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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문「흰 국숫발」

  • 작성일 2007-11-26
  • 조회수 4,846




흰 국숫발

                                          장철문

슬레트 지붕에 국숫발 뽑는 소리가
동촌 할매
자박자박 밤마실
누에 주둥이같이 뽑아내는 아닌밤 사설 같더니

배는 출출한데 저 햇국수를 언제 얻어먹나
뒷골 큰골 약수터에서 달아내린 수돗물
콸콸 쏟아지는 소리
양은솥에 물 끓는 소리

흰 국숫발, 국숫발이
춤추는

저 국숫발을 퍼지기 전에 건져야 할 텐데
재바른 손에 국수 빠는 소리
소쿠리에 척척 국수사리 감기는 소리

서리서리 저 많은 국수를 누가 다 먹나
쿵쿵 이 방 저 방
빈 방
문 여닫히는 소리
아래채에서 오는 신발 끌리는 소리
헛기침 소리


재바르게 이 그릇 저 그릇 국수사리 던져넣는 소리
쨍그랑 떵그렁 부엌바닥에 양재기 구르는 소리
솰솰솰솰
멸치국물 우려 애호박 채친 국물 붓는 소리

후르룩 푸루룩
아닌 밤 국수 먹는 소리

수루룩 수루룩
대밭에 국숫발 가는 소리



 

● 출처 :『시와 사람』, 2005년 겨울호

 

● 시, 낭송 : 장철문: 1966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1994년『창작과비평』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바람의 서쪽』『산벚나무의 저녁』, 우리 고전 『심청전』『양반전 외』, 동화 『노루 삼촌』『나쁜 녀석』, 그림책 『흰 쥐 이야기』등이 있음.

국수를 삶고, 빨고, 건지고, 나누고, 먹을 때 나는 소리를 꼭 알맞게 모아 놓았습니다. 청각이미지의 잔치입니다. 이것은 기억을 언어로 재현하는 시인의 살뜰한 솜씨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수에서 연상되는 눈 내리는 밤의 눈발 이미지가 시의 앞뒤를 열고 닫고 있는 모습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저 30년대 백석의 국수, 최근의 권혁웅의 국수, 그리고 여기 장철문의 국수가 덧보태짐으로써 한국시사에 국수는 멋지게 완성되었습니다. 독자인 당신과 나는 후르륵 푸루륵 먹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2007. 11. 26. 문학집배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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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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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노총각. 노처녀에게 동네 아줌마들이 언제 국수 줄껴~~ 조금만 삶아도 여러명이 나눠먹을수 있는 펑트기와 같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후한 인심도 쓸 수 있고. 보들보들해서 한입에 쏘옥 미끄러져 들어오고. 후루룩 후루룩 소리내니 재미있고 국물이 얼굴로 튀기도하고. 얌전한 자리에서는 좀 난처하기는 하지. 치아가 부실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선호하는 국수 잔치집에서 자주 볼 수 있는음식

    • 2007-11-30 18:43:1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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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국수는 1자가 여려개 모여 한다발로 만들어졌다.예전 국수는 모두 흰색이었다.지금의 국수들은 다양한 색깔을 지녔다.옛날 국수는 굵기가 다 같았다.지금은 굵기가 제 각각이다.삶지않은 국수는 1자다.하지만 삶으면 여려숫자글 만들 수 있다.

    • 2007-11-28 14:49:5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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