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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의 변증법

  • 작성일 2005-06-02
  • 조회수 400

 

변증법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초기 불교 세계관과 고대 중국 철학에서도 변증법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리스 철학자들은 주장과 반박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변증법은 가장 완전하고 심오하며 일면성으로부터 벗어난 형태의 발전 이론으로서, 그 본질은 세 가지 법칙을 통해 표현된다. '양질 전화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 그것이다. 변증법이 우리에게 당부하는 요구는 물질 세계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변화 속에서 고찰할 것, 현상들의 다양한 상호 연관에 주의하면서 분석할 것, 대립되는 구성요소들 속에서 통일체를 인식할 것 등이다. 변증법은 항상 새로운 것, 스스로 발전하는 것에 주목한다.


수담은 우리 말로 바둑을 일컫는다. 손으로 나누는 대화이기에 시끄러움이 없는 속에서도 매우 역동적이다. 노동하는 평민의 삶을 닮았다. 바둑엔 약자의 바람인 페어플레이 정신이 있다. 세상의 행태처럼 한꺼번에 권리를 독식하는 비열함을 용서치 않고 오직 번갈아 한 수씩 놓을 수 있다. 판의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을 쓸어버리는 행동은 다만 부끄러운 항복을 의미할 뿐이다. 처음 미지의 공간에 던져진 흑백의 돌들이 죽고 살면서 경계를 이루다가 끝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두루 다하여 승리를 가져오고 덕을 보존한다' 바둑판에 새겼다는 천 년전 어른의 말씀이다. 그리고 '고수는 교만함이 없고 하수는 겁이 없다'고 바둑경전은 평한다.

바둑은 지혜의 싸움이다. 허리를 구부려 쟁기질을 하다가도 전쟁이 나면 곧바로 달려가야 했던 인민들은 살아남는 이치를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어떤 방책이라야 패망을 면하고 융성할 것인가. 바둑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고수놀이 속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한 인류의 깊은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까마득한 옛날 어리석은 자식을 가르치고자 만들어졌다는 바둑에는, 경작지를 관리하며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고달픈 백성의 손때가 배여있다. 공자 왈, '바둑을 두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어질다' 맹자 왈, '바둑 수는 전심하여 뜻을 다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노자 왈, '천하의 극히 정밀한 게 아니면 누가 참여할 것이냐'고 감탄한다.

분쟁의 기본성격은 먹거리 문제다. 후한의 역사가 반고는, 가로 세로 19줄 종횡 361로는 한 해를 상징하고, 네 귀는 춘하투동의 사계절을, 둘레의 72로는 72절후를 상징한다고 바둑을 풀이한다. 천문의 발전이 생산수단 및 생산력과 밀접하듯, 기후에 따라 풍흉이 가려지는 농사와 깊이 연관돼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361로의 도처에 안개가 자욱하고 장애물이 도사리니 실로 미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깨달음과 욕망 가득한 승부 사이를 방황하는 것이다. 만년의 달마대사 가라사대, '보리심을 일으킨지 어언 40년. 나는 인간의 불성을 흰 돌에, 인간의 마성을 검은 돌에 걸어 오랜 세월 다투었다. 이제 와서 기어이 흑백의 승패를 초월한 바둑을 둘 수 있게 되었다.' 

바둑은 처절한 쟁기다. 오묘한 법칙 가운데서 사물의 운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사들은 '목숨을 걸고 둔다'는 한마디로 압축한다. '이기는 것이 무엇이고 지는 것이 무엇이냐'는 느낌이 문득 머리를 스칠 때, '마음은 맑아지지만 승부를 떠나버리면 무엇이 남는가' 하는 의혹이 곧바로 겹친다. '수양은 고고하지만 승부의 투혼을 죽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혼돈에서 부동심을 체득한다. 수천 년 전에 도현명은 '도가 땅에 떨어진지 천 년이 흘렀다'고 서러워했다. 야박하고 교활한 인심이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인생을 알아 승부가 약해지는 것은 삶의 준엄함이 수담보다 뼈저리기 때문이다.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1선 밖의 낭떠러지'로 추락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