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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좀비

  • 작성일 2010-01-31
  • 조회수 422

 

 영화 속 좀비들은 느리고 멍청하다. 간혹 뛰거나 날아다니는 좀비들이 있긴 했지만 입에서 침이나 질질 흘리는 존재라는 점에선 동일했다. 나 역시도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익숙해 있었기에 실제 좀비가 나타났을 때도 별 걱정 안 했다. 까짓 거 도망친 뒤 남은 사람들끼리 반격에 나서면 될 거 아냐. 숫자만 믿고 덤비는 놈들이 뭘 할 수 있겠어. 이것이 큰 착각이었단 건 오래지않아 드러났다. 좀비는 똑똑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20xx년 9월 10일 좀비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워낙 역사적인 날이라 다들 기억한다. 처음 좀비가 나타났을 때는 그리 똑똑하지 않았다.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얼굴로 두 팔을 쭉 뻗고 사람들을 물어뜯으려는 게 딱 영화 속 좀비 그대로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인지 쉽게 알아봤고 대응도 재빨리 이루어졌다. 훌륭한 영화 한 편이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방어하기 좋은 곳마다 거점을 만들어두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물론 도청 걱정은 전혀 안 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무기 보유 상황, 거점별 인원수, 방어 상의 취약점 등 정보를 교환하며 놈들이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올 테면 와봐라. 인간의 힘을 보여주마. 수가 많아봐야 얼마나 많겠냐. 총알은 충분하다. 당시 파악된 좀비 수는 국내에만 5백만 정도였다. 재빨리 대응하긴 했지만 손실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5백만은 전체 인구수로 따지면 10% 밖에 안 된다. 좀비들을 제거하는데 드는 대가치고는 싸다.


 우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좀비가 으으, 소리를 내며 쳐들어오기를. 허나 아무리 기다려도 좀비는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는 점차 초조해졌다. 놈들은 올 생각이 없는 걸까? 우리가 먼저 공격해 들어가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좀비가 한 마리 나타났다. 그 좀비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 침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쭉 뻗고 두 발로 당당히 걸었다. 그랬기에 그 자가 기지 코앞까지 왔을 때까지도 좀비인 걸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찾아왔거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몰골이 초라하단 점에선 생존자나 좀비나 마찬가지니까.


 뒤늦게나마 그 자의 정체를 깨닫고 총알을 날리려는 순간 그 자가 말했다.


 “너희들에게 할 얘기가 있다. 난 좀비들의 대표로 왔다.”


 세상에, 좀비가 말을 하다니. 발음 하나 틀린데 없는 뚜렷한 목소리였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너희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웃기지 마. 니들 같은 괴물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네 대가리를 박살내기 전에 썩 꺼져!”

 보초를 서고 있던 동료가 받아쳤다.

 “모습은 다를지언정 우리의 뿌리는 하나다. 서로 다툴 필요가 없다. 너희들의 대표를 만나게 해다오. 전할 말이 있다.”

 “네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지 어떻게 알아? 방심한 틈을 타 대장님을 감염시키려는 거 아냐?”

 “난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 원한다면 입만 빼고 모조리 묶어도 상관없다. 여차하면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으면 되잖나?”


 상부에 그 자가 온 걸 알리고 처분을 기다렸다. 곧 이어 그 자를 데려오란 명령이 떨어졌고 그 자는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대장과 대화를 했다. 어떤 얘기를 나누고 있을까 무척 궁금했지만 엿듣진 못했다. 잠시 후 그 자가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이 멀쩡했다. 게다가 건드리지 말고 보내주란 명령까지 내려왔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방송이 나왔다. 대장이었다. 목소리는 힘이 없고 축 쳐져 있었다.


 “우린 항복했습니다. 놈들에게 저항해도 소용없으리란 판단 하에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놈들은 우리의 약점을 모조리 알고 있습니다. 주변의 기지들 또한 대부분 제압당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좀비들은 여러분에게 손을 대지 않을 겁니다.”


 충격적인 패배선언에 기지는 혼란에 빠졌다. 집에 가게 됐지만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현실을 부정하려 할 뿐이었다. 훗날 듣게 된 말에 따르면 좀비들은 월등한 전략과 전술로 기지들을 하나하나 손에 넣었다. 사람들이 미처 고려하지 않은 방법들인데다 약점까지 속속들이 파악당해 이기려야 이길 수가 없었다. 좀비가 멍청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었을지도. 하지만 이건 가정일 뿐이다. 세상은 좀비의 손에 넘어갔다.


 전쟁 아닌 전쟁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는데 좀비와 사람이 뒤섞여 있는 형국이었다. 직장 동료 중 일부는 좀비고 일부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좀비였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난감해했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군사력은 좀비들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아마 사람들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좀비들을 쏴 죽였으리라.


 좀비 세상이 됐다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좀비들은 신사였다. 좀비들이 먼저 싸움을 거는 일은 없었다. 좀비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게 된 이후 무수한 주먹다짐이 일어났는데 죄다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건 것이었다. 물론 승자는 대게 좀비였다. 좀비는 보통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지녔다. 열 사람쯤은 달려들어야 좀비 한 명을 상대할까 말까였다. 소란이 잠잠해진 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단 인식이 널리 퍼진 뒤였다. 

 

 좀비들은 사람들의 권리를 대우해주었고 힘이 있다 해서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인당 1표씩 행사하는 건 사람이나 좀비나 마찬가지였다. 원한다면 누구든 선거에 나갈 수 있었고 실제 의원 중 소수는 좀비였다. 허나 이들은 좀비가 되기 전에 의원이 된 자들 대부분이고 선거에서 좀비가 뽑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람들은 좀비가 머리 위에 서는 걸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표했다. 그 결과 사람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곤 했다. 겉으로나마 보이는 우세에 사람들은 안심했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과 좀비의 거주지가 분리되었다. 물리거나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감염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좀비를 꺼렸다. 때론 갖은 구실로 좀비들을 쫓아내기도 하고, 때론 스스로 나가버리면서 예전엔 친구이고 가족이었던 이들과 작별을 고했다. 나 역시도 좀비가 된 부모님을 피해 낡아빠진 반 지하에 웃돈을 얹어가며 가까스로 들어갔다. 얼굴 손발 할 거 없이 거무죽죽해져버린 부모님을 예전같이 대하긴 정말 힘들었다. 겉모습은 비슷했지만 그들은 이미 내가 아는 부모님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도, 행동도 모두 바뀌었다. 잔혹하리만치 냉정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그들을 보노라면 흡사 다른 생물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면 나도 감염될까봐 두려웠다. 군데군데 나 있는 검은 반점은 혐오 그 자체였다. 때때로 그것을 칼로 파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검은 반점이 모든 일의 원흉처럼 생각되곤 했다.


 집을 나왔지만 여전히 회사엔 좀비들이 있었다. 수많은 고용주들이 좀비들을 잘라버리고 싶었겠지만 직장과 학교 내 차별 금지법 때문에 손대지 못했다. 사실 혐오감만 빼면 좀비들은 문제될 게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탁월한 능력 덕에 사람들보다 몇 배의 성과를 내곤했다. 효율만 따지면 좀비 하나를 쓰는 게 사람 5명을 쓰는 것보다 나았다. 허나 사람들은 좀비가 실적을 압도적으로 거두면 거둘수록 좀비를 두려워하고 증오했다. 기회만 있었다면 좀비들을 싹 쓸어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허나 사람들은 무력했다. 좀비들이 군사력을 놓지 않은 건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다.


 좀비와 사람이 분리된 곳은 체육계정도였다. 신체적 능력 차이가 워낙 커서 좀비 보유수에 따라 승패가 갈릴 정도였다. 곧 선수들은 대대적인 파업을 했고 마침내 모든 운동 경기는 인간들만의 리그와 좀비들만의 리그로 나뉘었다. 축구의 경우 1년에 한 번씩 리그 챔피언끼리 대결을 펼치기로 결정을 했으나 성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은 공공연한 패배를 싫어했다.


 다른 데도 문제가 많았지만 특히 학교는 문제가 심각했다. 좀비 학생과 사람 학생의 성적 차가 너무도 완연하여 시험을 보는 의미가 없었다. 좀비 학생들은 며칠 배우지 않고도 외국어를 술술 읊어댔다. 보통 학생이 한 달은 걸릴 책을 이틀이면 떼었다. 우수한 학생들도 좀비 앞에서는 열등생이 되었고 어떤 과외도 학원도 소용없었다. 격차를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컨닝 뿐이었다. 분리 교육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 입학정원도 인구 비례로 해야 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허나 법이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자 사람 학생들은 좌절감에 빠져 성적이 더 떨어졌다. 이에 학부모들은 초조해졌다. 몇 몇은 좀비가 되는 건 어떨까, 하는 유혹에 빠졌다. 실제로 가장 멍청한 좀비도 가장 똑똑한 인간보다 나았다. 결국 몇몇 학부모들은 실수를 가장해 자식을 좀비로 만들었다. 물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은 곧 예전의 위치를 회복했다. 허나 이 사실이 드러나면 원래부터 좀비였던 이들보다 큰 반발을 샀다.


 사람들은 스스로 좀비가 된 사람을 경멸했다. 원치 않게 좀비가 된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고 추잡한 생물이 되려하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인간을 버린 그들이야말로 적보다 더한 적이었다. 어찌 바이러스 따위에게 자신을 내맡길 수 있단 말인가. 좀비에게 향했을 분노가 배신자들을 향했다. 배신자들이야말로 죽어 마땅한 존재란 의식이 팽배했다. 내심 좀비가 되고 싶었던 사람도 주위 사람이 두려워 내색도 못했다. 사람들은 앞장서서 지하단체에 정보를 팔았다. 지하단체는 앉은 자리에서 다 만든 음식을 떠먹기만 하면 됐다. 무수한 배신자들이 죽어나갔고 지하단체는 연일 소통됐지만 새로운 단체가 매일매일 결성됐다. 그들은 영웅이고 독립투사였다. 그들이 있는 한 좀비들을 몰아낼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었다.



 상황이 급변한 건 좀비를 연구한 결과가 널리 퍼지면서부터였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뇌의 시냅스가 뻥 뚫려버린다. 그로 인해 정보 처리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며 이전보다 몇 배나 되는 정보량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뇌가 과부하를 일으켜 펑 터져버렸겠지만 좀비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는 걸 막기 위해 항상성을 유지하려 한다. 요컨대 바이러스가 몸을 훨씬 단단하게 만든단 소리다. 이는 뇌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적용되는 내용이었다. 좀비들이 사람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보여준 것도 이 때문이다. 수명 또한 평균 수명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질병과 신체손상에도 강했다.


 물론 바이러스가 완벽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감염 초기에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5~8일 정도 강한 공격성이 발현된다. 이땐 의식이 없어지고 타인을 물어뜯고 싶은 욕구만이 남는다. 바이러스가 몸을 장악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열흘 정도가 지나면 의식을 완전히 되찾게 되고 주도권은 바이러스에서 인체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0.001%의 확률로 영원히 의식을 잃어버리게 된다. 뇌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될 경우 생기는 문제였다. 극히 예민한 신경을 지닌 사람에게나 일어날까한 일로 무시해도 좋을만한 확률이었다.


 좀비가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게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눈에 뻔히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분석된 연구 결과는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공황에 빠졌다. 자살률이 1년 전보다 50%나 증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가진 않았다.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쉽사리 변해갔다. 몇몇 이들이 앞장 서 좀비가 된 게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기 위해, 부를 얻기 위해 좀비가 됐다. 일단 좀비만 되면 사람들보다 압도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몸이 거뭇거뭇해지는 건 조금 불쾌하지만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보단 나았다. 다들 하는데 나만 빠져서야 되겠냐는 심리도 한몫했다. 처음엔 지하단체도 전국적으로 늘어만 가는 변절자들을 처단하려 애썼다. 허나 수가 너무도 많은데다 단체 내에서도 좀비가 되려는 이가 생겨나고, 테러를 해도 무슨 소용 있겠냐는 회의론마저 생겨나자 은근슬쩍 활동을 멈췄다.


 그나마 있던 억제제마저 없어지자 좀비화 속도는 하늘 끝까지 치달았다. 이쯤 되자 정부는 정해진 장소, 그러니까 보건소에서만 좀비가 될 수 있게 했다. 공격성이 큰 초기 감염자 수가 많아지면 각종 기물을 파손할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연일 보건소는 만원이었다. 하루라도 늦게 좀비가 되면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온갖 빽과 뒷돈을 써가면서까지 좀비가 되려했다. 점차 좀비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어갔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무실엔 나말곤 멀쩡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반년 전만해도 좀비는 4~5명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반대로 됐다.


 “이 대리. 자네도 얼른 변태를 하지 그러나?”


 거무스름한 얼굴을 한 김 과장이 말을 걸어왔다.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다.


 “아무래도 무서워서요. 잘못될 가능성이 있잖습니까?”


 “구 인간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힘들군.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확률에 벌벌 떨다니. 아무쪼록 원하는 대로 하게.”


 “예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평균적인 좀비의 작업량을 기준으로 일이 할당되기에 난 항상 허덕였다. 매일 같이 야근을 하면서도 일을 다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될 수만 있었다면 나도 망설이지 않고 좀비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난 항체를 보유했다. 전 인류에 10명 있을까 말까한 바이러스 항체 덕에 좀비가 되지 못했다. 만일 좀비가 영화 속 그대로였다면 인류를 구원해줬을지도 모르는 항체는 쓸 데가 없었다.


 12시를 한참 지나서야 집에 들어갔다. 채 5시간도 못 자고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했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자 TV를 틀었다. TV에선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최근 이원화 됐던 리그는 하나로 통합되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다시 질 높은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경기 규칙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선수들 몸놀림은 완연히 변했다. 선수들은 한쪽 골대에서 맞은 편 골대로 휙휙 날아다녔고, 공은 맞으면 몸이 뚫릴 것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초 단위로 변하는 TV 화면을 따라잡느라 눈이 아팠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피곤해질 정돈데 관중들은 뭐가 좋은지 연신 환호했다.


 좀비라고 해서 똑같이 운동신경이 뛰어나진 않았다. 같은 좀비라도 보통 좀비와 운동선수는 움직임은 엄연히 달랐다. 사람일 때 운동을 잘했던 이는 좀비가 돼서도 운동을 잘했다. 때문에 몇 몇을 제외하고 세계적인 선수는 여전히 세계적인 선수로 남았다. 초기에 빠르게 좀비가 된 이들만 약간의 혜택을 보았을 뿐이다.


 하나로 통합된 건 운동 경기만이 아니었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졌던 가족과 친구들이 감격의 재회를 했다. 동시에 사회 곳곳에 퍼져있던 적대감도 서서히 사그라졌다. 급감한 범죄율 덕에 경찰들은 한결 편해졌지만 범죄자가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여전히 있었다. 기실 좀비가 나타나기 이전 범죄율과 비교해보면 딱히 낮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것을 인류가 진화한 증거라 생각했다. 좀비 바이러스는 신의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발달된 지성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급격하게 변한 자신을 보며 불안해했다. 좀비가 된 게 정말 옳은 일일까?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건 아닐까? 대부분의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던 시기였고 종교계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종교계는 바이러스가 신이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하는 것이며 바이러스를 통해 한 단계 신에 더 다가갔다고 주장했다. 무신론자들조차 종교계의 주장을 들은 뒤 위안을 받았으니 원래부터 신자였던 이들은 어떨까. 광신자의 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갔고 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신의 말씀’을 거부한 이로 위협 받았다. 광신자들은 그들의 생명을 위협했으며 강제로라도 ‘새로운 육체’를 갖도록 했다.


 나의 경우는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 벌써 수 명의 항체 보유자들이 신을 따르지 않은 죄로 불타죽었다. 궁지에 몰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둘 뿐이었다. 자살하거나 좀비인척 하든가. 난 후자를 택했다. 겉보기에 좀비와 사람은 피부색만 다르다. 온 몸이 거무퇴퇴하며 진한 검은색 반점이 군데군데 나 있게 좀비다. 약간은 썩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피부랄까. 이를 완벽히 재현하기 위해 온 재산을 쏟아 부었고 특수 분장에나 쓰일 법한 물품들을 손에 넣었다. 회사엔 변태 시술을 받을 거라 일러두곤 자신이 붙을 때까지 집안에서 연습만 했다.


 열흘 뒤 나는 좀비가 되었다.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온 몸 구석구석까지 새겨진 문신과 칠은 물이 닿아도 벗겨지지 않았다. 회사에 도착하자 동료들이 환영해주었다.


 “자네도 이제 새롭게 태어났구먼. 축하하네. 기분이 어떤가?”

 “당황스럽고 잘 적응이 안 되네요.”

 다른 이들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 질 걸세. 그때까지만 조심하게나.”

 “예에.”


 그간 밀린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퇴근시간까지 끙끙댔지만 반에 반도 못 끝냈다. 야근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망설이는 중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김 대리님, 오늘 저녁에 뭐하세요?”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박 양이었다. 피부 상태만 멀쩡했으면 미인 축에 속했을 여자다.


 “계획은 없는데. 왜?”

 “영화 보러 가실래요? 표가 남아서요.”

 좀비 여자와의 데이트라. 썩 내키진 않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어차피 야근 몇 시간 한다고 다 끝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번 기회에 좀비 여자를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하, 영광이죠. 어디로 모실까요?”

 “별로 안 멀어요. 여기서 20분만 걸으면 되요.”

 좀비에게 20분 거리면 내게는 서너 시간은 거리다.

 “숙녀 분을 걷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로비에서 기다려요. 차 가져올 테니.”


  좀비들은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기에 도로는 한산했다. 그들에게 10, 20km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극장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영화 제목이 뭐죠?”

 “‘세상의 종말’이란 영화에요. 정말 신나고 재밌데요. 꼭 보고 싶었어요.”

 “시작하려면 30분이나 남았네요. 뭐 좀 먹을래요? 저녁 안 먹었잖아요.”

 그녀가 동의했기에 가까운 도넛 가게로 들어갔다. 수십 개의 도넛이 놓여있어 뭘 고를지 몰랐다. 결국은 그녀와 같은 것을 골랐다.

 “맛이 왜 이래?”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상한 물고기 맛이 났다.

 “이상해요? 난 맛있는데.”

 순간 좀비의 미각이 나와 다르단 걸 깨달았다. 찡그러진 표정을 환하게 바꾼 뒤 맛있는 척을 했다.

 “다시 먹어보니 괜찮은 걸. 익숙지 않아서 그랬나봐.”

 “하나씩만 더 먹을까요? 안 되는데. 이럼 살쪄.”


  그녀는 갈등하다 끝내 한 개를 더 먹었다. 혼자 먹기 미안했는지 내가 괜찮다고 사양하는데도 굳이 하나를 집어줬다.


 “영화 곧 시작하겠네. 얼른 들어가자.”


 영화 보기 전엔 소변을 봐야한단 핑계로 화장실에 가 남은 도넛을 뱉었다. 저절로 욕지기가 올라왔지만 간신히 진정시키곤 아무렇지도 않은 양 자리로 돌아왔다. 지루한 광고가 계속된 뒤에야 영화가 나왔다. 돈 주고 광고를 보는 건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배우들의 피부는 하나 같이 까무잡잡했다. 미의 기준이 바뀌었기에 사람들은 피부가 검으면 검을수록 선호했다. 덕분에 할리우드는 하나 같이 흑인 스타들이 점령했고 인종갈등은 사라진지 오래다.


 배우들이 대화를 할 때는 그럭저럭 내용을 따라갈 수 있었으나 액션씬이 나올 때면 눈알이 아팠다. 배우들은 실제 좀비들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일반인도 할 수 있는 걸 보여주는 영화는 시시하다. 특별한 걸 보여줘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 더 빨라졌다. 그러다 문득 영화 속 모든 장면이 특수 효과처럼 느껴졌다. 모두 꾸며진 일이며 현실은 따로 있다. 영화관을 나오면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재밌었죠?”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영화관에서 나와 가까운 음식점으로 갔다. 저녁만 먹긴 늦은 시간이었기에 술을 한잔 곁들였다. 차가 더 필요 없으리란 걸 취한 척 하는 그녀를 보자 알았다. 좀비들은 여간해선 취하지 않는다. 모든 장기가 기존 인간의 3~4배 수준으로 강하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바이러스 덕분이다. 헌데 그녀는 세 잔도 마시기 전에 취해버렸다. 지능은 달라져도 관습은 쉬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취한 그녀를 업고 여관으로 갔다. 여관방에 들어서자 그녀가 깨어났기에 먼저 씻도록 했다. 난 혹시라도 칠이 벗겨질까 두려워 물만 묻혔다.


 욕실에서 나오자 탄탄한 몸매가 날 맞이했다. 혐오스럽던 흑색 반점들도 매혹적으로 보였다. 먼저 유혹해 오는 여자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감싼 얇은 타월을 벗기곤 일을 시작했다. 좀비와 자는 건 처음이라 살짝 긴장도 됐지만 최선을 다했다. 한껏 정열을 불사르고 침대에 드러누우려는데 그녀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벌써 끝났어?”


 벌써라니? 긴 시간동안 한 것 같은데. 시계는 한참 지나 있었으나 그녀의 표정은 불만족스러웠다. 순간 좀비는 무얼 해도 사람보다 오래 할 수 있단 걸 깨달았다. 좀비의 세계에서 난 조루였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미안.”


 무의식중에 사과를 했다. 실망한 그녀를 내버려두고 도망치듯이 여관을 빠져나왔다. 미처 그녀의 기분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다음날부터 나와 그녀는 업무에 필요한 얘기 외에는 말도 섞지 않았다. 난 계속 일만 했다. 매일 매일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나날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줄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내 업무능력은 부각이 됐고 날마다 좀 더 잘해보라는 질타를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결국 오래지 않아 회사에서 짤렸다. 비록 사람들이 좀비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경쟁했고 모자란 사람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난 우선적으로 조정해야 할 대상이었다. 무능력자로 소문이 났기에 이직도 못했다. 날이 갈수록 내 직업 수준은 내려갔다.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계약직에서 하루걸러 하루 일하는 일용직으로.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쓸데가 없었다. 어디도 나를 원하는 데는 없었다. 남은 건 구걸뿐이었다.


 매일 지친 몸을 좁은 잠자리에 뉘일 때면 난 기도한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내 몸이 변해있기를. 아름답고 환상적인 검은 반점이 돋아나 있기를. 그래서 구걸 따위는 집어치우고 회사로 돌아갈 수 있기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눈을 떠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난 여전히 혐오스런 인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