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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 작성일 2009-12-29
  • 조회수 405

 나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한달에 서너번은 꼭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관람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영화관에서는 팝콘따위를 팔아서 영화를 볼 때 ‘아사삭’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일까. 왜 자기집 안방이나 되는 듯이 ‘저런 쯧쯧. 저러면 안되지.’라고 말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있는 것일까. 어째서 저 커플은 여관으로 가지 않고 영화관으로 왔을까. 왜 꼬마들은 영화 내용에 열중하지 않고 ‘엄마, 저건 왜 저래요. 아빠, 쟤네들이 뭐하는 거예요?’라고 묻는 걸까. 왜 옆사람은 자꾸 핸드폰 액정을 만지작 거리는 걸까. 어두운 극장에서 모르스 부호라도 치는 것처럼 깜빡깜빡! 내 뒤에 앉은 사람은 내 등받이를 발로 치지 않고서는 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일까? 시간지켜 들어오지 않고 도입부에 극장에 들어와 화면을 가려도 좋은건가? 좌석표가 분명히 쓰여있는데 자기자리 아닌 곳에 앉았다가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화면을 가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때마다 외치고 싶다. 난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라고! 하지만 생각뿐이고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조용히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영화관 밖으로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실제로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저 사람들은 자기 돈을 내고 들어왔으므로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내 돈 내고 들어왔는데 왜 나는 참아야 하는 것일까. 이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히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늘도 난 영화를 보려고 아침 일찍 서둘렀다. 나는 항상 조조를 본다. 싸게 볼 수 있다는 이점 외에도 진상 관객을 만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내 작가라는 직업은 그런 일을 가능케한다. 작가란 좋은 직업이다. 몹시 배고프다는 것만 빼면…… 연애하기도 힘들고…….

어쨌든 오늘은 새로 생겼다는 극장에 가볼 생각이다. 새로 생겼으니 의자는 푹신하고 좌석간의 높낮이는 잘 조절되어 있을 것이다. 음향도 좋을 것이고, 여직원들의 제복도 이쁠 것이다.

영화관은 새로지은 건물답게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직원들조차 멋졌다. 새 영화관에 대한 만족한 기분으로 매표소 위에 반짝이는 상영중인 영화들의 안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원래 영화를 볼 때, 최소한의 기본 정보만 갖고 본다. 감독이나 배우가 누구라던가 하는 것도 영화관에 와서야 확인한다. 스포일러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은 영화게시판에 들어가서 스포일러를 당했네, TV의 영화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줄거리를 다 알아버렸네 소란을 피우는데 애초에 그런데 안들어가고 안보면 그만인 것이다. 나처럼 영화를 보겠다고 작정하고 나서 영화관에 와 팜플렛을 뒤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중 맘에 끌리는 것을 보면 된다. 물론 나쁜 영화에 걸릴 때도 있다. 그런 것은 운이 좀 나빴을 뿐이고 그런 것도 반복하게 되면 질나쁜 영화를 피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요새 영화는 질이 나쁘면 나쁘다고 팜플렛에 대놓고 광고하는 이상한 재주를 갖고있다. 선택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쨌든 나는 뭘볼까 망설이는 중이다. 그러다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흔히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면 하나씩 로얄 관이 있다. 다른 일반관보다 영화비를 더받고 고급 의자에 널찍한 자리, 와인까지 서비스하는 그런 곳이다. 주로 기념일을 맞은 연인이나 부부들이 이용한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로얄 관은 좀 이상하다. 보통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영문자를 붙여 샤롯데 관이니, 스위트 관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기 마련인데 이 곳의 로얄 관은 이름이 <묵(黙)의 관>이라는 한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묵의 관>만의 표를 파는 곳인 매표소로 가서 물어보았다.

“묵의 관이 뭔가요?”

직원은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희 영화관만의 서비스로 조용하고 안락한 관람을 지향하는 곳입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서비스로 관객분들이 이상적인 환경에서 영화를 관람하므로서 영화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간의 연대감을 중시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더 많은 특혜를 드립니다.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간략한 설명이었다. 어쩐지 흥미가 갔다. 평소에는 이런 곳에 전혀 고개를 돌리지 않는 나였지만 <묵의 관>이라는 이름에 끌려 이곳에서 영화를 보기로 작정했다. 마침 상영하는 영화는 요즘 인기를 달리고 있는 영화였다. 아무리 영화관에 와서야 고른다고 해도 인기있는 영화가 뭔지 정도는 알고있다.

“한번 이용해 보고요. 일단 어른 한 장이요.”

나는 지갑을 내밀어 일반표보다 두배의 표값을 지불했다. 그 때 매표소 직원의 말이 묘하게 귀에 와닿았다.

“죄송합니다만, 일체의 음식물 반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팝콘과 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원래 영화보면서 뭐 먹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처음 느껴보시는 관람문화가 되실 것입니다.”

표를 받았다. 시작시간은 20분 후였다. 나는 다른 영화 팜플렛들을 뒤적이며 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나는 <묵의 관>입구에 줄을 섰다. 관람객은 나밖에 없었다. 입구에 선 직원이 표를 받으며 뜻하지 않은 말을 꺼냈다.

“지금 핸드폰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묵의 관에서는 핸드폰 이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오, 맘에 들어. 나는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껐다.

“네, 들어가십시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혼자 영화관을 전세낸 기분이 들겠군하는 생각이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 좌석을 찾았다. 예상대로 좋은 의자였다. 팔걸이도 두 개였다. 팔걸이에 콜라놓는 구멍이 없었다. 정말 콜라나 팝콘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구나. 더욱 마음에 들었다. 광고가 끝나고 영화 예고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몸을 쭉펴고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예고편도 끝나고 영화관의 불이 꺼졌다. 이제 상영관 출입구 안내가 시작될 것이다. 영화관 전체 내부도가 나오고 화재가 날 시에는 어디로 나가시고 어쩌구저쩌구…….

“저희 영화관의 내부입니다. 입구는 화살표 방향에 있고 화재시 비상구를 이용할 때에는 녹색 화살표 방향으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시면 됩니다.”

흔히보는 영화관 내부 안내도가 스크린에 비쳐졌다. 안내가 끝나자 이쁘게 생긴 여직원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관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좌석에서 자세를 바로 해 주십시오. 허리는 의자 깊숙이 넣으시고 두다리는 꼭 붙여주십시오. 두 팔은 팔걸이에 올려놓아 주시기 바랍니다.”

뜻하지 않은 안내에 약간 놀랬다. 좌석에서 자세를 바로 하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시키는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촥!”

자동차 안전벨트같은 단단한 벨트가 튀어나와 단단히 내 허리를 휘감고 반대쪽에서 튀어나온 벨트와 이어지더니 철컥소리를 내며 잠겼다. 얌전히 모아진 발목도 갑자기 튀어나온 벨트에 의해 묶여졌다. 철컥. 나는 몸부림을 치며 외쳤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러나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팔걸이에서도 벨트가 촤악 소리를 내며 튀어나와 내 양 손목을 단단하게 옥죄었다. 철컥. 철컥.

“놔, 놔! 이거 놓지 못해? 이것들 당장 풀라고! 읍.”

더 이상 소리도 치지 못하게 되었다. 등받이에서도 벨트가 튀어나와 내 입을 가렸다. 나는 연신 읍읍소리를 내며 이 벨트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꿈틀 이상의 행동은 되지 못했다. 마치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같은 꼴이 되었다. 뭔지 모를 상황에 나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나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나를 꽁꽁 싸맨 벨트들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갖은 욕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이 놈들을 고소하겠어! 미친 놈들 아닌가. 이게 아까 말하던 이상적인 환경이고, 이걸로 관람객들간의 연대감을 조성한단 말이냐. 이 놈들, 죽여버리고 말테다. 그런 와중에 영화는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 풀려나려고 꿈틀거렸다. 이런 상태로 영화를 보여준단 말이지. 정말 대단하다. 이게 바로 <묵(黙)의 관>인거군. 나는 움직이기를 포기했다. 그러자 영화가 눈에 들어왔고 나가서 이 빌어먹을 영화관을 고소하든 어쩌든 지금은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나는 묶여있다는 사실도 잊고 영화에 몰입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인물들도 매력있었고 이야기는 흡인력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내가 영화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조차…….

영화가 끝났다. 화면에는 스텝롤이 올라가고 있었다. 입에 묶인 벨트가 풀렸다. 그리고 양손, 허리, 발목에 묶인 벨트가 철커덕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멍한 상태이기도 했고, 원래 스텝롤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화면이 까매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문으로 걸어갔다. 남자직원 한명이 문에 서서 나를 향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좋은 시간 되셨습니까?”

나는 남자직원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여기 회원가입을 하면 무슨 혜택을 줍니까?”

“네, 일반 회원은 마일리지를 쌓으시면 영화를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고, 정기적으로 저희 영화관의 소식을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묵의 관 회원이 되시면 관람료를 10% 할인해 드리고 있고, 묵의 관 시사회에 초대받으실 수 있습니다. 시사회때 기자들이 와서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사용해 관람에 불편을 드리는 일 같은건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회원가입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느낌에 아마도 이 영화관을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