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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訓과 左右銘

  • 작성일 2005-06-02
  • 조회수 396

 

지금도 그렇겠지만, 옛날에도 초등학교 4~5 학년쯤 되면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 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우리집 가훈이 무엇입니까?' 하고 여쭤 봤더니 '우린 그런 거 없다.' 라는 말씀이셔서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가훈따위를 생각하고 살 만큼 여유도 없었고,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 가는 게 바로 가훈이라고 여기셨을 것 같다.

훗날 나도 가정을 꾸리고 애를 가지고, 애들이 초등학교 들어 가니 당연하게도 똑 같은 질문을 받게 되었는 데, 30년도 넘은 그 머쓱한 기억 때문인지 가훈 같은 건 따로 천천히 생각할 여유도 없이 직장생활에 쫒겼던 때문인지 별로 대답할 기분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하면 숙제를 못해가기 때문에 '열심히 살자.' 나 '최선을 다하자.' 나 둘 중에 하나를 골라 그때 그때 대충 대충 대답해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의 생활 원칙이랄지 좌우명이라는 게 없었던 것은 아니나, 나의 좌우명을 가훈으로 삼기에는 뭔가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어 내키질 않았던 것이다.

나의 좌우명은 시기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맨 먼저로잡은 것은 '盡人事 待天命'이다. 올바른 목표를 세우고 매일 매일 열심히 살며,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비록 결과가 당초 목표에 이르지 못하거나, 다른 결과가 나올지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였고, 또 사실 살다 보면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나 될 수 있는 일도 안 되고, 안 될 것 같은 일도 되는 경우를 모두 경험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도 몇번의 생사 고비와 전혀 예상치 않았 던 친구의죽음을 겪고 난 이후 부터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를 인정하기로 했다.

두번째의 것은 '내가 뿌린 씨는 내가 거둔다.'인데, 이와 비슷한 말이 성경에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되었거나 모든 인간사 자기가 한대로 거두어 들이기 마련이고, 특히 친구를 군대 보내며 '대부'를 기념으로 보러 갔다가 암표 살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들어 간 이소룡의 '정무문'을 보고는 완전히 결정하여 버렸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소룡이 공중으로 치솟고, 동시에 경찰의 사격으로 죽기 직전에 하는 대사였는데(이때 나는 난생 처음으로 스로우 모션이 나오는 영화 장면을 보게 되었으며, 술 한잔 먹고 좁은 방에서 이소룡의 흉내내다 발목을 다쳐 수일 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중에 누군가 알려 주기를 원래 중국어 대사는 그게 아니 였다라고 하던데 그렇거나 저렇거나 매우 상당히 맘에 드는 번역 중 하나라고 아직도 여겨 진다.

세번째의 것은 시기적으로 두번째와 비슷한 때에 적어 놓은 듯이 보이는데, 미국의 비주류 가수 그룹(이름 모름)이 부른 'Indian reservations'에 들어 있는 가사로서 '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이다. 이제와 읽어 보니 너무 치기가 넘치고, 지금 나이로선 전혀 어울리지 않으므로 좋은 말임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겠으나, 부득이 없었던 일로 간주할 수밖에 없겠다.

이제 본 주제인 가훈 얘기로 다시 돌아 가면, 이 섬에는 중국 학생들이 영어 어학 연수차 무척 많이 와 있으며, 집사람 또한 실용 회화나 익힐려고 영어 학원을 계속 다니고 있는데, 같은 학원의 중국 학생이 귀국하면서 그 동안 잘 대해 준 보답으로 자기 아버지가 도장을 하나 만들어 준다고 하니 도장만들 내용을 적어 달라고 하였다. 그래 수첩에 적은 메모를 들치다가 발견한 것이 가훈으로 삼으면 괜찮겠다고 생각하여 1997년 10월 6일자로 적어 놓은 '自尊, 自立, 自强, 自由'라는 글자였다.

풀이하면, '자존'이란 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기 비하 내지 자기 포기에 유혹되지 말며,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그 존엄함을 인정해줄 정도의 능력과 인품을 갖추라는 뜻이고, '자립'이란 경제적으로 충분히 독립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있을만큼 젊어서 부터 재산 형성과 유지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뜻이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내가 부럽고 아쉬운 건 시간과 젊음뿐이고,돈은 다음 다음 문제라고 속으로는 큰소리 뻥뻥 쳤는데 이제 와 보니 전혀 아니 올씨다라서-) '자강'은 육체적으로 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옛 성현의 말씀처럼 '身體髮膚 受之父母'임을 잊지 말며, 세계인으로서 서구애들과 경쟁도 해야 하는 시대이므로 체격이야 타고 난 터이라 어쩔 수 없다 하나 ( 부모가 동양인이며, 父의 키가 한국 표준 미달인 이중의 약점) 체력만큼은 밤새워 공부해도 지장이 없을 만큼 잘 단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세가지 요소가 다 갖추어 지면 저절로 찾아 오는 것이 바로 '자유'라는 과실이며, 이 '자유로움'이야 말로 삶의 궁국적인 목표라고 믿고 있기에 가훈으로 삼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위에 썼듯이 이 가훈은 중국 여학생의 부친이 직경 3cm 크기의 도장에 그럴듯 하게 각인하여 주었고, 집 사람이 가보의 목록 중에 하나로 기록하여 놓았다.

마지막으로 선정된 가훈은 우연치 않게도 같은 해인 1997년 12월 24일날 적은 것으로 되어 있는 데, 그날이 크리스 마스 전야니 그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내용은 '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고, 이루면 나누고 베풀어라.'이다. 아마 앞서의 가훈이 한자어일 뿐더러 그 어휘도 너무나 많이 회자되는 말이라서 순수 우리말로 뭔가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부담이 계속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말이니 써있는 그대로이긴 하지만, 우리 삶은 결국 어떠한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이루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고, 또 목표를 이루었을 때 그 과실을 더불어 사는 사회 구성원과 같이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이 나게 될 것이다. 또한 목표를 이루었을 때 그 업적이 인정되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목표이자 보람이지 않겠는가? 하는 뜻에서 가훈으로 삼기에는 아주 그럴듯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근간에 애들로 부터의 동의 절차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우리집의 가훈은 '이루고 나누어라.'이다. 원래 문안보다 글자수가 많이 줄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집사람이 붓으로 써서 액자로 만들어 걸려면 10자 이내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쁜지 안 내키는지 아직까지도 쓰지는 않은 상태에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