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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의「호미」

  • 작성일 2007-06-18
  • 조회수 5,018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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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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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에 쓰러진 여자는
한나절은 족히 누워 있었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평생 여자가 맨 고랑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여자의 몸은 둔덕처럼 두두룩하니 굽어져 있어
고랑에 들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평생을 닳아낸 호미가 몇 개인지 알 수 없으나
호미를 쥔 몸 어디에서부터 호미자루인지 분간이 쉽지 않았다

여자에겐 오랜 세월 밭고랑 매는 일이 방고래에 불을 들이는 일이었다
밭고랑을 훈훈하게 데워놓으면 엄나무처럼 아픈 허리도 금세 환해졌다

밭고랑이 다 식을 때까지 분리되지 않았다
여자의 몸이 호미처럼 식은 다음에야 사람들이 알아차렸다

지방도에서 빤히 보이는 밭머리에 사람들이 오가고
지도를 든 검은 승용차들이 들락거렸으나 아무도 보지 못했다

양밥이라고 했다 섣달그믐 날 집안의 액을 몰아낸다고
짚으로 허재비 만들어 잘 대접하고는 액을 몰고 가라고
들판 멀리 내던지던 짚허재비 양밥처럼 버려져 있었다
목격자들은 모두 밭고랑 사이에서 호미 한 자루는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나간 사람들이 올 때까지 어스름 산그늘이 여자의 몸을 감싸 안고 이슬을 가려주고 있었다

마을 남자들 경운기 트랙터 몰고 고속도로에 올라가서
절반은 돌아오지 못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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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내일을 여는 작가』, 2006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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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백무산 :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84년『민중시』로 등단. 시집『만국의 노동자여』『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인간의 시간』등이 있으며,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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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송-김상현 : 성우. <그곳에 가고 싶다> <오래된 TV> <포토다큐>외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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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안타깝고 아프게 읽히는 이유는 평생 호미와 함께 살아온 여자의 일생이 가련해서가 아닙니다. 둔덕처럼 굽은 몸으로 일을 하던 여자가 아무도 모르게 밭고랑에서 죽음을 맞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시인이 묘사하는 여자를 통해 밭고랑에 놓인 호미 하나를 떠올리게 되는데, 여자와 호미를 일치시키는 바로 그 순간에 시의 묘미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시인이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도 유의해서 볼 일입니다. 기록사진을 찍는 카메라맨처럼 대상에 대해 철저히 객관적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슬픔을 배가시키는 전략이 그것입니다.

 

문학집배원 안도현 2007.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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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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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 이상혁11014

    할머니가 호미로 밭일을 하다가 죽었다. 심지어 그녀는 평생 밭일을 해와서 호미와 마치 일체가 된 듯 보인다. 그녀가 밭일을 하다가 죽은 것도 안타깝고 그녀가 죽은 뒤에 시체가 다 식을 때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슬프다. 그러나 더 슬픈 것은 죽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호미를 들고 밭일을 하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그 땅은 곧 개발될 땅으로 보인다. 검은 승용차는 그 땅 위에 사람이 죽어있건 깨끗하건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조금 귀찮겠네'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갔지만 동네 사람들과 외지인 모두가 외면하는, 마치 곧 그 곳에 쌓일 휘황찬란한 빌딩만이 보이는 그녀의 죽음. 그래서 더 슬픈 죽음이다.

    • 2018-05-28 15:49:57
    이상혁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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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꺽꺽, 목놓아 울고 싶은 시. 잘 꾸며진 사치스러운 자연을 보다가 퍼뜩, 떠오른 시. '아픈 허리도 금세 환해'지면서 '환'해졌을 할머니 얼굴, 산그늘이 눈물 참으며 감싸안고 있었을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정작 이 세상은 보지 않는다. 대신 '할머니처럼' 이 세상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땅이 되고 호미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신, 어찌보면 불쌍한, 할머니,의 삶을, 하찮게여기는 이 무정한 세상에 답답한 돌멩이를 던지는 대신 할머니의 삶을 내가 살아내고 싶다. 그래야 할 거 같다. 다시 눈물이 난다.

    • 2008-07-30 11: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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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와 결혼한 오래전 어머니들호미는 흙을 파헤치며 갖은 먹걸이를 재공한다. 배추 뿌리, 무우, 당근,고구마, 감자, 호미가 브로도자다

    • 2007-09-07 15: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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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는 노인들만 남아서 농사를 짓고 밭에서일하는 모습을 볼때 가슴이 싸아했는데

    • 2007-07-20 12:00:2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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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객관적 거리룰 유지한다는 것이 오히려 슬픔을 배가한다는 것.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깔끔한데도 많이 슬픕니다. 깔끔함에도...제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 2007-06-19 21:13:2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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