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라연,「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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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박라연(낭송: 김혜옥)

 

 

 

나,
이런 길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길을 손 잡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네
먼지 한 톨 소음 한 점 없어 보이는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나도 그도 정갈한 영혼을 지닐 것 같아
이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처럼
이 길을 오고 가는 자동차의 탄력처럼
나 아직도 갈 곳이 있고 가서 씨뿌릴 여유가 있어
튀어오르거나 스며들 힘과 여운이 있어
나 이 길을 따라 쭈욱 가서
이 길의 첫무늬가 보일락말락한
그렇게 아득한 끄트머리쯤의 집을 세내어 살고 싶네
아직은 낯이 설어
수십 번 손바닥을 오므리고 펴는 사이
수십 번 눈을 감았다가 뜨는 사이
그 집의 뒤켠엔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꽃이 있네
절망이 사철 내내 내 몸을 적셔도
햇살을 아끼어 잎을 틔우고
뼈만 남은 내 마음에 다시 살이 오르면
그 마음 둥글게 말아 둥그런 얼굴 하나 빚겠네
그 건너편에 물론 강물이 흐르네.
그 강물 속 깊고 깊은 곳에 내 말 한마디
이 집에 세들어 사는 동안만이라도
나… 처음… 사랑할… 때… 처럼… 그렇게……
내 말은 말이 되지 못하고 흘러가버리면
내가 내 몸을 폭풍처럼 흔들면서
내가 나를 가루처럼 흩어지게 하면서
나,
그 한마디 말이 되어보겠네
          

– 시집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문학과지성사, 1996

정갈한 영혼을 지닌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와 같이 길을 갈 수 있다면, 그 길을 손잡고 갈 수 있다면, 그 아득한 길 끄트머리쯤에 집을 세내어 그와 함께 살 수 있다면, 너에게, 아니 그에게 세들어 살 수 있다면, 절망 속에서도 햇살을 아끼어 잎을 틔우고 둥그런 얼굴 하나 빚을 수 있다면, 거기 세들어 사는 동안만이라도 “처음… 사랑할… 때… 처럼… 그렇게……” 말하며 살 수 있다면.

문학집배원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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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년 11 개월 전

불편함과 조심성이 있어야 될듯자유를 제대로 쓸 수 있을까언제나 어깨에 무거운 멍애를 지고 있는듯눈치밥이 얼마나 쌓일까쥐눅들어 사는 삶이 얼마나 갑갑할까세들어 사는 형편언젠가는 내 집을 사리라떳떳한 내 큰집을 사 세를 내 놓으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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