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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동그라미」

  • 작성일 2008-03-31
  • 조회수 18,506

동그라미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 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 출처 :『물 속의 불』,천년의 시작 2007

 

● 詩 - 이대흠: 196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94년『창작과비평』에 시가, 1999년『작가세계』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상처가 나를 살린다』『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장편소설『청앵』등이 있으며,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송 - 김근: 시인, 문학나눔사무국

 

모든 것을 둥글게 만드는 어머니와 ‘ㅇ'의 결합이 딱 맞아떨어집니다. 우리말 유성음 ‘ㅇ'의 풍성한 잔치입니다. 이 시 한 편에 ‘ㅇ'이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 헤아려보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ㅇ'의 개수를 파악하고 나면 ‘ㅇ'의 끝없는 울림이 그칠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이 ‘ㅇ'의 힘은 어머니의 힘인 동시에 남도의 힘이요, 흙의 힘이기도 합니다. 이 앞에서는 막대기의 뻣뻣함, 직선의 횡포, 남성의 폭력, 도시의 이기심이 다 무릎을 꿇습니다. 오로지 어머니만이 이 세상의 받침입니다. 저도 시인의 어머니 흉내를 내봅니다. 긍가 안 긍가?

 

2008. 3. 31. 문학집배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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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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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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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1건

  • ynwa88

    20513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새길 수 있게 해 주었던 시 인 것 같다. 항상 우리에게 둥글둥글하게 대해주시는 어머니에게 과연 우리는 둥글둥글하게 해드리고 있을까? 시에서 'ㅇ'이 자주 등장하여 어머니의 사랑이 더욱 더 선명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 2017-07-09 23:35:42
    ynwa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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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어머니.....라는 단어 자체도 둥글게 둥글게~~이렇게 말씀 하시던 분이 계셨는데....옹가? 강가?......다시 듣고픕니다....

    • 2008-07-30 00:56:4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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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어머니의 '어'자가 ㅇ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어머니께서 세상 모든 것을 둘글게 살아 오셨음의 징표가 아닐까? 자식을 위한 언어 ㅇ으로 말하는 어머니의 둥근 말씨 '항가, 강가, 봉가, 상가, 옹가, 등은 어머니의 버릇이기 전에 시인에게 둥글게 살라는 어머니의 의식이며 교훈이다. 방언은 그 지방의 기후, 풍토, 지형, 삶의 유형과 관련이 반드시 있다고 한다. 시인의 고향은 구성원들이 둥글게 살아가는 둥근 곳일 성싶다. 시인의 어머니 처럼 우리도 모두 둥글게 ㅇ으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 2008-07-29 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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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사람으로써 전라도 말을 어려서부터 듣고 살아왔으면서도 ~ㅇ 소리의 울림을 예사로 듣었던 자신을 깨닫습니다. 끝이 ㅇ의 울림소리로 끝날 때 촌스러우면서도 뭔가 가슴을 따뜻하게 만지는 듯한 느낌, 젖을 만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음을 이제야 기억합니다. 울컥 어려서의 아련한 추억들이 밀려옵니다. 특히 어머니를 비롯하여 이웃아주머니들 나누시던 말씀들이 가슴을 밀치며 텃밭의 상추처럼 푸룻푸룻 해집니다. 서술어의 이응 받침들이 물풍선처럼 떠오릅니다. '항가, 강가, 봉가, 상가, 옹가, 중가, 멩가, 팡가 .......'

    • 2008-07-29 21:06:4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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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살아계신지, 아니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고계신지, 당신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습니다. 이제, 당신찾기를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보고싶은 마음 하나로당신에게 달려가겠습니다.

    • 2008-07-29 19:5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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