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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 샴쌍둥이 이야기

  • 작성일 2007-03-21
  • 조회수 245

         

                                   - 샴쌍둥이 이야기 -


 

그 아기들은 늪에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들을 낳은 부모는 차마 자신들 손으로 죽이지 못해, 몬스터들이 알아서 아기를 처리해주길 바랬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았고 이렇게 살아있다.

볼키아(Bolkiah)늪에는 한 은둔 마법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이 산속 침침한 늪에 느닷없이 아기 둘이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와 상당히 놀랬으리라.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더듬더듬 찾아간 곳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갈색 곱슬머리에 얼굴엔 온통 눈물자국이 말라붙은 쌍둥이였다. 쌍둥이는 두 손을 흔들어 대고, 두 발을 버둥거리며 두 목소리로 울어제꼈다. 한몸에 두 머리가 붙어 울어대는 모습은 마법사도 처음보는 섬찟한 광경이었다.

마법사는 그들을 자기의 오두막으로 데리고 가 이책저책 뒤져보다가, 아주 드물게 등이 붙어 태어나거나, 한 몸에 두 머리가 붙어 태어나는 쌍둥이가 있다는 문헌을 발견해냈다.


그 후, 마법사는 새끼를 낳은 암컷 오크를 잡아다 두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 했고, 조금 커서는 세상의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두려움, 죄, 수치, 죽음뒤에 오는 지옥, 복종, 그리고 자기학대까지.

“너희들은 저주를 받은 존재야. 너희들 존재가 그 증거지.”

아이들은 6살이 되었다.

“저주요?”

그게 뭔지 몰라도 자신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두려운 것일 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자기들을 길러주는 암컷오크가 저녁마다 울부짖는 소리보다 더 무서운 어떤 것.

“본래, 사악한 존재는 한몸에 여러개의 머리를 지니는 법이다. 그런 것들은 대게 영웅의 칼에 목이 잘리거나 사람들에 의해 불에 태워지기 일쑤지.”

두 6살의 한 심장은 얼어붙었다.

겁에질린 아이들을 바라보던 마법사가 예정된 수순을 진행시키는 것처럼 아이들의 팔을 잡아 끌었다.

“어, 어디로 가는거예요? 마법사님.”

“더러운 너희들을 신대신 내가 벌을 주겠다. 나와 너희들이 만난 이유도 다 거기에 있을것이다. 속죄하고 속죄하며 살아라.”

우는것도 허락되지 않은 입을 꽉 다물고 끌려간 곳은 여느때처럼 볼키아늪 가장자리였다. 위험한 몬스터가 득실거리고 음산한 기운과 코를 맵게하는 악취가 자욱한 곳이었다.

“싫어요. 싫어요.”

둘은 힘을 합해 외쳤다. 그들은 싫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요구가 응해진 적이 없으니 끊임없이 싫다고 할 밖에. 쓰레기처럼 내던져진 둘을 뒤로하고 마법사는 집으로 돌아갔다. 마법사가 사라졌어도 그들은 울지 않고 오른 한팔과 왼쪽 한팔로 서로의 몸을 감싸안았다. 울면 뒤에서 뭔가가 나타날 것만 같았기 때문에…….

마법사의 힘에 의해 도망가지 못하는 신세가 된 암컷오크가 그 둘을 찾아오는 역할을 수행했다. 간신히 늪 구석구석을 뒤져 찾아낸 둘의 모습은 두려움에 얼굴이 새파래진 상태였다. 늘 이런식이다. 오크는 가벼운 아이의몸을 껴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말은 안통하지만, 그 품안이 둘에게는 안식이었다. 그런 날은 아이들은 자신들의 숙소인 부엌의 구석방에서 나와 오크의 잠자리인 마굿간으로 들어가 그 팔 아래서 잠이 들었다.


어느날 오크는 마법사의 명령으로 산딸기를 찾으러 나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모험자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 마법사는 아이들에게 오크의 죽음을 알리며 대신 산딸기를 따오라고 시켰다. 그들은 한나절을 돌아다닌 끝에야 겨우 오크의 시체를 찾을 수 있었다. 숲길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오크의 시신은 온통 피범벅이었고, 한팔은 그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을 향해 있었다. 오크는 너무 무거워서 아이들의 힘으로는 땅에 묻을 수가 없었다. 둘은 서럽게 울며, 나무밑 풀꽃위에 그녀를 끌어다놓고 잎과 가지로 덮어두었다.

그것은 둘이 10세가 됐을 때 일이었다.


“너희들은 글을 배워야 한다.”

몇 년을 입어 낡은 옷과 냄새나는 몸으로 오두막을 청소하고 있던 둘에게 마법사가 말했다.

“글을 배우고, 책을 읽어야 자신이 얼마나 세상을 불쾌하게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있을거다. 깊이 깨닫고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거라.”

깊이 깨닫는다는게 뭔지, 불쾌란게 뭔지, 자신들의 죄가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괴롭히겠다는 뜻은 확실히 알아들었다. 그 날부터 둘은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진도를 못나가거나 글을 못외운다거나 할 적에는 오른팔로 왼쪽 얼굴을, 왼쪽 팔로 오른쪽 얼굴의 뺨을 갈겼다. 물론 마법사가 보는 앞에서 만족할 만큼 고통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두 아이에게 빛과도 같았다. 글이 어느정도 눈에 익자 오른쪽 머리는 틈만나면 작은 오두막집 지하 서고에 틀어박혀 마법사가 찾을 때까지 꼼짝않고 책을 읽었다. 집안일을 하고, 땔감을 모아오고, 마법 재료들을 찾아오는 일은 하루종일 해도 끝이 없었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것 만큼은 포기할 수 없게 되었다.

하루는 오른쪽이 왼쪽에게, 이름이란게 있어야 겠다고 말했다. (마법사는 둘을 언제나 하나로 묶어 불렀는데, 주로 저주받은 놈들, 더러운 놈들이라고 불렀다.)

“이름?”

오른쪽 머리가 책을 탐독할 때, 멍하니 공상을 하거나 야한 책들을 찾아헤메던 왼쪽 머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이름이 있대. 우리는 모르지만 빌어먹을 마법사도 이름이 있을거야. 길에 나무도 새도 다 이름이 있는데 우리만 이름이 없다는건 말이 안돼.”

왼쪽 머리가 ‘어, 정말 그러네.’하고 생각하는 중에 오른쪽 머리가 미리 지어두었던 이름을 들려주었다.

“나는 랠프. <철자교본>을 지은 사람의 이름이야. 너는 돌프. <짐승잡는 요령>의 저자야. 넌 사냥하는걸 좋아하니까.”

그랬다. 집안의 정리나 창고에 음식물 보관은 오른쪽 머리가 하지만 그 창고에 채울 고기는 왼쪽 머리가 잡아온다. 이름이 마음에 들은 두 사람은 다음에는 뭘할까 궁리했다. 둘은 얼마전 길에서 몬스터에게 참변을 당한 모험자의 배낭과 도구 일습을 챙겨 숨긴적이 있었다. 거기서 검을 꺼내 검술연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적당한 교본은 랠프가 찾아왔고, 책을 싫어하는 돌프도 그것만은 죽어라 읽어나갔다. 두 사람의 한몸은 점점 튼튼해져갔다.


늪 전체가 끓어오를 정도로 무더웠던 한낮의 여름, 혼자만의 힘으로 마법의 기초를 깨우친 랠프가 마법사에게 수면마법을 걸어놓고, 돌프가 한칼에 그의 목을 쳤다. 15세 되던 해, 그들은 태양열로 덥혀진 늪속에다 마법사의 둘로 갈라진 몸을 집어던졌다. 언젠가 어린 둘을 버리고 돌아서던 마법사의 무심함이 이런거였구나하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볕조차 들지 않는 늪지대를 낀 숲속에서 둘은 조용히 살았다. 평온해진 삶이 그들을 에워쌌고, 이따금 랠프가 마법사가 남긴 스펠북의 주문을 시전해 본다던가, 돌프가 검술연습을 하기위해 기합소리를 내는 일 외에는 오직 적막함만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돌프는 두손으로 대검을 잡고 휘두르다, 생각에 잠겨있는 랠프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인간들 사는 마을로 나갈 수 없어?”

왼쪽의 질문에 오른쪽은 고개를 돌린다.

“나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금방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거다.”

“왜? 왜 우리가 죽임을 당해?”

“오크가 죽은건 사람이 아니라 오크였기 때문이야. 오크는 사람이 아니라서 사람에게 죽고, 사람은 오크가 아니라서 오크에게 죽는다. 그런 원리야. 누구든 자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면 멸시하거나, 혹은 두려워하거나 죽이기도 하지.”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두려워서 죽이는 걸거야. 아마…….”

돌프는 검을 내려놓고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난, 아니 우리는 오크가 아니야. 그리고 오크도 인간과 살 수 있어. 우리가 같이 살았잖아.”

랠프는 한숨을 쉬고 오른손으로 자신의 손이자 돌프의 손인 왼손을 쥐었다.

“사실 오크와 인간은 같이 살 수 없어. 우리 경우는 특수했던 거지.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괴물처럼 볼거야. 아니면 동정하거나…….”

“동정?”

“불쌍하게 여긴다는 거지.”

돌프의 뺨을 쓰다듬는 오른손.

“동정하고 구걸해주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틈속에서 살 수는 없어. 우리는 우리로서 족해.”

그 말은 맞는 말이라고 여겼다.


햇볕이 쨍쨍하던 오후, 둘은 밭으로 나섰다. 한창 야채들을 돌보고 있는데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나무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랠프, 불이 났나봐.”

“가보자.”

괭이, 호미를 집어던지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으로 달려간 둘은 재빨리 바위뒤로 몸을 숨겼다. 한 건장한 아저씨가 불이 번지지 않게 주변 나무들을 베면서 숲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돌프는 랠프를 쳐다보았다.

“뭐하는 거지?”

“화전(火田)이라고 하는거야. 불을 지른 땅을 개간해 농지를 만드는 거지. 하여간 이런 구석진 곳까지 들어오다니…….”

그 아저씨 뒤로 한 아줌마와 젊은 아가씨가 보였다. 돌프와 랠프의 충격은 대단했다.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나 봤지 여자를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다.”

“둘이네.”

둘은 넋놓고 똑 닮은 두 여자를 쳐다보았다.

“가족인가 보군.”

그말에 깜짝놀란(가족이란 개념도 충격적이었다.) 돌프가 어깨를 움찔했다.

“가족?”

랠프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며 말했다.

“저 키큰 남자와 그 뒤에 나이든 여자가 부모같아. 어린 여자는 딸같고…….”

돌프는 어린 여자를 바라보았다. 까만머리에 얼굴엔 주근깨가 가득 했지만 함박 웃고 있는 모습은 무척 쾌활해 보였다. 돌프는 마법사가 말하는 영원히 오지 않는 구원이 거기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부터 둘은 싸우기 시작했다.


“갈거야! 나는 갈래.”

“어제도 갔잖아.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그리고 나 책 못본지 며칠이나 된줄 알아?”

돌프는 험상궃어졌다.

“쳇, 그놈의 책…… 아무리 읽어봤자 세상에 나가는덴 도움도 되지 않아. 그래, 하다못해 우리 몸을 하나 더 만드는 거라도 쓰여있다면 모르지."

랠프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나,나와 떨어지고 싶은거냐?”

돌프도 움찔하고 몸을 움츠렸다. 별로 생각하면서 한 말이 아니었기에 그 말이 갖는 의미를 뒤늦게야 이해한 것이다. 랠프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오른손으로 기둥을 잡고 머리를 짖찧는다.

“그런일이 일어나면 안돼! 죽어버릴꺼야! 죽어버릴꺼야!”

돌프는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런일은 안 일어날꺼야, 제발 그만해! 으아악! 머리가 너무 아파. 그만!”

랠프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돌프는 몹시 고통스러운듯 왼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주근깨 소녀를 보겠다는 돌프의 욕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항상 웃었고, 사방을 뛰어다녔고, 힘든일을 하면서도 흘리는 땀방울마저 활력이 넘쳤다. 늪의 회색마저 그녀 주위에서는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돌프는 그녀를 사랑했다. 가을의 찬비, 겨울의 눈발, 봄날의 감기……. 그 어느 것에도 굴하지 않고 돌프는 그녀를 찾아갔다. 멀리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미친 듯이 울다가 돌아왔다. 돌프는 병이 들어 버렸다. 당연히 랠프도 아팠다. 며칠이나 침대에 누워있었을까?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뭐지?

“심장이 아퍼, 어지러워. 어떻게하지?”

웅얼거리던 랠프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문질렀다. 돌프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돌프는 그녀를 보러가고 싶었지만 이젠 일어날 힘도 없었다.

“죽어버릴 셈이냐? 일어나! 우린 몸이 약해진게 아니란 말이야!“

“일어나서 뭐하지? 멀리서 보는 일도 두려워서 벌벌 떠는데. 살아서 뭐해? 그 마법사 말이 맞아. 우리는 더러운 것들이야. 이건 저주야.”

랠프가 벌떡 일어났다. 그 때문에 힘없는 돌프의 목이 반동에 의해 뒤로 확 꺽였다.

“우린 더럽지 않다. 그렇게 말하지 마! 눈을 떠! 스스로를 죽이지 말란 말이다.”

악을 쓰다시피 소리를 지르는 랠프. 갑자기 돌프는 광기에 휩싸이는 기분이 들었다.

“왜 한몸에 머리가 둘씩이나 붙은거야. 한사람은 없어야 해. 한사람이 없어야 정상이야.”

“안돼. 그러지 마! 더 이상…….”

랠프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돌프가 침대밑의 검을 집어 들었기 때문이다.


“정상이 되어야 해. 한몸엔 한머리야. 세상으로 나갈꺼야. 내몸으로…… 내몸으로…….”

그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내가 왜 이러지, 랠프? 난 정말 미쳤나봐. 널 죽이려고 했어. 미친거야…….”

몸이 떨려온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돌프의 착각이었다. 몸은 평온했고 그 평온한 정적속에 검이 부웅 떠올랐다. 돌프는 멍하니 허공에 떠있는 검을 쳐다보았다.

“랠……프?”

“넌 몰랐겠지만, 돌프…… 우리가 쓰는 몸말이다.”

허공에 떠오른 검에 비친 랠프의 눈은 처음보는 사람의 눈이었다.

“실질적으로 신경조직에 명령을 전달하는 두뇌는 나다. 너는 너의 목과 왼팔만을 가지고 있어. 이 몸의 주인은 나였어. 여태 몰랐다는 거야?”

돌프는 멍해졌다.

“네가 느끼고 있는 심장의 박동은 내 감정이야. 며칠이나 아팠던 건 네가 아니라 나였어. 넌 아픈 흉내에 몰입하고 있었을 뿐이야.”

“…….”

“그녀를 사랑하는 것도 나야. 넌 그 마음을 빌려 네것이라 여겼던 것 뿐이야.”

눈을 감고 랠프에게 말을 건넨다.

“이 살의도 너의 감정이야?”

“그렇다!”

핏- 소리와 함께 검은 바닥으로 굴러 내동댕이 쳐졌다.

돌프의 목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랠프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옆이 아닌 정면으로 돌프를 쳐다보았다.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돌프의 얼굴을 보니 랠프 자신의 얼굴이 바닥을 굴러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허전한 왼쪽 어깨에서 피가 솟구쳐 올라왔다.

“으악!”

돌프를 쳐낸 고통이 뼈마디마디로 져며왔다. 랠프는 발밑을 흐르는 피를 곁눈질로 쳐다보다 오두막을 뛰쳐나갔다. 온몸이 피로 뒤덮여 빨갛게 물들었지만 얼굴은 새파랗다.

멀리 주근깨 소녀가 보인다. 그녀가 몸통 하나에 팔 둘, 다리 둘, 머리가 하나뿐인 그 자신을 발견했다.

“꺄아악, 꺄악!”

그녀가 날카로운 비명을 연신 질러댔다. 나이든 남자가 쫓아나왔다.

“여보, 무슨 일이야? 앗!”

나이든 여자도 비명을 듣고 집에서 달려나왔다.

“뭔가? 무슨 일이냐구?”

남자는 황급히 어린 아내를 젊은 장모님에게 끌고 갔다.

“장모님, 이사람 데리고 들어가세요. 여보, 얼른 장모님이랑 집안에 있어.”

모녀는 울면서 부둥켜안고 작고 허름한 자기 집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남편은 벌벌 떨면서 쟁기를 높이 쳐들었다.

“푸훗…….”

랠프는 샐쭉 웃더니 비틀거리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은 울창했다. 나무가 가려 햇빛조차 없을 정도였다. 의식이 흐려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두팔이 저절로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이건 내 뜻일까? 아니면 돌프의 뜻일까.’

그런건 처음부터 없었다. 둘은 하나였고,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도 살 수 없는 것을. 둘이 있어 몸이 그렇게도 완전했는데, 우린 완전한 것도 불만이었단 걸까?

완전하다는 것 자체가 불완전인가. 그래서 그렇게 못견뎌 했는지…….

“후후후후.”

무성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랠프는 주문을 외우고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볼.”

그의 손에서 빠져나간 시커먼 불덩이가 나뭇가지 안으로 파고든다. 비명을 지르는 나무들 사이에서 랠프의 핏기없는 하얀 얼굴 하나가 빨간 피위로 동동 떠다닌다.



- 끝 -



 




-에필로그


“갈거야! 나는 갈래.”

“어제도 갔잖아.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그리고 나 책 못본지 며칠이나 된줄 알아?”

돌프는 험상궃어졌다.

“쳇, 그놈의 책…… 아무리 읽어봤자 세상에 나가는덴 도움도 되지 않아. 그래, 하다못해 우리 몸을 하나 더 만드는 거라도 쓰여있다면 모르지."

랠프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나,나와 떨어지고 싶은거냐?”

(랠프의 머릿속은 빠르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또 하나의 몸, 그런걸 만들 순 없다. 하지만 머리가 하나 없다면? 없다면 한 몸에 한 머리지. 랠프는 자신이 무서워졌다. 무얼 생각하는 거야?)

랠프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오른손으로 기둥을 잡고 머리를 짖찧는다.

“그런일이 일어나면 안돼! 죽어버릴꺼야! 죽어버릴꺼야!”

(그런일이 일어나선 안돼! 내가, 내가 그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선 안돼! 차라리 내가 죽어버릴거야.)


그러나 그 마음 반대편에서는 의심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