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조은「한 번쯤은 죽음을」

  • 작성일 2008-10-13
  • 조회수 4,763





   한 번쯤은 죽음을

                      조은


열어놓은 창으로 새들이 들어왔다
연인처럼 은밀히 방으로 들어왔다
창틀에서 말라가는 새똥을
치운 적은 있어도
방에서 새가 눈에 띈 건 처음이다
나는 해치지도 방해하지도 않을 터이지만
새들은 먼지를 달구며
불덩이처럼 방 안을 날아다닌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고 숨죽이고 서서
저 지옥의 순간에서 단번에 삶으로 솟구칠
비상의 순간을 보고 싶을 뿐이다
새들은 이 벽 저 벽 가서 박으며
존재를 돋보이게 하던 날개를
함부로 꺾으며 퍼덕거린다
마치 내가 관 뚜껑을 손에 들고
닫으려는 것처럼!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
새들은 절대로
출구를 찾지 못하리라
한 번쯤은 죽음도 생각한다면……


 
● 출처 :『따뜻한 흙』, 문학과지성사, 2003.

 

  

● 詩 - 조은 : 1960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 『무덤을 맴도는 이유』 『따뜻한 흙』 등이 있음.

 

● 낭송 - 이영주 : 시인.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가 있음.

 

?마음이라는 비좁은 방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새들처럼 날아 들어와 고통스럽게 파닥거리는 때가 있지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딪치며 생각의 날개가 꺾이고 부서질 때, 마음은 그야말로 불덩이 같습니다. 그런데 그 불덩이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더욱 갇히게 된다는 걸 여러분도 경험하셨을 거예요. 이런 때 수행자들은 생각을 제거하려고도 하지 말고, 제거하지 않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권유하지요. 마음 속의 새가 날개를 가라앉히고 마침내 출구를 발견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죠. 시인은 그 얘길 “한 번쯤은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로 바꾸어 말합니다. 목숨을 떼어놓고 보면 존재의 자리가 훨씬 잘 보이니까요.

?

2008. 10. 13. 문학집배원 나희덕.

추천 콘텐츠

신현락, 「고요의 입구」

  신현락, 「고요의 입구」 개심사 가는 길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나무들 서둘러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추위를 털면서 숲 속으로 사라지는길도 금세 눈으로 소복하다 여기에 오기까지 길에서 나는몇 번이나 개심(改心)하였을까한 송이 눈이 도달할 수 있는 평심(平心)의 바닥그것을 고요라고 부를까 하다가산문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본다 어느 자리, 어느 체위이건 눈은 불평하지 않는다불평(不平)마저 부드러운 곡선이다설경이 고요한 듯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허지만 송송 뚫린 저 오줌구멍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마을의 개구쟁이들이 저지른 저 고요의 영역 표시경계 앞에서도 어쩔 수 없는 방심(放心) 뒤에 진저리치던나의 불평이란 기실 작은 구멍에 불과한 것하물며 개심(開心)이라니! 그 구멍의 뿌리 모두 바닥에 닿아 있으므로길은 불평의 바닥이다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눈이 내렸을 뿐 나는 아직 고요의 입구에 있는 것이다 ● 시_ 신현락 - 1960년 경기 화성 출생. 시집으로 『따뜻한 물방울』『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과 논저로『한국 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이 있음.● 낭송_ 변진완 - 배우. 연극 <블랙박스>, 뮤지컬 <천상시계> 등에 출연.● 출전_ 『히말라야 독수리』(bookin)●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를 ‘문득 한 깨달음 주려는가’로 읽어도 좋을까? 시에 두 개의 개심이 나온다. 개심(開心)과 개심(改心). 앞의 개심은 ‘지혜를 열어 불도(佛道)를 깨우친다’ 즉 ‘마음이 열린다’는 뜻으로 굉장히 높은 경지의 말이고, 뒤의 개심은 ‘마음을 바르게 고친다’는 뜻으로 범상한 우리네 경지의 말이다.  별안간 소낙눈이라지만, 눈이 쏟아지기 전에도 하늘은 끄무레했을 것이다. 개심사를 찾아가는 시인의 마음처럼. 범상한 한 사람인 시인은 깨달음과 번민, 용서와 상처 사이에서 진자처럼 움직이는 마음의 불평에 처해 있다. 울퉁불퉁한 그 마음바닥이 눈경치를 바라보면서 둥글어지는 듯하다. 곡선은 고요하다. 한 송이 한 송이 눈이 내리고 쌓여 이루는 설경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설경은 그러하나, 나(시인)는? 나는 기실 뾰족뾰족하다.  ‘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  뭐, 눈이 오기에 잠시 취해 있었을 뿐, 호락호락 개심(開心)할 내가 아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마음의 고요, 평심의 입구 산문에서 그저 설경을 바라볼 뿐이로다.   소박하고 단아한 시인데, 호락호락 깨달은 척하지 않는 총명함이 톡 쏘는 맛을 낸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 웹관리자
  • 2013-01-07
이창기, 「즐거운 소라게」

이창기, 「즐거운 소라게」 잘 다듬은 푸성귀를 소쿠리 가득 안은막 시골 아낙이 된 아내가쌀을 안치러 쪽문을 열고 들어간 뒤청솔모 한 마리새로 만든 장독대 옆계수나무 심을 자리까지 내려와고개만 갸웃거리다부리나케 숲으로 되돌아간다 늦도록 장터 한 구석을 지키다한 걸음 앞서 돌아가는 흑염소처럼조금은 당당하게,제집 드나드는 재미에갑자기 즐거워진 소라게처럼조금은 쑥스럽게, 얼마 전에 새로 번지가 생긴 땅에한 채의 집을 지은 나는세 식구의 가장(家長)으로서나의 하늘과별과 구름과시에게 이르노니 너희 마음대로떴다 지고흐르다 멈추고왔다 가거라! ● 시_ 이창기 - 1959년 서울 출생. 시집으로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李生이 담 안을 엿보다』『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등이 있음.● 낭송_ 노계현 - 성우. 외화 <구름 속의 산책> <보통사람들> 등 다수 출연.● 출전_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문학과지성사)●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시골에서 10년 가까이 더 살아 보았다. 여전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2005년에 발행된 시집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의 자서(自序)다. 그 시골 생활의 초기 풍경을 옮긴 시다. ‘얼마 전에 새로 번지가 생긴 땅에/ 한 채의 집을 지은’ 시인은 ‘푸성귀를 소쿠리 가득 안은/막 시골 아낙이 된 아내’니 ‘새로 만든 장독대’니 ‘계수나무 심을 자리’니, 마당까지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갸웃거리다 부리나케 달아나는 청솔모니, 여태 몸담아온 도시와는 완연 달라진 삶의 터전에서 모든 것이 새로워 쑥스럽기까지 하다. 그 낯가림과 불안을 떨치고 시인은 시인 가장으로서의 각오와 기대를 아름답고 서늘하게 펼친다.  내가 처음 본 이창기는 아주 젊은 이십대 청년이었는데, 한참 전에 흘러간 가요였던 배호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도 그렇고, 어딘지 아저씨 같은 데가 있었다. 만주에서 태어났다는 그의 말이 믿길 정도로. 그리고 말투나 미소가 어딘지 빈정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게 따뜻한 마음과 장난기와 수줍음의 미묘한 배합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나 알았다. 그의 시들은 시인을 꼭 닮았다. 인생과 생활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깊숙한 시선, 느긋하게 한 발 비껴선 듯 짐짓 한가한 포즈, 때로 이죽거리거나 낄낄거리면서도 놓치지 않는 서정, (세심히 볼수록 증폭되는)뉘앙스 풍부한 진술…….  「즐거운 소라게」를 한 번 더 읽어본다. 둘째 연이 유독 슬프다. 장터에 흑염소가 왜 나가 있었겠는가? ‘늦도록 장터 한 구석을’ 지켰건만 흑염소를 팔지 못한 채 터덜터덜 귀가하는 주인의 심사엔 아랑곳없이 흑염소는, 마치 함께 ‘마실’이라도 다녀오는 양 신나라 앞서 걷는다. 궁둥이를 실룩거리며 당당하게.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주인은 한숨을 쉬며 흑염소에게 저녁밥을

  • 웹관리자
  • 2012-12-31
유하, 「참새와 함께 걷는 숲길에서」

유하, 「참새와 함께 걷는 숲길에서」 바람이 낳은 달걀처럼참새떼가 우르르 떨어져 내린탱자나무 숲기세등등 내뻗은 촘촘한 나무 가시 사이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참새들은 무사통과한다 (그 무사통과를 위해참새들은 얼마나 바람의 살결을 닮으려 애쓰는가) 기다란 탱자나무 숲무성한 삶의 가시밭길을 뚫고총총히 걸어가는 참새들의 행렬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참새들은 얼마나 가시의 마음을 닮으려 애쓰는가) ……난 얼마나 생의 무사통과를 열망했는가  ● 시_ 유하 -  전북 고창 출생. 시집으로 『武林일기』『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세상의 모든 저녁』『세운상가 키드의 사랑』『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천일마화』 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 수상.● 낭송_ 김민성 - 성우. <격동50년>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 출연.● 출전_ 『세상의 모든 저녁』(민음사)●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김은미● 프로듀서_ 김태형   이 시가 실린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에서 「세상의 모든 저녁3」을 읽다가, 무릎을 치는 대신, 나는 얼른 옮겨 적었다. ‘헤비메탈을 부르다 뽕짝으로 창법을 바꾸는/그런 삶은 살지 않으리라’  시집이 나온 당시, 내 뜨악했던 감상 원인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헤비메탈 쪽인 줄만 알던 가수가 ‘뽕짝’을 부르는 걸 볼 때, 재밌기도 하지만 어쩐지 ‘손이 오글거리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 전의 유하는 세련된 솜씨로 시대를 찌르고 휘저으며 요리하던, 영악해 보일 정도로 재기 넘치는 도시 시인이었던 것이다.   긴 세월이 흐른 이제 내게도 그때는 없었던 미감(美感)이 생긴 것 같다. 구성진 ‘뽕짝’의 눅눅한 아름다움을 능히 알만한 나이가 돼 버린 것이다.(유하 시들이 ‘뽕짝’이었다는 말은 결단코 아니다!). 다른 시집들에서 유하가 옹호하고, 의도적으로 표방했던 ‘키치’의 발랄함 대신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을 채우고 있는 건 진솔함이랄지 어떤 진득함이다. 시골 풍경이나 기후에 기대어 삶에 대한 성찰과 슬프고 여린 마음을 출중한 언어 감각으로 조리한, 그 깊은 맛! 그 전의 유하 색깔이 바이올렛이라면, 『세상의 모든 저녁』은 퍼플이라고 할까.   ‘난 얼마나 생의 무사통과를 열망했는가’나도 그렇다! 그러나 무사하지 않아서 시를 잉태했고, 무사하지 않아도, 무사하지 않은 채, 우리는 생을 통과한다. ‘탱자 가시 울창한 삶의 목구멍이여,’ (「저녁 숲으로 가는 길 2」에서)  유하는 이제 시 안 쓰나? 유하도 보고 싶고, 그의 새로운 시도 보고 싶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 웹관리자
  • 2012-12-24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4건

  • 10212 양태권

    작가는 이 시에서 새를 통하여 작가자신의 마음을 나타낸 것 같다.작가가 열어놓은 창으로 새가 들어오면서 이 시는 시작된다. 새는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새는 이벽 저벽을 박는다. 나는 새가 작가의 마음속의 나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새가 난동을 부리는 행동은 작가의 마음속이 혼란으로 가득찼다는 암시이기도 한 것 같다. 새가또한 작가는 새가 난동을 부리고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 새들은 출구를 찾지 못한다는 말을 하면서 오히려 살고자 하는 욕망을 없애야 살 수 있다는 메세지를 이 시에 남긴 것 같다. 따라서 이시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은 '살려는 욕망'부터 '못하리라'까지이다. 나는 이시를 읽고 내 안에 불덩이가 생기면 그 것을 표출하지 않고 참으면 탈출구가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 2018-11-05 08:48:38
    10212 양태권
    0 / 1500
    • 0 / 1500
  • 10907박세환

    글쓴이는 어떠한 일이 잘 안 되거나 안 풀릴때 상황을 생각하여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우리가 부딪히는 크고 작은 소소한 것들까지도 모든 갈등에 해당하는 것들중에서 말이다. 그런 상황을 생각하며 고뇌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상상이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도 그런 비슷한 상황이 많았다는 것을 동감하게 되었다. 평소에 내가 머리 아프게 공부를 하고 있을때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지 몸부림 치면 칠수록 고통만 늘어만가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그럴때 그럴수록 차분히 앉아서 해결 방법을 찾아보는게 좋은방법이라고 생각하던 나를 회상하게 되었다.결과적으로, 이 시를 통해서 복잡한, 난잡한 상황에는 모든걸 내려 두고 시야를 넓히고 크게 보는게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나의 작은 ,큰일을 고뇌하는 아무런 결정을 하지못하는 우유부단한 나의 삶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

    • 2018-05-29 15:47:48
    10907박세환
    0 / 1500
    • 0 / 1500
  • 이송주10515

    새가 집안에 들어오는 일상적인 경험에서 죽을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것이 아주 인상 깊게 느껴진 시 입니다. 그 새들이 느꼈을 공포와 고통을 사람에 의인화하였다는 것이 저에게는 감동을 줬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목숨을 떼어놓고 마음을 비우고 보면 그 상황이 더 잘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시 같습니다. 사람이 중요한 순간에 잘할려고 발버둥 치는것 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몸부림치는 것보다 차분한 것을 유지하려고 해야겠습니다. 중요한 것을 보려면 목숨을 떼어 놓고 봐야하는 것 같습니다.

    • 2018-05-29 15:00:41
    이송주10515
    0 / 1500
    • 0 / 1500
  • 문동하10307

    작가는 좁은방에서 날개를 퍼덕거리며 살아 나가려는 새들을 우리의 마음이란 좁은 방에서 우리의 고민거리와 생각들이 마음속에서 돌아다니며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이 시에서 작가가 표현하려는 것은 살려고 하는 새처럼 날개를 퍼덕거리면 오히려 먼지와 흙이 날려 진정 찾고자 하는 것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침착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답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을 한 번쯤은 죽음을 생각 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이 구절은 마치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하신 명언인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라는 명언이 떠올라 더욱 더 감명깊은 구절이다.

    • 2018-05-29 09:55:54
    문동하10307
    0 / 1500
    • 0 / 1500