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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성장」

  • 작성일 2007-03-05
  • 조회수 9,928



성장

 

이 시 영(낭송: 본인)

 

 

바다가 가까워지자 어린 강물은 엄마 손을 더욱 꼭 그러쥔 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거대한 파도의 뱃속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다 엄마 손을 아득히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 잘 가거라 내 아들아. 이제부터는 크고 다른 삶을 살아야 된단다. 엄마 강물은 새벽 강에 시린 몸을 한번 뒤채고는 오리처럼 곧 순한 머리를 돌려 반짝이는 은어들의 길을 따라 산골로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 시집『은빛호각』, 창비, 2003

어린 강물이 엄마 강물의 손을 놓친 게 아니라 엄마 강물이 살며시 손을 놓았겠지요. 바다로 가야 하므로, 크고 다른 삶을 살 때가 되었으므로, 떠나보낸 거겠지요.“잘 가거라, 내 아이들아.”엄마 강물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아팠겠지요. 시린 몸을 한번 뒤채고는 은어들의 길을 따라 조용히 되돌아왔겠지요. 오늘은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학교생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바다로 나가는 어린 강물들이 저마다 반짝이는 물살이기를 바랍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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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락, 「고요의 입구」 개심사 가는 길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나무들 서둘러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추위를 털면서 숲 속으로 사라지는길도 금세 눈으로 소복하다 여기에 오기까지 길에서 나는몇 번이나 개심(改心)하였을까한 송이 눈이 도달할 수 있는 평심(平心)의 바닥그것을 고요라고 부를까 하다가산문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본다 어느 자리, 어느 체위이건 눈은 불평하지 않는다불평(不平)마저 부드러운 곡선이다설경이 고요한 듯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허지만 송송 뚫린 저 오줌구멍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마을의 개구쟁이들이 저지른 저 고요의 영역 표시경계 앞에서도 어쩔 수 없는 방심(放心) 뒤에 진저리치던나의 불평이란 기실 작은 구멍에 불과한 것하물며 개심(開心)이라니! 그 구멍의 뿌리 모두 바닥에 닿아 있으므로길은 불평의 바닥이다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눈이 내렸을 뿐 나는 아직 고요의 입구에 있는 것이다 ● 시_ 신현락 - 1960년 경기 화성 출생. 시집으로 『따뜻한 물방울』『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과 논저로『한국 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이 있음.● 낭송_ 변진완 - 배우. 연극 <블랙박스>, 뮤지컬 <천상시계> 등에 출연.● 출전_ 『히말라야 독수리』(bookin)●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를 ‘문득 한 깨달음 주려는가’로 읽어도 좋을까? 시에 두 개의 개심이 나온다. 개심(開心)과 개심(改心). 앞의 개심은 ‘지혜를 열어 불도(佛道)를 깨우친다’ 즉 ‘마음이 열린다’는 뜻으로 굉장히 높은 경지의 말이고, 뒤의 개심은 ‘마음을 바르게 고친다’는 뜻으로 범상한 우리네 경지의 말이다.  별안간 소낙눈이라지만, 눈이 쏟아지기 전에도 하늘은 끄무레했을 것이다. 개심사를 찾아가는 시인의 마음처럼. 범상한 한 사람인 시인은 깨달음과 번민, 용서와 상처 사이에서 진자처럼 움직이는 마음의 불평에 처해 있다. 울퉁불퉁한 그 마음바닥이 눈경치를 바라보면서 둥글어지는 듯하다. 곡선은 고요하다. 한 송이 한 송이 눈이 내리고 쌓여 이루는 설경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설경은 그러하나, 나(시인)는? 나는 기실 뾰족뾰족하다.  ‘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  뭐, 눈이 오기에 잠시 취해 있었을 뿐, 호락호락 개심(開心)할 내가 아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마음의 고요, 평심의 입구 산문에서 그저 설경을 바라볼 뿐이로다.   소박하고 단아한 시인데, 호락호락 깨달은 척하지 않는 총명함이 톡 쏘는 맛을 낸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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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기, 「즐거운 소라게」 잘 다듬은 푸성귀를 소쿠리 가득 안은막 시골 아낙이 된 아내가쌀을 안치러 쪽문을 열고 들어간 뒤청솔모 한 마리새로 만든 장독대 옆계수나무 심을 자리까지 내려와고개만 갸웃거리다부리나케 숲으로 되돌아간다 늦도록 장터 한 구석을 지키다한 걸음 앞서 돌아가는 흑염소처럼조금은 당당하게,제집 드나드는 재미에갑자기 즐거워진 소라게처럼조금은 쑥스럽게, 얼마 전에 새로 번지가 생긴 땅에한 채의 집을 지은 나는세 식구의 가장(家長)으로서나의 하늘과별과 구름과시에게 이르노니 너희 마음대로떴다 지고흐르다 멈추고왔다 가거라! ● 시_ 이창기 - 1959년 서울 출생. 시집으로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李生이 담 안을 엿보다』『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등이 있음.● 낭송_ 노계현 - 성우. 외화 <구름 속의 산책> <보통사람들> 등 다수 출연.● 출전_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문학과지성사)●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시골에서 10년 가까이 더 살아 보았다. 여전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2005년에 발행된 시집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의 자서(自序)다. 그 시골 생활의 초기 풍경을 옮긴 시다. ‘얼마 전에 새로 번지가 생긴 땅에/ 한 채의 집을 지은’ 시인은 ‘푸성귀를 소쿠리 가득 안은/막 시골 아낙이 된 아내’니 ‘새로 만든 장독대’니 ‘계수나무 심을 자리’니, 마당까지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갸웃거리다 부리나케 달아나는 청솔모니, 여태 몸담아온 도시와는 완연 달라진 삶의 터전에서 모든 것이 새로워 쑥스럽기까지 하다. 그 낯가림과 불안을 떨치고 시인은 시인 가장으로서의 각오와 기대를 아름답고 서늘하게 펼친다.  내가 처음 본 이창기는 아주 젊은 이십대 청년이었는데, 한참 전에 흘러간 가요였던 배호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도 그렇고, 어딘지 아저씨 같은 데가 있었다. 만주에서 태어났다는 그의 말이 믿길 정도로. 그리고 말투나 미소가 어딘지 빈정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게 따뜻한 마음과 장난기와 수줍음의 미묘한 배합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나 알았다. 그의 시들은 시인을 꼭 닮았다. 인생과 생활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깊숙한 시선, 느긋하게 한 발 비껴선 듯 짐짓 한가한 포즈, 때로 이죽거리거나 낄낄거리면서도 놓치지 않는 서정, (세심히 볼수록 증폭되는)뉘앙스 풍부한 진술…….  「즐거운 소라게」를 한 번 더 읽어본다. 둘째 연이 유독 슬프다. 장터에 흑염소가 왜 나가 있었겠는가? ‘늦도록 장터 한 구석을’ 지켰건만 흑염소를 팔지 못한 채 터덜터덜 귀가하는 주인의 심사엔 아랑곳없이 흑염소는, 마치 함께 ‘마실’이라도 다녀오는 양 신나라 앞서 걷는다. 궁둥이를 실룩거리며 당당하게.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주인은 한숨을 쉬며 흑염소에게 저녁밥을

  • 웹관리자
  •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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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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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 11116이진원

    초등학교 6학년때 이사를 오게 되어 자연스럽게 전학을 오게되면서 학교 전입신청을 할때 낯선 환경에 겁을 먹어서 부모님에게 의지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던 제가 생각나는 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 집에서 혼자 있던 터라 분명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제가 어려운 상황에 닥치거나 힘든 상황에 닥쳤을때 늘 부모님께 의지했던것 같습니다. 이젠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앞으로는 사회에 진출할 일만 남은 저라서 더욱 시가 공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 시를 마음 속에 되새기며 앞으로의 사회 생활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8-11-05 11:59:19
    11116이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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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19정환희

    어릴땐 자신이 할수있는것이없다. 자신이할수있는것은 단지 밥먹는것과 노는것밖에... 하지만 엄마의 손길로 인하여 자신은 성장해간다. 나는 어머님들을 존경한다. 자신도 하고싶은것이 있는데 그것을하지않고 아이들을위해 돌보고 먹이고 놀아주고 하여 자신의 시간을 아이에게 써가며 아이들의성장을 위해 노력하신다. 하지만 아이들은 커서 그런것을 모르고 어머니들께 막 하지만 이 시를 읽고 다시한번 아이들이 생각하길바란다. 엄마들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사랑스러워했는지..나는 이 시를읽고 다시한번더 생각하게 된다.

    • 2018-10-29 12:17:03
    11019정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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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서10802

    엄마의 품을 떠나 더 큰 사회로 나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그린 시 같아요. 저도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의 품에서 더욱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엄마 강물을 떠나는 어린 강물에게 더 공감이 되었네요. 저를 고등학교에 보내시면서 걱정이 더욱 많아지셨을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부모님께 더 효도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이 시는 연과 행을 구별하지 않은 산문시 기법을 이용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이 ‘시’라는 생각이 살짝 들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습니다’라는 종결 어미를 반복해서 사용해 운율을 형성하여 리듬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또한 인간의 이야기를 강물에 빗대는 비유법을 사용하고 사람이 아닌 강물이 손을 놓는다는 표현에서 의인법을 발견할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로운 시였답니다.

    • 2018-05-28 14:35:46
    김준서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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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동화를 보는 것 같아요. 슬프지만 아름답네요.

    • 2010-10-22 19:42:2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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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어릴땐 엄마 손을 꼬옥~~~이 손을 놓치면 모든걸 다 잃는줄 알았거든요.언제 엄마손을 놓았는지 그 무서운 세파속을 헤짚으며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엄마의 따스한 온기는 이젠 영원할 수 밖에 없는 세월이 빠르게도 스쳐지나가고, 엄마의 그 길을 생각하며 자신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 2007-09-07 14:48:5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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