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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배기

  • 작성일 2010-03-22
  • 조회수 1,058

 

돔배기 / 박재명


돔배기라고 있다. 경북의 내륙지방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듣기에 생소할 것 같다. 바다에서 잡은 상어를 큼직하게 토막 내었다는 뜻의 방언으로 돔배기라고 하는데 제수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고기다.

올해도 설 차례 상에 올리기 위해 미리 장만한 돔배기를 잘 다듬어 산적으로 꼬치에 꿴 다음 숯불에 정성스럽게 구워 올렸다. 생각해 보면 제사상의 가장 가운데를 차지하는 것은 항상 돔배기 산적이었다. 아마도 제수음식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래서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치는 음식들은 모두 아낙네들의 몫이었지만, 돔배기 산적만큼은 항상 남자들이 장만했다.

내 기억속의 돔배기는 지독히도 먹기 싫어했던 고기였다. 그리고 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제사집이나 상가(喪家)에서는 반드시 볼 수 있는 바다고기였다. 그것이 바다고기라는 것을 안 것은 나중이었고, 거기에다 상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제수용 산적은 고기를 일정한 두께의 사각으로 포를 떠서 꼬치에 꿰고 굽기만 하면 된다. 만약 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만난다면 얇게 썰어서 프라이팬에 두루치기해서 먹어도 맛있다.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신선하고 담백한 맛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돔배기 껍질은 손으로 만지면 가는 유리가루를 뿌려둔 듯 매우 거칠거칠하다. 거칠다고 자칫 버리기 쉽지만, 끓는 물에 튀겨낸 다음 칼로 잘 긁어내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잘 손질된 껍질을 다시 끓는 물에 살짝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쫄깃쫄깃한 식감의 또 다른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살코기는 구워먹고, 껍데기는 데쳐먹고, 그래도 남는다면 뼈와 함께 두부와 무를 깍뚝 썰어 냄비에 담고 물을 넉넉히 붓는다. 그리고 적당히 소금 간하여 끓여 내면 훌륭한 탕이 되어 돌아온다. 어릴 때 이 탕국은 구운 것보다 더욱 못 먹을 음식이었다. 이러든 저러든 돔배기는 어린 내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음식에 불과했다.

그런데 요즘 이 고기에 입맛이 들었다. 이를테면 어릴 적에 싫어하던 된장국, 칼국수 따위의 음식이 지금은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싫어했던 돔배기가 이제는 숯불에 구워낸 산적뿐만 아니라, 맑은 탕국을 먹으면 국물이 식도(食道)를 시원하게 타고 내려가면서 속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코를 찡그리게 만들던 특유의 냄새는 오히려 이 음식만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이 되었다. 거기에다 막걸리 술 한 잔과 함께 한다면 더욱 깊은 맛으로 어우러져 절로 감탄하고 만다.

그동안 돔배기는 왜 제사상에서만 만날 수 있었을까? 늦은 궁금증으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동양에서 돔배기는 주술적인 의미의 혼백(魂魄)을 부르는 음식으로 양반가의 제수용으로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내로라하는 양반들이 많았던 안동지방이 그 소비의 중심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혼백과 관계있다함은 한의학에서 이유를 찾았다. 한의학에서는 상어를 교어(鮫魚)라 하고 해서 오장(五臟)을 보(補)하는 효능이 있고, 그중에도 간과 폐를 돕는 작용이 탁월하다고 한다. 자고로 간은 혼(魂)이 저장되는 장기이며, 폐는 백(魄)이 머무는 곳간이라고 하니 음식에 담긴 의미가 자못 신기할 따름이고, 제례 음식에서 그처럼 중시된 이유를 금방 알만하다.

이제 제삿날이 되면 돔배기 준비는 아버지에서 내게로 전해져 내 손으로 산적을 만들어 낸다. 느지막이 이 음식을 대하면 어릴 적 추억과 내 유년의 풍경이 들여다보인다. 먹기 싫어 몰래 버리거나 가장 나중에 먹었던 나의 천덕꾸러기 음식. 하지만 상가에 다녀오시면 항상 나를 불러 신문지에 쌓인 음복음식을 주시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있었다. 정성스레 제사상을 준비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도 보이고, 탕국을 끓여 내시던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도 보인다. 제사가 끝나 어른들이 음복할 때면 가장 먼저 돔배기 맛을 평가하였고, 내게는 고역이던 탕국이 참 시원하다고 감탄하시던 예찬의 뜻을 이제야 알만하다.

 

돔배기가 멋지게 변신하는 낌새가 보인다. 목포 홍어가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처럼 돔배기도 부활의 날개를 펄럭이는 것 같다. 내 기억속에서도 5일장을 돌면서 돔배기를 팔던 보따리 상인은 영천 장(場)에서 구해 오는 걸로 알고 있었다. 영천시가 일찌감치 향토음식으로 선정하여 상표등록하고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냥 무심히 넘겨버릴 음식이 그 지역의 효자가 된 듯이 보인다.

하지만 돔배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주변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려야 한다. 내 추억의 정서로 볼 때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 보다 70년대식 허름한 시골풍경이 잘 어울린다. 초가 주막집같이 조금은 정갈하지 못하더라도 용서가 되는, 약간 빈틈이 있는 집이 좋을 것 같다. 비슷한 모양의 참치와 닮았지만, 일식집에 참치를 먹듯 지나치게 격식을 따지거나 깔끔함을 내세우지 않는다. 등겨가루가 묻은 투박한 사과가 먹음직스럽듯 돔배기는 좀 수더분해야 서민들의 인심이 함께 묻어 날 것 같은 그런 음식이다.

그 옛날 어른들의 식성을 많이 닮아 감으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정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고방식도 생활습관도 그리고 맛을 느끼는 방법도 많이 변했다. 돔배기를 통해 부쩍 변한 식성을 알아차리곤 문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진다. 콩가루를 입혀서 끓여 낸 냉이국도, 토란줄기 파로 끓여내던 민물고기 추어탕도 이젠 더 이상 예전의 맛을 볼 수 없다. 비슷하고 닮은 음식은 많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채워주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예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엄마에게 먹을 것 달라고 보채는 철없는 자식이 되어 돌아가신 어머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다니, 역시나 자식은 부모에게 끝없는 희생만 바라는 애물에 불과하나 보다. 그래도 이 순간 가슴 찡하도록 어머니가 보고 싶다. 돔배기 한 점이 있으면 이를 통해서 어머니의 혼백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