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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여름밤

  • 작성일 2005-06-02
  • 조회수 400

 

꼭지 돌아 더듬고 헤매며 돌아 온 밤,
거실 창 밖 살랑대는 여름 잎을 하염없이 본다.

잔이 돌수록 커지고 많아지던 말수는 간 데 없고,
말 못하고 죽은 이 나 앉은 듯 서로 말 한마디 없었으니-

힘겹게 뻗어 누운 육신 위에 바람을 흩뿌리던 십년 선풍기
돌기 멈추고 꼭지 돈 주인과 같이 돌자 한다.

그새 바람 타고 온 死神이 잠시 놀다 갔다.



[詩作 메모]


이 시는 IMF사태에 뒤이어 구조조정은 곧 감원이라는 등식에 사로잡혀 명예퇴직이라는 美名 하에 나이를 우선으로 짤라내기 작업이 한참이던 시기에 (이 시기로 말하면 눈치 보여 빨리 퇴근도 못하고, 그냥 오기도 虛虛하여 소주+삼겹살을 많이 했었다.) 2차까지 먹고 들어와 草 했던 것을 정리한 것이다.

술자리의 처음 시작은 늘 그랬듯이 원기를 돋우기 위하여 TV 프로 야그도 하고 Y談도 하지만, 종국에는 떠난 사람과 또 떠나야 할 대상에 대한 얘기로 귀착되기 마련이였고, 그때쯤이면 호상 간에 술이 많이 취한 상태가 되면서, 그럴수록 분위기는 가라앉고 서로 할 말이 없어 져서 눈만 멀뚱 멀뚱 쳐다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상태로 귀가해서는 환영받을 수가 없으니, 그 날 밤도 대강 옷만 갈아입고 (이렇게 대강 옷만 갈아입다가 쓰러져 운명을 달리한 동료도 있었다. 그것도 마흔 여섯 나이에 어린 남매 둘 남긴 채 - ) 8월 찌는 밤인데다 술로 몸까지 덥혀 진 상태라 거실 바닥이 잠자리가 될 수 밖에 없었는 데, 大字로 누워 창 밖을 바라보니 적막 강산에 무성한 여름 잎만 한들거리고 있었고 그러다 시나브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스라이 의식이 없어지는 듯 하여 깨어나 보니 회전하던 십년 된 선풍기가 고장이 나서 돌지를 못 한채 선풍기 바람이 얼굴 정면으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닌가! 숨이 막혀서 잠에서 깨게 된 것이다.

그러니 하마터면 自然 減員이 될 뻔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