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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소금창고」

  • 작성일 2011-10-24
  • 조회수 1,997




 
박성우, 「소금창고」
 
 
 
 
그녀는 소금창고를 가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창고 안에는
소금덩이들이 무더기로 부려져 있다
 
소금창고를 물려받던 열댓 살 무렵
소금 저장법을 알 리 없는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녹아 흘러버리는 소금을
어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 탓에
소금물은 그렁그렁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그녀가 아들을 잃고 남편이 떠나던 이십여년 전
무심코 열어본 소금창고에서는
짜디짠 소금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창고의 문은 여간 닫히지 않았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그녀의 눈 속에는 소금창고가 있다
이맛살과 눈주름이 폭삭 내려앉은 창고 안에는
넘실넘실 녹아나가는 소금물을
꾹꾹 눌러 말린 소금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누렇고 검게 그을린 소금덩어리
 
 
 
시_ 박성우 - 1971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거미」가 당선되었고,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미역」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청소년시집 『난 빨강』이 있음.
 
낭송_ 남도형 - 성우. SBS <내 친구 해치>, KBS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에 출연.
출전_ 『가뜬한 잠』(창비)
음악_ 김권한(COMPANY K)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짠하다’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짠하다는 말이 왠지 짜디짠 소금창고로부터 왔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누구일까. 아들을 잃고 남편이 떠난 것이 이십년 전이라 하니, 그녀는 나이든 늙은 여인일 터. 시인의 어머니이기 쉽겠으나 꼭 그렇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모나 숙모 같은 친척 여인일 수도 있고 고향 마을의 늙은 여인일수도 있습니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엔 ‘이맛살과 눈주름이 폭삭 내려앉은’ 소금창고를 가진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계신가요. 삶의 풍파 속에 고단한 소금창고를 가지게 된 그 모든 얼굴들이 바로 내 어머니이기도 하고 당신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이 시인의 시들은 대개 시인의 모습 그대로 수줍고 수수합니다.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소박하고도 적절하게 유지합니다. 비애가 있지만 너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소금창고와 한 여인의 삶이 교차합니다. 이 교차점에서 생기는 짠한 울림은 시인의 따듯한 배려로부터 오는 것일 터. 독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무엇보다 소금창고로 형상화된 ‘그녀’에 대한 배려 말입니다. 문득, 어머니 그립습니다.
 
문학집배원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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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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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11108 김지태

    내 생각 이 시에서의 소금창고가 눈을 의미하는 것 같다. 소금저장법은 눈물을 참는 법이고 그것을 알 리 없는 그녀의 눈에서는 소금이라는 눈물이 녹아 내렸을 것이다. 이렇게 눈물을 소금이라고 비유한 것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생각해보면 눈물과 소금은 둘다 짜다.) 이 시에서 처음에는 눈물을 참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눈물을 참는 방법을 터득한 그녀가 소금을 꾹꾹 눌러 말린다는 표현에서 난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 엄마도 처음에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슬프면 슬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행동하고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보다는 우리가족을 위하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엄마로 바뀌어져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시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적절한 잘 표현한 시인것 같아서 마음에 드는 시이다.

    • 2018-05-31 11:08:13
    11108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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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108 김지태

    내 생각 이 시에서의 소금창고가 눈을 의미하는 것 같다. 소금저장법은 눈물을 참는 법이고 그걸 알 리 없는 그녀의 눈에서는 소금이라는 눈물이녹아 내렸을것이다. 이렇게 눈물을 소금이라고 비유한 것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생각해보면 눈물과 소금은 둘다 짜다.) 처음에는 눈물을 참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눈물을 참는 방법을 터득한 그녀가 소금을 꾹꾹 눌러 말린다는 표현에서 난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 엄마도 처음에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슬프면 슬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행동하고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보다는 우리가족을 위하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엄마로 바뀌어져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시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적절한 잘 표현한 시인것 같아서 마음에 드는 시이다.

    • 2018-05-31 10:46:22
    11108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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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음, 소박하게 웃으시며, 그래도 면장 따님과 연애하고 결혼하셨다는 박성우시인. '삼학년'이란 시는 중1 아이들도 빵 터지게 하고, '난 빨강' 정말 좋았어요.

    • 2011-11-14 13:38:0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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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 반해버렸습니다.

    • 2011-10-24 12:37:5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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