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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洑

  • 작성일 2011-11-13
  • 조회수 393

보洑
박재명
청원에서 상주까지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열리는 바람에 고향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 평지길을 돋우어서 낸 길과 달리 이 길은 산을 깍고, 뚫고, 다리를 놓아서 연결되는 산길이다.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차를 타고 산 중턱길을 달린다는 것이 즐겁다. 그러나 중간 중간 산위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능선을 수직절벽으로 뚝 자른 곳을 지날 때는 마음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큰 산의 기운이 단절되어 행여 나쁘게 흐르지는 않을지, 이산에서 저산으로 넘나들던 동물의 길이 막히지 않았을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차라리 터널을 뚫었으면 좋았을걸 어찌 저리 모질게 잘라버렸을까?
사람에게 편리함을 얻기 위한 이기심 뒤에는 이렇듯 자연의 희생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좀 더 불편하게 살고, 자연은 상처를 덜 받으며 개발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은 나만의 고민일까?
 
먼 길을 달린 고속도로를 내려 일반도로로 가는 길에 큰 강을 건너게 된다. 물길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길게 이어지고, 양 옆으로 흰 모래밭과 가장자리의 갈대밭을 보면 어릴 적 부르던 동요 속에 상상되던 풍경과 딱 맞아 떨어진다.
사람들은 강변을 중심으로 물을 얻어 삶의 터전을 이루고 풍요로운 마을을 이룬다. 넘치는 자연의 혜택이 많으니 인심도 덩달아 좋아져 살기 좋은 농촌은 정말 물에서부터 시작되지 않겠나 싶다.
강을 길게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면 이 좋은 풍광을 보면서 잠시 쉬어가라는 듯 언덕위에 관수루觀水樓이라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한 번 쯤 쉬었으면 하던 곳이었는데, 고향 가는 마음이 바빠서 늘 지나치던 곳이다. 오늘은 그런 마음 내려놓고 정자에 잠시 올라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수루에 올라보니 언제부턴가 시작되었던 거대한 보洑를 만드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바로 낙단보였다.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수십 길이 되는 높이의 기둥과 물막이 공사는 마무리 되었고 물도 어느 정도 가두어졌다.
보 위에는 고여 있는 수면은 훨씬 넓어져 모래사장을 잠식하고, 물길의 끝도 더 멀리 내다 보였다. 그리고 아래로는 원래의 강바닥보다 훨씬 깊어진채, 수문에서 물을 힘차게 쏟아내고 있었다.
저 수문의 육중한 무게로 물길을 완전히 막으면 생길 강이 아닌 거대한 호수를 상상해 본다. 보의 위 아래를 자유롭게 유영하던 물고기는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못할 텐데, 물고기의 이산離散은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수심이 깊어진 물고기는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 것인지, 모래 속에 살던 생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들의 엇갈린 운명을 공연히 상상해 본다.
관수루觀水樓라! 물길을 바라보기 위해 세워진 정자인 듯한데, 세운 이들은 어떤 모습을 상상하면서 누각을 지었을까? 이렇게 변할 줄은 짐작이나 했을까? 지금껏 보아오던 규모와 영 다른 거대한 보를 바라보니 내가 어릴 적 처음 접했던 보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내 고향은 위천渭川의 가장 상류에 위치한 곳이다. 여름 장마 한 철에만 큰물을 일구곤 두어 달도 되지 않아 이내 하천 바닥을 드러내던 곳이었다. 깊은 산골이었음에도 동네 앞을 흐르던 하천은 건너편 앞산까지 폭이 꽤 넓었다. 물길이 구불구불 흐르면서 어느 곳은 웅덩이가 패이고, 어떤 곳에서는 실개천처럼 좁아지다가 또 어떤 곳은 넓게 퍼지면서 자유롭게 흘렀다.
산기슭 밑으로 흐르다 바위에 부딪혀 깊게 패인 소沼에는 아이들이 여름 한 철 동안 멱을 감고 낚시도 하였으며, 겨울이면 넓은 하늘이 열려 연 날리던 곳이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 태동하던 즈음에 강의 모양은 많이 변하고 있었다. 육중한 불도저가 강바닥의 돌을 양쪽을 밀어내더니 제방을 만들었고, 제방 밖에는 농경지가 저절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큰물이 내려가면 제방이 무너지고 새로 복구하길 반복하는 동안 제방은 돌망태로 점점 더 견고하게 쌓았다. 물굽이가 뚜렷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물길은 반듯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곳곳에 만들어졌던 소沼는 없어지고, 강바닥에 물이 흐르던 시간은 점점 짧아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하천에 큰 공사가 시작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부역으로 동원되어 강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동네에 발전기까지 갖추고 밤낮을 공사를 하였다. 강바닥을 깊이 팔수록 사람들은 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작업하고, 양수기도 땅속의 물을 밤낮으로 퍼 올렸다.
처음엔 무슨 공사였는지 몰랐지만 어른들의 말을 들으니 보를 막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하천 바닥인 암반까지 땅을 판 다음 지표면까지 시멘트 공사를 해서 둑을 만든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땅속에 저수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되면 땅속에 흐르던 지하수가 갇혀서 가뭄에도 쉬 마르지 않고 물을 오래 쓸 수 있는 공사였다.
마침내 공사는 완성되었다. 정말 보 위에는 물이 잘 마르지 않았다. 넘치는 물을 하천 옆으로 물꼬를 트니 하천부지의 자갈밭은 어느새 논으로 바뀌어 갔다. 해마다 물이 모자라던 가뭄철에도 강바닥을 조금만 파도 물이 솟았고, 지하수를 끌어 식수로도 썼으니 사람들은 여러 모로 물 걱정을 크게 덜게 되었다. 수십 년 전에 만들었던 보에는 지금도 물이 마르지 않고 쏟아 내고 있다. 예전보다 비가 자주 온 탓도 있겠지만 보가 가져다 준 물의 혜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관수루에서 낙단보를 바라본다. 보의 규모가 나를 압도하여 아름다운 강변 풍경을 흐렸다. 내가 보아왔던 보의 물 가두는 방식과 틀린 모습도 보에 대한 생각을 낯설게 했다. 지하수가 아닌 흐르는 강물을 가두기 위한 거대한 공작물을 보면서 이것이 보일까? 아니면 저수지 혹은 댐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보에 갇힌 거대한 물줄기가 더 선명하고 길게 보이며 하류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 이 보를 중심으로 위 아래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 올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사람이 좀 더 불편한 대신 자연에게 상처를 조금만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런 거대한 보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과 자연이 입게 될 상처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하는 공연한 걱정을 또 해 본다.
한편으로 이산가족처럼 헤어진 물고기의 운명이 남과 북을 갈라놓은 휴전선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이 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보를 중심으로 위 아래가 서로 소통이 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니 이것이 가장 큰 걱정이 아닐까 싶다. 낙단보 아래 수문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살이 하얀 앞 이빨처럼 드러내며 웃고 있다. 그 웃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는 정녕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