 있는거지. 그러면 우리 다이어트를 계속하자. 모든지 목표가 있어야 생활을 할수있는거잖아."
"예 성호형님. 일단 복도부터 걷죠."
성호형님과 나는 복도를 계속 걸었고 맞은편에서는 유화가 걸어오고 있었다,
"재훈아 왜 자꾸 나를 피해? 내가 뭔 잘못이라도 했어?"
"아니 그런건 없고 피하다니..그런적 없어. 그냥 마주치는것이 조금 줄었을 뿐이야. "
"내 느낌에는 피하는것 같은데. 내가 모두를 내보내준다고 하고 나만 갇혀있으면 다른사람들은 다 나갈수 있다고 말한후부터 내 얼굴을 피하는것 같아서 말이야."
사실 그때부터 나는 유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연애는 결실을 맺을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그래도 생각과는 다르게 마음이 연애쪽에 기울어서 되도록이면 보는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좁은 공간에서 피할데는 없었다. 결국 하루만에 나는 유화와 마주칠수 박에 없었다.사실 그 하루도 오래간것이다.
그것도 유화가 여자병실에서 밖으로 나오는 시간을 피해서 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같잖지도 않지만 나는 여기서 눈에 띄게 병이 드러난 사람은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화수,운영이를 피하는것도 그런맥락에서 였다.
그렇지만 호감이 갔던 유화까지 피하게 될줄이야.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한두가지씩의 정신상의 문제를 가지고 들어오는것이다. 사람은 가까이 있는사람에게 물들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깨달았기에 되도록이면 피해왔다. 유화가 그점을 찌른것이다.
"섭섭했어? 그렇지만 나는 유화말에 당황한것은 사실이야. 갑자기 왜 그런생각을 한거야?
나역시 멀쩡하진 않지만 그런말을 들으면 피하게 되. 그점은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 나도 지금은 그때의 말이 잘못된것은 알지만 그때는 정말 그렇게 느껴졌었어.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가 여기있는 사람 모두를 구할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나만 고생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였어.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여기 들어온것도 다른모든 사람드릉ㄹ 구하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닌것에서 시작됐어. 경기도 안양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혼자말을 했나봐. 그것을 본 친구들과 부모님의 친우분들이 나를 여기로 보내야한다고 했어. 부모님은 고민한끝에 나를 여기로 보낸거야."
"그렇구나. 하긴 다들 사연이 하나씩은 있지. 그런데 아직도 그런생각이 들어? 아직 병이 나을 기미가 없는건가? 그렇지만 자신이 잘못된것을 아는것을 보니까 나을 가망성이 보이는걸. 원래 미치면 자신이 미쳤다는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그런면에서 유화는 지금은 미치지 않은것이 확실하네 다행이야."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말은 안했지만 나 역시 호감이 가는 유화를 피한다는것이 조금 힘들었다. "어 천사네. 유화야 다른사람들 구원은 어떻게 되고 있어? 이 신을 믿고 생활한다면 낫게 된다고 말해놨어? 모두를 구원해야 할것 아냐.운영이를 믿으면 여기생활이 조금더 쉬워질거야. 그것을 천사가 해주기로 했잖아."
"그래 나는 천사잖아. 그래서 모두를 구원해야되. 신인 너를 믿게 해야되겠지. 그런데 운영이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해?"
"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여기서 내말 한마디면 죽을사람이 수도 없어. 특히나 여기는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들 죽여버릴지도 몰라. 신이 분노하면 어떻게 되는지 말할거야. 보여줄거라고. 천사가 그렇게 말하다니 실망했어. 한동안 자숙해. 천사가 신을 떠나면 어쩌란 말이야."
"후.운영아 나 천사 그만할래. 사실 난 천사가 아니고 너한테 장난으로 그렇게 말한거야. 그러니까 이젠 나한테 그만 기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아니야 나는 믿을수 없어. 신이 천사를 몰라본다는 것이 말이돼? 내가 보기에 너는 나의 천사야 신이 천사를 인정하는데 다른것이 뭐가 필요해.나는 신이야. 네가 지금가지 천사가 아니었다 해도 지금부터 넌 천사야. 내 말을 따라."
정말 운영이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말을 듣고있는 클로즈 사람들이 눈빛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상태가 아무리 안좋아도 같이 하루를 보내는 환우라서 피할수 없었다. 약을 안먹는다고 하더니 저녀석에게는 꼭 필요한것 같았다. 운영이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것을 본 간호사들이 주치의 선생님과 같이 운영이에게 갔다.
"운영아 넌 신이 아니야. 그걸 깨달으렴. 네가 계속 이런소리를 하면 너는 여기서 나갈수 없을거야. 너도 그런걸 원하지는 않잖아? 그리고 꾸준히 약을 먹어야되. 약이 너에게 적응이 되야 우리는 너를 보내줄수 있어. 그런데 이렇게 약도 먹지 않고 신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내주고 싶어도 보내줄수 없어."
"신에게 그게 무슨 망발이냐. 나는 내일 나갈거야. 신인 내말이니 적어놔. 내가 만일 내일 못나가면 의사들이 모두 죽어나갈거야. 물론 나는 손은 안대고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지. 신의 저주를 말야. 인간인 주제에 신을 봉인하려고 하다니. 그런것은 용납할수가 없지. 신에게 약? 신은 병에 걸리지 않아."
"김간호사 박간호사 운영이를 꽉 붙잡아요."
두간호사가 운영이를 꽉 붙잡았고 주치의 선생님이 운영이의 입을 벌리고 약을 먹였다. 운영이는 뱉으려고 했지만 주치의 선생님이 더 빨랐다. 운여이의 등을 도닥였는데 그러자 운영이는 자신도 모르게 약을 삼켜버렸다.
"휴우. 매일 이럴수는 없고. 운영아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약은 너에게 꼭 필요해. 이런이야기 하긴 좀 그렇지만 여기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평생동안 약을 먹어야돼. 재발하는것이 더 무섭거든. 그럴때마다 약에 내성이 생겨 더 독해질수 밖에 없는것이고 독한만큼 부작용이 심해.약은 꾸준히 먹어야되. 병을 믿건 믿지 않건. 우리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드는거야. 잘 생각해봐 운영아"
주치의 선생님은 콜록거리는 운영이를 두고 오픈으로 회의하러 갔다. 그모습을 보고있던 나는 가슴속에 울컥 무언가가 차올랐다. 무엇인가 발산하고픈 욕구에빠졌다. 이상이 말햇던가. 담배를 피면 하얀 백지가 머리속에 생긴다고. 나는 그런생각을 하며 산책갔을때 가져왔던 담배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변기에 앉아서 조용히 한대 피웠다. 정말 꼬셨다. 이렇게 맛있을수가 없어서 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시계소리가 들려왔다. 시계가 째깍째깍 소리를 냈다. 초침과 분침이 운을 띄웠다.한 60번 움직이면 분침이 1시간을 옮긴다. 그리고 시침은 미동치도 않는다. 시간이란 크면 클수록 더 느리게 흐르는 것같다. 아니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시침이 스물네번 움직여보면 날짜는 하루 움직인다. 그런 하루를 얼마나 더 보내야 하는걸까? 확실한것이 없다고 생각하자 담배를 분 나는 눈물이 핑돌았다.그날짜가 30번이 흘러야 1달이란 세월이 지난다. 그 한달이 내댓번 가까이 움직이면 그때서야 여기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간다. 내가 나갈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궁금하다. 궁금하고 또 궁금해서 미치겠다.
지금도 내귓가에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느린속도로는 나는 울화통이 터진다. 언제 시간이 빨리 지나갈까? 내 병이 심하다고 해도 몇달이면 나갈수 있겠지. 생각할수록 사람들과 단절되는 기간이 길어지면 다시 잘 지내기가 힘들것 같았다. 그동안 어디있었냐고 하면 시골에 있었다고 둘러대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내 마음은 찢어지듯 아플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잡지하나를 화장실로 가져와서 약을 먹은지 처음으로 자위를 했다. 하지만 약을 먹어서인지 잘서지 않았다. 한 30분쯤 실랑이를 했을까. 조금씩 발기가 되었다. 나는 앞으로 영원히 성욕이 없을까봐 걱정이 되었는데 그정도는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사정할수 있을까? 나는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잡지의 여자를 보면서 흥분을 키워갔지만 잘 흥분도 되지않앗다. 약기운에 질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손을 빠르게 움직였고 40분만에 사정할수 있었다.
그렇지만 공허한것이 더 심해졌다. 역시 사정후의 느낌은 죽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끄러운 행동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걱정했던 약을 먹으면 성욕이 아예일지 않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것 만으로도 성과가 있었다.정말 죽고싶었다. 이런 비참한 기분이라니.이런곳에서까지 이짓을 했었어야 하는것인지 자기혐오에 빠졌다.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그냥 참을수 있었으면 참았어야 하는데 굳이 이런행동을 했었어야 했던것일까?
정말 살고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살아야했다. 그런기분으로 화장실밖으로 나오다가 유화를 보았다. 유화를 생각하며 자위를 했던 나는 유화를 보자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재훈이 얼굴이 빨개졌네? 어디 아파? 흐음 열은 없는것 같은데."
유화가 나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았다가 뺐다. 갑작스런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상기된 탓이었다."아니..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열이 조금 있을뿐이야."
"그래..? 뭔일있는건 아니라니 다행이다. 그럼 잘자."
유화가 환하게 웃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너무나도 해맑은 웃음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방에 와서 잤다. 그후로 이틀동안 유화를 보지 못했다. 이틀후 병실의 구석방에 또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으아아아! 왜 도대체 나를 가두고 있는거야.그까짓 잡놈하나 죽인것 가지고 내가 왜 고통받아야해."
"아무리 그래도 살인이 정당화 될순 없습니다. 그나마 환자분이 정신병력이 네번이라 감옥으로 가지 않고 이쪽으로 온것입니다. 그리고 약은 왜 끊었습니까? 분명히 재발한다고 누누히 말했는데요."
"무슨놈의 약이 그렇게 부작용이 심해? 마지막 약을 먹고나서 한달동안 하루종일 잠만 잤어. 자고 일어나도 또자고 밤이 되면 밤대로 자고. 그런일이 없었는데 약을 먹고 나서 잠만 잤다고."
"몸에 약이 잘안맞아서 그런것일 겁니다. 이번에는 적응기간이 길게 될것이니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세요. 그럼 식사하시고 삼일후에 다른사람들을 볼수 있을겁니다."
환자의 주치의 선생님이 말을 마치고 회의실로 발걸음을 돌렸다.잠시후 반항하다가 환자가 약을 먹었고 구석방이 조용해졌다.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들은 우리들은 섬뜩해졌다. 살인자라니..과연 그환자가 오고나서 잘지낼수 있을까? 솔직히 조금 무서웟다.
"구석방 환자가 살인을 했다매? 진짜 영화에서 본것처럼 정신병력으로 살인을 한사람이 들어오는구나. 그런데 무슨병으로 왔을까?"
"뭐 우울증이나 조울증이겠지.하지만 조울증일 가능성이 조금더 높아. 보통 살인을 하려면 감정이 북받혀야하는데 그런것은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병이 아니겠어?" "이은주처럼 우울증일까? 이은주도 우리하고 같은과잖아 병에 걸렸으니까.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잖아.그런데 이경우는 타살이니까 더 문제가 심각한데."
우리는 소파에 식판을 가져다 놓고 그환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삼일후면 보기싫어도 볼것이고 그러면 다른 누군가가 오픈으로 가겠지. 과연 누가 오픈으로 갈까" 순간 천복이가 떠올랐다. 천복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천복이가 오픈으로 가는것이 좋을것 같았다. 항상 활달하던 천복이가 요새는 잘웃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울먹이며 나가고 싶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성호형님 이번에는 누가 오픈으로 갈까요? "
"영훈이 아니면 천복이겠지. 둘다 여기에 있은지 오래되었고 다들 특별히 병을 드러내지 않잖아. 그말은 약이 그들에게 맞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말이야. 내 본심은 내가 가고 싶지만 그게 안된니 그들에게 양보해야겠지."
"저역시도요. 하지만 나이가 많아서 그래도 여기생활을 잘견디는 영훈이형보다는 요즘 힘들어하는 천복이가 갔으면 좋겟어요.초등학생밖에 안된애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하고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안타까웠어요."
"어 성호오빠 재훈이하고 무슨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어요? 나도 끼워줘요." "그게 이번에 오픈으로 누가 갈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어. 영훈이 형이나 천복이가 가게될것 같아서 말야. 누가 가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어."
"흐음 나는 천복이가 갔으면 좋겠다. 비슷한 나이또래도 없고 친구도 없는곳에서 혼자 생활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불쌍해. 그런데 그게 우리맘대로 되는것이 아니니까 안타깝네."
"수련이 누나 그건그렇고 유화는 요새 뭐하고 지내? 밖에 잘안나오는것 같아서 말이야." "유화는 요새 색종이로 학을 접고 있어. 학천개를 만들어서 여기있는 사람들 소원을 들어주고 싶대. 그래서 병실에서 이틀동안 한발짝도 나가지 않고 있어. 내가 밖에서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자고 해도 말을 안듣는다니까. "
유화에게 딴생각을 품고있던 나는 이틀동안 유화를 보지 못해서 병이라도 날것 같았다.그것도 내가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어색하게 마주쳤었기 때문에 더 미련이 남았다. 과연 그녀와 잘될수 있을까?
"흐음 재훈이가 유화에게 관심이 있구나. 그러고 보니 재훈이가 유화를 빤히 쳐다보던일이 여러번 있었는데 유화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내가 왜 눈치채지 못햇지? 좋아 이누나가 다리를 놔주지. 말만하라고 잘되게 도와줄테니까 말야."
"뭐 별건 아니고요 간식으로 산 카페라떼 하나를 유화에게 주세요. 왜 이런광고가 나오잖아요. '사랑한다면 카페라떼처럼.'이런 광고알죠? 유화가 이것을 눈치채면 정말 센스쟁인데." "우리 재훈이 그랬어? 아주 공상속에서 사는구나 뭐 좋아 재밌으니까. 그리고 유화에게 하고싶은 말은 없어? 뭐 오랫동안 사랑해왔다느니 반했다느니 그런말 있잖아."
"그러면 이틀동안 보지 못해서 보고싶다. 이 한마디면 되요. 첫술에 배부를수는 없잖아요."
"음흉하기는. 너 그렇지만 유화가 긍정적으로 대답해도 갑자기 자빠뜨리면 안된다. 걔도 힘든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네가 유화에게 상처를 주면 이 누나는 네 부탁을 닷기는 안들어주고 너를 보지 않을거야."
"그럴리가 없잖아요. 아무튼 같은 원인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데 병이 악화되게 하지는 않겠어요.그럼 누나만 믿을게요."
수련이 누나는 흥얼거리며 여자병실로 들어갔고 문틈으로 학을 접고있는 유화의 얼굴이 보였다.그 진지한 모습을 보고있으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근 두근 두근 '
가슴이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여기 이 좁은공간에서 같은 원인으로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의지하며 밖에서보다 더 빨리 정이든다. 내가 유화를 생각하는것은 정때문일까? 아니면 우화를 사랑해서 일까? 하지만 확실한것은 유화를 이틀동안 보지 못하자 시간은 더없이 느리게 흘러갔고 그럴수록 유화생각이 났다. 지금쯤 유화는 뭐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세면을 하고 샤워를 하려고 나왔을텐데 한번도 보지 못한걸까?
이틀동안 그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유화를 보고싶어 하는구나.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가슴이 말하는 소리를 이제서야 들은것이다. 비록 유화가 정상이 아닐지라도 나 역시도 정상이 아니니까 그런것은 문제가 될수없다고 생각한 다음부터였다. 서로가 부족하다면 힘들다면 같은처지인 우리는 더욱 상대방을 배려할수 있을것 같았다.
예전의 은주누나와의 관계처럼 나가서 잘해보자는 말은 두번다시 듣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매일 부딫히고 잠도 같이 자고, 자주보고 24시간 운명공동체에서 지내는데 이런상황에서도 잘되지 못하면 나가서 만나면 더욱 잘안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여기있는동안 깨달은것이다.
그래서 성호형님이나 영훈이형 그리고 병실사람들의 연락처를 수첩에 적어놓았고 나가서도 연락하자고 말해왔다. 나가서 과연 볼지 말지는 나의 노력에 달려있는것 같았다. 만약 그쪽에서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서서 연락할것이다. 그런생각에 제법 진지해졌을때 운영이가 나와 수련이 누나의 대화를 들었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재훈이가 천사를 좋아하나 보구나. 천사와 잘되고 싶었으면 만사재쳐놓고 나부터 찾아왔어야지. 내가 천사하고 친한거 알고있지? 신인 나한테 그런이야기를 했으면 진작해줄수도 있었는데 말야. 어 신인 내가 그것을 왜 모르냐고? 아니야 나는 이미 알고있었어. 그렇지만 진작 너의 의사를 강력하게 밀고 나갔으면 천사와 네가 잘되도록 다리를 놔주었을텐데 말야. 이래서 신을 믿지 않는사람은 안된다니까. 앞으로 나만 믿고 나를 위해서 찬송가를 부르고 나한테 기도해. 신하고 노는것만으로도 너는 구원받을수 있어.그러니까 내가 잘되게 하면 나하고 많이 많이 놀아줘. 신인 나하고 후성이하고는 이야기도 안하잖아. 여기 오락부장같은 네가 그러니까 다른사람도 나하고 부루마불도 안하고 젠가도 하지 않잖아. 앞으로는 그런게임을 할때 꼭 불러야되"
"운영이 아직도 신타령이냐. 지켜보는것도 한두번이지 너 정말로 네가 신이라고 생각해? 잘생각해봐야지. 만약 네가 신이라면 왜 여기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 여기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는것만으로도 너는 네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해. 너는 결코 신이 될수없어. 신이라면 이런곳에 오지 않아."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너희들을 구하기 위해서 아들인 예수를 보낸적도 있어.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너희들을 완전히 구하기 위해서 직접 가장 힘들다는 여기로 들어온거야. 왜 그걸 몰라주는거지? 조금만 생각하면 알수있는거야. 재훈이 왜 그렇게 의심병이 있어? 신이 말하면 의심없이 믿어야 천국에 가지. 앞으로도 계속 나를 믿지못하면 너는 지옥에 갈수밖에 없어. 나는 그것을 바라지 않아. 무엇보다도 유화와 잘되려고 하지? 그렇다면 내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너의 기도소리가 나의 마음에 닿았어. 아마 너하고 유화는 잘될거야. 여기서 사귀고 나중에는 결혼까지 할수있을거야. 신인 내가 하는 말이니까 새겨듣고 의심하지 말고 나를 믿어봐."
나는 운영이가 또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영이가 유화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사실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화는 운영이의 말을 들으며 자주 웃었다. 농담도 잘하지 않는 이곳에서 웃을일은 후성이나 운영이같은 사람들의 허황된 말들이었다. 계속 유화를 따라다니며 천사, 천사 하는것에 유화는 웃었다. 그냥 자기가 신이라고 해서 장단을 맞추어 준건데 운영이가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말하는것이 우스워서 일것이다. 나는 유화가 운영이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잘보지 못했던 웃는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래 뜻밖에도 운영이가 나를 가장 잘 도와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영이 네가 신이랃고 하니까 믿을게. 그런데 너를 믿었는데 잘못되면 다시는 신하고 놀지않고 이야기도 안할테니까 그점은 명심하고 도와줘. 나는 지금 너의 도움이 필요해."
그후부터 운영이도 간식을 시킬때 색종이도 포함하였다. 운영이는 내 맞은편에 앉아서 학을 접었다."내가 너를 도와줄게.신인 나를 믿으라고 나한테 맡기면 모든일이 잘풀릴거야." 나는 그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운영이라 믿는척했다.
"신이라면 천사한명쯤은 나에게 빠지게 할수있겠지? 그런데 뭐하는건지 물어봐도돼?"
"학을 천개접은다음에 네가 천사에게 주는거야. 유화는 병실의 모든사람들이 퇴원하기를 바란다면 나는 학천개를 접어서 유화가 퇴원하기를 소원으로 빌었다고해. 그리고 자연스럽게 따뜻한 분위기로 이야기하는거야."
운영이가 어울리지 않게 바른소리를 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과연 유화를 보았을때 그런 낯뜨거운 말을 할수 있을까 하는점이었다.
"운영이 뭐 쥐약이라도 먹었어?왜 갑자기 이렇게 똑똑해진거야."
"신인 나에게 이정도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후후 그나저나 내가 멀쩡해졌다고? 그럼 완벽한 신인 내가 멀쩡하지 않았다는거야?"
운영이는 기분이 나쁜지 툴툴거리며 인상을 썼다. 도저히 신인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나에게 기분이 상해서일것이다. "아무튼 고마워. 운영이가 도음이 될때가 있네.그럼 학천마리를 접어주겠지?그리고 신인 너와 탁구치면서 놀아줄게 그럼 나도 구원받겠지?"
"그렇지 재훈이가 이제야 그것을 알았구나. 나하고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너는 축복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미사를 가지말고 나한테 기도해. 나는 기도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아."
나는 또 헛소리를 하는 운영이를 무시하고 천복이를 보았다.
"천복이 병실에 박혀서 뭐해? 왜 요새는 탁구 안쳐? 오랜만에 형하고 탁구나 칠래?" "미안해요 재훈이형 별로 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천복이 고민이 많나보네.혹시 후성이가 괴롭혀서 그런건 아니야? 네 친구 지운이는 오픈에 있다면서? 재활교육시간에 나가면 볼텐데 오늘 같이 참여하지 않을래?"
"그럴까요? 그런데 지운이가 퇴원했을까봐 겁이나요. 그리고 지운이는 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으니까 가도 볼수 없을것 같아서 가기가 싫어요. 실망할까봐요."
"천복이가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바뀌었어? 원래 천복이는 활달해서 여기 생활 잘 버티는걸로 알고 있는데 말야. 그래 사람들을 불러서 '젠가'나 하자. 게임이 끝난다음에는 나하고 같이 재활에 가는거다."
나는 천복이와 성호형님과 함깨 '젠가'를 하러 텔레비전 옆의 빈공간에 앉아서 '젠가'를 꺼냈다. 이번에도 나는 '젠가'게임이 어디있는지 알았다. 텔레비전을 받치고 있는 조그만 서랍장에 있었다. 부루마불 게임에 이어서 '젠가'가 있는것을 알았다. 다들 '젠가'를 하자고 했을때 그런게임이 여기 어디있냐고 했지만 나는 있다고 하면서 이것을 꺼낸것이다. 의문이 생겼지만 블럭들을 꺼내서 네모난 모양을 만들었고 순서를 정했다. 내가 먼저 맨위의 블럭하나를 뺐다.이어서 선무형님이 아래에서 하나를 뺐다. 천복이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하나씩 뺐다. 그리고 돌고 돌아서 다시 내 차례가 왔는데 블럭이 아슬아슬하게 서있었다.
" 자아 뺀다 뺀다 뺀다 아 흔들리네. 조심조심 아아아 안쓰러졌다"
"재훈이 이자식. 이렇게 빼면 다음사람이 힘든거 알면서 사악하기는 죄다 흔들리게 해봤잖아 이자식을 그냥."
성호형님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왔다. 곧 성호형님이 굳은 표정으로 침착하게 블럭하나를 뺐다. 그리고 천복이 차례가 왔다. 천복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블럭하나를 잡고 부들부들 떨면서 블럭하나를 뺐다. 그리고 천복이가 안심하던 찰나에 블럭들이 무너져 내렸다.
"천복이 패자의 규칙을 알지? 자 이마대 따악!!!"
"나라고 봐줄수는 없지. 이 형님의 사랑이 가득담긴 이마치기를 막아보거라." 성호형님이 있는힘껏 천복이의 이마를 때렸고 우리들의 이마때리기를 받은 천복이의 이마가 퍼렇게 멍이 들었다. 천복이의 눈에서 눈물이 핑돌았다.
"재훈이형 성호형님 초등학생에게 너무한거 아니에요? 두고봅시다. 특히 제일 세게 때린 재훈이형 회심의 일격을 조심하세요."
이어서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다음에는 내가 블럭을 무너뜨렸다. 그러자 성호형님이 기를 모은 손이 내이마를 강타했다. 천복이도 두손으로 힘을 모아서 내 이마를 쳤다.
"천복이 두손으로 때리는것은 반칙이란걸 알아? 자 한대대."
"훗 누가 맞을줄 알고요? 형은 느려터져서 저를 잡을수 없는거 알고 있잖아요."
천복이는 나를 요리조리 피해다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후 이것으로 천복이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렸을까? 성호형님과 나는 서로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천복이는 방으로 들어가다가 방에서 나오던 후성이와 부딫혔다.
"어 천복이네. 좋겠다. 귀신이 이번에 네가 오픈으로 간대. 나를 놔두고 오픈으로 혼자 가다니 귀신은 그런너를 용서해도 나는 용서할수 없어."
후성이는 천복이를 껴안고 이마에다가 키스를 했다.
"아 이 미친형 내가 이런짓 하지 말라고 몇번을 말해? 간호사 누나 후성이형이 또 껴안고 내 이마에 뽑뽀 했어요. 아 드러워. 이제좀 못하게 해요 짜증나서 못견디겠어요. 말을 해도 들어야지 말이죠."
천복이는 이마를 두어번 만지작거리더니 세면실로 달려가서 이마를 박박 닦았다.
"천복아 나는 그냥 네가 힘들어보이길래 위로하려고 그런거야. 또 네가 오픈으로 간다니까 너를 다시 못 껴안을거 같아가지고 아쉬워서 그런건데 너무한다. 왜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니?"
"후성씨 병실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데 왜 자꾸 껴안아요? 자꾸 사람들 껴안지 마세요. 한번만 더 그러면 주치의 선생님께 말해서 구석방으로 보내버리겠어요.벌써 몇번이나 한번더라고 말했는지 몰라요. 왜 자꾸 사람들을 껴안고 뽀뽀하고 그래요? 후성씨 호모에요? 정말 이런일 두번다시 없도록 해요. 더 이상 사람들을 괴롭히면 주치의 선생님외에도 담당선생님을 부를거에요. 그러면 후성씨 퇴원이 늦어질수 밖에 없어요."
"전 이미 그런거 신경안써요. 저승사자하고 귀신이 너는 한참동안 나갈수 없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생활을 잘해도 일찍 못나가는데 퇴원이 늦어진다고 내가 무서워할것 같아요?"
말과는 다르게 후성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후성이 역시 퇴원이 늦어진다는 말에 겁을 먹은것임에 틀림없었다.
"후성이 너 진짜 구석방에 있는 살인자 아저씨하고 자리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아니 바뀌었으면 좋겠다. 옆자리에 있다고 사람들이 꺼리는 나한테 까지 껴안을줄은 몰랐다. 주먹 한방 맞은걸로 부족해? 센타깔까? 한번만 더 천복이를 괴롭히면 맞는다. 나는 너때리고 구석방에 가느것은 두렵지 않으니까 말야.잘생각해봐.왜 불쌍한 애를 괴롭혀? 정말 한대 맞아볼래?"
영훈이형이 후성이를 위협했다. 후성이는 전에 맞았던것이 무서웠는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알았어요 형 천복이한테는 안그럴게요."
그렇다면 다른사람들한테는 아직도 껴안겠다는 소린가? 설마 다음에는 나를 괴롭히려는 것은 아니겠지? 천복이한테 그랬던것처럼 이마에 키스를 하려고? 만약 그런일이 다시 발생하면 내가 구석방에 가는한이 있어도 후성이를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후성이는 영훈이형의 말을 듣고 침울해졌는지 자기자리로 가서 초코파이 한다스를 꺼내더니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후성이는 여기서 스트레스를 먹는것으로 푸는것 같았다. 어느새 초코파이를 다 먹어치우고는 1.5리터 콜라를 벌컥벌컥 마셨다.
" 후 이제좀 살것 같네. 역시 이곳의 낙은 ㅈ다고 먹는것 밖에 없다니까. 귀신이 지금 자도 된다고 하네.으음 자야겠네 눈이 감긴다."
후성이는 먹자마자 침대에 들이누웠고 곧 코를 골며 점애 빠졌다. 체중계로 재봄 후성이의 몸무게는 100킬로그램이 넘었다. 처음 여기에 후성이가 왔을때는 80킬로그램이었다고 하는데 먹고 잠만 많이 자다보니까 20킬로그램 이상이 찐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후성이가 불쌍한 녀석이기는 하다. 중국에서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귀신이 씌워서 한국에 들어왔다고 지난번에 들은것이 생각났다. 얼마 안있어 정신병원에 갇혔으니 인생이 제대로 꼬였다고 할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정신병력으로 군대를 갈수없으니 직업을 구할때 문제가 될것이다. 나의 경우는 아킬레스건이 조금 끊어져서 면제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정신병력으로 군대를 안가는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사람을 껴안는 후성이의 행동이 정당화 될수는 없다. 이런 생각으로 자고있는 후성이를 보다가 탁구대 있는곳으로 아무생각없이 갔다.
유화와 수련이 누나가 탁구를 치고 있었다. 내가 왜 유화를 좋아하는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처음 여기서 좋아했던 은주누나는 첫키스 상대였고 가슴도 만져보고 육체적인 접촉도 많이 했기도 했고 매일 봐서 이야기했으니 가까워 진것인데 아무이유없는데 왜 유화를 좋아하는 것일까? 모든일에는 이유가 있는법이다.
문득 유화를 보고있으려니까 내가 고등학교시절에 짝사랑했던 수영이가 생각났다. 웃을때마다 눈웃음을 짓는데 그것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녀에게 빠져들었었다. 그리고 보니까 유화도 웃을때 눈웃음을 지었고 얼굴 생김새도 수영이와 닮았다. 그래서 유화가 낯이익고 그녀를 좋아하게 된것일까? 거기에다가 같은 환우이다 보니까 같이 생활하는것에 동질감이 느껴졌다.
예전에 전쟁이 났을때 방공호로 피신한 사람들은 서로 눈맞는일이 많았다고 한다. 공포를 잊으려고 사람들이 서로서로 의지하다 보니까 정이 들었고 인연을 맺은사람들이 많이 생겼다고 들었었다. 나역시도 여기 생활이 힘들고 같이 지내다 보니까 그런감정이 생긴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유화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수련이 누나가 탁구를 치다가 그런나를 보고는 나를 보고 윙크를 했다.
"유화야 재훈이가 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탁구치기 불편하지 않니?"
"재훈이 아? 사랑한다면 카페라떼 처럼이라고 하면서 카페라떼를 주는 유치한 남자 말이죠? 고작 한다는 말이 이틀동안 보지 못해서 보고싶다 유화야,라는 사춘기 소년같이 말하는 재훈이요?"
"아니 나는 그냥 순수하게 유화가 보고 싶어서 그런건데,,"
"아직 내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안되겠네요. 하지만 호감은 가니까 조금 덜힘들면 생각해볼게요."
"여자가 생각해볼게요 라고 말하는 것은 싫다는 것의 다른표현이라던데 아 뜬금없는 말을 하다가 채였구나. 뭐 좋아 어차피 차일것을 예상하고 말한거니까.솔직히 별로 친하지 않아서 안될것 같다고 생각했었어."
나는 기운이 빠지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유화를 바라보았다.
"누가 싫대요? 그냥 시간을 두자는 이야기죠. 일단 지금은 여기사람들을 퇴원시키기 위해서 학을 접고 있으니까 천개를 접고 사람들이 퇴원하면 생각해볼게요."
"아주 거절은 아니네. 이쯤에서 만족해야 하나? 아 괜히 말했다. 수련이 누나 어떻게 된거에요. 도와준다더니 별성과 없잖아요."
"첫술에 배부를수는 없다면서? 바라는 것은 엄청 많았구나. 그래도 나는 사랑의 전령사 역할은 했으니까 도와주긴 한거다."
유화와 수련이 누나는 서로 바라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나는 신경써서 유화를 바라보았고 때마침 유화의 눈웃음을 볼수있었다. 저 눈웃음때문에 사람 여럿 잡겠구나. 수영이와 유화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정말 모든일엔 우연이 없는것 같았다. 단지 첫사랑과 닮았다고 이렇게 좋아지다니 감정이란 알수없다. 나는 그동안 수영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유화를 보았던 것일까?
"언니 그러면 나는 방에 들어가서 학접을게요. 또 재훈이가 재밌는일 하면 꼭 알려줘야 해요. 그럼 언니 퇴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학접으러 가요."
"잠깐만. 그런데 유화너 교회 다니니? 기도한다는 것 보니까 밖에 있을때 다녔었던것 같은데 왜 교회미사에 나오지 않는거야? 이번주 일요일에 미사있으니까 그때는 꼭 나오는거다. 그리고 내생각인데 그때는 재훈이도 나올거야. 안그래 재훈아?"
"유화가 나온다면 저도 나가야죠. 유화가 찬송가 부르는거 듣고 싶어요."
"어머 너 아직도 은주를 못잊은거야? 하긴 나도 매일듣던 찬송가를 못들으니까 그렇게 아쉬울수가 없더라.은주가 고운 목소리로 부르는것은 정말 듣기 좋았는데 말야.참 며칠전에 재활활동에서 은주를 보았는데 은주가 네 안부를 묻더라. 그리고 3일 후에 퇴원한다고 잘지내라고 말해달라고 하더라."
"은주누나가 퇴원하는구나..나가서 잘해보자고 했는데 저는 그말 안믿어요.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았으니 만날길이 없죠. 그냥 잊는게 나을것 같아요."
"흐음 재훈이 너 아직도 은주누나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그런니 오픈으로 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를 쫒아 다니는 거야? 이거 재훈이를 믿을수가 없는데. 나도 오픈으로 가면 다른여자 찾는거 아니야?" "아니야 설마 내가 그러겠어? 아무튼 내가 유화 너를 좋아하는것은 진심이니까 그렇게 알아둬. 난 생각외로 끈질기다. 바짝 따라다닐테니까 조심해."
"어머 스토커 한명 탄생이네. 나는 잘생긴 스토커만 좋아하는데 말야."
"그래? 그럼 나는 잘생긴 스토커니까 많이 사랑해주겠네."
"흥 나는 몰라. 아무튼 빨리 학접어야 되니까 그렇게 알아."
유화는 갑자기 삐질이유가 없는데 삐진듯한 표정으로 횡하니 가버렸다. 내가 뭘 잘못한거지? 여자맘은 잘 모르겠다. 내가 은주누나 이야기할때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때문인가? 그렇다면 유화도 나에게 조금 마음이 있구나. 어느정도는 관심이 있다는 소리네.
이번에는 잘해서 유화와 행복한 병원생활을 해야겠다. 사랑은 국경도 넘는다는데 이정도 못넘을까? 아무리 여기서 연애하지 말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거다.
그때 복도에서 째깍 째깍 하던 시계가 멈췄다. 고장이라도 났나? 뭐 어차피 시간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어떻게 되든 무슨상관이겠어. 더이상 시간이 가지 않으면 어떡하지? 시계가 멈춰버리자 여기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장난 시계와 비틀어진 병원생활. 지금은 어느시점일까?
한가지 위안이 되는점은 은주누나와 다르게 유화는 온지 얼마 안되었으니 같이 지낼수 있는 시간이 더 많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면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 어쩐지 이생활이 현실감이 없었다.정말 내 삶은 현실감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깨어보면 병원에서 틀어놓은 음악을 듣는다. 아침에는 병원에서조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세면을 하고 매일같이 6시에 밥을 먹는다.
그리고 오늘아침에는 산책은을 나갔고 그 기억이 생생하다.겨우 산책정도로 오늘은 다른날과 다르다는 생각을 할정도니 여기의 생활은 너무 짜여져있고 심심하다. 길가로 나가 하늘을 보면 어느새 햇빛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사람들과 걸어가노라면 외과나 내과병을 앓고있는 사람들의 소란수런 수다가 들려온다.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정신과에 입원해있는 어딜가나 이방인인듯한 느낌이 든다.
서툴고 힘겨운 병원생활에 지쳐간다. 그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 병을 갖고있는 나의 삶이란 현실감이 없다. 어딘가에 가로막힌 변하지 않는 일상이 나를 옥죄어온다.내가 살아있는것이 그리고 또 나와 이야기할 다른사람을 만나는것이 힘들다. 환우들과만의 외로운 대화를 하노라면 밖에있을때 친구들과 지내는 생활이 너무나 그립다. 얼마전까지는 나도 그랬지만 다른병동의 환자들과 친구들은 그리고 그들의 삶은 현실감이 있기에 더욱부럽다. 매일 짜여져있는 똑같은 하루는 시간을 더디게 한다.
마치 오늘 고장난 시계처럼 괴로운 병원생활은 고장난듯 너무나 더디게 흐른다. 마치 감옥에 갇혀있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은주누나의 찬송가소리가 없는 클로즈는 더욱 황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좋아지게된 유화가 있지만 아직도 그녀는 멀기만 했다. 시간관념이 없지만 며칠전부터 오픈에서 피아노치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치는것인지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면 문득 귀를 기울이게 된다. 피아노가 연주되면 생음악을 즐기는 내귀는 그쪽으로 종기걸음을 치는것 같았다. 파헬벨의 캐논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치는것일까? 그 연주를 듣고있으려니까머리속에서 뇌가 춤추고 심장이 벌컥벌컥 뛰논다. 그리고 잔잔한 내장기관에 음악을 듣고파하는 따스한 피들이 지나간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음악을 좋아했던걸까? 그것도 클래식이라니 새삼 나자신이 신기했다.
어렸을떄 누나가 연주하던 워털루 전쟁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그때는 나도 멀쩡했는데 지금의 나는 왜 이런것일까?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시간을 역행할수 없어서 슬퍼졌다.그 소리가 귓가에 울릴때
나의 몸이 피아노의 연주를 따라가는것 같았다. 피아노는 나를 자극하여 잠시 시름을 잊게 해주었다.남자병실로 돌아와서 보니 천복이가 짐을 싸고 있었다.
이번에도 또 천복이가 오픈으로 간다던 후성이의 말이 맞았다. 귀신이 말해줬다고 하는 말들이 모두 들어맞고 있었다. 정말로 천복이가 오픈으로 가게 된것이다. 후성이는 미치지 않은게 아닐까? 원래 박수무당이 되어야하는데 여기로 잘못온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등골이 서늘해지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천복이가 웃으며 다가왔다.
"재훈이형 나 드디어 이번에 오픈으로 가게 됐어. 형이 날 위로하려고 노력한것 알아. 그래서 더 고마워. 조금있다가 재활활동 시간이 되면 참여할테니까 그때봐. 그럼 난 지운이 보러갈게."
"그래 천복아 드디어 오픈으로 가게 됐구나. 시원섭섭하네.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재활활동 시간에 볼수있으니까 아주 못보는것은 아니네. 잘가라. 그리고 빨리 병이 나아서 내가 오픈으로 가기전에 퇴원해라."
"천복이 가는구나. 제훈이하고 나하고 천복이 네가 오픈으로 가게되길 빌었다. 그 마음 잊지 말고 오픈으로 가서도 잘살아라."
"예 성호형님. 지금 이자리에 없는 영훈이형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후성이형이 괴롭혔을때 나서줘서 고맙다구요."
"천복이 내가 뭐랬어 오픈으ㅗㄹ 간다고 했지? 오랫동안 못볼텐데 정말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봐도돼?"
"그래요 후성이형. 이게 정말 마지막이에요. 다른사람 싫어하는데 껴안지 마요."
후성이가 천복이를 안고 등을 두어번 두드렸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귀신이 자꾸 시키는걸 어떻게해.저 사람이 힘드니까 안아주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할수가 있어."
"휴우 후성이형 마음대로 해요. 하지만 다른사람들은 후성이형을 이해할수 없을거에요. 저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또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럼 귀신말만 듣고 행동하지 마세요."
"신인 나와 많이 못놀아서 아쉽구나. 그렇지만 내가 축복해줄테니까 여기서 빨리 나갈수 있을거다. 그리고 또 오픈에서 볼지도 모르니까 잘가고 가끔 기도해. 내가 들어줄테니까."
천복이는 사람들을 뒤로한채 짐을 싸서 오픈으로 갔다. 천복이가 사라지자 그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자리로 곧 구석방 환자가 올것이다. 살인자라니...무슨병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이야기를 듣고 불안해했다. 설마 약을 먹는데 무슨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잠시후 구석방에서 환자가 나와서 천복이 자리로 갔다. 침대에 글씨를 보니 김철준이라고 적혀있었다. 생김새를 지켜보았는데 특이한점은 왼쪽 발가락이 두개가 없는것이었다. 이마에는 자해를 했는지 정말 칼에 찔렸는지 검상이 있어서 흉악한 몰골이었다.
"다들 안녕하시오? 오늘부터 여기생활을 하게된 김철준이오. 성질 안건드리면 잘지낼수 있을거요."
철준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귀신이 철준씨 주변에 악령이 있다고 하네요.귀신 두명이 철준씨 목을 두르고 있대요,빨리 안쫒으면 생명이 위험하대요."
"넌 또 뭔데 헛소리를 하는거냐?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하긴 그러니까 여기 입원한거겠지. 그래도 내 성질 건드리지 마라. 엎어버릴테니까."
그런말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후성이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껴안았다.
"많이 힘들죠? 귀신이 그러는데 굿을 하지 않으면 귀신이 씌워서 또 범죄를 저지른데요. 나가면 꼭 굿을 받으세요. 신내림은 아니니까 무당될 걱정은 하지 말구요. 악!!"
철준이 후성이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 맞은 후성이의 눈이 파랗게 멍들었다. 그리고 더 때리려고 다가가자 영훈이 형이 철준이란 사람의 손을 잡았다.
"형씨 그만하시죠.후성이가 맘에 안들긴 하지만 그정도면 정신 차렸을거요. 같이 지낼 환운데 그정도로 봐주시구려."
"넌 또 뭔데 끼어들어? 잘못은 이녀석이 먼저 했잖아. 나는 다른건 다참아도 남자새끼끼리 그짓하는건 참을수 없어. 이놈이 나한테 먼저 달려들었고 말야. 잘못을 했으니 맞아야지."
"철준씨 후성이는 왜 그렇게 때려요? 또 껴안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자꾸 이렇게 폭력을 휘두르면 이번에는 퇴원못할수도 있어요. 안그래도 살인을 해서 쉽게 나갈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사람을 때리면 더 여기서 못나가게 될거에요. 언제 퇴원할지 알수 없게 되요.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겠죠?"
간호사들이 몰려와서 철준을 결박하였고 다시 구석방으로 꽁꽁 묶어서 보냈다.
"아 씨발 잘못은 저 어린노무스키가 했는데 왜 날 구석방으로 밀어넣어? 나가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빨리 이거 푸르지 못해?"
철준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남자 간호사 세명을 당할수는 없었다. "철준씨 며칠더 안정을 취해야 할것 같군요.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구석방에서 화를 삭혀요.후성이가 잘못한것은 알지만 여기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오는곳이라는것을 명심해요. 잘못을 하게되면 간호사나 의사선생님들이 제재를 가하죠.같은 환우끼리 분쟁을 일으키면 이렇게 할수밖에 없어요.아무튼 오늘은 꽁꽁 묶인채로 있어야 할거에요."
간호사들이 철준에게 달려들어 링겔을 꼽고 다시 구석방으로 보냈다. 철준이 가고난후 병실에는 적막감이 돌았다. 요즘들어 조용하던 준영이 형이 후성이에게 다가갔다.
"철준이란 사람이 너무하긴 했어도 잘못은 너에게 있어.도대체 귀신이 뭐라고 하기에 사람들을 자꾸 껴안아? 다행히 나한테는 그러지 않으니까 참고 있지만 말야. 내가 여기 온것도 철준이란 사람처럼 살인은 아니지만 사람하나를 정신잃고 때려서야. 그러다가 의식을 잃었고 그상태에서 내가 의식도 없이 사람을 피떡을 만들었다고 하더라. 조심해. 이런 나한테 까지 그러면 정말 골로 보내버리겠어."
준영이형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귀신이 그러라고 하는걸. 나는 귀신의 말을 들은죄밖에 없어. 귀신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데 나보고 어떻게하라는 거야?" "그 귀신이 처녀귀신이라도 되니? 남자를 껴안게?" "어떻게 알았어? 그래도 그 귀신뿐만 아니라 다른귀신들도 그러라고 해서 말이야. 내가 그러면 다른 잡귀들이 그사람한테 해꼬지 할수없다고 하는데 말야."
"해꼬지 당해도 우리가 당하는거니까 다시는 그러지마. 그깟 귀신보다 네가 껴안는것이 더 싫으니까 말야."
준영이 형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준영이형은 후성이를 힐끗 보고는 세면실로 가서 개끗이 얼굴을 씼었다.
"준영아 엄마가 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마음고생이 심했지?" 준영이형의 엄마란 분이 세면실앞에서 준영이형을 찾았다.
"오지 말라고 했잖아.여기는 또 왜왔어? 이런곳에서 꼭 봐야겠어? 나를 여기에 집어넣을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찾아오는 것은 또 뭐야?"
여기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이곳에 밀어넣은 부모님이나 보호자에게 안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꽤있었다. 보호자의 동의만 있으면 여기에서 나갈수가 있는데 그렇게 안해주는 보호자에게 원망이 돌아가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준영아. 내가 일부러 아무이상도 없는 너를 여기로 집어 넣었겠니? 네가 미쳐서 사람을 이성을 잃고 때려서 온것이 잖아. 그리고 의식이 없는상태에서 기억도 못하겠지만 카드를 긁어서 차를 사고 양복을 사고는 윤락가를 돌아다녔잖아. 정신없이 돈을 쓰고 다니고 사람들한테 행패를 부리는 너를 두고 가만히 있어야 했겠니? 그리고 만약 네가 정상이었다면 의사선생님과의 면담결과가 왜 네가 입원하는쪽으로 결정이 낫겠니? 우리에게도 이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단다.
"아무튼 그건 됐고 병원에다 맡기기로한 토익책하고 유통매매관리사 문제집이나 놓고가. 그거라도 해야지 여기 생활은 너무 무료해."
"준영아 책은 주겠지만 여기에서 공부하는것은 무리라고 하더라. 지금은 그런것보다 마음을 편안히 먹고 정신을 편안히 가지는것이 병에 좋다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더라. 그리고 먹을 것을 사왔으니까 사람들하고 나누어 먹으렴."
준영이형의 어머니가 병실 사람들에게 햄버거를 돌렸고 떡볶이와 순대를 먹었다. 준영이형도 어머니의 방문을 질색하는 말과는 다르게 어머니를 본것이 좋은지 좀처럼 볼수없던 웃는모습을 볼수 있었다.
"아무튼 왔으니까 필요한것 있으면 간호사한테 ㅁ발해서 보내달라고 할테니까 그거 보내면 되고 앞으로 찾아오지마. 여기있는게 자랑도 아닌데 가족들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말야.그런데 영주누나는 잘지내? 지난번에 매형을 보니까 사람이 후덕진것이 인상이 참 좋았는데 말야. 어떻게 되가?"
"다음달에 영주누나 결혼한다. 그애도 너를 얼마나 걱정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네가 자기 결혼식을 못보내는 것이 정말 아쉽다고 전해달라고 하더라. 뭐 누나한테 하고 싶은말은 없어? 전해줄테니까 말야."
"행복하게 잘살라고 전해줘, 결혼식은 못보는대신에 아기돌때는 꼭 볼테니까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전해줘. "
말을 하는 준영이형의 얼굴표정은 환했다.
"그래 그래 누나걱정은 하지 말고 미음편안히 먹고 여기 생활 잘하거라. 가족들 모두 너를 걱정하고 있다는것을 잊지 말거라. 아무리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안좋아도 내색하지 말거라. 아버지도 네가 여기까지 오자 후회를 많이 하셨단다. 아마 여기서 나오면 아버지가 잘대해 주실거다. 그리고 대학등록금도 아버지가 대신 내주신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나가게 되면 해묵은 아버지와의 감정을 툭툭 털어내고 용서해주거라."
"알았어요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일은 잊으려고 노력해볼게요.하지만 아직도 제생일에 시험을 못봤다고 생일상을 엎고 골프채로 때렸던일은 잊지 못할거에요. 술만마시면 미쳐돌아서 가족들을 때렸던것도 잊지 못하구요."
"그래도 용서하려무나. 여기 환자들하고 생활잘하고. 혹시 너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니?" "좀 귀찮게 하는애는 있는데 뭐 신경쓸일은 아니에요.뭐 자기말로는 귀신이 씌웠다고 하는애가 조금 귀찮게 하는것 빼고는 다들 화기애애하게 잘지내요. 어머니 그러면 돌아가시구요. 퇴원하기 전끼지 안오셔도 되요."
"그래 준영아 그래도 또 찾아오기는 하마. 네가 걱정되서가 아니라 네가 보고싶어서 오는거 란다. 다음에는 아버지하고 같이오마."
준영이 형의 어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나가셨다.
"재훈아 성호형님 영훈이형도 여기와서 떡볶이하고 순대먹어요. 많아서 혼자 못먹겠어요." "마침 분식이 먹고 싶었는데 잘됐구나.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침이 도는데. 그런데 후성이도 이자리에 끼워주자. 무당이 아니라 먹을것을 많이 먹어서 위당인데 이런자리 빼면 많이 억울해 할거야.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는데 같이 잘 지내자 좀 잘못하는것이 있어도 말야."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서 분신을 먹고 있는데 여자병실의 한 할머니가 냄새를 맡았는지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에휴 순대가 먹고 싶어서 왔다. 다음에 부모님 오시면 돈줄테니까 순대좀 많이 사달라고 해주렴. 냄새를 맡으니까 정말 먹는것이 소원이네 그려.조금 먹어도 되겠지?"
할머니 한분이 헐떡거리며 다가와서 앉으셨다. 우리들은 당황했지만 할머니가 순대가 먹고싶어서 오셨다는데 차마 돌려보낼수가 없어서 우리가 먹어도 적은양이었지만 할머닏에게 양보했다.
"아니 이게 왠 떡볶이 냄새야? 통닭이나 치킨은 사람들이 많이 사와서 별로 안땡기는데 분식은 처음이네. 재훈아 나도 먹어도 되겠지? "
"수련이 누나. 통닭하고 치킨하고 같은 말이자나 하하. 이거 쪽팔려서 같이 다닌다고 말하지마. 그리고 준영이형한테 말해. 준영이형 어머님이 사오신거야."
"준영이 오빠. 저 먹어도 되죠? 마침 떡볶이하고 순대가 먹고 싶었는데 와. 다음에 부모님이 오시면 분식이나 사달라고 말해야겠다,."
"그래 수련아 먹어. 그냥 먹으면 되지 뭘 물어봐. 저 할머니 천천히 드세요. 누가 안뺐어가니까요. 그리고 순대 다 드셔도 되니까 급하게 드시지 마세요."
"고맙네 고마워. 내가 그렇게 순대가 먹고 싶었는데 지금 먹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에구 자식들은 나를 여기에 넣고는 병문안 한번 안오네 그려.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
"할머니 무슨말을 그렇게 하세요. 자식분들도 사정이 있어서 못오는것일거에요. 그리고 아마 며칠내로 찾아올거에요. 드실때만이라도 그런생각하지 마시고 편히 드세요."
할머니는 우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겁지겁 순대를 먹으며 연신 웃으셨다. 순대가 그렇게 좋은가? 하지만 할머니가 즐거워 하시니까 병실 분위기도 밝아졌다. 나중에 들은거지만 수련이 누나 말로는 저할머니가 병실에서 맨날 죽는소리를 해서 병실 분위기가 말이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분위기를 띄우시니 신기하다고 했다. 이렇게 환하게 웃으시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웃음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모처럼 병실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웃고 떠들었다. 지금 이순간은 평소와 다르게 즐겁고 따뜻했다. 늘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에 부모님이 오시면 분식을 잔뜩 사다달라고 해야겠다. 다들 즐겁게 먹으며 웃고 떠들다가 병실로 돌아갔다. 내가 병원으로 돌아가니 운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재훈이냐? 학지금 삼백개정도 접었다. 신인 나니까이짧은 시간동안 이만큼이나 접을수 있었었다. 존경스럽지 않냐. 너무 부러워하지 마라. 넌 신이 아니니까 이정도 못해도 되.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말은 아무걱정 하지말고 나만 믿고 따라오란말야. 그럼 유화하고 잘될수 있으니까."
"벌써 삼백개나 접었어? 아무튼 그렇게 애써주니까 고맙네.근데 아직도 네가 신이라고 믿고있는거야? 그렇지만 않다면 친구로 지내면 좋을것 같은데 말야.신하고 친구가 될수는 없잖아."
"내가 신이라는것을 못믿는거야? 할수없지. 원래 신에게는 이정도 시련이 있는거지. 사람들은 나의 고뇌를 이해할수가 없거든. 아 무지몽매한 자들을 계몽한다는것이 이리도 힘든일일까?"
"됐네요.아무튼 유화하고 잘되게 도와줘. 그리고 뭐 자신을 신이라고 믿고 있는 바보같은 친구 한명쯤 있어도 되겠지. 하긴 여기있는 사람들 모두 정신적으로 한두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고 나역시 환잔데 그런걸 따지고 있다니. 미안하다 앞으로는 잘지내보자."
"신인 나와 잘지내면 복받는 일만 있을거야.전에 보니까 말야. 성호형님하고 천복이하고 젠자하고 있던데 재밌어 보이더라. 학 다접으면 나도 같이하자. 전부터 하고 싶었어."
"그러자. 굳이 천개접은후가 아니라 지금 하지 않을래?"
"아냐 나는 천개 접고나서 편한마음으로 게임을 할래. 하던거 마치지 않으면 개운치가 않거든. 너하고 천사하고 잘되는것 빨리 보고 싶기도 하고 말야."
"자식 알았다. 그럼 나는 재활활동 하러갈게."
나는 재활활동을 하러 오픈의 활동실로 걸어갔다. 마침 그곳에서 전에 들었던 피아노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잔잔한 소리.. 거기있는 사람들 모두 마음을 평온ㅇ하게 해주는 피아노소리를 듣고 있었다. 조지윈스턴의 'thankings giving'을 연주하고 있었다. 갓 스무살이 되었을까? 어려보이는 여자애가 눈을 반짝이며 연주에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후 연주가 끝났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영아가 피아노 하나는 잘치지. 악보도 없는데 정말 잘친다니까." "요새 영아이 피아노치는 소리를 듣는낙으로 하루를 보낸다니까.영아아 이따가 또 연주해줘." "그럼요. 저도 피아노치는것이 너무 좋은걸요.제 생활에 피아노가 빠지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구요." 영아가 환하게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저애가 파헬벨의 캐논을 연주하던 애구나. 앞으로도 연주한다고 했으니까 또 들을수 있겠지.여기 생활의 즐거움이 한가지 더 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천복이가 보였다.
"재훈이형 왔네. 형 20분이나 기다렸어. 뭘 그렇게 꾸물거려. 오픈으로 오니까 지운이도 보고 컴퓨터도 있어서 정말 좋아. 형도 오픈으로 빨리와서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
"그러냐 오픈이 정말 좋은가 보구나,. 잘됐다. 같이 탁구를 못치는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재활활동 시간에 볼수 있으니까 또 볼수 있잖아. 다음에도 여기서 보자 자식."
천복이가 내옆으로 와서 앉았고 주위를 보니 지운이는 보이지 않았다. 천복이가 지운이는 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럼 천복이는 나를 보러 왔구나. 귀여운 자식. 곧 재활선생님이 활동실로 들어오셨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예시간이에요. '나라사랑'이란 네글자를 화선지에 서보세요. 여기 신문지를 나눠 드릴테니까 먼저 신문지에 글씨를 연습을 하고 그 다음에 화선지에 글자를 써보세요. 글은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창이에요.한글자 한글자 정성들여서 쓴다면 여러분의 진실한 마음이 글자속에 투영될거에요.어때요? 한번 쓰고 싶어지지 않나요?"
재활선생님과 같이온 봉사활동 지원자들이 붓과 벼루, 신문지와 화선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화선지가 구겨질라 조심해서 주었다,
"한문으로 쓰실분은 한문으로 쓰셔도 됩니다. 그중에서 작품 다섯개를 골라서 일주일도안 벽에 걸어드리겠습니다. 잘쓰고 못쓰고가 중요한것이 아니에요.성의가 중요합니다. 콘테스트가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선정기준은 얼마나 개성있는 작품입일까 하는 점입니다. 저도 한작품 써서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서로 작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재훈이형 서예 써본적 있어요? 지난번에 보니까 형 시는 잘쓰던데요? 특히 마지막에 사랑의 때를 기다린다는 말이 인상깊었어요. 저도 밖에 있을때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나중에 퇴원해서 학교를 가면 고백할려구요."
천복이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 초등학생이 정말 조숙하네. 나는 초등학생때는 이성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말야. 서예는 학원을 한달정도 다닌적이 있는데 그게 다야. 한달동안 얼마나 배웠겠어. 그래도 천복이 보다 못쓰면 쪽팔리니까 최소한 천복이 보다는 잘써야 겠다."
"그게 마음먹은대로 잘될까요? 이래뵈도 저는 서예학원을 3달 다녔어요. 어때요 형? 이번에 작품이 개재되지 않는 사람은 보드게임때 처럼 이마 때리기 한대를 맞는것이 어때요? 왜 자신없어요? 기대해봐요 형. 안그래도 지난번에 형이 때린데가 멍들어서 단단히 벼르고 있으니까 말예요. 안맞으려면 상당히 잘써야 될걸요."
"설마 초등학생인 천복이한테 질것 같아? 어디한번 써보자구 누가 더 잘쓰나 보자구"천복이와 나는 신문지에 글을 쓰고는 서로서로 비교했다. 사람들은 다큰 어른이 아이하고 경쟁하는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천복이가 나보다 글을 잘쓰는것이었다. 판본체로 글을 쓰는데 한눈에 보아도 글에 힘이 잔뜩 들어있었다. 굵고 선있는 획 하나하나가 힘차게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어린애가 정말 못하는것이 없었다. 예전 천복이의 말이 생각났다.
자기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니까 자기를 시기하던 애들이 다구리를 놓았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갔다. 한 스무명에게 다구리를 당햇던, 그것도 친구라고 믿었던 애들에게 당한 기억때문에 여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마음은 치유횔망정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테니까 사람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지 걱정이 되었다.
"천복아 아직도 밖에서 너를 때렸던 애들을 원망하고 있어? 나가게 되면 그애들하고는 어떻게 지낼생각이야? 용서하고 지낼수 있을거 같아?"
"걔네들을 때리고 복수해서 뭐하겠어요. 힘들겠지만 전처럼 그냥 지내려구요. 애들이 어려서 그런거라고 생각할거에요."
정말 천복이 같은 애들이 많다면 요새 행동이 개념이 없는 애들한테 말하는 초딩같은 놈이란 말을 쓰지 못할거 같았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천복이 보다 글을 못쓴다는것은 부끄러웠다. 나는 기교를 부려서 잘쓰는 방법은 천복이한테 안되니까 작전을 바꾸었다. 붓에 먹물을 가득먹인 다음에 일부러 글자가 조금씩 번지도록 하고 한순간에 더 번지기 전에 써내려갔다. 연습은 이만 하고 화선지에 개성있게 글을 써내리려고 했다.
얼핏보면 글자가 번지게 쓴것이 많이 부족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못쓸망정 특이하게 쓰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천복이도 화선지에 글씨를 쓰는데 글자에 기교가 가득했다. 그리고 글을 쓰고 나서 자신의 이름을 작은붓으로 쓰는데 어찌나 잘쓰는지 사람들도 천복이의 글을 보고 놀란것 같았다.
모르긴 해도 저정도의 퀄리티면 작품으로 선정되는데에 문제가 없을것 같았다. 과연 내글이 작품에 선정되느냐 아니냐를 고민해야 할것 같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혹시나 작품에 선정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곧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선지에 자신의 글을 써내려갔다. 나는 지난번에 유화에게 눈길이 갔듯이 이번에는 피아노치는 영아에게 눈길이 갔다. 호감이 갔기 때문에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있었다. 저애는 어떤작품을 내놓을까? 하는 생각에 빤히 쳐다보았고 영아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렸다. 천복이가 무엇을 눈치챘는지 킬킬거리며 내귀에 속삭였다. "은주누나 유화누나에 이어 이번에는 피아노치는 영아누나? 형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관심을 멈출수가 없구나. 하긴 다다익선이니까."
"어린것이 못하는 말이 없어. 이건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거야. 유화하고는 상괁없고 말야. 그냥 내가 피아노연주를 좋아하니까 팬입장에서 보는거라구."
"어련하시겠어요. 알아 모시겠습니다."
천복이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옆에있던 사람들이 킥킥 거렸다. 다행히 수진이는 그 소리를 못들었는지 왜 그렇게 웃느냐는 표정으로 나와 천복이를 쳐다보았다.
"자 다들 여기 이 작품을 보세요. 정말 처음치고는 잘쓰지 않았나요? 자신의 것만 보지 말고 다른사람의 작품도 감상해보세요. 여기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있네요. 초등학생인 이천복이의ㅐ 작품인데 특이하게 혼자만 판본체로 썼네요. 그리고 획하나하나에 기운차게 힘이 실렸어요. 이렇게 거침없는 작품이 천복이의 작품입니다. 이거 어리다고 무시하면 안되겠는데요."
재활선생님이 천복이의 그림을 높이 들었다. 다른사람들도 선생님의 말에 동의하는지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영아씨의 작품도 눈에 띄네요. '나라사랑'이란 글자를 쓰고 남은시간에 난을 그렸네요. '나라사랑'에 깃들인 미려한선이 매우 아름답네요. 난을 그렸는데 먹물 번진곳 하나없이 거의 완벽하게 잘그렸습니다. 여러분의 수준이 이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그럼 한사람의 작품을 더보고 제 작품도 감상하세요. 이재훈씨의 글이네요. 글자에 번진 자국이 일부러 그랬는지 다채롭네요. 글은 못써도 괜찮다고 했지요? 그럼 이작품도 전시할거에요. 그렇지만 다른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잘쓴것 같지 않죠? 그래서 규정외로 이 작품을 제 작품대신 걸어놓을겁니다. 서예시간은 여러분의 시간이지 저의 실력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니까요. 그럼 부족하지만 제 작품을 감상하세요."
과연 선생님의 작품은 뛰어났다. 한획을 꺾을때도 기품이 있었고 자연스러웠다. '나라사랑'이란 네글자가 살아숨쉬는 듯했다. 이어서 다른작품들도 소개되었고 각자 자신의 작품평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다들 혼신의 히믕ㄹ 다하여 글씨를 써서인지 작품들의 수준이 높은듯 했다. 한시간동안의 서예시간이 끝났고 활동실을 정리하고 각자의 병실로 돌아갔다.병실로 돌아가니 김인철 담당의사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재훈아 면담시간을 갖자. 면담실로 가서 상담을 하자꾸나."
그리고 나와 담당의사 선생님은 면담실로 갔다.
"어떻게 재훈이 여기생활은 견딜만 하니? 간호사들 말로는 오락부장이니 재활활동에 참여잘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네가 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은 나니?"
"잘지내기는 하는데 저도 다른사람들처럼 퇴원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 사람피를 말려요. 그리고 아직도 제가 왜 여기에 왔는지도 모르겠어요. 또 저는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걸요."
"..그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할수 없구나. 네가 기억하는 것은 어떤일이니? 부모님 말씀으로는 이년전부터 잘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시던데 말이야. 또 그것을 알아야 네병이 나았다는 말이 될거다. 혹 여기 생활이 익숙하다는 느낌은 안드니?"
"예 저도 모르게 낯익은 사람들이 있고 또 보드게임이나 물품들이 어디있는지 절도 찾아졌어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아직도 기억이 안나나 보구나. 차차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겠지. 네가 여기오게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이니까 말야. 또 그것을 알아야 네병이 진짜로 나았다는 말이 될거다. 그럼 오늘의 면담을 마치고 또 시간을 갖자꾸나. 재훈아 기억이 나는 것이 있으면 다음면담시에 이야기 하자꾸나. 기억이란것이 쉬운일이 아니고 갑작스럽게 오는것이니까 생각이 안난다고 조금한 마음 갖지 말고"
김인철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시고는 나를 병실로 다시 보내주셨다. 도대체 뭘기억 하라는 거지? 의문이 생겼지만 별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병실로 돌아갔다.
"재훈아 학 오백개를 접었더니 너무 힘들다. 내가 신이 아니었다면 벌써 포기했을거야. 정말 쉬지도 않고 접었다. 너는 곧있으면 천사하고 잘될거고 그럼 난 제수씨를 보게 되는건가? 그때가서 신인 나를 외면하면 안된다. 그럼 이신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라. 네가 기도하면 할수록 나는 그소리를 듣고 기운이 날테니까 말야."
"제수씨가 아니라 형수님이지. 그건 그렇고 운영아 그렇게 가지 안해도 되. 학을 접는데 정말 온힘을 다하는구나. 고맙긴 한데 조금 부담스럽다야. 그래 소원이라면 기도해줄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저와 운영이를 굽어 살펴주시옵고 저의 병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세요. 운영이가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운영이가 빨리 퇴원할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가 운영이에게 했던 잘못된 행동들을 용서해 주시고 여기있는 운명공동체에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주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재훈이 신인 나한테 기도하니 너는 구원받을거야. 근데 나한테 기도하면서 왜 내가 신이 아니라는 거지? 나는 이천년전에 예수를 이땅에 보냈고 이번에는 가장 힘든곳인 여기로 와서 너희 모두를 구원하려 왔어. 이런 속깊은 나는 병이 있어서 여기로 온것이 아니야."
운영이가 화가난듯 버럭 소리질렀다.
"그래 운영아 믿어줄게. 네가 신이라는걸 말야. 자기가 신이 아니라는건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구나. 너도 네가 신이 아니라는것을 깨닫는다면 금방 퇴원할텐데 그것이 아쉽다. 그런데 너는 네가 신이라는것을 언제부터 믿게 되었어?"
"나는 원래 꼴통이었어. 그러다가 공부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기적처럼 갔어. 그때 깨달았어. 이런일을 하는 나는 신이구나. 신이 아니라면 이렇게 될수없지. 더 확실한것은 군대에 갔을때였어. 선임새끼들이 마음속으로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거야. 그러다가 두드려맞았고 그래도 다른사람들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거야.그때 나는 아 내가 신이구나 하는것을 깨달았어. 하루에 한시간 공부하고 공무원 시험에서 88점이 나왔어. 아깝게 떨어졌어. 그런일이 겹치니까 나는 내 능력이 신이 아니라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었는데 깨어나보니까 여기였어. 사람들말로는 내가 나는 신이라고 하며 대치동을 돌아다녔고 그래서 여기로 오게되었대.여기와서 더욱 확실해졌어. 내가 군대사람들을 구하고 여기 사람들을 퇴원시키는거야. 이점에선 천사와 같아. 그래 난 신이야. 너희들을 구원할수 있는"
정말 구제할수 없는 운영이다. 아무리 설득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나는 복도로 나가서 고장난 시계를 보았다. 시계를 고쳤는지 다시 째깍째깍 소리가 들렸다. 정말 시계는 멈추어도 시간은 흐른다.시계가 여섯시를 가리켰으니 조금 있으면 저녁식사가 올것이다.
"재훈이 이 개새끼야. 여기서 뭐해? 병실에서 기다리다 밥이나 처먹지 그래? 가뜩이나 찌그러진 면상 밟아버리기 전에 말야. 오늘 '비'가 온다고 했으니까 꼴사나운 면상은 치웠으면 하는바람인데 말야."
"오호 미친년이 안보여서 심심했는데 마침 나타났네. 이름이 화수라고 했던가? 화요일하고 수요일은 몸사리지 그래?" 사람들이 얼굴을 쓰레긴줄 알고 밟아버릴지도 모르니까."
너 '비'가 여기와서 왜 마누라 괴롭히냐고 하면 어쩔려고 그러냐?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미친새끼가 주제를 알아야지. 너같은 새끼 백명이 와도 '비'한테는 안되."
"내말은 그런 '비'가 왜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너를 찾아오냐 이말이지. 얼굴도 일그러진 곰보같은년이 뭐가 예뻐서 찾아오냐."
"이익 재훈이 이새끼가."
화수가 달려들어 내 머리를 잡았다. 머리를 자르지 않아 손에 잡힐만큼 길어서 잡혔고 화수가 얼굴을 마구 할퀴었고 나는 정신이 없었다. 정말 여자만 아니었으면 주먹을 날렸어도 수십번은 날렸을것이다.
"화수씨 또 여기서 난리를 부립니까? 재훈씨가 착해서 그렇지 참. '비'는 여기 오지 않아요.그걸 깨달아야죠. 최근에 상태가 호전되어서 오픈으로 갈지도 모른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이런식으로 소란을 피우면 더 오래 여기있을수 밖에 없어요. 몇달 더 이러고 싶지는 않겠죠? 한번만 더 사람을 할퀴고 난동피우면 선생님에게 말하겠어요."
"흥 재훈이 새끼야. 운좋은줄 알아. 간호사님만 아니었으면 너는 오늘 내손에 죽었어."
"아휴 같지않은년이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정말 아무리 여자같지 않아도 여자만 아니었으면 넌 여기서 초상치뤘다. 그리고 넌 왜 나만 보면 난리냐? '비'가 너 안찾아오는것이 당연하지. 그리고 '비'가 안오는것이 내책임이냐?"
"재훈이 너같은 미친새끼가 여기있으니까 '비'가 안오는거야. 나하고 비가 결혼한다고 한 사이인데 너까짓게 뭘알아? 너같은 새끼가 아무리 헛소리라고 해도 사실이야. 그런데 너같은 새끼가 아니라고 하는데 곱게 말이 나오냐? 아무튼 너때문에 안오는거야. 한번만 더 '비'가 안온다고 하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화수가 앞뒤도 안맞는 헛소리를 하며 눈알을 뒤집었고 간호사들이 나를 할퀴려고 손톱을 세운 화수를 붙잡아서 병실로 보냈다. 정말 저런 미친년은 상대하고 싶지가 않다. 아무튼 화수때문에 오늘 일찍자기는 틀린것 같았다.
"재훈아 여기서 뭐해? 왜 화수하고 싸우고 있어? 병실내에서도 걔 어찌나 설치는지 사람들도 걔하곤 이야기도 안하는데."
"어 유화왔구나. 학접기는 잘되고 있어? 학 다접고 나도 빨리 퇴원시켜 달라고해. 그리고 또 유화하고 잘되게 해달라고도 빌어주고." "흥 내가 그렇게 할줄알아? 그나저나 재훈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매일 낮에 카페라떼를 주는구나. 아직도 사랑은 카페라떼 처럼이야? 뭐 그렇게 싫은건 아니지만..어머 사실 싫어. 너하고 내가 왜 사귀어야 하는거야."
"그건 내가 유화한테 죽고 못사니까 그렇지. 그리고 내가 대쉬하는거 싫지는 않나보네?" "그..그거야 원래 어떤여자든지 왠간히 싫지만 않으면 자기 좋다고 쫒아다니는 애한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어있어. 나도 그런입장에서 너를 대하는거야 절대 좋아서 그러는거 아니고. 꼴에 눈은 높아가지고.흥흥."
"쯧쯧 아주 공주병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싫으면 됐어. 어디 여자가 너뿐이니? 나도 내가 싫다는 사람 희망도 없는데 억지로 쫒아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나는 고개를 돌려서 더이상 관심이 없는척을 했다.
" 아 아냐. 조금은 관심이 있어. 애가 사람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호감은 가지만 사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는거지. 내 마음이 정리가 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잖아." "그래? 그럼 학천개를 접고나면 대답해 주겠네.얼만큼 접었어?"
"칠백개 정도 접었어. 근데 여기서 연애하는건 그렇지 않아? 우리 나가서 생각해보면 안될까? 여기서는 편한 친구로 지내고 말야."
"싫어. 여기서 매일 마주치는데도 사귀지 못하면 나가서는 잘될것 같아? 그거는 은주누나로 충분해. 나는 병원생활을 함꼐 견뎌나갈 여자친구가 필요해."
"그럼 다음에 대답해줄게. 아 졸려 나는 병실로 가서 자야겠어. 재훈아 너도 잘자." "그래 너도 잘자라 내일 보자."
유화가 눈을 감고 졸린 표정을 하며 병실로 돌아갔다.
"유화 너 재훈이 새끼와 얘기했지? 내가 그애한테 말도 걸지 말라고 했잖아.못들었어? 그새끼 아주 저질이야. 남잘되는 꼴을 못본다니까."
화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년은 나하고 무슨 악연이 있기에 이리 설칠까? 화수가 할퀸 자국이 쓰라렸다. 나는 따갑지만 물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밤 나는 꿈을 꾸었다.화수가 밤에 병실로 와서 나를 마구 할퀴었다. 참다못한 나는 화수를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이 미친놈이 이젠 사람패네. 어디 내가 가만히 있을줄 알아?" 화수가 악다구니를 쓰며 내팔을 할퀴고 물어뜯었다.
나는 발로 화수를 걷어찼다. 화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나를 마구 차고 할퀴었다. 간호사들이 뒤늦게 소리를 듣고 와서 화수와 나를 말렸고 눈이 뒤집힌 화수를 여자병실로 데려갔다. 아 따가워 하는 생각으로 일어났다. 일어나보니 나는 구석방에 혼자 누워있었다. 왜 내가 여기에 있지? 정말 현실감 넘치는 꿈이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묶여있지도 않았고 내 짐도 남자 병실에 다있었다. 구석방에서 나와도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 내가 왜 여기로 왔을까? 밤에 몽유병이라도 있어서 돌아다닌것일까? 나는 세면실로 가서 찬물로 세수를 두번했다.
"재훈아 너 그거 알아? 어제밤에 우리 자고 있을때 화수가 또 난동을 피웠더라. 하도 자주 있는일이라 관심도 안가졌는데 글세 오늘 보니까 소란을 피우고도 오픈으로 갔더라. 우리중에 제일 이상한애였는데 왜 우리보다 오픈으로 먼저 갔을까? 그러고 보면 네 모습도 얼핏 보인것 같은데.."
"아우 머리가 띵한게 정신이 없어. 마치 여기 처음 왔을때 처럼 말야. 수련이 누나 맞아. 나 어제 화수하고 대판 싸웠었거든. 그리고 잤는데 꿈에서 화수한테 맞았어. 일어나보니까 꿈같지않게 여기저기 아픈거 있지? 정말 화수한테 맞았나. 그나저나 제일 이상한애가 오픈으로 가게되다니 미스터리네."
병실환자 사항을 보니까 '화수' 오픈이라고 써있었고 김인철 담당의사님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담당의사선생님이 화수를 오픈으로 보낸것일까? 더이상 나하고 마칠이 없도록 하신것일지도 모르겠다. 의문이 들었지만 의문은 의문일 뿐이고 화수가 오픈으로 갔다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든 나로서는 화수가 오픈으로 가서 앓던이가 빠진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득
"너는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는거냐?"
김인철 의사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걸까? 나는 이렇게 정상적으로 지내고 여기일을 정확히 기억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어제의 화수와의 소란도 다들 봤을까? 저녁식사를 할때 화수와 다투었던 것은 다들 알텐데 왜 나는 그떄 구석방으로 안가고 잠든다음에 가게 된것일까? 평소에 화수가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쳐서 사람들은 어제도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꿈은 꿈일 뿐이겠지.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화수가 오픈으로 간후 중년정도의 눈에 다크서클이 있는 아줌마가 화수의 자리로 왔다.철준이라는 사람과는 다르게 구석방에서 조용히 있어서 하루만에 화수의 자리에 왔다고 했다. 저 아줌마는 무슨병으로 오게된 것일까? 뭐 천천히 알아보면 될것이다. 그일외에도 철준이 천복이 자리로 다시 복귀했다. 약을 많이 투여했는지 약간 무기력하고 멍해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철준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잘지내길 바라고 저는 바둑두기를 좋아합니다. 앞으로 잘지내봅시다. 바둑도 같이 두고요."
철준이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명희 간호사가 들어와서 천준의 이마를 닦았다. 이마와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철준씨는 앞으로 야러분의 환우로 잘지낼것입니다. 잘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무섭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원만한 관계를 가지셨으면 해요. 철준씨도 사고 안일으키도록 조심할것이구요."
"우리야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소. 갑자기 폭력이라도 휘두르지 않는다면 말이죠."
성호형님이 일어나서 철준과 악수하였고 곧 철준의 자리에 앉았다.
"성호형이라고 했죠? 저는 30살이에요. 겉늙어서 나이가 들어보인다고 많이들 말해요. 지난번에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약을 많이 먹어서 어지러우니까 가끔 헛소리를 해도 이해해주세요."
아마도 철준은 난동을 피운다음 약을 많이 먹은것 같았다. 처음에 약을 많이 먹으면 무기력해진다. 실제로 한 텔레비전에서 나왔는데 평범한 사람이 정신과 환자의 약을 먹으면 삼일동안 줄창 잠만 잔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병때문에 살인을 했어도 지금 괜찮으면 상관없을듯 싶었다. 그나저나 약이 상당히 독한것 같았다. 나도 처음 여기서 약을 먹었을떄 성욕이 없어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신을 안정시키는 약은 사람을 노곤하게 만들고 의욕이 없어지게 하는 부작용이 있는것 같았다. 마음의 안정이란 다른말로 하면 의욕상실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내 경험으로 보아 철준이형은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것이다. 심지어 야한생각까지도 말이다. 남자는 칠초에 한번씩 여자생각을 한다는 말도 있는데 성욕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당히 슬픈일이다.
"형이라고 부를게요. 형 그런데 이런말하긴 뭐하지만 발가락 두개는 왜 없는거에요?"
"..자해를 한거야. 사실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자살하려고 했어. 그냥 죽으면 속죄가 안될것 같아 발가락 두개를 잘랐는데 고통이 너무 심해서 자살 미수로 그쳤어. 발가락 수술을 받고 경찰서에 갔다가 여기 교수님의 요청으로 일단 정신과 치유부터 받게 된거야.나도 사람이니까 너무 무섭다고만 생각하지 말아줘."
"알았어요 철준이형. 나는 재훈이에요. 바둑두는것 좋아한다고 했죠? 저하고 바둑두지 않을래요? 바둑판 가져올게요."
"성명점 바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이래뵈도 바둑은 꽤 두니까 몇점 깔아도 좋아. 실력도 알아볼겸 연습으로 돌깔지 말고 한번 둬보자."
철준이형은 바둑둑자고 하니까 의욕이 생긴것 같았다. 성호형님이 나를 보며 잘했다는 눈빛을 보냈다. 같이 병실을 사용하는 사람이 의기소침한 상태를 보이면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가라앉는다. 기왕 지낼것이라면 서로서로 존중하고 밝은 분위기로 지내는것이 좋다. 나는 철준형 자리로 가서 바둑을 두었다. 역시 호언장담한대로 바둑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나도 8급인데 상대도 되지 않았다.
성명점 바둑이 뭔지는 몰라도 바둑을 두는내내 나보다 먼저 핵심이 되는 자리에 돌을 놓았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하귀쪽에 큰집이 생겨서 그집을 막지 않고는 승리할수 없게 되었고 나는 어쩔수 없이 우하귀에 침입했다. 하지만 내가 침투한 대마가 잡혀서 게임은 나의 불계패로 끝났다.이어서 두는판에 나는 돌을 두개깔고 두었지만 또 대마를 잡히고 말았다.
"재훈아 돌을 네개 갈면 딱 적당하겠다. 그래도 요새 애들치고는 잘두는 편이네.다들 컴퓨터 게임 하느라 바둑을 등한시하는 애들이 많은데 그래도 너는 기초가 탄탄 하구나. 앞으로도 종종 두자."
"예 철준이형 앞으로 네점깔고 둘테니까 잔뜩 긴장하세요. 가드 안올리면 어퍼컷 들어갑니다."
"후후 자식. 내 첫인상이 안좋았는데 이렇게 붙임성있게 대해줘서 고맙다. 이형도 알고보면 나쁜사람 아니다."
철준형이 웃으면서 내머리를 스다듬었다.
"형 머리 쓰다듬는건 할아버지나 하는거에요. 시정해주십쇼."
"..반항이냐? 아무튼 그래도 후성이보고 나를 껴안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줘라. 나는 딴거는 다참아도 그거는 못참겠더라."
"저도 싫어하는데 그건 고쳐질게 아니에요. 병실사람들도 포기했는걸요."
"재훈아 나 미워하지마. 그리고 고작 껴안는것 가지고 그래? 귀신이 그러면 악귀를 쫒아준다고 하는데 말야. 나는 그저 사람들을 위해서 그럴뿐이라고."
후성이가 나한테 다가와서 또 껴안았다. 나는 뒤돌아서 후성이를 한대 후려쳤다.
"내가 두번다시 하지 말라고 했지? 땀냄새 나는게 며칠동안 샤워도 안한거 같은데 말야. 기분 더러우니까 저기 꺼져있어."
내가 계속 때리려고 하자 성호형님이 다가와서 말렸다. "재훈아 니가 참아라. 한두번 있는일도 아닌데 말야. 그리고 후성아 제발 다른사람좀 껴안지 마라. 다들 싫어하는데 왜 끈질기게 그러냐."
"저도 그러고 싶은데 몸이 저절로 움직여요. 그냥 내가 껴안는거 참으면 안되요?"
후성이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운영이도 동감이라는 표정을 짓고 나에게 다가왔다.
"재훈아 학 칠백개 접었다. 오늘 아침부터 쉬지 않고 접었어.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다 접을것 같아. 어때 이신의 능력이? 신은 원래 할때는 해. 천사와 네가 잘된다면 내가 뭔들 못하겠냐. 아직도 후성이가 너를 괴롭히냐? 후성아 신인 나에게 귀신 쫒아달라고 기도해라. 내가 들어줄테니까. 참 내가 무슨말을 하고 있는거지?" "유화와 내가 잘되면 뭔들못하겠냐고 했어."
"유화는 내가 학접는것을 모를테니까 지난번에 말한대로 네가 했다고해. 그다음은 알지? 지난번에 유화하고 이야기 해보니까 재훈이 시 잘쓴다고 하더라. 시한편써서 천사에게 주면 어때? "음 그것도 좋은생각인데. 그런데 유화가 나보다 훨씬 잘쓰잖아. 내가 쓴거 읽고 비웃으면 어떡하지?"
"원래 연애편지,시 같은것은 유치할수록 효과가 커. 중요한건 네진심만 깃들면 되."
"운영이 연애경험이 많나보네. 근데 요새 누가 연애편지나 시를 쓰냐? 이메일이나 문자 전화로 하지. 고전적인게 좋기는 하지만 요새 사람들의 코드와 맞지 않아."
"그러니까 더 효과적이라는 거지 흔하지 않으니까.그리고 여긴 이메일 문자 전화가 불가능한 곳이잖아. 어때 이 신의 놀라운 통찰력이."
"잘나가다가 또 신타령이다. 정말 고질병이다 그거. 아무튼 네가 말한 방법들 생각해볼게. 신경써줘서 고맙다."
"에헴 신인 나에게는 당연한거지. 모든사람을 사랑하니까. 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알지? 내사랑은 태초부터 시작되었어. 그러니까 너도.."
"거기까지! 운영아 제발 1절만 하자. 알아 네가 신이라는거. 오늘만 인정해줄테니까 그만하자. 운영아 학 나중에 접고 게임하러 가지 않을래?"
"전에도 말했지만 하던일은 끝내고. 너 바둑도 두던데 장기도 둘줄 아냐? 내가 또 한장기 하거든. 장기대회에서 준우승한적도 있었다고."
"얼마나 나한테 장기 깨져야 정신 차릴까. 준우승이고 나발이고 너는 나한테 안되."
"그자신감이 어디까지 가나보자. 나중에 지고 나서 내가 질줄은 몰랐다느니 한수만 물려달라느니 해도 소용없어." 운영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었다.
"운영아 난 네가 이렇게 자신만만한 표정 짓는거 본적이 없어. 정말 잘두나 보네. 하지만 나한테는 안될걸."
"재훈아 오랜만에 다이어트에 몰두해보자. 너무 오랫동안 다이어트 안한거 같지 않은데? 런닝머신도 달리고 체조도 하자. 그리고 저녁은 앞으로 칼로리 바란스로 대체하자. 마누라가 다이어트 한다고 하니까 칼로리 바란스를 잔뜩 사왔어. 이거 다 먹을때까지 7킬로는 빼자."
"네 성호형님. 요새 준영이형 덕분에 햄버거도 밤에 먹고 분식도 마구 먹어대서 살찐것 같아요. 그럼 PT체조 하러 갑시다."
"오늘은 백개만 하자. 마지막에 부호 붙이지 않는거 명심하고. 구호붙이면 두배로 하기다."
"예 성호형님 오늘은 런닝머신도 30분정도 해요. 운동이 끝난다음에 먼저 끝낸사람이 세면실로 가서 자리를 맡기로 해요 .운동이 끝난다음에 땀이 식기전에 씻어야하는데 사람이 있으면 그럴수 없으니까 자리 맡아놓죠."
"그러면 먼저 런닝머신을 달린 사람이 자리를 맡도록하지. 그럼 PT체조를 시작하자. 하나,둘,셋,," "구십팔, 그십구, 백헉헉!!"
"..백? 재훈이 이 고문관 녀석." "헉 미안해요 성호형님. 사실 운동이 더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것이 아니라.. 헤헤." "닥치고 이백번 하자. 이번에도 구령붙이면 상종도 하지 않을거다." "..백구십칠, 백구십팔, 백구십구."
"와 이번에는 말안했어요."
어느새 삼십분을 운동한 우리는 몸에 땀이 가득했다. 역시 운동을 하지 않다가 보니까 체력이 떨어져서 일것이다. 성호형님이 운동이 끝난후 형수님이 가져다준 청포도를 먹었다. 적당히 시큼하면서도 달아서 자꾸자꾸 먹게 되었다.
"성호형님 청포도 진짜 맛있는데요. 이거 무기농인가요?입에 착착 달라붙는데요." "이거 고향에서 가져온거야. 시골에서 부모님이 농사 지셔서 보내주신거야. 맛있지? 이건 먹어도 살안찌니까 이거하고 칼로리 바란스를 먹자구."
성호형님과 나는 총포도를 먹은후 런닝머신을 뛰었고 이마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헉 헉 몸이 진짜 무거워요. 요새 뛰지 않고 먹고 잠만자서 그런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운동을 했으니까 체중을 재보죠."
"그래 그다음에 샤워하자. 끈적끈적해서 도저히 못참겠다. 체중계를 재보니 성호형님이 이킬로그램 내가 일킬로그램 빠졌다, 성호형님이 먼저 샤워하고 그다음에 내가 샤워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그렇게 개운할수가 없었다. 역시 운동후에 땀흘리고 씻고 나면 막혔던 가슴이 후련해진다. 나는 잠시 여기가 정신병원이란 사실을 잊었다. 집에서 씻고 나와 잠자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거리도 줄어들었고 그런생각으로 세면실을 나오다가 유화와 마주쳤다.
"재훈아 뭘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니? 여긴 기구가 없어서 근육이 생기지도 않을텐데 말이야. 다른환자들은 약기운때문에 잘움직이지도 않는데 넌 기운이 뻗치는것 같다."
"그게 다 우리 유화한테 잘보이려고 하는거야. 유화도 자기관리 안해서 뚱뚱해진 남자하고 사귀고 싶진않을거 아냐. 그리고 살이빠지면 샤프하고 날렵해보여서 좋잖아. 그리고 여기서 가만히 있어서 뭐해. 운동이라도 해야지."
"흐음 나도 요새 앉아서 학만 접으니까 살찌는것 같아. 여기 뱃살좀봐. 살이 많이 붙었어. 히잉."
"그래 어디보자. 배가 조금 나왔네."
나는 말을 하면서 은근슬쩍 유화의 배를 만졌다.
"어머 뭐하는거야. 숙녀의 배를 만지다니. 재훈이 알고보니까 응큼하구나."
"아니 난 그냥 배가 나왔다길래 나도 모르게.."
"자신도 모르게 하면 잘못이 없어지는거야? 아휴 속상해. 배나온거 다 들켜버렸잖아. 그것도 재훈이 한테."
"그래도 내 뱃살사랑은 변하지 않아. 아아니 유화사랑.아야야"
유화가 내귀를 잡아당겼다.
"뭐 뱃살사랑? 다시한번 말해봐. 내 배가 그렇게 나왔다구?"
"아니 유화배가 나왓을리가 있나. 그냥 보통사람보다 살포시 더 나왔다구. 애교배야 애교배."
"보통사람보다 더 나왔다구? 으앙 재훈이가 나 배나왔대 수련이 언니." "재훈이가 간이 부풀어 올랐구나. 유화한테 배가 나왔다니. 여자가 제일 민감한 일중 하나가 배가 나왔다는 말인지 모르나보지? 가뜩이나 잘보여도 모자를 판에 얘가 미쳤나? 유화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장난좀 친거에요. 어디 유화가 배가 나왔겠어요. 이쁜 유화한테 그정도면 애교죠. 절대 살이 쪘다는게 아니라."
나는 변명도 어설프게 나와서 당황했다. 유화도 창피했는지 얼굴이 빨개져서 뾰로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재훈이 말은 믿을수가 없어요. 그리고 글쎼 언니. 재훈이가 내배를 은근슬쩍 만졌다니까요. 애가 엄청 음흉해요. 이러다가 덮치는거 아닌가 몰라."
"유화야 설마 내가 그러겠어? 그건 두사람이 마음이 맞고 사랑할때 할거야. 우선 유화한테 잘보이고.."
"결국 나중에는 덮친다는 말이네. 흥 나한테 더이상 관심갖지마. 이거 무서워서 병원생활 하겠어? 늑대가 이렇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유화는 붉그스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병실로 돌아갔다. 이 오해를 풀어야 할텐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재훈아 그래도 유화가 꾸준히 너한테 말을 거는걸로 봐서 너한테 관심이 있어. 그러니까 더 조심해서 말해. 뭐 사랑싸움은 하다가 정이 든다고 하지만. 아무튼 이누나가 볼때 재훈이 가능성이 있어. 힘내"
수련이 누나가 내어깨를 툭툭 치고는 병실로 돌아갔다. 나도 병실로 돌아오다가 이강희 주치의 님과 마주쳤다.
"재훈씨 글쎄 연애사업은 잘되요? 그런데 여기서는 연애하지 말고 나가서 하는게 좋을것 같네요. 환자들 심란하게 만들지 말구요. 별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난번에 보니까 재훈씨는 일종의 조울병인거 같은데 조금 특이한점이 많네요. 그래서 심리검사를 의뢰했어요. 면담실로 가서 심리검사를 하세요."
지난번? 언제 내가 검사했었지? 그리고 특이한점이 많다니 내병이 그렇게 심각한가? 또 다른환자들은 심리검사를 하지 않는데 나만 특별케이스인가? 나는 의문을 뒤로하고 면담실로 들어갔다. 면담실에는 심리검사를 담당하는분이 앉아 있었다.
"재훈씨 간단한 심리검사이니까 긴장하지 마세요. 그냥 편한마음으로 생각나는대로 검사에 임하세요. 먼저 가장 일반시 되는 나비를 보세요. 어떻게 보이십니까?"
"두명의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어요. 쌍둥이 같이 똑같은 얼굴이 대칭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그럼 이그림은 어떻게 보입니까?" "천사와 악마가 자신의 분신들을 데리고 대칭으로 서있네요. 천사는 밝은빛의 날개를 가지고 있고 악마는 불꽃이 튀는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그림몇개를 더보여주었고 나는 그때마다 두가지의 상반된 모습이 보였다. 아줌마와 아저씨의 얼굴이 보이는가 하면 대각선으로 찢겨진 두그루의 나무도 있었고 점점히 찌긍ㄴ 먹물자국도 보였다.
"이어서 수리능력 검사를 하겠어요. 마방진에 대해서 아시나요? 빈곳의 숫자를 넣어서 가로 새로의 합이 똑같은 수를 찾으세요." 나는 에전에 아버지에게 마방진에 대해서 배운적이 있어서 손쉽게 문제를 풀수 있었다. "여기 한아이가 줄이 끊어진 바이올린을 잡은 그림이 있습니다. 이것을 기초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아이는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때부터 바이올린을 접했습니다. 음악인 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바이올린을 배웁니다. 그리고 카네기홀에서 9살에 클래식 합주를 합니다. 명성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연주는 잦았고 그러다보니 바이올린이 상했습니다. 자기가 관리를 잘못한것을 깨닫고 다시 관리를 합니다. 얼마나 연주를 했는지 줄이 하나하나 끊어졌고 소년은 그 바이올린을 버렷습니다. 혼이 담긴 바이올린을 버리자 연주할때 전과 같은 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다시 그 바이올린을 집었고 마지막으로 끊어진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위해 바이올리능ㄹ 잡고 연주하려는 그림입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그림들을 보면서 내용을 상상했고 심리검사가 끝났다. "저 선생님 그런데 그 심리검사 결과를 제가 볼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결과는 주치의 선생님께만 보여드리게 되어있습니다. 재훈씨의 정확한 병명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지요. 이경우는 재훈씨가 알아서 좋은것이 아니니까요. 그럼 수고 했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예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나는 면담실을 나와 세면실로 가서 정신이 번쩍 나도록 찬물로 샤워를 했다. 심리검사를 하느라고 지친몸이 깨기위해 씻었다. 마침 우화가 세면실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유화하고는 세면실에서 자주 마주치는것 같았다.
"재훈아 드디어 학천개를 접었어, 이제 소원만 빌면 이병실의 사람들 모두 퇴원할수 있을거야. 내가 여기 오래 갇혀있을수록 다른사람들이 빨리 나갈수 있다는것을 깨닫고 난리를 치고 소동을 부렸어도 소용없었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병원사람들이 이번주내로 나갈수 있어. "
"정말 나갈수 있을까? 네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학 천개를 접어서 나갈수 있었다면 여태까지 왜 사람들이 학을 접지 않았을까? 아무튼 우리를 위해 소원을 빌어준다는 것은 고맙네." "재훈아 내말을 못믿는거야? 사랑하는 사람의 말도 믿지 않는데 사랑이 싹틀수 있을것 같아? 흥 재훈이 빼고 다른사람들 빨리 나갈수 있게 해달라고 비엉야겠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구."
역시 여기온 사람들은 생각이 특이한것 같았다. 병이 나아야 퇴원하는것이지 유화가 여기있으면 다른사람들이 빨리 나갈수 있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유화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니 삐딱선을 탈수는 없었다.
"아니 나도 유화말 믿어. 나도 학을 접고 있거든. 나도 다접으면 유화처럼 여기 사람들 빨리 나가게 해달라고 빌어볼게. 사랑하는 유화말을 믿지 않고 누구말을 믿겠어? 유화말이라면 수련이 누나 엉덩이도 만지고 올수 있어."
"..재훈아 뭐라고 했니? 누구 엉덩이를 만지고 와? 이녀석 완전히 성희롱을 하는구만, 사라으이 전도사 그만두고 재훈이나 튀겨볼까?"
"수,.수련이 누나. 아니 나는 그런뜻이 아니라 단지 어려운일도 할수 있다고 말하려던 참이었어."
"됐어. 재훈이 맘 알았으니까 엉덩이 누가 만지나 조심해야겠군. 다큰 숙녀 엉덩이를 만지려는 치하닝 있으니까 말야. 아 이험한 세상 살아갈수 있을까?"
유화가 수련이 누나의 말을 들으면서 웃었다.
"수련이 언니 근데 왜 짐을 쌌어?" "수련이 누나를 봤더니 옷가지와 책들을 챙겨서 가지고 있었다. "나 오늘 퇴원할거야. 부모님이 오시는데 퇴원할려고."
"자기가 퇴원하고 싶다고 맘대로 되는건 아니잖아. 언니 갑자기 왜 그래?" "맞아 수련이 누나. 의사선생님이 퇴원하랄때까지 퇴원못하잖아. 그런데 오픈도 안가고 클로즈에서 퇴원한다구?"
"아무튼 나는 오늘 나갈거야. 더이상은 여기에 있을수 없어. 그래서 짐을 싼거고. 나는 오늘 나가게 되있어."
유화와 나는 수련이 누나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역시 수련이 누나도 멀쩡해 보이지만 병이 있구나. 그럼 그중에서도 특별케이스라던 나는 어떤병이 있는걸까? 불안하기만 할뿐 아직도 모르겠다.
"수련아 어디있니? 엄마 아빠 왔다. 자주 안찾아와서 서운했지?" "엄마 저 오늘 나갈거에요. 이곳에 더 있다간 정말 미쳐버릴것 같아요. 짐 다쌌으니까 가실때 같이가요."
"수련아 그게 네 맘대로 되니? 의사선생님이 병이 많이 호전되어서 외래치료를 받아도 된다고 하실때 나갈수 있는거지. 좀 참아보려무나. 힘들어도 병도 안나았고 밖에서 지내는 것보다 날거다."
"몰라요. 짐쌌으니까 나갈거에요."
수련이 누나는 울먹이며 부모님을 보았고 부모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의사선생님하고 상의해보자. 그,런데 어제 선생님하고 전화통화 했었는데 수련이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퇴원할때는 안되었다고 하시더라. 마음의 병이란 쉽게 낫는것이 아니라 하셨어."
"됐어요. 그러면 저혼자라도 나갈거에요. 놔요. 오늘 퇴원할수 있다고 친구가 말해줬어요." '친구? 누가 그랬어? 수련아 마음 단단히 먹어라. 친구가 나가도 된다고 나갈수 있는곳이 아니란다."
"은주가 그랬단 말이에요. 이제 나가도 된다고."
"은주? 벌써 퇴원했잖니? 그런데 어떻게 연락했니? 의사선생님을 불러야겠다. 의사선생님." 마침 근처에 계시던 의사선생님이 수련이 누나 부모님 곁으로 갔다.
"글쎄 수련이가 은주하고 연락해서 이제 나가도 된다는 말을 들었대요. 어쩌면 좋아. 병이 더 심해진것 아닌가요?"
"수련아 환청같은것이 들리니? 아무래도 좀더 약을 조정해야 될것 같습니다. 호전되엇다고 생각했는데 약이 잘 안맞나봅니다. 부모님 수련이에게 약적응기간이 조금더 필요할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고 수련이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수련아 은주는 여기에 없단다. 클로즈에서는 연락할수 없고 정말 은주가 그랬니?"
"그랬어요. 저는 오늘 나갈거에요."
"간호사.수련이를 병실로 보내고 오늘은 약을 먹이고 푹쉬게 하세요. 내일부터 다른약을 사용해야 할것 같아요." 곧 간호사가 와서 수련이 누나를 잡고 병실로 보냈다. 수련이 누나 부모님은 한참 우시더니 우리에게 다가왔다.
"수련이 친구들이라고 들었어요. 수련이가 나와 아빠가 이혼햇던것에 상처를 입었었어요. 지금은 다시 합쳐졌지만요. 그런데 그때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술만 마시더라구요. 괜찮아 지겠지 하고 생각했던것이 어느새 여러달이 지났어요. 그래서 여기로 끌고 와서 의사선생님과 상의해서 입원하게 되었어요. 근데 이제는 헛것이 보이고 환청까지 들린다니 어찌할바를 모르겠어요.수련이를 잘돌봐주세요. 아마 지금이 제일 힘들때인것 같으니까요. 잘부탁드립니다." 수련이 누나 부모님은 나와 유화의 손을 잡고 눈물이 그렁그렁한채 말하셨다.그리고 우리를 보고 병실에 돌아간 수련이 누나를 보시고는 병원밖으로 나가셨다. 유화와 나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유화야 너무 걱정하지마. 다른사람도 아니고 수련이 누나잖아. 훌훌 털고 일어날거야. 여기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잠시 환청같은것이 들린거야."
"그래야지. 항상 밝고 환하던 수련이 언니가 이렇게 되니까 혼란스럽네. 앞으로 수련이 언니도 신경써야 겠는걸."
"그리고 학 천개를 접었으니까 소원으로 수련이 누나가 낫게 해달라고 빌어. 혹시 알아? 정말 소원이 이루어져서 수련이 누나가 퇴원할지."
"그래 난 모든병실의 사람들이 빨리 나갈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어, 재훈이하고 수련이 누나도 포함해서." "그래 고맙다. 기왕빌거 다음번엔 수련이 누나가 오픈으로 가게 해달라고도 기도해. 나도 기도할테니까. 하루에 세번씩. 아침에 일어나서 ' ,수련이 누나 오픈가라.' 대변볼때 ' 응 수련이 누나 오픈가라.' 마지막으로 잠잘때 '흐응 수련이 누나 오픈가라' 하고 말야." "재훈이 너 정말 재밌다.
그래 나도 하루에 세번씩 기도할게. 수련이 언니 오픈가라고 말야. "
"유화야 학 천개 접었으까 대답해 주지 않을래? 네가 좋으니까 사귀고 싶어."
"처음엔 친한 친구로 시작하자.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 너한테 호감이 가긴 하는데 그게 사랑까지는 아닌거 같아. 한 일주일만 시간을 더 주지 않을래?" "그래. 그런데 이게 마지막이야. 나도 밖에서 처럼 마냥 기다릴수는 없어. 나도 지금 힘드니까. 유화만을 바라보고 있기엔 나도 지쳐버렸어. 여기서 일주일이란 시간은 밖에서 한달정도 지나가는 느낌이란것 알지? 그럼 다음번엔 확실히 얘기해줘. 마음을 확실히 할수있게."
"쪽"
나는 유화의 이마에 살짝 뽀뽀를 했고 유화의 얼굴이 새빨개 졌다.
"재훈이 너어.지금도 이런데 사귀면 어쩔려고 그래? 정말 응큼한 늑대야. 그래도 난 너한테 안줄거야."
"뭘 안줘? 설마 그거? 여기선 할데도 없으니까 안심해."
"재훈이 니가 밤에 자고 있을떄 날 덮치면 어떡해?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한테 안줄거야."
처음에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여기에 세면실도 있고 밤늦게 화장실을 가도 되고. 나는 므훗한 상상을 했다.
"재훈이 너 그렇게 음흉하게 웃지마. 뭘 상상하는거야. 우린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라고."
"근데 꼭 사귀자고 말하고 사귀는것은 아니잖아. 차근차근 가까워질수도 있고 이렇게."
내가 유화앞에서 말했다. 유화는 고개를 돌리면서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내입술과 마주쳤다. 정말 부드럽다.
"꺄악 나 어떡해. 재훈이 한테 순결을 빼았겼어. 흑흑."
"아니 얘가 왜이래. 겨우 뽀뽀한거 가지고 애냐, 애?" "친구사이에도 이런데 나중에는 어떨지. 상상하는것 만으로도 .. 나 재훈이 여자친구 안할래. 절대로 안해."
강한 부정은 긍정인 법이다. 내가 유화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여자병실에 새로 들어온 다크서클이 있는 아줌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 아줌마가 산통을 다깨고 말았다.
"유화구나. 여기서 뭐하고 있어? 이 아줌마도 끼워주면 안되?"
"예 희정이 언니 지금 또래 친구하고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재훈아 희정이 언니야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저는 유화친구 재훈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 아줌마가 따로 해줄수있는건 없고 유화는 패디큐어해주고 재훈이는 왼손 약지에 매니큐어 발라줄게."
"예? 아니 저는 됐어요 남자가 무슨 매니큐어에요."
"밖에서 네일아트를 했었어. 보기 흉하게 해주진 않을게 꼭 해주고 싶어서 그래." 희정이 아줌마가 나에게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아주머니 됐으니까 유화나 해주세요. 저는 남자가 그런거 하는거 꼴불견이라고 생각해서 하기 싫어요." "아니 나는 유화보다는 재훈이한테 해주고 싶어. 자 내손을 봐 예쁘지 않니?"
"됐다니까요. 관심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속는셈치고 한번만 해보는게 어떄? 내가 잘못할까봐 그래? 흑!흑!"
희정이 아줌마가 울먹였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정신병원인가? "정말 한번만 해보면 안되겠니? 이 아줌마의 마지막 부탁이야."
"휴우 왼손 약지만 해주세요. 더이상은 안되요."
희정이 아줌마가 내손을 잡고 검은색 매니큐어를 정성들여 발랐다.울먹이다가 아예 울면서 매니큐어를 발랐다. 정말 기분이 묘했다. 왼손에 검은색 매니큐어를 바르는 희정아줌마의 표정이 진지했다.
"자 다 됐어. 생각같아서는 양손에 다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거절하니.. 다하면 정말 예쁠텐데."
"남자가 그러면 정말 추해요. 저야말로 생각같아서는 왼손에 한 매니큐어도 지우고 싶네요."
"재훈아 무슨말을 그렇게 하니? 희정이 언니가 정말 정성을 다해서 해주신건데." "유화야말로 나 신경쓰지 말고 패디큐어 잘받고 다음에 보자."
"다음은 무슨.. 빨리 희정이 언니한테 사과해. 생각해서 해주신건데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어떠시겠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별로 그런거에 관심이 없어서.. 아무튼 유화한테 패디큐어 잘해주세요."
나는 마지못해서 사과를 하고 병실로 돌아갔다. 유화하고 분위기 좋았는데 방해를 하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유화하고도 틀어지고.정말 방해요소가 많은것 같다.
"휴 재훈아 학 천개 다 접었다. 정말 힘들었다.유화하고는 그동안 잘지냈어? 천사는 마음이 넓어서 재훈이하고 잘지냈을거 같은데. 아무튼 학 천개줄테니까 준비한대로 잘말해.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접었는데 성과가 없으면 가만두지 않는다."
"신께서 굽어살피시는데 안될리가 있나요? 하하 운영아 정말 고맙다. 정말 오늘하루만이라도 네가 신이라는거 믿어줄게. 지금 신하고 장기두고 싶은데 어때?"
"그말을 기다렸다. 많은시련이 있었지만 드디어 내가 신이라는것을 믿는구나. 장기의 신이기도 한 나에게 도전하다니 가소롭기도 하구나 하하. 신의 한수에 당해보고 싶은거야? 하긴 이기던 지던 신하고 겨루어 보았다는것이 영광이겠지. 좋아 재훈이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어휴 조금만 비행기 태워주면 자가발전을 해요. 네가 신이라는것이 그렇게 자랑스럽냐? 오늘 하루는 믿어주기로 했으니 할수없지. 그래 재훈이가 신에게 도전한다."
나는 복도의 책장으로 가서 장기판과 말을 꺼내서 병실로 돌아왔다. 장기판을 펼치고 말을 정렬한후에 운영이와 장기를 두었다. 내가 초나라를 잡고 운영이가 한나라를 잡았다. 그렇게 대국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수 두수 차근차근 장기를 두었다. 왕옆에 마를 올려놓았고 상으로 졸을 잡아먹었다. 운영이는 내가 차분히 하나씩 올려나가는 것을 보고는 왼쪽에 마와 상 그리고 포둘을 포진시켰다. 보통 상하나에 졸 둘을 따면 이득이고 하나만 따고 죽으면 손해인데 운영이는 정석을 깨고 상으로 졸하나를 먹었다.
나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상을 잡아먹었고 운영이는 또 마와 상을 맞바꾸었다. 분명히 나에게 유리한 상황인데 무엇인가 불안했다. 왼쪽길이 다 뚫린것이다. 운영이는 포로 왕옆의 마를 먹었고 나는 어쩔수 없이 왕으로 포를 먹었다. 이어서 내려오는 차두개로 장군을 불렀다. 그리고 하나남은 마로 차를 왕으로부터 막고있는 졸을 먹었다. 그렇게 차두개에 의해서 외통수가 만들어졌고 장군을 불렀다. 나는 순식간에 한판을 지고 말았다.
분한 나는 연거푸 세판을 더 두었지만 운영이에게서 한판도 이기지 못했다. 바둑이나 장기 체스같은 잡기는 친구들중에서 잘한다는 평을 듣고있는 나였는데 여기서는 여지없이 깨지기만 하니까 자존심이 상했다. 친구들에게는 진적이 거의 없었는데 또래친구인 운영이에게 처참하게 패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병원에 오고나서는 쉴새없이 깨지고 있어서 내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다. 그리고 네판째도 거의 끝나갔다. 나는 외통수에 걸려서 주춤했다.
"장기 두는 사람 어디갔나."
"제길 졌다 졌어. 앞으로 운영이 너를 장기의 신이라고 불러주마."
"쯧쯧 재훈이 나한테 안되겠는데 마하고 포하나 떼고 두면 딱 맞겠는데 어때 빼고 둘까?"
"됐어 제길 다시둬. 너 무슨 꽁수라도 쓰는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질 실력이 아닌데 말야."
"내가 장기대회에서 준우승 한적이 있다고 말 안했나? 아 그때도 지금처럼 하수하고 두는 편한 기분으로 뒀으면 우승했을텐데. 나는 그때 신답지 않게 흥분해서 졌었어. 아 어쨌든 지금은 장기가 조금 질리니까 다음에 또 두자. 그건 그렇고 유화한테 학 천개는 언제 줄 생각이냐? 유화한테 주고난 다음에 나한테 결과보고는 하겠지? 어떻게 될지 흥미 진진한데."
"내일 유화한테 학천개를 주면서 말할거야. 그런데 정말 내가 학천개를 유화를 위해서 접었다고 해도돼? 나는 매일 밖으로 돌아다니고 노는것을 봤는데 그사이에 학천개를 접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텐데 말야. 차라리 너하고 같이 접었다고 하는게 낫지 않을까?"
"그건 네 판단에 맡길게 잘 생각하고 결정해라. 그리고 정 불안하면 나한테 꾸준히 기도해라. 그러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거다. 재훈이 설마 신인 나를 못믿는것은 아니겠지?"
"그래 그래 신인 너한테 꼭 기도할게.내가 기도하면 내 목소리를 듣고 유화하고 잘될수 있게 도와줘. 나도 노력많이 했으니까 너의 도움만 있으면 잘될것 같아. 네가 신이니까 천사를 설득하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요새 유화가 나한테 자주 기도하더라. 학천개를 접었으니까 병실의 모든사람들을 퇴원시켜 달래. 재훈이 네가 너도 그런생각으로 학 천개를 접었다고 하면 공통분모가 생기니까 동질감이 들거고 그거는 마음을 여는데 많은 도움이 될거야. 원래 사람은 같은 일을 하고 있을때 의지도 더 되고 더 호감이 가는 법이야. 너도 알겠지만 여기 정신병원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잖아. 그러니까 유화를 잘 달래주고 동질감을 이끌어내는것이 좋을거야. 이정도 코치해 줬는데 재훈이 잘할수 있겠지? 이래도 못하면 유화가 너를 전혀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다는 증거야. 그럼 이제 모든것은 너한테 달렸어. 알겠지? "
"운영이가 요즘들어 말발이 많이 늘은것 같아. 이제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 하는것도 많이 줄었고 말야."
"이봐 재훈이 잘나가다가 왜 삐딱선이야. 신인 내가 언제 헛소리를 했어? 나는 언제나 맞는말만 하고있어. 나는 완벽한 신이잖아."
나는 지금 그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에 꿈에서 학 천개가 날아다녔다. 유화가 접은 학까지 이천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녔다. 유화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소원을 빌었다. 유화는 다른사람들의 퇴원을 빌었고 나는 나와 유화의 오픈행을 빌었다. 유화가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환한 미소에 나는 시원하게 웃었다. 이미 오픈에간 천복이와 인성이 창운이가 손짓하고 있었고 퇴원한 은주누나가 미소지었다. 그리고 병실의 모든 환자들이 퇴원을 했고 밖에서 모두와 만났다. 유화와 나는 키스를 하고 껴안았다. 그런데 그순간 유화의 얼굴이 후성이로 바뀌었다.
"으악!"
개꿈이다. 그런데 후성이가 내옆에 와있었다.
"재훈아 귀신이 그러는데 너를 꼭 안아주래. 잡귀들이 노린다고. 또 안타깝지만 나도 한 2주쯤 후에 오픈으로 갈거야. 아마 너도 그때쯤에 오픈으로 가게 될거야. 귀신이 너는 지금 행복하지만 다른 귀신들이 끼어들어서 불행하게 될거래.그러니까 내가 너를 안아주어야 한대."
"귀신이고 나발이고 제발좀 닥쳐줘. 너는 여기서 약먹고 치료한지도 오래된것 같은데 왜 아직도 귀신이 씌였다고 생각하는거지? 그리고 사람을 왜 이렇게 괴롭혀? 싫은건 싫은거야. 더이상 껴안지마라."
"겨우 껴안는것 가지고 그래? 나는 재훈이가 좋아서 그러는건데 그리고 잡귀들을 쫒아준다는데 얼마나 좋아? 나는 재훈이가 귀신에 씌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는거야."
"아침부터 재수없게 그러지 말고 꺼져. 매일 안볼수도 없고 짜증나네. 간호사님 후성이가 또 껴안아요. 좀 쫒아주세요."
"후성씨 제발 정신차려요. 주변 환자들이 모두 싫어하는데 왜 그래요? 정말 의사선생님한테 말해서 구석방에 격리시킬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발 다음부터 이러지 마세요."
간호사가 후성이를 자기자리로 돌려보냈다.
"아 이젠 자고 있는데도 다가와요. 정말 같은 병실에 못있겠어요. 진짜 말마따나 귀신은 저놈 안데려가나."
"재훈이 말이 맞아요. 더이상 후성이하고 같은 병실 쓰기 힘들어요. 호모자식 하고 같이 생활하는것도 정말 못할짓이에요. 역겨워서 정말."
"트렌스젠더나 게이를 군대안보내는 것처럼 저 호모자식좀 어떡게 해주세요."
병실의 환우들 모두 후성이에 대한 불만을 토했다. 후성이는 풀이 죽은채 자리에 앉아서 전처럼 초코파이를 꺼내서 먹었다. 누가 뺏어먹기라도 할까봐 고개를 숙이고 꾸역꾸역 먹었다.
"후성아 안뺐어 먹으니까 고개 숙이지 말고 먹어라. 그리고 재훈아 준영아 후성이 체하겠다. 빤히 쳐다보지 말고 할거해라."
"예 성호형님. 저희가 좀 심하긴 했네요. 위당 후성이가 또 스트레스받고 초코파이 먹는게 재미있어서요." 사람들이 후성이 별명을 지었는데 후성이가 자신을 무당이라고 하자 초코파이 많이먹는 위당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후성이는 별명에 걸맞게 먹을것이 생기면 나눠먹지 않고 숨어서 먹었다. 가끔 부모님이 오셔서 피자나 치킨을 사주시면 다른 병실환우들과 나누어 먹는것이 아니라 혼자 고개를 돌리고 먹었다. 영훈이혀은 그 모습이 꼴보기 싫다고 항상 투덜댔고 그럴때면 후성이의 뒤통수를 치거나 후성이에게 눈을 부라렸다.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철준이형도 후성이의 행동을 보며 눈살을 찌뿌렸다. 준영이형도 후성이가 탐탁치 않은지 먹을것이 생겨도 후성이한테 잘주지 않았다.
"재훈아 다른사람들이 다 후성이를 싫어해도 너는 좀 달랐으면 한다. 솔직히 나도 후성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병실 쓰는 사람들끼리 왕따를 만들어서야 되겠어? 예전에 중국 유학갔을때도 왕따였다던데 여기서 까지 우리가 후성이를 따돌리는게 옳을까? 아마 이렇게 지내면 지낼수록 후성이의 병은 악화될거야. 형의 입장에서 부탁하는데 재훈이 니가 후성이 좀 챙겨라."
"후성이가 더이상 껴안지만 않으면 챙길수 있어요. 하지만 계속 껴안는다면 아무리 성호형님 부탁이라도 들어줄수 없어요. 아무튼 제가 할수 있는데 까지는 해볼게요."
나는 후성이 옆으로 가서 콜라를 주었다.
"후성아 체하겠다. 콜라라도 마시면서 먹어라." 그렇게 숨어서 먹지도 말고. 우리가 먹을것을 주면 주었지 뺐어먹지는 않을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니 나는 그런 생각으로 먹는것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먹는게 마음이 편해서 그래. 사람들이 싫어한다면 최대한 안껴안도록 노력할게. 나를 따돌리려고 하지는 말아줘. 너무 슬프니까."
후성이가 나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녀석도 귀신이 들리고 싶어서 들린것은 아닐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인 이상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사람하고는 결코 친해질수 없다.
"후성아 내가 간식으로 산 새우깡하고 포카칩 같이 먹자. 이런건 혼자 먹으면 별로 맛이 없어서 말야." "나야 좋지 재훈아. 그런데 귀신이 그러는데 네 옆에 할매 귀신이 있대. 그 귀신을 쫒으려면 내가 안아줘야 한다고 하는데 한번만 안으면 안될까?"
"당연히 안되지. 비싼 포카칩 먹고 자꾸 흰소리 할래? 네가 중국에서 따돌림 당한 이유를 알겠다. 너는 남이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 하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너를 좋게 생각하겠어? 앞으로는 남이 싫다고 하면 더이상은 하지마라"
"그래도.. 좋은 일인데 왜 다들 싫어하는거지? 운영이한테는 자기가 신이라고 믿고 있는데도 다들 운영이한테는 잘대해주면서 왜 나한테는 이러는거야? 그냥 안게 해주면 안되는 거야?"
"당연히 안되지. 잘들어. 남자는 호모가 아닌이상 남자가 껴안는것을 싫어하는건 당연한거야. 운영이도 너처럼 정상은 아니지만 너처럼 사람이 싫다는건 하지 않잖아? 여기있는 사람들 모두 외롭고 힘들어. 너도 외로운것은 알겠지만 네가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하고 멀어질거야. 잘생각해봐."
후성이는 기분이 상했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초코파이를 우적우적 씹고 콜라를 들이켰다.
"왜 나한테만 이러는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귀신이 그러는데 너희들 퇴원하려면 한참 멀었어. 나하고 마주칠날은 많고도 많아. 자꾸 그러면 잡귀 안쫒아준다."
"잡귀가 설치게 놔둬. 너한테서 도움받고 싶은 생각없다.무당이건 뭐건 넌 빨리 오픈으로 갔으면 좋겠다. 뭐 우리가 아직도 한참 있어야 한다고? 그럼 우리보다 심한 너는 몇년은 있어야 할거야. 같은 병실 사용해서 그래도 봐주려고 하니까 악담을 퍼부어? 재훈아 너는 할만큼 했다. 아무리 성호형님 말이라도 더이상은 옹호할수 없다."
준영이형이 화가 단단히 난듯 했다. 여기있는 사람들 모두 빨리 퇴원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후성이가 악담을 퍼부우니 화가 나는것이 당연했다. 거기에다가 후성이는 식사반찬이 뭔지를 정확하게 말해왔고 귀신이 씌였다는 후성이의 말이 실제로 일어난적이 많았다. 그런 후성이가 그런말을 했으니 다들 분노한것이다.
앞으로 한참이나 여기에 있어야 한다니 정말 앞이 캄캄했다. 후성이도 자기가 할말 못할말을 못가리고 말한것을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후성이는 자기자리로 돌아와서 이불을 덮고 자려고 했다. 다른사람들도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후성이를 닦달할 생각은 없었다.
"재훈아 후성이는 신경쓰지마. 신인 내가 돌봐주도록 할게. 귀신이 들렸다니 정말 심각하네. 내가 신이 아니었으면 도와줄 생각도 못했을거야. 그렇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정말로 혼자가 될것같아. 밖에서도 따돌림 당해서 여기로 왔는데 여기서까지 따돌림을 당하면 너무 가혹한거 아닐까? 신은 자비심이 있어야되. 그건 그렇고 학천개를 병에 담았으니까 천사한테 가서 주고 말잘해. 내가 노력한것도 있으니까 날봐서라도 신중하게 유화한테 말잘해."
운영이는 천사와 유화의 이름을 섞어서 부르는것이 아직도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래서 천사라고 농담처럼 말한 유화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을것이다.
"네가 잘못하라고 말해도 잘할테니까 걱정 붙들어매. 설마 내가 그거하나 못하겠어? 아무튼 신인 운영이가 신경써주니까 고맙다."
어쨌든 유화한테 말하는것이 우선되어야 되는데 진난번에 희정이 아줌마한테 무례하게 말한것 때문에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말을 걸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유화하고 잘되려면 내가 먼저 말걸어야 한다. 나는 여자병실로 가서 유화를 불렀다. 유화가 내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재훈아 왠일이야? 갑자기 부르고. 참 희정이 언니한테 사과해. 잘해주려고 한건데 네가 그렇게 반응하면 어떡하니? 희정이 언니보고 지금 나오라고 할까? "
"다음에 자연스럽게 사과할게.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나도 학천개를 접었다고 했지? 여기 학천개가 있어. 소원으로는 유화를 오픈으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어때?"
"재훈이 네가 학천개를 접었다고? 나야 하루종일 병실에 앉아서 학천개를 접었다고 해도 너는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바둑 장기를 두고 탁구를 쳤잖아. 그런데 학을 접을시간이 있었어? 어떻게 접었는지 궁금하네."
"좋아 어차피 숨기려고 했던게 하니니까 사실을 말해줄게. 내가 접은것이 아니라 면목없기는 한데 운영이가 나를 도와서 대부분의 학을 접었어.천사와 내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접어주었대. 그리고 소원은 내가 대신해서 빌어달라고 했어. 하지만 나도 내가 널위해 준비한것이 있어. 부족하지만 시한편을 써보았어."
'너를 위해 피는 꽃'
가을은 낙엽을 몰고온다
나풀나풀 떨어지는 낙엽에
소원을 적어서
한장한장 하늘로 던져본다
한장씩 떨어지며 깊어가는
너를 향한 나의마음
나는 그속에서
아름다운 천사를 봤나보다
가을의 언저리에서
사랑을 꽃피우려고 한다
미소를 짓는 유화 (꽃이 있음)
내맘에 담아
가을 하늘에 흩뿌린다"
나는 많은것을 바라지 않고 내년까지 계속되는 사랑을 원해. 그것이 짧다면 내년 이맘때에 못쓰지만 평생을 아우르는 시를 써줄게. 근데 너무 못써서 쪽팔리다. 다음번에는 정말 내가 학천개를 접어서 너를 위한 소원을 빌어줄게. 하지만 이번에는 운영이의 정성을 생각해서 운영이와 너의 오픈행을 빌거야. 나역시 너와 같이 오픈으로 가고 싶고 말야."
"그런데 때가 어느땐데 프로포즈를 하면서 시를 쓰지, 재훈군? 뭐 나쁘지는 않네. 프로포즈의 답은 지난번에 말했듯이 일주일 후에 알려줄게. 일단은 너의 마음만 받을게. 운영이가 신타령만 하는줄 알았는데 이런걸 신경써주네. 학천개를 접는게 쉬운일은 아닐텐데 말야. 운영이한테 고맙다고 전해주고 나도 너희와 오픈으로 같이 보내달라고 빌게. 아니 그전에 운영이가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것만 아니라면 애가 참착한데."
"내 생각도 그래. 운영이가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는것 같아. 정말 자신이 신이라고만 믿지 않으면 나가서도 만나고 싶은데."
"재훈아 자기가 신이라고 믿어도 친구라면 밖에서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 비록 그사람이 남다른 병을 갖고 있다고 해도 말야."
"그래 운영이하고는 나가서도 만날거야. 하지만 다른사람은 몰라도 후성이하고는 못그럴것 같아. 그래 내 생각은 조금 편협해. 생각해보면 나 자신부터 친구의 병이 심각하다고 안만나면 내가 병에 걸린것을 아는 친구들이 나를 외면해도 할말이 없을것 같아."
"그건 재훈이가 알아서 하겠지. 여자 병실에도 후성이처럼 다른사람하고 거리가 있는 사람이 있어. 바로 희정이 언니야. 다른사람들이 아무리 싫다고 하는대도 끝까지 매니큐어를 칠해주려고 하거든. 의도는 좋지만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그러니까 다른사람들이 그 언니를 피해. 희정이 언니는 네일아트를 해서 잘발라주기는 하는데 아쉬워. 내 발을 봐봐. 정말 패디큐어 예쁘게 잘됐지. 나는 힘들어도 그 언니하고 잘지낼려고 그래. 나도 다른사람들한테 후성이가 자꾸 껴안아서 짜증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그렇지만 귀신이 들려서 후성이가 그러는건데 정말 불쌍하기도 하지 않아? 후성이는 병실 밖에도 잘안나오고 남자 병실에만 틀어박혀 있잖아. 그게 내가 보기에 답답하기도 하고."
"유화가 마음씨가 착하구나. 그러니까 내가 유화를 좋아하는 거지만. 나도 희정이 아줌마가 부담스러워. 네가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할거지만 내키지는 않아. 후성이와도 잘지낼수 없을것 같고. 하지만 하늘같은 유화의 말을 어길수는 없으니까 잘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노력해 볼게. 유화는 학다접고 요새는 뭐하고 지내? 지난번에 보니까 한의학 책보는것 같던데 재밌어?"
"아 그거? 내가 사이버 대학 다니고 있거든. 정확히 말하면 한의학과는 아니고 음 그냥 한방에 대해서 배우는거야. 퇴원하면 다시 다녀야 되니까 지금 미리 보고있는거야. 너도 빌려줄까? 그리고 요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보고있어."
"어 나도 그책 읽고 있는데. 다 읽으면 서로 의견교환도 하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나도 정말 재미있어서 쉴새없이 보고있어. 아마도 오늘중으로 다볼거 같은데."
"이 책은 워낙 유명한거라 나도 한권 구입했는데 재훈이도 한권 샀나보네. 지난번에 보니가 재훈이 그리스 로마 신화 읽고 있던데 다 읽고나서 나 빌려주면 안될까?"
"지금 당장 빌려줄게. 잠깐만 여기있어봐 나는 병실로 돌아와서 그리스 로마 신화책을 가져올테니까. 뭐 다른것은 필요한거 없어? 카페라떼라도 사올까?"
"재훈아 또 또 그거야? 이제 좀 새로운것좀 만들면 안되? 언제까지 사골국처럼 그거 울궈 먹을거야"
"그럼 유화야.. 나랑 결혼하자."
"푸후후 뭐? 결혼하자구? 재훈이 너 정말 재밌다. 알고보니 완전히 개그맨이잖아.뭐 좋아 내가 여기서 나가고 그때도 너하고 사귀고 있으면 결혼할게. 그때는 그 소원을 들어줄수 있을거야."
"쳇 차라리 결혼하기 싫다고 해라. 누가 그말 믿을것 같아? 자꾸 그러면 유화 덮치는 수가 있어."
"병실사람들!! 늑대 한마리가 나타났어요. 병실 사람들 저좀 구해주세요." 유화가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운영이의 바램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성과는 있었다.유화와 사이가 좀더 편해졌고 호감을 받은것 같다.
"유화야 수련이 누나는 수련이 누나가 갑자기 그러니까 당황스러웠었어. 누나한테 별일은 없지?"
"음 약간 말이 없어지고 조금 멍해진것 같아. 새로바꾼 약기운이 독한가봐. 하루에도 두세번 자고 굉장히 무기력해 보여. 보는 내가 다 안쓰럽다니까."
수련이 누나가 약때문에 힘든것 같았다. 약을 바꿀때에는 대부분 신경안정제가 들어가서 힘이 빠진다. 약기운이 적응되지 않는데다가 안정제까지 먹으니까 의욕이 사라진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있다. 그래서 예전에 철준이형도 병실에서 난리를 쳤지만 요즘에 약을 먹은후에는 조용하다. 새삼 약기운이 무섭다는것을 깨달았다.
유화와 나는 수련이 누나 이야기를 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련이 언니가 힘이 빠져서 요즘에는 사람들하고 말도 잘안하고 있어. 아마도 여기 병실생활을 오래하다보니까 지쳐서 더 힘들어진것 같아. 이곳은 정말 오래있을곳이 아닌것 같아. 멀쩡하던 사람도 주변에 후성이나 화수 같은 애들과 생활하면 이상해 질거야. 수련이 언니도 우리처럼 병이 있는 사람들하고 지내다 보니까 병이 도진것 같아."
"그럴지도 모르지. 나도 귀신타령을 하는 후성이나 자신이 신이라고 믿는 운영이와 지내면 걔내들한테 물드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성호형님이나 준영이형과 영훈이형이 병실에 남아있어서 견딜수 있엇어. 수련이 누나도 옆에 유화가 있기 때문에 잘지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나봐?"
"은주 언니가 오픈으로 먼저가고 또 퇴원했다는 말을 듣고 난후부터 혼자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대. 아마도 자기보다 늦게온 친구가 자신은 클로즈에 있는데 먼저 오픈으로 간것도 모자라서 퇴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것이 충격었나봐. 애써 아무렇지 않은듯 활달한 모습을 보였지만 마음속에서 앙금이 되었나봐. 그래서 은주언니의 이야기가 나온것 같고 그것이 클로즈생활을 견디기가 힘들어진 이유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수련이 누나의 입장이 이해가 되. 나역시도 같은상황에 처하면 그런 생각을 할것 같아. 천복이만해도 그래. 천복이도 비슷한 시기에 온 지운이가 먼저 오픈으로 가니까 초조해하던 기억이나. 쟤는 오픈으로 가는데 나는? 하는 생각이 들엇을거야. 앞으로 유화가 수련이 누나를 많이 신경써 주어야겠어. 그렇다고 수련이 누나 신경쓰느라 나한테 관심을 잃으면 안되." "재훈이 잘나가다가 애써 생긴 이미지를 깨는구나. 너한테도 관심 보일테니까 그런생각은 접어두고 뭐 수련이 언니를 위해 할수있는 일이 없을까?"
"특별한일은 당장에 하기가 힘들고 며칠후면 수련이 누나 생일이니까 초코파이 케익에다가 병실사람들이 모여서 생일축하 파티라도 하면 어떨까?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수련이 누나도 그렇게 모두가 축하해주면 마음의 응어리가 풀릴것 같아. 여기에 있는 생활도 그래도 사람사는곳이라는 생각이 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질것 같아."
"좋은 생각이야 재훈아. 내가 여자병실에 있는 사람들한테 수련이 언니 모르게 생일파티 준비하도록 할테니까 재훈이는 남자병실 사람들에게 말해봐."
"마님 돌쇠에게 이런 큰일을 맡기시다니 송구스럽습니다.오늘밤에 마님을 찾아가도 될런지요." 어흠 돌쇠야 오늘은 마님이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으니 다음기회를 노리거라. 그럼 마님은 가보마."
유화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으면서 여자병실로 갔다. 나 역시 수련이 누나를 기브게 해준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고 남자병실 사람들에게도 말해야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병실에 들어가자 뭔가 이상한느낌이 들었다. 운영이가 넋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고 준영이형이 운영이를 쏘아보고 있었다.
"난 신인데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지? 너희들을 구하기 위해서 왔는데 왜 날 박해하는거야. 준영이형은 왜 날 못믿고 이러는거야."
"그건 네가 잠자고 있는 나를 때려서 그런거 아냐. 나한테 마귀가 싀워서 엑소시즘을 하겠다고 난리친게 너 아냐? 생각안나?"
"그건 후성이도 형이 귀신이 씌였다고 하고 내가 보기에도 형이 뭔가에 씌인것 같아서 엑소시즘을 하려고 한건데 그게 잘못이야?"
"넌 아직도 자신이 신이라고 믿고있어? 그리고 귀신이 씌였다는 후성이의 말도 믿고 있구나. 나한테 귀신이 씌였다면 내가 해결할일이지 너희가 끼어들일이 아니야. 가뜩이나 여기생활 힘들고 심란해 죽겠는데 잡것들까지 이러네."
"성호형님 어떻게 된거에요?"
"재훈이구나. 아까 준영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괴성을 질렀어. 왜 날 여기에 가두고 있냐고 큰소리를 치면서 말야. 말리려고 왔던 간호사들도 때리고 운영이하고 후성이가 엑소시즘 이야기를 하니까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고함을 쳤어. 운영이가 준영이를 한대 때렸고 후성이는 그런 두명을 말렸어."
잠시후 남자 간호사들이 몰려와서 준영이형을 붙들어매고 나갔고 운영이와 후성이는 담당의사선생님이 면담실로 데려가 면담을 했다.
"놔 노란말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이 감옥에 가두어두고 있을거야? 난 난 더이상 미치기 전에 여기서 나가야해. 미쳐버린 운영이와 후성이처럼 될거같아. 나를 괴롭히고 있어. 싫어. 난 구석방에 갈수없어. 클로즈도 모자라서 격리 될수는 없어. 제발 제발 제발 나를 내버려둬."
남자간호사들이 착잡한 표정을 지으면 준영이형을 묶었다. 그리고 준영이형을 구석방으로 데려갔고 팔뚝에 안정제를 꽂았다. 나도 저런 상황이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미쳐버리면 어떡하지? 순간 말못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멀쩡해보이던 준영이 형이 이렇게 될줄이야. 수련이 누나도 그렇고 요새 정말 많은사람들이 병실생활을 힘들어 하고 있는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병실사람들에게 수련이 누나 생일 파티 하자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문득 퇴원한 은주누나가 생각났고 정말 한없이 부러워졌다.
정말로 절실하게. 과연 나는 이곳에서 나갈수 있을까? 멀리서 텔레비전 소리만이 정적이 흐르는 병실에 가득찼다. 같은 병실생활 해본 사람으로서 준영이형이 난동을 부리는것이 이해가 갔다. 내 생각으로는 이곳에서 삶의 낙을 잃어버린것이다. 술과 담배도 불가능하고 독한 약기운에 성욕조차 일어나지 않으니 살아있다는 실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것이다. 사람에게서 욕구가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일까? 그것은 일종의 죽음이다. 아니 차라리 지금의 준영이형에게는 죽는것이 더 나을것이다.
다른사람들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같은 고민을 하고있기 때문에 준영이형을 이해할수 있을것 같다. 나는 삶의 목표를 찾기위해서 은주누나를 만났고 지금은 유화를 만나고 연애를 하려는것이다. 성호형님과 다이어트를 하는것도 목표가 없는 지금의 삶에 자극을 주기위해서고 그 한방법으로 하는것이다. 준영이형의 절규가 병실안의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왜 우리가 여기에 갇혀있어야 하는것일까? 왜 우리만 이런고통을 받아야만 하는것일까?
우리가 밖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는 전에 산책을 나갔을떄 느꼈다. 다른사람들은 남자 간호사 뒤로 산책로를 가는 우리들을 보면서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그랬던 광경과 엘레베이터 10층을 눌렀을때의 꺼림찍하다는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여기가 정신병원이고 우리는 정신병자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사회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있는지 그 차가움에 살이 떨려왔다. 아마 준영이형도 그런것을 겪으며 힘들어했을것이다. 같은 환우로서의 느낌이었다. 병실의 사람들은 말은안했지만 서로의 생각을 짐작할수 있었다.
"다들 침울하게 왜들 그래? 여기오기전에는 너희들도 정신병자를 어떻게 생각해왔어? 아무리 미친놈들이 사는곳이지만 여기도 사람사는곳이야. 다들 그렇게까지 비관할 필요는 없어. 그런다고 자기혐오외에 바뀌는게 있을것 같아?"
"철준이 말이 맞다. 우리는 구석방에 있다가 돌아올 준영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해. 우리들은 환우고 여기는 운명공동체야. 이럴때일수록 듬직한 모습을 보여야지. 앞으로 살아가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되. 이래서 사회에 나갈수 있겠어? 밖에 나가서도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자괴감으로 살거야? 그럴거야? 우리도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것은 아니잖아. 자격지심 갖을필요 없어. 요새는 옛날과 다르게 정신과에 왔던 사람들이 많아. 위안을 가지라고. 막연한 불안감따윈 떨쳐버려 우린 당당하니까. 안그래 재훈아?"
"성호형님 말이 맞아요. 다른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간에 우리가 그것을 꼭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만약 우리가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꺼리는 친구나 있다면 멀리하면 그만이에요. 어차피 그정도 밖에 안되는 관계이니까요. 우리는 좀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요. 다른사람들의 시선을 일일이 신경쓰다가는 우리는 버텨내지 못할거에요."
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서 아직도 수련이 누나 생일파티 이야기를 못꺼냈다.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거북했다. 이왕말할거라면 성호형님에게 말하는것이 가장 나을거란 생각에 성호형님 앞으로 갔다. 이야기를 막하려던 참에 성호형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나도 아무이상 없을것 같지만 여기오기전에 극도로 불안해서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을수가 없었어. 정신이 집중이 안되고 같은자리에 있으면 머리가 지끈거렸어. 그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이 그렇듯이 집에 틀어박혀서 울고 술마시고 그런생활을 했어. 그모습을 보다못한 마누라가 나를 여기로 보냈어. 여기 생활은 힘들지만 같은 병을 앓고 같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사람에게 의지하게 됐어. 이건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재훈이와 만나고 영훈이 천복이 인성이 창운이 운영이와 만난것이 과연 나에게 손해일까? 그렇지 않아. 우리는 우리를 이해할수 있는 환우들을 만난거야. 의지할수 있는 나를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거야. 그러니까 다들 조금 괄시 받는다고 좌절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성호형님 말이 맞아요. 늦게 들어온 철준이 형도 다른사람들도 인연을 만난거에요. 밖의 사람들은 죽어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여기의 환우들은 다르잖아요. 서로를 이해해줄수 있잖아요. 이것이 과연 가치가 없을까요? 운영아 신인 너의 생각은 어떠냐?"
"재훈이 말이 맞아. 나는 여기서 천사를 만났고 병실의 사람들을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얻었어. 그래서 다른사람들이 싫어하는 후성이와도 잘지내보려고 그래. 그럼 우리 이런 생각들 나눈 기념으로 간식파티나 하면 어떨까?"
"운영이가 센스있어 졌구나. 자 각자 과자 두개씩 시키고 1.5리터 음료수 몇병 시켜. 뭐 할수있는것이 과자파티밖에 없지만 다들 불만 없겠지?"
"역시 성호형님. 그리고 운영이 말잘했다. 이럴때일수록 환우들의 화합이 제일 중요하지. 자자 이번에 파티하면서 묵은거 다 풀자고.그리고 후성이너 오늘도 숨어서 먹으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버릴거다."
후성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영훈이형이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시키는 간식목록을 적어서 간식을 신청해주는 간호사한ㅌ에 가서 간식신청을 했다. 그것을 보자 간호사들이 재밌게 놀라고 했다.
"재훈씨 오늘 파티한다면서요? 냉동식품이라도 준비할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못해주니 미안해요."
손명희 간호사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끝내 수련이 누나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철준이형이 병실밖으로 나가면서 나를 불렀다.
"재훈아 파티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오랜만에 바둑 한판 두자. 요새 약기운이 심해서 정신을 못차리는데 머리 회전좀 시켜야 겠다."
"저야 좋죠. 근데 철준이형이 말하는 성명점 바둑이 뭐에요? 제가 두려는 핵심을 항상 먼저 두시던데 그게 성명점 바둑인가요? 대국을 하다보니까 그점이 제일 궁금하더라구요. 요혈을 찌르는 바둑인가요?" 네가 두는것을 보니까 애써서 정석을 두려는것 같은데 나한테는 안되. 나보다 하수와 붙으면 어디를 들어가도 집을 만들수 있어.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요한 자리를 먼저 점해야 하는데 그것을 빨리 파악하고 그 지점을 선수로 먼저 두는것이 성명점 바둑이야."
"그러면 전에 말한대로 네점을 깔고 두겠습니다. 한수 부탁드려요."
나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네점을 깔고 철준이형과 대국을 하였다. 나는 먼저 네점을 까는 장점을 살려서 우하귀에 돌을 선점했다. 철준이형은 여지없이 그곳에 파고들었다. 나는 우선 살기위해서 두점을 먼저 확보하고 철준이형의 돌을 압박해나갔다. 그러자 철준이형 역시 두점을 확보한다음에 우상귀에 침투해왔다.
나는 우상귀와 우하귀의 돌을 연결하려고 했지만 철준이형이 중간에서 벽을 쌓아서 막아 더이상 연결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좌상귀에 돌을 집중하여서 집을 만들었다. 네점을 깔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철준이형은 돌이 많이 깔린 좌상귀를 포기하고 중앙에 돌을 두기 시작했다. 나역시도 박자를 맞추기 위해 중앙에 돌을 두었다.
중앙에서 진격하려고 하는데 철준이형이 예전에 벽을 쌓았던 곳에서 막혀 더이상 나아갈수가 없었다. 그리고 돌이 끊어졌다. 중앙의 대마가 고사 된것이다. 어디에도 연결을 못하고 끊어져 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중앙의 대마가 죽어버려서 나의 불계패가 되었다.
이어서 바둑 두판을 더 두었는데 경기마다 나의 대마가 중앙에서 죽어서 불계패를 했다.
"또 졌네 어휴, 철준이형 돌을 다섯개 깔아야 되는거 아니에요? 상대가 안되잖아요."
"아냐 그렇지 않아. 다섯개를 깔면 내가 불리해서 이길수가 없어. 너하고 그정도의 실력차가 나는것은 아니야. 지금 내가 중앙에서 대마를 잡아서 이기는것이 관건이 잖아. 하지만 네가 중앙에 한점을 놓고 시작하면 나는 도저히 잡을수가 없어. 네가 그것만 연구하면 나하고 둘때 까는 돌의수를 줄일수 있을거야. 그러니까 네점이 적당하다는 거야."
나는 매번 지면서도 대마가 죽지 않았으면 이기는 판이 계속되자 호승심이 일었다.
"철준이형 오늘은 패배를 인정할게요. 하지만 다음에 둘때는 긴장하세요. 텔레비전에서 바둑을 꾸준히 본다음에 다시 도전할거에요. 그럼 나중에 또 두기로 하고 간식을 신청한곳으로 가봐야 겠네요. 일단 병실로 들어가계세요. 저는 간식 가지고 돌아갈테니까요."
나는 두손가득 간식을 가져와 재활활동하는 강당으로 갔다. 병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신문지를 텔레비전 앞의 소파에 깔았다. 그리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열어놓은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와서 달력을 넘겼다. 이런상황에서 어울리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달력을 보았다. 벌써 내가 온지 한달 반이 지나있었다.
"지금 이런얘기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여자병실의 수련이 누나 아시죠? 왜 탁구칠때 스매쉬 날리는 여자 있잖아요. 그누나가 지금 병이 심각해져서 힘들어하고 있어요. 같이 지내던 친구가 먼저 오픈으로 넘어간것도 모자라서 퇴원을 했고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친구가 없어져서 외로움도 느끼고 병실생활을 힘겨워 하고 있어요. 그런데 내일이 그 누나 생일이에요. 다같이 초코파이로 케익을 만들어서 가운데 놓고 과자를 사서 지금처럼 과자파티를 했으면 해요. 병실의 환우들이 모두 수련이 누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면 수련이 누나의 응어리가 풀릴것 같아요. 모두 축하해주세요."
"아 옆방의 수련이 말하는구나. 예전에 탁구치다가 무섭게 몰아치는 스매쉬에 계속 졌던 기억이 나는데. 이 성호형님 일생의 수치였지. 그래도 적어도 여기병실의 사람들은 다 이길수 있다고 생각해왔고 이겨왔는데 뜻밖이었지. 그런데 지금 그 활달하던 수련이가 힘들어한다고? 상상이 안간다. 아무튼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수련이 생일 파티를 해야지. 병실 사람들의 따듯한 관심속에서 생일파티를 받으면 마음의 상처도 많이 풀어지고 한결 나아질거야. 좋아 그럼 수련이 생일파티 준비하자."
"나도 그 생각에 찬성이야. 수련이가 내가 힘들때 얼마나 살갑게 대해줬는데 사람인이상 그걸 잊을수는 없지. 그리고 변화없는 무료한 생활에 지켜있는 병실 환우들에게도 좋은일이야. 성호형님 말대로 정말 제대로 준비해보자."
"과묵한 영훈이형이 뜻밖인데요. 평소에도 다른사람한테는 관심도 보이지 않던 영훈이 형인데 설마 수련이 누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것은 아니에요?"
"재훈이 이녀석이 못하는 말이 없어. 나는 그냥 내 여동생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뿐인데 말야. 아무튼 성격이 모나서 어울리기 힘든 나에게 잘대해 줬는데 그걸 외면할수는 없잖아."
"저.. 저도 끼어도 될까요? 사람들이 저를 싫어한다는 것은 알지만 저도 수련이 누나를 위해서 뭔가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수련이 누나라면 병실에서 같이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안면이 틔였구요."
"그래 후성이도 생일파티에 끼어서 생일축하 해줘. 어차피 후성이 한테도 도와달라고 할려고 했어. 한명이라도 더 수련이를 축하해주는게 좋은거지. 그러니까 너무 주눅들어 있지 말아. 어차피 우리들은 같은병실을 쓰는 환우고 네가 사람들을 껴안지만 않으면 우리는 충분히 너를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성호형님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도 특별히 후성이를 제외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우리가 후성이를 외면하는 것처럼 밖의 사람들도 우리를, 정신병자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기에 병이 심각하지 않다고, 후성이 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서로를 측은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후성이가 어쩌다가 저런 병을 앓게 되엇는지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후성이는 색종이를 꺼내더니 학과 거북이, 종이꽃을 접었다. 우리는 초코파이를 쌓아서 초코파이 케익을 만들었고 후성이가 색종이로 장식을 했다. 운영이는 수련이 누나를 위해서 축하 편지를 썼다. 운영이가 말해준 내용은 더이상 병실생활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고 힘들면 다른사람의 어깨에 기대라는 것이 주골자였다.
자신이라면 수련이 누나의 기도를 들어주고 개대어 쉴수있는 가슴을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다른내용은 공감이 가고 좋았지만 기도를 운영이가 들어주겠다는 것이 옥의 티였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신이라고 믿고있는 운영이라는 것을 알기때문에 쓴웃음을 지으며 이해했다. 나는 연습장 하나를 찢어서 병실사람들에게 축하멘트 하나씩을 적게했다.
어떤 환우는 자기글에 싸인까지 했다. 다른사람들의 걱정과 우려가 씌여져 있었고 정말 잊지못할 생일이라고 말했다. 쾌유를 빈다는 내용이 가장 많았다. 성호형님은 부인이 가져온 청포도를 뜯어서 한개씩 케익에 올려놓으면서 장식을 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수련이 누나 생일이지만 오늘 우리도 파티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오늘 수련이 누나 생일파티를 같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는 세팅을 끝냈고 나는 유화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유화야 네가 말한대로 오늘 밤에 수련이 누나 생일파티를 하기로 병실사람들과 합의를 보았어. 다들 적극적으로 생일파티에 참여하여서 고맙웠어. 여자병실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대?"
"나도 수련이 누나 모르게 비밀리에 준비하느라고 힘들었어. 그래도 희정이 언니가 많이 도와줘서 다른사람들하고 의견을 모으는것이 쉬웠어. 몰래 이야기하고 계획을 짜느라 진땀뺐어. 그런데 오늘 생일파티를 한다고? 조금만 병실사람들하고 이야기 해 볼게. 아마 사람들도 좋아할거야. 우리가 이런기회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즐길기회가 없잖아. 우리가 또 언제 한번 뭉쳐보겠어? 수련이 누나가 갑자기 축처져서 병실 분위기도 좋지 않았는데 오늘 생일 파티를 성심껏 해주면 수련이 언니 기분이 많이 좋아질것 같아. 아무튼 재훈이 수련이 언니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고 배려를 해주어서 고마워. 역시 나한테는 재훈이 밖에 없어."
"참 의외로 후성이가 생일파티 준비에 참여해서 장식을 하는등 많이 도와줬어. 과자같은것은 미리 뜯으면 안되지만 장식하는것은 괜찮으니까 좀전에 장식을 했어. 케익도 미리 만들어 놓았어. 아마 보면 놀랄거야. 우리가 생각해도 남자들 같지 않게 섬세하게 장식을 했어."
"어련하시겠어요. 아무튼 좋게 좋게 진행이 되어서 다행이다. 기분도 좋고. 아마 수련이 언니도 많이 좋아할것 같아. 병실사람들이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생일파티를 준비해줄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할테니까. 우리 생일파티 보고 놀랄 수련이 언니를 생각하니까 정말 즐겁다."
"참 유화야. 운영이가 수련이 누나를 위해서 편지를 한통 썼어. 너를 천사라고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더니 이번에는 스매쉬의 수련이 누난가? 내가 한일은 그냥 연습장을 한장 찢어서 다른 병실 사람들하고 각자 한마디씩 남기게 했는데 운영이는 한마디로는 안되게 할말이 많았나봐. 주로 생일 축하와 쾌유를 바란다는 내용이지만 조금 보니까 길더라고.다른 이야기도 있을거야"
운영이는 안그렇게 보여도 미치기 전에는 연애경험도 많고 인기도 있었던것 같아. 예전에 너한테 써준 시도 운영이가 학천개하고 같이 시를 써서 보내면 좋다고 해서 보내라고 해서 보낸거야. 그리고 학천개를 접고 유화를 위해 소원을 빌어서 유화를 감동시켜보라고 했던것도 운영이야."
"그러면 그렇지 나도 재훈이가 이런센스가 있었나 하고 생각했었다니까 근데 운영이 센스였구나. 그렇다고 재훈이 선물에 감동하지 않았던것은 아니야. 운영이가 조언하고 도와줬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긴것은 재훈이 뿐이니까 흐응 운영이가 수련이 언니한테 뭐라고 썼을지 정말 궁금하다. 나중에 수련이 언니한테 몰래 보여달라고 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준영이 오빠가 난동을 피워서 클로즈의 구석방에 며칠 있게 됐다면서? 후성이가 겨안아서 때리다가 발작했다면서? 나도 후성이를 잘모르지만 남자끼리 껴안는것은 보기 않좋아. 그렇지만 내가 그런거 싫어하는것은 아니고.. 왜 연예인 팬픽이라는 것을 보면 남자끼리도 많이 좋아하고 사귀잖아. 그러니까 나도 그걸 보면서.. 어머 내가 무슨말 하는거지? "
"..유화 네가 BL 물을 좋아하는구나. 여자들이 더 변태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남자 입장에서 남자끼리 겨안는건 도저히 봐줄수 없어. 여자끼리 그러는것은 그런가보다 하지만. 정말 후성이가 껴안을때마다 목을 졸라버리고 싶다니까."
후성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본론인 파티준비의 경과를 이야기 했다. 유화는 내가 했던대로 연습장 한장을 찢어서 여자병실의 환우들에게 갔다. 그리고 한마디씩 적게하고 싸인을 필수로 했다. 여자환우들은 이런것이 처음인듯 신기해하면서 수련이 누나를 위해 한마디씩을 적었다. 남자병실 사람들이 과자와 음료수를 준비했고 여자 병실 사람들은 빵과 우유를 인원수대로 사서 하나씩 주었다. 다크서클이 인상적인 희정이 아줌마가 바삐 움직이면서 파티에 필요한 것들을 간호사들에게 부탁했다.
생일 폭죽도 사고 생일 축하 노래도 준비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나갔다. 희정이 아줌마가 수련이 누나는 네일아트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생일축하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예쁘게 물들여 준다고 난리를 부려서 말리느라 힘들었다. 그것을 유화와 내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수련이 누나의 기분을 생각해서였다. 여태까지 희정이 아줌마에게 안받은것은 싫다는 의사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호사들에도 오늘 수련이 누나 생일파티를 한다고 알렸고 다들 즐거워하고 재밌어하면서 파티일정을 물었다.
다들 참석하기를 원했다. 간호사 교대시간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게된 간호사들은 쪽지에 수련이 누나 생일축하 멘트를 적어서 주고갔다. 참석 못한 손명희 간호사가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텔레비전 앞에 깔아놓은 신문지에 준비한것을 내려놓고 둥글게 앉았다. 소파가 모든 사람들이 앉기에는 좁아서 다들 일어났다. 그리고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30분가량 후에 모든준비를 마쳤고 방안에만 틀어박혀있는 수련이 누나를 부르러 유화가 갔다.
잠시후 수련이 누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유화의 손을 잡고 강당으로 나왔다. 우리는 큰소리로 외쳤다.
"생일 축하합니다."
"뻥"
폭죽이 터졌다.
"깜짝이야."
폭죽소리에 수련이 누나가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수련이 생일축하 합니다."
"뻥!뻥"
병실사람들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수련이 누나를 가운데로 보냈다. 그리고 초코파이 앞에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남은 폭죽을 모두 터뜨렸다. 운영이와 나는 수련이 누나에게 다가가서 편지와 남자병실 사람들의 말이 들어있는 연습장을 주었다. 유화도 여자병실 사람들의 염이 담긴 연습장을 가져와 수련이 누나에게 주었다.
"다들.. 너무 고마워요 흑흑 안울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네. 저를 위해서 이렇게 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는데.. 정말 다들 너무너무 고마워요."
수련이 누나가 울먹이며 병실사람들을 보았다.
"하하 뭐 그렇게 울며 감동해. 별로 대단한 일을 해준것도 아닌데 그러면 당황스럽잖아. 그리고 어차피 수련이 네 생일이 아니라해도 파티를 하려고 했어. 그런 상황에서 재훈이와 유화가 같이 파티하자고 하고 병실사람들을 설득해서 이자리를 만들었으니까 고맙다고해. 여기 사람들 모두 수련이 네 생일을 축하하고 있어. 그리고 나도 수련이 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성호형님이 계속 울고있는 수련이 누나의 등을 도닥여 주었다. 과묵하기만 하고 장난을 모를것같던 영훈이형이 폭죽하나를 빼돌려두었다가 수련이 누나의 얼굴에 갑작스럽게 터뜨렸다.
"수련아 울다가 웃으면 안되지. 어디에 뿔나잖아. 아무튼 생일 축하한다. 네가 힘들어 하는것은 알고있고 이해도 가지만 자포자기만은 하지마. 우리라고 힘들지 않겠어? 너 혼자 힘든게 아니야. 우리는 그냥 환자가 아니야. 같은 병실 생활을 하는 환우들이라니까. 또 또 운다.'"
수련이 누나는 울다가 웃다가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되는것 같았다. 우리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과자봉지를 터뜨렸고 콜라를 흔들어서 터지게 만들고 좋아했다. 그후에 음료수를 한잔씩 돌렸다.
"수련아 힘들다고 혼자서 끙끙대며 앓고 있는것이 좋은게 아니다. 때로는 주변사람들한테 기대기도 하고 이야기를 털어놓는것이 좋을때가 많아. 지금이 바로 그런때야. 사람은 혼자서는 살수없는 법이야. 그래서 혼자하는 고민은 풀리기 힘들어. 여기있는 사람들은 너를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들이야. 비슷하거나 같은 어려움을 격고있는 우리들이 너를 도와주면 도와주었지 해를 끼치진 않을거야.때론 이 오빠에게도 기대렴. 가슴 빌려줄테니까 울기도 하고."
"네 성호오빠. 오늘 너무 감격했고 저를 생각해주는 환우들이 너무 너무 고마워요.이러고 있으니까 마치 제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동안 제가 힘들었던것이 세상에 나혼자라는 외로움때문에 그랬던것 같아요. 병실 사람들은 계속 바뀌고 저는 클로즈에 있고 그 기간이 길어지니까 자연히 지쳐갔어요.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오픈으로 간것도 모자라 퇴원까지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겉으로는 축하해주었지만 속은 쓰렸어요. 참 이기적이죠. 나는 다 퇴원하는데 아직도 클로즈에 있다는 것이 초조해졌고 초조함은 곧 절망을 가져왔어요. 그것을 힘겹게 견디고 있는데 가장 친하던 친구인 연주가 오픈으로 가자 평상심이 깨졌어요. 그리고 퇴원까지 햇다는 소식을 듣자 아무생각도 안났어요.
다만 여기서 더 버틸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감정이 응어리가 되서 환청까지 들렸던것 같아요."
"그 마음 모르는것이 아니다. 나도 여기있으면서 나보다 늦게 온 ㅅ람들이 먼저 오픈으로 가는일이 많았다. 그럴때마다 마음을 다잡아보려고 했지만 감정이 정리되지가 않았어. 그래서 나 는 결심했어. 더이상 다른사람들은 신경쓰지 않기로 결정했어. 물론 힘들지만 체념을 하는것이 정신건강에 좋을때가 있어. 포기할때 포기하지 못하고 가망성 없는일에 신경을 쓰다보면 더 중요한것을 잃게 되. 너도 조급함을 버리고 힘들겠지만 남들은 최대한 신경쓰지마. 중요한건 너 자신이니까. 나갈때가 되면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가게 되어있어. 우리 같이 이 병실생활을 견뎌 보자."
"성호형님 어려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생일파티 계속해요.가장 중요한 생일빵이 남아있으니까 수련이 누나 몸조심하는게 좋을거야."
"재훈이 너 임마 지난번에 유화한테 유화가 부탁하면 내 엉덩이를 만지겠다고 했지? 어디 생일빵 한번 세개 쳐보시지. 나는 모든것을 잊지않고 있을테니까."
수련이 누나가 생일빵을 무서워하는것 같았다. 한번 세개 데인적이라도 있나 겨우 생일빵을 무서워 하네.
"에이 재훈아 무슨 생일빵이야. 헛소리 하지말고 과자먹고 정신차려라. 어떻게 된애가 스무살이 넘어서도 생일빵이 뭐야 생일빵이."
"그래도 나는 수련이 누나한테 생일빵을 먹여야겠어. "
"딱!!"
"아야 재훈이 너 이마가 멍들었나보네 정말 세개 때리네. 이녀석이 오냐 오냐 해주니까 머리끝까지 올라가네. 후환이 두렵지는 않은가보지? 응? 재훈군."
"아니 수련이 누나 알다시피 생일빵이 빠지면 생일파티가 재미없잖아 나는 그저 분위기 띄우기 위해서 이 한몸 희생한것 뿐이라고. 아야.. 다들 왜 그래?"
병실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내 이마를 손으로 딱소리나게 때렸다.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잖아. 할려면 수련이 누나한테 해야지 왜 엄한 내 이마를 때려. 아고고 따가워라."
"하하하 재훈이 너 꼴좋다. 어디서 어른한테 생일빵이야. 다 자업자득이지."
수련이 누나가 예전처럼 호쾌하게 웃었다. 나도 이마를 만지르며 아프다고 발광을 했어도 엄살이었고 수련이 누나가 기분이 좋아진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수련이 누나가 예전의 여유와 장난기를 찾은것 같았다.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한것이다 내 이마가 아프던 그렇지 않건간에.
"음 다들 뭐라고 썼는지 볼까? '누나 생일빵 기대하고 있어.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혼신의 일격을 날려줄테니까. 재훈이 이거 이거 반역인데 그래. '항상 활기찬 수련아 어디 아프니? 요새는 힘이 없는것 같다. 성호오빠가'
'누나 내가 누나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운영이'
이 자식도 웃기지도 않네 하하. '수련이 언니 잘모르겠지만 언니는 너한테 호감이 간다.항상 활기치기를 바래. 희정이 언니가'
고마워요 희정이 언니. 매일 언니 상대도 안해주던 나였는데 이런말을 보내줘서 감격했어요. 그럼 나머지는 나중에 읽어볼게요."
"누나 그 연습장이 중요한게 아니야. 운영이가 편지에다가 뭐라고 썼는지 그게 정말 궁금해. 그게 하이라이트야."
"공개해! 공개해!"
병실사람들이 어느새 단합해서 공개하란 말을 합창으로 불렀다. 운영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좋아 읽어볼게. 그럼 어디 운영이 마음이 어떤가 한번 볼까?"
-수련이 누나에게- 나 운영이야 알지? 평소에도 누나기도 계속해서 들어왔어. 들으면 들을수록 누나가 많이 힘들어하는것 같아서 내 가슴도 아팠어. 천사가 옆에서 누나 위로해주고 잘해주지? 생각같아서는 나도 끼어서 위로해주고 싶지만 나는 여자병실에 들어갈수 없어서 병실에만 있는 누나를 위로해줄수 없네.내가 여기 있게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수련이 누나가 병실사람들하고 잘어울렸던것이 기억나. 탁구도 치고 봊드게임도 하고 다른사람들하고 즐겁게 수다떠는 모습도 쭈욱 봐왔어. 그래서 나는 그런 누나를 동경했는데 요새는 병실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는것 같아서 섭섭해. 신인 나한테 그런 에로사항을 기도하면 넓은가슴으로 수련이 누나 받아줄게.이런 내마음 알지? -항상 누나를 지켜보는 운영이가-"
"이야 정말 운영이 마음이 이런줄 몰랐네 그랴. 이 누님한테 안겨. 나는 네가 신이 아니라도 좋아. 자 내품에 안겨 자식 귀엽네."
"다른건 다 좋은데 아직도 신타령이냐? 네가 장기의 신인것은 잘알지만 다른것은 아니잖아. 자식 네가 평소에 수련이 누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으면 내가 잘 도와줬을텐데 말야.지금이라도 도와줄까? 왜 혼자 애태우고 있었냐. 자자 운영이와 수련이 누나의 감동적인 포옹을 위하여 콜라 건배!!"
"포옹을 위하여!!"
병실 사람들이 웃으면서 음료수로 건배를 했다. 수련이 누나는 구석에서 운영이를 안고 연신 '자식 귀엽기는 누나가 그렇게 좋냐' 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운영이는 수련이 누나의 품이 따뜻한지 실실 웃었다.
"언니 그렇게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 이제 예전처럼 활기차게 지낼거지?"
"유화야 내가 언제 이상해지고 침울해진적이 있었냐? 나 수련이야 스매쉬 수련이라고. 유화 너도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 털어놔라. 특히 재훈이가 너한테 성희롱하면 엉덩이에 로우킥을 먹여줄게. 가드 올리라고 해."
"아니 누나 말이면 말이지 내가 언제 성희롱을 했어요? 그냥 말하다 보니까 뉘앙스가 그런말이 실수로 튀어나온건데 그정도를 성희롱으로 보면 곤란하죠. 악의는 없어요. 조금 만지고 싶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재훈이 이거 이거 알고보니 상습범이잖아.이 누나가 두눈 부릎뜨고 있으니까 유화한테 성희롱하기만 해봐 쌍방울이 흔들리게 맞을테니까."
"재훈이가 중증이기는 해요.그래도 나름 귀여운 행동도 하니까 용서해주려고 해요." "그녀석 여러번 말하지만 조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면 바로 덮칠거다.애가 개념을 안드로메다 저멀리 보내버린것 같아. 다들 재훈이가 위험인물이라는거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재훈이가 그런면이 있는건 확실해요. 그래서 천사한테 접근한다고 할때 도와줄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아예 말이 나온김에 재훈이가 그러지 못하게 때려잡죠."
"그래 재훈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애가 잡지에 여자모델이 조금만 늘씬하면 침흘리면서 보는건 수도없이 많아. 요즘에 읽는책도 보니까 '아라비안 나이트' 완역본이더라. 이책 말안해도 얼마나 야한지 알고있지? 흥흥 내가 그것을 보려고 하는데 재훈이가 정독하고 있어서 이러는것은 절대 아니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영훈이 오빠는 안그럴줄 알았는데 영훈이 오빠 실망이에요. 설마 오빠까지 그럴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재훈이가 그런거 본다니 조심은 해야겠네요." "아니 유화야. 남자라면 야한거 밝히는것은 당연한거야.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해. 여기 남자병동 사람들 대부분은 약기운 떄문인지 그렇게 성적인거 밝히지 않아. 그런데 그걸 밝히는 내가 건강한거라니까." "그게 무슨 궤변이야. 건강하다못해서 위험한거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병실에서는 너하고 영훈이 오빠만 조심하면 된다는 뜻인가?" 유화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고 나와 운영이형은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주춤했다.
"나도 앞으로 야한생각할거야. 생각해보면 약기운이 독해서 밖에서 처럼 그런생각 안했는데 정상적이라면 남자는 밝히는게 당연하잖아.아니 나는 신이니까 그런거 밝히면 안되나. 뭐 신은 남자 아닌가?"
"운영이가 경우가 없는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 바보라는것은 처음 알았네. 완벽한 신이라면 성욕같은것이 있을리가 없잖아. 완벽하다면 밝히는것이 이상하다는거야 신이니까.하지만 운영이도 실제로 남자니까 성욕이 있을수도 있지."
"남자만 성욕이 있다는것은 이해가 안되는데. 유화도 얌전떨고 있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밝히는지 어떻게 알아? 이 재훈이의 육감으로는 유화도 원하고 있어."
"재훈아 그게 말이되냐? 천사가 어떻게 밝히냐? 너의 기준으로 천사를 보지마라.불결하다. 천사는 깨끗하다고."
"운영아 헛소리 그만하고 수련이 누나 생일파티나 계속하자.이러다가는 남자들 다 짐승되겠다." "영훈이 형 말이 맞아. 소모전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다시 생일파티하자. 생일축하 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수련이 누나 생일축하합니다."
"재훈이 말돌리는 것좀봐 완전히 프로급인데. 뭐 이쯤에서 마무리짓는것이 나을것도 같다. 이 누나가 하해와같은 마음으로 재훈이의 죽을죄를 사하노라."
"재훈이의 죄를 사하노라!!"
모였던 사람들이 내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를때는 안따라하더니 나의 죄를 사하노라 하는 수련이누나의 말에는 다 따르자 나는 기분이 상했다.
"뭐 나만 그런건가? 영훈이형하고 운영이는 죄가 없나? 하여튼 사람들이 모여서 선구자를 핍박하고 있으니 통재로다.아 내가 인간관계를 이렇게 잘못맺은것인가."
나는 비록 쪽팔렸지만 다른사람들 모두 나를 놀리면서 응어리도 풀고 즐거워진것 같아서 말과는 다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도 내말에 내말에 한바탕 웃엇고 그중에는 수련이 누나도 끼어있었다. 뭐 한두번쯤 광대노릇하는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곧 사람들은 파티분위기에 취해서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준영이형이 구석방으로 가서 아쉬웠다. 형이 있었으면 더 즐거웠을텐데. 후성이도 오늘만큼은 혼자 숨서서 고개를 숙이고 먹지 않아서 분위기를 개는 일은 하지 않았다.
운영이는 수련이 누나한테 가서 농담조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수련이 누나를 사모해왔는지 수련이 누나가 천사보다 예쁘다는 말을 했다.
"뭐 수련이 언니가 나보다 예쁘다고? 이건 도전이야. 나는 인정할수 없어. 어떻게 사람이 천사보다 아름다워 운영이 말해봐. 그럼 신인 운영이가 재훈이 보다 못생겼다면 인정할거야?"
"유화야 왜 흥분하고 그러니. 사실 이 언니가 너보다는 키도 크고 잘빠졌잖아. 유화는 귀엽고 예쁘지만 키가 안커서 몸매에서 밀린거지. 운영이도 재훈이과라서 많이 밝히잖아.아마도 그래서 몸매로 승부를 본것일거야."
"수련이 언니까지 그러네. 솔직히 내가 수련이 언니보다 몸매는 안되지만 이목구비가 뚜렸하다고요. 재훈이 너는 누가 더 예뻐?"
"아니 왜 운영이 불똥이 나한테 까지 튀는거야?" 수련이 누나는 섹시하고 유화는 귀여워 이정도면 됐지?" "그럼 나는 안섹시하다는 거야? 요즘엔 귀여운것보다 섹시한게 더 좋은말인거 몰라?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지말고 제대로 말해. 딱잘라서 말해봐 내가 더 예뻐 수련이 언니가 더 예뻐?" 유화는 눈을 치켜떴고 수련이 누나는 두주먹을 불끈쥐었다. 어떤 대답을 해도 내가 살아남을 확률은 없는듯했다. 하지만 나는 유화를 꼬셔야하는 입장이었다. 대답은 어쩔수 없었다.
"당연히..유화가 더 예뻐.에이 기왕이렇게 된거 수련이 누나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유화가 훨씬 예쁘다. 왜냐하면 천사니까 나만의 천사니까. 내가 말한것이지만 정말 느끼하네. 버터라도 씹은듯하네 퉤퉤."
재훈아 간이 안드로메다 저멀리 날아가고 말았구나. 이 누나 성질 알면서 유화한테 아부하네. 너도 말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지? 벌써부터 이러니까 나중에는 재훈이 완전히 잡혀살겠구나. 그건 그렇고 이 누나가 상처받은것은 어떻게 치유하려고 하지?" 내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 누가 더 예뻐?"
"재훈이 너 똑바로 말해. 절대 강요하는것은 아니지만 누가 더 예쁘지? 얼렁뚱땅 농담으로 넘어가려고 하지말고 내눈 똑바로 보면서 말해봐."
"그게 저.. 대답하기가 너무 곤란해서..그냥 둘다 너무 예뻐서 우열을 가릴수 없다고 하면 안될까?"
나는 미온한 태도로 답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보면 수련이 누나가 조금 더 예뻤지만 유화가 더 안예쁘다고 하면 유화마음 사로잡기 힘들어질테고 그렇다고 유화가 더 예쁘다고 하자니 오늘 수련이 누나 생일인데 못할소리인것 같아서 나온 대답이었다.
"그냥 둘다 나하고 결혼하면 안될까?"
"악!!"
수련이 누나가 내볼을 잡고 늘어졌고 유화는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나는 정말로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유화와 수련이 누나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나로는 부족해서 이제는 수련이 언니까지 노리는거야? 역시 재훈이는 위험인물이야. 아무리 할말이 없어도 그런말이 나올줄은 몰랐네.
"오호 재훈이 이 누님까지 어떻게 해보시려고? 뭐 운영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매력이 넘치는 사람은 이래서 피곤하다니까.이제서야 내 매력이 빛을 발하는 것일까?" "재훈이 너 내가 수련이 누나 노리고 있다는것 알면서 그러는거야? 내가 천사하고 잘되도록 다리공사 해주려고 했는데 안되겠네. 이제 재훈이와 나는 연적이 되는것인가?"
"아 아니 다들 왜그래? 농담인거 알면서 말야. 나는 유화로도 벅차고 넘친다구."
운영이의 눈에서 살기가 감돌아 나는 꼬리를 내렸다. 다들 농담인줄 알면서 나만 핍박하니까 서러워졌다.
"하하하 재훈이가 여복이 터졌구나. 그런데 그렇게 이여자 저여자 문어발 내밀다가는 한명도 못건지는 수가 있어. 일단 운영이를 꼬득여서 유화를 도모해보고 그다음에 수련이한테 다가가야지 된단다. 아무튼 양손의 꽃은 힘드니까 재훈이 쇄골이 바지겠는걸."
"성호형님까지 왜 그러세요. 저는 유화를 향한 일편단심이라구요."
하지만 병실사람들이 못믿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통재라. 내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구나 싶었다. 나는 눈짓으로 조금전까지 나와같이 변태취급을 받았던 영훈이 형한테 도움을 청했다. 내눈빛을 본 영훈이형이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훈이가 그러는것도 일리가 있어. 남자라면 누구나 예쁘면 눈길이 가는법이야. 수련이하고 유화 둘모두 예쁘잖아. 그래서 재훈이는 양손의 꽃이라는 남자의 로망을 못버리고 이러는거야. 재훈아 맞지?" "영훈이형만은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배신때려도 되는거에요?설마 영훈이형마저 이럴줄은 몰랐어요. 실망이에요."
" 우리 재훈이 연애하는 기념으로 매니큐어 발라줄게.예쁘게 잘발라줄테니까 나한테 맡겨. 유화와 수련이가 네손만 보면 잡고싶어하게 해줄게.내가 해줄만한게 이런것 밖에 없네." "희정이 아줌마 안해주셔도 되요."
"하하하하하"
병실사람들이 유화와 수련이 누나 그리고 희정이 아줌마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때 후성이가 나를 껴안고는 이마에 키스를 했다.
"걱정한대로 재훈이한테 귀신이 붙었어. 원래는 굿을해야 하는거지만 내가 이렇게 쫒아줄게." "이거 놓지못해? 진짜 껴안지 말라고 몇번을 말해? 거기다가 한술더떠서 이마에 까지 키스하네. 너 호모야? 호모냐구."
"왜그래 나는 그냥 너한테 씌인 귀신을 쫒아주려고 그런건데. 귀신이 그러는데 내가 껴안아주면 온갖 잡귀들이 설치지 못한다고 했어. 너한테 들어붙은 귀신이 내 덕분에 사라졌으니 나한테 고맙다고 해도 모자를 판에 왜그래."
"퍽!"
나는 계속 헛소리를 하며 신경을 긁는 후성이의 턱을 쳤다.
"퍽!퍽!"
후성이도 내얼굴을 쳤다. 곧 우리들은 뒤얽혀서 싸웠고 우리의 싸움을 보던 사람들이 그제야 말렸다. "재훈아 니가 참아라. 저녀석이 그러는게 한두번도 아니고 그냥 똥밟았다고 생각하고 피해. 오늘은 수련이 생일파티하는 날이잖아. 이런일 때문에 좋은날에 얼굴 붉히면 안되잖아 힘들겠지만 네가 참아라."
"후성씨 환우들 껴안지 말라고 몇번을 말해요. 준영씨한테도 싫어하는데 껴안고 정말 구석방에서 격리되야 정신 차리겠어요? 그리고 재훈씨도 병실에서 폭력을 휘두르면 안되요. 환자들끼리 문제가 생기면 우리들한테 맡기세요."
"아니 그걸 어떻게 참아요? 하지말라고 경고도 수도없이 했어요. 간호사님 같으면 같은 남자끼리 껴안는걸 참을수 있어요? 그리고 씻지도 않아서 냄새가 얼마나 난다구요.다음에도 이러면 똑같이 패줄수 밖에 없어요."
"재훈이 새끼야 고마운줄도 모르고 날때려? 왜 모두들 나를 이렇게 싫어하는거지? 나는 그저 다른사람들이 귀신이 씌이면 좆아주려고 하는것 뿐인데. 그게 그렇게 나를 상대 안할정도로 잘못이야? 나처럼 되지 말라고 도와주는건데 왜 다들 이해를 못해주는거야."
후성이가 억울하다는듯이 말했다. 하지만 좋은의도를 가지고 한일도 좋지않은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는법이다. 의도가 좋지만 후성이의 행동을 받아들일수는 없다. 그리고 그게 사실인지도 알수없고 다만 불쾌할뿐이니 말이다.
"후성아 나뿐만 아니라 남자병실의 모두는 네가 껴안는것을 원하지 않아. 앞으로도 네가 그런행동 하는것을 반기는 사람은 없을거야. 그리고 왜 모든사람들이 너를 싫어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우리도 사람인이상 싫은행동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질수는 없어.네가 하는행동이 비호감을 일으키는 행동이야.네가 병에 걸린것은 알겠는데 더이상 피해를 주면 우리모두는 너를 따돌릴수 밖에 없어."
성호형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성호형님은 후성이를 지그시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후성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굳은 표정으로 병실로 돌아갔다. 후성이의 갑작스런 행동때문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깨지고 말았다.
"재훈아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흥분했어? 네가 그러니까 무섭다야. 재훈이가 이런면이 있을줄은 몰랐네. 폭력적인 면이 있을줄이야. 얌전하고 응큼한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아무튼 좀 진정해. 네가 그러니까 다른사람들도 어쩔줄 몰라하잖아 이성을 찾아."
"..알았어 유화야. 그렇지만 나는 지금 후성이를 때리고 구석방에 격리된 준영이형의 행동이 이해가가. 정말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불결한줄 알아? 만약 유화가 안았다면 삼박사일동안 안고있을수 있지만."
"재훈이 너어 그래도 평소처럼 돌아와서 다행이다. 그러면 수련이 언니 생일파티 계속하자 응?" 유화가 초코파이 케익 앞으로 가서 초코파이를 하나씩 돌렸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청포도를 골라서 먹었다.
"어어 이것봐라. 이누님이 좋아하는 청포도를 씨도 안남기고 다먹은게 누구야? 재훈이? 재훈이가 간이 배밖으로 나오다 못해 터질려고 하는구나."
"아뇨 제가 그럴리가 있겠습니까.아직 청포도 많이 남았어요. 케익에도 올려있잖아요.그거 수련이 누님이 드시면 충분할거에요."
나는 계속해서 청포도를 먹고싶었지만 수련이 누나 생일이라서 할수없이 청포도를 포기했다. 수련이 누나는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 청포도를 먹으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 마누라가 시골에서 가져온건데 청포도 맛있지? 재훈이 하고 다이어트 하면서 많이 먹었는데. 또 재훈이가 입이 고급이잖아? 입맛 맞추느라고 힘들었다."
"성호형님 까지 그러시면 어떻해요? 제가 무슨 동네북입니까.사람들이 말이야 나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네."
"그거야 재훈이가 만만하고 뒤끝이 없으니까 그렇지. 다른사람 이었어봐.이쯤하면 벌써 삐져서 아무말도 하지 않을걸. 재훈이가 마음이 넓어서 그런거야. 좋게 받아들여. 재훈이 너도 이 누님한테 안겨."
"역시 수련이 누님밖에 없어요." 나는 기회를 놓칠까봐 광속으로 수련이 누나에게 안겼고 유화가 그 모습을 보고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눈썹이 휘어진것이 많이 삐진것 같았다. 나는 수련이 누나의 품이 따뜻하고 좋아서 비비적 거렸다. 마음이 편해졌다.
"재훈아 아무리 좋아도 너무 파고들지 말아라. 그러니까 이 누님 가슴이 많이 답답하다."
"재훈이 이녀석 빨리 떨어지지 못해? 수련이 누나한테 안기려면 나한테 먼저 허락받아야 된다는거 몰라? 신인 나한테 먼저 말해. 그리고 이런건 내가 잘한다니.."
"운영아 너한테 안기라고 말안했다.이 누님 아직 그렇게 굶지 않았다.뭐 옛날같으면 운영이와 재훈이 둘다 잡아먹었을지도 모르지만 하하."
"언니 재훈이 한테 틈을 보이면 안되요. 거기다가 그냥 안기는게 아니라 안겨서 비비적대는 색골이라구요. 흥흥 내가 이렇게 뻔히 쳐다보는데도 그럴정도면 재훈이 너는 나한테 마음이 없나보지?"
"아니 나는 그런뜻이 아니라 수련이 누나가 사심없이 안기라고 해서 나도 깨끗한 마음으로 순수하게 안긴 거라니까."
"요즘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안기면 그렇게 해벌쭉 웃는 거구나. 정말 실망이야."
유화가 기분이 상했는지 툴툴 거렸다. 아닌듯 말해도 사실은 나한테 관심이 있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유화가 안기라고 했으면 아까보다 수십배 빠르게 움직였을거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내가 .." "악!!"
유화가 내귀를 잡아당겼다.
"누구 좋으라고 그래? 그리고 재훈이 너를 안기라고 할바에야 운영이한테 말하겠다."
"천사가 안기라고 하면 달려가야지. 역시 재훈이 보다는 신인 나한테 안기는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을가.천사에게 안긴 신보다는 신에게 안긴 천사가 더 그럴듯하고.." "운영아 이럴때는 아무말 안하고 있으면 절반이라도 가. 유화와 재훈이는 지금 사랑싸움 하고 있잖아. 부럽네 그래. 운영이 너는 가만히 있다가 수련이 맘에만 들면 되는거야. 설마 너도 재훈이 처럼 둘다 노리는것은 아니겠지?"
"성호오빠 말이 맞아. 저봐 어찌나 부끄러운지 유화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잖아. 유화 저것도 여우는 여우야. 운영아 나는 눈치 없는 남자는 싫더라. 그냥 예전처럼 유화와 재훈이가 잘되게 도와줘. 그게 나한테 잘보이는 길이기도 하구."
"언니 뭐라고 하는거에요. 재훈이와 나는 아직 사귀지도 않았는데 사랑싸움이라니요. 제 혼사길 꽉꽉 막을일 있어요? 음 나도 재훈이가 싫은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는다구요."
유화가 도리질을 치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모습이 눈부시고 사랑스러워서 미소를 지었다."유화야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게 사랑싸움이지 사랑사움이 별거야? 아유 귀여운것. 나한테 와서 안겨. 내 넓은 가슴을 빌려줄테니까."
"역시 재훈이는 스킨쉽을 무지 좋아하는구나. 그래도 너무 티내게 그러지마라. 그런건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조용히 해야지 효과있는거 몰라? 좋구나 젊다는건 말야. 아 이거 여기서 연애안하는 사람은 이거 서러워서 살겠나."
"유화야. 재훈이 한테 매니큐어 발라주고 싶은데 재훈이한테 부탁해봐. 나는 매니큐어 발라주는게 제일 행복해. 잘물들여줄테니까 걱정말고 나한테 맡기라고 말해줘. 내가 여기오기전에 네일아트해서 정말 잘해줄수 있는데 왜 다들 피하는지 모르겠어.희정이 아줌마가 나에 대해 마각을 드러냈고 나는 손톱 물들일까봐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이렇게 병실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면서 먹고 마셨다. 나는 정말로 희정이 아줌마가 물들여 준다는 말에 기겁했다. 유화가 부탁하면 정말로 물들일지도 몰랐다. 그럼 그게 무슨 남자망신인가. 왼속 약지 하나 물들인것 만으로도 창피해 죽겠는데 열손가락에 다해준다니 절대로 절대로 그럴수는 없다. 아무리 유화말이라도 거절해야 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흐응 재훈이 손톱 물들이고 싶다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잘됐다. 희정이 언니한테 한번 맡겨봐. 내가 보기에는 왼손 약지도 예쁘게 잘됐는데 그래. 희정이 언니 잘해주세요." "유화야 진심은 아니지? 내가 여자처럼 손에 물들여야 속이 풀리겠니? 아무리 네 부탁이지만 이것만은 들어줄수가 없어. 내 마지막남은 자존심이야."
"정말 내 간절한 부탁을 안들어주겠다는 거야? 내가 이렇게 원하는데도 정말 안할거야? 그런거야?"
누가 유화를 물들였을까? 나에게 부탁하는 유화의 얼굴이 악녀처럼 보였다.
"오른손 약지에 물들이는것 이상은 절대 안되.정말 유화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생각도 안했을텐데..희정이 아줌마 잘해주세요. 기왕하는거니까요."
"잠깐만 기다려 도구 가져올테니까."
희정이 아줌마가 나는듯이 병실로 돌아갔다. 유화는 내 말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어쨌든 나는 이 행복한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치솟아 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나는 왜 이곳에 와있는가였다.차라리 후성이나 운영이 같이 병이 표시라도 나면 인정을 할텐데 그 어떤 징조도 느끼지 못하겠다.나는 내삶의 한가운데인 전성기에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병은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것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것은 전보다 나아진점이 있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것이다. 그 묘한 동질감에서 잠시 나의 의문을 보듬어 안아줄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기온것일까? 곧이어 희정이 아줌마가 내가 의문을 품는 동안에 정성을 다해서 매니큐어를 발라주었다.
나는 좀전까지의 혐오스런 감정에서 벗어나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방금전까지 치솟아 올랐던 감정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내병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조울병일까? 그렇다면 왜 나에게는 그로인해 병으로 인한 증세가 일어났을때의 나의 이상행동이 흐릿하게 떠오르는 것일까?
"재훈아 갑자기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이야 매니큐어 정말 잘발라졌다. 역시 희정이 언니 솜씨는 최고라니까. 잘되서 부러운걸. 정신차리고 네 손톱을 봐라."
"저 희정이 아줌마 여기있는 운영이가 자기도 물들여달라고 하는데요?"
"아니 난 사양하겠어. 신인 내가 매니큐어를 바를 이유가 없잖아. 아이쿠 천사야 도와줘. 재훈이가 나까지 물들이려고 그래."
"희정이 언니 운영이가 자기도 물들여달라고 떼를 쓰는데요. 두손다 예쁘게 발라주세요."
"천사까지 나를 배신한거야? 재훈이하고 벌써부터 죽이 잘맞네. 희정이 아줌마 저는 안해주셔도 되요. 괜히 나도 물들이려고 그러는거에요."
희정이 아줌마가 갑작스럽게 운영이의 손을 잡았다. 운영이는 고개를 힘차게 좌우로 가로저었지만 희정이 아줌마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고 마침내 체념을 했다.
"..예쁘게 잘해주세요. 참 검은색으로 칠해주세요. 재훈이는 영양크림 바른것처럼 손이 반짝이던데 저는 그런것을 싫어요. 되도록이면 검은색으로 반짝이지 않게 칠해주세요."
"잘생각했다 운영아. 내 손톱을 봐. 희정이 아줌마가 여자병실 사람들 대부분을 해줬는데 잘칠했지? 나하고 유화는 남자가 매니큐어 칠하는거 좋게 생각하니까 혼자 괴로워하지마라. 안심하고 돌아다녀도 되."
희정이 아줌마가 운영이가 바란대로 운영이의 손톱을 물들였고 운영이도 자기 손톱을 보고 만족했다. 이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에 시간은 9시를 가리켰고 환자들이 자리를 치우고는 각자의 병실로 돌아갔다.
시끌시끌 더들었던 강당에서의 소리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지직거리는 텔레비전 소리를 끝으로 사위는 조용해졌다. 나는 무엇인가가 나한테 사인을 보내는것 같았다. 무언가 메세지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환자다. 사인같은게 어디있다고. 나는 병실로 돌아가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가지고 유화한테 갔다.
"유화야 네가 빌려달라고 한책 가지고 왔어. 완역본이라 조금 두껍지만 내용이 튼실해. '상실의 시대' 다읽으면 읽어봐."
"재훈아 고마워. 심심했는데 마침 잘됐네. 잘읽을게. 그런데 갑자기 생각난건데 운영이가 이책을 읽으면 재미있겠네. 자신이 신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이책을 읽고나서 자기 가족이야기 라고 하는것 아니야? 나 빨리 읽고 운영이 빌려줘서 반응보고 싶다. 아 궁금해."
"유화야 내얼굴 볼래?"
"응?"
나는 유화가 내얼굴을 보자 입술을 살며시 내밀어서 유화와 키스를 했다. 유화가 혀가 안들어가게 막았지만 곧 입술이 열렸고 우리는 성인의 키스를 진하게 했다. 유화의 얼굴이 새빨게 졌고 약간 몽롱한것도 같았다.
"유화야 내가 너 사랑하는거 알지?"
"으..응 나도 재훈이라면 괜찮아. 근데 트인공간이라 다른사람들이 보지 않았을까? " "어두워서 잘안보이는거 알잖아. 간호사들이 봤으면 난리났겠지만 아무도 소란피우지 않는걸. 분명히 못본거야. "
"그건 그렇고 재훈이 나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그렇게 키스를 하면.." "내가 보기엔 마음이 정해졌어. 나역시 너를 좋아하는것은 틀림없고 말야. 나는 마음이 가는대로 자연스럽게 사랑의 행위를 했을뿐이야. 너에게 다가간것도 그런마음에서였어."
"흥 그래도 그렇게 갑자기 하면.."
조금전 일은 떠올리는지 유화의 얼굴이 빨개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야야"
유화가 내볼을 잡아당겼다. "너 이번 한번은 넘어가지만 다음에 또 이러면.. 이볼따구 가만두지 않을거야."
나는 유화가 말을 이어갈때 유화의 입술을 한번 더 덮었다. 혀와 혀가 섞이고 미끌미끌한 느낌이 들었다. 유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고 나역시 유화의 눈을 보았다. 유화의 얼굴이 붉어지며 나에게 화를 내려고 하다가 멈추고 체념하는것이 보였다. 한번 했으면 두번째는 쉬운법이다.
처음이 어렵다고 하지 않은가. 긴 입맞춤을 끝내고 나는 유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유화는 아무말 하지않고 살짝 안겨있다가 병실로 돌아갔다. 창문밖에 있는 초승달이 우리를 보았는지 더 환하게 하늘을 비추는것 같았다. 째깍째까 시간이 9시를 넘어서 10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재훈아 안자고 여기서 뭐해? 또 잠이 안오는 거야?"
"아니요 성호형님. 제가 생각할것이 조금 있어서요. 유화한테 '그리스 로마신화' 빌려주고 오는길이에요. 씻고 자려고 했는데 정말 잠이 안오네요. 그래서 나와있었어요."
"재훈이가 고민이 많나 보구나. 그런데 네 자리에 가보니까 전에없던 불료경전이 있던데 재훈이 불교신도니?"
"아직 믿는것은 아니고요. 관심이 가서요. 원래는 저는 기독교를 믿었는데 왜 하나님은 나를 여기로 보냈는가에 대해서 쭉 생각하고 원망했어요.그러다 보니까 저절로 마음이 멀어지더라구요.점점 믿음이 사그라드는것을 느꼈어요. 만약 신이 있다면 저에게 이런일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생활은 수도승의 생활과 그다지 다르지 않잖아요. 술,담배가 안되고 여자에 빠지는것도 제한이 많고 사실상 힘들죠. 저는 유화를 얻었지만요. 그러다 보니까 스님들이 수행하는 모습들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러다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부처님이라면 여기의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아마도 그분께서는 고행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셨을거에요. 그리고 고행을 견디어 버텼을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곳에 오면 오히려 아무도 못구원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여부를 떠나서 제 생각이요. 그러다보니까 자연히 불교쪽으로 마음이 가더라구요. 도시의 버림받은 수행자인 우리들은 우리보다 더한 고통과 고난을 받아들이고 고행을 하시는 부처님들이나 스님들을 더욱 존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는 일반 사람들은 고행이 뭔지도 모르잖아요. 이건 그냥 제 요즘 생각이에요."
"후 너만 그런것이 아니라 나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에 버리셨을까? 나중을 위한 시련과 시험이 아닐까 생각했어. 나도 너와 같이 묻고 의심해왔어. 네가 읽고있는 욥기도 여기서 다시 읽어봤고. 우리보다 더한 고통을 받으시고도 믿음을 잃지 않았던 분이니까.그렇게 시련을 주시는것이 그것을 견딘다면 오히려 나중을 위한 은혜라고 생각해. 나도 너에게 나조차도 흔들리는 믿음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지금까지의 믿음을 한순간에 버릴만큼 불교에 정말 관심이 있는거야?"
"아직은 배우는 중이라서 뭐라 말을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적어도 여기서만은 불교를 믿어볼려구요. 그게 더 의지가 되는것 같아요."
"잘생각하고 결정해. 하나님을 다시 믿으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다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자신의 종교를 정하는 우를 범하지는 마라. 종교란 그렇게 쉽게 정하고 버리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성호형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마도 나로 인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 한번 더 깊게 생각해본것 같았다. 여기서 가장 의지가 되고 믿음이 가는 성호형님은 지금의 나를 보며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것일까? 변함없이 병원생활을 꿋꿋이 잘 버티는것 같은데 어쩐지 성호형님도 견디기 힘든때를 보내는것 같았다.
병실 생활이 날짜가 지나면 지날수록 하루하루가 길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성호형님도 오랫동안 생활했으니 나보다 더 절박하게 느끼고 있을것 같았다. 그냥 문득 드는 느낌이 성호형님이 나중에 사라져 버릴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훈아 내가 병실사람들을 쭉 지켜보았는데 여기서 네가 제일 꿋꿋하게 생활하는것 같다. 연애도 두번이나 하고 친구들도 사귀고 나이차가 많이나도 바둑이나 장기도 두고 탁구도 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나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요즘 정말 힘들다. 아마 다른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생활이 길어질수록 피를 말리는것 같다. 하지만 너는 여기서 사람들과 잘어울리지 않는 철준이와도 잘지내고 영훈이 준영이하고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생활하잖아. 나는 너의 그런모습이 보기좋다. 앞으로도 네가 병실환우들을 수련이 챙겨주듯이 했으면 좋겠다. 밤이 늦었으니까 이제 들어가서 자자.너무 오래 늦게까지 책읽지는 말고."
"예 성호형님"
아침이 밝았다.
"귀신이.. 귀신이..나를 괴롭혀. 어젯밤에도 나한테 찾아와서.."
후성이가 알수없는 말을 했다. 나는 일어나보니 손이 축축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일이 있었던걸까? 후성이의 비명소리를 들은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후성이의 목에 빨간 손자국이 보였다.
"후성이 저녀석 어제밤에 얼마나 귀신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어찌나 소리를 지르는지 시끄러워서 잠을 못잤다. 끅끅 소리를 내며 새벽에 소리를 질러서 간호사가 다가갔더니 후성이가 고통으로 침을 질질흘리고 있었대. 겨우 안정시키고 잠을 재웠다나봐.하여튼 저녀석이 문제야.그놈의 귀신이 뭔지 정말.."
"살고싶어 나는 살고싶어.그래 맞아 이런때는 굿을 해야되. 처녀귀신이 나를 다른귀신들로 부터 구해줄거야 굿을 해야되."
"곧 있으면 회진시간입니다. 다들 앉아서 자리를 펴고 기다려주세요."
"난 회진이 정말 마음에 안들어. 의사들이 떼거지로 와서 사람을 위협하고 주눅들게 하는것 같아. 무조건 의사선생님들에게 잘보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싫고. 정말 위압감에 참기 힘들어.괜히 말을 잘못하기라도 하는날에는 여기에 갇혀있는 시간이 늘어날까봐 두렵기까지 한다니까."
"저도 그래요.수많은 의사선생님들과 혼자 대화할떄면 왜 그렇게 위축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대답 열심히 할수밖에 없는것이 오픈으로 가거나 산책이 풀리거나 면회가 허용되는가의 여부가 회진때뿐이라 기다려지기도 해요."
"의사선생님들 들어오십니다. 자리를 펴고 일어나서 기다려주세요."
곧이어서 의사선생님들이 몰려서 들어왔다. 주말을 제외하고 아침마다 하는 회진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철준씨 잘지냈어요? 발가락은 어디 아프지 않습니까? 외과수술을 한지 얼마 안되어서 쓰라리시겠지만 잘참으세요 수술은 잘됐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철준씨 약적응기간이라 조금의 부작용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럼 밖에서처럼 약은 멈추지 말고 열심히 드세요. 그러면 퇴원한후에 여기로 다시 올일은 없을것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면회가 허용되는것하고 산책은 언제쯤 풀리게 되나요?" "음.. 아직은 안됩니다. 다음주 정도에는 가능해질겁니다. 너무 초조해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이 흐르면 다 해결되니까요."
"후성아 여기 생활은 어떠니? 어떻게 견길만 하니? 아직도 귀신이 씌여있는것은 아니지? 어젯밤에도 간호사들이 네가 잠을 설치고 귀신을 찾았다고 하는데 아직 병이 나아지지 않았나보구나. 되도록 이면 마음편히 가지고 생활하렴."
"요즘에 특히 귀신이 저를 괴롭혀요,어제는 실제로 나타나서 저를 심하게 괴롭혔어요. 의사선생님 제가 여기에있는 사람들중에 가장 오래있었는데 언제쯤 오픈으로 가게 되나요? 저도 클로즈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나도 다른사람들처럼 오픈으로 가고 싶은데.."
"후성아 오픈으로 가게 되는것은 상태가 지금보다 많이 호전되었을때야. 여기 있은 기간이 중요한게 아니란다. 다른사람들은 너보다 늦게 왔어도 오픈으로 가서 초조해하는것은 알아. 하지만 병원규정상 지금의 상태로는 오픈으로 갈수없어. 빨리나가고 싶으면 앞으로 마음편안히 먹고 기다리는게 최선이야.그러면 곧 갈수있게 될거야."
"이제 저도 그런말 믿지 않아요.제가 여기 처음 왔을떄부터 똑같은 말씀만 하시잖아요. 저는 원래 여기오지 않고 박수무당을 했어야하는데 여기있어서 천신님이 노하셨어요. 그리고 천신님 하고는 앞으로도 자주 뵈야 하는데 그럼 천신님이 나한테 나타나지 않을때까지 여기 있어야 되는건가요? 이런 생각할때마다 저는 피가 말라요. 도대체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해요?"
후성이가 큰목소리로 의사선생님들을 보며 윽박질렀다. 녀석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것은 아니다. 나도 인성이하고 창운이를 오픈으로 먼저 보내고 나서 마음이 너무 답답해졌으니까. 둘보다 늦게온 나의 마음이 그런데 먼저왔던 후성이는 아마도 가슴이 타다못해 시꺼매졌을것이다.
"..꼭 귀신이 나타난다고 해도 일정기준이상 나빠지지 않는다면 오픈으로 갈수 있어. 내가 장담하마. 누구도 너를 여기에 평생있게할 사람은 없으니 그점에 대해선 마음 놓아도되. 한달내에는 오픈으로 갈수있게 될테니까 힘들어도 한달만 어떻게 참아보렴."
"그럼 재훈씨. 여기 생활은 어떤가요? 연애사업은 잘되고 있습니까? 후후 재훈씨는 여기 생활을 하면서 할거는 다하고 있군요 하하. 그리고 좋은소식이 있는데 재훈씨는 곧 오픈으로 가게 될거에요.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약도 에도 잘적응하시는것 같습니다. 아마 며칠내로 가게 될겁니다. 뭐 다른 힘든일은 없나요? 간호사들이 재훈씨보고 클로즈 오락부장이라고 하던데 다른사람들과 잘어울리나요? 별로 애로사항은 있나요?"
"저라고 뭐 다른사람들하고 다르겠습니까? 남들이 가고 싶은데로 오픈으로 가고 싶고 퇴원해서 친구들을 보고 싶다는 점이 저를 힘들게 하죠. 하지만 다른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리니까 힘든일이 조금이나마 줄은것 같아요. 그럼 저도 이제 오픈으로 가게 되는 겁니까?"
나는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려왔다. 드디어 오픈으로 가게 되는구나. 그것도 다른사람들보다 빠르게 오픈으로 가는구나. 이 기쁜 소식을 들은다음 부터는 은주누나도 유화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란놈은 이런걸 보면 참 이기적인것 같다. 사랑타령할때는 언제고 오픈으로 간다니까 사랑은 생각지도 않는걸 보니까. 병실의 다른환자들이 나의 오픈소식을 듣고 다들 부러운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성호씨 별다른 일은 있나요? 성호씨 오늘부터 약을 여덟알에서 다섯알로 줄일겁니다. 그리고 좀더 적응기간을 두고 상태가 호전된다면 성호씨도 곧 오픈으로 가게될겁니다. 지금까지의 약적응기간을 봐온결과 성호씨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한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있지 못합니까?"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 다만 하루하루가 너무 똑같아요. 그것이 힘듭니다. 저도 제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예전처럼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는것도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럼 저도 조만간에 오픈으로 가게 되는겁니까?"
성호형님 역시 나처럼 곧 오픈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자 표정이 밝아졌다. "예 곧 오픈으로 가시게 될겁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먹으시고 주말 잘보내십시오."
"영훈씨 병원생활은 견딜만 합니까? 영훈씨를 쭈욱 지켜본결과 약이 영훈씨와 잘 안맞는것 같습니다. 다섯알에서 일곱알로 늘리고 상태를 조금더 지켜보아야 할것같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잠이 오지 않습니까? 간호사들 말로는 새벽에 복도로 자주 나오신다고 하던데요."
"가슴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가라앉는건 아직도 있지만 예전처럼 약만 먹으면 잠을 못잘정도는 아닙니다. 정말 가슴이 답답한것이 있다면 클로즈에서 너무 오래 갇혀있다는 점입니다. 아직도 제가 약에 적응하지 못한것 같습니까? 진단을 잘못하신것은 아닙니까? 저도 후성이 다음으로 여기 오래있었는데 아직도 오픈으로 갈 계획이 없는것입니까? 그럼 도대체 언제쯤에야 오픈으로 가게 됩니까? 후성이처럼 귀신들린것도 아니고 운영이처럼 자신이 신이라고 믿지도 않고 평범한 사람처럼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아직입니까? 재훈이는 여기온지 얼마 되지도 앉았는데 벌써 오픈으로 가게되었다 면서요. 도대체 여기 계속 있어야하는 저의 병명이 무엇입니까?"
"그건 나중에 보호자와 같이 면담 할때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가지 약속드릴수 있는것은 영훈씨도 후성이처럼 한달이내에 오픈으로 가시게 될것입니다.
이곳의 특성상 정확한 날짜는 알려드릴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십시요."
"그럼 준영씨 며칠전에 구석방에 있다가 오셨지요. 감정조절이 잘 안되는것 또한 여기에 있어야하는 이유중의 하나랍니다. 상태가 처음 입원했을때 보다 많이 호전되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여기에 좀더 계셔야 할것 같습니다. 약은 몸에 잘적응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소식이 있을겁니다."
"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는 더 있어도 좋으니까 후성이를 제발 오픈으로 보내주십시오. 후성이를 볼때마다 그녀석이 껴안는것이 생각나서 이가 갈려서 가만있기 힘듭니다. 저 아니면 후성이를 빨리 오픈으로 보내서 서로 보지 않게 해주십시요."
"그런것은 임의대로 정할수 없다는 것을 잘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같은 환우니까 한번 더 참아보세요.만약 후성이가 준영씨를 한번만 더 괴롭힌다면 강력한 조치를 취해드리겠습니다. 주말 잘보내십시요."
"운영씨 잘지내나요? 아직도 자신이 신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그리고 약은 부작용없이 잘맞는것 같습니까? 상태가 호전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을 신이라고 믿는것으로 봐서 아직은 여기에 더 있어야 할것 입니다.
"인정할수 없습니다. 제가 신인데 저자신을 신이 아니라고 믿을수는 없잖습니까. 정체성 문제입니다. 제가 여기에 온것은 여기있는 모든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며칠 더 클로즈에 있으라면 있겠습니다. 그리고 약을 먹으면 몽롱해지는데 이게 부작용입니까? 졸리지 않고 멍해지지 않는 약으로 바꿔주시면 안될까요? 신경안정제도 줄여주시고요."
"그렇게 못해서 유감이군요. 운영씨에겐 아직 신경안정제가 필요합니다. 어느정도의 부작용은 감안해야합니다. 자칫 흥분하거나 심적인 타격을 받으면 후성씨와 같이 될수도 있어요. 운영씨는 아직 다른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경안정제는 꼭 드셔야 합니다. 운영씨는 잘모르겠지만 저희가 볼때 운영씨는 감정의 기복이 심합니다. 약은 비타민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약은 졸음이 안오고 부작용으로 멍해지지 않는 약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마음편히 먹고 약을 복용하세요. 우리는 운영씨를 치료하기 위한 의사들입니다. 약처방은 회의를 통해 신중을 기해 처방하고 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정하는 것이니 잘못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회진이 끝나고 의사들이 남자병실을 나서서 여자병실로 갔다.
"재훈아 정말 부럽다. 조금 있으면 오픈으로 간다면서? 이제 더이상 재훈이 껴안아 주지 못하겠네. 내가 오픈으로 너 좆아 갈때까지 기다려."
"후성아 나는 네가 오픈으로 오기전에 퇴원하고 싶다. 네가 귀신이 씌여서 호모짓을 하는이상 너하고 잘지내고 싶은 마음도 없어. 수련이 누나 생일파티때까지는 어떻게든 참아볼려고 했는데 그때도 네가 나를 껴안고 이마에까지 키스를 해서 정떨어져 버렸어. 그리고 천복이가 오픈갈때처럼 마지막으로 한번만 껴안아 준다고 말하지마. 들어줄수 없으니까."
"재훈이 너무한다. 나는 그냥 네가 좋아서 그러는건데 말야. 그리고 너한테 씌인 귀신을 쫒아서 나처럼 되지 말라고 껴안는건데 너무 안좋은 방향으로만 본다."
"아무튼 더이상 나한테서 신경을 꺼줬으면 좋겠다. 짜증나니까."
나는 후성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시후 회진이 끝난 여자병실로 갔다. 마침 밖으로 나오고 있던 유화와 맞부딪혔다.
"유화구나.하룻밤밖에 안지났는데 정말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몰라. 너도 그렇지 않아?"참 회진에서 나 곧있으면 오픈으로 가게 될거라고 했어. 오늘 담당 의사선생님이 그러셨어."
"..좋겠구나. 나는 의사선생님이 한동안 클로즈에 있어야한대. 너 오픈으로 가게되면 내생각은 하지도 않겠지?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니까.은주언니도 너한테서 멀어졌잖아 그러다가 퇴원했고."
"아니야 나는 네가 오픈으로 올때까지 기다릴거야. 너를 위한 준비 다해놓고 기다릴게. 유화야 불안하니? 재훈이 못믿어?"
"음흉한 재훈이를 어떻게 믿어? 이제 네가 조금씩 좋아지려고 하는데 너는 오픈으로 가는구나. 졸겠다. 나를 떼놓고 혼자만 오픈으로 가서. 정말 좋겠다."
"유화도 곧 오픈으로 올거야. 학 천개 에 소원을 빌었잖아. 유화가 오픈으로 가게 해달라고 말야. 그리고 유화의 소원인 다른병실 사람들이 퇴원하게 해달라는 기도도 이루어질거야. 너무 상심하지 말고 카페라떼 받아. 사랑한다면 카페라떼 처럼 말야."
"재훈이 아직도 카페라떼 타령하니. 카페라떼가 사골국이냐 자꾸 우려먹게. 뭐 맛있어서 먹어주기는 하겠지만. 참 수련이 언니도 오픈으로 간대.. 나만 여기에 남겠구나. 쓸쓸하고 슬프다. 재활활동하면 우리 가끔 볼수 있겠지? 수련이 언니도 재훈이도 가는구나.."
"걱정하지마. 너도 오픈으로 반드시 올테니까. 나만 믿어봐 혹시 알아? 소원이 이루어질지."
"재훈이가 낭만적이구나.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알아. 내가 여기에 오래있는다고 병실의 사람들이 빨리 퇴원하는것도 아니고 학을 접어서 소원을 빌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것을 말야. 너무 늦게 깨달았지?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훨씬 행복할텐데 아쉽다."
"그건 유화가 병이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야. 원래 여기 환자들은 대부분 자기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자기가 병이 있다고 깨닫는다면 그것은 병이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래.여기 병원의 치유기간도 밖에서 생활이 문제 없을때까지 잖아.유화는 그런면에서 나보다 호전된것임에 틀림없어. 유화야 조급해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져."
나는 유화의 이마에 살짝 키스했고 유화의 얼굴이 잠시 새빨개졌다. 아마도 어제의 키스가 생각나서일 것이다. "재훈아 다른사람들이 본다니까.밤에 어두울때 하면 몰라도.."
"여어 재훈군.이 누님이 다봤다. 벌써 유화의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조금전의 이야기 들어보니까 재훈이 너도 오픈으로 간다면서? 축하해. 이 누님도 곧 갈테니까 오픈에서도 잘지내보자구. 유화야 안심해. 내가 재훈이 다른여자 생기나 안생기나 잘 감시할테니까. 그러니까 안심해도 좋아."
"아니 내가 뭘 걱정한다고 그래? 재훈이가 다른사람 사귀던 말던 나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그래?" 유화가 새침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그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싱긋 웃고 말았다.
"재훈이 왜 그렇게 쪼개고 있어? 음 야한생각하고 있지 이 화상아. 하긴 뭐 이정도 기간이면 유화한테 야한짓 할때도 됐지."
"언니!! 재훈이 또 내생각하면서 야한거 떠올리면 죽을줄알아? 수련이 언니 보고 있는데 이게 왠챙피야. 재훈이 각오해."
"도대체 누가 천사를 괴롭혔어? 재훈이 너이자식 이렇게 천사 힘들게 하면 천사하고 잘되게 도와주는것이 아니라 방해할거다.자 용서받는 방법은 신인 나한테 참회하고 속죄의 기도를 해. 그러면 내가 넓은마음으로 재훈이의 기도를 받아들이고 용서해줄게."
"수련이 누나 운영이 얼마나 웃긴줄 알아요? 연습장에 수련이 언니 그림 여러개 그려놓고 헤벌레쳐다본다니까요. 조금만 더 있으면 수련이 누나 누드라도 그리고 좋아할것 같다니까요.누드 그리려고 수련이 누나 몸매 살피는거 본적 없어요?"
"운영아 내가 누드모델 해줄까? 여자병실로 와서 모델보고 그려. 다 그리면 그리고 잘그리면 내가 운영이 잡아먹어 줄게. 죽여줄게. 그림은 화가가 죽어야 가치가 올라가니까. 타이타닉 보니까 레오나르도 디카피리오가 케이트 윈슬겟누드 그리는거 보고 얼마나 감명 받았는지 몰라. 대신에 못그리면 가만 안둘줄 알아."
"수련이 누나 남자가 여자병실 못들어가는거 알면서 그러는거지? 자꾸 이런식으로 나와봐. 신인 나의 초능력으로 누나를 투시해서라도 누드를 그리고 말테니까.흐음 수련이 누나는 몸매가 너무 좋아서 대작이 될것같아."
수련이 누나가 운영이를 놀리는것이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농담인줄 알아? 신인 나라면 충분히 그럴수 있다니까. 내가 투시해서 누나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아?"
"딱!!"
"어디서 이 누님을 게슴츠레하게 보는거야? 뭐 내가 한몸매 하긴 하지. 유화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차이지."
"수련이 언니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재훈이도 언니보다 제가 더 예쁘다고 한거 기억안나요?" "아니 그건 재훈이가 네 강요에 의해서 그렇게 말한거잖아 공평하지 않지. 여기 운영이한테 다시 물어볼까? 어떻게 대답하는지."
"당엲 수련이 누나가 유화보다 더 예쁘죠. 비교할것도 없어요. 유화처럼 발육부진인 애하고 S라인인 수련이 누나하고 비교하는건 말이 안되죠."
"들었지? 운영이는 재훈이 하고 다르게 누가 예쁜지 망설이지도 안잖아. 이래도 인정하지 않겠어?" "재훈이 미워. 왜 지금 아무말도 못하고 있어? 정말 수련이 언니가 더 예뻐? 운영이 보다 반응이 느리잖아."
"아이고 유화마님 돌쇠때문에 화가 나셨습니까? 당연히 유화마님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죠.말이 필요없어요. 수련이 누님은 잘빠졌지만 얼굴은 유화마님이 이뻐요."
"이런 이런 재훈이 간이 안드로메다 저멀리 날아갔구나. 후환이 두렵지 않나보지? 오픈가서 일대일로 맞장 한번 뜨자. 그때도 지금처럼 말할수 있나 보자구."
"흥 나도 조만간에 오픈으로 가게 될거에요.수련이 언니 너무해. 혼자만 오픈으로 가고. 재활활동은 꼭 참여해야되. 나한테 말도 없이 퇴원하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그러고 보니 수련이 누나도 오픈으로 가네. 수련이 누나 운영이도 곧 갈테니까 그때까지 다른남자한테 마음주면 안되요. 재훈아 내가 클로즈에서 유화를 잘 감시하고 있을테니까 오픈에서 수련이 누나 잘 감시해."
운영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만약 수련이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걸 어떻게 막겠는가. 그렇지만 유화를 다독일수 있는것은 운영이 밖에 없어서 나는 거짓말을 할수 밖에 없었다.
"좋아 내가 수련이 누나를 일대일 대인마크를 할테니까 너도 유화를 맨투맨 마크해라. 뭐 그렇다고 유화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니야."
"재훈이 너야말로 바로 한눈 팔것 같은데. 네가 좋아한대서 너하고 만나고 있는건데 네가 변심하게 되면 내가 뭐가 되겠어? 운영이 말대로 수련이 언니 마크해주고 네가 수련이 언니 노리진 말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라도 운영이와 내가 방해하고 말거야."
"알아모시겠습니다 유화마님. 하하"
유화가 여태까지는 표현하지 않았던 말을 한것이다. 드디어 유화의 마음이 나한테로 기울였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내가 가게 된다니까 새삼 나의 빈자리를 느끼는듯 했다. 나역시도 오픈으로 가게 된것은 뛸듯이 좋았지만 유화와 잘되고 있는 지금 유화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클로즈의 생활로 정이 들대로 다 들었는데 막상 나혼자 떠나야 한다니 정말 못할짓이었다.
그렇지만 유화도 나중에는 오픈으로 올것이고 그때까지만 잘 참으면 될것 같았다.
"나도 정말 오픈으로 가고 싶은데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언제쯤에야 오픈으로 갈수있을까?"
유화의 목소리가 어쩐지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것은 착각일까.
"유화야 나도 긴기다림끝에 겨우 가게 된거야. 하지만 유화는 재훈이처럼 오픈으로 빨리 오게 될거야. 설마 네가 나처럼 오래있겠니? 유화는 정상으로 보이는데 말야. 그럼 내가 오픈으로 가게 되면 희정이 언니하고 잘지내고 있어. 그리고 중요한건 우리도 아직 오픈으로 간것은 아니야. 며칠만이라도 잘지내보자. "
"수련이 너도 가게 되는구나. 왕년 멤버는 결국 나와 후성이만 남게 되겠구나. 나도 정말 여기 생활이 답답하다. 가슴이 쉴새없이 울렁거리고. 여기 처음왔을때가 생각난다. 나는 혼자서 자취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내집으로 병원사람들이 박차고 들어오더라구. 알고보니 아버지가 나를 여기로 보낸거야. 내가 멀쩡한 직장도 그만두고 하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서 술만 마시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한테 듣고 내 병이 재발했다고 생각하신거지. 생각해보면 재발한것도 맞고 말이야. 어느날 서러워서 울기 시작했는데 울음이 멈추질 않는거야. 자살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을 생각했고, 하지만 죽는것도 만만한 것이 아니야. 그렇게 되서 병실로 입원하게 된지 3개월이 되었네. 여기는 평균적으로 두달 남짓이면 퇴원이라는데 오래잇은거지. 아 나는 도대체 얼마가 지난후에야 오픈으로 갈수 있을까?"
"음..영훈이 오빠 이야기는 처음 들어요. 그런 증상은 대부분 우울증이라고 하던데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요새는 약이 좋아져서 왜래치료를 통해 우울증이 낫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해요. 아시죠? 아마 영훈이 오빠도 나가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거에요."
"수련아 말만이라도 정말 고맙다. 나도 성호형이 오픈으로 가게되면 누구하고 지내야 하나 걱정이다. 내 나이또래인 사람은 철준이 밖에 없는데 말야. 철준이도 처음에는 꺼림찍 했는데 지내다 보니까 꼭 지내기 어려운것만은 아니더라. 철준이가 병에 걸려서 끔찍한 일을 저지른거지 정신병이 안걸렸으면 그런일은 없었을거야. 그러니까 최소한 여기서 약을 먹을동안에는 그런일은 없을거야."
"참 준영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구석방에 격리된지 얼마 안지났는데 잘지내고 있나 걱정이네. 후성이하고는 아직도 마찰이 있겠죠? 후성이하고 또 말다툼하고 싸우고 그래요 영훈오빠?"
"아니 오히려 아무말도 없어서 도리어 걱정이야. 준영이가 구석방에 갔다온이후로 말수가 적어졌어. 특히 후성이하고는 사소한 말도 안해. 나였어도 그랬을거야. 후성이가 잘못한건 부정할수 없지. 아니 후성이는 미쳐서 그것을 모를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회진때 준영이가 말한대로 둘중의 하나가 오픈으로 가지 않는이상 준영이가 지내는데 많이 힘들거야."
"아니 후성이는 도대체 왜 그래? 사람들이 싫다고 하고 학을 떼는데도 굳이 껴안으려고 하잖아요. 정말 귀신이 씌여서 저런가?"
"정말 귀신이 씌였는지 몰라요.후성이는 그날그날 반찬이 무엇인지 모두 맞추는가 하면 누가 오픈으로 가게될지도 미리 알더라구요.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에요. 아무리 우연이라고 생각하려고 애써도 묘하게도 후성이 말이 매번 맞으니까 정말 귀신이 씌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재훈이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지금 생각으로는 후성이는 정말로 박수무당이 되었어야 할지도 몰라.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상태로는 다른사람들하고 같이 살아갈수가 없어. 밖에서도 모자라 여기있는 사람들에게서 까지 외면당하니 앞으로 사람을 사귈수 있을지 걱정이되. 나는 나름대로 후성이를 챙겨주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 알다시피 병원에서도 후성이는 철저하게 혼자야. 병이 깊어서 그렇다고도 할수있지만 자신이 신이라고 믿고있는 운영이도 사람들하고 어울리는데 후성이는 그렇지 못하잖아. 그게 걱정이야."
"성호형님 그건 어쩔수 없는거에요. 사람의 성품이 그렇게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거 아시잖아요. 그건 우리가 도와줄수 없는 일이에요. 오직 후성이 자신만이 악순환을 끊고 사람들에게 다가갈수 있어요."
"음 나도 후성이는 몇번밖에 보지 않은것 같아. 텔레비전 보러도 안오고 재활활동도 한번도 참여하지 않았어. 내가 후성이를 본것은 병실에 혼자 처박혀있는 것 뿐이야. 밖에서 보는데 정말 후성이가 안쓰러웠어. 그렇지만 나도 불쌍하다고 해서 후성이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니야. 나라도 입장바꿔서 같은 여자가 나를 껴안고 그러면 같이 지낼수 없을거야.
남자와 남자가 껴안는건 여자끼리 하는것처럼 아니 그이상으로 불쾌할것 같아. 후성이가 사람들중에서 여기있은지 가장 오래되었는데 처음 입웠했을때 그때도 이랬을까? 수련이 언니처럼 한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모두 오픈으로 가고 혼자만 남아서 그런것은 아닐까?"
"그럴수도 있겠지. 그 심정은 나도 이해가 가니까. 나도 일찍 오픈으로간 천복이가 미치도록 부러웠으니까 이해할수 있어. 그렇지만 후성이가 다른사람들이 먼저 떠나서 그런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친해지면 떠나가니까 아예 다른사람들하고 관계를 안맺는것이 좋다고 생각할수도 있어. 그렇지만 이렇게 혼자서 병실생활을 해나갈수 있을까? 그걸 원할까? 내생각에 이대로라면 후성이가 병이 낫기가 어려울거야. 그때문에 사람들하고도 어울리지 못하는것이고. 또 병에 걸린 이유중의 하나가 중국에서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기억때문이라고 하잖아. 그렇지만 지금 이런 후성이의 태도를 보니까 그렇게 된데에는 후성이 책임도 어느정도 있을거라고 생각해."
"재훈아 그래도 나는 후성이가 너무 불쌍해. 재훈이 너만이라도 잘해줄수는 없는거야? 아 너도 오픈으로 가는구나. 그러면 후성이는 또 말할상대중에서 한명이 없어지는구나. 정말 슬프다. 이곳까지 와서도 자신을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이 말야. 병실에만 처박혀 있지않고 밖으로도 좀 나오면 나라도 말상대해줄수 있는데."
유화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고 다른사람들 역시 입맛이 쓴것 같았다.
"다들 할수 없다면 나라도 후성이의 친구가 되줄게. 천사가 후성이를 걱정하는것을 보니까 나라도 그래야 할것 같아. 모두가 외면한다고 신인 나조차도 외면할수는 없지. 걱정하지마 나는 늦게 들어왔으니까 후성이가 오픈갈때까지 있을것 같으니까. 지금부터 잘지내면 오픈으로 갈때까지 도와줄수 있을거야. 이 운영이를 한번 믿어봐. 나는 신이니까 마음이 한없이 넓어.까짓거 한두번 껴안으면 어때 그럴때마다 꿀밤이라도 한대씩 때려주면 되지. 다들 왜 그렇게 그거에 민감하게 반응하나 몰라."
"네가 한번 당해보고 그런말 할수있나 보자.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게 될걸. 후성이가 너를 한번도 껴안지 않아서 잘느끼지 못하지만 얼마나 역겹고 기분이 더러운지 알아? 그리고 후성이 녀석은 잘씻지도 않아서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알아? 당해보면 잘지내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걸."
"그래도 이젠 운영이 밖에 믿을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 이대로 계속 말할상대도 없이 지내면 후성이도 견디지 못할거야. 서로를 이해해줄수 있는 환우가 절실히 필요할때잖아. 마침 운영이라면 나이도 비슷하고 잘지낼수 있을지도 모르지."
운영이가 옳은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운영이를 보다가 문득 시계에 눈길이 갔다. 째깍 째깍 소리는 나는데 시계는 멈추어있는것 같았다. 아마 착각일것이다. 이것은 무슨 신호일지 의문이 갔다. 무슨 사인일까? 잠시후 정신을 추스린다음에 방에서 나온 후성이를 보았다. 아마도 안에서 우리가 하고있는 이야기를 들은것 같았다.
"저도 사람들과 떨어져서 지내고 싶은건 아니에요. 다른사람들하고 탁구도 치고싶고 간식도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싶어요. 재훈이 처럼 병실에서 연애도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저를 외면하고 혼자 내버려둬요. 나는 귀신이 들려서 남과 다른것 뿐인데 남들은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요. 정말 정말 그게 얼마나 서러운지 아무도 모를거에요. 흑흑."
후성이가 목놓아 울었다. 우리가 후성이한테 너무했던것일까?
"우리도 너하고 잘지내고 싶어. 그렇지만 너는 우리가 다가갈때마다 귀신이야기만 하고 우리들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았어. 지난번에 여러번 말했듯이 싫다고 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이상 우리도 사람인데 언제까지 참아주고 지낼수는 없어. 그건 분명히 네가 잘못한거야. 우리도 여기까지 와서 누군가를 따돌리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다른사람들의 관계는 네가 변하지 않는이상 더이상 개선되지는 않을거야. 운영이나 철준이도 병이 심각하지만 지금 사람들과 잘지내잖아. 생각해봐. 이건 병이 깊고 안깊고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야. 이것만 확실히해봐. 더이상 다른사람을 껴안지 않겠다고 맹세해. 그러면 우리도 너와 아픔을 함께할거야. 할수있겠어?"
"다신 사람들 껴안지 않을게요. 아니 그건 힘들것 같아요. 저는 귀신이 시키는것은 안할수가 없어요. 그냥 나를 이대로 내버려두고 아픔은 같이 나누면 안되요?"
"넌 정말 이기적이구나. 네가 지금처럼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너에대한 태도역시 변하지 않을거다. 네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사람들이 변하기를 원하니? 운영이가 잘할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너하고 친구가 될수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운영이라도 힘들것이라고 생각한다."
후성이는 이를 곽 물더니 운영이에게 다가가서 운영이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운영이가 불쾌한듯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내가 네가 껴안는것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별생각도 없는데 일부러 껴안지는 마. 별로 기분좋은일은 아니니 말야. 후성이 넌 왜그렇게 다른사람을 껴안는거야?"
"나도 몰라. 내가 그러는건 귀신이 남을 껴안으면 좋아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덤으로 다른사람의 잡귀도 ㅉ조아줄수 있다고 해서 하는거야. 잡귀가 사라지니 얼마나 좋아."
"나는 너와 잘지내고 싶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남자끼리 껴안는건 모양새가 좋지않다. 꼭 호모같잖아. 차라리 여기서 여자친구를 만들어서 껴안는건 어떠냐?"
"나도 그러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누가 나를 좋아하겠어. 그정도는 나도 알아. 여자친구를 안사귀는게 아니라 못사귀는거야."
"그걸 분별할줄 아는 녀석이 이렇게 행동해? 여자는 안껴안는걸로 봐서 하고자 하면 남자도 안껴안을수 있는거 아냐? 너 일부러 이러는거지? 내가 볼때는 네가 귀신이 씌여서 이런다는건 핑계에 불과해." 후성이는 운영이의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한지 얼굴을 찡그렸다. 원래 진실은 쓰디쓰고 착잡한 것이다.
"그래도 귀신이 쓰인것은 거짓말이 아냐. 지금도 나한테 말하고 있어. 사람들을 안아주어서 귀신때문에 생긴 고통을 해방시키라고 하고있어. 그리고 여태까지 운영이 너한테는 귀신이 안보여서 껴안지 않았던거야. 그런데 지금보니까 나한테도 귀신이 쓰이려고해. 너도 안아줘야 겠구나."
"운영아 싫으면 후성이에게서 떨어져. 네가 굳이 이렇게 까지 하면서 후성이를 챙겨줄필요는 없어. 앞으로도 혼자 지내라고 하면 되지."
"재훈아 그거는 후성이한테 너무 가혹하잖아. 후성아 정말로 다른사람을 껴안는것을 그만둘수는 없는거야? 정말 널보니까 슬프다. 자신조차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니 슬프다. 아마 그것이 네가 이곳에 오게된 이유중의 하나겠지.이성적으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을 저지르는걸 보니 병이겠지. 나도 내가 신이 아니었다면 이런 사실을 알수 없었겠지.그리고 나도 너처럼 됐을지도 몰라. 이번에는 네가 안는것이 아니라 네가 나에게 안겨봐. 신인 내가 넓은 마음으로 너를 용서해줄게."
후성이는 머뭇거리다가 운영이에게 안겼다. 운영이는 후성이의 등을 계속 두드렸다.
"흑흑 지금까지 나한테 안기라고 말을 한 사람이 없었어. 너무 힘든데. 힘들어 죽겠는데. 어디서도 혼자라는 사실이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어."
"그래 그래 그렇게 다 털어놓고 나한테 기도해. 나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 어째서 네가 혼자야? 너희부모님도 있고 나도 있잖아. 너를 항상 지켜보고 있어. 너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야."
운영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따듯한 시선으로 운영이와 후성이를 보았다. 우리보다 심각한 병에 걸린 두사람이 서로를 위로해주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시 남자끼리 껴안고 있는 모습은 그다지 좋은모습은 아니었다.
"우리가 못했던것을 운영이가 해냈구나. 운영이가 후성이를 위로해줄거라는 생각도 못했는데. 아무도 후성이를 다독이며 안아준 사람이 없었는데 운영이가 정말 마음이 넓구나."
"예 성호형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운영이가 아무도 못하는 일을 했네요. 아마 운영이가 아니면 이렇게 못했을거에요.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재훈이 니가 그렇게 해주지 그랬니? 지금 보니까 운영이 정말 멋있다. 오늘 이후로 수련이 언니도 운영이를 다시 보겠는데. 오락부장 재훈이는 왜 그걸 못했어? 반성해."
"알다시피 나는 비위가 약해서 후성이만 봐도 오금이 저리고 치가떨려. 병실의 다른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걸? 나를 탓하기 전에 먼저 후성이한테 한번 안기고 난 다음에 그런말해. 그러면 운영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것인지 알수있을거야. 아무나 운영이처럼 후성이와 친구가 될수는 없는걸 알아야되."
병실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새삼 운영이가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이 신이라고 하면서 자기에게 기도하라느니 헛소리를 해서 상대안하려고 했던 내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마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운영이가 한 행동을 못할것이다. 후성이를 포용할수는 없다. 사람들이 불가능을 해낸 운영이를 보는 모습이 따뜻해졌다.
"아이구 우리 운영이 기특하기도 하지. 아무도 말조차도 걸어보지 않으려고 했던 후성이를 울렸네. 이 수련이 누님이 앞으로 둘모두한테 잘해주마. 운영아 나한테 한번 안겨라."
"정말로요? 수련이 누나? 후성아 잠시만 떨어져봐. 조금후에 다시 안아줄테니까 일단 떨어져봐."
운영이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새라 수련이 누나에게 가서 안겼다. 운영이의 표정이 밝아졌고 수련이 누나는 오랬동안 운영이를 가만히 껴안아 주었다.
"유화야 나도 수련이 누나처럼 안아주라. 운영이가 정말 부럽네. 아 나도 저가슴에 안겨서 부비부비 하고 싶다."
"그런생각으로 어딜 날 노려? 나 그렇게 쉬운여자 아니거든요.뭐가 예뻐야 안아주던 말던 하지."
유화가 새침한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그렇지만 못이기는척 나를 살며시 안아주었고 병실에서 다른사람들은 두남녀가 포옹하는것을 보고 헛기침을 했다. "흠!흠" 후성이도 이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운영이를 보았다.
"운영아 앞으로 잘지내보자. 지난번에 네가 재훈이하고 장기두는걸 봤는데 나하고도 한번 둬보자. 나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한장기 하거든. 나는 재훈이 처럼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테니까 각오 단단히해. 한번 둬보면 놀랄거야.너도 긴장타야 할거야. 그리고 나중에는 강강에서 탁구도 치자. 치고 싶었어."
"신인 나도 심심했는데 잘됐다. 후성아 그러면 내가 장기알가지고 병실로 갈테니까 병실에 가서 두자. 둘이 사라지고 사람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병실에서 준영이형이 나와서 소파에 앉았다.
"준영이 오빠 괜찬아요? 아직도 후성이에 대한 감정이 안풀렸나요? 물론 힘들겠지만 후성이를 용서해주도록 하세요."
"더이상 나한테 달려들지만 않으면 나도 후성이한테 손댈 마음없다. 병실에서 보니까 후성이하고 운영이가 친해진것 같은데 무슨일이라도 있었어? 갑작스럽네."
수련이 누나가 준영이형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고 준영이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운영이가 정말 대단하구나.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던 후성이를 끌어안아서 친구가 됐다니 믿기 힘든걸해냈네. 하긴 둘다 병이 심하니까 서로 통하는데도 있었을거야. 후성이 때문에 침울해진 병실 분위기도 운영이 덕분에 좋아지겠네. 근데 어째 방에서 조금 지린내가 나지 않아? 누가 밤에 병실에서 오줌이라도 싼거 같아. 나만 그런가?"
"형도 그래요? 저도 아침부터 지린내가 심해서 빨리 병실 밖으로 나왔는데 병실에서 지린내가 나긴 하더라구요. 누가 그랬지?"
"맞아 나도 일어나보니까 냄새가 심하더라고. 저기 간호사님 병실에서 지린내가 나요. 방향제라도 병실에 뿌려줄수 없나요?"
"아 뿌려드릴게요. 어제 철준씨가 방에서 서서 소변을 봤어요. 다들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았는데 철준씨 병이 조금 심해진것 같아요. 병실에 방향제 뿌리고 치울테니까 잠시 여기에 계세요."
간호사들이 남자병실로 가서 방향제를 한참 뿌렸다.
"철준이 형이 왜 그랬을까요? 약이 잘안맞아서 부작용때문에 그런것인가? 철준이형이 요즘들어 멍한것 같지 않아요?"
"아마 병이 점점 심해지는것 같다. 살인까지 저지른 심각한 사람이라 약을 과다투여한것 같은데 말야. 보니까 신경안정제도 세알넘게 들어가는것 같더라. 그래도 재훈이하고 바둑도 두고 어울려서 병실 생활을 잘하는줄 알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거지?"
"아마도 본인은 이걸 기억하지 못할거에요. 맨정신으로 이럴수는 없으니까요."
본인은 기억할수 없다고? 나는 그이야기를 듣자 머리가 아파왔다. 어쨌든 잠시 그런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참 철준이형 지금 잠자고 있나요? 제가 한번 가서 확인해볼게요."
나는 철준이형이 지금 뭐하고 있을지 어떤상태일지 궁금해서 병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들이 병실 구석구석 방향제를 뿌리고 있었고 철준이형은 자리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철준이형 어떻게 된거에요? 간호사들이 그러는데 형이 어제 새벽에 오줌 쌌다면서요? 설마 형이 진짜로 그런건 아니죠?"
"재훈이구나. 사실 나도 기억이 잘안난다. 그런데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것이 내가 그런게 확실한것 같아.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나도 이런 내자신을 모르겠다."
"철준씨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 빼먹지 말고 꾸준히 약을 드세요. 약기운에 이런 부작용은 없어요. 마음 굳건히 드시고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또 이러지 마세요 원해서 그런건 아닌것 같아요."
철준이 형은 간호사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하구나 재훈아. 이런일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을텐데 말이야.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게 정말 두려워 내가 미쳐가는것 같아서.노상방뇨도 한번 하지않은 내가 설마 병실에서 오줌을 쌀줄이야. 재훈이가 아는걸 보니까 다른사람들도 알겠구나. 정말 이게 왠 창피냐."
"철준이형 잘못이 아닌거 잘알아요. 그럴수도 있죠.아마 다른 환우들도 다 이해해줄거에요. 앞으로 안그러면 되는거에요."
"그런데 너도 알겠지만 나도 내가 하고싶어서 그런게 아니잖아. 또 그럴까 걱정이다.아이구 정말 못할짓이다. 고개를 못들겠구나." 철준이형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개졌다.
"철준씨 담당의사선생님하고 면담을 한번 해보세요. 아직 의사선생님한테는 말씀안드렸지만 오후에는 드릴겁니다. 아마 담당 의사선생님이 조치를 취해주실거에요."
간호사가 똑부러지게 말을 하고 병실을 나갔다.
"참 재훈이 너도 오픈으로 간다면서? 이제 나는 바둑둘 사람도 없이 어떻게 지내야 할까? 오늘 보니까 후성이는 운영이하고 친구가 되서 장기를 화기애애하게 두던데. 재훈이 오픈으로 가면 안되냐? 농담이고 오픈으로 가서도 잘지내라."
철준이형이 쓸쓸하게 웃었다. 내심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재훈씨 이강희 주치의님이 하실말씀이 있다고 면담실로 와서 잠시 가다리라고 하셨어요."
곧 오실테니까가서 기다리세요."
"네 가보겠습니다."
나는 면담실로 발길을 옮겼고 텔레비전이 지지직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장이라도 난건가? "재훈씨 기쁜소식이 있어요. 재훈씨 오늘 오픈으로 가게 되었어요. 김인철 담당의사님하고 이야기가 끝났어요. 재훈씨의 병이 상당히 호전되어서 이제 오픈으로 가도 될것이라고 판단을 내렸어요.지난번 심리검사 결과도 재훈씨의 병이 어떤것인지에 대해 파악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치유하기 쉽지않은 병이지만 재훈씨를 지켜본 결과 오픈에서 치료해도 될것이라고 사료되어서 오늘 가게 되었어요. 어때요? 기쁘지않나요?"
"오픈으로 가게 될거라고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갈줄은 몰랐어요. 아닌게 아니라 오픈으로 간다니까 정말 기뻐요.이번주내에 가게 될거라고 해서 한 일주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이라니 기분좋게 놀랐어요. 그럼 이 면담 끝나고 가게 되는것입니까?
"오픈행 외에 특별히 면담할 내용은 없어요. 김인철 담당의사님이 한가지를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여기에 오게된 경위가 기억나는지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또 18살 이후의 여기에 관련된 기억이 없냐고 물어보셨어요.이제 기억나나요?"
"의사선생님이 무슨말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가요. 저는 기억안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못하는것이 없어요."
"좋아요 그럼 병실로 돌아가서 짐챙겨서 간호사를 따라 오픈으로 가세요. 그냥 따라가면 되니까 마음 편히 먹고 가세요."
나는 병실로 가서 내소지품을 넣고 책가지를 챙겼다. 그리고나서 여자병실 앞으로 가서 유화를 불렀다.
"유화야 나 갑자기 지금 오픈으로 가게 됐어. 너무 갑작스럽지? 나도 놀랐어. 유화도 빨리 오픈으로 와야되는데 아쉽네. 내가 먼저 오픈으로 가서 널 기다릴게."
"..재훈이 드디어 가는구나. 그래도 가기전에 나한테 제일 먼저 찾아온것이 기특하다. 나도 네가 갑자기 오늘 가게되서 당황스러워. 정말 나는 언제쯤에야 오픈으로 가게 되는것일까? 오픈으로 가면 편지 꼬박꼬박 써서 재활활동할때 줘야해. 안그러면 재훈이 가만두지 않을거야."
"어떻게 가만두지 않으려고? 이렇게?"
나는 유화의 앵두같은 입술을 덮었다. 달콤한 향기가 묻어나오는것 같았다. 부드러운 혀의 감촉. 어느새 유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재훈이 너 내가 없다고 고무신 꺼꾸로 신으면 안되. 네가 좋다고 해서 만난건데 네가 변하면 나는 어떻해. 내 기대를 배신하지마."
"그럼 누구말씀이신데 지켜야하는게 당연하지. 유화 너야말로 나 없다고 다른남자 들이면 안되.그러면 네가 나중에 오픈오면 정말로 덮쳐버릴거야."
"내가 가기전에 네가 퇴원하면 어떻게 하지.."
유화가 조그만 목소리로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유화를 보았지만 나는 이율배반 적이게도 담담했다. 유화를 볼수 없는 오픈으로 가는것인데도 유화를 못보게 되는것에 대한 슬픔보다도 기쁨이 앞섰가.유화가 이런 내마음을 알면 많이 섭섭해 할것이다.
"유화야 우리 꼭 볼수 있을거야. 손가락 줘봐. 약지 걸고 약속할게."
"후우 그러면 나는 재훈이가 병이 나아서 퇴원하지 않도록 빌어야 하는거야? 재훈이 병 낫지마라. 재훈이 병 낫지마라. 예전에 가르쳐준대로 하루에 세번씩 이렇게 기도해야 되겠는데. 재훈이는 내병이 빨리 호전되서 내가 오픈으로 갈수있게 기도해."
"그럼 우리 이제짧은 이별을 하자. 나 이만 가볼게 잘지내."
나는 남자병실로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호사를 따라서 오픈으로 갔다.ㅇ드디어 오픈으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떠올랐다.
"어 재훈이 형이네. 인성이형하고 창운이형은 벌써 퇴원했어. 나도 이번주에 외박 나가보고 상태를 지켜본다음에 퇴원이 결정 될거래. 아무튼 형도 오픈와서 정말 잘됐다."
"천복이구나. 오픈에는 그렇게 오래있지 않아도 퇴원하네. 아무튼 천복이가 밝아보여서 보기 좋다." "지운이도 먼저 퇴원해서 조금 심심해. 놀랄거야. 여기생활은 클로즈하고 다르게 전화도 쓸수있고 컴퓨터도 구형이라 후졌지만 사용할수 있고 산책도 자유산책이 가능한 사람들이 꽤있어.그리고 남자병실이 두개고 여자병실도 두개야. 클로즈의 두배의 사람들이 있어. 여기 독방은 구석방하고 달라. 특실이라고 생각하면 되. 안에 텔레비전도 따로 있어. 지내기 좋은 방이야. 이정도 알면 지내기 충분할거야. 형도 오픈에서 생활하게 되면 클로즈보다 답답함이 많이 줄어들거야."
"일단 컴퓨터로 이메일 보낸다음에 천천히 병실을 둘러봐야겠다. 얼핏봐도 병동이 클로즈보다 두배가까이 되는것 같네. 세면실도 두개나 되니 이제 세면하려고 기다리는 시간도 짧아 지겠는데." 나는 나에게 배정된 1002호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에는 나까지 포함해서 여섯명이 있었다. 나는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오픈으로 오게된 이재훈이에요.스물세살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그래 우리도 잘부탁한다 잘지내보자. 응? 나이가 스물셋이라고? 지원이하고 상석이하고 동갑이네.나는 이석원이야. 우리 같이 즐겁게 생활하자. 왼쪽에 있는 사람은 옆방에 있는 종철이고 네 맞은편은 인철이야. 네 담당선생님하고 이름이 같지?"
석원이형이 내 병실표를 보고 말했다. 나는 병실 사람들과 한사람 한사람 인사했고 클로즈에서 가지고온 초코파이와 쿠키를 한개씩 돌렸다.
"지원아 재훈이좀 보고 배워라. 지난주에 네가 처음 왓을때는 아무것도 없었잖아 이런건 좀 본받아라."
"지원이가 지난주에 왔다구요? 클로즈에서 못봤는데.."
"지원이하고 인철이는 처음부터 오픈으로 왔어. 여기 오기전에 의사선생님하고 3주만 있기로 이야기를 끝내고 여기온거야. 부러운 녀석들이야."
"클로즈를 거치지 않고 오픈으로 온사람이 많은가 봐요. 안면이 있는분이 한분도 없네요. 혹시 찬송가 부르던 은주누나 아는 사람있나요?"
"아 찬송가 부르던 은주? 그애 오픈으로 오더니 병이 빠르게 호전되어서 금방 퇴원했어. 찬송가 부를때 정말 목소리가 고왔는데 말야. 여기 있을때는 매일 부르는 찬송가가 지겨웠는데 막상 은주가 나가니까 병실이 허전해진것 같아. 그런데 은주는 왜 찾아?"
"그건 은주누나와 사귀기 직전까지 갔다가 은주누나가 갑자기 오픈으로 가서 헤어지게 되어서요.연락처도 안물어봤는데..아무튼 잘지냈나 궁금해서요. 연락처 아시는분 있으면 알려달라고 할려구요."
"야 너는 여기서도 애인구하냐? 아마 힘들거다. 여기 사람들은 자기 챙기기도 바쁜데 연애가 가능하겠어? 내가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것은 아니고.."
"석원이형 은주누나한테 대쉬했다가 실패한거 병실 사람들 다 알아요. 아닌척 하기는.. 저만해도 보세요. 여기서도 연애할사람은 다 해요."
"종철이 이자식. 그래 먼저 퇴원한 통통한 연주와 사귀었다고 했지? 그런데 네가 외박한동안 연주가 퇴원해서 징징거렸던 기억이 난다. 사내자식이 그런거 가지고 울다.." 그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철이형이 다급하게 석원이형의 입을 막았다.
"뭐 그렇다는 거지. 재훈이라고 했나? 서로 통성명은 했으니까 말터놓고 지내자. 형이라고 불러. 여기온것을 환영한다."
"저야말로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헤헤."
나는 병실 사람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병실을 둘러보았다. 클로즈보다 넓은 병실. 창가를 보자 예전에 갔던 산책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보다가 내자리로 돌아와 사물함에 책과 짐들을 넣었다. 그리고 밖으로 가서 공동냉장고에 고추장과 반찬들을 이름을 스고 넣어두었다. 이제 오픈생활의 시작이구나. 문득 오픈가는날을 기다리고 있을 유화가 생각났다. 내가 퇴원하기전에 유화가 오픈으로 와서 볼수 있을까?
만약 유화와 내가 인연이라면 다시 보게 될것임에 틀림없다. 창가에서 병실로 햇살이 눈부시게 비춰왔다. 오랫동안 병실에 갇혀 생활한 탓에 새하얘진 손으로 햇빛을 가렸다. 이제 퇴원까지 한걸음 내딛은것 같다. 여기 생활하고 있으면 곧 수련이 누나하고 성호형님이 올것이다. 그때까지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 두어야 겠다. 특히 가끔 클로즈에서 피아노연주를 들었던 여자애와 잘지내고 싶었다. 오픈에는 클로즈보다 두배가 큰 강당에 텔레비전이 있고 새탁구대가 있었다. 클로즈보다 성능이 좋은 런닝머신에 세줄로 소파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구석에 놓여있는 피아노한대가 있었고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있었다.
조지윈스턴의 'december' 을 연주하고 있었다. 나의 눈에 피아노를 치는 소녀가 보였고 피아노 건반을 현란하게 치고있는 새하얀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맑고 청량한 연주소리에 나는 넋을 잃고 연주하는 소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클로즈에서도 가끔 들었던 연주가 이 소녀의 연주였던것이다. 오픈내에 연주소리가 구석구석 울려퍼졌다. 연주소리가 오픈에 울려퍼지자 사람들이 하나둘 소파에 모여들어서 앉았다. 이어서 클로즈에서 자주 들었던 파헬벨의 'CANNON' 이 피아노로 연주되었다.
이곳생활의 낙중하나가 음악듣기였다. 그래서 텔레비전 음악채널에서 많은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생음악에 비할바는 아니었다.사람들은 조용히 경청하다가 클라이막스가 끝나면 일제히 박수를 쳤고 소녀가 부끄러워했다. 나는 내옆에 앉은 석원이형에게 궁금한것을 물어보았다. "저 피아노 치는애 이름이 뭐에요? 내 또래로 보이는데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정말 피아노 잘치네요."
"영아 말이구나. 재훈이 너는 오픈에서도 일저지르려고 그러지? 자식도 참. 젊다는건 정말 좋구나. 너도 30대 한번 되바라. 도대체 연애상대 구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 결혼도 생각하면서 만나야 하니까 골치도 아프고. 어때? 내가 가서 소개라도 시켜줄까?"
"아녜요. 괜찮아요. 제가 나중에 찾아가서 물어보죠. 그나저나 형은 여기에 왜 왔어요?"
"나? 나는 원래 미국에 있었어. 콜로라도 주립대학을 다녔는데 프로그래밍을 전공했었어. 그런데 졸업시험에서 교수가 프로그래밍 한개가 틀렸다고 졸업학점을 주지 않는거야. 겨우 찾아서 고쳤는데도 학점을 주지 않더라고. 나는 화가나서 집에 있는 컴퓨터를 집어던지고 부셨어. 내 룸메이트가 그걸보고 내 상태가 이상한것 같아 경찰에 전화했어. 그래서 나는 미국에 있는 정신병원에도 있었어. 거기는 자기를 정신병원에 보낸 사람에게 소송할수도 있어. 여기처럼 클로즈와 오픈으로 나뉘어 지지도 않아. 잡지와 책도 종류별로 다 있고 음식도 양식으로 잘나오더라. 아무튼 거기서 2주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부모님이 나를 잡아서 여기에 처박았어. 겨우 컴퓨터 부시고 우울해있던것 가지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다니 억울했지.그런데 너는 왜 왔어?"
"저는 동네 양아치들한테 다구리를 당했어요. 그러다가 걔네들이 칼을 뽑아서 저를 찔렀어요.물론 찰과상만 입었지만요. 그리고 무슨일이 있었는지 깨어보니 여기였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그 사건이 있기전에도 제가 이상했다고 하세요. 제가 강남구를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다녔대요. 꽃집에 들어가서 꽃말이 뭐냐고 물어보고 모른다고 하니까 그것도 모르냐고 깽판쳤던 기억도 있어요. 그러다가 서비스업이 갑자기 하고 싶어서 서빙을 구했어요. 서빙한다고 여기저기에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다녔어요. 아르바이트 한다고 말을 해봐서 여기 온후에 제 전화기로 전화도 많이 왔었대요. 하지만 제일 결정적으로 여기에 온것이 양아치들 때문이라는데 잘 기억이 안나요."
"나는 내 부모님한테 들어보니까 일종의 우울증 같다더라. 부모님이 의사선생님과 통화했는데 내 증상이 우울증으로 추측된다고 하더라. 뭐 여기온 사람중에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석원이형이 연신 과자를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어느새 연주가 클라이막스로 치달았다. 간호사들도 연주소리를 듣고 하나둘 강당으로 와서 연주를 감상했다.
"짝짝짝짞 역시 영아구나. 열심히 해서 피아니스트가 되지 그랬냐? 정말 몇번을 들어도 너무 잘쳐서 감탄밖에 안나온다."
" 에이 석원이 오빠도 참. 악보보고 치는건데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요. 안보고 치는것은 몇곡안되는거 아시잖아요. 그런데 옆에 누구에요? 못보던 얼굴인데.. 새로오신분인가?"
"예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오픈으로 온 이재훈입니다. 잘부탁드려요. 앞으로 잘지내요." 나는 오른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했고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래요 앞으로 잘지내봐요. 아무리봐도 내또래 같은데 나이가 어떻게 되요?"
"스물셋이에요. 지원이와 상석이와 같은 나이에요." "어머 우리도 동갑이네. 우리 말놓고 지내자.요새 오픈에 동갑내기들이 많은것 같네. 좋은현상이야 젊은피가 좋아. 난 영아라고 해. 아 식사왔나보네. 병실로 갈게. 배고파서 빨리 먹어야겠다. 그럼 이따가 보자."
영아는 정말 배가 고팠는지 식사를 가져오는 아줌마의 발자국 소리를 듣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병실로 내달렸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웃음이 나왔다.
"영아도 재밌는 구석이 있는것 같네요. 저렇게 배가 고플까? 그러고 보니 나도 배가 고프네.휴.석원이형 우리도 식사하러 병실로 돌아가죠."
"그래 우리도 들어가자. 오늘은 반찬이 뭘까? 이런 인철이하고 다이어트 하고있는데 이렇게 식탐은 늘어만 가니 걱정이다. 이거 어떻해야 좋을까?"
"형도 다이어트 하세요? 저도 클로즈에서 성호형님하고 다이어트 했었는데. 낮에는 많이 먹어도 되요. 저녁에만 조금 먹으면 되지."
"그래? 다이어트 했었다고? 점심은 맛나게 먹자. 너도 다이어트 같이 하지 않을래? 인철이하고 다이어트 같이 하는데 인철이는 저녁을 아예 안먹고 칼로리 바란스만 다섯시 이전에 먹고 이주동안 7킬로그램이나 뺏어. 나는 독하지 않아서 3킬로그램 밖에 못뺐는데.대단하지? 인철이가 알고보면 참 독한면이 있어 나는 식탐을 못참고 저녁은 저녁대로 먹고 칼로리바란스는 간식으로 먹어서 살이 안빠지고 있는데 말야."
"와 저도 3킬로그램 밖에 못뺐는데 인철이형 대단하네요. 앞으로 나도 칼로리바란스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겠다. 그럴려면 인철이 형하고 친해져야 겠네요."
말을 마치고 석원이형과 나는 잰걸음으로 병실까지 내달렸다.
"식사 왔습니다. 다들 일어나셔서 식사 받아가세요."
맑고 우렁찬 천상의 하모니가 들려왔다. 그만큼 아주머니의 말이 달콤하단 뜻이다. 정신병원 생활중 빼놀수 없는 즐거운이 먹는것 이라는 사실은 인정할수 밖에 없다. 식사를 보는 환우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늘 반찬은 불고기에 시금치 무김치와 김과 미역국이 나왔다. 오늘의 반찬을 맞추던 후성이가 생각났다.
후성이는 운영이와 잘지내고 있을까? 유화와 다른사람들도 식사하고 있겠지? 이런생각을 하면서 시계를 보았는데 12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그러진 시간의 공간에 있는것 같다. 시간관념이 희박해지는 느낌이었다. 식사가 클로즈보다 30분 늦게 나왔다. 이것은 별것 아닌것 같지만 큰차이다. 여기서 식사를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모를것이다.
그런면에서 볼떄 30분차이는 느낌상 1시간 이상 늦게나오는것 같다. 밖의 사람들을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할것이다.상석이하고 지원이가 식사를 가지고 내옆으로 왔다.
"재훈아 텔레비전 보면서 같이 먹자. 네가 인상이 좋아서 같이먹는 것이니까 영광으로 알아라.이 지원이가 식사 같이하자고 말한 두번째사람이다 너는."
"그럼 첫번째 사람은 누구야?"
"그거야 당연히 영아지. 영아하고는 병원에 처음 왔을떄부터 친해졌어. 뭐 연애하는것은 아니고 그냥 친구사이지만 왜 영아한테 관심있어?"
나는 지원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관심이 있다고 말할뻔했다.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근데 그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암튼 식사권유받아 영광이로소이다 지원왕자님아."
"크흠 이 왕자가 명을 내리노니 냉큼 불고기를 갖다바치거라. 황명이다."단한점의 불로기라도 불가하오. 아무리 황자님이기로서니 안되는건 안되는거요."
"휴 할수없구나. 둘이 멍청한게 죽이 잘맞는구나. 몇대만 맞아봐라."
상석이가 우리둘의 이마를 콩하고 빠르게 쳤다. "아프다. 야 이거 감정이 잔득 실린거 아냐? 너무 아픈데. 네가 첫번째 사람이 아니라서 삐진거냐?"
"지원이 계속 헛소리할래? 그건 됐고 냉장고에서 볶음고추장 꺼내서 가져와라. 같이 식삭할때는 밤비벼먹는 고추장이 최고지. 그게 꼭있어야 식사한것 같지."
"자식이 맛있는건 알아가지고.둘이 먼저 강당으로 가있어. 냉장고에서 꺼내서 가져갈테니까." 지원이가 복도를 걸어가서 공동냉장고앞으로 갔다. 냉장고의 크기도 클로즈보다 훨씬컸다. 사람이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오픈과 클로즈는 차이가 너무 나는것 같았다. 이래서 그렇게 오픈으로 오고 싶었나보다. 상석이와 나는 소파를 붙여놓고 가장먼저 리모콘을 확보했다. 맨뒤의 소파에는 할아버지 한분이 대자로 누워서 주무시고 있었다.
"재훈아 저기 저할아버지 여기 있은지 3년이 넘었대. 치매기가 있으셔서 치료하려고 오셨다더라. 나도 저할아버지처럼 오래있으면 어떻할까 생각많이 했었어. 정말 오싹하다니까. 삼개월도 견디기 힘든데 3년이라니.. 아무튼 너는 잘모르겠지만 저 할아버지한테 잡히면 큰 곤욕을 치뤄야 할테니까 할아버지 신경건드리지 않게 조심해라."
나는 할아버지의 신경을 거스를까봐 조심하면서 두번째 줄의 소파에 있던 식사용기를 첫번째 줄로 옮겼다.
"우민들아 볶음고추장 가져왔다. 자식들이 맛있는것은 알아가지고 자 먹자."
우리는 지원이가 준 볶음고추장을 밥에 골고루 뿌리고 비볐다. 상석이가 언제 가져왔는지 깨를 꺼내서 각자의 밥에 뿌려주었다.
"아 참기름이 빠진것 같다. 내가 고추장을 준비하고 상석이가 깨를 준비해왔으니까 재훈이가 앞으로 참기름 준비해와라."
"알았어. 다음에 집에다가 가져오라고 말해놓을게."
밥에 고추장을 비벼먹으니까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다. 내가 왜 이맛을 모르고 병실에서 식사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을정도로 맛있었다.
"크흠 허리가 쑤시네. 할멈 밥안주고 어디갔어? 할멈 할멈 대답해봐."
"여기 밥가지고 왔수.병실로 가서 밥드시구랴."
"아니 아침도 안줘서 굶었는데 이제야 가지고 오면 어떻하자는거야 할멈. 지금 나 굶어죽이려는거야?"
"아침은 이미 드셨잖아요. 아이구 이 늙은이가 먹은것도 기억을 못하니.."
"아니 그러니까 할멈 아침을 이제사 주면 어떻하자는겨?" "아유 이양반 정신이 없어서 아무튼 식사나 합시다. 점심이나 드슈.병실로 들어가서 잡수시구랴. 젊은 총각들 있는데서 먹지 말고."
할머니가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우시고 병실로 가셨다.그리고 누군가 강당으로 들어오더니 내가 가지고 있던 리모콘을 뺐었다.
"뭐야 넌? 리모콘 어딨어?" 뒤돌아 보니 보고싶지 않은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재훈이 이새끼 어떻게 오픈으로 온거야? 꼴보기 싫은 새끼를 앞으로도 봐야 한다는거야? 정말 짜증이다. 너때문에 '비'가 더이상 나를 보러 오지 않잖아."
화수가 눈을 부릎뜨고 나를 째려보았다.
"넌 오픈으로 와서도 병이 전혀 낫지 않았구나. 의사선생님께서는 뭘보고 이런애를 오픈으로 보낸거지? 아마 심각한 착오가 있었을거야."
"이 미친놈이. 말다했어? 어차피 나는 늦게온 너보다는 빨리 퇴원할거니까 석은머리 가지고 여기서 평생 살아봐."
"너야말로다. 너는 병이 전혀 낫지 않았는데 무슨놈의 퇴원을 생각하냐? 클로즈로 다시 안돌아가면 다행이다. 넌 최소한 몇년은 여기 있어야 할거야."
"이익 재훈이 너 말다했어? 아무튼 경고하겠어. 아무튼 넌 여기서 죽어지내지 않으면 된통 데일줄 알아라. 여긴 클로즈하고 다를거다."
화수가 소리지르며 나갔다. "재훈이 너 화수 아는거야? 저애는 저렇게 미쳤는데 어떻게 오픈으로 왔는지 모르겠다. 여기와서도 매일 '비'만 찾아.텔레비전은 혼자 다보고. 다른사람들도 쟤 피하고있어.너도 가능하면 부딫히지 말고 그냥 무시하고 지내는게 좋을거야."
"그래 상석이 말이 맞아. 이런애를 상대하면 할수록 너만 손해야. 알지? '비'가 이런데 오겠냐? 자기가 '비'의 애인이라고 믿는것을 보면 가소롭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니까.팬클럽 사인회때 한번 스치듯이 본거 가지고 ' 비'가 자신한테 빠졌다고 그런다더라."
나는 상석이와 지원이의 말에 동의했다. 상대하면 손해만 본다는점에 우리는 의견을 모았다. 도대체가 일그러진 얼굴에 곰보같은 생김새로 그런 상상을 하다니 도무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수가 없었다. 비록 외모가 다는 아니라지만 욕설도 쉽사리 내뱉고 성격또한 편협한데 과연 누가 저런애를 좋아할까?
의사선생님이 클로즈의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왜 병이 낫지 않은 화수를 오픈으로 보냈는지가 미스터리였다. 화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밥먹는 타이밍을 놓쳤고 밥은 이미 식었다. 그리고 아줌마들이 식판을 회수해가고 있었다.
"이런 늦었네. 우리도 빨리 먹자. 젠장 미친년 하나때문에 밥이 다 식었다. 그래도 볶은 고추장 맛에 먹는다.정말."
"재훈이 볶은고추장 처음먹는것 처럼 이야기한다. 우리는 여기와서 거의 매일 먹었는데. 군대 같다온 석원이형이 강력추천을 해서 먹게된거야."
경로야 어떻든 밥에 비벼 먹으니까 별미가 따로 없었다. 고소한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그렇게 즐거운 점심시간이 끝났다. 석원이형이 트름을 하면서 강당으로 들어왓다.
"다들 밥은 잘먹었나? 재훈아 소화도 시킬겸 형하고 탁구나 한번 치자. 정체되어있던 오픈 탁구계에 새로운 강자가 등장할때가 되었지. 여기있는 애들은 천복이 빼고 상대가 안되서 심심했다." "실망스럽겠지만 저 탁구 잘 못쳐요. 천복이한테 매번 졌는걸요."
"말이 필요없고 우리 탁구 치자. 뉴페이스하고는 부딪혀 봐야지." 석원이형과 나는 탁구대를 설치하고 탁구채와 탁구공을 가져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석원이형의 서브. 탁구채의 어느 모서리를 쳤는지 공이 빠르게 회전하며 탁구대를 갈랐다.
"1대 0이다. 설마 서브도 못받는것은 아니겠지?" 탁구공이 이번에는 회전만 먹고 내 사거리에 들어왔다. 나는 그공을 간신히 쳐냈다. 그렇지만 공이 아리랑볼로 석원이형 측에 넘어갔고 스매쉬하기에 좋은 위치를 점했다. 석원이형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스매쉬를 갈겼다. 그렇게 게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21대 10 게임오버. 뭐야 재훈이 나름대로 잔뜩 기대했었는데 더블스코어도 못했네. 앞으로 나하고 치려면 지원이하고 상석이 밟고 도전해라. 그러면 받아주마."
'칫 저 잘못한다고 했잖아요. 도대체 병원에 온다음부터는 모든게임에서 지기만 하네. 다들 너무 잡기에 능한거 아니에요?"
"하하 그거야 너도 알겠지만 여기서 시간때우는 걸로 잡기만큼 좋은게 있냐? 그러니까 병원에 오래있을수록 잘하게 되는건 당연한거야.너도 마음 편히 먹고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천천히 실력이나 쌓으라구. 남는것은 시간밖에 없잖아."
지원이와 상석이가 내의견애 동하는지 웃었다. "재훈이 오늘은 석원이형한테 진타격이 있으니까 다음에 치자. 점수차이를 보니까 나하고 치면 박빙이겠는데. 수준이 비슷한거 같네." "너는 21대 8로 끝났었잖아. 21대 11을 기록했던 나야말로 재훈이와 맞수가 되는거지. 너는 하수고."
"그래 상석이 네가 자알친다. 고작 3점차이가지고 재기는 거기서 거기지."
"그 3점이 얼마나 큰차이인지 모르는구나. 장담하는데 네가 3점을 더 얻으려면 2주는 더 탁구쳐야 된다고 알아?" 그때 천복이가 탁구소리를 들었는지 탁구대로 빠른걸음으로 다가왔다.
"누가 탁구쳤나봐요? 재훈이형 탁구실력은 많이 늘었어? 이제 수련이 누나는 이길수 있어?"
"휴 실력이 늘기는.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발리고 있다. 그런데 너하고 석원이형하고 치면 누가 이기냐?"
"글쎄. 비슷한데 내가 이긴판이 더 많아. 알다시피 내가 조금 다재다능하잖아. 훗" "쿵!!" "아파 재훈이형 갑자기 왜 때려?"
"그거야 맞을짓을 하니까 때리는거지. 잣식이 운동신경이 좋긴 좋다. 너 석원이형하고 다시 쳐봐라. 구경하게 말야."
"흠흠. 천복아 오늘은 재훈이하고 쳐서 힘들다. 나하고는 내일 베스트 컨디션일때 한번 치자. 지금은 안될것 같다."
어쩐지 석원이형이 천복이와의 대결을 피하는듯한 판국이 되었다. 아마 지금 천복이한테 지면 형으로서의 이미지가 깨질것 같아서인듯 했다.
"그런데 천복아. 화수알지? 여기서도 말썽이냐?" "말도 말아요. 매일 나한테 와서는 '비'가 너무 좋다느니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느니 자기는 남자친구가 몇명있는데 그때문에 고달프다고 그래요. 말도안되는 헛소리만 계속 하는데 들어주기 힘들다니까요. 그냥 응 맞아요 만 하고 있어요." 다른사람들한테도 보기만 하면 그런거 물어보니까 병실 사람들도 포기했어요. 이미 퇴원한 지운이도 화수누나 얼마나 싫어했는지 몰라요.그 누나 어떻게 오픈으로 왔는지 정말 궁금하다니까요.그리고 1003호실의 마훈이형도 요주의 인물이니까 조심해요.맨날 만나면 마피아아 야쿠자아 조폭아아 그런말을 하면서 겁을 준다니까요.그리고 자기가 조직에서 행동대장이었다나. 등에 용문신도 있더라구요."
"여기 오기전에 깡패였나 보구나. 나도 함부로 행동해서 신경거스리지 말아야겠네. 제길."
"그형도 병이 심각해요. 자기가 칼을 한번 들면 수십명이 달려들어도 다 회를 뜨고야 말았다더니 여기로 온이유가 감방가기 싫어서 왓대요. 겉보기에 몸이 왜소해서 진짜 건달인지는 모르겠어요. 제 생각에는 그냥 양아치인것 같은데 말예요."
나는 그말을 듣자 나를 다구리 놓고 칼을 빼들던 양아치 다섯명이 생각났다.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우리동네에서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다던데 나를 찔렀던 양아치 일행을 말하는것이 아닌가 싶었다. 평소부터 양아치와 깡패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있던 나였기에 깡패갔다는 천복이의 말을 듣자 마훈이형이란 사람에게 악감정이 생겼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형이 여기서 난리한번 친이후로 조용해졌어요. 그다음에 약이 많이 늘어났거든요. 그약을 먹고는 기운이 없어졌는지 그냥 말로만 마피아아 야쿠자아 그래요. 이제는 무섭지 않지만 그래도 워낙 상태가 안좋아서 사고가 날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아직도 상대하는데 꺼리낌이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이제 약을 먹으니까 난리치는 일은 없을거에요."
"철준이형 경우하고 비슷하구나. 그런데 여기서 마훈이란 형하고 같이 지낼만한 사람이 있을까? 없다면 마훈이형도 삐뚫어질수 밖에 없을텐데.마훈이형하고 말트는 사람은 있어?"
"아뇨 그형도 후성이형하고 비슷해요. 화수누나하고 조금 이야기하는것 같던데 잘모르겠어요. 그형은 먹을게 생기면 후성이형처럼 혼자 구석에 처박혀서 고개를 돌리고 먹어요. 부모님이 오셔서 피자나 치킨을 사오시면 병실사람들하고 나눠먹지 않고 혼자 숨어서 다먹어요. 다른사람이 먹고 있으면 꼭 뺐어먹는데 자기건 안줘요. 그리고 종종 일부러 문신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을 겁줘요. 그러니까 같이 다니는 남자병실 사람들은 없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병실에만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점까지 후성이형과 똑같아요. 그형도 클로즈에서 조금 더 치료받고 오픈으로 왔어야 되는데 의사선생님들은 무슨생각인지 몰라요."
"그럼 누군가가 마훈이형하고 친해져야 하겠구나. 환우들끼리 외면하는것은 옳지 않지. 천복이는 오픈에 있어서 모르겠지만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않던 천복이에게 친구가 생겼어. 왜 자신이 신이라며 자기한체 기도하라고 했던 운영이 기억나? 잘모르려나? 아무튼 둘이 친구가 되서 후성이가 전보다 밝아지고 활동적이 됐어. 아마 후성이같이 마훈이형도 친구가 생기면 혼자서만 지내지 않을거 같아. 여건이 좋아지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거든."
"그게 말처럼 쉬우면 벌써 친구가 생겼겠죠. 저는 이미 포기했으니 재훈이형이 알아서 해보세요. 정그러면 형 스스로가 시도해보던가요. 아마 확실한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거에요."
"알았다. 내가 직접 해볼게 다른사람한테 말하지 말고 말야. 잘안되더라도 시도라도 해볼게."
나는 천복이가 있는 1003호실에 천복이와 같이 들어갔다.
"안영하세요. 저는 이번에 클로즈에서 오픈으로 오게된 이재훈 이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클로즈도 아니고 오픈에서 그런인사 하는건 처음보네.나는 김요한이다. 그래 네말대로 잘지내보자."
"재훈이라고? 여기있을동안 만이라도 같이 생활하면서 잘지내보도록 하자. 나에게 인사를 한것은 단 두명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듣는둥 마는둥했다. 클로즈하고 다르게 여기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거리감을 느끼는것 같았다. 나는 간식으로 산 몽쉘통통과 오렌지 주스를 모두에게 돌렸다. 그리고 마훈이형- 병실표를 보니까 35세였다.- 에게 주자 마훈이형은 나를 마치 원수라도 보는듯이 노려보았다.
"마피아아 야쿠자아 네가 냄비였으면 좋았겠지만 사내새끼라 도저히 마음에 안든다. 아무튼 줬으니 잘먹겠다."
마훈이형은 천복이 말대로 구석으로 가서는는 누가 뺐어먹을새라 급하게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나는 마훈이형의 모습과 후성이의 모습이 겹쳐서 괜히 씁쓸해졌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사람이 과연 바뀔수 있을까? 나는 일단은 인간관계를 이쯤으로 하기로 하고 병실로 돌아섰다.
"재훈아 잠깐만. 카스테라 빵이 남아서 그러는데 이거라도 먹으면서 조금이라도 이야기 하고가라."
"알겠어요. 요한이형. 잘먹을게요. 혹시 형 여기서 체스둘줄 아는사람있어요?"
"응 있지. 내가 한체스해. 근데 체스판이 없어서 못두고 있는데.."
"잠시만요. 체스판 제가 어디서 본것 같은데..아마 텔레비전 밑에 있었던것 같은데요."
나는 어쩐지 텔레비전 옆의 피아노위에 체스판이 있을것 같았다. 짐작대로 피아노의 왼쪽 윗부분에 체스판이 있었다. 나는 내가 여기 체스판이 있는줄 어떻게 알았을까?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생각을 그만하고 체스판을 가지고 병실로 들어갔다. 나는 요한이형 자리에 가서 체스의 말들을 진열하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 둘준비를 하였다.
"제가 먼저 둘게요. 아무래도 요한이형이 저보다 잘두시는것 같으니 먼저 둘게요."
나는 첫수로 캐슬링을 하였다.왕과 룩의 위치를 바꾸었다. 그러자 요한이형은 폰을 진격시켰다. 나는 나이트를 올리고 비숍으로 폰을 보호하였다. 요한이형은 그런것을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폰을 진격시켰다. 폰과 폰이 대칭을 이루었고 나는 폰으로 대각선의 폰을 잡아먹었다. 그것을 요한이형이 나이트로 집어먹었고 나는 비숍으로 나이트를 잡았다. 그리고 다음수에는 룩을 폰위까지 앞세웠고 요한이형은 그쪽에는 신경쓰지 않고 룩과 퀸으로 내 진영을 뒤흔들었다. 나는 나이트 두마리를 왼쪽으로 몰아넣고 중앙에서 킹과 위치를 바꾼 룩과 다른룩을 활용했다. 그때 퀸이 킹에게 다가와 대각선으로 체크메이트를 불렀다. 나는 다시한번 캐슬링을 했다. 룩 두마리가 서로를 지켜서 퀸은 잡아먹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나는 장기에서 운영이가 나를 이길때 썼던 전술을 벤치마킹 하였다.
왼쪽으로 말들을 모아서 비숍과 나이트를 바꾸고 폰두마리와 나이트를 바꾸었다. 생각보다 요한이형의 실력은 대단하지 않았다. 나는 룩두마리와 퀸으로 진격해서 체크메이트를 불렀다. 요한이형이 캐슬링을 했지만 나는 그것을 먹었고 비숍이 내 말을 먹었다. 나는 비숍을 먹으면서 퀸으로 체크메이트를 불렀고 요한이 형이 패배를 인정했다.
"이건 무효야. 내가 지다니 이건 믿을수가 없어. 재훈이 잘두는구나. 그리고 특이한 전술을 쓰네. 룩으로 비숍을 먹으면 손핸데 그렇게 함으로써 체크메이트를 부르고 길을 뚫어서 퀸이 들어오다니. 나도 이전략을 활용해보아야 겠는걸."
"사실 이전술은요. 클로즈에 운영이라고 있거든요. 운영이가 저하고 장기둘때 두었던 전술을 체스에서 활용해본거에요. 어때요 쓸만하죠? 오늘은 기력이 많이 쇄햇으니 다음에 또 두죠." 여기서 한두판만 게임을 하고 그만두는것은 약을 먹어서 머리를 쓰면 머리가 아파와서였다.생각도 밖에서 처럼 자유롭게 나는것도 아니었다."
"그래 내일 한번 더 두자. 내일은 내가 꼭 이기겠다. 각오하고 있어라." 요한이형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단단히 각오한듯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요한이형의 프라이드를 침범한것이다.
"재훈이형 때문에 초코파이 두개 잃었어요. 어떻게 책임질 거에요. 형이 지는데 두개나 걸었는데 형이 이렇게 이겨버리면 어떡해요?"
'천복아 이형을 그렇게 못믿었다니 상심이 크구나. 당연히 나에게 걸었어야지.믿음이 부족한자야. 쯧쯧. 아 내가 천복이한테 이렇게 신뢰를 못받고 있었구나. 정말 서글픈걸 실망도 크고."
"그래 내가 뭐랬어? 재훈이가 이길거라고 했지? 요한이형이 튼실해보여도 사실은 안그렇다는것을 몰라서 이런결과가 나온거지 하하. 요한이형은 이상하게 평소에는 잘두다가 내기가 걸리면 이상하게 못하더라. 내기하는줄 어떻게 알았지? 전파레이더라도 달았나."
"닥쳐 상석이는 안그러는데 지원이 너는 왜 이렇게 형한테 기어오르냐. 그러다 형 정말 화낸다." "형은 좀팽이같이 그러지 않을것이라고 믿고있음. 흐흐 초코파이 여섯개나 벌았네. 형 고마워. 앞으로도 종종 져주슈."
"딱!!"
"지원이 이녀석이 분위기 파악못하네. 형이 그만하라고 그랬지?"
"쳇 이럴때만 형이야. 아호호 손한번 진짜 맵네. 나한테 기어오른다고 하는형은 상석이가 기어오르면 가만히 있으면서. 왜 나만 이렇게 괴롭히는거슈?"
"그거야 네가 워낙 미운짓만 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만만한게 너잖아. 저렴하기도 하고.게다가 서울에서 태어난 놈이 사투리는 왜 쓰는거야?"
"꼭 살아봐야지 쓰나요? 아무튼 요한이형이 처참하게 깨지는 모습을 보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지난번에 제가 상석이한테 장기 졌을때 보여준 형의 그 저질댄스 때문에 내가 형한테 얼마나 복수를 불태웠는지 알아? 참 재훈아 이겼는데 세레모니 한번 없냐?"
"호오 세레모니? 재훈이 너 세레모니 할거 있으면 지금해라. 한번 해봐라 세레모니." 요한이형의 소리없는 날카로운 협박에 나는 굴복하고 말았다.
"헤헤 세레모니라뇨? 세레모니가 있을리가 있나요. 제가 어떻게 형앞에서 세레모니를 하겠어요."
"재훈이 이 비굴한놈. 사내자식이 그까짓 세레모니 한번 할 깡이 없냐. 자 날따라 해봐라 이렇게."
순간 지원이의 엉덩이가 요한이형 바보를 그리며 실룩거렸다. 정말 유치했다. 그모습을 보고있던 요한이형의 공중 이단 옆차기에 지우너이가 꼬꾸라졌다.
"하여튼 매를 벌어요 매를. 이자식은 나한테 그렇게 맞고도 아직도 정신 못차리나. 이 형이 언제까지 참지는 않는다. 재훈이도 참고하도록."
"초등학생 초코파이 뺐을때부터 알아봤어. 그까짓거 아무리 내기라지만 꼭 먹어야 되겠어? 아무튼 속이 다후련하네. 요한이형 나 잘했죠?'
"..천복아 요한이형 화장실 갔을때 잠깐 면담좀 하자."
엉덩이가 튼실한게 맞아도 하나도 안아플거 같은데." 지원이가 천복이를 보면서 살벌한 웃음을 실실 흘렸다.
"딱!!"
나이가 스물셋이나 먹은놈이 초등학생을 협박하냐? 잘하는 짓이다. 아주 한심이 하늘밖으로 날아갔구나. 그래 오늘 지원이 잡는 날잡자. 지원이가 오늘 하늘나라로 나풀나풀 날아가고 싶단다."
요한이형이 두 주먹을 불끈쥐고 지원이의 머리통이 깨져라 쳤다.
" 왜 나만 그래요. 상석아 말좀 해주라. 너도 평소에 나하고 같이 요한이형 뒷다마 깠잖아." "요한이형 제가 안그랬다는거 알죠? 제맘 아시잖아요. 지원이가 자기 살자고 친구까지 팔아먹을 줄이야. 자자 뭐라도 드시면서 때려야 제대로 때리시죠. 여기 초코파이라도 드세요. 지원이 녀석을 때리는데 손이 아파서야 되겠어요? 여기 장갑대령입니다."
상석이는 장갑과 탁구대에서 탁구채를 꺼내서 요한이형에게 주었다. 곧이어 지원이 머리에서 딱하는 소리와 장갑으로 때려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재훈이가 부어오른 뒤통수를 잡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 배신자들 특히 상석이너 가만두지 않겠다. 앞으로 조심해라.오늘일은 잊지 않으마."
지원이의 처절한 목소리가 병원구석구석에 퍼졌고 영아가 무슨일이라도 있나? 하고 작은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병실로 들어왔다.
"요한이 오빠 여기 많이 시끄럽던데 무슨일이라도 있었어요? 어라 지원이는 왜 머리를 감싸고 고개 숙이고 있어요? 아 지원이가 또 맞을짓 했나보죠? 다구리라도 맞았나.."
"얘는 다큰 여자애가 다구리가 뭐니 다구리가. 그냥 지원이한테 훈훈한 가르침을 줬을뿐이라구."
"두번교육받다가는 골로 가버리겠는데요. 아고고 영아야 요한이형이 사람잡는다. 탁구채로 흠씬 맞았다. 이거 간호사한테 신고해야 되는데. 내가 정말 동네북인줄 안다니까 이거 서러워서. 응? 예쁜영아야 네가 신고좀 해주면 안되겠니?"
"이쁜건 맞는데 직접적으로 그러면 내가 좀 민망하잖니. 요한오빠 오늘 심하게 때렸어요?"
"너 재훈이 알지? 재훈이하고 오늘 체스를 뒀거든. 그런데 지원이하고 천복이가 초코파이 내기를 해서 지원이가 이겼어. 그리고 내가 재훈이한테 지고 나니까 지원이가 또 잘하는 깝쭉거리기 있잖아. 그걸 하더라고. 나는 그만 그것을 보고 사랑의 매를 때릴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말야. 그리고 내기에서 졌다고 초등학생인 천복이의 초코파이를 낼름 집어먹길래 교육좀 시켰지뭐."
"흐응 역시나 지원이가 맞을짓을 했구나. 잘했어요. 조금 더 맞아야겠는데요. 귀염둥이 천복이한테 초코파이가 얼마나 소중한건데 그걸 뺏어먹으려고 그러니? 보니까 충분히 맞을만 했네 그래."
"오오 통재로다. 영아한테까지 외면을 당할줄이야. 영웅에겐 쉴새없이 시련이 따른다더니. 신이시여 왜 이렇게 잘난 영웅에게 시련을 주시나이까. 신이시여 무지몽매한 인간들이 저를 핍박하나이다. 저를 악으로부터 구원해주소서."
지원이가 절규를 했다. 영아가 지원이한테 결국 꿀밤을 먹이고야 말았다. "어머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이네. 일부러 그런것은 아닌데 어라 저절로 움직이네. 영웅에겐 시련이 얼마든지 있어도돼. 다 극복해나갈거니까. 그러니까 영웅이지.천복아 네가 지원이좀 한대만 때려라. 그럼 속이 풀릴것 같아."
"에이 영아누나 어떻게 제가 지원이형을 때리겠어요. 저는 단지 겁많은 초등학생일 뿐이라구요. 성인인 형을 어떻게 때려요."
"킁 너도 맞고 싶은가 보구나." 영아가 천복이의 머리에도 꿀밤을 한대 먹였다.
"아야야!!"
천복이는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을 부렸다. 그래서 내가 천복이의 머리에 꿀밤을 한대 더 먹였다.
"영아 누나는 그렇다치고 재훈이 형이 나를 왜 때려? 이렇게 머리맞으면 뛰어난 나의 머리가 나빠진단말야 책임질거야?"
"천복이도 지원이 같이 매를 버는구나. 그래도 어리니까 봐준다."
"영아야 너 피아노 진짜 잘치더라. 이런곳에서 연주들을수 있을지 몰랐는데 놀랐어. 연주들으면서 감탄했다니까."
"뭘 그정도 가지고 그래. 재훈이 아마 나하고 동갑이었지? 얼핏보니까 재훈이는 병실사람들하고 금새 친해졌네. 안그래보이는데 사교성이 좋구나."
"그냥 뭐 어쩌다 보니까 친해졌어. 근데 지원이가 이렇게 재미있는 캐릭터였어? 이렇게 코믹할줄은 몰랐어.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르는건가. 내 생각에 지원이는 과묵할것 같았는데." "야야 실제로도 과묵해. 말을 안해서 그렇지 침묵의 지원이 하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 이 오늘 요한이형때문에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지네."
"침묵의 지원이는 무슨. 그거 니가 지은거 아냐? 깝철이 지원이 하면 다들 알더라. 오픈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봐라. 깝철이 지원이 모르는 사람이 있나."
"상석아. 너 아까부터 계속 이렇게 삐딱선 타지? 이 형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디? 이래뵈도 형이 소싯적에 불영고등학교 일진이었다구."
"어이쿠 아직도 고등학생 이신가보네. 나이는 스물셋이나 처먹어서 고등학교 시절을 들먹거리냐. 우유나 먹고 얼른 커서 다시 날 찾아와라."
"상석이 판정승. 지원이 나락패. 지원이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그리고 그때나 잠깐 잘나갔지. 다 커서 일진이었다고 하면 쪽팔린 일이야. 안그러니 영아야?"
"재훈이 말이 맞아. 지원이 니가 그러니까 고등학교 이후로 발전이 없는거야. 그러니까 천복이까지 너한테 기어오르잖아." "아아 사람들이 의인을 몰라보고 다구리를 놓는구나. 거기다 믿었던 영아까지 이배신감을 어찌하면 좋으리오. 슬프다 내가 이러고도 살아야하나."
"..지원아 다 너를 걱정해서 이러는거 알지? 자자 응어리진건 풀고 이 요한이형의 사랑이 듬뿍담긴 사랑의 키스를 받으렴."
'무서워요. 제가 무조건 잘못했어요. 앞으로 안그럴게요. 다음부터는 내기하면 요한이형에게 걸어서 초코파이 잃고 그럴게요."
"니가 정녕 맞으려고 탭댄스를 추는구나. 후후 좋아 초코파이 잃기전에 너의 두터운 얼굴가죽을 찌그려뜨려 주마." 요한이형이 주먹에 어찌나 힘을 주는지 핏줄까지 보였다.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요한이 형쯤 되면 진담과 농담을 구별하셔야죠. 아 덥다. 재훈아 창문좀 활짝열어줘라. 바람이라도 쐬자."
"지원아 이번 한번은 넘어가주마. 하지만 다음번에는 복근을 조금 탄탄하게 단련시켜 놓는것이 좋을거다." 싱긋웃는 요한이형의 얼굴을 본 지원이의 얼굴이 새파래졌고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에이 재미없다. 매타작이라도 벌어질까 기대했었는데. 요즘 요한이 오빠가 많이 착해지고 부드러워진것 같아요."
"아니 무슨말을 그렇게해. 착해지다니? 나는 원래부터 선량한 사람이었어. 지금 이렇게 교육하는것도 지원이 한번 사람좀 되보라고 하는거야. 오빠의 성스러운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그소리를 듣고 지원이가 아까맞은 뒤통수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뒤통수에 파랗게 멍이 들었는데 선량하다는 말이 나와요? 하여튼 지옥끝에서 올라온 악마가 따로없어요.신이시여. 제발 저를 악마로부터 구원해주옵소서."
지원이가 작은목소리로 말했지만 들을 사람들은 다 들었다.
"후우. 일단 봐주기로 했으니 이쯤하마.다음부터는 PT체조도 연습해둬라. 너의 건강을 위해서 좋을것이야. 기합이란것도 조금 연습해두고 말이지."
지원이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옆에서는 지원이의 표정을 보며 영아가 사악하게 웃고있었다. 다른사람들도 요한이형의 말에 사색이 되어서 안절부절 못하는 지원이를 보고 웃었다.
" 환우여러분 재활활동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활동은 비디오 감상입니다. 제목은 '뷰티풀마인드'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로 여러분과 같은종류의 병을 앓았지만 하버드의 교수가된 존내쉬의 일대기 입니다. 아마 가슴에 와닿는 감동이 있을겁니다. 그럼 다들 클로즈로 가서 감상하세요."
곧 오픈에서 클로즈로 통하는 문이 열렷고 우리는 클로즈로 갔다. 클로즈에 들어가니 성호형님과 수련이 누나 유화와 운영이가 나타났다.
"재훈아 오픈생활은 어때? 아주 좋나보지? 왜 재활활동은 한번도 참여하지 않았지? 그럼 나한테 편지는 섰나보자."
"아니 그게.. 유화야 내가 편지를 안쓰고 싶어서 안쓴게 아니라 그래 편지지가 없어서 그랬어."
유화의 말에 찔끔한 나의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래애? 이제 오픈으로 갔다고 막나가지. 클로즈에 있는 나는 까맣게 잊어버리셨다. 수련이 언니 재훈이좀 손좀 봐줘요."
"그래 안그래도 그럴려고 했다. 재훈이 간이 우주공간 저멀리 이사를 갔구나. 왜 또 다른여자애에게 눈길이 갔어? 내가 재훈이를 좀알지."
오픈에 있던 사람들이 수련이 누나의 말을 듣고 킬킬거렸다. 영아만이 무슨뜻인지 알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하고 성호오빠는 곧 오픈으로 가니까 그렇다쳐도 유화는 네가 돌봐야 되지 않겠어? 유화 혼자 얼마나 쓸쓸하겠어?"
"수련이 누나 그만해요. 재훈이가 여자맘을 알리가있나. 이럴때 '사랑은 카페라떼처럼' 이 통하는거야. 재훈아. 아무때나 준비한다고 되는게 아냐."
"재훈이 너 천사괴롭히면 나한테 천벌을 받는다. 기껏 잘돼도록 도와주었더니 오픈으로 가서 천사를 버리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아 왜 다들 나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오픈간지 며칠 안되서 그럴수도 있지. 아무튼 다음부터 잘할테니까 태클은 사양하겠어." "..재훈이가 클로즈에서 지원이 같은 존재였구나. 어쩐지 혼자만 지원이를 괴롭히지 않더라니 이런 사정이 있었군 그래."
"흐응 재훈이 여기 여자친구도 있고 능력있는데 의외야. 좀더 지켜봐야겠는걸."
유화가 일행중에 홍일점인 영아를 보았다. 영아도 척보기에도 예쁘장해서 재훈이가 달려들것 같았다.
"저기요 재훈이 조심하세요. 아주 응큼해요. 언제 덮칠지 몰라요. 저도 한사람의 피해자에요. 애가 어찌나 들러붙고 귀찮게 하는지.."
"그래요? 재훈이도 요주의 인물중의 하나였구나."
"자자 비디오 틀테니까 집중하세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주일에 한번씩 컵라면이 나오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에요. 그럼 차례를 지켜서 한분씩 받으시고 뜨거운물있으니 봉지 뜯어서 부어주세요."
"이야 컵라면 얼마만에 먹어봤어? 벌써 이주일이 지났구나. 아니 나는 재활활동같은건 참여 안해서 더 오래된것도 같은데.."
요한이형의 푸념이 이어졌다. 그소리를 뒤로 사람들은 컵라면에 물을 부은다음 호호 불면서 3분을 기다렸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하버드생인 존내쉬는 룸네이트외에는 친구가 없었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사람들과 클럽에 갔는데 거기서 여자와 자신이 잘될확률을 계산하다가 경영학의 위대한 발견인 존내쉬의 정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수학적재능은 학교내에서 온갖난제를 해결하게된다. 하지만 점점 룸메이트하고는 사이가 멀어진다. 존내쉬는 그의 수학적 재능때문에 국가 안전기획부쯤 되는 곳에서 쫒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할수없이 그들에게 잡혀서 그들을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하게된다. 그러다가 어린소녀 한명과 인연을 맺고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 존내쉬는 어느새 학교를 졸업하고 학문의 길에 계속해서 매진한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존내쉬는 문득 소름이 끼치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룸메이트와 여자아이는 10년이 지났는데도 같은 모습인 것이다. 존내쉬는 깨닫게 된다. 이들을 볼수있는것은 자신뿐이고 자신은 정신분열증을 10년넘게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다니며 일을 했던것도 사실이 아니고 환상속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힘들지만 룸메이트와 여자아이를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학업에 힘서서 교수가 되었지만 자신은 정신병을 앓고있다는 자괴심때문에 식사도 학생식당에 숨어서 혼자 먹었다. 자연히 다른교수들과의 사이가 소원해졌다. 존내쉬의 논문과 학설은 늘어갔고 그는 학업에만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날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하고있는데 하버드 교수들이 존내쉬주위로 원을 그리며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펜을 하나식 꺼내서 존내쉬에게 주었다. 우리는 당신을 인정합니다 라는 뜻이었다. 존내쉬의 감동어린 표정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났다.
이영화를 보자 정신병을 앓고 있는 나도 무엇인가 할수있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만 한다면 사회에서 큰일을 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영화가 끝나고 주변을 보니까 오픈에서 온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내가 클로즈에 다시 오게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어떡하지? 나는 두려워졌다.생각컨대 아마도 오픈의 사람들도 그 알수없는 불안감 때문에 영화를 다보지 않고 오픈으로 간것같았다. 두기산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클로즈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유화야 영화끝났네. 나 이만 가볼게. 영화 너무 재미있었다 그치? 우리 밖으로 나가서도 같이 영화보러가자.약속하자."
나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유화와 꼭 가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다른 클로즈 사람들과도 악수를 한번씩 하고 도망치듯이 오픈으로 돌아갔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꺼림찍했는지 알지 못했다. 클로즈에 오랜만에 와서 환우들을 다시 봐서 반갑기는 했지만 여기로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부담감이 더 컸던것이다. 이성적으로는 내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감정적으로는 클로즈에 더이상 있을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유화와 긴대화를 하지 않고 그냥 보낸것이다. 나는 정말 두렵다.
나의 이기적인 공포가 두렵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곳 클로즈 사람들하고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잖지도 않은 우월감이 내마음을 지배했다. 고작 나는 병원의 시스템에 지고 만것일까? 그나마 위안이 된것은 다른 오픈환자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비열한 자기만족이었다. 그런 나의 초조함만큼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었다. 정말 시간은 흐르고 있기는 한지.. 아직도 병원에서의 생활은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여기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변해갈까? 나는 이렇게 다른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것은 아닐까? 그중에서도 특히 유화를 볼낯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결국 오픈으로 돌아왔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유화의 얼굴이 굉장히 슬퍼보였다. 나는 유화를 걱정하는 것보다도 영아에게 관심이 더가는 나자신을 도저히 용서할수가 없었다. 정말 사람은 간사하다는 말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것 같았다.
"재훈아 왔구나. 영화는 재미있었어? 나는 갑자기 피곤해져서 병실로 먼저 왔다야. 다른사람들은 다 일찍 왔는데 너만 늦게왔네. 클로즈 사람들하고 많이 친했나봐. 영화를 다보고도 늦게 온것을 보면 말야. 나도 다음에 영화볼때는 영화다보고 나와야겠다."
"지원이 말만 그렇게 하고 영화볼때마다 매번 일찍 오잖아. 이번에도 제일 일찍 오픈으로 왔다면서 하여튼 말은 그렇게 하지. 컵라면만 먹고 잽싸게 오면서."
"상석아 너 요즘에 나한테 태클을 너무 거는것 같은데. 나한테 불만이 상당히 쌓였었나봐. 응 그래? 두고보자."
"지원아 상석아 나는 빨리 병실가서 한숨잘게. 많이 피곤하다."
나는 병실로 가서 이불을 덮고 죽은듯이 잤다. 별로없지만 병원생활이 좋은점은 자고 싶을때 마음대로 잘수있는점은 좋았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왕이나 왕자의 생활이다. 밥다차려주지 청소해주지 일을 안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최대한 스트레스를 덜받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봐준다고 해도 갇혀있다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풀어주지는 못한다. 여기생활이 매일 놀고먹는다고 부러워할만한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심한 제약이 있었다. 그것은 자유였다. 모든면을 생각하더라도 자유의 가치를 평가절하할수는 없었다. 그리고 좋을것 같은 아무일도 안한다는 것은 무력감을 가져온다. 이런 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은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그런면을 생각하다보니까 나는 자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이곳에서의 스트레스를 잠을 자는데서 풀어왔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흘러가는 법이고 잠을 자는것은 그 시간을 줄여준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몸이 한없이 무거웠다.
"재훈아 왠 잠을 그렇게 많이 자냐? 벌써 밤이다 자식아. 이렇게 낮잠을 길게 자고 밤에는 어떻게 자려고 그러냐?"
아 인철이형.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아 밤이네. 정말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잤네. 아주 머리가 띵하네. 아휴" 어라 그런데 병실사람들이 없네요. 다들 뭐하러 갔어요?"
'그건 영아가 피아노 연주를 해서 그거 들으려고 강당으로 갔다. 종철이하고 나는 별로 연주같은거 좋아하지 않아서 여기에 남아있는거고."
"아 궁금한게 있는데요 형. 종철이형하고 인철이형은 여기 왜 왔어요?"
"음 나는 서울대학교 다니거든. 그게 중요한것은 아니고 학교에서 사물놀이패 공연하는 중이었어.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학교 곳곳을 뛰어다녔대.잘은 기억이 안나. 내가 사물놀이를 모두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어. 휴 아무튼 내가 발작을 하니까 같이 사물놀이를 하던 사람들이 나를 말렸어. 그래도 알잖아. 미친사람은 힘이 세다는것을 말야. 나는 다른사람들이 잡아도 끝까지 뿌리치고 소리를 질렀어. 아마도 학교내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모습을 봤을거야. 나는 꽹과리를 두손이 부숴져라 피면서 대중가요 한곡을 뽑았어. 한국문화는 영원히 이어져야한다며 헛소리를 하면서 그랬어. 나의 상태가 좋지않다고 사람들이 느꼈고, 누군가가 여기 병원에 연락했고 여기로 붙잡혀왔지. 참 파란만장하기도 했어. 그래도 다행이 병초기에 오게되어서 클로즈에서 잠시 있다가 바로 오픈으로 왔어."
"나의 경우도 복잡해. 나는 어려보여도 결혼했거든. 애들도 둘이있고 잘살고 있는데 어느순간 이 아이들이 내자식이 아니라 다른사람의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든거야. 마누라가 옆에있는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내마누라가 지금 다른남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거야. 나는 정말 소름이 돋아서 꼼짝도 할수없었어. 하여튼 그런생활을 위태위태하게 하다가 나는 어느순간 폭발했어. 이놈의 여편네가 남편두고 바람을 피운다고 말야. 물론 그런사실이 없던 마누라가 핏대를 올렸고 부부싸움을 했어. 나는 있지도 않은 문자메세지와 전화통화를 말하면서 빨리 바람핀 사실을 시인하라고 했어. 그리고 나는 손에잡히는것은 무엇이든지 집어던졌어. 그 싸움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어. 나는 정말 마누라한테 못할짓을 많이했어.그리고 내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것을 알게된 마누라가 병원에 전화를 했어.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끌려서 이곳으로 오게 된거야. 내사정은 그래."
종철이형이 쓰디쓴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렇군요. 다들 자신만의 사정이 있겠죠. 사연없는 무덤이란 없잖아요. 저도 그렇구요. 저는 양아치에게 다구리 당하고 칼에 찔려 찰과상을 입었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잘안나요. 완전히 미쳐돌았었다고 해요. 말리는 사람도 모두 때리고 알수없는 소리를 질렀대요. 제 사정이야기 할때마다 새로운 기억이 나서 조금씩 병원에 오게된 이유가 늘어나네요. 그리고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구석방에서 묶여있었어요. 아마 병원에서도 난리를 부렸던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것은 여기까지에요. 하지만 기억이 없어서 저는 아직도 저의 병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어요."
"그래 나역시 내병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몰라. 우울증같다고 하는데 우울증이란것이 이렇게 내행동을 일으켰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 우울증에 걸린사람은 보통 방에처박혀서 자살시도를 하거나 울기만 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학교에서 그렇게 크게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나는 아무래도 정신분열증인것 같아. 정신병의 이대 정신병인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인데 그중에서도 더 위험한 정신분열증인것 같아. 여기 오기 전에도 내눈에 온갖잡귀들이 보였어. 그걸 생각하면 여기 일찍오게된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약을 먹으니까 그런일이 줄어들었거든. 그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있어."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병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자신을 이해해줄수 있는 환우를 만난것이 기뻤다. 과부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지 않은가. 정신병을 앓고있는 사람들의 많은 고통은 같은 정신병을 갖고있는 사람만이 그 고통을 피부로 느끼는것이다.
"자자 우울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먹을것이라도 먹자.마누라가 오늘 순대볶음 가져왔다. 순대촌에서 3인분 사가지고 왔는데 아직 따끈따끈하다. 종철이 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순대볶음을 가져왔다. 냄새만으로도 침이 꿀꺽넘어갔다. 그순간 내 머리속에서는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이 흔적도 없이 날아간 후였다. 인철이형과 종철이형이 병실식탁을 올리고 신문지를 깔았다. 그리고 나는 수저를 준비한후 순대볶음을 신문지에 내려놓았다. 곧 매콤한 순대볶음을 먹을 생각에 흥분되었다.
"제가 독산동에 사는데 신림역 순대촌하고 가깝거든요. 그래서 평소에도 순대촌에서 순대먹는것을 좋아했는데 여기서도 먹게 될줄은 몰랐어요.아 기대되네."
"나는 순대볶음 먹은지 1년이 되가는것 같다. 보통사람들은 피자나 치킨을 사오는데 종철이 마누라는 색다른거 사오는걸 보니 센스있구만."
"그럼 우리 마눌님이 센스가 있긴하지. 남편이 뭘 먹고 싶어하는지 말을 안해도 안다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마누라한테 너무 미안하다. 나가서 잘해줘야겠어."
종철이형과 인철이형이 말하는사이에 나는 한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말도 않고 먹어댔다. 아차 싶던 형들도 빠르게 젓가락을 놀렸다.
"그런데 적어도 석원이형이나 요한이형 불러야 하는거 아니에요? 지원이와 상석이는 저와같은 쫄따구라 성질부릴수 없지만 석원이형이나 요한이형이 우리끼리만 먹은것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을가요?"
"괜찮아. 지난번에 그형들도 우리한테 햄버거와 치킨을 주지 않고 몰래 먹은적이 있었거든. 그때 얼마나 얄미웠는데 이러는건 당연한거야."
"형들의 식탐이 그렇게 강할줄이야. 후성이가 생각나네요. 그런데 그럴만한 형들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형들이 가끔그래. 그래도 평소에는 그렇지 않으니까 다행이지. 그런데 스트레스만 받으면 먹을거에 대한 집착이 광적으로 심해져.스트레스를 먹는데서 푸는게 문제지. 어쨌든 그런경력이 있으니까 우리끼리 먹어도 아무탈이 없을..헉!"
"나를 빼놓고 순대볶음을 먹는다 이거지? 분영히 내가 좋아하는 순대볶음인줄 알면서도 이랬다 이거지.같이 끝간데 없이 부풀어올랐구나. 비록 내가 가끔 조금 먹을것을 탐한적이 있다고 해도 동생들이 이러면 안되지."
"아니에요. 사실 석원이형 몫은 남겨두려고 했었어요.여기 곱창부터 드셔보세요."
"크흠 그렇게 권하면 안먹는것도 실례겠지. 그럼 잘먹으마."
석원이형이 빛의 속도로 젓가락질을 했고 줄어드는 곱창을 보면서 우리는 절망했다. 순식간에 곱창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너무도 빠른 동작에 놀라고 있다가 황급히 젓가락을 들었다. 성인남자 넷이 3인분의 순대볶음을 끝내는데는 20분도 안걸렸다.
"이러니까 석원이형하고 먹으면 개싸움이 일어난다니까 손이 워낙 빨라야지. 형도 참 나이들어서 왜 그렇게 식탐이 강해요?"
"형보고 감히 식탐이 강하다니. 나는 그저 너희들의 속도에 맞추다보니까 그렇게 된거야."
우리는 순식간에 사라진 순대볶음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석원이형에게 분노를 표출할수 없었다. 이유야 어떻든 다시 되돌릴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멍때리지 말고 오렌지 주스 하나씩 돌릴테니까 입가심이나 하자. 다음부터 또 이렇게 형빼놓으면 국물도 없다."
오렌지 주스는 차가웠다.게다가 병이 깨질려고 했다. 냉장고의 냉동실에 먗분 놔두고 먹으려고 했던것 같은데 순대볶음을 먹느라 시간이 오래된것이다. 우리는 깨질까봐 당장 먹지 못하고 녹을때까지 각자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석원이형 먹을걸 줘도 꼭 이렇게 꽁꽁 얼은것을 줘야되요? 이런걸 주면 어떡해요?"
인철이형이 말하고 종철이형은 이에 수긍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밖에서 영아의 연주소리가 점점 커졌다. 곡은 '로망스'였다. 감미로우면서 달콤한 음율이 병동내에 감돌았다. 곡이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잠시후 사람들은 여운을 즐기며 병실로 돌아갔다. "재훈아 너답지 않게 오늘은 왜 영아연주 들으러 오지 않았냐? 평소에는 연주를 그렇게 좋아해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영아 연주를 듣던놈이. 왜 심경의 변화라도 생기셨나? 참 그거아냐? 여자병실에 수녀님이 새로 입원했더라.들은바로는 예전에 정신과의사 선생님도 입원한 적이 있다던데. 이번에는 수녀님이 입원해서 다들 난리가 아니야." "그래? 그런데 수녀님은 무슨증상으로 입원했대?"
"자신이 예수님과 결혼했다고 하더라. 원래 수녀님들이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결혼했다고 생각하며 헌신하는 분이 많잖아. 그런데 이 수녀님이 그게 더 심하신가봐.자신이 현신한 예수님의 아내라고 주장하셨다. 처음에는 수녀님들이 그런생각을 할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는데 예수님을 불러서 너희들을 벌하겠다느니 예수님의 마누라인 자신에게도 경배하라고 했다나.아무튼 이런저런 우여곡절끝에 병원으로 들어오신거야.뭐 이건 단편적인 간단한 사항이고 다른증상들도 있었을거야."
지원이가 쉴틈도 없이 속사포로 말했다. 수녀님이라. 정신병원에 올만한 분이 아닌데 들어오신것을 보니 종교에 너무 깊이빠져도 좋지 않은것 같다. 조만간에 한번 인사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까 상석이는 뭐해? 연주는 아까 끝났다면서?"
"아 상석이? 영아하고 청포도랑 귤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어. 원래 둘이 친하거든." "그으래? 흐음. 놀려먹을게 생겼네. 내가 클로즈에 있을때 은주누나하고 유화하고 사귄다고 다른사람들에게 얼마나 괴롭힘을 당한지 몰라. 재밌겠다. 상석아 기다려라 형이간다."
"가 같이가. 재훈이 이녀석이 정말 성질은 급해가지고.. 후후 그나저나 재미있을것 같은데 말이지."
우리가 강당으로 가보니 상석이하고 영아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상석아 연애사업은 잘되고 있니? 영아는 나도 노리고 있었는데 상석이가 잽싸게 낚아챘네. 둘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기좋다."
"재훈이 너는 우리가 연애하는것 처럼 보이니? 우리는 단지 병실친구야 조금 친할뿐이고.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거든. 거의 한달가까이 지났지 아마. 아는지 모르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두달 남짓이면 퇴원해. 지금 우리가 이야기한것은 언제쯤 퇴원하게 될까야."
"영아 말이 맞아? 나도 영아같이 예쁜애하고 사귀고 싶지만 너무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 보니까 이젠 연애감정이 안드는게 힘들것 같아."
"한달이 뭐가 길어? 그리고 친해지면 더 가까워진다는 얘기잖아. 그런데 보통 두달남짓이면 퇴원해? 그런데 내가 클로즈에 있을때는 클로즈에만 몇달씩 있었던 사람들이 흔했는데."
"아마 병실사람들 병이 심각했나보지. 그게 아니라면 오픈사람들이 잘 퇴원을 안했거나 둘중하나지.그러고 보니가 요새 오픈에서 퇴원하는 사람들이 적네. 음 조금 이상하긴 한데. 뭐 곧 퇴원하는 사람이 많아지겠지."
"재훈이도 클로즈에 오래있었나봐? 클로즈의 다른사람들이 오래있었던 걸로 보니가 그런것 같어. 그리고 말했지만 세면도 같이하고 한솥밥을 먹고 잠까지 같은공간에서 자는 이곳에서 한달이란 거의 모든것을 알정도의 시간이야. 서로에 대해서 알기엔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야. 재훈이는 클로즈에서 두명이나 사귀었다면서?
그게 매일 맞부딪히면서 정이 안들었으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걸 생각해봐 한달은 참 긴시간이야. "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그러네. 그렇게 둘이 사귀지 않는다고 부정한다면 그런거겠지. 그럼 영아야,나한테도 기회가 있다는 거겠지?"
"나는 바람둥이한테는 관심이 없어. 유화하고 사귄다면서 이제는 양다리 걸치시겠다. 일없네요.꿈깨라."
"하하 정말. 농담도 못해? 그리고 그만큼 네가 매력적이라는 거지. 그런데 피아노는 언제부터 배운거야? 정말 잘치던데.."
"9살때부터 쳤어. 내가 내성적이고 또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해서 혼자있을떄마다 피아노를 쳐왔거든. 부모님이 내가 잘치는것을 보고 콩쿠르에 나가보라고 닦달하신적도 있다니까. 그렇지만 피아니스트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한 실력인걸 나도 잘알아. 그래서 취미생활로 지금까지 쳐온거야. 여기생활하면서 느낀건데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것은 피아노야.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건드리면 마음이 안정되더라고.그대도 이런것도 잠깐 내병이 심해졌어. 어쩌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왔지. 자세한건 다음에 자리만들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그래 한가지 알아둬, 서로를 이해해줄수 있는것은 병실환우들 외에는 없어.나도 내 이야기를 다른사람들한테 이야기하고 또 들어왔어. 이야기하면 아마 속이 시원해질거야. 그런데 영아야 수녀님하고는 이야기 해봤어?"
"아 그수녀님? 수녀님은 여기와서 하루도 쉬지않고 묵주기도를 하고 계셔. 예수님을 향한 찬송가도 부르셔. 언젠가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자기를 구원할것이라도 말하고 계셔. 다른사람은 신경안쓰고 꾸준히 기도하고 계시지. 방안에서만 지내서 걱정이야. 그리고 다른사람들이 거절하던 승낙하던 상관하지 않고 다가가서 안수기도를 해주시고 있어. 다른사람들은 신경안쓰겠다고 하시면서도 모두를 위해 예수님께 병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예수님을 대신해서 자기가 모두를 구원해주세겠다는 거야."
"수녀님이 여기 오기전에 종교에 너무 깊이 들어가셨구나. 내 생각에는 아마 '사인'을 느끼셨을거야. 나도 그랬어. 신호등을 건널때도 파란불이 내앞에서 바로 켜지면 내가 지나가니까 나를 위해 켜지는 구나. 비둘기들이 날다가 내려오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나의 마음을 느끼고 모두를 평안케 하라고 나에게 보내는 '사인'이라고 생각했지.
모든것이 '사인' 으로 느껴졌었어.
또 길을 걷다가 십자가를 보면 나를 인도하기 위해 십자가가 생겼다고 하고 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시련을 겪어야한다고 느꼈어.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말야. 아마 수녀님도 이런 '사인'을 아실거야. 지금의 행동은 그것으로 밖에 이해가 안가는걸. 성모마리아가 우는 모습이 일어나고 성당의 찬송가가 머리에 울리면 그것을 계시라고 여겼을수도 있어. 나는 수녀님의 행동이 이렇게 이해가되."
"흐음 가능성은 있지만 그런일이 실제로 있었구나. 나도 비숫한 경험이 있는데. 예술의 전당에 나온 뮤지컬배우의 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그사람이 나의 남자친구와 굉장히 닮은거야. 나는 아 이게 내 남자친구가 예술계로 가라는 '사인'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남자친구를 찾아가서 네가 뮤지컬배우를 하면 반드시 성공할것이라고 했어. 그런일도 있고 또 한번은 캐나다의 워킹홀리데이 포스터를 보았는데 집하나가 굉장히 낯이익었어. 이것이 나를 캐나다로 오라는 '사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재훈이도 그런경험이 있구나. 나는 그때 내가 신의 계시를 받았구나 하고 생각했었거든."
"내가 수녀님을 보고싶은것은 우리형때문이야. 작년에 형이 자전거를 타다가 빗길에 미끄러져서 어깨를 크게 다쳤던적이 있었거든. 자전거가 한바퀴를 돌아서 찌뿌려졌다고 했어. 만약에 머리나 허리쪽으로 떨어졌으면 정말 위험했겠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어깨로 떨어졌어. 그리고 수술하기 전날 형 병실에서 자고있는데 네일하나가 떨어져서 머리에 맞았어.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누웠는데 이번에도 내 머리에 떨어진거야. 형도 그러는데 그날밤에 꿈에서 온갖잡귀들이 나오는 악몽을 꿨대. 정말 컨디션이 좋지않았나봐. 이대로 수술하면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를정도로 몸이 안좋았대.
그리고 수술을 하려고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에 한수녀님이 형의 손을 잡고는 안수기도를 해주셨대. 안수기도를 받으니까 손에서 뭔가 따뜻한 기운이 흘러오더니 몸이 편안해졌다고 해. 그렇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형은 그때부터 종교를 믿기 시작했어.
그 이야기를 형에게 듣고부터 수녀님들에게 관심이 생기게 되었어."
"그렇구나. 병원에 입원하신 수녀님도 정신이 멀쩡하다면 참 훌륭한분 같은데 안됐어. 지금도 아마 환우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실거야. 수녀님이 조금 더 안정되고 평상심을 찾으시면 심도깊은 이야기를 해보자. 나도 재훈이말 듣고 보니까 종교에 관심이 가네. 나는 원래 무신론자거든."
"나는 원래 기독교 신자였는데 지금은 불교에 더 흥미가가. 스님들이 더 힘들겠지만 스님들으 고행이 정신병원 생활을 하는 우리의 고통과 더 일통하는것 같아. 솔직히 우리도 어떤의미에서는 수도승같은 생활을 하잖아. 매번 말하지만 술.담배도 안하지 성적으로 관계도 안맺지. 그리고 조그마한 공간에 갇혀서 한발자국도 밖으로 못나가잖아. 그런생각을 하니까 하나님의 뜻을 살피라는 기독교를 믿을 의욕이 사라지고 종교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얘기는 성호형님과도 나누어본바 있었다. 영아에게 종교에 대한 나의 생각을 거짓으로 말하기는 싫었다. 나는 왜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졌을까? 그건 아무래도 내 인내가 부족해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이곳으로 보낸 하나님에 대한 복수심일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것을 모두 차치하고라도 불교에 더 흥미가 갔다. 그렇다고 불료를 꿩대신 닭이라고 가볍게 선택한것은 아니다. 그냥 단지 마음이 흐르는데로 내버려 두었을뿐이고 내 마음이 기독교로부터 멀어진것이다.
"그렇구나. 나도 이곳 생활이 힘드니까 신께 의지하고 싶은생각이 많이 들어. 그러면 마음고생이 조금은 적어질것 같은생각이 들거든. 마음을 의지할수 있는 튼튼한 등대가 필요해. 그리고 나도 재훈이 처럼 이곳에도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왜 상석이가 있잖아. 나도 유화만 없다면 영아한테 대쉬할텐데. 그리고 상석이도 은근히 너에게 마음이 있는것 같던데 잘생각해봐. 친구와 연인이 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곳에서 매일 같이생활하다보면 서로 가까워지게 되어있어. 그런데 영아는 상석이를 어떻게 생각해? "
"나도 상석이하고 사귈생각을 안해본건 아냐. 하지만 그래도 둘이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알아서 신비감이란게 없어. 친구로는 편해서 좋은데 앤애상대로는 힘들거 같아.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변하면 모르겠지만. 나도 재훈이라면 연애상대로 좋아. 다만 유화라는 연자친구만 없다면. 나는 애인있는 남자한테 관심없거든."
"한번더 잘생각해봐. 제일 가능성이 높은건 상석이야. 아무리 친구라지만 네가 연주할때마다 늘 지켜보는건 친구 그이상의 관심이 있을때야. 뭐 나라도 좋다면 사양하지는 않겠어." "
이 바람둥이. 내가 유화한테 이른다.
나는 재활활동시간에 유화 종종보거든. 이상한게 있는데 너는 왜 유화보러 재활활동에 참여하지 않아?"
"음 나는 재활활동을 하는것이 내키지 않아서 그래. 그래도 가끔씩은 편지를 쓰고 재활활동에 참석하잖아. 거리가 멀어지니까 마음도 멀어지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유화한명만 생각하니까 바람둥이는 아니야."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자.." 수녀님이 찬송가를 부르시면서 우리쪽으로 왔다. 수녀님의 얼굴에 서린 환한웃음이 정말 맑고 아름다웠다. 언젠가 길에서 신호등을 건너고 있을떄 마주쳤던 어떤 수녀님의 티끌하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영아구나. 여기서 뭐하고 있어?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렴. 믿음이 없는 너를 위해 기도해주기 위해 여기왔단다.
"수녀님이 묵주를 두손으로 돌리며 말했다. 수녀님의 신실한 신앙심이 느껴졌다.
"수녀님 저보다는 제 옆에있는 재훈이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재훈이는 며칠전에 오픈으로 왔는데 수녀님의 기도를 듣고 싶어했어요."
"이름이 재훈이라고? 클로즈에서 오픈으로 온지 얼마안됐으면 적응하기 조금 힘들지? 그런데 왜 나를 만나보고 싶어했니?"
"수녀님이 입원하신것에 호기심이 나서요. 제가 비록 성당에는 다니지 않지만 여기서 봉사하시는 신부님과 수녀님을 뵈면서 그분들에게 관심이 생겼었거든요.그러던중에 수녀님 한분이 오픈으로 오셨다고 해서 뵙고 싶었던거에요."
"그렇구나. 나도 예전에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었는데.. 그때는 환자들을 보면 저절로 기도하고 싶어졌었어. 지금도 그생각은 변함없어. 비록 지금은 하나님이 나에게 시련을 주셔서 이곳에 왔지만 그만큼 더 다른환우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구나. 재훈이 너를 위해서 기도해주마."
수녀님이 성호를 그으신다음에 내손을 잡고 눈을 지그시 감으셨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고 수녀님이 내손을 놓아주셨다.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믿고 힘내라고 기도했단다. 네가 병실에서 힘든상황에 처해있지만 이것을 믿음에 대한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잘견딜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기도를 올렸어. 마귀의 농간에 빠져서 정신병원에 오게되었지만 하나님이 우리가 나갈수있게 구원의 손을 뻗으실거야. 그리고 항상 예수님을 믿으렴. 나는 예수님과 결혼해서 수녀복을 입었단다. 언제라도 인자하신 예수님께 너의 고민을 말하면 다 잘풀릴거야. 꾸준히 기도하렴."
"네 수녀님의 기도에 감사드려요. 요즘 믿음에 대한 회의가 일어서 혼란스러워요. 저는 가톨릭이 아니라 개신교이지만 같은 하나님을 믿으니까 수녀님의 말을 이해할수 있어요. 그래도 자꾸 마음이 흔들려서 수녀님의 말을 들으러 수녀님을 찾은거에요. 아무튼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한걸 가지고 고맙기는. 믿음에 시련이 따르는것은 당연한거야. 중요한것은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서느냐 무너지느냐야. 네가 지금 많이 힘들어도 꿋꿋히 믿음을 지키면 언젠가 지금 이순간을 자랑스러워 할날이 올거야."
이순간이 자랑스러워 질것이라고? 믿을수 없다. 여기 있는 누구나 정신병원에 있었던일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할텐데 오히려 이곳생활을 기억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순간을 자긍심을 가지고 볼수 있다니.. 나는 머리를 된통 맞은듯한 충격을 받았다. 수녀님의 생각은 다른사람들 하고 달라도 너무 달랐다.
수녀님의 말은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말보다 인상깊었다. 신앙이란 이렇게 대단한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녀님은 정말 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을 자랑스럽게 여길수 있습니까? 저는 여기있었던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나가게 되면 다른사람들한테 이 이야기를 하지않을 생각인데 수녀님 진심입니까? 아니면 그냥 하시는 말씀인가요?"
"나도 여기온것이 떳떳한것은 아니야. 하지만 예수님을 떠올려 보았어.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셨지만 다른사람들을 모두 구원할수 있었기에 인간으로서의 짧은생활을 기뻐하지 않으셨을까? 물론 비유가 조금 부적절하지만 생각해봐. 이런 상황이라면 예수님은 어떻게 생활하셨을까? 이것을 하나님의 시련이라고 생각하시고 버티지 않으셨을까? 아직 어린 너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하나님을 믿어봐. 그분은 이유없는 일은 하시지 않아. 시련을 주셨으면 복을 주시는것도 하나님이야. 너도 여기서 고생을 했지만 나가고 나면 많은 축복이 있을거야. 축복된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포기할거니? 꾸준히 기도해보렴. 불교도 분명히 좋은믿음이지만 이런시련이 닥쳤다고 믿음을 바꾸려고 그러니?"
"..생각해봐야 되겠어요. 그렇지만 시도는 해보겠지만 수녀님과 다르게 믿음이 깊지않은 저로서는 힘든일이에요. 믿음이 여기있는 저를 빼내주진 않을거 아녜요. 아무튼 좋은말씀은 감사해요."
"..너를 위해 항상 기도하마. 부디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견딜수 없는 시련은 하나님꼐서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거야. 다행히 암이나 심장질환이나 허리디스크같이 심각한 병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야. 마음만 위로받고 회복되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 낫는 병이잖아. 나는 마음의 병이 암보다 무섭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병때문에 죽게되는것은 암이 훨씬 많잖니. 산다면 살아있다면 분명히 행복해질수 있는 날이 올거야."
수녀님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셨다.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것이 가장 힘들어요. 언제나갈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하나만으로도 견딜수 없게 부정적이 되버려요. 저는 오히려 여기있는것이 더 큰병에 걸린것보다 행운이라니 박아들이기 힘드네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봐야되. 여호와께서는 모든것을 보고 계시고 보살펴주고 계셔. 네가 믿음으로 정신병원 생활을 극복한다면 살아가면서 더 큰장애도 헤쳐나갈수 있다고 생각안드니? 사람은 불행하다고 절망만 하면 발전이 없을거야. 설마 그것을 바라는것은 아니겠지?"
"급한것은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해볼게요. 그러면 수녀님은 수녀님의 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나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깨닫고 계시나요? 먼저 자신을 극복하시지 못하고 하시는 충고라면 더이상 귀담아 듣지 않겟습니다."
"나는 예수님과 결혼했어.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거야. 그서이 지나치다는 것이 병이라면 나도 어쩔수 없는 환자일거야. 예수님은 항상 내곁에 계셔. 부인인 나를 항상 돌봐주고 있으시지."
"수녀님 말씀은 벙말 설득력이 있었지만 수녀님 자신은 미망에서 깨어나시지 못하고 계시네요. 예수님은 혼례를 하신적도 없고 무엇보다 2천년 전의 분이십니다. 그분이 다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은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사람하고 혼례를 올리실까요? 수녀님. 수녀님도 자신의 병을 아셔야 합니다."
"내 병이라니? 예수님은 나의 남편이야. 항상 나를 쓰다듬어 주시는 분이야. 네가 그것이 샘이 나나보구나. 변하지 않는것은 예수님은 나만의 남자이기도 해. 나도 시샘받을것은 각오하고 있어."
역시나 수녀님도 대부분의 환우들처럼 자신의 병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병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사람의 병을 치유할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좋은말씀이니 참고는 하겠지만 나에게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는 못할것이다.
"수녀님 재훈이를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다른 환우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다른분들도 수녀님의 기도를 기다리고 있어요."
"영이 말이 맞다. 재훈아 너는 우선 나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지 마라. 항상 믿음이 부족한 너를 위해 기도하마. 예수님이 항상 너를 지켜보고 계시다는것만 잊지 말아라."
그말씀을 끝으로 수녀님은 영아와 같이 여자병실로 돌아가셨다. 수녀님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렇다. 여기 있는 생활을 더이상 부끄러워하지 말자. 정신병원에서의 생활 또힌 값진 시간이 될수있다는 점을 깨달은것 만으로도 수녀님과 이야기한 가치가 있는것 같다. 지원이와 상석이가 내옆으로 다가왔다.
"수녀님하고 무슨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했어? 그 수녀님은 다른사람들 하고는 이야기 잘안한다고 하던데 너하고는 많이 말하시던데."
"별이야기는 안했고 수녀님과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어. 내가 믿음이 흔들려서 그것에 대해서 수녀님과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 그 말씀을 들어도 아직도 나의 믿음은 흔들리더라. 수녀님처럼 종교에 빠지는것도 안좋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 수녀님의 병도 그래서 생긴거거든."
"수녀님 기도를 받고도 마음이 흔들린다면 너의 마음이 가는것을 믿어. 재훈이 네뜻에 달렷으니까 망설이지는 말고. 나도 얼마전까지 무신론자여서 재훈이와 같은 생각을 많이해. 종교에 빠지는것 만으로도 그것자체가 병이될수도 있다는점말야."
"상석이 말이 맞아. 나는 단군상이나 불교의 불상을 우상이라고 부수고 예술품을 손상시키는 광신교도들 증오해. 나도 가족들이 불교를 믿는데 기독교 사람들이 와서 그런것 믿지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반감이 생겨. 자신이외의 종교를 핍박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말또한 마음에 안들어. 다른종교들을 우상숭배라고 밀어붙이면서 깔아뭉개는 교리또한 짜증이나. 그런 기독교보다는 다른종교를 포용하는 불교족이 더 종교같지."
"아무튼 어느종교든 중요한것은 우리한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야. 한없이 의지할수 있는 하나님을 믿느냐 아니면 스스로 일어나 고행이라고 여기면서 고행을 쌓아가는 불교를 믿느냐야.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종교도 달라질것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정신병원에 대해서 잘못 알고있어. 완전한 평안이 있는곳이라고도 하잖아. 그냥 쉬기만 하면 되는곳이라고 알고있지. 그렇지만 그것이 가장 힘든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어. 정신병자들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셩안정제를 먹고 있잖아. 하지만 신경을 안정시킨다는것은 의욕조차 사라지게 한다는것을 뜻해. 의욕이 없는 삶에서 삶의 낙을 찾을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 우리는 빨리 의욕을 찾아야해. 종교는 그 의욕을 되살리는 또하나의 방법이기도 하고말야."
"재훈이 말이 맞아.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것은 삶에대한 욕구야. 의지와 의욕이 사라진 삶은 이미 죽은거야. 그것들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살아있는것이 아니야. 이런 이야기는 밖에서 엿다면 생각하지도 못햇을것이고 할이유도 없었겠지. 하지만 우리는 환자잖아. 우리에게 필요한거야. 어째서 여기왔느냐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것은 어떻게 견디고 퇴원하느냐야. 우리는 여기서 나가도 사회적으로 뒤쳐져있어. 동등한 입장이 아니란 뜻이지. 정상인처럼 생활하려면 더욱더 노력해야되.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환자였다는 정체성을 잃게 만들거야."
"상석아 결론이 안나오는 이야기는 이쯤하자.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절망이 얕아질때 웃으면서 이야기하자. 너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그래 이런이야기 하면할수록 침울해 지겠지. 그래도 우리가 환자라는 사실은 부정하려고 해서는 안되. 우울해지겠지만 인정해야되. 우리의 병은 자신의 병을 긍정하는데서부터 치유가 시작되니까. 자자 시간이 많이 지났어. 우리 식사나 하러가자."
"놔 건드리지마. 마피아가 무섭지 않아? 이 용문신을 보라고.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꺼져." 복도 저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마피아를 들먹이는것을 보니까 천복이가 말한 마훈이형이란 사람 같았다.
"마피아아 야쿠자아."
마훈이란 형이 악을 쓰면서 말하고 있었다.
"마피아와 야쿠자가 도대체 어떻다고 그래요? 제발 정신차리세요. 오픈으로 왓으면 병이 깊지 않다는것인데 마훈씨는 아직도 심각한것 같아요."
"마훈오빠 재훈이란 놈좀 손봐주세요. 마피아와 야쿠자를 찾는 마훈오빠를 아주 우습게 보는 놈이에요."
"재훈이? 그놈이 누구야? 내 문신보고도 그런소릴해? 여기서건 나가서건 그새끼 손좀 봐줘야겠어."
"재훈씨가 그럴리 없어요. 화수씨나 마훈씨는 아직도 병에 차도가 없다고 의사선생님께 말하겠습니다. 자중해주세요."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소릴했냐? 나는 마훈이형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게 말이되? 화수이 미친년아 이제는 이간질이나 하고 다니냐."
"쟤가 재훈이야? 나도 누군지 모르고 처음보는것 같은데 나에 대해서 욕을 했다고?" "오빠 저 못믿는거에요? 오빠하고 이야기하는 유일한 상대인 나를 못믿고 처음보는 애 말을 믿는거에요? 오빠 그렇게 안봤는데 실망이 커요."
"아니야 아니야 네말이라면 믿어야 하겠지. 야 니가 내욕을 하고 다닌다는 재훈이냐?" "저는 맹세코 형 욕한적 없어요. 누군지도 모르고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을 욕할만큼 저 미치지 않았어요. 아직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화수말만 믿을거에요? 평소화수의 행실을 봐요. 미쳤나 안미쳤나 그리고 화수를 상대해주는 사람이 있나없나 따져보세요. 클로즈에 있을때도 계속 헛소리만 하던 애에요. 의심나면 다른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재훈이 이 미친놈아. 내가 언제 헛소리를 햇다고 그래. 너야말로 마훈오빠와 나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잖아. 이 호로새끼야 죽어볼래?"
"화수야 내가 화수말을 믿어야지. 야 임마 재훈이 자식아 말이면 다인줄 알아?"
"퍽" "윽!!"
미훈이형이 나에게 갑자기 주먹을 날렷고 나는 대비도 못하고 있다가 아구창을 맞았다. 입에서 피가 흐르고 이빨이 시렸다. 굉장한 힘이었다. 미친놈은 힘이 세다라는 말을 여기와서 여러번 깨닫게 되었다.
"꺄악 재훈씨 괜찮아요? 간호사 빨리 이쪽으로 와요. 구급약도 챙겨서 와요.마훈씨가 재훈씨를 주먹으로 때렸어요. 일단 빨리 마훈씨를 묶어요."
곧 간호사들이 왔고 마훈이형을 묶었다. 간호사들이 링겔을 꼽고 의사선생님을 찾았다. 그리고나서 나의 입을 헹궈주고 약을 발라주었다.
"화수 이미친년. 내가 가만두면 사람이 아니다. 미친년이 오픈와서도 지랄이네. 저런년이 어떻게 오픈으로 왔는지 모르겠네. 정말. 의사선생님의 착오가 아닐듯 싶네요." "종종 입원한지 오래된사람을 병세하고 거의 상관없이 오픈으로 보내서 상태를 보고 그래요. 화수도 그런케이스라고 알고있어요. 조금 더 지켜보고 상태가 더 좋아지지 않으면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리겠어요. 재훈씨가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
"저렇게 되지도 않는 시비를 걸고 이간질을 하는데 어떻게 참아요. 마훈이형도 구석방 갔다오면 나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게 될텐데 어떻게 참아요."
"아니에요. 마훈씨는 구석방에 갔다가 오면 달라져있을거에요. 재훈씨는 철준씨하고도 잘지냈잖아요. 아마 마훈씨하고도 잘지낼수 있을거에요." 간호사가 나를 보고 말하고는 마훈이형을 끌고갔다. 과연 내가 잘해낼수 있을까? 분명히 화수가 이간질을 놀텐데. 정말 화수와 나는 악연이다.
"재훈아 저런 미친년은 상대하지마. 괜히 너하고 얽혀봐야 좋을것 없어,. 클로즈에 있을때부터 사이가 안좋았던것 같은데."
"클로즈때도 자기가 '비'와 결혼할거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환자들을 괴롭혔었어. 나도 화수한테 정신좀 차리고 현시릉ㄹ 깨달으라고 했다가 이렇게 됬다. 지원이 너도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그년은 사람들한테 시비를 거는것을 즐기는것 같거든."
"아무리 여기가 정신병원이라지만 그래도 개방병동인데 화수같은애가 오다니 정말 착오가 아닐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더이상 고칠수 없으니 오픈으로 보냈다가 퇴원시키려고 하는게 아닐까? 어느쪽이라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닐것 같은데 말야. 아무튼 힘들겠지만 최선은 되도록 화수와 마주치지 않는것 밖에는 없는것 같아. 영아도 화수랑 같은 병실쓰는데 곤란을 겪지 않을까?"
"하여튼 상석이 영아얘기부터 나와요. 속직히 말해봐. 둘이 친구가 아니라 애인사이지?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이유가 없잖아. 잘어울리니까 좀더 힘내봐."
'재훈아 우린 아직 친구야. 너무 친근해서 더이상 진도가 안나가는 상태야. 나도 영아가 맘에들긴해. 근데 이것이 친구로서의 감정인지 아니면 애인으로서의 감정인지 구분이 안가. 더 중요한건 영아는 나한테 별관심이 없어. 아 이건 애인으로서으 관심이야."
"그건 그렇고 영아한테 화수에 대해서 물어보자. 그년은 도대체 무슨 병으로 여기로 왔을까? 단순히 '비' 때문에 온건 아니었을텐데 말야. 걔도 말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그러니까 내말은 화수의 병을 알면 대처하기가 더 쉬울거라는 이야기야."
나는 다가오는 영아를 보며 말했다. 영아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영아야 왜 그렇게 치뭉ㄹ한 표정을 짓고 있어? 무슨일이라도 있는거야? "화수하고 수녀님하고 문제가 생겼어. 먼저 화수가 수녀님보고 정신차리라고 했어. 예수님이 수녀님하고 결혼하는것은 정말 말도 안된다고 말야. 수녀님도 '비'와 잘되는것은 여기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어. 그말을 듣고 화수가 폭주해서 수녀님하고 머리를 잡고 싸웠어. 수녀님이 무슨힘이 있겠어. 결국 화수한테 일방적으로 맞았고 간호사들이 나서서 화수를 구석방으로 보내고 수녀님은 근신처분을 내렸어. 수녀님의 얼굴에 할퀸자국이 남았고 덕분에 분위기가 침울해졌지."
"어딜가나 화수가 문제로구나. 영아야 혹시 화수의 병이 뭔지 알고있어? 여자끼리는 그런얘기 했을수도 있잖아."
"잘은 모르지만 자기가 하고싶은일을 그만둘수 없었나봐.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고 할까? 예전에 아기를 사촌이 화수한테 맡겼는데 땅에 패대기쳐서 죽게한일도 있대. 그것때문에 병원에 오게 되었는데 갈수록 병이 심해지는거야. 옷가지고 뭐든지간에 집어던지고 그랬대. 구석방에 갇힌것도 몇차례나 되고 약도 늘어났는데도 성품자체는 바뀔수 없었나봐.화수와 같이 오래전에 입원했었던 언니가 들려준거야."
화수는 어쩌면 우리들중에서도 가장 불행할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보다 행복할것이다. 자신이 미친지 모르는것은 화수에게 복이 될수도 있다. 다른사람들처럼 미쳤을때의 일을 떠올리며 자괴감을 가지는 일은 없을테니까. 그게 바로 복이고 또 동시에 화다. 그중 화는 정상으로 돌아오기 힘들다는것이다, 자신을 돌아볼수 없으니까. 전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할수 있다. 화수에게도 후성이처럼 자기를 이해해줄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걸까?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 화수를 이해하려고 해도 내마음은 결코 화수를 용납할수 없다. :화수의 병이 호전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같은 병실을 쓰고 있는 환우라ㅣ고 칭하긴 싫지만 어쨌든 우리는 화수와 마주치며 살아야 하는데 지금 이대로라면 너무 힘들어. 무작정 외면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은 최선이 아닌것 같아."
"재훈이 생각이 그러면 나라도 화수에게 말걸어볼게. 어쩌면 외로워서 그런것일수도 있잖아." "그건 그렇고 수녀님은 어떠셔? 평소하고 다른데는 없어? 수녀님도 그렇게 당했는데 화수를 받아들일수 있을까? 수녀님도 사람인데."
"아무리 수녀님이라도 지금의 화수는 받아들이기 힘들거야. 화수가 어떤지 알잖아? 우선 욕부터 나오고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잖아. 구석방에서 나오면 또 평지풍파가 일겠어." "
근데 영아 네가 화수와 말을 섞을수 있을까? 그러려면 화수의 비위를 맞춰줘야 할텐데 힘들것 같아. 화수의 말을 들어줄수 있어?"
"상석이 말처럼 힘들거야. 그건 나도 알고있어. 그래도 들어주기만 하는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나한테 욕만 하지 않는다면."
영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영아는 과연 화수하고 잘지낼수 있을까? 물론 힘들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화수하고 화해할 마음이 있는걸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화수와는 이미 어긋났고 나역시 화해할 마음은 없다. 이런 내가 영아에게 화수와 잘지내보라고 말을할 자격이 있는것일까? 나는 다만 나중에라도 화수와 얼굴 붉히지 않을정도만 바라고 있다.
"아마 영아라면 할수있을거야. 화수와 조금이라도 친해져서 병실의 평화를 만들어보자구. 그런데 마훈이형은 어떻게 하지? 그형 밖에서는 조폭이었던것 같은데 사실 조금 무서워. 아니 많이 무서워.그래도 클로즈에서 살인자였던 철준이형하고도 친해진 전과가 있으니까 노력은 해볼거야."
"나는 재훈이가 잘할거라고 믿어. 어쩌면 둘다 너무 외로워서 어긋난점이 있을거야. 외로운 사람들 끼리니까 둘이 친해졌을거. 내가 화수를 맡을테니까 재훈이가 마훈이 오빠를 전담마크해."
"재훈이하고 영아가 나서면 재미있겠는데. 둘이 성공하면 우리도 잘지내보도록 노력할게. 둘다 힘내봐."
지원이가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우린 친해질수 있을까? 이건 다른사람문제도 아닌 우리들에게 직접적인 문제였다. 나는 마훈이형에게 맞아서 부풀어오른 뺨을 만졌다. 때린 마훈이형도 덕분에 구석방에 가있을테니 나에게 좋은감정을 품진 않을것이다. 맞은 나는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마훈이형에게 화가난다기 보다는 화수의 말만 믿고 나를 때린 마훈이형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화수외엔 말을 걸 사람도 없는것 같았다. 화수마저 잃을까봐 나를 때린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복잡해져 있을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재훈아 그동안 잘지내공 있었어? 나도 드디어 오픈으로 왔다. 수련이도 곧 올거야."
"아 성호형님 그동안 잘지내셨어요? 정말 잘오셨어요. 진짜 형님이 오픈으로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잘지내셨죠?'
"나야 항상 잘지냈지. 근데 나보다 유화이야기를 먼저 묻는게 순서아냐? 유화가 알면 화내겠는걸. 재훈이 또 다른사람하고 연애하는거 아냐? 그러고보니 나하고 이야기 하는 여자분 혹시 피아노치는 그 사람이야?"
"네 안녕하세요. 저는 영아에요. 재훈이 한테 성호오빠이야기는 들은적이 있어요. 앞으로 잘부탁드려요." "그래? 말편하게 해도 되지? 너도 말놓고 지내. 클로즈에서 네 연주 많이 들었다. 한번 보고싶었는데 보니까 정말 반갑다. 그나저나 혹시 재훈이가 작업걸고 그러진 않았어?"
"왜 아니었겠어요. 그래도 유화가 있어서인지 그렇게 저돌적이진 않았어요."
"아니 내가 뭘 접근했어? 나는 그저 상석이와 네가 잘되게 도와줬을뿐이라고." "재훈이 너 바람둥이 아냐? 클로즈에서 벌써 두명이나 사귀었다면서. 은주언니와 유화말야. 그리고 네가 상석이와 나를 엮어주려고 그랬다고?"
"아니 나는 그냥 둘이 잘어울리기에 한마디 했을뿐이라고." 그렇지 상석아?"
"재훈이가 그런말 하기는 했는데 별로 우리가 잘될거라 여기는 말투는 아니었어요. 아무튼 최근에는 재훈이가 영아한테 작업 안걸고 있어요."
"다행이네. 유화가 재훈이가 또 작업걸고 있으면 아예 다리몽뎅이를 부러뜨리라고 했거든. 아직 유화생각을 하기는 하는구나. 하긴 안그러면 클로즈에서 재훈이를 기다리는 유화가 너무 불쌍해지지. 재훈아 앞으로 유화한테 상처주지 마라."
성호형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성호형님이 오픈으로 와서 정말 좋았다. 클로즈에 있을때는 몰랐는데 오픈으로 와서 든든한 형의 빈자리를 느꼈다. 저런 형이 있으면 좋겠다고 수도없이 생각했었다.
"재훈아 옆에있는 사람들 좀 소개시켜줘. 참 나도 너하고 같은병실을 쓰게 됬어소개할게.나는 김성호야. 앞으로 잘부탁할게." "옆에 있는애는 지원이고 오른쪽에 있는애는 상석이에요. 지금은 안보이지만 형님또래의 석원이형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성호형님. 잘부탁드려요." 지원이와 상석이가 성호형님에게 인사했다. "성호오빠도 왔는데 우리끼리 과자파티라도 할까? 성호오빠 오픈온 기념으로 말야."
"그게 좋겠다. 성호형님이 오픈으로 왔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섭하지. 석원이형 한테도 말해서 조촐하게 과자파티나 하자. 자 우리 병실로 가자. 우리는 성호형님과 같이 병실로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김성호입니다. 오늘부터 오픈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지내봅시다." 성호형님이 고개숙여 인사했다. "나는 석원이야. 나이도 비슷해보이니까 말놀게. 같은 병을 가진 환우끼리 잘지내보자. 나이가 정확히 어떻게 되? 나는 38세인데. "
"응 나는 39살이야. 한살차이니까 말트고 지내자."
"그럴까? 나도 내또래가 와서 반갑네. 근데 전에 한번 얼핏 본것도 같은데.."
"산책갔었을때 봤잖아. 석원이 네가 분위기 잡고 고독을 씹으며 담배필때 내가 라이터 빌려줬잖아."
"아 그게 너였구나. 하하 아무튼 반갑다. 우리 나이차도 얼마 안되는데 친구하자. 나는 서초구 사는데 너는 어디살아?"
"나는 신사동에 살아. 동네도 가깝고 잘됬다 나가서도 잘지내자."
"석원이형 성호형님 온기념으로 영아하고 상석이와 지원이하고 과자파티해요. 형도 같이 파티해요."
"요새 건수가 없었는데 정말 잘됬다. 내가 음료수 살테니까 너희들이 과자 준비해라. 인철이하고 종철이도 불러야겠다. 참 천복이는 언제 퇴원했냐? 그쪽 병실에 안가서 잘모르겠는데 말야. 내 유일한 탁구 호적수 였는데 요새 안보이더라.천복이도 부르자"
"천복이 어제 퇴원했어요. 갑자기 부모님이 오셔서 데리고 가겠다고 승인해서 바로 갔어요. 그래서 다들 모를거에요."
잠시후 석원이형이 인철이형과 종철이형을 부르러 갔다. 곧인철이형과 종철이형이 왔다. 그리고 석원이형 양손에는 1.5리터 콜라와 사이다가 들려있었다.
"재훈아 스윙칩하고 몽쉘통통사오고 컵좀 인원수대로 얻어와라."
네 석원이형 지원아 상석아 간호사한테 가자. 그리고 방에 신문지 준비할수 있냐?"
"그래 상석이와 내가 신문지 조달할테니까 간호사한테 간식주문하는것은 네가 해라. 돈은 나중에 줄게."
지원이와 상석이는 병실과 복도로가서 신문지를 모아왔다. 나는 간식신청 종이에 과자를 신청했다.
"참 영아야 수녀님도 과자파티에 참석할수 있는지 물어볼래? 수녀님도 같이 참여하면 좋을것 같아서. 이기회에 확실히 안면트고 싶어서 그래."
"말은 해볼게. 하긴 성호오빠도 수녀님을 보면 좋아할거야. 성호오빠도 안수기도를 받고 수녀님과 이야기하면 좋을거 같아."
"이제 더이상 사람들 부르지 말고 조촐하게 하자. 무슨경사난것도 아니고 그냥 성호형님 환영파티니까. 아무튼 먹고 즐기자구."
잠시후 준비를 거의 끝마쳤을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소파가 있는 강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소파를 원모양으로 배치시키고 신문지를 깔았다. 그리고 신문지 위에 과자를 뜯어서 올려놓았다.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서 파티의 주인공인 성호형님을 봤다. 성호형님이 일어나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 저때문에 환영파티까지 하니 조금 아니 많이 어색하네요. 저는 김성호입니다. 나이는 39세이고 오늘 오픈으로 왔습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성호형님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후 자리에 앉았다.
"성호형님 제가 형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곧있으면 수련이 누나도 오겠죠? 그런데 유화는 언제쯤 오려나 보고싶은데."
"재훈이 여자친구 기다리는구나. 유화는 아직 별말이 없었다. 그래도 이젠 조금만 더 있으면 오겠지. 요새 재훈이가 없어서 많이 심심한거 같더라."
"그렇겠죠. 아무래도 유화한테 치근덕 거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심심하겠죠. 제가 얼마나 난릴를 쳤엇는데요. 그런제가 없어지니까 아무래도 허전한테죠."
"재훈이 너무 자신하는거 아냐? 이미 다른남자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유화정도면 그정도는 걱정하는게 당연한 센스아냐?"
"성호형님도 참. 진짜로 그랬으면 형님이 이렇게 침착하게 말하겠어요? 형님도 거짓말하면 티가나는 성격이라구요."
"재미없는 녀석. 재훈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약삭빨라졌지? 유화 지금 네가 빌려준 그리스.로마 신화읽으면서 오픈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네가 재활활동 참여하지 않는다고 화가 단단히 낫더라. 자기 보고 싶지 않은가 하고 말야."
"저는 다른건 모르겠는데 재활활동은 참여하기가 껄끄러워요. 아마 마음의 여유가 없는거 같아요. 예전에 유화를 처음본것은 글쓰기 활동중이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갔지만 이제는 도저히 못가겠어요."
"그건 네개 달린 문제겠지. 하지만 네가 유화를 정말로 좋아한다면 유화를 유일하게 볼수있는 재활활동시간에 참여할수도 있지 않을까? 뭐 네가 알아서 할테니까 더이상은 묻지 않으마" 성호형님과 나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늘은 성호형님 환영파티하는날인데 왜 엄한이야기 하고 있냐? 재훈아 일단 먹고보자. 그래 네 여자친구 이야기는 다음에 해라. 이거 여자친구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어 수녀님도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영아가 오라고 해서 왔단다. 나도 오고싶기도 했고. 영아가 인상좋은 오빠 환영파티에 와달라고 해서 오게됐어. 상석이와 지원이는 여전히 사이가 좋구나. 안녕하세요. 김미선이에요. 못보신분들도 많이 있네요. 저도 겸사겸사 잘부탁드려요."
성호형님은 수녀님의 인사를 받고 수녀님을 바라보았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여기에 수녀님이 계실줄은 몰랐네요. 저도 요새 종교문제로 갈등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조언부탁드립니다. 수녀님 좋은말씀 많이 해주세요."
성호형님이 악수를 청했고 수녀님과 악수를 하며 고개숙여 인사했다.
"제가 여기온걸로 사람들이 많이 놀라더라구요. 하지만 수녀도 사람인데 아플수도 있죠. 그것이 몸이든 정신이든 말예요. 여기온것을 기회로 삼아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드릴게요. 저에게는 여기생활이 시련이지만 또한 여러분들을 만나게된 복이기도 해요. 같은환우가 되었으니 고민이 생기면 나누면 좋겠어요."
수녀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말했다. 수녀님이 웃자 병동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우리는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다들 모여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어머 재훈이구나. 성호씨도 그렇고 언제 오픈으로 왔니? 내 정신좀봐. 아직까지 오픈사람들을 확인하지 못했네."
손명희 간호사가 웃으며 말햇다. "저야 지난주에 왔죠. 성호형님은 오늘 오셨구요. 간호사님이 우리를 모르셔서 되겠어요?" 내가 살짝 윙크를 했다.
"그렇구나.,과자 파티하나보지? 재훈이 네가 주선했지? 클로즈에서도 그러더니 오락부장은 어쩔수 없구나. 뭐 분위기도 좋아보이고 환우들끼리 친해지고 좋은일이야. 다 먹은것 같은데 후식으로 커피한잔씩 해야지. 원래 함부로 커피주면 안되지만 오늘만 특별히 줄게. 조용히 마셔.내가 줬다고 말하지 말고."
곧 손명희 간호사가 커피믹스와 뜨거운물을 가져왔다. 원래 병실에서는 커피도 일주일에 한번 환우들 회의시간에만 먹을수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기 생활을 힘들게 하는 또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커피가 제한되다 보니 병실생활이 배나 힘들었다. 요즘에 내가 바라는것은 자유산책이다. 오픈에서 몇몇이 자유산책인데 나가서 커피와 담배를 사서 해결할수 있었다. 석원이형이 자유산책이 가능했고 석원이형의 이야기중 가장 부러운것이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영아가 커피를 빨리 마시고 피아노를 쳤다. 사람들은 먹으면서 영아의 연주를 들었다. 영화 '클래식' 에서 나왔던 '자전거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었다.마침 악보가 있어서 상석이가 영아에게 부탁했다.
영아의 연주가 병동을 채웠고 병실에 있던 사람들도 연주를 들으로 복도로 강당으로 나왔다.지원이와 상석이가 노래를 불렀고 나역시 가사를 읊조렸다. 피아노를 치는 영아의 모습이 즐거워보였다. 연주에 몰입해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영아의 손이 아름다워 보였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사람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새삼깨달았다. 수녀님은 성호형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듯이 웃으셨다. 석원이형은 종철이형과 인철이형을 보면서 계속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유화를 생각했다.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문득 유화가 보고싶어지는 밤이었다. 유화와 키스를 했던 밤도 이런날이었는데 다시 그떄로 되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끼이익"
클로즈의 문이 열리고 화수와 마훈이형이 다시 오픈으로 왔다. 전에 이야기한대로 영아가 화수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화수야 난 같은병실 쓰는 영아야. 알고있지? 클로즈가서 많이 힘들었니?"
"아 영아구나. 근데 너하고 내가 이런말할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닌데." "아니 그냥 걱정이 되서.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친해지면 되지"
"그래? 병실에서 나하고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아는데. 나한테 뭐 부탁할거라도 있나보네."
"부탁할것 없어. 그냥 나는 너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래."
"나하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게다가 나한테 바라는것도 없고? 이자리에서 말고 병실로 가서 천천히 이야기하자. 피곤해서 여기서는 오래이야기 하지 못하겠다."
화수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영아를 봤다. 병실의 사람들은 자신을 꺼리고 있는데 자신과 아무조건 없이 친구가 되자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것이다. 병실로 돌아간 화수는 빵하고 음료수를 꺼내서 영아에게 주었다.
"뭐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그런데 너도 내가 '비'하고 애인사이란것을 못믿니? 왜 사람들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까?"
"물론 내생각에 너하고 '비'가 연인사이일수도 있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곳에는 가족이나 친지가 아니면 면회할수 없는거 알잖아. 네가 증거를 보이고 싶어도 '비'는 여기 올수없어."
"아 그랬구나. 어쩐지 '비'가 찾아오지 않더라.정말 너는 나를 믿는거니? 아니면 믿는척을 하는거야?"
"솔직히 믿기는 힘들지만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너라고 '비'의 애인이 될수없다는 생각은 하지않아. 그런데 왜 네가 다른사람들을 괴롭히는지는 잘모르겠어."
"지금 말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생각이 뭔지 보여. 너는 안그런것 같아. 그런데 너를 무시하고 미워하는 사람들하고 잘지낼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아니야. 나도 사람인 이상 나한테 못된감정 품고있는 사람들하고는 잘지낼수 없어. 그건 누구나 그렇잖아."
"하긴 나도 그러니까 이해가되. 그렇지만 그렇게 너무 흑백으로 대하면 사람들하고 멀어질수 밖에 없어. 너도 그런걸 원하는것은 아니잖아."
말들들은 화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붉었다 푸르딩딩하게 변했다. "너도 나한테 그런 잔소리 하려고 접근한거야? 나는 누구도 믿지않아. 결국 너도 나를 하찮게 봤어. 나는 다른사람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화수가 씩씩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영아는 자신이 도대체 무슨말을 잘못한지 몰랐다.
"나는 그런뜻이 아니었어.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정말 미안해. 그것만 알아줬으면해. 나는 이만 가볼게 담에 또 얘기하자."
"됐어 필요없어. 내 생각이 삐뚤어진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동정을 살 생각은 없어."
화수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병실밖을 나가더 나와 부딪혔다. "
재훈이 이새끼 잘만났다. 너때문에 구석방에서 며칠 썪었어. 니놈이 오픈에서 편히 지낼동안 말야."
"컥!!"
화수가 내 정강이를 발로찼고 나는 고통때문에 신음소리를 냈다.
"왜 또 간호사 불러보시지? 고자질쟁이 새끼. 네놈때문에 '비'하고 떨어진것을 생각하면 이것으론 택도없어."
화수가 미친듯이 웃었다.
"왜 화수가 또 재훈이 한테 시비거니? 담당의사선생님 한테 말해야겠다. 화수와 또 싸운거니?" 화수가 나한테 욕하는소리를 듣고 간호사가 나에게 말을 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
흥 꼴에 남자라고. 고자질쟁이는 싫은가보지? 재훈이 이새끼 조심해라. 가만두지 않을거니까. 내눈앞에서 꺼지는게 좋을거야."
"잘해주려고 해도 이렇게 삐뚫어진년은 처음이다. 너는 친구한명 없지? 마훈이형같이 심하게 미친사람 꼬시면 재밌냐? 누가 너같은 년을 데려갈지 정말 불쌍하다. 너하고 결혼한다고 그러면 자살할사람ㄴ 수두룩하다."
"재훈이 새꺄. 뚫린입이라고 헛소리 찍찍하면 단줄알아? 친구가 없다고? 오늘 나하고 영아가 친구하자고 했어. 너같이 미친놈이 그걸 알리가 없지."
영아가 화수한테 접근했구나. 영아도 참 힘들겠다. 아무튼 나하고 화수는 더이상 화해의 여지가 없는것 같다. 사이가 틀어져도 돌이킬수 없을만큼 틀어진것 같다. 인생이 불쌍한건 둘째치고 정말 화수성질 마추기는 불가능에 가까운것 같다. 화수는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텔레비전을 보러갔다.보나마나 또 '비'가 나오나 안나오나 체크하고 있을것이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성질도 더러운게 미치니까 정말 감당이 안된다.
째깍째깍 시간감각이 없어진 나는 시계소리를 듣고 달력을 보았다. 여기 온지 거의 두달이 되가고 있었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사도 끝나고 정말 할것이 없는 시간. 답답해졌다. 언제까지 나는 화수와 부딪혀야 하는걸까? 나는 앞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카페라떼를 마셨다. '사랑은 카페라떼처럼' 유화가 보고싶었다.
유화는 내가 없어서 카페라떼를 먹고있지 않겠지? 언제쯤이면 유화가 오픈으로 올까? 그때 누군가가 내옆으로 왔다.
'어 석원이형 성호형님 뭐하고 계셨어요?"
"야 왜 나하고 성호는 나이차이도 얼마 안나는데 왜 성호는 형님이고 나는 형이야? 앞으로 나한테도 형님이라고 불러라."
"에이 성호형님은 클로즈에서 있을때부터 그랬고 석원이형은 처음에 형이라고 말을 터놔서 형님이란 말이 안나와요. 그냥 형이라고 부를게요."
"그래 석원아 호칭이야 편하게 부르면 되는거지 그런거 신경쓰냐? 뭐 형님이 어감이 더좋기는 하지만 하하." 성호형님이 기분이 좋은듯 웃었다. 석원이형은 그모습이 탐탁치 않은듯 눈썹이 팔자모양으로 꺾였다.
"근데 형들은 무슨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서로의 병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있었다. 석원아 계속하자."
"재훈이는 내얘기 들은적 있으니까 새로운걸 말해볼게. 재훈아 사인이라는거 아니? 나는 미국에서 거의 20년을 살았는데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었거든. 꽃집아가씨인데 이름이 제인이었어. 중요한건 아니지만 내 영어이름은 존이었어. 나는 거의 매일 제인에게 꽃을 보내고 선물을 사서 보내고 그랬거든. 편지도 써서 보내기도 하고 말야. 제인은 그럴때마다 나를 반갑게 보고 기뻐하더라구. 내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제인을 볼때마다 마음이 갔고 어느날 드디어 고백하러 갔어. 그런데 그날보니까 제인이 없었어. 나는 사랑에 좌절하고 우리나라에 오게되었어. 그때는 겨울이었는데 옆집사람들이 여행을 갔거든. 나는 내집앞의 눈을 치우고 옆집의 눈도 치우고 청소도 해줬어. 그러니까 나에게 좋은일이 생길것 같은 느낌이 드는거야. 거리로 가서 꽃집을 보면 내가 미국에서 매일 선물했던 장미가 눈에 들어왔어. 그런데 그게 제인이 나한테 보내는 일종의 사인같은거야. 자기도 나를 좋아했다고 말야. 그러다가 집앞에 해외입양아 포스터가
붙었는데 장소가 미국이었어. 그리고 그아이들중에 제인하고 닮은 애가 있었어. 그때 나는 이것이 제인이 나보고 미국으로 오라는 사인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미국행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부모님이 공항에 있는 나를 데리고 여기로 보냈어. 내가 여기온 이유중의 하나야."
석원이형이 묵주를 더듬으며 성호형님과 나를 보며 이야기 했다.
"참 미국에 있는 정신병원은 2주 이상 못있게 되어있는거 알아? 거기서 입원한적이 있었는데 거기는 환자가 자신을 병원으로 보낸사람한테 고소할수도 있어. 우리나라에선 힘들지만 말야. 식사도 양식이라 내 입맛에도 맞았어. 나 여기서도 양식을 자주 시키는거 알지? 그런데 여기는 양식이 별로 맛이없더라. 아무튼 나는 그곳에서 다른환자들과 이야기 해보았는데 다른사람들도 '사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거야. 너희들은 그런 경험 없어?" 나는 또다시들은 '사인'에 놀랐다. 여기서 이야기해본 환자들 대부분이 '사인'에 대해서 겪어본것 같았다.
"나도 비슷한걸 겪은적이 있어. 나는 무역회사를 다녔는데 병이 도졌을때 인터넷에서 거래회사 사이트에 들어간적이 있어. 거기에서 제임스란 이름을 보았는데 참 내영어이름이 제임스거든. 그걸 본순간 또다른 내가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거야. 다른곳에 있는 '나'라면 이거래는 반드시 성공할것이라는 '사인'을 읽었어.
이게 내가 여기오게된 이유중 하나고 이 이야기를 와이프한테 했더니 여기 의사선생님에게 데려와서 상담을 했어."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고 지난번에 이야기햇던 내가 여기오게된 경위를 이야기했다. "재훈이 아직 정확한 병명을 모르는 구나. 조울병이라는 심증만 있을뿐이군, 잘생각해봐. 네 병이 뭔지 또 왜그랬는지를 아는것은 병이 낫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잖아. 그리고 너 여기에 처음온거 맞아? 행동이 너무 익숙해서 몇번은 왔던 사람같다."
"여기 왔던 기억이 없어요. 모든것이 익숙하기는 한데 잘은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알게되겠지. 재훈이도 사연이 길구나. 우리들은 비슷한 병을 가지고 있으니까 더 공감대를 가질수 있겠다. 약속하자. 우리 나가서도 보는거다."
석원이형이 성호형님과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안보려고 했냐? 이거 섭섭한데. 설마 재훈이 너까지 그러는것은 아니겠지? 쇠뿔도 단김에 뺀다잖아. 지금 연락처를 주고받자."
우리는 서로의 핸드폰 번호와 집주소를 교환했다. 그런후 메모지에 연락처를 적고 사물함에 집어넣었다.
"내가 제일형이니까 나가면 내가 술을 쏘마. 삼겹살에 소주 어떠냐?"
"좋지 아 진짜 소주 마셔본지가 얼마나 됐나? 침넘어간다. 다들 서울에 사니까 부담없이 볼수있겠다." 그런데 석원이 너 결혼은 했냐? 왜 마누라하고 자식얘기는 하나도 안하냐?"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 꼭 그렇게 아픈대를 찔러야 하겠냐? 나도 나름 독신주의자라구. 결혼할 기회도 몇번 있었지만 지금까지 꿋꿋이 독신으로 남았으니까."
"잘났다. 우리 나이 먹도록 결혼못한것이 뭐 자랑이라고. 그래서 면회오는 사람이 부모님밖에 없다고 했나? 쯧쯧 네가 애들 재롱떠는 모습을 봐야 지금 내말을 이해할수 있을거다. 노래 가사처럼 결혼하면 후회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으면 더 후회하게 되는걸 모르냐?"
성호형님의 말을 듣는 석원이형의 얼굴이 굳어졌다.
"젠장 그래 내가 능력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했다. 너는 지금 내가 성호 널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를거다. 나도 진작 결혼했어야 되는데." "석원이형 성호형님 어려운 얘기는 그만하고 탁구한게임 치시죠?"
"그거 좋은생각이다. 일단 나하고 성호하고 먼제 한게임하자. 성호너한테는 절대 절대로 안진다. 건방진 기혼자 자식."
"후 과연 네가 날이길수 있을까? 불쌍한 미혼자 녀석."
둘은 탁구대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탁구채를 잡았다. 그리고 공이 튀었다. 서브에서는 성호형님이 앞섰다. 스핀이 걸린채로 빠르게 대각선을 훑고지나가는 공에 석원이형은 몇번이나 당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석원이형은 성호형님보다 스매쉬를 잘했다. 조금이라도 기준치보다 높은 공이 나오면 어김없이 스매쉬가 들어갔다. 성호형님은 그런 스매쉬를 둘중 하나는 놓쳤다. 15대 14. 경기는 치열했다. 둘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탁!탁!탁!"
소리가 병실에 울려퍼졌다. 그소리를 듣고 지원이와 상석이가 구경하러 나왔다.
"플레이 플레이 탁탁탁 이기는편 우리편"
되도 않는 노래도 불렀다. 지원이와 상석이도 이 빅매치를 누가이길까 호기심이 가득한채로 내옆에 앉아서 경기를 보았다. 20대 18 게임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이 서브한번 받아봐라." 곧이어 탁구대밑을 아슬아슬하게 치고 넘어가는 빠른공이 들어왔다. 20대 19한점만 더따면 성호형님이 이기는 것이고 한점을 석원이형이 내면 듀스가 되는상황이 되었다. 성호형님은 석원이형의 패스트볼을 넘기고 3구째 넘어오는 공을 스매쉬를 찍어내렸다. 21대 19 게임이 끝났다.
"이야 정말 치열한대요? 정말 재밌었어요."
"재미있기는. 하는 사람은 똥줄이 탄다. 어쨌든 내가 이겼으니 석원이는 저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반성해라. 더이상 나한테 깝치지 말고."
"한번 이겼다고 위세가 너무 당당한거 아냐? 다음에 치면 내가 더블스코어로 이겨주마. 제길 하필이면 성호 저자식한테 지냐. 재훈이한테 지면 졌지 성호한테 지다니 이거 스타일 완전히 구기는데."
석원이형이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기고 지는일은 늘 있는일이잖아요. 그리고 팽팽했어요. 그러니까 다음에는 석원이형이 이길지도 몰라요."
"재훈이 오픈가더니 석원이 편을 드는거냐? 이 성호형님 많이 섭섭하다. 클로즈에서 같이 다이어트했던 우리 아니었냐." "이긴사람한테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참 성호형님 오픈에서도 다이어트 하실건가요?"
"그럼 안할려고 그랬어?
할일도 없는데 다이어트나 하자. 석원아 너도 껴라. 너의 불룩한 복근을 보니까 안쓰럽다. 혹시 알아? 살빼면 날렵해져서 나한테 탁구를 이길지."
"살안배도 이겨. 음 그렇지만 내배가 민망할정도로 나왔네. 까짓것 같이하자. 그런데 이좁은공간에서 운동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일단 PT체조부터 하고나서 런닝머신을 달리는거야. 훌라후프 할줄알면 훌라후프도 하고. 그리고 저녁은 카로리바란스로 때우는거지. 어때 간단하지?"
"다이어트라. 인철이 생각이 나네. 인철이는 병원와서 7킬로그램 뺐어. 걔도 저녁에 칼로리바란스만 먹으면서 때우더라."
"우리가 먼저 칼로리 바란스 다이어트 시작했어. 이거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가 따라하는것 같잖아. 아무튼 지금부터 다이어트 시작하자."
"잠깐 마음의 준비를 하고나서 하자. 그런데 내일부터 하면 안될까? 오늘 부모님이 피자사가지고 오신다고 했거든."
"그렇게 해요 성호형님. 석원이형 덕분에 오랜만에 피자먹게 생겼네. 아우 피자치즈의 근 존득한맛.. 아 침이 줄줄흐른다."
나는 입맛을 살짝 다셨다. 피자라. 요즘들어서 부모님의 면회가 뜸해져서 피자와 치킨을 못먹고 있었다. 자고로 군것질은 해도 해도 하고깊은것이다. 피자를 먹은지도 벌써 3주는 된것같다. 그래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는 다이어트, 제대로 하자. 한순간의 폭식이 얼마나 나쁜지는 알지만 한번쯤은 괜찮을것 같기도 했다. 잠시후 점심식사시간이 될것이다. 그때 나에게 자원봉사하는 아가씨들이 나를 찾았다.
"재훈씨 점심시간에 어떤음악 틀어드릴까요? 여기에 리스트가 있어요. 오른쪽 책이 가요고 왼쪽책이 팝송이에요. 골라보세요."
"팝송에서 찾을게요. 나는 왼쪽책을 뒤적이며 노래를 찾았고 내가 듣고싶은곡이 있었다. muse의 'PLUG IN BABY'틀어주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팝송이에요."
"네 신청하신곡 틀어드릴게요.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나는 병실로 와서 식사를 기다렸고 12시 30분에 밥이 나왔다. 역시나 클로즈보다 30분 늦은 시간이었다. 12시에 익숙해져 있다가 12시30분에 먹으려고 하니까 더욱 배고팠다. 어쨌든 밥은 늦게나마 왔고 MUSE 의 'PLUG IN BABY' 가 틀어져 나왔다. 몽환적인 느낌의 목소리가 귀에 울려퍼졌다. 환청이 들리는듯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정도의 노래의 분위기에 취해서 밥을 먹는둥 마는중 했다. 그렇게 맛있던 밥이 노래소리에 묻혀버렸다. 음악은 정말 생물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것 같다. 식물에게도 잔잔한 클래식을 틀어주면 잘자란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노래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내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학교다닐때 시디플레이어에 넣어서 듣고 다니던 곡이 귓가에 맴돌았다. 고등학생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넘어간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떨려왔다.
"이노래 누가 신청한거야? 귀에 착착감기는데 재훈이 네가 시켰냐?"
"그래 내가 신청했다. 상석이 너는 유화가 자주 연주하는 '로망스'를 신청하는게 어때? 피아노 연주와 비교해보고 싶은데."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영아가 연주하는것이 더좋지. 생음악이잖아. 음 새로운 곡을 신청해야 할텐데.. 뭐 좋은노래 없나?"
"엔리케 이글라시아스의 'TO BE WITH YOU' 신청해봐. 아마 네취향에도 맞을거야. 노래 정말 좋아.
"다음에 내차례가 오면 신청할게. 재훈이 말들어서 손해본적이 많지만 이번 한번만 믿어볼게." "왜 내말을 들으니까 손해를 보냐? 예로부터 재훈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홍삼이 생긴다는 말을 모르냐?"
"정말이야? 담배를 구하는 방법이라도 있어?"
"정말 모르는거야? 자유산책가는 사람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사는건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병실내에서 필곳이 없다는것에 있어. 화장실에 짱박혀서 피면 될라나. 근데 냄새는 어떻게 하지? 아무튼 석원이형한테 부탁해봐."
그러자 상석이가 석원이형에게 가서 뭐라고 속닥거렸다. 자식 담배가 그렇게 피고 싶었나? 남얘기 할게 아니라 나도 담배가 무지 피고싶은데 석원이형한테 부탁해볼까?
"석원이형 다음에 산책나가실때 제 담배도 사다주세요. 돈드릴게요."
"돈은 됐고 내거에서 한두가치 주마. 필요하면 더줘도 상관없고. 상석이한테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자식들 그렇게 담배가 피고 싶었냐?"
이로서 담배문제가 해결되었다. 앞으로의 생활을 즐겁게 보낼수 있는일이 한가지 더 늘었다. "석원이형 근데 자유산책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주는건가요? 마냥 기다리는것만 해도 참기힘든데요."
"일단 주치의 선생님한테 말해봐. 나도 주치의 선생님이 자유산책 허락해주신거거든. 아마 너도 클로즈에서 산책이 가능할때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했을거야. 잘이야기해봐. 좋은결과가 있을거야. 아 그리고 오늘 클로즈에서 한명온다더라. 이름이.. 후성이라고 했던가? 그랬던것 같아." "후성이 걔는 귀신이 씌였다면서 어직도 헛소리하는 앤데 다른사람하고 헷갈리신거 아니에요? 수련이 누나가 먼저 올줄알았는데 후성이가 먼저 오다니.."
"후성이가 맞아. 걔도 화수처럼 상태가 좋지 않은가 보지? 그러면 우리병실로 오면 안되는데.. 오늘 종철이가 퇴원하고 오는거니까 우리병실은 아니겠다. "종철이형 퇴원이에요? 진작 말해주시지. 퇴원하기전에 지금 종철이형 보러가죠."
나는 종철이형을 보러 병실로 갔다. 인철이형은 사복을 입고있었고 종철이형 부모님이 옆에 계셨다. "종철이형 퇴원축하드려요. 퇴원기념 파티라도 했어야 되는데 아쉽네요. 아무튼 정말 축하드려요."
"재훈이구나. 드디어 퇴원수속만 마치면 퇴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으면서 겨우 한시간이 이렇게 길줄은 몰랐다. 곧있으면 와이프도 올거고 이젠 정말 퇴원한다는 느낌이 든다. 나가서 잘할수 있을지 두렵지만 일단 퇴원하니까 마냥 좋기만 하다."
종철이형이 싱글싱글 웃엇다. 정말 긴시간이었다고 느기는것 같았다. 나가고 나면 종철이형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떠올릴까? 안좋은 기억이라 여길수도 있고 잊으려고 할수도 있다. 짧은기간이었지만 같은 병동생활을 하면서 조금 친해졌는데 막상 종찰이형이 퇴원한다니 기쁨반 슬픔반이었다.
"여기서도 잘생활하셨으니까 나가셔도 잘생활하실거에요. 저도 얼른 나가야 될텐데 쉽지 않네요."
"초조해 하지마라. 나갈때가 되면 다 나가게 되어있어. 일단 전화하고 산책이 풀리면 여기생활하는것도 별로 힘들지 않을거야. 재훈이는 잘생활하다가 나갈거라고 믿는다. 그럼 형은 먼저 나가마."
나는 인사를 하고나서 내 병실로 돌아갔다. 종철이형이 나가고 후성이가 온다. 후성이는 운영이하고 지내면서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면 화수만으로도 힘든데 마훈이형하고 후성이까지 신경써야 되는걸까? 마훈이형도 오늘 오픈으로 다시온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잠시후 클로즈에서 문이 열렸고 마훈이형이 나오고 후성이가 짐을싸고 뒤따르고 있었다.
"재훈아 나도 드디어 오픈으로 왔다. 운영이가 없어서 아쉽지만 네기 있으니까 외로움이 덜할것 같아."
후성이가 나에게로 왔고 또 나를 껴안았다.
"내가 껴안지 말라고 했지? 어떻게 예전하고 변화가 없냐? 사람이 싫다고 햇으면 그만해야지."
나는 화가나서 신경질적으로 말했고 후성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운영이는 받아주던데 재훈이는 아직도 이러는구나. 나는 좋아서 그러는건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거 아냐?"
"간호사한테 말하기전에 다시는 그러지마라. 여기서도 그러면 오픈사람들도 너를 싫어할거야."
후성이가 침울해졌다. 운영이가 자신의 투정을 받아주었는데 이곳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는데에서 서글픔을 느끼는것 같았다. 그리고 재훈이가 원망스러운듯 했다. 까짓 껴안는것이 어떻다고 저렇게 질색을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원래 사람은 다를사람을 이해하기 힘든 동물이다. 후성이의 표정이 실망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나도 재훈이 너따위는 필요없어. 맨날 나를 무시하고 간호사한테 껴안았다고 이르고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거야?"
"그래 네가 잘못한거야. 네가 잘못하지않은거라면 왜 남자병동의 사람들이 거의다 너를 싫어햇겠냐? 나도 할만큼 했어. 그러지 말라고 경고도 수없이 했고 유화와 운영이에게도 너와 친구가 되어주라고 이야기 했었어. 이제는 참을수 없어. 네가 한번이라도 더 나를 껴안는다면 간호사한테 또 말할거야. 네가 다시 클로즈에 가게된다고 해도 말야."
"꺼져. 내눈앞에서 사라져. 이제 재훈이 따위는 생각하지 않을거야. 나를 이해해줄수 있는사람이 없는줄알아? 여기도 운영이처럼 나를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이 있을거야."
후성이가 씩씩 거리며 짐을 가지고 병실로 들어갔다. 결국 이렇게 될것이었나. 내가 퇴원한후에 후성이가 들어오기를 바랬는데 유화나 수련이 누나같이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후성이가 먼저 오다니 난감했다. 앞으로 병원생활이 힘들어지겠구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재훈아 젊은놈이 왠 한숨이야? 후성이가 온것 때문에 그러냐? 후성이하고 잘지내기 힘든것은 잘안다. 근데 너는 싫어하는것에서 그치지 않고 운영이하고 유화에게 후성이와 친구가 되어주라고 했지? 그걸 볼때 너는 후성이를 싫어하는것이지 지금처럼 증오하는것이 아니야. 너의 선택에 맡기겠지만 나는 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성호형님이 나의 이중성에 대해 말했다. 그랬다. 정작 나는 후성이와 화수를 싫어하면서도 주변사람들에게는 그들과 잘지내달라고 말했다. 이런 이중성이 어디있는가? 나도 내마음을 잘모르겠다. 감정적으로는 싫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후성이와 화수가 다치고 비명을 질렀다고 들은 날의 기억이 없다. 나는 분명히 자고있었고 꿈에서 그들이 맞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때린사람이 고개를 돌리는데 얼굴이 희미했다.
그걸 뒤로하고 그들의 그런 초라한모습에 대한 희미한 기억때문에 그들을 도와주려고 했던것 같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것일까?
"저도 제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어쨌든 그건 둘째치고 후성이와 화수하고는 이미 감정이 틀어져서 잘지내기 힘들것 같아요. 이런것을 원한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휴 조금 힘들게 생활하게 될것 같아요."
"모두와 잘지낼수는 없는거겠지. 그래도 재훈이 너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그들과 못지낸다고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마. 좁은 공간에서 자주 마주치겠지만 정내키지 않으면 그둘을 무시하고 지내면 되는거잖아."
성호형님의 말이 맞다. 나의 이중성이나 비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면 포기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가뜩이나 병때문에 마음이 복잡한데 후성이나 와수같은애들 한테까지 신경쓸필요는 없을것 같았다.
"마피아아 야쿠자아. 재훈이 너 이자식 너때문에 구석방 갔다왔다. 화수 괴롭히지 마라. 마피아가 가만두지 않을거다. 야쿠자아."
마훈이 형이 클로즈에서 나와 나에게 말했다. 제길 맞은것은 난데 왜 내탓이라고 하는거지? 마훈이형 후성이 화수 이렇게 세명이 지금나의 걸림돌이 되고있다. 이윽고 마훈이형의 목소리를 듣더니 화수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훈이 오빠 많이 고생하셨어요. 재훈이 새끼때문에 우리둘다 이게 뭐에요. 구석방에서 우리만 며칠씩 썩다니. 다음에는 보는사람이 없을때 재훈이를 때려줘요."
"그래 화수야. 그자식 건방지긴 하더라. 한대 맞더니 표독스런눈으로 나를 째려보는데 기분이 엿같더라. 그자식이 너를 괴롭히면 제라고 말해. 마피아가 가만 있지 않을테니까."
"오빠 말대로 애쿠자하고 마피아가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자식이 제 주제도 모르고 저한테 덤빈다니까요. 그리고 저자식때문에 '비'하고 사이가 틀어졌어요. 병동에 관계자외에는 면담이 안된다고 하지만 재훈이 저새끼가 방해만 안했어도 어떻게든 '비'와 연락할수 있었을거에요. 다 재훈이 때문이에요. 참 그리고 후성이도 재훈이하고 사이가 안좋던데 우리 후성이도 한번 보죠. 둘은 말을 나누더니 후성이가 있는 병실로 같이 들어갔다. 후성이는 둘을 보자 한명씩 껴안았다. 마훈이형과 화수는 곧 얼굴을 찡그렸지만 표정을 풀고 후성이와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악의축 세명이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목표가 나라는 것을 알고있기에 기분이 착잡해졌다. 누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늘어나는것을 반겨할까?
나는 오픈의 생활이 많이 꼬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성이의 목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왔다.
"화수야 너는 내가 껴안는것 참을만해? 마훈이형도 그렇고 기쁘다. 난 혼자서 지내게 될줄 알았는데 너하고 마훈이형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래 우리 재훈이 저자식 언젠가.. 한번 제대로 손봐주자. 자식이 우리한테 뭔가 앙심을 품고 괴롭히는것 같아. 그걸 우리도 참고있을수 만은 없잖아."
누가 누구를 괴롭히고 있다는 거지? 나는 다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을뿐이고 시비는 화수와 후성이가 먼저 걸었다. 마훈이형은 화수말만 믿고 나를 때린것이고 그렇게 보면 피해자는 난데 셋이 그렇게 말하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짜증나는 사람들 셋이 모였다. 오늘은 환우 회의를 하는날이다. 오픈의 사람들이 모두모여서 강당을 갔고 소파들을 원모양으로 배치하고 탁구대를 치웠다. 사람들이 원모양으로 앉았고 간호사가 커피를 돌렸다.
"이번주에는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환우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바랍니다." 회장인 석원이형이 주제를 잡았다.
"종교가 어떤것이든 간에 다른종교와의 공존이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병실에는 크게 나누면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고 불교가 있습니다.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태도는 미래를 위해서 옳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믿는것에는 그서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법이고 누구나그것이 무시당할때 분노를 느낍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했으면 합니다. 저는 개신교였지만 여기오면서 불교에매력을 느꼈습니다. 저는 다른사람들이 불교를 인정했으면 합니다."
"재훈이 말에 동의합니다. 저는 여기계신 수녀님과 같이 천주교입니다. 원래는 무신론자였지만 종교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천주교와 개신교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주교를 믿게된 지금 개신교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합니다. 개신교 사람들은 천주교 사람들이 성모마리아상에 성호를 긋는것을 또다른 우상숭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낳아주신 성모마리아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하는것이지 성모마리아상을 신으로 모시겠다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자리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오해하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영아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수녀로 지내오면서 그점에 대해서 우려를 했습니다. 개신교 뿐만 아니라 천주교도 이슬람교나 불교 사람들을 무시하는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감만을 쌓을뿐입니다. 종교란 강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진실로 기도하지 않는사람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지금은 종교의 포용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어떤 누구라도 저의 기도를 바란다면 그분을 위해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개신교 입니다. 개신교 사람들이 다른 종교를 무시한다고 말을 많이합니다. 하지만 그런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저역시 그런 몇몇의 사람들때문에 개신교전체가 매도되는 상황을 바라지 않습니다. 예수믿으면 천국 그렇지 않으면 지옥이라고 말합니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이런 흑백사고는 위험합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흑백논리는 반감만을 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있는 환우들에게는 의지할수 있는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지할수 있는 분이 필요합니다. 기독교를 믿고 싶은 분은 저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역시 천천히 다가가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환우들끼리 종교때문에 사이가 나빠진다면 운명공동체로서의 친목이 깨지는 것입니다. 저는 천주교를 믿습니다. 세례명은 그레고리오 이고 모태신앙으로 지금까지 믿음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힘든것은 성에관한 이야기입니다. 세례를 받는 의미중의 하나가 순결을 지키라는 것인데 저는 수도없이 어겻습니다. 그리고 자위또한 죄라는 성경말씀에 얼마나 참회했는지 모릅니다. 종교가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만 의지할 하나님이 있다는 것에 얼마나 위안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여기에 무신론자분들도 많을것입니다. 천천히 진지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나중에라도 종교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다른사람들의 경우는 정확히 모르지만 대부분의 종교를 가진분들이 여기서도 꿋꿋이 버티는것 같습니다.오늘의 주제는 공존과 공유입니다. 다른환우분들도 종교때문에 사이가 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절대 강요하지 맙시다. 그럼 오늘의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석원이형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토의 내용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천주교에 대해서 특히 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석원이형의 말을 듣자 맘마미아의 한대사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가톨릭은 나를 구속한다는 말이었다. 종교란 계명이 있기때문에 사람들을 구속하는 면이 있다. 계율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네번정도 가보았던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회가 그런경우였다. 그곳의 신자들은 술,담배,커피,녹차가 금지되어 있었다. 오늘 회의를 통해서 나의 흔들리는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불교가 나의 종교이다. 아직 절에 다녀본적이 없지만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이 매력적이었다.
정신병원에서의 고행이 깨달음으로 이어진다면 의미있는 시간이 될수도 있다. 지난번에 수녀님이 말씀하신말이 아직도 떠올랐다. 그말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내 종교관을 뒤바꾸어 놓았다. 고행을 시련이 아닌 기회롤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떄 성호형님이 내 어깨를 쳤다.
"종교에 대한 고민이 많이 풀렸어? 나도 천주교의 나이롱 신자야. 한달에 한번정도 가고 그것도 대예배만 드렸었다. 여기와서도 달라진것은 없어. 나는 종교에 빠지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너무 몰입하면 다른종교를 가진사람을 이해하지 못해. 자신의 종교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게 되는거지. 그런 오류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해. 내가 예전에 개신교 신자하고 잠시 사귄적이 있는데 결국 나중에 종교문제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어. 내가 개신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더이상 만날수 없다고 한거야. 물론 나에게는 받아 드릴수 없는 사항이었지. 그때 이후로 이런 종교관을 갖고있다."
"종교란 참 쉽지 않은것 같아요. 과연 신의 뜻이란 무엇일까요? 왜 종교는 전쟁의 불씨가 될까요? 해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겠지만 말이에요. 저는 과격한 종교행위를 증오하고 있어요.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진 기독교보다 덜 투쟁적인 불교가 마음에 와닿아요. 저 요즘 불교방송 보는것 아시죠?"
성호형님과 나는 허심탄회하게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교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서로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풀수있었다. 그때 우리옆으로 회의실에 있던 화수가 다가왔다.
"하하 잘됐다. 재훈이 이새끼 지옥에 가겠구나.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까 말야.불교를 믿으면 지옥에 가는것이 당연하지. 정말 잘됐다. 너같은 새끼는 지옥에가서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야되. 남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을 말야. 후성이와 마훈이 오빠는 친구가 됐어. 더이상 재훈이 너한테 밀릴 이유가 없어." 후성이가 나한테 다가왔다. "재훈이 그렇게 우리를 무시하니까 좋았어? 누구는 귀신이 씌이고 싶어서 씌였는줄 알아? 자기만 생각하는 너는 죽어도 모를거다. 하지만 그런나를 운영이와 화수 그리고 마훈이형은 이해해줬어.앞으로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네가 깝쭉대면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퉷!"
"후성이가 많이 컸구나. 하지만 네가 껴안지 않았으면 나도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을거야.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너한테는 그럴말을 할 자격이 없어. 나는 무시한게 아니라 다른사람들의 기분을 생각지 않는 너를 싫어한거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빡!"
"마피아아 또 후성이 괴롭히냐? 그때 맞은걸로는 부족한가 보지? 어때 꼬우면 덤벼보시지? 또 구석방에 가는한이 있어도 너는 흠씬 두드려줄테니까 덤벼봐."
"퍽!!"
"나라고 맞고만 있을줄 알아?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야. 성호형님 놔요.노라구요."
"재훈아 너까지 그러면 어떡하냐? 차라리 저런애들 상대하지 마라. 어차피 화해하기는 글렀으니까 부딪히지 않는것이 최선이야. 가자."
성호형님이 내소능ㄹ 잡고 병실로 끌고갔다. 밖에서는 화수와 후성이 그리고 마훈이형이 알수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마피아아 야쿠자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들은 병이 아직도 심각한데 어떻게 오픈으로 오게 되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이미 오픈으로 온이상 어쩔수 없겠지만 좁은 공간이라 할수없이 자주 마주칠수 밖에 없었다. 성호형님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재훈아 마음 단단히 먹어라. 쟤네들이 너를 괴롭혀도 병실의 사람들이 다 너를 도와줄거야. 넌 여기에 친구도 많잖아. 쟤들은 신경쓰지 말고 우리는 우리할것을 하자. 재훈아 오랜만에 다이어트를 해볼까? 어떠냐?"
"그래요 성호형님. 고민만해서는 아무일도 못하죠. 저녁에 먹을 칼로리바란스도 넉넉하고 다이어트 다시 시작해요. PT 체조 하러가죠."
"그래 그러자 재훈아. 석원이도 배가 나와서 운동해야 되니까 우리 같이하자."
성호형님의 말에 석원이형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셋은 강당으로 갔다. 악의축 세명은 병실로 돌아가 있었다. "98,99,100." "재훈이 이자식 마지막 구호 붙이면 안되잖아. 이번에는 200개." "198.199..."
"좋아 한세트 끝났다. 우리 잠시 쉬었다가 다시하자. 마누라가 배하고 사과 가져왔으니까 같이 먹자."
나는 손이 번개보다 빠르다고 느꼈다. 우리 셋은 허겁지겁 정신없이 과일을 잔뜩 먹었다.
"재훈이 우리 마누라가 너 좋아하더라. 과일 맛있게 먹는다고. 나보고도 그렇게 맛있게 먹으라고 규박하더라. 하하. 지원이하고 상석이도 불러라. 같이 먹어야 더 맛있잖아."
"예 성호형님. 지원아 상석아 과일먹게 강당으로 와라." 곧 지원이와 상석이가 왔지만 과일은 벌써 반이상이 사라진 후였다. 나의 손은 경쟁자가 생기자 더더욱 빨라졌다. 지원이와 상석이도 이를 악물고 손을 놀렸다. 그렇게 오분정도가 흘렀다. 과일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거 식충이들만 모였나. 말도 안하면서 꾸역꾸역 먹기만 하냐? 나참 과일을 이렇게 미친듯이 좋아하는 애들은 첨보네. 할수없지, 겨우 이게 내몫이라면 먹어야지."
석원이형이 마지막 남은 청포도 한알을 입으로 가져갔다. 언제나 마지막이 가장 맛있는 법이다. 석원이형의 표정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참 상석아 영아도 불러오지 그랬냐?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너 영아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한거 아니야? 그렇게 안봤는데 상석이 실망이 크다."
'아 깜빡했어요. 벌써 비났으니까 그런말 하지 마요. 그러다가 영아가 들으면 어떡해요? 다음에 이런자리가 생기면 그때는 꼬박고박 부를테니까요. 진짜 내가 왜 영아생각을 못했지?"
"뭘 내생각을 못했다는거야? 상석아. 어머 과일 다 드셨네. 저만 빼놓고 먹으면 맛있어요? 누구는 이렇게 병원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누구는 화수한테 말걸다가 데이고 이거 너무 불공평한것 아니에요?"
영아의 목소리가 착잡했다. 화수와 무슨일이 있었던것 같았다.
"글쎄 화수하고 이야기 하다가 오늘 회의였던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 아 저는 가톨릭이고 화수는 개신교이거든요. 화수가 사이비우상은 섬기지 말고 오닉 하나님에게만 기도 하라는거에요. 내가 그렇게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더라구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말을해도 막무가내에요. 종교를 바꾸지 않으면 더이상 이야기 하지 않겠대요. 저도 두손 두발 다들었어요."
"영아가 마음고생이 심하구나. 될수있으면 화수하고 상대하지마라. 너만 피곤해질것 같아. 지난번에 잘지내보라고 한것은 그냥 이상론일뿐인것 같아. 자기 챙기기도 바쁜곳인데 남까지 챙기라고 한 내생각이 잘못됐어. 미안해. 영아 하고싶은대로 해."
"내가 재훈이 말만 듣고 화수하고 잘지내보려고 하는건 아니야. 혼자만 다른 환우들하고 말도 안하고 소외된 모습을 더이상 보고싶지 않아서 였어. 안타까워서 말을 걸고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 이대로 끝내기엔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까워서 다시 한번 시도해볼거야. 후성이와 마훈이 오빠외에는 마음을 열지 않는것 같아. 그들이면 화수에게 충분하려나? 아무튼 화수와 친해지기는 힘들기는 힘들다."
영아가 질린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우리는 담소를 나누었다.그러다 내눈에 처음보는 사람이 들어왔다. 오픈 1인실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던 사람이었다. 형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더이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 형뻘되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재훈이라고 해요. 같은환우인데 통성명을 하고싶어서 왔어요."
"나보다 많이 어린것 같은데 말놔도 돼지? 근데 너 말투가 너무 웃긴다. 통성명 할수 있을까요? 라니 하하하,.내이름은 임석이야. 나는 너 몇번 봤는데 너는 나를 못봤나보네. 뭐 물어볼것이 있어서 왔겠지? 뭐가 궁금해서 말을 걸었어?"
"별건 아니구요. 그냥 같은 환우인데 한번도 말도 안해본것 같아서 말이라도 해보려구요. 그리고 왜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하루종일 컴퓨터만 하는것도 궁금해서요. 여기는 어떤 병때문에 들어왔는지 물어봐도 되요?"
"너 너무 직설적인거 아냐?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않는건 나는 여기에 오래있을게 아니거든. 병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되. 하루에 약한알만 먹거든."
"병도 없는데 여기는 왜 왔어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데요."
"사실 나는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야. 그런데 요새 군대문제가 겹쳤는데 나는 그 이년동안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거든. 군대 갔다오면 시간도 시간이고 머리가 굳어서 한의학과에 못들어갈것 같아서 군대 빼려고 여기 들어왔어. 내가 이런얘기까지 하는게 맞나 모르겠다. 아마 너는 나를 안좋게 생각하게 될것 같네.의사선생님도 나한테 정상이라고 하셨어. 그럼 별다른 용건없으면 게임 계속한다."
임석형은 고개를 돌리고 계속해서 컴퓨터 오락을 했다. 나는 말을 마치고 복도로 돌아왔다. 임석형에 대해서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나에게 몰려들었다. 나는 임석형한테 들은이야기를 해주었다. 다들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군대빼기 위해서 여기로 오다니. 우리는 알수없는 배신감 같은것을 느꼈다.
하지만 임석형이 우리에게 잘못한것이 없어서 안좋게 관계하고 싶은 생각은 안들었다. 잠시후 여자병실에서 수녀님이 나왔고 옆에있던 성호형님이 수녀님에게 갔다.
"수녀님 제가 여기서 빨리 나갈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 클로즈에 있을때는 안그랬는데 오픈으로 오니까 견디기 힘들어서 탈출이라도 하고 싶어요. 다른사람들은 잘견디는것 같은데 저는 많이 힘드네요."
"성호씨를 위해서 기도해 드릴게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기 어려움에 방황하는 어린양이 있습니다. 아직 더한 시련이 남았는데 마음이 꺽이려고 합니다. 성호씨를 굽어살피사 긍휼의 마음으로 그의 고통을 덜어주시옵소서. 그에게 평안을 찾아주시길 간절히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수녀님이 성호형님의 손을 꽉잡으셨다. 성호형님은 눈을 감고 수녀님의 기도를 들었다. 언제나 꿋꿋하던 성호형님이 흔들리다니. 클로즈에 있을땐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성호형님도 나와같은 고민을 하고 그것에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오픈이 클로즈에 비해서 견디기 쉬운데 왜 이렇게 힘들어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성호형님과 영아에게 두사람의 주치의 선생님들이 두사람에게 다가왔다.
"성호씨 내일부터 자유산책이 가능해집니다. 오래 지켜본 결과 성호씨의 병세가 자유산책을 할수있을만큼 많이 호전되었다고 사료되어서 입니다.그리고 여기 생활중에 다른불편함은 없으십니까?"
"예 답답한점이 조금 힘듭니다. 그리고 다음주 일요일에 제 딸생일인데 외박갔다올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때가서 결정이 될겁니다. 그럼 앞으로 산책잘하시고 어려운점 있으시면 주저말고 말씀해주세요. 시정할것이 있으면 시정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산책은 어디까지 가능한가요? 병원을 벗어나도 되나요?" "ㅊ원칙적으로는 안되지만 눈치껏 나갔다 오세요. 다른 환자들도 그래왔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멀리가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저녁6시 이전에 병실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것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그럼 잘생활하세요." 말을 마치고 주치의 선생님이 병실 밖으로 나가셨다. 성호형님과 영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에 반해서 내얼굴은 어두워졌다. 내가 먼저 오픈으로 왔는데 나는 안되고 두사람은 가능하다니 왠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렇지만 나는 겉으로는 두사람의 자유산책을 축하해 주엇다.
"축하해요. 석원이형하고 셋이서 산책 다녀오시면 되겠네요. 아 정말 부럽다. 나도 나갈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언제쯤에나 자유산책이 가능해 지려나? 나중에 저도 자유산책이 풀리면 그때는 같이 다녀요. 성호형님과 영아는 내일부터 병원생활이 훨씬 견디기 쉬워지겠네요."
"고맙다 재훈아. 영아야 그러면 내일부터 산책 같이 다니자. 재훈이도 산책이 풀렸으면 정말 좋을텐데 아쉽긴 하네. 그래도 곧 풀리게 될테니까 마음 편안히 먹고 있어. 재훈아 오늘 저녁은 칼로리 바란스로 때우는 거다."
"예 성호형님. 런닝머신 부터 뛰고나서 먹죠. 그런데 저녁을 칼로리 바란스로 때우는거 너무 힘들지 않나요? 배고파서 밤에 잠이 안와서 죽겠어요. 성호형님은 견딜만 하세요?"
"원래 모든일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야. 그정도도 감수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이어트를 성공하겠어? 그래도 우리 벌써 3KG 씩은 뺐으니까 어느정도는 성공한거야. 이 상황에서 저녁을 먹으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이되. 그걸 원하는건 아니잖아. 자 힘내고 칼로리 바란스 먹자." 성호형님의 말이 구구절절이 맞았지만 그에 따르는 고통이 심했다. 수도승같은 생할을 하는데다가 거기에 먹는 즐거움까지 사라지니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이어트를 끝낼수는 없는법이다. 그래도 삶의 낙중 하나가 사라지는것이 안타까웠다. 그런생각을 하는 내눈에 석원이형이 다가오는것이 보였다.
"재훈아 여기 담배 세가치 가져가라. 간호사 눈치보면서 화장실에서 짱박혀서 잘펴라. 그리고 영아야 성호야 내일부터 산책 셋이 같이 다니자. 하지만 오늘은 나혼자 산책을 즐겨야겠군."
나는 내손에 쥐어진 담배 세가치를 보았다. 드디어 담배를 피게 되는구나. 만성꼴초인 내가 병원에 와서 한달 반이상이나 못피게 되어서 정말 죽을맛이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는듯 했다.
"석원이형 정말 고마워요. 이 은혜는 성호형님과 탁구치면 형을 응원할게요." "재훈아 실망이다. 그래도 클로즈에서 부터의 정이 있는데 석원이를 응원하시겠다? 나도 내일부터 재훈이 담배 챙겨주려고 했는데 이거 안되겠는걸."
아이 성호형님도 그런거 가지고 삐지시면 어떻해요. 음 할수없네요. 이기는편 우리편."
"간사한놈 하긴 그러니까 재훈이지. 아마 이병원에 너같이 간사한놈은 없을거다. 하하." "헤헤 먹고 살려면 어쩔수 없는거 잖아요. 생명과 같은 담배가 걸렸는데 섣불리 정할수는 없는거잖아요." "너도 알겠지만 자고로 성호형을 믿으면 자다가도 디스가 생긴다고 하잖아. 나만 믿고 석원이는 그냥 버려도 되."
"재훈이 너. 병원의 숨겨진 보스인 내눈에 나면 병실생활에 상당한 에로사항이 꽃필거야." 나는 두사람의 빈틈을 안주는 협박에 몸이 움츠러 들었다.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걸까?
"나는 두형 모두 포기할수 없어요.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저 담배가 급해서 먼저 가볼게요." 나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는 환풍기가 없어서 담배냄새가 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래도 더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변기에 앉아서 담배를 물었다. '아 꼬시다. 이맛을 한달넘게 못보고 어떻게 살았을까? 이제야 좀 살것 같네. 이제 성호형님과 석원이형의 루트가 뚫렷으니 맘대로 필수 있겠구나. 나머지는 산책갔을때 마저 피워야겠다.
나는 더이상 담배냄새가 날까봐 한가치만 태우고 밖으로 나왔다.음 부모님에게 향수좀 사달라고 말해야겠다. 담배냄새가 배면 아무래도 꼬리가 잡힐테니까 말이다. 담배를 다 피우고 화장실에서 나오던 나는 후성이와 마주쳤다.
"역시 재훈이였군. 지켜보길 잘했네. 다른사람은 다되도 너는 여기서 담배를 피울수 없을거야. 간호사님."
"후성씨 왜 부르셨어요?"
"여기 병실안은 금연인데 담배핀 사람이 있어서 말씀드려려고요. 이쪽으로 와보세요."
제길 저놈의 후성이. 저 자식때문에 내 계획이 틀어지게 되었다.
"음 담배냄새가 나네요. 이거 혹시 재훈씨가 피운거에요? 여기서 담배피면 안되는거 모르세요? 이번은 처음이니까 봐주지만 또 그러면 주치의 선생님께 말하겠어요."
간호사가 나한테 경고를 하고는 다른 간호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꼴좋다 재훈이 이자식. 내가 두고보자고 했지.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시작에 불과하니까. 화수하고 마훈이형도 단단히 벼르고 있으니까 몸사리고 지내는 것이 좋을거다."
"병신들.끼리끼리 모이는구나. 겨우 이런게 복수냐? 치졸하기는.쪼잔한 새끼 같으니. 지 잘못은 아직도 생각도 안하고 원망만 하지? 네가 옳으면 다른사람들이 왜 너를 싫어하냐? 그래 마훈이형하고 화수는 네 포옹을 받아주대? 응 호모야. 너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용건 끝났으면 이제 병실로 꺼져라."
"퉷 새끼가 말은 잘하네. 아무튼 너는 좀더 조심하는것이 좋을거다."
후성이가 고개를 돌리고 남자병실로 돌아갔다. 후성이와는 이제 다시는 화해할수가 없다. 내가 몇번을 참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인내의 결과가 이런것이다. 화수와 마훈이형이 나를 벼르고 있다고? 때린것도 그들이고 그들에게 맞은것은 나다. 헛소리만 지껄이는 둘이지만 그렇기에 떠 껄끄러워졌다. 앞으로 두명의 행동을 예의 주시해야겠다. 그중에서도 후성이가 가장 껄끄럽다. 클로즈에서부터 오랜시절을 같은병실에서 겪었고 그때는 나약하기만 했던 후성이가 운영이와 친구가 된후에는 적어도 나약하지는 않게 된것이다. 그래서 상대하기 힘들어졌다. 사람의 성격이 바뀌어서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나한테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뀐것이다. 내가 간호사에게 경고를 받은것을 보고있던 성호형님이 다가왔다.
"재훈아 후성이 때문에 담배피운거 걸린거냐? 어차피 후성이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걸릴일이었으니 네가 참아라. 앞으로 정기산책 나갈때만 몇가치 더펴라. 물론 자유산책이 된다면야 같이 얼마든지 펴도 되지만 아직 그게 아니니까 참는수밖에 없다. 후성이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했지?"
"기분이 안상하면 그게 더 이상한거죠. 아무래도 후성이가 많이 변한것 같아요. 예전에는 감정이 상하면 혼자서 삭혔는데 이제는 이빨로 깨무네요. 후성이가 한번만 더 이렇게 신경쓰이게 하면 진짜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재훈아 다시 생각해봐라. 여기 생활할때 친구만 있어도 힘든데 적까지 만들려고 하냐?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네가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으면 금방 사그라들거다. 그런데도 계속 서로 감정싸움 할거냐? 나는 네가 그셋을 무시하고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밖이었으면 저도 아마 그랬을거에요. 하지만 이 좁은곳에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마주치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계속 참기만 하다가는 울화통이 터져서 죽을것 같아요."
성호형님과 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적이 된것일까? 무엇인가 변하고 있다. 나는 후성이와 화수 그리고 마훈이형에게 당햇던 기억이 스쳐갔다. 그렇다. 나는 억울하다.
"내 생각을 한번더 생각해봐라. 참 그리고 오늘 드디어 수련이가 온다더라. 정말 오래걸렸다. 재훈이는 수련이 보고싶지 않아? 유화가 오지않아서 아쉽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오니까 기분이 새롭지 않냐? 나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떨린다. 우리 수련이 기다리자. 그리고 그 셋에 대한일은 접어둬라. 고민하거나 말로해서 해결될일이 아닌것 같다."
나하고 성호형님은 텔레비전을 말없이 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클로즈에서 누군가가 짐을 싸들고 강당으로 왔다. 수련이 누나였다.
"어머 재훈이 하고 성호오빠네. 그동안 잘지내고 있었지? 재훈이는 나한테 스매쉬맛을 또보게 생겼다. 기쁘니? 금방 오픈으로 간다더니 이렇게 오래걸릴줄은 몰랐다. 그런 자리로 가서 짐놓고 다시올테니 기다려."
"참 수련이 누나. 유화는 언제오는 줄 알아? 유화는 잘지내고 있어? 그동안 재활활동 참여를 안해서 유화를 못봤어. 별다른일은 없겠지?"
"재훈이 너 유화오면 뺨맞을 준비해라. 유화지금 그리스.로마신화 책으로 너 때리려고 연습중이야. 모서리로 찍히면 위험하니까 피하는 연습해라."
"그게 무슨 뒤통수로 삼만리 걸어가는 소리야. 나만큼 유화를 걱정하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그래. 아 유화가 오면 땅에 무릎을 굽히고 빌어야 겠구나."
나는 유화가 나를 때리려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히죽 웃었다. 아아 나는 새디스트 기질까지 있는것일까? 수련이 누나는 그런 나의모습을 보고 싱긋 웃더니 병실로 갔다. 오픈에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알수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수련이 누나가 왓으니 이제 곧 유화도 오게될것 같았다. 여기서 영아를 어찌하지 못해서 외로웠는데 유화가 오면 한번 꽉 안아주어야 겠다.
"마피아아 야쿠자아. 역시 재훈이 자식이 여기있군. 화수야 일로와라. 저녀석 한번 혼내주자."
"좋아요 마훈이 오빠. 저는 재훈이 새끼만 보면 왜 이렇게 때리고 싶은건지 모르겠어요." 마훈이형과 화수가 나에게 다가왔다. 난데없이 화수가 내 뺨을 때렸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년이 미쳤나?"
나는 발로 화수의 배를 찼다. 그때 간호사가 그런 나의 모습을 봤다.
"재훈씨 왜 그래요? 재훈씨가 여자를 때리다니 도대체 무슨일이에요?"
"그게 아니라 화수가 난데없이 내 뺨을 먼저 때렸어요."
"엉엉 언제 내가 너를 때렸다고 그래? 나는 맞았을뿐이라고. "
"재훈씨 아무리 그래도 폭력은 안되요. 재훈씨 이번에 담배도 피시고 화수도 때리고 요즘 왜 그럽니까? 주치의 선생님께 말해야겠어요."
간호사가 나가고 화수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마훈이형이 내배를 발로찼다. "화수 괴롭히지 마라. 마피아아 야쿠자아" 마훈이형의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정말 미쳤구나. 나는 마훈이형으 발을 피했다. 마훈이형이 정신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간호사실로 냅다 뛰었다.
"마훈이형이 이상해요. 눈을 뒤집고 마피아하고 야쿠자를 찾아요."
"또 그러는구나. 알았다. 한번 상태가 어떤지 봐야겠구나."
간호사가 마훈이형이 있는 곳으로 갔고 마훈이형이 쓰러져 있었다. 간호사는 까뒤집힌 눈을 보고 주사를 놓았다. 그러자 마훈이형이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병실로 돌아갔다. 그떄 성호형님과 수녀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재훈아 요새 고민이 많은것 같구나. 병실에서 화수와 후성이 그리고 마훈이와 사이가 많이 안좋은것 같구나. 이런때일수록 마음 단단히 먹어라. 여러번 말하지만 굳이 셋과 잘지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셋은 워낙 제정신이 아니니 말이다. 내가 할수있는일은 너를 위해 기도하는것이니 기도하마. 그리고 할수만 있다면 그들을 용서해라. 병이 심해서 그러는것일 거니까."
수녀님이 내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다.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될수 있을까? 그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기도를 받으면서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는것을 느꼈다. 앞으로 피할수 없다면 시비거리가 될만한 것을 줄여야겠다. 그렇지만 나를 보기만 해도 시비를 거니까 그것도 힘들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운일이다.
"수녀님 저한테 기도하는것 보다 그들을 찾아가서 기도해주세요. 기도가 필요한것은 제가 아니라 그셋이니까요."
"아니야. 재훈이 너에게도 기도가 필요해. 나도 수녀님의 기도를 받으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다음에도 마음이 복잡해지면 수녀님께 말해서 고민을 풀어라."
'예 성호형님. 다른사람도 아니고 형님말이라면 들어야죠. 피곤하네요. 저는 병실에 가서 눈좀 붙일게요. 어제 잠을 뒤척여서 잠을 잘못잤어요."
나는 병실로 돌아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 졸려서 누웠지만 막상 누우니까 잠이오지 않았다. 문득 이상황에 패닉의 '달팽이'가 떠올랐다. '집에 오는길은 때론 너무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외로움이 절절히 느껴지는 곡이다. 이곡을 들으며 혼자 병실에 누워있는 내가 초라해졌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한참후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비디오를 2배속으로 하고 화면을 보고있었다. 상영시간은 2시간인데 1시간 30분을 넘고있었다. 나머지 시간도 빠르게 지나가다가 화면이 멈추었다. 깨어보니 영화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영화속에서 나는 후성이와 화수 그리고 마훈이형한테 맞고 있었다. 한참을 맞았는데 비디오 끝에서는 내가 웃고있었다. 소름끼치게 날카로운 미소였다. "헉헉 개꿈이구나. 꿈속에서 까지 맞아야 하나. 기분이 나쁘네. 꿈은 반대라니까 좋게 생각해야지."
깨어나서 창문을 보니 주위가 어둑어둑 해져 있었다. 남자병실 밖에서 수련이 누나가 손짓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수련이 누나를 보았다.
"아우 머리가 띵하네. 수련이 누나 무슨일이야?"
"그거 알아? 유화가 곧 온다더라. 재활활동 시간에 봤는데 담당의사선생님이 이제 곧 오픈으로 갈거라고 하셨대. 재훈이는 좋겟다. 근대 한백대정도는 맞을걸 각오해야 될거야. 요새는 편지도 안쓴다면서?"
"그건 유화도 마찬가지에요. 유화도 편지 안써요. 그나저나 곧 온다는데 누나도 정확한 날짜는 모르죠?" "너도 알잖아 여기에 확실한것은 없다는걸 말야. 그리고 오픈의 사람들이 빠져야 오지. 너 화수하고 아직도 사이가 안좋다면서? 아니 사람들이 요즘에 더심하게 안좋다고 그러더라구.영아가 화수한테 물어보니까 재훈이하고는 도저히 화해가 안된다고 했다더라. 어휴 어쩌다가 미친년하고 사이가 틀어졌냐? 네가 오지랖이 넓을때부터 알아봤다."
"화수 그년이 먼저 시비를 걸잖아요. 요새는 후성이와 마훈이형을 자극해서 절 괴롭힌다니까요. 그리고 저도 특별히 화해할생각 없어요."
"그건 그렇고 성호오빠하고 영아는 자유산책이라던데 자유산책이 가능해지려면 어떡게 해야하는지 알고있어? 여기온지 네가 제일 오래됐으니 알것 같아"
"일단 주치의 선생님한테 말해보세요. 절대 조급해하지 마시구요. 자유산책도 자유산책이지만 외박이 됐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런말이 없네요."
수련이 누나는 오픈으로 오니까 좋아요?"
"다른건 다좋은데 여기는 사람들이 클로즈에 비해서 개인플레이 하는것 같아. 다른사람들은 별로 신경안쓴다고 할까? 매일 같이생활하는 대도 서로서로 그렇게 친한것 같지않아. 그걸 뺀다면 여기가 클로즈보다 백배 낫지. 클로즈에서 처럼 간호사들이 강압적으로 대하는것도 아니라서 좋아."
"수련이 누나 예전에 알던 사람들중에 여기 오픈에 있는사람 있어요? 수련이 누나가 클로즈에서부터 알던사람이요?"
"다들 퇴원했더라. 상당히 씁쓸하더라. 참 여기온후로 내가 먹는약이 반으로 줄어들었어. 병이 나아졌나봐. 너도 약이 줄었어?"
"저는 3분의 1 정도 줄었어요. 처음에는 손아귀에 가득찼는데 이제는 안그래요."
"재훈씨 일어났어요? 내일 MRI 검사가 있어요. 별로 힘든 검사는 아니니까 마음을 편히 가지시고요. 참 좋은소식이 있어요. 재훈씨 이번주말에 1박 2일로 외박이 결정났어요. 외박후에 결과가 좋으면 바로 퇴원하실수도 있어요. 하지만 외박갔다온다고 무조건 퇴원은 아니니 너무 기대하면 실망하실수도 있으니까 이점 알아두세요. 담당선생님이 하나더 물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아직도 몇년간의 기억이 가물가물한가요? 이건 스스로 회복되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는것이라고 하시더라구요. "
"제기억은 문제 없어요. 왜 그런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이야 아무튼 외박이다. 헤헤 좋아라."
여태까지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신것 중에서 가장 기쁜소식이었다. 집은 어떻게 바뀌어져 있을까? 내가 없는동안 변화라도 있었을까? 옆에서 수련이 누나가 부러운 표정을 짓고 나를 보았다.
"재훈이는 좋겠다. 벌써 외박이야기가 나온것으로 봐서 이제 퇴원할때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어쩌면 유화가 오픈으로 오기전에 퇴원할지도 모르겠네. 나는 언제쯤에나 외박이 가능해지려나. 근데 재훈이 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오픈오니까 더 퇴원하고 싶지 않니? 클로즈에서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참았는데 오픈으로 오니까 며칠을 참기도 힘드네. 점점 더 편해지고 견딜만하게 풀어주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어. 편해질수록 더 나가고 싶어."
"성호형님도 그러더라. 그래도 성호형님은 자유산책이 풀렸으니까 담배도 필수있고 커피도 마음대로 마실수 있으니까 잘견딜수 있을거야. 다른사람도 아니고 성호형님인데 그것도 못참겠어? 아마 수련이 누나도 여기 생활이 익숙해지면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을거야."
"무슨이야기 하길래 내이름이 나와? 좀전에 조금 들으니까 재훈이 외박간다고? 좋겠다. 나도 내딸생일에는 외박이 나와야 할텐데.. 안그러면 침기 힘들것 같아. 그리고 마누라한테 예치금 4만원 넣어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담배도 사고 군것질도 하고 운동화도 사야되서 넣어달라고 했어. 재훈이 외박 간사이에 밖에서 치킨이라도 사와야겠다."
"성호형님 이러기에요? 아 나도 자유산책 풀리면 4만원 예치금으로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아 나는 언제쯤에야 그런날이 오려나. 아무튼 외박가면 악의축 삼인조를 며칠이나마 안봐서 다행이네. 차라리 걔네들이 먼저 퇴원했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클로즈에서 화수가 오픈으로 먼저 간것처럼요. 그땐 앓던이가 빠진듯이 기분이 좋았었는데 말예요."
나는 말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직 멀기만 한 이야기였다. 실현되기도 힘든 소원이다. 얼마나 여기에 더있어야 할지 모르지만 세명과 마주칠일이 많이 남았을것이다. 삼인조와 무슨 악연이기에 이렇게 꼬일수가 있을까? 그리고 나에게는 다른환자들과는 다른 특이한 일이 일어난다. 심리검사를 받은것도 나뿐이고 다른 누가 MRI 검사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적이 없었다. 나의 병은 도대체 무엇일까? 다른사람들보다 심각한 것일까? 그래서 이렇게 악연이 쌓이는것일까? 알수 없다. 최근들어 너무 많은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것 같다.
시간이 막바지로 가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텔레비전을 보러가기도 두렵다. 분명히 오늘은 화수가 가요프로그램을 보는날이다. 그리고 케이블로 연예가중계 재방송도 보고 있을것이다. 화수는 텔레비전에서 '비'에 대한 소식 하나라도 건지려고 할것이다. 내가 만약 그떄 화수 근처에 있으면 불벼락을 맞을것이다.
"재훈아 텔레비전 보러가자. '왕의 남자' 한다더라. 나는 그 영화 지금까지 못봤다. 음 화수가 있으면 그냥 나오면 되잖아. 일단은 보러가자."
성호형님과 나 그리고 수련이 누나는 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보니 역시나 화수가 앉아있었고 나는 어쩐지 어질어질했다.
"재훈이 새끼야 여긴 또 왜왔어? '비' 콘서트 소식보고 있는데 산통다깨졌네. 죽어라 이병신새끼야." 화수가 다가와 나를 마구 때렸고 나는 의식이 가물가물 해졌다. 그이후 화수얼굴그러져 보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맞았고 나는 왠일인지 저항을 할수없었다. 화수의 악쓰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이놈이 사람패네. 내가 너같은 놈에게 맞고 가만있을줄 알아? 이 미친놈아 죽어!죽어! 죽어라!"
나는 이소리를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나는 클로즈에서 걷고있었디.
"재훈씨 오픈으로 가시죠. 화수가 정도가 심하게 미쳤으니까 되도록이면 부딪히지 마세요." 나는 오픈으로 와서 껄끄러운 느낌을 떨쳐버리러 세면실로 갔다. 거울을 보니 몸에 할퀸자국이 가득하고 얼마나 맞았는지 멍든 자국이 눈에 띄었다. 세면실에서 나와 방으로 가는데 화수의 모습이 보였다.목에는 졸린자국이 빨갛게 남아있었다. 이광경을 전에도 본것 같았다. 어디서 봤더라? 나는 아무에게도 마주치기 싫어서 병실로 온후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이 들었다. 깨어나보니 내앞에 식사가 놓여져 있었다.
"재훈아 왜 이렇게 잠만자냐? 네 식사는 내가 가지고 왔다. 왜 요즘 왜 그렇게 넋놓고 지내? 뭐 고민이라도 있어?"
"내가 그렇게 잠만 잤어? 지원아 아무튼 고맙다. 아 배고프다."
나는 식사를 거으 광속을 끝냈다. 나는 먼저 반이상 먹었던 지원이보다도 빨리 먹었다. "요새 밤에 후성이가 자꾸 귀신을 찾고 화수가 비명을 질러대는데 너는 그상황에도 잘잔것 같더라. 진짜 엄청난 무신경이다. 다만 놀랄따름이다."
"원래 걔네들은 클로즈에서도 그랬어. 가끔씩 밤에 귀신이 나타나서 자기를 괴롭힌다느니 '비'가 와서 자기가 바람을 피워서 때리고 갔다는등 헛소리를 했어. 처음에는 모두 신경을 곧두세웠는데 그것도 자주 그러니까 다른사람들도 시들어진 반응을 보였어."
이제는 둘이 아무리 소동을 부려도 다른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자는상황이 되었다. "후성이하고 화수는 자면서도 재훈이 네욕을 하더라. 제발 살려주세요 하고 빌기도 하고. 하도 뜬금없는 소리를 해서 사람들도 눈살을 찌뿌리고 있어."
"그렇구나. 나도 더이상 둘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마훈이형까지 끌어들여서 나르 힘들게 하는데 좋은 대처방법이라도 없겠냐?"
"그럴때는 상대하지 않는것이 최곤데 여기서는 맞부딪힐수 밖에 없으니까 그러기 힘들겠지. 네가 져주라고 그러자니 그러면 너를 만만히 볼테니까 음 힘들기만 하고 특별히 좋은방법이 없다. 지금처럼 지내는 수밖애 업ㅅ을것 같다. 미안하다. 참 그리고 너 외박간다면서? 옷입고 준비해야겠다. 아마 곧 너희 부모님이 오실거야."
오늘이 내 외박날이구나. 나는 불현듯 그사실을 깨닫고 옷을 갈아입었다. 집이라.. 그렇게 가고싶었는데 막상 가게되니까 떨림이 사라졌다. 이대로 집에가서 안돌아올수 없을까? 인철이형은 외박 세번을 나갔어도 아직 퇴원하지 못했다. 그걸로 볼떄 외박이 퇴원이란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퇴원에 대한 열망이 점점 강렬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재훈아 너희부모님이 오셨다. 좋겠다 ,외박이라니. 나도 집에 가서 딸을 보고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네."
"에이 그래도 성호형님은 자유산책이 가능하잖아요. 저는 자유산책이 안되서 얼마나 답답한대요. 그리고 이외박도 다른사람들처럼 2박3일이 아니라 1박2일 이잖아요.
갔다 온다음에 바로 퇴원하는것도 아닌것 같은데요."
"재훈아 엄마왔다. 외박수속은 다 맞추었고 아빠가 차가지고 오셨다. 네방에 가면 아마 많이 놀랄거다. 벽지도 새로 갈았고 지저분하던 네방도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너 보고싶다고 난리도 아니셨어. 가서 맛있는거 먹자."
"엄마 왔어요? 성호형님 그럼 저는 외박갔다올게요. 산책하시면서 잘쉬고 계세요.나는 성호형님을 한번 쳐다보고 고개를 들어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산책할때 30분도 안되게 바람을 쐬어서 아쉬었던 나는 마음껏 바깥 공기를들이켰다. 그리고 아버지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불과 두달 남짓밖에 안되었는데 모든것이 낯설었다.
"여기서 15분 거리니까 내려서 걸어갈게요. 갇혀서 지내다 보니까 마음껏 돌아단이고 싶어요." "그러려무나. 먼저 집에가서 기다리고 있으마.' 나는 신림사거리에서 집으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었다.순대촌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순대를 먹고싶었다. 삽겹살에 소주가 몸서리치게 그리웠다.
하지만 가장큰 목적은 담배였다. 디스플러스를 사고 걸으면서 한대 입에 물었다.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새로웠다. 이맛에 담배를 ㅊ피는것이다. 순간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20분정도 걸어서 집으로 오는길은 짧았다. 얼른 퇴원해야 할텐데.. 컴퓨터 오락도 하고싶고 영화도 마음대로 보고 싶었다. 유화도 밖에서 보고 싶어졌다. 집으로 가는길 내내 유화가 눈에 밟혔다. 나가서 이런자리에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걸으면 걸을수록 유화와 같이 걷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그리고 막상 외박을 나왔지만 군대휴가도 아니고 섣불리 친구들을 만나기가 껄끄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동안 어느새 집에 왔다. 한걸음 한걸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할머니 저왔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할머니 많이 보고 싶었어요."
"어이구 우리새끼. 큰고모댁은 지내기 힘들지 않대? 아무리 그곳이 좋아도 집이 최고여. 몇주 더있다가 돌아온다고 하니까 기다리마 아이구 우리손주가 없어서 할미가 많이 심심했단다. 건강해보이니까 다행이야. 할미보러 많이 오고 그래라."
"예 할머니. 저 2층으로 가서 제방을 볼게요. 이따가 저녁식사할때 내려올게요."
나는 쿵쾅거리며 내방으로 갔다. 새하얀 벽지가 발라져 있었고 방청소 역시 깔끔하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형광으로 된 천장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었다. 불을 꺼보자 내 별자리인 쌍둥이 자리가 환하게 보였다.
"엄마 언제 이런걸 다하셨어요. 책상과 의자도 바뀌고 침대도 새로샀어요?"
"그래 이번에 아빠가 다 준비하셨단다. 앞으로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말아라. 이제 남은것은 네가 퇴원하는거란다. 힘들겠지만 이제까지 지내온것처럼 잘지내라. 이번에는 약을 꾸준히 먹으렴. 앞으로 약먹는것도 체크할거야."
"그럴게요. 제가 병원에서 약잘먹는것 보셨잖아요. 비타민이라고 생각하고 잘먹을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오랜만에 집에 오니까 바뀐것도 많고 모든것이 낯설었다. 겨우 두달정도 지냈던 병실이 지금가지 살아온 집보다 가깝게 느껴져서 당황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내방의 컴퓨터를 켰다. 가장 먼저 확인한것은 내가 평소에 심혈을 기울여서 다운받았던 야동이었다. 형이 매일 은어로 야구동영상좀 지우라고 번번히 말했던것이 떠올랐다. 내것은 주로 일본것이었는데 미국거나 유럽의 동영상 보다 더 공감이 갔기 대문이었다. 일단 크기부터 현실적이었고 여자가 부끄러워하는 표정이나 신음소리가 더 재미있어서였다.
부모님이 찾지 못하게 내문서 파일의 HWP 폴더안에 감추어 두었던 것이다. 나는 문을 잠그고 그것을 체크한다음에 잘 안보는것을 정리했다. 퇴원을 하면 새로운 동영상으로 교체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두번째로 확인한것은 '워크래프트 3'였다. 유즈맵 게임인 카오스를 켰고 나는 두어시간 게임을 했다. 병원에 있는 사이에 손이 굳어져서 게임이 잘안되었다. 머리를 쓰니 어지러워 져서 게임을 더할수 있는데도 그만 두었다. 마침 형이 오락을 껐을때 회사를 마치고 내방을 왔다.
"자식 병원생활은 잘하고 있냐? 네놈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두명이 아니다. 그리고 너 나올때쯤 컴퓨터 업그레이드 시켜놓으마. 요새 일이 어찌나 바쁜지 토요일에도 지금까지 일해왔다. 형이 사줄테니까 뭐 먹고 싶은거 있냐?"
밖에서 먹기는 싫고 형표카레가 먹고 싶은걸. 바나나 들어가는 형카레 있잖아."
"너도 내카레의 퀄리티를 인정하는구나. 좋아 카레사가지고 오자. 고기하고 감자, 당근 사러가자. 그리고 야구동영상은 왠만하면 지워라. 야구동영상 많이 보면 여자친구가 안생긴다는 형의 징크스가 있다." "형도 형 컴퓨터에 있는 야구동영상 지우고 말해. 종류별로 다있더구만. 뒤로 호박씨 까면서 야구동영상 문제 꺼내기는."
형과 나는 장을 보러 슈퍼로 갔다. 강황을 추가했다는 버몬드 카레와 소고기를 먼저샀다. 그리고 과일가게로 가서 바나나를 샀다. 그다음에는 야채가게로 가서 감자와 당근을 샀다. "ㄱ됐다 재훈아. 형표카레 재료준비는 다 끝났다. 자식 이게 그렇게 먹고싶었냐?"
형과 나는 장을 보고 집으로 왔다. 형이 요리를 시작했다. 먼저 형이 카레를 물에 게웠다. 나는 옆에서 감자와 당근을 씻고 사각형을 잘랐고 소고기를 적당하게 썰었다. 재료를 따로따로 볶다가 카레를 넣고 다시 볶았다.
오랜만의 집에서의 식사라서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병원밥도 맛있었음에 틀림없지만 집에서 만든음식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사실 먹는것 자체가 즐거움이 아니었다면 병원밥이 맛있을리가 없었을것이다.
"재훈아 아무리 형표카레가 맛있어도 그냥 입에 넣어버리지 말고 좀 씹어먹어라.
'맛있어서 그러는걸 어떡해. 진짜 빨리 퇴원하고 싶다. 그런데 병원에 있을때보다 조금 심심하기는 하네. 많은사람들하고 부대끼다가 가족들하고만 있으니까 그런생각이 들어. 그런면이 있어도 집이 좋긴 좋다."
"그래 재훈아 앞으로 잘생활해서 정신병원에 다시는 들어가지 말아야한다. 너도 그렇게 느끼겠지만 이제 더이상은 안되. 지금까지의 병력도 좋지않잖아."
"엄마 말이 맞다. 이 아빠가 너한테 잘못한것은 맞지만 그걸로 더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 자 더먹어라."
우리는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대화는 주로 내가 어떻게 생활하였는가 였다. 그리고 힘든점은 어떤것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성호형님,유화,수련이 누나, 석원이형,종철이형 이야기를 주로했다. 하지만 후성이와 화수 그리고 마훈이형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괜히 가족들을 걱정시킬 필요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제 집으로만 오면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아질것 같았다. 부모님에 대한 호칭이 다랐다.
가족끼리 있을때는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서 엄마,아빠라는 말을썼다.또 다른사람이 있을때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라고 불러드렸다.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에와서 누웠다. 따뜻한 방의 온기에 잠이 솔솔왔다. 하지만 이대로 잠을 자기에는 외박이 아까웠다. 아무리 피곤해도 병원에서는 하루종일 잠만 자도 된다. 그래서 나는 밤을 새고 병원에서 자기로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로 편의점에 갔다. 병원에서 구할수 없었던 초콜릿을 유화선물로 샀다. 유화가 좋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지었다. 오랜만에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샀다. 끓는물 3분을끝내고 컵라면을 먹으면서 삼각김밥을 같이 먹었다.
"어 이게 누구야. 재훈이 아니냐? 요새 뭐하고 지내길래 이렇게 소식이 뜸하냐? 너 이렇게 자꾸 잠수탈래?"
"성욱이구나. 너 아직 이사안갔냐? 마포로 이사간다고 했었잖아?" "아 그게 1년 미뤄졌다. 내가 돈을 조금 날려서 일정이 늦어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자." 나와 성욱이는 편의점을 나와서 집근처의 '세븐나잇' 호프집에 갔다. 500CC 맥주 두잔과 치킨한마리를 시켰다.
"성욱아 무슨일인데 그러냐?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었냐? 돈은 어디다가 날렸고?"
"이야기 하자면 긴데 한번 들어봐. 내가 동호회에서 알게된 형이 있어. 그형네집이 굉장한 부자야. 술마시며 놀때 통크게 쏜적도 여러번이고 특히 나하고 친하게 지냈거든. 그렇게 지내다가 나한테서 도능ㄹ 빌리기 시작했어. 집을 이사갔는데 돈이 조금 모자라다고 하며 10만원, 20만원씩 빌려가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형은 만날때마다 돈을 빌려갔어. 그리고 만날때마다 돈을 조금씩 갚으며 빌려간거야. 나는 바보같이 수중에 돈이 없을때는 현금서비스를 받아서까지 빌려주었어. 그게 거의 8개월이 되자 700만원이 넘게 되었고 그형한테 빚을 갚을것을 독촉했는데 그형이 잠적한거야. 그형네 집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런일이 수도없이 있었다더군. 그래서 집에는 몇년에 한번씩 들어와서 언제쯤 다시 돌아올줄 모른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대신빚을 갚으라고 할수도 없더라고. 나는 카드빚을 도저히 갚을수가 없어서 러쉬앤캐쉬같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서 갚았어. 몇개월이 되자 700만원이 1000만원이 되어있었어. 그런데 고지서가 집으로 날아왔고 부모님이 그걸 보시고 대신 갚아주셨어. 덕분에 나는 지금 월급탈때마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 압수당하고 있다." "그런일이 있었구나. 근데 그렇게 큰돈이 될때까지 빌려준게 더 이상하다. 700만원이 될때까지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빌려준것도 이해가 안된다."
"나도 이해가 안되는데 네가 어떻게 알겠냐? 아무튼 덕분에 요새 힘들다."
그후 한시간 정도 더 이야기했고 지금 나의 상황은 이야기 하지 않고 헤어졌다. 분명 성욱이라면 내가 병원에 갔다온것을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내마음 한구석에는 말하는것을 꺼리는마음이 있어서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사회는 정신병원에 갔다온 사람에게 편견이 심하다. 병이 다 나아도 미친놈이었던 사실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정신병자의 이미지도 병실에서 침을 뚝뚝 흘리며 헛소리나 하는 사람정도의 이미지이다. 나는 그래서 친한친구에게 조차 쉽사리 이야기를 꺼낼수 없다는것이 서글퍼졌다. 나는 새벽두시에 집에 들어왔고 술기운에 잠이 들었다. 그렇게 외박의 하루가 지났다.
"재훈아 일어나라. 왜 그렇게 잠만자냐? 벌써 네가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짐 챙겨서 가자." 나는 그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일어났다. 시계는 6시가 다되어갔다. 정말 외박이 짧았다고 생각했다. 아쉬웠지만 병원에 들어가서 다시 환우들을 볼수있다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10층을 눌렀다. 사람들이 10층 정신병동을 찍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져서 불쾌했다. 1박2일의 외박이 너무 쉽게 끝난것이다.
병실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나서 부모님을 보냈다. 지원이가 나한테 다가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훈아 큰일났어. 성호형님이 탈출했대. 같이 산책하던 영아의 말에 의하면 예치금 4만원을 가지고 산책을 하다가 바지를 사서 입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대. 무슨얘기를 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아마 돈빌려달라는 이야기였을 거래. 그런다음 영아를 돌렵보내고 고속버스를 타고 친구가 사는곳을 갔대.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그후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 여관에 묵으면서 부인이 퇴원을 안시켜주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나봐. 그래서 결국 부인이 퇴원을 시켰대. 그 원인은 다음주에 딸의 생일인데 주치의 선생님이 외박은 아직 멀었다고 말하셔서 희망이 사라져서 그런것 같대. 아무튼 그래서 지금 병동이 난리도 아니야."
"성호형님이 탈출했다고? 도저히 믿을수가 없네. 누구보다 여기생활을 성실하게 보내던 성호형님 이었는데 역시 사람속은 알수없는걸까? 그럼 앞으로 자유산책이 제한되는거 아냐?"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럴것 같아. 다른사람들도 성호형님이 탈출한 방법을 쓸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정말 의외다. 성호형님이 탈출할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 의사선생님들도 당황하고 있고 다들 이 의외의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향도 못잡고 있어. 아무튼 병원이 세워지고 처음있었던 일이라서 더그래. 성호형님이 주도 면밀하긴 했어. 예치금을 4만원 넣어달라고 하고 산책시에 필요하다고 운동화도 샀고 상의는 티셔츠를 입고 바지는 환자복을 입고 나갔었어. 바지만 사다입으면 누가 성호형님을 정신병자라고 생각이나 하겠어?"
나와 지원이는 성호형님에 대해서 긴이야기를 나누었다. 성호형님이 그동안 수녀님을 자주 찾아가서 딸을 보고 싶다고 몇번이나 얘기 했었대. 사람은 클로즈처럼 오픈으로 가지 않으면 퇴원할수 없는곳이잖아. 즉 희망이 없는곳에서는 더 잘버티는것 같아. 하지만 퇴원준비를 하는 오픈에서는 다른시설이 아무리 편해져도 더 나가고 싶은 욕망이 강해지는것 같다. 나역시도 요즘 그런생각을 하고있다. 정말 사람마음은 알수없는것 같다.
"그나저나 성호형님 정말 멋있다. 마치 영화같잖아. '쇼생크 탈출'처럼 말이야. 아 나도 빨리 퇴원해서 친구들 보고싶다."
"외박 나가봐서 아는데 오히려 친구부르기도 껄끄러웠어. 아무래도 여기 생활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할때 친구들을 만나는것이 좋을것 같아. 그전에는 베스트 프렌드들한테만 이야기하고 말야. 너도 여기이야기 해서 이상한놈 취급받기는 싫잖아. 우리는 사회의 열등생으로 생각하면 될거야."
"재훈이 생각에 동의해. 해. 핸드폰도 끊기고 왜 두달동안 잠수탄것을 친구한테 설명하기도 그렇고 정신병원 갔다왔다고 말하기는 더욱 힘들거야. 사람들은 우리를 미친놈으로 볼거니 그럴수 밖에 없다. 여기서는 일단 퇴원이 목적이지만 나가면 우리는 맨밑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거야."
영아가 침울한듯 했다.
"그건 여기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야. 우리는 사회에 적응해야되. 외박을 나갔다 오니까 더 절실히 이 사실을 깨달았어. 우리는 말하자면 사람들과 격리된 생활을 해왔어. 기간은 몇달에 지나지 않지만 나가보니까 몇년은 된듯한 느낌이야. 격리된 생활을 한 우리들은 사회부적응자와 같을수 밖에 없어. 그허지만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어. 우리가 여기있었다는 사실은 병원에서도 밝히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지 않는이상 다른사람은 우리일을 알수없어. 그러니 새로 사귀게 된 사람들에게 위축될 필요는 없어. 물론 그과정이 힘들테지마 어쩔수 없지."
"그건 그렇고 성호형님이 떠나고 나니까 텅빈듯한 느낌이 들어. 성호형님이 좋은얘기도 많이 해주셨는데. 또의지가 되는 형이기도 했고. 성호형님의 빈자리가 너무 큰것같아."
"하지만 성호오빠가 잘한것은 아니야. 여기 생활이 힘들다고 탈출하는것은 일종의 도피야. 부럽기는 하지만 성호오빠의 탈출로 우리가 불이익을 받게 된것은 사실이야. 성호오빠는 우리에게 피해를 줬어. 아마 재훈이도 자유산책이 가능한것이 전보다 힘들거야.그런데도 성호오빠에게 원망스런 생각이 들지 않아?"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생각을 못했는데 그러네. 앞으로 자유산책이 힘들면 답답하겠다. 하지만 성호형님의 마음도 이해가가. 그래서 그정도의 손해는 감수할거야. 다만 성호형님이 재발하지 않고 잘지냈으면 해. 그동안 쌓아온정도 적지ㅣ않고."
"나도 원망은 하지 않지만 성호오빠를 미워하지는 않아. 나역시 성호오빠의 심정이 이해가 가니까 말야. 성호오빠 이야기는 이쯤하기로 하자. 얘기하면 할수록 우울해지니까."
우리는 성호형님에 대한 이야기를 그쳤고 영아가 나으 외박에 대해서 물어봤다. 나는 가족들과 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느낌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외박후의 생소한 느낌과 괴리감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한창 이야기 하는중에 악의축 3명이 다가왔다.
"재훈이 새끼야. 이게 성호오빠도 없고 너 깝치는거 봐주는 사람도 없어. 탈출하다니..쯧쯧. 재훈이하고 놀아났으리까 그렇지."
"클로즈에서 부터 재훈이가 나를 괴롭혔어. 다른사람들도 선동했어. 그깟 껴안는것이 어떻다고 그지랄을 떨었는지 모른다니까. 이제너같은 자식 지켜봐주는 사람도 없다. 너도 한번 된통당해봐라."
"정말 끼리끼리 모여드는구나. 나는 너희들보다 알고지내는 사람이 훨씬 많아. 그리고 너희가 나한테 어쩔건데? 네깟것들은 무섭지도 않다. 여기에 오래있으려면 마음대로 하시지."
"마피아아 야쿠자아 이자식이 이래도 무섭지 않아? 화수야 이놈 손좀 봐줄까?"
악의축 세명이서 나를 두고 으르렁거렸다. 까짓것 한두대 맞고 세명을 구석방으로 보내는것도 나쁘지 않았다.
'거기 세명 뭐하는거에요. 셋이서 다니면서 병실환자들 괴롭히지 마요. 그리고 재훈씨 도발하지마요.셋의 병이 심각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빨리 들어가지 않으면 주치의 선생님한테 말할거니까 알아서들 하세요."
손명희 간호사가 엄포를 놓았다. 화수가 마지못해서 고개를 돌려서 나갔고 후성이가 방으로 가면서 내 뒤통수를 쳤다.
"그래도 이자식이. 막나가자는 거냐? 같잖지도 않은 왕따새끼가."
"뭐? 다시한번 말해봐. 왕때가 어쩌고 어째? 그래 나 왕따다. 그래도 너같은 새끼 혼내줄 힘이 없는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후성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내 뺨을 쳤다. 내가 발로 후성이를 차는것을 석원이형이 막았다.
"후성이 너 왜 재훈이 한테 시비냐? 병실사람들의 너의 이런면을 싫어하는거야. 잘지내고 싶으면 남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말아야지. 재훈이 너도 이만 참아라.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것은 아니잖아. 네가 참아라."
"흥 다같이 모여서 나를 상대하겠다 이겨죠? 한번만 더 이런식이면 석원이형이라도 가만두지 않을겁니다."
"이자식이 봐주려고 하는줄도 모르고 이러네. 몇대 맞아야지 정신차리겠구나." 나 말리지 마라."
석원이형이 후성이의 정강이를 찼다. 후성이는 석원이형의 머리를 잡았다.
"정말 이렇게 환우들끼리 싸우면 구석방에 격리시킬수 밖에 없어요. 특히 여러사람하고 물의를 일으키는 후성이는 또 구석방으로 갈 가능성이 제일 커요."
간호사가 석원이형과 후성이 사이에서 둘을 말렸다. 후성이가 씩씩 거리며 병실로 돌아갔다. 석원이형도 화가 단단히 났는지 얼굴이 새빨갰다.
"영아야 너도 화수하고 친하게 지낼필요없어. 우리가 왜 굳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저애들을 받아들여야 하냐? 이제는 참는것도 한계여."
"재훈아 네가 먼저 화수하고 잘지내보라고 햇잖아. 나도 이런행동하는 화수패거리가 마음에 안들지만 나까지 외면하면 더 심각할것이라고 햇잖아. 나까지 외면하면 너무 불쌍하잖아."
"맘대로해라. 지원아 상석아 너희도 저애들하고 상대하지 마라. 형이 참아보려고 했는데 재훈이와 나한테까지 시비를 거는것을 보니까 더이상 참을수 없다. 완전히 미친녀놈들이니까 지들끼리 놀게 내버려 두자."
석원이형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병실애서 환우들과의 갈등이 심화된다는 뜻이었다. 석원이형은 ㅂ병원내에서 사람들과 인맥도 좋았고 그만큼 많은 활동을 했다. 그리고 나이도 연장자라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그런 석원이형이 후성이와 화수 그리고 마훈이형을 상대하지 않기로 한것이다. 이것은 진짜로 왕따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석원이형 그건 너무한거 아닐까요? 영아는 화수하고 이제겨우 잘지내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그세명은 더이상 친구를 만들수 없잖아요.'
"상석이 말이 맞아요. 아무리 걔네들이 못할짓을 많이해도 모두 상대하지 않으면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건 너희가 당해보고 나서 말해봐. 말이야 바른말이지 저 셋이 하는일이 뭐야? 남의 음식 뺐어먹고 공동냉장고에 초코파이를 얼려놓으면 이름이 써있든 아니든 먹고 보잖아. 음료수도 걔네가 입대고 마셔서 못마시게 된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 후성이 녀석이 나를 껴안았는데 잘씻지도 않아서 역한냄새도 나고 얼마나 불쾌했는지 모른다. 나도 재훈이가 저렇게 질색하는것이 이해된다."
"너희는 저셋한테 안당해봐서 몰라. 마훈이형은 화수말만 믿고 나를 때리고 후성이는 사사건건 시비야. 지난번에 담배사건도 그렇고. 후성이가 왜 이렇게 나에게 적의를 품는지 이해가 안가. 화수는 한결같이 나를 보면 경기를 일으키고 이래저래 피곤하다. 나 추스리기도 힘든데 이런것 까지 신경써야 한다니 너무 힘들다. 여러번 반복하지만 더이상 걔네들하고 잘지내는것은 포기한지 오래야. 이제는 퇴원하기 전까지 시비를 걸면 나도 가만두지 않겠어."
영아와 상석이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후성이와 화수 그리고 마훈이형은 정말로 고립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셋이서 어울리니까 외롭지는 않을것 같다. 우리는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 하였다. 영아는 더이상 들을수 없다고 하며 피아노 치러 나갔다.
곡은 '워털루전쟁'이었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게 된 이야기가 서글프게 울려퍼졌다. 영아는 한참동안 같은곡을 연주하자 우리도 말하는것을 마치고 강당을 가서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같은곡이 계속되자 나는 영아에게 다가갔다.
'영아야 우리를 고문하자는 거야? 안들을수도 없잖아. 같은곡만 그렇게 연주할래? 네가 우리생각이 마음에 안들면 따로 생활해도 되잖아.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말고 다른곡을 연주해."
"재훈이 이젠 나한테까지 큰소리 치는거야? 생각해보면 너도 잘한거 없어. 다른사람에게는 잘해주자면서 정작 본인은그들하고 싸우잖아. 그러면서 무슨할말이 있다고 그래? 너는 매우 이중적이야. 너도 이중성을 버려야되."
영아가 큰소리를 쳤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나도 할만큼 했어. 화해하려고 사과도 했었고 그리고 싫어하는 행동하지 말라고 수십번은 이야기 했어. 그래도 계속해서 그러는데 그걸 어떻해? 너야말로 당해본적이 없어서 잘모르는거야. 너는 걔네들한테 당해본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너는 너 하고싶은대로 하고 우리는 신경쓰지마."
"변했구나 재훈이. 이런식으로 말할 네가 아닌었잖아. 그래 네가 그애들과 잘못지내겠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그래도 너라면 앞으로도 잘지내자 할줄 알았는데."
영아가 실망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를 실망시켜서 미안한데 나도 사람이야. 나를 미워하는 사람하고는 잘지내기 어려워. 그건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잖아. 상석이와 영아 너희들은 생각대로해. 그것까지 강제할수는 없으니까. 나는 너희들에게 까지 이런일로 틀어지고 싶지않아. 그럼 나는 들어가볼게."
나는 방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잠이 안왔지만 억지로 잠을 청했다. "
"재훈씨 일어나세요. 담당의사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하셨어요. 면담실로 가보세요." 나는 그제야 부스스 일어나서 면담실로 갔다. "재훈씨 외박은 잘다녀왔나요? 부모님이 아무이상 없었다고 하세요. 근데 지난번에 부모님과 같이 면담한거 생각나세요? 자신의 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 기억은 잘나나요?"
"예 일단은 외박은 잘지내다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모님하고 같이 면담한적이 있나요? 음 기억이 잘안나는데요."
"그렇군요. 아무튼 밖에 나가도 잘지내실수 있을때가 가까워졌어요. 오랜기간 치료했지만 완치는 어려울것 같고 이제 밖으로 나가셔도 별문제 없을정도가 되가요. 아마 곧 퇴원일정이 잡힐겁니다.그리고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아는것이 치유에 도움이 되니까 병에 대해서 잘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내일 MRI 검사 잘받으세요. 그럼 다음에 또 면담합시다. 가보세요."
나느 면담을 끝내고 내병실로 돌아왔다. MRI 검사라니. 나는 다른환자들과 다르게 특별취급을 받는것 같다. 아무렴 어던가. 이제 곧 퇴원일정이 잡힌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유화를 못보고 퇴원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쉬움은 아쉬움이고 나는 날아갈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무엇보다 악의축 삼인조를 더이상 안보게 된다는점이 가장 기뻤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뒤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나는 5시에 일어났다. 나는 간호사실 옆에있는 스포츠신문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박지성이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박지성의 평가도 보았다. 월드컵 전후에서 축구로 가장 관심을 모은 선수는 안정환이었다. 요즘에는 박지성이 그역할을 하고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박지성 도로를 만든다니 말다한것이다. 나는 신문을 보며 연신 초코파이를 입에 넣었다. 성호형님이 있었다면 아마도 다이어트는 이제 포기하느것이냐고 질책했을텐데 성호형님은 이자리에 없다. 또다시 성호형님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나는 홀로 깨어있는 새벽이 좋았다.
간호사외에 모든사람들이 자고있는 시간에 홀로 깨어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런 고요함을 깨뜨리고 누군가가 왔다.
"마피아아 야쿠자아 아 목말라. 이게 누구냐. 재훈이 아냐. 마피아아. 넌 뭔데 지금시간에 깨있냐? 청승떨기는 어쭈 뭘째려봐 맞을래?"
휴 또 헛소리가 시작되었다. 마훈이형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서 화수보다도 상대하기 힘들때가 많았다.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먹혀들어야 하는법이다.
"마훈이 형도 일찍 일어났네요. 째려본거 아니니까 그렇게 보지 마세요. 이사간에 깨있을수도 있죠 뭘그래요."
"이게 꼬박꼬박 말대꾸네. 재훈이 너 임마. 평소에 날 무시하고 다닌다면서? 화수가 그러더라. 마피아가 무섭지 않냐? 야쿠자한테 한번 얻어터져 볼래?"
마훈이 형이 주먹을 들어 나를 쳤다. 나는 마훈이형을 밀치고 발로찼다.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마훈이형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볼이 부풀어 올랐다.
"마훈씨 또 환우때리는 거에요? 야쿠자 마피아좀 그만 찾아요. 재훈씨도 요새 왜이렇게 폭력적이 되었어요?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해결하려고 그래요?"
"그럼 맞고만 있어야 됩니까? 먼저 때린건 마훈이형이에요. 그리고 부풀어오른 제볼 안보여요? 제길 별시답지 않은 이유로 때리네. 내가 언제 자기를 무시했다고 하지. 화수 이미친년은 계속 이간질하네."
"두분다 병실로 돌아가세요. 마훈씨는 주치의선생님 한테 말하겠어요. 왜 이렇게 폭력적이에요? 환우들끼리 잘지내지 못하고. 재훈씨는 아침먹고 ,MRI 검사가 있으니까 식사후 준비하고 계세요."
"재훈이 자식 꼴좋다. 마훈오빠 앞으로도 저자식좀 혼내줘요. 속이 다 후련하네. 아예 옥수수도 몇개쯤 뽑아줘요."
화수가 나를 보며 이죽거렸다.
"미친년 할줄 아는게 이간질 밖에 없지. 맘대로 해봐라. 네깟년한테 질내가 아니다."
나는 말을 내뱉고 세면실로 가서 피가섞인 침을 뱉었다. 침에서 피가섞여 나왔다. 쓰라렸다. 쓰라리면 쓰라릴수록 기분이 팍상했다. 퇴원도 얼마 안남았는데 자중하려고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면 대처하기 힘들다. 아침을 먹고 나는 멍하니 차창밖을 보았다. 빽빽히 차가 들어찬 도로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병원으로 급히오는 응급차가 보였다. 교통사고를 당한걸까? 아니면 집에서 쓰러진것일까? 응급차에서 사람들이 바삐 뛰어와서 혼자를 응급실로 보내는 모습이 보였다. 저사람과 나중에서 누가 더 불행한것일까? 아마도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는것 같다. 그럼에도 부러운것이 있다면 저사람은 퇴원날짜를 정확하게 알고있다는 점이었다.
"재훈씨 MRI 검사 있습니다. 간호사실로 와주세요."
'나는 간호사실로 갔고 그곳에는 주치의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검사니까 긴장하지 마시고 마음편히 가지세요. 지시하는 대로 따르시기만 하면 30분 이내에 끝날겁니다."
이강희 주치의 선생님이 나를 다였다. 그래도 나는 막연한 부담감을 안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1층까지 내려가서 MRI 촬영하는 곳으로 갔다. 나는 매트리스에 누웠고 머리에 검사하는데 필요한 헬멧같은것을 썼다.
"이제부터 검사에 들어갑니다. 인물 사진들이 보일거에요. 두번째 시트가 되면 맨처음 사람이 다시 나올때 버튼을 눌러주세요. 나는 잘은 몰랐지만 한번본 얼굴이 나오면 지체없이 버튼을 눌렀다. "두번째는 눈에 보이는 그림을 보고 다른점을 찾아서 버튼을 누르세요." 이렇게 나는 일련의 과정을 마쳤다. "이것으로 MRI 검사가 끝났어요. 어때요 쉽죠?"
"쉽지는 않아요. 머리가 띵하네요. 검사가 끝났으면 올라가도록해요."
30여분이 지난상태였고 나는 이짧은 시간동안 심신이 지쳤다. 검사 내내 딱딱 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신경을 자극해서 그런것 같았다. 검사가 끝났는데도 딱딱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 검사는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것 같았다. 무엇을 위한 검사일까? 분명한것은 내증상이 다른사람들과 다르다는점이었다. 왜 나에게는 이런검사를 해야 하는걸까? "
그런데 왜 저만 이런검사 받는거죠? 다른사람들은 아무도 안받는데요."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몰라요. 담당의사선생님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검사를 하는거에요. 담당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세요."
그렇지만 담당의사 선생님은 말안해주실것 같았다. 예전에 심리검사 끝내고 몰래 찾아가서 결과를 알수있겠냐고 물었을때 그건 규정상 안된다고 하시며 미소만 지었던 기억이 스쳐갔다. 나는 제반사정을 아는것을 포기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수있는 기회가 있을것이다. 나는 체념을 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재훈아 수련이가 그러는데 네 애인 유화가 온다더라. 자식 성호도 없어서 축 늘어져 있더니 이젠 여자친구 만나게 생겼네. 좋겠다 자식."
"석원이형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수련이가 재활활동에 참여하는데 유화가 자기도 이제 곧 오픈으로 간다고 주치의 선생님이 말하셨대." 유화가 오픈으로 온다고? 나는 가슴이 떨려왔다. 클로즈하고는 다르게 오픈에서는 퇴원준비가 빠르게 이어지니까 유화를 못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퇴원을 약간 미루더라도 유화를 보고싶어졌다. 벌써 유화를 안본지 2주를 넘어가고 있었다.
유화는 내생각을 하기는 할까? 그런이야기를 하고있을떄 후성이가 병실을 서성이더니 마훈이형과 같이 나에게 왔다.
"마피아아 야쿠자아. 재훈이 이자식 곧 퇴원할지도 모른다매. 퇴원빵한번 시원하게 맞아야지. 후성이가 귀신한테 들었는데 재훈이 자식이 곧 퇴원하다고 하더라."
마훈이형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을하며 건들거렸다. "재훈이 새꺄 이젠 담배 안피우냐? 그러게 병동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고 했잖아. 나를 원망하지 마라."
"너희들 남의 병실에 들어와서 깝치지마라. 꼴도보기 싫으니까 안꺼져?" 내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성이가 나한테 박치기를 했다. 나는 골이 띵해졌다. 연이어서 후성이가 주먹을 휘둘렀고 나는 후성이를 밀쳐냈다. "후성이 너는 마훈이형을 자주 껴안는 다면서? 호모아니냐? 그리고 좀 싯고 다녀라. 냄새가 토할거 같다."
"내가 씻던 안씻던 너하고 무슨상관이야? 가뜩이나 요새 재훈이 새끼가 꿈에서 나를 때려서 뒤숭숭한데 헛소리 하지마라."
후성이가 앞뒤도 안맞는 소리를 했다. 아마도 병이 심각해지는것 같았다.
"그게 왜 내 잘못이냐? 나야말로 네가 껴안는 꿈을 꿔서 짜증이 난다."
"퉷!!" 후성이가 갑자기 나한테 침을 뱉고는 뛰어 나갔다.
"그래도 저자식이.."
나는 화가 날대로 났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정신을 잃을것 같았다. 내가 쓰러지고 사람들이 나를 들쳐없고 일단 병실로 갔다.
"단순한 감기에요. 푹쉬고 약을 먹으면 며칠내에 완쾌될거에요."
그날 나는 낮부터 자서 12시 종이 올릴때 깼다. 그런데 병실이 낯설지 않았다. 이방은 옆방인데.. 놀라서 내손을 보니 내가 후성이 목을 조르고 있었다. 후성이가 숨을 헐떡이며 귀신보고 살려달라고 작은목소리로 빌었다. 내가 목을 누르고 있어서 큰소리를 못낸것이다. 그리고 귀신에 너무 빠져서 나의 모습을 나를 닮은 귀신이 괴롭히는것으로 보이나 보다. 가끔 후성이와 화수의 목에 빨간줄 같은것을 보았는데 내가 그런것인가? 기억이 없다. 혼란스럽다. 꿈에서 후성이와 화수한테 맞은것이 사실은 내가 때리고 있던 것일까? 지난번 꿈에서 비디오의 뒷부분이 생각났다. 후성이와 화수 그리고 마훈이형을 때리던 사람의 얼굴이 바로 나였다. 내눈에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을 졸랐을까? 이것이 내병인가?
여태까지 알지 못하던 병중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온이유가 생각났다. 나는 양아치들에게 맞다가 정신을 잃었다. 그런데 그상태에서 나의 또다른 모습을 보았다. 완전히 미쳐돌아서 칼에 살작 찔리고 나서는 미친듯이 양아치들을 때렸다. 너무 심하게 때려서 이빨이 부러지고 피가 여기저기 튀었다. 그러다가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다. 경찰이었는데 지금 이사고는 정당방위였지만 가해자들 역시 심하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쌍방과실로 처리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성을 잃은 나는 날뛰다가 병원의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온것이다. 그리고 나의 두번재 병도 떠올랐다. 나는 이 정신병원에 온것이 세번째였다. 나는 18세부터 23세까지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것이 기억상실증이었을까? 나는 처음입원했을때 부루마불 게임과 젠가을 텔레비전밑에 사다두었고, 오픈으로 와서는 체스를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첫번째 입원했을때는 장기를 두고왔다. 그것이 내가 이곳이 낯설지 않고 익숙했던 느낌이었나보다. 손명희 간호사가 그때도 게임을 잘가져와서 하는 나에게 오락부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미사에 참여해서 손명희 간호사가 연주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았고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간호사다. 그리고 얼마전 부모님과 같이 의사선생님과의 면담이 떠올랐다. 재훈이가 처음에는 조울증때문에 왔고 두번째는 기억상실증 때문에 왔고 세번째는 일종의 자아분열증에 해당한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렇게 나는 세번을 병원에 왔고 내병이 특수하고 여러가지라서 심리검사나 MRI촬영을 한것이다. 아아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모두 내잘못이란 말인가?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니.. 내손이 후성이 목을 꽉눌렀고 후성이가 켁켁거렸다. 그때 간호사 한명이 들어왔다. "꺄악 재훈씨가 재훈씨가. 후성이 목을 조르고 있어요. 모두 나와보세요." 간호사들이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뒤통수에 무엇인가를 맞았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끝내 영아를 못보는것일까? 희미하게 시계가 처음 시작하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뒤통수를 맞고나서 모든것이 어질거리다가 의식을 잃었다.
"여기가 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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