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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동사무소에 가자」

  • 작성일 2008-05-26
  • 조회수 4,847




? 동사무소에 가자
???????????????????????? 이장욱

?

동사무소에 가자
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
외로울 때는
동사무소에 가자
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
어제 죽은 사람들이 아직
떠나지 못한 곳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前生이 궁금해지고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공중부양에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 죽은 생선처럼 침울해져서
짧은 질문을 던지지
동사무소란
무엇인가

동사무소는 그 질문이 없는 곳
그 밖의 모든 것이 있는 곳
우리의 일생이 있는 곳
그러므로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동사무소에 가자

두부처럼 조용한
오후의 공터라든가
그 공터에서 혼자 노는 바람의 방향을
자꾸 생각하게 될 때

어제의 경험을 신뢰할 수 없거나
혼자 잠들고 싶지 않을 때
왼발을 든 채
궁금한 표정으로
우리는 동사무소에 가자

동사무소는 간결해
시작과 끝이 무한해
동사무소를 나오면서 우리는
외로운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왼손을 들고
왼발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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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문학사상』, 2006?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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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낭송 -이장욱?: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4년『현대문학』시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시집『내 잠 속의 모래산』『정오의 희망곡』, 2005년 장편소설『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평론집 『혁명과 모더니즘』,『 나의 우울한 모던보이』등이 있으며,? 문학수첩 작가상 등을 수상함.

우리는 때로 명쾌하게 자신을 정리해주고 증명해 줄 공간이나 대상을 찾곤 하지요. 동사무소도 그런 곳 중 하나. 출생과 죽음, 혼인과 이혼, 이주와 정주가 낙천적인 서류들 속에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으니까요. 정시에 문을 열고 정시에 문을 닫는 곳. 동사무소란 무엇인가, 라는 재귀적 질문만 빼놓고는 모든 것이 있는 곳. 그런데 동사무소를 나오면서 왠지 쓸쓸해지는 건 ‘거주한다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시인은 발랄한 어조로 동사무소를 노래하고 있지만, 어쩌면 동사무소처럼 간결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비애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왼손을 들고, 왼발을 들고, 외로운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2008. 5. 26. 문학집배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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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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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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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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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익명

    저도 얼마전에 혼인신고 하느라 구청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저보다 6살 어린 신랑이 약간 쑥스러운 듯 그러나 당당하게 절차를 마쳤습니다. 나오면서 서로에게 '감사하면서 살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연이 많은 커플이거든요. 지금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앞으로의 인생은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이 될 것이라 믿고있습니다.

    • 2011-11-24 09:01:1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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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기막힌 시네요. …동사무소에서 우리는 공중부양에 관심이 생기고… 일상 구석구석 시가 잠자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2011-11-20 17:55:2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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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진명여고 시절 나희덕 선생님께 정말 좋은 문학이야기를 들었었는데...그때 한 편씩 읽어주시던 시 생각이 납니다~

    • 2008-05-31 18:04:4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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