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 작성일 20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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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
1.
느글느글한 팝콘 냄새가 집안 가득 진동했다. 못난 나의 아버지는 동물원의 우랑우탄처럼 소파에 파묻혀 있었다. 우둔하게 팝콘을 우물거린다.
저렇게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토요일 오전을 온전하게 흘려보낸다. 끈덕지게 한 프로그램을 보는 일도 없다. 흡사, 기계 부품의 일부인양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없이 채널을 돌려댈 뿐이다.
거실로 내려가자 집 안 가득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팝콘 냄새가 내 어깨 위로 올라탔다. 그 움직임은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을뿐더러, 자연스럽다.
신경질적으로 발을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노쇠한 아버지는 그런 내 분노를 감지해야할 감각조차 무뎌져버린 상태다.
빨갛게 녹이 슨 톱니바퀴 같다.
나는 단숨에 거실을 통과해 거대한 팝콘 덩어리의 온상처럼 변해 있는 집을 빠져 나갈 작정이었다. 바로 그 직전이었다. 천장에 붙이는 파리 잡는 덧처럼, 엄마의 끈끈한 목소리가 내 목덜미를 잡아챘다.
“어디 가니?”
나는 거짓말을 했다.
“친구하고 약속이 있어요.”
“저녁은?”
“먹고 올 거예요.”
엄마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고여 있다. 엄마는 늘 저런 표정을 하고 있다. 부족을 위해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양이라도 되는 듯하다.
여동생 민지가 아버지 옆에 앉아 외계인이니, 우주니, 화성이니 하는 책을 홀릴 듯 보고 있었다. 이런 집구석에는 이제 넌덜머리가 났다.
도망치자.
“꼭 나가야겠니? 이게 다 무슨 일이라니.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꽃이라니, 세상이 너무나 흉흉하구나.”
엄마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작게 한숨을 토해냈다.
“얘야, 중요한 약속이 아니면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지 않겠니? 텔레비전에서는 안심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아이구, 아직도 거대 꽃이 저렇게 버젓이 남산 타워 옆에 뿌리내리고 있으니, 원.”
나는 간단히 엄마를 외면했다.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 구역질나는 집에서 나가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내게 보잘 것 없는 유전자를 대물림해준 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영원히 탈출하고 싶었다.
그때, 시체처럼 침묵하고 있던 아버지가 구깃구깃 뭉친 종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게 내버려 두구려. 거대 꽃이니, 인간에게 기생하는 꽃이니 해도 다들 저렇게 버젓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어. 별일이야 있겠어? 녀석도 이제 다 컸소. 대신, 너무 늦지는 마라.”
가엾게도,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여봐란 듯,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은,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아나운서와 기생화(寄生花)에 관련해 섭외된 생물학자의 모습을 비췄다.
신진수 박사가 설명했다.
“기생화는 전형적인 식물의 외관과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주생물에 기생생활을 하는 무척추동물, 즉 기생충의 습성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기생화는 인간의 장기에 뿌리내려 영양분을 흡수하는 내부 기생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이와 같이 줄기와 꽃자루와 꽃잎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 입 밖으로 빠져나온, 외부 기생의 형태도 동시에 취하고 있습니다. 숙주의 영양분을 모두 빨아들인 기생화는 외부로 나와 있는 머리로 적극적인 형태의 사냥을 시작합니다. 인간의 육체를 화분처럼 활용해 부족한 영양분을 안정적으로 섭취하는 것이죠.”
그의 설명대로 화면에 클로즈업된 기생화의 수술 부분에는 인간의 얼굴과 흡사한 이목구비가 형성되어 있었다.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연 김진수 박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현재, 기생화들을 모두 제거하긴 했습니다만, 한 번 더 거대 꽃으로부터 대량의 꽃가루가 방출지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거대 꽃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박사님께서는 어느 정도의 피해를 예상하고 있습니까?”
신진수 박사의 고목처럼 딱딱한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표정은 비장하다 못해 숙연했다. 그는 몸을 책상 앞으로 조금 기울였다가 다시 되돌리며 나직이 말했다.
“인류의 멸망입니다.”
못난 아버지가 아나운서를 대신하려는 듯 굵직한 신음을 토해냈다. 벌려진 입 안에서는 뭉개진 팝콘이 벌레처럼 바글거리고 있었다.
아나운서는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았는지 서둘러 뉴스 속보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네. 알겠습니다. 섭외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남산 타워 앞에 나가있는 박세형 기자와 연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세형 기자, 박세형 기자?”
화면은 남산 타워 옆에 뿌리내린 거대 꽃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어울리지 않게 혀를 끌끌 찼다.
“정말 기가 차는군.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어. 흉흉한 일투성이야. 정말 이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이대로 세상이 끝나 버릴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고. 정부 놈들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 저 박사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진실이야. 조금도 안전하지 않아.”
“그러게 말이에요.”
하고, 엄마가 들릴 듯 말듯 작게 맞장구쳤다. 여전히 자신만이 피해자인 듯한 표정을 하고선.
“뭐라도 해야겠어.”
아버지의 반복적인 그 말에 엄마는 또 의무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네, 그래야죠.”
“그래, 정말이야. 뭐라도, 뭐라도 말이야.”
자기 자신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또는 주문이라도 걸듯, 아버지는 그렇게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좋으실 대로.
아버지가 뭘 하든 나와는 관계없다. 못난 아버지가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 무엇을 구상하고 무엇을 계획하든, 결국엔 그 소파 위에서 팝콘 따위나 오물거리며 최후를 맞이할 거라는 걸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무엇을 얼마나 훌륭히 구상하든, 그것이 결국 그저 계획으로 그치고 말거란 걸 나는 알았다.
더구나, 이제 와서 그런 삐걱거리는 녹슨 몸뚱이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아버지의 다리에 듬성듬성 박혀 맥없이 꼬불거리는 다리털을 바라보다 조용히 현관문을 빠져 나갔다.
할 일없이 거리를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여전히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나는 또 지긋지긋해졌다. 나는 기척을 낮추고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에 돌아왔을 때도 텔레비전 채널은 뉴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묘한 걸 발견하고 말았다. 테이블 위에 지도, 잡지, 두툼한 서적 등이 놓여 있었다. 잡지와 서적은 모두 여행이나 피서지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토록 자주, 가족들이 소파 주위에 둘러앉는 일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테이블 위에 지도와 여행 관련 책들이 놓여 있는 것도 고대의 유물만큼이나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거대 꽃이 또 꽃가루를 뿌렸다. 그 꽃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고 정부가 인정했다. 미사일을 맞아도 끄떡없고. 정말 이대로 인류가 끝나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 아니, 분명 여기까지인 거겠지.”
그래서 뭐?
한심한. 그걸 이제야 안 거야?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하고, 요 며칠 면도를 하지 않아 다박수염을 한 아버지가 말했다.
“최후의 가족 여행이란다.”
어머니가 덧붙였다.
2.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은 마티즈에 올라탔다.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소파에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버지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은 데다, 마땅한 핑계거리를 찾지 못한 나도 결국 함께였다. 미리 여자 친구라도 만들어뒀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세상 가득 노랗게 물든 민들레 홀씨가 한 겨울의 함박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하늘하늘 떠오르기도 하고, 질량감을 갖춘 채 지면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세상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온몸으로 암시했다.
거리의 흙이 있는 거의 대부분의 틈새에 기생화가 뿌리내려 있었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도로의 외곽에 자리한 하수구 위에도, 깨어져나간 보도블록의 틈새에도, 금이 간 건물의 사이에도, 학교 운동장 위에도, 돌담길 사이사이에도 샛노란 색채를 발하는 기생화가 아름다운 얼굴을 태양을 향해 뻗어 올린 채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화분이 되어버린 시체들이 비틀비틀 다리를 절며 돌아다녔다.
아름다운 시체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별칭이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못난 아버지가 운전하는 마티즈가 서울 시내를 달려 나갔다. 다들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인지 그 흔한 버스조차 보이지 않았다. 간혹 보이는 자동차들은 신호를 무시하고 차선과 차선을 넘나들며 광기어린 질주를 계속했다. 또한, 도로를 벗어나 편의점을 들이박고 침입해 들어가 물건을 털기도 했다. 모두들 알고 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완전한 종말이라는 사실을. 이 낡은 마티즈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줄 것인가?
마티즈는 한강 다리를 가로질렀다.
“민지야.”
나는 언젠가 민지가 했던 말을 꺼냈다.
“정말 지구에도 끝이란 게 있는 거냐?”
“응. 있어.”
민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곧장 무언가를 덧붙이려 할 때였다. 마티즈가 속도를 천천히 늦추고 있었다. 민지가 말을 삼켰다. 신호등 앞에 아직도 질서를 지키고 있는 자동차 무리들이 정지해 있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때 갑자기 마티즈 보닛 위로 아름다운 시체 한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얼굴을 양 옆으로 활짝 펼치고 끼에에엑, 하는 비명을 질렀다. 그 안을 동글게 채운 송곳 같은 이빨에 오금이 저려왔다.
유리를 인식하지 못하는지 아버지를 향해 먹이를 낚아채려는 동작으로 몇 번이고 얼굴을 부딪쳐 왔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수십 마리의 아름다운 시체들이 우리 가족을 덮쳤다. 한 마리는 마티즈의 천장 위로 떨어졌는지 천장이 움푹 팼다. 가족들 모두 입을 모아 비명을 질렀다. 못난 아버지는 한 발 늦게 페달을 밞아 마티즈를 출발시켰다. 아버지가 핸들을 급격하게 왼쪽으로 틀자 보닛 위에 매달려 있던 아름다운 시체가 떨어져 나가 도로를 데굴데굴 굴렀다. 놈은 잠시 죽은 듯 침묵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손으로 몸을 툭툭, 목구멍으로 빠져나온 샛노란 꽃을 하늘로 높이 쳐든 채.
아버지가 속력을 올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아름다운 시체들을 들이박으며 전진했다. 아버지답지 않게 거칠게 마티즈를 몰아 신호등 일대를 빠져 나왔다. 대신 우리가 탄 마티즈의 뒤에 붙어 있던 신형 아반떼에 수십 마리의 아름다운 시체들이 달라붙었고, 시야를 잃은 자동차는 도로를 벗어나 가로등을 들이 박았다. 수십 마리의 시체들이 창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이 닥쳤다. 시뻘건 핏줄기가 토마토를 손으로 으깬 것처럼 덩어리져 창문으로 튀었다.
아버지가 마티즈를 멈춰 세웠다.
그때, 총성이 울렸다. 전투 경찰이 피범벅이 된 아반떼로 몰려드는 아름다운 시체들을 향해 K2 소총을 난사했다. 탄알은 금새 바닥났고, 전투 경찰은 리볼버 권총을 꺼내 놈들에게 겨냥했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아름다운 시체 한 마리가 와락, 경찰을 덮쳤다. 경찰의 머리가 가로등에 부딪쳐 피를 뿜고, 권총은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권총이 던져진 주사위처럼 아스팔트 도로 위를 톡 톡 튄다.
“저 권총을 가지고 가야겠어.”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운전석 문을 열려는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아버지였다.
“제가 갈게요.”
십 미터 거리였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열고 튀어나갔다. 시체 두 구를 허들 넘듯 뛰어넘고 권총을 잡았다. 그런 나를 발견하고 교복 차림의 아름다운 시체 한 마리가 뛰어왔다. 나는 옆으로 갈라진 아름다운 시체의 얼굴로 한 발을 쏴주고 마티즈로 냅다 뛰었다. 마티즈의 열린 문으로 몸을 던진다. 민지가 잽싸게 문을 닫았다. 아버지가 폐달을 밞았다. 흥분한 아버지가 차선을 마구 이탈해 속력을 올려댔다.
앞 유리에 그들의 녹색 체액이 끼얹어져 있었다. 그 위로, 하염없이 흩날리는 노란 꽃가루가 달라붙는다. 못난 아버지가 와이퍼를 가동시켰다.
우리를 실은 마티즈는 한참을 더 달린 끝에 서울 시내를 벗어났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연출되어 있었다. 완연한 정체의 꼬리가 고속도로의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다.
“맙소사.”
그 감탄사를 누가 내뱉었는지는 모르겠다.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떠나려 하는 것일까? 그곳으로 가면 인류의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1시간이 지났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한물 간 마라토너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어쩜 이리도 비슷한 생각들을 할 수 있는지. 민지가 참지 못하고 인상을 구겼다.
“싫어! 아버지가 어떻게 좀 해!”
소용없다.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아버지가 아니다. 넌 아직 어려서, 덜 겪어보았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가족의 바람이나 기대처럼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아버지가 결단코 아니었다. 그저 못나디 못난 아버지일 뿐이다.
“아버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니.”
“그래, 민지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꾸나.”
결국 이런 식으로 끝나고 만다. 도로의 중간쯤에 끼어 앞으로 나아가지도, 다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인류의 멸망을 맞이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너그럽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쉽게 순응해 버리는 아버지였다.
노랗게 물든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처럼 주위가 캄캄해졌다. 시간만이 무심한 시선으로 우리를 흘겨보며 피난을 갔다.
앞차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정체된 차 안에서 3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마티즈를 조금도 앞으로 몰고 있지 않았다. 앞 자동차와의 거리가 꽤나 멀찍이 벌어져 있었다. 뒤에서는 한껏 거칠어진 욕설과 경적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나는 못난 아버지를 노려봤다.
한참만에야 아버지가 입을 뗐다.
“저기 보이니? 지금 저 외길로 빠질 거다. 그러니 다들 차문이든 손잡이든 단단히 붙들어 매!”
“그만 두세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내 항변에도 아랑곳 않고 못난 아버지가 페달을 밞자 마티즈가 급속히 속도를 올리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올라가기 시작한 속도계의 바늘이 순식간에 백 킬로미터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가속도가 붙은 마티즈가 고속도로의 가드레일을 뚫고 부웅,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민지가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질렀다.
허공에 떠오른 마티즈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갓길 위로 덜커덩 떨어졌다. 오목하게 솟아있는 바위 위를 왼쪽 바퀴가 올라탔고, 그 여파로 차체가 뒤집힐 듯 크게 휘청거렸다. 그대로 전복되고 말 것 같았다. 그러나, 못난 아버지가 어처구니없게도, 믿기 어렵게도, 재빠른 동작으로 핸들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틀었고, 마티즈는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며 외길을 똑바로 달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빗방울이 툭툭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족들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못난 아버지는 가슴 대신 산발이 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다들 괜찮니?”
쏴아아, 빗줄기가 굵어졌다. 빗줄기가 자갈길을 찰싹찰싹 때렸다. 늦은 장맛비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민지가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우리 아버지 맞아?”
그러나 나는 생각이 많이 달랐다.
“우리를 다 죽일 작정이에요? 차가 완전히 전복될 뻔 했어요.”
“뭐 어떠냐? 그래도 이렇게 모두들 무사하지 않니? 나의 소중한 가족이다. 그 가족들과의 마지막 시간을 그런 식으로 허망이 소비해 버릴 순 없었다. 가장으로서 최후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
“그래. 모두 다치지 않았으니 된 거야.”
엄마의 말에 못난 아버지는 스스로를 다독이듯 한 번 더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그래. 이대로 된 거다.”
마티즈는 쏟아지는 비로 인해 질퍽해진 외길을 난폭하게 달려 나갔다. 빗줄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굵어져갔다. 다듬어져 있던 길이 점점 사라지고 들판과 함께 비에 젖어 몸을 웅크린 작은 산들이 드러났다. 더구나 길은 이제 우리가 가야할 계곡과는 전혀 반대의 길로 접어들어 있었다. 가면 갈수록 구불구불한 진흙탕 길만 계속됐다. 엄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금당계곡으로 가기는 힘들 것 같네요. 비도 이렇게 많이 내리고 있고.”
등을 살찐 고양이처럼 구부린 아버지가 입술만 작게 움직여 대답했다.
“무슨 소리.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러. 당신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계곡이지 않소.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까지 반드시 가보일 테니까. 당신도 절대 포기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럴까요?”
애틋하시군.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이다. 운전을 해보지 못한 내가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계곡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절대로 즐겁다거나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없을 거다. 그럼에도 못난 아버지는 끈덕지게 달려 나갔다. 마치 이제까지 엄마에게 해주지 못했던 일들을 모두 보상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1시간 가까이 달려온 것 같다. 길고 긴 침묵만 흘렀다. 빗방울은 점점 잦아들고 있었지만, 바람이 거셌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아니, 물었다.
“여긴 대체 어디냐?”
우리는 길을 잃었다.
엄마가 주변을 살폈다.
“그러게요.”
“운전한 건 아버지잖아요.”
“역시 네 엄마한테 맡길 걸 그랬나? 내 말에 너무 심취해 버린 모양이다. 그저 이어진 길을 따라 곧장 달려왔을 뿐이야.”
엄마가 앞의 공터를 가리켰다.
“여보. 일단 저기서 멈추는 게 좋겠어요.”
“알겠소.”
공터 안 가득, 야생초와 길게 뻗어 올라간 편백나무가 둥글게 뿌리내려 공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공터에서 잠깐 숨을 돌리기로 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목이 좀 마른데. 뭐 마실 것 좀 없소?”
“있어요. 커피 드릴까요?”
“그러지.”
엄마가 준비해 온 음료수를 가방 안에서 꺼냈다. 아버지는 커피를, 민지는 초코우유를, 나는 코카콜라를 골랐다. 아버지가 커피 캔을 따 단숨에 꿀꺽꿀꺽 들이켰다. 반면 나는 고르긴 골랐지만, 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저 한 손에 코카콜라를 들고 손장난을 치며 허공에 빙글빙글 돌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민지가 공터의 한쪽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게 뭐지?”
노란 꽃들이 줄기를 뻗어 올린 공터의 구석에 소나타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몰스몰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우리 가족과 동일한 경로로 달리다 길을 잃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오래전부터 버려져 있던 자동차인지 구별할 도리가 없었다. 자동차 유리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고, 보닛은 방망이로 얻어맞기라도 한듯 움푹 찌그러져 있었으며, 범퍼는 멀찍이 떨어져나가 있었다.
“확인해 보고 올게요.”
평소 때의 나라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었겠지만, 내 가방 안에는 리볼버 권총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가방 안에서 권총을 꺼내 청바지 뒤축에 쑤셔 넣고 셔츠를 내렸다.
엄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만류했다.
“위험해. 가긴 어딜 가겠다고. 사람이 타고 있는 것 같지도 않잖니.”
“그래. 안 가는 게 좋겠다.”
아버지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기생화가 튀어나왔다. 벌려진 얼굴로 운전석 유리를 냅다 들이박았다. 송곳 같은 이빨에 찍힌 창문 유리에 길게 흠집이 생겼다.
“꺅!”
“으아악!”
가족들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튀었다.
놈이 재차 거칠게 얼굴을 부딪쳐 왔다. 한 번 더 부딪쳤다. 다음 순간, 유리가 얼음조각처럼 가늘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 번 더 부딪쳐 왔을 때는 산산조각이 나 깨져버렸다. 그 틈새로 후두둑후두둑 빗방울이 들이쳤다.
“아버지 머리 숙여요!”
기생화가 깨어져 나간 창문 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나는 소리치며 허리춤에 꽂아 두었던 권총을 꺼냈다. 놈의 이빨 안의 어둠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아버지의 얼굴로 녹색 체액이 촤악 튀고, 기생화의 얼굴은 둥그렇게 뚫린 채 뒤로 나자빠졌다. 총구 주위로 시큼한 화약 냄새와 함께 뿌연 연기가 흩어졌다.
젠장,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생화들이 마티즈 주변으로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다섯 마리. 게다가 그 중 한 마리는 사람의 몸 안에 기생을 한 상태였다. 십 대로 보였다. 창백한 얼굴의 목이 꺾여있는 소녀. 기생화에게 몸을 잠식당한 소녀는 비척거리며 마티즈 주변을 배회했다. 소녀의 입에서 줄기와 함께 샛노란 꽃잎이 솟아나와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음미하듯, 꽃잎을 단 얼굴을 한껏 쳐들고, 줄기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기생화 한 마리가 달려들어 또 얼굴을 들이 박았다. 이번엔 단숨에 뒷좌석 유리가 깨져 나갔다. 놈들이 민지를 마티즈 안에서 끄집어갔다. 민지의 허리를 말아 쥐고 허공으로 훌쩍 들어 올렸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마티즈에서 뛰쳐나가 권총을 기생화에게 겨냥했다.
공이가 뇌관을 친다!
타앙!
기생화가 구멍 난 호스처럼 핏줄기를 촤아악 뿜었다. 놈이 민지를 놓고 나가 떨어졌다.
“위험해!”
그 외침에 재빨리 몸을 돌렸다.
하지만 한 타이밍 늦고 말았다. 시야 가득 기생화의 노란 물결이 덮쳐왔다. 순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놓치고 말았다. 놈의 줄기에 목이 졸린 채 나는 진흙탕 위로 쓰러졌다.
낙법이라고 할 만한 것을 취할 여유도 없었다. 3미터에 육박하는 기생화에 밀려 뒤로 넘어졌고, 바닥을 구르다 날카로운 돌이나 나뭇조각에 이마를 베였다. 벌어진 피부 틈새에서 피가 물처럼 흘러나왔다. 마치 물과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혹은 도화지 위에 놓인 한 가닥 붉은 실이나 선처럼, 내 피는 긴 궤적을 그리며 흘러갔다.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생화로부터 달콤한 향기가 번졌다. 얼굴로 툭 툭 떨어진 타액이 마취제처럼 내 몸과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조금씩이나마 몸을 계속 움직였다. 손에 들고 있던 펩시콜라로 내 몸을 덮친 기생화의 얼굴을 후려쳤다. 흔들어질 대로 흔들어진 캔이었다.
펩시콜라의 중간 부위에 균열이 생기며 새까만 내용물과 탄소가 치이이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폭발하듯 치솟았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기생화의 몸이 옆으로 떨어졌다.
눈에 고인 빗방울을 훔쳤다. 눈을 뜨니 아버지가 방망이를 치켜들고 그곳에 서 있었다. 삼 년 전부터 마티즈의 트렁크 안에 잠들어 있던 야구 방망이였다. 볼품없이 늘어진 아버지의 볼에서 빗방울인지 땀인지 기생화의 체액인지 모를 불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당장이라도 졸도해 버릴 것처럼 몸을 떨고 있었지만, 그 어떤 훌륭한 야구 선수보다 멋진 스윙을 해낸 장본인이었다. 멋졌다. 아버지가 엄지를 세우고 찡긋 미소 지었다.
그러나 방심은 아직 이르다. 방망이에 얻어맞아 쓰러져있던 기생화가 돌연 솟구쳐 올라 아버지를 덮쳤다. 아버지의 가슴을 물어뜯었다. 광기와 살기에 사로잡힌 기생화의 포효, 그리고 아버지의 비명. 그것들이 한 대 뒤엉켜 내 머리와 심장을 꿰뚫었다.
“그만 둬!”
타앙!
한 번 더 총성이 울렸다. 아버지를 물어뜯던 기생화가 줄이 끊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엄마였다. 맙소사! 비에 젖어도 끄떡없는 파마머리를 한 엄마가 빙글 돌더니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이번에는 민지의 뒤로 다가가고 있던 아름다운 시체였다.
녹색 핏줄기가 튀고 놈은 단박에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곧 생체아교를 일으키며 둥글게 뚫린 상처를 치유해 갔다. 반면 숙주 역할을 하는 소녀의 몸은 급속도로 생기를 잃고 말라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상처를 치유한 시체는 무서운 기세로 공터의 가운데 서 있는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나도 동시에 자리를 박찼다.
“안돼!”
나는 엄마를 향해 달렸다. 바닥이 미끄러웠다. 어처구니없게도 이토록 중요한 순간에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며 진흙탕 위를 굴렀다. 엄마는 겁에 질린 얼굴로 꼼짝도 못했다.
그때 엔진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였다. 쌩쌩 소리를 내며 돌아간 타이어가 진흙과 풀과 꽃을 사방으로 튀어 올렸다. 마티즈가 돌진했다. 달리는 속도 그대로 아름다운 시체를 들이 박았다. 시체가 맥없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허공에서 핑글핑글 돌더니 자동차 천장을 들이박고, 다시 솟구친 뒤 공터의 진흙탕으로 머리부터 곤두박질쳤다. 숙주 역할을 한 소녀의 팔과 다리가 탈골되고 어긋나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아버지가 깨져나간 창문으로 소리쳤다.
“서둘러라!”
다시 일어나 달리며 민지의 손목을 낚아챘다. 마티즈의 문을 열고 민지와 함께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엄마가 공터의 가운데서 비를 맞고 꼼짝도 않고 있었다. 패닉 상태였다.
민지가 소리쳤다.
“엄마. 어서요!”
나도 소리쳤다.
“빨리요!”
엄마는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여보!”
“네!”
엄마가 마티즈를 향해 달린다. 기생화와 아름다운 시체도 뒤질세라 달려들었다. 보조석의 문을 열고 밖으로 손을 뻗었다. 팔에 닿는 빗방울의 감각이 섬뜩하다. 마티즈의 운전석 앞으로 다다른 엄마의 손을 잡아 온힘을 다해 잡아 당겼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우리 가족이 모두 마티즈에 올라탔다.
“달려요!”
아버지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티즈는 후진해 버렸다.
이래서 못난 아버지라는 거야!
뒤로 후진한 마티즈가 공터의 끝에 뿌리내려 있는 편백나무를 들이 박았다. 몸이 앞으로 튀고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찌그러진 트렁크 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깨어진 유리 틈 사이로 빗물이 들이쳤다. 언뜻 바라본 아름다운 시체가 뒤틀린 팔과 다리로 진흙탕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간절하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가족들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아름다운 시체가 깨진 유리로 얼굴을 쑥 디밀었다. 내가 소리쳤다.
“권총 이리 주세요!”
권총은 아직도 엄마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아직 두발이 남아 있다. 엄마는 반응이 없었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권총!”
엄마가 자신의 손에 들린 권총을 확인했다. 다시 내 얼굴을 바라본다. 마티즈 내부로 시체의 얼굴이 들어오고, 얼굴이 반으로 갈라졌다. 엄마가 권총을 뒷좌석으로 건넸다. 그러나 엄마의 손은 내가 아닌 민지를 향해 있었다.
아!
민지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를 대신해 권총을 받았다. 그대로 벌려진 얼굴의 어둠 속을 침착하게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동시에 아버지가 페달을 밞았다.
마티즈가 달렸다. 바닥을 기며 경로를 가로막는 기생화를 들이박고 마티즈가 공터를 빙글 한 바퀴 돌았다. 그대로 속도를 올여 공터를 벗어났다.
비가 그치고 있었다. 하늘에는 여전히 노란 민들레 홀씨가 떠다니고 있었다. 아버지의 상처를 내가 입고 있던 반팔 남방으로 묶어 지압했다. 내 이마의 상처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엄마가 한동안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만 인류가 멸망해 버리는 마당에 이 정도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끝내 금당계곡은 가지 못하게 되었네요.”
엄마는 정말로 아쉬운지 계속해서 금당계곡을 입에 올렸다.
“글쎄.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비가 그친 숲 속은 더더욱 노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한 탓인지 대지에 뿌리내려 있던 기생화들이 성큼 자라나 있었다. 몇몇은 토양에서 걸어 나와 달리는 마티즈를 쫓아오기도 했다. 깨진 창문 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미는 녀석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야구 방망이를 가로로 들어 찍어 내려야 했다.
“세상의 끝이 다가오고 있구나.”
기생화에 압도당한 듯,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정말요.”
민지도 더 이상 들떠 있지 않았다. 평소처럼 해맑게 웃지도 않았다. 그저 침울한 표정으로 하늘을 원망스레 올려다봤다.
마티즈는 달렸다.
엄마가 다시 건네준 코카콜라를 가지고 나는 더 이상 손장난을 하지 않게 되었다. 단숨에 꿀꺽꿀꺽 들이켰다. 목이 타는 듯 따끔거렸지만 그것마저도 소중한 최후의 감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해가 기울어 우리 가족이 도착한 곳은 위치를 알 수 없는 도로에 인접한, 이름도 없는 온천이었다.
“누구요?”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시커먼 구멍을 벌린 산탄총을 들고 서 있었다. 백발의 노인이었다. 아버지가 양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온천욕을 좀 즐길 수 있을까 싶어 찾아왔습니다만.”
노인이 우리 가족을 위 아래로 훑었다. 그가 산탄총을 거둬들였다.
“들어오시오.”
그곳이 우리 여행의 끝이었다.
온천은 창업 20주년을 맞은 제법 유서 깊은 곳이었다. 말하자면 쇠락할 대로 쇠락한 몹시 낡은 온천이었다.
온천의 주인은 큰 덩치에 어울리는 과묵한 노인으로, 매우 친절한 분이었다. 아버지의 가슴에 난 상처를 소독하고 직접 붕대를 감아주기도 했다. 그런 상태의 아버지에게 온천욕은 무리였지만, 끝끝내 고집을 부리며 따라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가족들 모두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은 공간에서 온천욕을 즐기게 되었다. 밖은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려진 창문 너머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그 빗방울 소리가 지구에서의 마지막이 될 온천욕의 향취를 더했다. 끝내 금당계속에는 가지 못했지만, 가족들 모두들 이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사히 가족 여행을 끝마친 것이라고.
다들 오랜 시간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함으로 점철된 침묵을 깬 것은 애써 감탄한 목소리로 가장한 엄마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 거야.”
어떨까. 천국은 존재할까. 지옥은 존재할까. 그저 자신이 존재했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간신히 입을 벌려 호응했다.
“동감이요.”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모두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 후의 세상을 상상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곳에서 서로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민지는 그 순간에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잠수하기로 했다. 아주 깊은 곳까지.
“그 책 젖어버려도 몰라.”
실은 젖어 버려도 상관없다.
이제 곧 끝이 날것이다.
“그거 알아?”
“잠수 할 건대.”
민지는 탕 안에 목까지 쏙 담근 채 말했다.
“태양은 활활 타오르는 수소 가스 덩어리야. 그 중심부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수소가 헬륨으로 변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에 의해 빛이 나는 거래.”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나도 민지를 바라봤다. 그것 말고는 도리 없이 닥쳐오는 재앙과 죽음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아무렇지 않게 깔깔깔 웃으며 농담을 던지고 추억을 만든다는 것은 역시 불가능했다.
“항성은 크기가 크면 클수록 오랫동안 빛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 이유로 수소가 고갈하는 속도도 굉장히 빨라. 그래서 다른 항성들에 비해 태양의 수명은 굉장히 짧지.”
“태양에도 정해진 수명이 있다는 거냐?”
“모든 것에는 수명이 있어.”
태양도 영원히 타오르지는 않는다. 나는 몸이 달아올랐다.
“그래서?”
“태양은 빛을 내기 위해 지금도 수소 가스 덩어리들을 끊임없이 태워대고 있고, 언젠가 그 수소들이 남지 않게 되면 태양의 중심부에는 헬륨이 모여들게 돼.”
“헬륨?”
“그런 게 있어.”
민지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헬륨이 모이게 되면 그로인해 온도와 밀도가 오르면서 서서히 수축을 시작하게 돼. 반대로 외층부는 중심부에서 올라오는 열에 의해 온도가 높아지면서 부풀어 오르게 되고. 마치 베이킹파우더를 뿌린 빵처럼 쑥쑥 팽창한 태양은 적색거성이라 불리는 상태가 돼. 그 적색거성은 마침내 수성을 삼키고 금성을 삼킨 다음, 지구까지도 삼켜 버리는 거야.”
지구를 삼켜 버린다. 그렇군. 우리들뿐만 아니라 지구에도 완전한 끝이란 게 있었다.
“그리고 태양은 백색왜성이라 불리는 중심부만을 남기고 확산한 다음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 버려.”
“언제 그렇게 되어 버린다는 거야?”
“약 50억년 후쯤.”
그렇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에는 끝이란 게 있다. 인류든 생물이든 지구든 태양이든 우주든.
그리고, 나도 늙어간다. 언젠간 20대가 되고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50대가 될 것이었다. 그때쯤에는 나도 못난 아버지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수하기로 했다. 가장 깊은 곳까지.
“잠수 한다. 책 젖어 버려도 몰라. 소중한 책이잖아.”
“잠깐만!”
민지가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나는 잠수 했다. 탕 안의 처음과 끝을 오갔다. 따뜻했고 온몸이 나른해졌다. 이런 감각을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느끼고 싶었다. 더는 숨을 참을 수 없다고 느낀 시점에서 나는 다시 수면 위로 푸화, 올라왔다.
나는 가족들을 향해 툭 내뱉듯 말했다.
“그만 돌아가요.”
가족들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내가 말했다.
“역시, 여행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지 않으면, 가족 여행은 끝난 게 아닙니다.”
그렇게 가족 여행을 끝내고, 그곳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거다. 아버지도 엄마도 민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집 나오면 고생이라니까.”
“그러네요.”
“맞아.”
나는 일어났다.
내가 말했다.
“가요, 우리들의 집으로.”
3.
서울은 처참했다. 밤이었다. 아름다운 시체들이 푸르스름한 달빛 아래 도시를 점령하고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온천의 주인은 자신의 중고 승합차인 리빅을 타고가라고 권했다. 이 승합차가 시체들의 공격에는 그나마 더 안전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거절하지 않았다. 유리가 깨어져 나간 마티즈보다는 훨씬 나았다.
운전은 엄마가 했다. 아버지는 상처가 꽤 깊었다. 기생화에게 물린 가슴의 상처를 감은 붕대에서 피가 계속해서 베여 나오고 있었다.
리빅은 어둠에 잠긴 서울 시내를 숨죽인 채 달렸다.
우두커니 선 아름다운 시체들이 우리 가족을 태운 리빅을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반응은 없었다. 지금쯤이면 얼굴을 까뒤집고 달려들 법도 하건만, 놈들은 그저 고개만 돌려 우리의 행로를 살필 뿐이었다.
“이상하군.”
“그러게요.”
“저기!”
민지가 소리쳤다.
도로의 한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던 아름다운 시체들이 양 팔을 허공에 뻗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뻗은 팔이 초콜릿처럼 녹아내리더니 얇은 피막을 형성했다. 날개였다. 그 피막의 날개를 퍼덕이며 도약해 올랐다. 하늘을 위협적으로 배회했다.
그럼에도 엄마가 운전하는 리빅은 우직하게 서울 시내를 계속 달렸다. 놈들은 한참동안 달리는 리빅 주위를 서성였고, 어느 순간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솟구쳐 내려왔다.
공격이 시작됐다.
날개에 돋은 송곳 같은 뼈가 솟아나와 리빅 천장으로 내리꽂혔다. 의자에서 내려와 민지의 머리를 잡아 누르며 몸을 웅크렸다. 천장이 단숨에 꿰뚫렸다. 아버지도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움츠렸고,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 더 속력을 올렸다.
거리는 어디든 텅 비어 있었다. 모두들 떠났거나 사늘한 시체가 되어 뒹굴고 있었다. 그 주위에 까마귀가 내려앉아 눈을 팠다.
엄마는 날기 시작한 시체들의 공격을 피해 집 방향과는 반대쪽으로 리빅을 몰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날아오른 시체들이 밤하늘을 가득 매웠다. 보름달마저 가렸다. 그리고 대방역을 지났을 무렵, 우리 가족은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생물은 63빌딩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처음엔 공포가 만든 착시현상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그것은, 남산타워 옆에 뿌리내려 있던, 모든 재앙의 시작인, 거대 꽃이었다. 시체들처럼 줄기에 피막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바로 그 거대한 생물이 63빌딩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지금 막 날아올랐다. 벌려진 얼굴 안의 어둠에서 뿌려진 번뜩이는 노란 액체가 빌딩과 아파트와 건물을 부식시키며 흘러내렸다.
포효했다.
포효했다.
포효했다.
엄마는 굳은 얼굴이었지만 지지 않겠다는 듯 더더더 속력을 올렸다. 피해자인 듯한 표정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있었다. 그대로 한강 다리를 건넜다. 탱볕에 방치된 초콜릿 케익처럼 녹아내리는 건물을 피해 리빅은 잠시 멈췄다. 그새를 못 참고 아름다운 시체들이 리빅 주위로 달려들었다.
엄마가 다시 폐달을 밞았다.
그러나 푸르릉, 푸르릉, 하는 소리만 낼 뿐 리빅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시체들이 리빅 주위를 둥글게 포위했다. 썩어서 진물을 뚝뚝 흘리는 팔로 차체를 뒤집을 듯 흔들고, 창문을 주먹으로 쾅! 쾅! 쳐댔다. 아름다운 시체 한 마리가 소화기로 내려치자 보조석 창문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그 안으로 악취를 풍기는 썩은 손과 향기를 풍기는 기생화의 머리가 마구 뒤엉켜 들어왔다. 아버지가 놈들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아버지를 밖으로 끄집어내려 했다.
권총에는 이제 한 발이 남아 있었다. 머리카락이 드문드문한 아버지의 보잘 것 없는 머리를 통째로 삼켜버리려는 듯, 기생화가 얼굴을 활짝 벌렸다. 내가 놈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놀란 탓인지, 놈이 순간적으로 벌린 얼굴을 닫았다. 총구 바로 앞에 놈의 왼쪽 눈이 있었다.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녹색 눈동자가 있었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하고, 터져 버렸다.
몸 안에 폭탄을 집어넣고 폭파시킨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터져 버렸다. 기생화의 체액과 부서진 꽃잎과 줄기가 리빅 안 가득 흩뿌려지고 튀어 올랐다.
“꺅!”
민지가 나에게 안겼다. 민지의 몸을 감쌌다. 엄마가 다시 페달을 힘껏 밞았다. 리빅이 크게 흔들리더니, 급발진을 하며 달려 나갔다.
“방금 그거 뭐야?”
민지가 말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갑자기 터져 버렸다.”
넋이 나간 얼굴로 엄마도 나에게 물었다.
“어디를 겨냥한 거니?”
“왼쪽 눈.”
내가 말했다.
그리고 그때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홀로 움직이고 있던 우리를 거대 꽃이 발견했다. 설상가상 리빅은 얼마가지 못해 또 다시 멈춰버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신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저 샷건을 가져와야 겠다.”
보조석에서 25미터 거리에 샷건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그 바로 옆에 배가 불룩한 중년 남자의 시체가 쓰러져 있다. 가슴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옆, 보도블록에서 뽑힌 긴 표지판의 봉이 피에 젖은 채 떨어져 있었다. 남자는 그 봉에 꿰뚫린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샷건을 봤다. 어쩌면 탄알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 꽃이 당장이라도 우리를 덮칠 듯 허공에 멈춰 서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의 굽은 어깨를 잡았다.
“제가 갈게요.”
“아니, 내가 가마.”
“…….”
나는 말없이 아버지의 어깨를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거대 꽃을 한 번 쳐다본 뒤, 잽싸게 문을 열고 튀어나갔다. 아버지는 시체의 팔에 다리가 걸려 크게 휘청였지만 이를 악물고 균형을 잡았다. 달렸다. 못난 아버지가 달린다. 거대 꽃이 반응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홰를 치던 날개를 접고 우리를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더 빨리!’
아버지가 샷건을 잡았다. 탄알을 확인한다.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리빅에서 내렸다. 뒤쪽에서 군인에게 기생한 아름다운 시체 한 마리가 아버지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샷건을 나에게 던졌다. 그리고 아버지는 달려드는 아름다운 시체를 향해 권투 자세를 취했다. 못난 아버지의 최후의 발악이었다.
나는 샷건을 받아냈다. 탄알은 한 발. 나는 그 한 발을 아름다운 시체의 왼쪽 눈을 향해 쐈다.
투앙!
샷건이 불을 뿜고, 아름다운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동시에 폭풍이 몰아닥쳤다. 거대 꽃이 얼굴을 활짝 펼쳤다. 아버지가 표지반의 봉을 들었다. 나도 달려가 그 봉을 잡았다. 샷건을 바닥에 버렸다. 엄마와 민지가 달려왔다. 함께 봉을 잡는다.
온다, 온다, 온다!
그때, 민지가 샷건을 잡아 거대 꽃을 향해 던졌다. 순간적으로 거대 꽃의 얼굴이 닫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가족은 봉을 왼쪽 눈으로 틀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이제,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가족이란 얼마나 멋지고 위대한 구성원인가!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질까 보냐!
우리 가족은 소리쳤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봉이,
거대 꽃의 왼쪽 눈을 꿰뚫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서울은 차츰 복구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텔레비전을 리모콘으로 돌려대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피해자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민지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사이비 교주가 집필한 듯한 책만 읽었다.
변한 건 어쩌면 나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가족들을 혐오하지 않게 되었다.
거실로 내려가니 아버지가 몸을 소파 등받이 쪽으로 돌리고 졸고 있었다.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편하게 눕혀줘야겠다는 생각에 아버지의 소파로 다가갔다. 어깨를 잡고 몸을 돌리는데, 아버지의 목이 축 늘어졌다.
“!”
그리고 벌려진 입 안에서 뭔가가 기어 나왔다.
꽃이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꽃이다.
그가 말했다.
“얘야, 몸이 한결 가벼워졌구나, 한결 가벼워.”
아버지는 가슴의 흉터를 피가 나도록 북북 긁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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